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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필요한 이유

일취월장7 2018. 10. 20. 09:34

책 안 읽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필요한 이유 


책 안 읽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필요한 이유 / 세상을 잇(IT)는 이야기 /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에 비하면 신체 조건은 보잘것없다. 대신 가진 걸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대표적 동작이 던지기다. 인간과 신체 구조가 유사한 침팬지도 공 던지는 속도는 시속 30㎞ 정도밖에 안 된다. 초등학생 소년도 그보다 훨씬 빠르다. 메이저리그 투수의 구속은 시속 160㎞를 오간다.

진화론을 처음 주장했던 찰스 다윈에 따르면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독특한 던지기 능력을 얻었다. 효과적 사냥이 가능해진 건 그 덕분이다

다윈[1]은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며 손이 자유로워졌고, 그 결과 독특한 던지기 능력을 얻으며 사냥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추론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가 2013년 6월 영국 과학 전문 주간지 네이처(Nature)에 소개된 적이 있다. 비결은 몸의 효과적 사용이었다. 인간의 던지기는 팔뿐 아니라 어깨(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신)까지 활용하는 게 특징인데, 이때 어깨를 감싼 인대와 힘줄이 새총의 고무줄처럼 탄성에너지를 응축했다 던지는 순간 풀어놓는다. 인간은 어깨뼈가 낮고 위팔뼈(상완골)가 몸통 축과 직각이어서 팔을 뒤로 더 많이 젖힐 수 있다. 피구 경기를 할 때 여성이 공에 힘을 싣지 못하는 건 이 같은 팔 젖히기 요령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야구하기에 적합한 인간의 어깨 구조만 해도 실은 오랜 조정의 결과물이다.

인체에 내장된 최고 기술 ‘읽고 쓰기’

언어를 통해 도약하는 인류의 모습을 3단계로 표현

흔히 ‘기술’이라고 하면 스마트폰 같은 외장 기기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던지기처럼 인간 몸에 내장된 기술도 허다하다. 각종 예체능 분야 고수들의 고난도 기량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별적으로 특화된 기술 외에 인류 범용으로 확립된 기술도 있다. 그중 (아주 특별한) 하나가 바로 읽고 쓰는 능력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마음을 길들이고 보다 정교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언어는 집단 내 의사소통과 협동을 도왔고 개념을 통한 자문자답을 가능케 함으로써 학습 욕구를 불태웠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읽고 쓰기의 내력은 꽤 길고 복잡하다. 출발은 5만 년 전 언어의 발명('출현'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 특유의 분절 언어가 생겨나게 된 과정은 학계에서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쨌거나 (학자들이 곧잘 쓰는 표현에 따르면) 그건 인류 입장에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미국 고인류학자 리처드 클라인[2]은 언어의 탄생을 “인간 운영 체제에 일어난 변화”라고까지 평가했다. 언어 덕에 비로소 인간이 마음을 길들이고 좀 더 정교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단 뜻이다. 언어는 집단 내 의사소통과 집단 구성원 간 협동을 도왔다. 인간이 개념을 통해 자문자답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학습·창작 욕구를 불태울 수 있게 된 데도 언어의 역할이 컸다.

뒤이어 언어를 담는 문자가 발명되면서 인류는 또 한 번 높이 도약했다. 이 과정에 대해선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 요즘은 문자와 글이 물과 공기처럼 익숙하지만 (모든 기술이 출현 초기에 그랬듯) ‘말의 시대’에서 ‘글의 시대’로 넘어올 때의 저항은 만만찮았다. 소크라테스[3]가 저항군에 속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문자를 두고 테우트 신과 타무스 왕의 견해가 나뉘는 모습 / 문자는 이집트인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 것 / 문자는 학습자의 정신을 나태하게 만들 것

플라톤[4]의 대화 ‘파이드로스’[5]에 따르면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인류에 문자를 선사한 테우트신이 “이 발명품은 이집트인을 더 현명하게 만들고 이집트인에게 보다 좋은 기억력을 선물할 것”이라고 하자, 타모스왕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대의 발명은 학습자의 정신을 나태하게 만들 것이다. 학습자는 더 이상 자신의 기억을 사용하지 않을 테고, 스스로 생각하려 하기보다 문자로 쓰인 외부 자료를 보다 신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발명한 ‘그 특별한 것’은 추억을 보조한다. 그러니 그대가 제자들에게 준 건 진실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많은 걸 듣는 청자(聽者)가 되겠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거의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지루한 인간이 될 것이며, 실재하지도 않는 지혜를 보여주려 할 것이다.”

