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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지켜줄 사람, 당신은 몇명이나 있나요

일취월장7 2018. 9. 8. 10:49

임종 지켜줄 사람, 당신은 몇명이나 있나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80대 노인이 시립 동부병원에서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조문객으로 초청받은 지인들은 노인과 추억을 나누고 노인이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헤어질 때 일일이 포옹을 나누었다.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일전에 말기 암 판정을 받은 80대 노인이 친구와 지인을 병원으로 초청해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해외에서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노인은 1년 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립 동부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장례식은 병실 3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됐다.         

장례식이 시작되자 조문객으로 초청받은 지인들이 차례로 나와 그와의 추억을 나누었다. 조문객의 말이 끝나자 그는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고 헤어질 때 지인들과 일일이 포옹을 했다. 노인은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 지금은 가족의 연이 끊어졌다고 한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글을 보니 오래전 호스피스 교육을 받을 때 본 사례가 생각났다.


자식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장례 치른 아주머니
홀로 자식을 키운 아주머니가 있었다. 자식들은 성장한 후 독립해 나가 살고 혼자 생활을 하다가 암에 걸렸다. 생활이 여의치 못해 병원 자원봉사자들이 그를 돌보았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는데도 자식이 와보지 않는 것이다. 자원봉사자가 자식의 안부를 물었지만, 그냥 희미한 미소를 지울 뿐이었다.

우리는 보통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가족이 돌보아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가끔은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웃이나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중앙포토]

어느 날 임종이 다가왔음을 인지한 아주머니가 자기를 돌보아준 자원봉사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아껴놓던 옷가지들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좋은 날 입으려고 빚어 놓은 예쁜 한복을 먼저 자원봉사자 한사람에게 주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 한복을 받았다. 이렇게 갖고 있던 옷가지를 모두 나누어준 환자는 다시 한번 그녀를 돌보아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했다.         

환자를 돌보던 자원봉사자들이 망자의 장례를 협의하기 위해 가족에게 연락하였으나 그냥 알아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자원봉사자들이 장례를 치렀다. 예쁜 한복을 선물로 받았던 한 자원봉사자가 그 옷을 망자에게 입혔다. 좋을 때 입으려고 아껴두었던 옷을 비로소 죽어서야 입게 된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가족과 같았던 망자를 보내며 눈시울을 적셨다. 비록 가족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 그의 임종이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어려울 때 가족이 돌보아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처럼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있다.

법정 스님이 젊은 시절 수련할 때 열병에 걸려 몹시 앓은 적이 있다. 같은 방을 쓰던 도반 한 사람이 먼 길을 걸어가서 마을에서 약을 지어왔다. 도반이 부축해주어 겨우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새벽 비몽사몽 간에 눈을 뜨니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그에게 혈육과 같은 정을 느꼈다.

인생의 2막은 임종을 준비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기다. 진정한 친구나 이웃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진정한 친구나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pixabay]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모두 이런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깊이 있는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는가. 여기 좋은 사례가 있다.         

홀리와 에린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서로를 알게 된 사이다. 어느 날 홀리는 강압적이고 정서불안인 남편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은 실직 상태인데도 집안일조차 돕지 않았다. 아들은 겨우 한 살이고 따로 아파트를 구할 돈도 없었다. 다행히 홀리에게는 에린이 있었다. 에린이 홀리의 얘기를 듣고 말했다.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와.”

홀리는 10년 전 그날 밤을 회상했다. “에린도 세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어요.” 홀리는 에린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까 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에린은 홀리를 가족처럼 챙겼고 그들의 관계는 전혀 틀어지지 않았다. 홀리는 인생의 가장 암울한 순간에 한마디 비난이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임종 자리 지켜줄 사람들 있으면 성공적인 삶
인생 2막은 임종을 준비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시기다. 자신이 생을 마감할 때 곁에 있어 줄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손꼽아 보라.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건 성공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진정한 친구나 이웃을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먼저 진정한 친구나 이웃이 되어야 한다. 친구는 인생 최고의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축복을 위해 너무 적은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의 뜻을 평소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식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사진 pixabay]

자신의 뜻을 평소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식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사진 pixabay]

 
유서는 죽기 전에 자신의 뜻을 밝히는 문서다. 대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쓰지만 생전에 미리 작성하는 유서도 있다. 자신의 임종에 관해서다. 이런 문서를 ‘생전 유서’ 또는 ‘리빙 윌(Living Will)’이라고 한다. 임종에 임했을 때 죽음을 연장하는 치료를 유보 또는 중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으로 이제 많은 사람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가 부모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연명의료 거부가 혹시 부모의 뜻에 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과 효도를 하지 못한다는 마음에서다. 그러므로 당사자가 자신의 뜻을 평소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식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법정 스님, 39세 때 유서 써 놓아 
스코트 니어링은 죽기 20년 전 유서를 작성했고 죽기까지 두 차례 수정했다. 법정 스님은 39세 때 미리 쓰는 유서란 글을 써서 죽음에 임하는 그의 생각을 적었다. 나도 10년 전 호스피스 공부를 할 때 미리 생전 유서를 써둔 적이 있다. 아래가 그것이다.
 
2013년 씨티은행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유언장을 써 두었다고 답한 사람은 2%에 그쳤다. 일생에 한번은 유언장 쓰기를 권한다. 유언장을 쓰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준다.
 
나의 유언장 내용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하며 중환자실에 있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집에 있으면 모르되 혹시 병원에 입원해있다면 악화되기 전에 집으로 옮겨 주었으면 한다. 얼마를 더 사는 것보다 머물던 곳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떠나고 싶다.
 
임종을 하더라도 시신을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옮기지 말았으면 한다. 살아있을 때도 그렇지만 죽어서도 병원에는 가기 싫다. 더구나 차가운 시신 보관소에 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혹시 공동주택에서 거주할 경우 좀 불편할 진 모르겠지만 빠른 시간 내에 장례를 진행해주기 바란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방의 창문은 좀 열어 두었으면 좋겠다. 비록 죽은 몸이지만 그래도 밤하늘의 별도 보고 싱그러운 공기도 느끼고 싶다.
 
'빅토리 메모리얼 파크' 공원 묘지. 수목장을 하고 돌을 하나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백만기]

'빅토리 메모리얼 파크' 공원 묘지. 수목장을 하고 돌을 하나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백만기]

 
나의 관은 고급스러운 것을 사용하면 안 된다. 그저 평범한 나무로 만든 보통의 관에 뉘기를 바란다. 수의를 따로 맞추어 입고 싶지도 않다. 항상 새 옷은 불편할 뿐이다. 평소 즐겨 입었던 옷을 입혀주었으면 한다.  
 
장지는 가족 묘지가 있으니 그곳을 이용했으면 한다. 그러나 무덤에 봉을 올리거나 비석을 세우면 안 된다. 비문에 새길 공적을 이룬 일도 없거니와 남들 보기에 혐오감을 줄 뿐이다. 다만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작은 돌을 하나 놓는 건 괜찮다.  
 
장례절차에 직업적인 장의사가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몸을 움직일 순 없다고 하더라도 남의 뜻에 따라 내 몸이 다루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다만 잘 모르는 게 있을 땐 조언 정도만 들었으면 한다. 자식들이 직접 장례를 진행하는 게 어려울 수 있겠지만 좋은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임종의 순간에 의식이 있으면 모르되, 만약 의식이 없다면 인공호흡기를 삽관하거나 심폐소생술을 시술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시술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임종을 앞둔 노인들에게는 효과가 거의 없다. 임상 의사의 말을 빌면 목에 큰 호스를 삽입하는 건 환자에게 너무 고통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나는 그저 조용하게 가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면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영양공급을 한다고 강제로 링거를 주사하거나 급식을 시켜서는 안 된다.  
 
죽어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고 싶진 않다. 그러므로 부고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 여러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고 조문객을 맞이하느라고 가족끼리 보내야 할 그 소중한 시간을 빼앗겨서도 안 된다.   
  