천하의 소크라테스도 틀릴 때가 있었다. 이후 장장 4000년간 인류는 글의 혜택 속에 살고 있다. 문명이란 단어부터가 ‘글로 밝아진다’는 뜻이다. 종교·과학 등 사피엔스의 모든 위업이 글 위에 쌓이고 전수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가 뇌 속 소프트웨어 향상시킨다?

글을 읽었을 때 음절 형태소로 나눠서 내용을 파악하는 모습

대량 인쇄술 발명은 여기에 터보 엔진 같은 역할을 했다. ‘글 읽는 뇌’의 저자인 프랑스 인지심리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6]은 “종이 위 점과 선이 눈을 거쳐 인간 의식에 심상으로 떠오르고 의미로 이해되는 과정은 경이 그 자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인간은 한눈에 단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글꼴에서 의미를 곧바로 얻지 않는다. 문자열을 부분으로 쪼개고, 그것들을 다시 문자·음절·형태소 등의 위계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 같은 분해와 재결합이 모두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다시 말해 읽기는 뇌신경에 길을 내고 닦은 결과물이다. 실험에 따르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성인의 뇌와 문맹 성인의 뇌를 비교하면 전자가 좌반구 자원을 훨씬 더 많이 이용하고 언어의 기억 폭도 더 커진다. 드앤은 “오늘날 뇌과학은 여러 유형의 정보를 조합, 통합하는 능력이 언어와 연결돼있다고 규정한다”며 “인간이 초월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된 건 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능력을 학습, 지능을 어떻게 확대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던지기가 사냥을 위한 고도의 신체 기술이었듯 읽기는 뇌 속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신생 기술이다

‘책 읽는 뇌’의 저자인 미국 인지과학자 매리언 울프[7]는 “독서는 뇌가 새로운 능력을 학습해 지능을 확대시켜가는 방법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글을 곧바로 이해하는 능력은 초기 판독에 드는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더 깊이 분석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고 썼다.

사실 인류가 이런 읽기 능력을 습득한 건 불과 수천 년 전이다. 더구나 대중 차원의 글 읽기는 불과 수백 년 전, 근대 교육이 도입된 후에야 실현됐다. 인류 종(種)의 긴 역사로 보면 비교적 최근 일인 셈이다. 던지기가 사냥을 위해 발달한 고도의 신체 기술이었던 것처럼 읽기도 뇌 속 정교한 소프트웨어 향상을 위한 신생 기술이었던 셈이다.

부의 양극화보다 두려운 ‘지의 양극화’

책으로 지력의 양극화 표현 책 한쪽 면은 정보가 가득한 면, 반대쪽은 정보가 없는 면 정보 가득한 면 아래서 풍부하게 생활하는 사람

많은 사람이 자동화로 인한 인간의 위기와 부(富)의 양극화를 걱정한다. 그런데 실상 그 못지않게 우려해야 할 게 ‘지(知)의 양극화’다. “오늘날처럼 대중이 ‘짧고 쉬우며 직관적인’ 이미지에만 반응하면 자칫 사고마저 얕고 단순해질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획일적 대중과 창의적 소수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럴 경우, 가짜 뉴스와 선동을 앞세운 포퓰리즘의 위험도 커진다.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창의적) 소수도 안심할 수 없다. 그런 양상은 이미 지식 생산 영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표면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과학 시대의 지식은 인프라와 인력을 먼저 갖춘 곳에서 격차를 벌려간다. 출판과 저널리즘 품질 면에서도 글로벌 양극화의 징후가 뚜렷하다.

어떤 신기술도, 그 기술이 만들 새 세상도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다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인류가 꿈꾸는 미래 역시 ‘그 너머’를 생각하는 능력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울프는 “독서야말로 인간이 딛고 심연으로 돌진해 들어갈 수도,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는 도약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마법의 기술은 얕고 가벼운 공짜 오락물을 앞세운 또 다른 기술의 파상 공격으로 주춤거리는 중이다. 분명한 건 그 어떤 신기술도, 그리고 그 기술이 만들 새로운 세상도 인간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으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일 수밖에 없단 사실이다. 인류가 꿈꾸는 미래 역시 ‘기술 사회 너머’를 생각하는 인간 능력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Charles R. Darwin(1809~1882). 영국 생물학자로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을 주장했다. ‘종(種)의 기원’ 등의 책을 썼다
[2] Richard G. Klein(1941~).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교수. “인류 역사의 한 지점에서 발생한 유전학적 돌연변이가 언어 능력과 관련 있는 두뇌 능력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했다
[3] Socrate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자였던 플라톤의 ‘대화편’에 주요 사상이 수록돼 전해진다
[4] Plato.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국가’ 등의 저서를 남겼다
[5] 원제 ‘Phaidros’. 아름다운 강변 숲 속에서 이뤄진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담은 작품
[6] Stanislas Dehaene(1965~). 인지신경과학 전문가로 프랑스 인지신경촬영연구소(SACLAY) 소장을 맡고 있다
[7] Maryanne Wolf(1950~). 미국 터프츠 대학 엘리엇-피어슨 아동발달학과 교수 겸 독서와언어연구센터 소장



블록체인이 바꿀 내일 ‘미리 보기’ 해보니 


‘기록된 정보를 공개적으로 공유, 온전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기술’. 연재를 시작하며 소개했던 블록체인의 정의다. 더 간단하게 설명하면 ‘삭제와 수정이 불가능한 기록물을 남기는 기술’이라 해도 좋겠다. 이후 칼럼에선 블록체인이 어떻게 ‘신뢰’를 전파할 수 있는지, 또 신뢰를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작업이 자동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각각 살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블록체인의 미래 적용 방향, 더 나아가 블록체인이 만들어갈 미래를 다뤄볼 생각이다.

재화∙서비스 대가, 꼭 ‘돈’으로 치러야 할까?

블록체인의 앞날을 말하기에 앞서 블록체인을 탄생시키고 세상에 알린 계기였던 암호화폐 얘기부터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마련되는 순간, 돈은 더 이상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아니다. 실물 화폐 거래 없이 기록만으로 돈을 대신하는 신용카드가 이를 입증한다

돈에 붙여지는 이름은 화폐, 통화 등 여러 가지다. 돈을 이용하면 부(富), 즉 가치를 저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건을 사거나 교환할 수도 있다. 인류가 돈을 수단 삼아 가치를 저장, 교환해온 역사는 꽤 오래다. 누구나 돈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고, 그래선지 뭔가의 가치나 대가를 말할 때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돈이다.

BANK / 심부름 / 수학 강의 / 돈을 주고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어른, 그 대신 수학 강의를 해주는 어른, 이를 지켜보는 은행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아이에게 심부름 값 1000원을 건네며 음료수를 사오게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이때 A는 아이에게 ‘(물건) 구매 대행 서비스’를 위탁하는 게 된다. 당연히 그 대가는 심부름 값이다. 즉 아이가 제공한 서비스 가치가 돈으로 환산된 것이다. 좀 유치한 가정이지만 아이가 이 1000원을 A에게 주고 1주일간 수학을 배운다면? 이번엔 A가 아이에게 제공한 교육 서비스 대가가 다시 돈으로 환산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각 상황에서 모든 대가는 꼭 돈으로 바뀌어야 하는 걸까?