나의 죽음을 가족들이 너무 슬퍼하진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그리고 아직은 잘 모르지만 미지의 세계에 가서도 잘 지낼 것이다. 또 장자의 우화처럼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가엾게 여길 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나의 죽음을 통해 자식들이 형제의 우애를 다지고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죽음은 삶에서 겪는 마지막이자 가장 귀중한 경험이다. 죽음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그의 내세가 결정된다는 얘기도 있다. 그 순간은 죽어가는 사람에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자기가 공경하던 신에게 귀의하기 위해 기도도 해야 하는 엄숙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에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소란을 피워 죽어가는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게 해선 안 된다. 가급적 죽어가는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은퇴 준비, '죽음에 대한 계획' 서두르자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한잔 나누다가 헤어졌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비보가 들렸다. 한 친구가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심정지로 죽었다는 것이다. 사연인즉 운전기사가 종점에 도착해서도 좌석에 사람이 있어 가보았더니 이미 숨져 있었다고 한다. 어제까지 유쾌하게 얘기를 나누던 친구가 하루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오래전에 세상을 뜬 친구도 있다. 직장 생활이 한창인 40대에 간암 판정을 받고 치료와 재발하기를 거듭하다가 숨졌다. 몇 번의 수술을 거쳐 5년이 지난 후 이제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기뻐했는데 몇 년 후 다시 다른 장기에 전이되어 운명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 하나가 동창회 명단을 살펴보더니 480명이 졸업했는데 이미 75명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한국 사람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데 60대에 15%가 넘는 사람이 숨진 것이다. 어느 친구는 "평균수명이 늘어나 우리 세대는 90세까지 살 거야" 하며 장담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죽어가거나 투병생활을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지만 확실한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심정지로 갑자기 죽는 것을 선호할까, 아니면 고통을 느끼더라도 암으로 천천히 죽는 것을 선호할까?  
     

삶의 마지막에서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
어느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고통을 받더라도 천천히 죽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고통을 받더라도 천천히 죽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기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고통을 받더라도 천천히 죽는 것을 선호하는 답이 많았다. 왜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것보다 삶을 살며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작별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 사례가 있다. 유진 오켈리는 뉴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972년 세계적인 회계법인 KPMG에 입사했고 2002년부터 3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이전까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으며 가족,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선고가 내려졌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그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명의 연장이나 삶에 대한 집착보다 아내와 자식, 친구들과 동행으로 남는 시간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몇 주간을 인생이 그에게 준 선물로 생각했다.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먼저 그는 가족을 중심 원에 넣고 바깥쪽으로 원을 그려가며 그곳에 오랜 친구들, 사업상의 절친한 동료, 공통의 경험으로 인해 삶을 서로 고양해준 사람의 명단을 적었다. 그리고 후자부터 작별인사를 나누는 의식을 시작한다.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장소는 그때그때 달랐다.
 
예를 들면 공통의 경험을 가진 지인들과는 그곳을 찾아 옛 추억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중요한 관계인가를 재인식한다. 오켈리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들 또한 그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전했다.
 
오켈리의 깔끔하고 의미있는 마무리
인생이 내게 준 선물, 유진 오켈리 지음. 이 책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세 달 만에 사망한 저자의 마지막 90일 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인생이 내게 준 선물, 유진 오켈리 지음. 이 책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세 달 만에 사망한 저자의 마지막 90일 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을 운이 좋다고 표현했다. 오켈리는 투병생활을 하며 자신보다 불행한 암 환자를 많이 만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환자,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자, 뒤에 남겨질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괴로워하는 환자. 그는 그들을 위해 암 환자 기금을 마련한다.
 
그는 마지막 몇 주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마지막 시기가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가 책을 쓴 이유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대개 생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그리고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마지막까지 연명 치료에 매달리다가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켈리는 회계사답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건설적인 경험으로 끌어올렸다.
 
만약 당신이 60세인데 70세쯤에나 죽음에 대한 계획을 세우려 한다면 더 일찍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지금 40세인데 20년 후에나 그 계획을 세울 생각이라면 더 일찍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자신의 죽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은퇴 준비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서도 그리 허둥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남길 수 있다.
[출처: 중앙일보] 또 하나의 은퇴 준비, '죽음에 대한 계획' 서두르자


임종 직전에야 남이 원하는 삶만 산 걸 깨닫는다면

10년 연상의 선배는 앞으로 선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많이 가지라'고 조언했다. [사진 Unsplash]

10년 연상의 선배는 앞으로 선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많이 가지라'고 조언했다. [사진 Unsplash]

 
이슬람 수피족은 병이 났을 때 먼저 의사에게 가기보다 그 병을 앓았다가 나은 사람을 찾아간다. 더 현실적인 처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간다면 지도나 안내 책자를 보기보다 얼마 전 그곳을 다녀온 사람에게 직접 묻는 것이 더 좋다는 논리다. 
 