앞선 사례에서 (아이가 A에게 제공한) 구매 대행 서비스와 (A가 아이에게 제공한) 교육 서비스가 교환될 수 있다면 그 상황에서 돈의 존재는 없어도 무방하다. 비단 이 예가 아니라도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이 마련되는 순간부터 돈은 더 이상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아니다. 실물 화폐 거래 없이 기록만으로 돈을 대신하는 신용카드가 대표적이다.

A와 아이의 사례에서도 모든 거래가 신용카드로 이뤄졌다면 돈 대신 신용카드 거래 내역 기록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을 관리하는 주체는 은행이다. 만약 거래 당사자가 은행을 믿지 못한다 해도 신용카드 이용이 가능할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사람이라면 두 가지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돈은 거래 기록으로 대신할 수 있다. 둘째, 이때 거래 기록은 믿을 수 있는 기관(이를테면 은행)을 통해 관리된다.

“제품 값, 유기농인 게 확인되면 지불할게요”

앞서 연재된 세 편의 칼럼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블록체인이 위 두 요소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란 사실을 금세 알아챌 것이다(물론 첫째 조항을 통과하려면 거래 기록을 보호하고 거래자 신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이 추가돼야 한다).

거래에서 중요한 건 ‘합당하고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가치 교환’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상황에 일정 조건을 걸 수 있다면 돈으론 불가능한 ‘고급 가치 교환’도 가능해진다

암호화폐는, 은행 대신 (믿을 수 있는) 블록체인을 사용하고 거래 기록을 사용자 중심으로 바꿔놓은 형태다. 핀테크(fintech)의 하나로 분류되는 암호화폐 응용 분야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최초 사례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돈이란 수단에 얼마나 익숙한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테크는 블록체인 응용의 시작이긴 해도 전부는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서비스의 대가가 반드시 돈으로 환산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합당하고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가치 교환’이다. 만약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상황에 일정 조건을 걸 수 있다면 현재의 돈으론 불가능했던 ‘고급 가치 교환’도 가능해진다.

제조과정 확인 결과 유기농 요건에 부합합니다. 결제하시겠습니까? OK BLOCK CHAIN 모바일 결제 모습

이번에도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유기농 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있다. 편의상 B라고 해두자. B는 유기농(이라고 광고하는) 상품을 사면서 그게 실제 유기농 상품이 맞을 때만 판매자에게 지불되는 돈을 쓰고 싶어 한다. 현행 실물 화폐 체계에서 이런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블록체인 체계에선 조건에 따른 행위 정의가 가능하다. B의 사례에 이를 적용하면 B는 거래가 성사되는 시점에 자신이 구입할 물건 제조 과정 기록에 “모든 거래는 물건이 유기농 요건에 맞게 제조됐을 때에 한해 이뤄진다.”는 단서를 달면 된다. 이런 가정이 실현되려면 제조 과정 기록 일체가 블록체인에 남아야 한다. 거래 과정에서 가치뿐 아니라 (제조 관련) 정보까지 함께 교환되는 셈이다.

아쉽게도 B 사례에 등장하는 가치 교환 수단은 아직 상용화 전 단계다. 최근 관심을 모드는 암호화폐의 경우, 금전적 거래 쪽으로 응용 분야가 치우쳐 있어 개선된 신용카드처럼 쓰이는 게 사실이다.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1] 등이 등장하며 조금씩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보편적 실용화 단계까지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류 제출은 간소하게, 이익 분배는 공정하게

모든 사물의 정보가 고유한 문서 형태로 블록체인에 저장될 수 있다면, 또 이들 간 거래 정보가 가치 교환과 연결될 수 있다면 블록체인은 비로소 제 몫을 다하게 된다

블록체인의 가치 보존∙교환 기능이 제대로 활용되려면 블록체인에 저장되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의 연결이 필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물 정보가 저마다의 고유한 문서 형태로 블록체인에 저장되고, 이들 간 거래 정보가 가치 교환과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블록체인은 제 몫을 다하게 된다. 블록체인이 제대로 응용되려면 블록체인에 의해 보존(교환)된 가치가 이용(거래) 정보와 잘 결합돼야 한단 얘기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블록체인이 바꿀 미래, 그 시작은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모순적 상황의 해결이어야 한다. 이때 모순적 상황의 예로 들 수 있는 건 서류 중복 제출, 불공정한 이익 분배 따위일 것이다.