은퇴 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은퇴를 준비하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문이 생길 때면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에게 묻는 것이 정답을 얻는 방법일 수 있다.
 
10년 연상의 선배와 차를 한잔할 기회가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앞으로 선배가 걸어간 길을 내가 따라갈 터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조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은 그리 살지 못했지만 내게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많이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있을 때만이 내면의 자아와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은퇴 후에도 인맥을 쌓으려고 애를 쓰지만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복잡한 인간관계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은퇴 후엔 인맥 쌓기 삼가야
죽어가는 사람에게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후회를 남겼다.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던 것, 일만 너무 열심히 했던 것, 감정 표현이 솔직하지 못했던 것에 후회를 했다. [중앙포토]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던 것, 일만 너무 열심히 했던 것, 감정 표현이 솔직하지 못했던 것에 후회를 했다. [중앙포토]

 
첫째,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임종 직전에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동안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둘째, 일만 너무 열심히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필품은 그리 비싸지 않다. 정작 비싼 것은 생활에 그리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한다.
 
셋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이것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염려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밖에 친구의 우정을 잃은 것과 변화를 꾀하지 못한 것이 그 뒤를 이었다.
 
세상을 하직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들의 유언이나 묘비명을 통해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이 생전에 염원하며 몸부림쳤던 자취는 묘비명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망자의 회한과 깨달음을 통해 어느 가르침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백년 전쟁 때 영국의 태자였던 에드워드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어느 성직자의 묘지 입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고 적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손을 땅 밖으로 내놓아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다.”
 
유명한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훌륭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영국의 왕정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역시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말을 남겼다.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  
 
철학자 칸트의 마지막 말 “이제 그만”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 [중앙포토]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 [중앙]


임마누엘 칸트는 수십 년 동안 규칙적으로 산책했다.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짐작했다고 한다. 그랬던 칸트도 임종이 가까워지자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먹을 수도 없었다. 하인은 칸트가 목이 마를까 봐 설탕물에 포도주를 타서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였다. 어느 날 칸트가 더는 그것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이제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칸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교보문고가 발표한 세계문학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60대가 꼽은 1위 작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건네는 자유와 해방의 목소리가 좋았나 보다. 그의 뜻은 묘비명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몇 년 전 시애틀타임스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 작가 제인 로터의 부고를 실었는데 이 부고를 쓴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그는 삶이란 선물을 받았고 이제 그 선물을 돌려주려 한다면서 남편에게 쓴 유언에 “당신을 만난 날은 내 생에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고 전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중국의 동산 선사는 살아 있을 때는 철저하게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는 철저하게 죽음에 충실하라고 가르쳤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 [중앙포토]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 [중앙포토]

이 밖에도 많은 묘비명이 있지만 제일 쇼킹한 것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그는 1950년 사망할 때까지 극작가·평론가·사회운동가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저와 같이 뛰어난 용모의 여자와 당신처럼 뛰어난 자질의 남자가 결혼해 2세를 낳으면 훌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며 구혼의 편지를 보내오자, 버나드 쇼는 “나처럼 못생긴 용모에 당신처럼 멍청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겠소”라며 거절했다.
 
이렇게 오만함과 익살스러움으로 명성을 떨쳤던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하며 자기의 소신대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묘비명이 충격적이다.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는 동서양에 걸쳐 명성을 떨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간 문인이요, 철학자며 노벨상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물쭈물했다고 자평한 것이다. 그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고 후회했을까.  
 
자신의 묘비명 그려보는 것, 인생 2막 설계에 도움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세월은 이처럼 유수같이 흘러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활하다가 임종이 다가와서야 쩔쩔매며 후회한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묘비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알려주는 조언을 듣고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후에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남은 생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일손을 멈추고 자신의 묘비명을 그려보는 것도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종을 눈앞에 둔 사람도 살아온 삶을 인정 받고 싶어한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편집자 주>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호스피스 체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호스피스 체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은퇴 후에는 그 빚을 일부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의사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났다. 의사는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자신의 의술을 이용해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대신 간호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에 간호학과가 있으므로 3학년으로 편입하면 될 것 같았다. 방통대에 지원하려고 문의하니 간호학과 편입은 간호전문학교를 나온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답이 왔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다 보니 다른 학과와 달리 입학이 제한적이었다. 
 
낙담하고 있을 때 국립암센터에 6개월 과정의 호스피스 전문과정이 있음을 알았다. 일반인을 위한 자원봉사형의 과정이 아니고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곳에 지원해 한동안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과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해 배웠다.
 
호스피스 센터서 만난 한국 토목 학계의 권위자
호스피스 센터에서 이론공부를 마치고 실습을 나갈 차례가 왔다. 간호사들은 나름대로 연고가 있거나 자신이 가고 싶은 병원을 택했다. 나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모현호스피스센터를 지원했다. 그곳을 실습기관으로 택한 것은 과거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가 쓴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모현의료센터.  말기암 등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대개 환자들이 입원한 뒤 평균 2주만에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한다. 환자 손을 잡아주고 있는 수녀의 두 손. [중앙포토]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모현의료센터. 말기암 등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대개 환자들이 입원한 뒤 평균 2주만에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한다. 환자 손을 잡아주고 있는 수녀의 두 손. [중앙포토]

 
당시 모현호스피스센터에는 한국 1세대 작곡가인 조념 선생이 입원하고 있었다. 기사는 조념 선생께서 폐암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그곳에 입원한 다른 환자를 위해 바이올린을 켜준다는 내용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모현호스피스센터로 향했다. 호스피스센터에 도착하니 담당 수녀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녀님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어디론가로 갔다. 얼마 후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전날 입원했던 환자가 오늘 새벽 운명한 것이다. 호스피스의 평균 재원일수는 20여 일이다. 그러나 그 환자처럼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늦게 호스피스에 왔던 것이다.
 
오전에 수녀님에게 호스피스센터 전반에 대한 개요를 듣고 의료원장의 회진에 동참했다. 원장은 회진을 돌며 입원한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살피고 내게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어느 환자 앞에 섰을 때다. 원장은 먼저 환자와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내게 ‘이 분은 한국 토목공학계의 권위자’라고 소개했다. 그때 나는 환자가 겸연쩍어하면서도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죽어가는 사람 역시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울음보다는 감사의 말을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를 보증하는 언질을 듣고 싶어 한다. 첫째는 죽어도 된다는 허락이고, 둘째는 남은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으며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장담이다. [중앙포토]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를 보증하는 언질을 듣고 싶어 한다. 첫째는 죽어도 된다는 허락이고, 둘째는 남은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으며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장담이다. [중앙포토]

 
죽어가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또 살아있는 사람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어머니가 노환으로 누워계실 때다. 병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형제가 모였다. 동생이 어머니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나는 동생을 밖으로 불렀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말아라. 자칫하면 어머니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동안 병환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이렇게 속삭였다. “어머니, 인생을 잘 사셨습니다. 자식들도 괜찮고 손자들도 잘 크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안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 후 어머니는 몇 달을 더 사시다가 집에서 자연사하셨다.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를 보증하는 언질을 듣고 싶어 한다. 첫째, 그가 죽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싶다. 둘째, 그가 죽은 이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잘 지낼 수 있으며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장담 받고 싶어 한다. 생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수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죽음을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돕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새로 태어났을 때 우리가 무력한 존재여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다. 죽어갈 때 역시 자신을 돌볼 수 없음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임종순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이 원하는 건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 원하는 것과 동일하다. 바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다. 임종의 순간에 자신이 삶을 잘 살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누가 그걸 긍정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죽어가는 사람을 돕는 방법
1. 환자가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중요한 문서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환자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준다
4. 환자가 마지막 순간에 대해 특별히 소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5. 신체가 비교적 편안한 환자는 집에서 죽는 것을 원한다
6. 통증이 있으면 호스피스 병동이나 말기 환자를 위한 적당한 곳을 찾아준다
7. 환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8. 환자의 말에 공감하고 경청해준다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편집자>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죽음까지 화제가 이르렀다. 필연적으로 언젠가 죽을 텐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한 친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폐를 끼치지 않고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한다. 대부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 친구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 점을 꼽았다. 또한 고통이 적고 투병 기간이 길지 않았으면 하며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집에 있기를 희망했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사후세계를 다뤄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40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가정 임종을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2017 Disney Pixar. All Rights Reserved.

최근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사후세계를 다뤄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40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가정 임종을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2017 Disney Pixar. All Rights Reserved.