음원 제작자와 사용자간의 합리적인 결제 절차가 가능한 블록체인

우선 서류 중복 제출부터. 행정 업무를 보거나 보험 처리 절차를 진행하며 똑같은 서류를 거푸 제출해본 경험,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서류 저장소를 블록체인으로 설정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제출된 서류를 보관해야 하는 기관이 직접 블록체인을 가동, 접수된 서류를 직접 처리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블록체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고 관련 서비스 개발 정도도 미흡해 이런 체계가 곧바로 적용되긴 힘들겠지만 적절한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그리 먼 얘기도 아니다. 친구끼리 한 약속이나 가족 간 내기 같은 소소한 기록을 증명할 때에도 기록 저장 수단을 블록체인으로 설정해둔 후 필요 시 해당 기록을 꺼내 확인하면 불필요한 분쟁이나 충돌을 막을 수 있다.

이익 분배의 공정성을 꾀할 수 있는 대표적 분야로 저작권료가 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작곡자나 제작자는 자신이 만든 음악이 어디서 이용되고 얼마나 팔리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관련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음악 제작에 관여한 사람들 간 이익 배분 비중도 종종 합리적이지 못했다. 이래저래 정당한 대가를 챙겨 받지 못하는 음악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자동화 절차에 응용, 판매 수익을 일정 비율에 따라 배분하도록 미리 정하고 그에 맞춰 이익을 자동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된다.

음악 저작권료를 나눌 때 관련 절차를 자동화하며 블록체인을 도입, 판매 수익을 일정 비율에 따라 배분하고 그에 맞춰 이익을 자동으로 나누면 공정성 시비를 피할 수 있다

공유경제∙직접민주주의 실현에도 기여 가능

블록체인과 디지털 아이디를 통해 공유 경제의 활성화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블록체인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디지털 신원(digital identity)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봄 직하다. 개개인의 신원이 확실히 보장되는 사회엔 장점이 많다. 일단 공유경제 운영이 가능해진다. 상품 공급∙유통망이 투명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 소유권 문제도 한층 명확해진다.

공유경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유보다 사용”쯤 될 것이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 자산을 적절히 운영하려면 개별 사용자의 신원이 확실히 파악될 필요가 있다. 또 개인 정보와 고유 자산 이용 관련 정보 일체는 투명하면서도 결점이 없어야 한다. 블록체인은 이 모든 전제를 충족시키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의 특성인 무결성(integrity)과 신뢰는 안전한 물류 운송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섭씨 5도의 냉장 상태를 유지하며 운반해야 할 물품이 있다고 했을 때 운전자 개인 정보와 운반 수단(냉장차)의 운행 정보를 블록체인에 남겨두면 이들 정보를 연결함으로써 유통망을 투명하게 유지할 수 있다. 차 내 온도의 비정상적 상승이나 하락도, 시동이 꺼진 채 방치되지 않았는지 여부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신원 보장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란 점에서 뜻깊다. 이 같은 특징은 공유경제나 상품 유통, 정보 소유권 등이 야기하는 논란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신원 보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생산해내는 정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도 용이해진다. 이를테면 소비자 C는 자신의 쇼핑 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소정의 정보 사용료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블록체인의 지속적 발전은 민주주의의 형태도 바꿔놓을 수 있다. 특히 탈(脫)중앙화를 통한 분산자율주의, 더 나아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물론 아직은 여러 변수가 있어 미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섣부른 감이 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총 네 편의 칼럼을 연재하며 블록체인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술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개중 일부 내용에 관해선 비약이나 무리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한 흔적으로 널리 이해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