 
어느 매체에서 40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생의 마지막 기간에 거주하고 싶은 장소가 어딘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46%가 자택이라고 답해 가정 임종을 가장 선호했다. 다음으로 요양시설이 37.6%이었고 병원은 10.8%로 얼마 되지 않았다. 자택을 선호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었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가장 많이 꼽았다. 병원에 있으면 가족을 볼 기회가 줄어들고 특히 중환자실의 경우 하루에 한두 차례 밖에 면회가 되지 않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점, 오래 살아서 집이 익숙한 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머물고 싶은 곳은 집  
1991년 부터 현재까지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증가하고 가정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사진 freepik]

1991년 부터 현재까지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증가하고 가정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사진 freepik]

 
현실은 어떨까? 실제로는 병원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과 국립암센터의 자료를 보면 1991년에는 가정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74.7%,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15.3%였다. 2003년 가정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42.7%,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45.0%로 역전되더니 20년이 지난 2011년에는 가정이 19.8%, 병원이 68.5%를 차지하며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2016년엔 가정이 15.3%, 병원이 74.9%로 더 늘었다. 이제는 10명 중 7~8명이 병원에서 죽는다. 왜 집에서 죽기를 원하면서 병원에서 죽는 사람이 늘고 있을까?
 
서울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19년 동안 근무한 사람이 쓴 책이 있다. 그는 책에서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잃는 자존심과 품위,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은 중환자실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군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홀로 호스를 입에 물고 죽고 싶겠는가. 혼자 가야 하는 두려운 마음에 곁에 있는 가족의 손이라도 잡고 싶은데 중환자실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책에는 그가 짊어진 후회와 회한의 기록이 많다. 간호사가 엄마인 줄 알고 매달리는 뇌종양에 걸린 아이를 검사실로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안아주었더라면,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숨이 가뿐 52살의 환자에게 급히 기도 삽관하기 전에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었더라면, 젊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버지의 말대로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는 대신 딸을 편안히 보내자고 설득할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절차에 따라야 하는 병원의 시스템 때문에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죽어간 이들이 보낸 메시지는 가족에게 닿지 못한다.
 
일전에 모 대학 생명윤리연구소에서 주최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관한 세미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주제발표를 했던 의사에게 기도 삽관을 하면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는 밥을 먹다가 혹시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적이 있냐고 내게 반문했다. 몹시 괴로웠다고 답하자 하물며 호스가 목에 들어가는데 환자가 얼마나 힘들겠냐는 얘기를 했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기도 삽관을 한 환자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진정제를 투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정을 시키는 것이 아니고 환자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가 위급상태에 빠지면 대개의 경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기도 삽관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삽관을 해보았자 생명 연장에는 한계가 있고 환자의 고통만 가중한다는 것을 아는 의사는 삽관하기보다 자연사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반면 얼마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 삽관을 하는 의사도 있다. 기도 삽관에 대한 결정은 가족과 상의 후에 의료진이 하지만 일단 삽관을 하면 뺄 수가 없다. 자칫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고통은 오로지 환자의 몫이다.
 
간호사 출신 질 패로우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안락사 병원에서 주사요법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중앙포토]

간호사 출신 질 패로우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안락사 병원에서 주사요법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중앙포토]

 
2015년 8월에 비교적 건강한 영국의 70대 할머니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은 호스피스 간호사 출신인 질 패로우라는 75세의 할머니다. 영국에는 이 같은 죽음이 허락되지 않으므로 스위스로 건너가 바젤에 있는 안락사 병원에서 주사요법을 받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왜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그녀는 죽기 전 언론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나는 이제 막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앞으로 내려가기만 할 뿐 더는 좋아지지 않는다.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70살까지 난 매우 건강하다고 느꼈고, 원하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여전히 바쁘고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바뀌었다. 비록 지금 건강해도 내 삶이 다했고 죽을 준비가 돼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삶을 상상하는 것이 괴로웠을 것이다.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자신의 남은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스위스와 같은 안락사 제도를 채택한 나라가 과거에는 극소수뿐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비교적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한국, 모르핀 사용량 세계 62위  
환자는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가정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사진 freepik]

환자는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가정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사진 freepik]

 
우선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데 가족의 편의에 따라 병원을 임종 장소로 택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급적 피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가정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해야겠다.  
 
둘째, 고통을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통증만 조절할 수 있어도 인간적인 죽음, 고통 없는 죽음이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 2007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1인당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의 사용량은 1.2mg으로 세계 62위다. 1위 오스트리아는 153.4mg이다. 그 뒤를 이어 2위는 미국으로 76.7mg, 3위는 캐나다의 71.1mg이다. 한국은 터무니없이 적게 쓴다. 그만큼 암 환자들이 고통 속에 죽어간다는 의미다.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인 메타돈. 통증 완화를 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은 중독 반응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1인 사용량을 높여야 한다. [AP=연합뉴스]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인 메타돈. 통증 완화를 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은 중독 반응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1인 사용량을 높여야 한다. [AP=연합뉴스]

 
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을까?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고 중독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가 중독에 빠지는 경우는 없다. 오로지 통증 완화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기만 해서는 결코 전형적인 중독자가 되지 않는다. 1980년 미국에서 실시한 연구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자료를 제시했다. 서로 다른 기간에 마약성 진통제 치료를 받았던 통증 환자 1만1882명 중에서 단지 4명에게서만 중독 반응이 나타났는데 이는 치료를 받았던 전체 환자의 0.03%에 해당한다. 즉 임상에서 무시할 수 있는 수치였다.
 
셋째, 호스피스 완화의료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의료수가가 낮아 병원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기피한다. 호스피스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는데 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호스피스 시설에 입원하기가 쉽지 않다. 호스피스 진료에 대한 의료수가를 현실화해 호스피스 병동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넷째,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자의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월부터 연명 의료결정법이 시행돼 이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법이 너무 엄격해 병원에서 난색을 보인다. 선진국처럼 규칙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죽음은 꼭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생에서 맞게 되는 마지막 경험이자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중앙포토]

죽음은 꼭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생에서 맞게 되는 마지막 경험이자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중앙포토]

 
죽음은 생에서 맞게 되는 마지막 경험이자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에게는 신에게 귀의하는 과정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다. 이런 엄숙한 시간에 환자의 가슴을 치는 심폐소생술 등으로 중요한 순간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심폐소생술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종을 앞둔 노인들에게는 그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에 대한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죽음이 우리가 생각하듯 꼭 부정적이며 나쁜 것은 아니다. 호스피스 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번데기가 나비로 환생하듯이 죽음으로 우리의 생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희망만 가질 수 있어도 좀 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 “죽음은 삶의 가장 위대한 발명”
영국의 주교 회의는 잘 죽는 기술(Art of Dying Well)을 홈페이지에 올려 생애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 종교적 위로를 주면서 또한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내용은 중세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삶의 끝 문제를 생각하는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식탁 위에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 관해 침묵하는 문화를 해소하면 죽어가는 환자가 가지는 공포를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이 삶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말했다. [사진 freepik]

스티브 잡스는 죽음이 삶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말했다. [사진 freepik]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죽음이 삶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했다. 만약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겠는가. 그동안 나를 위해 많은 생명이 죽어갔듯이 이제는 다른 생명을 위해 내가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은퇴를 준비하며 죽음을 성찰하다 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죽음 마주할 수 있으면 은퇴 준비는 끝이다



티베트에서는 임종의 순간에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중앙포토]

티베트에서는 임종의 순간에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중앙포토]

 
죽음은 삶의 과정에서 겪는 마지막 경험이자 가장 귀중한 시간이다. 티베트에선 임종의 순간에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그의 내세가 결정된다고도 한다.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삶에서 죽음만큼 중요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모두 처음 겪는 경험이다 보니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은퇴를 준비하는 것처럼 임종을 맞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죽음에 관한 책을 보다가 좋은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다. 좋은 책의 정의를 내리라면 나는 두 번 이상 읽고 싶은 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렇게 정의한다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는 분명 좋은 책이다.
  
좋은 책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소갈린포체 지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소갈린포체 지음.

 
이 책의 존재는 호스피스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서양인이 추천한 동양인의 책이다. 저자 소걀 린포체는 티베트에서 태어나 영적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해 비교종교학을 연구했다. 그는 동서양의 학문을 고루 익힌 보기 드문 티베트의 승려다. 그만큼 균형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린포체는 우선 죽어가는 사람을 영적으로 돕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것은 그에게 희망을 주는 일과 용서를 발견하게 하는 일이다. 먼저 그가 잘한 것을 상기하게 해야 하고 자신의 삶이 건설적이었으며 행복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죽으면 안 된다며 울고불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삶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망자가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분들이 볼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환자의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는 죽음의 순간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자기의 삶에서 무엇을 했는가’와 ‘죽는 순간 마음의 상태가 어떠했는가’이다. 그는 우리가 부정적인 업을 많이 축적했을지라도 죽는 순간 마음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다면 업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에 업을 정화하기 위한 강력한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생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겐 적지 않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죽음을 깊은 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된다. 우리가 잠들기 전에 마음이 편하면 좋은 꿈을 꾸고 불안해하면 가위에 눌린다거나 나쁜 꿈을 꾸는 게 바로 그 예다. 그러니까 죽는 순간에 가급적 좋은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하다. 톨스토이도 그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죽음의 순간 마음을 바꾼 사례를 글로 소개했다.
 
주인공 일리치는 왜 자신이 일찍 임종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임종을 앞둔 사흘 전부터 그는 고통 때문에 고함을 치곤 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든 게 잘못되었어. 하지만 별거 아니야. 올바른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올바른 일이 대체 뭐지?’ 그가 질문을 던지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세상을 뜨기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전히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손을 내젓고 있을 때 한쪽 손이 침대 옆에 있는 아들의 머리에 닿았다. 아이는 일리치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입술에 대며 울음을 터뜨렸다. 일리치가 빛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아들이 가여웠고 아내가 불쌍해졌다. 지금까지 그의 안에 박혀서 그를 괴롭히며 나오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그곳엔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단 한 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일리치는 죽음의 순간 마음을 바꾸고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달라이 라마의 죽음 수행법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죽음을 무시하거나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죽음이 야기할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죽음을 무시하거나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죽음이 야기할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죽음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죽음이 야기할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능숙한 수행자는 자신이 죽는 순간을 커다란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도 활용한다. 이런 까닭에 수행자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시점에 임해서도 명상 수행에 몰입한다.
 
우리는 때때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는데 죽음 이후의 삶도 우리가 지금 사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바로 지금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죽음의 순간에 그리고 죽음 이후에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여러 매체에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핵심은 역시 죽음 준비에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은퇴 준비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 죽음을 인식하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깨우침을 얻기 때문이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manjoy@naver.com

[출처: 중앙일보] 임종 지켜줄 사람, 당신은 몇명이나 있나요



의사가 환자에 말해줘도 좋습니다. '죽어도 괜찮아요'

병원 임종실 이용료 하루 20만 원…호주는?
2018.09.04 09:10:54

지난 8월 28일, 호주 플린더스 병원의 로렐 호스피스 병동. 한 환자가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고 있었다. 응접실에는 자원봉사자와 환자 가족들이 '아버지의 날(9월 첫째 주 일요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자가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이며 병동을 돌아다녔다. 환자가 마지막 생을 반려 동물과 함께할 수 있게 병원 측에서 배려한 것이다.

이 호스피스는 옥상 정원과 부엌, 마사지실, 면회 공간을 갖추고 있다. 환자들이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병동은 모두 1인실로 이뤄졌다. 플린더스 병원뿐만이 아니다. 호주는 공공 병원에서 임종기 환자에게 가급적이면 1인실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다. 4인실이 기준인 한국과는 달리, 호주에서 새로 생기는 병원은 1인실로 짓는 추세인 덕분이다. 가족들끼리 조용한 임종을 맞이하고자 1인실을 이용하려면 환자가 20만 원~50만 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15병상 규모의 호스피스 병동에는 간호사 총 35명이 일하고 있다. 10명은 '커뮤니티 케어'를 위해 지역에서 상담을 담당하고, 나머지 간호사 25명이 3교대제로 일하며 환자를 돌본다. 한국의 두 배 정도의 간호 인력이 24시간 돌봄을 제공하는 셈이다. 의료 질이 떨어질 걱정도 없다. 호주에서는 대부분 공공 종합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기에, 호스피스 병동에 있으면서 종합병원을 오가는 말기 환자에게 자문 진료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학 전담 의사를 배치한다.  

이 병동 완화 의료 간호사인 헬렌 워커(Helen Walker) 씨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가 최대한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이지요." 


▲ 8월 28일 방문한 호주 애들레이드의 플린더스 병원 내 로렐 호스피스 병동. ⓒ프레시안(김윤나영)

▲ 부엌을 구비한 로렐 호스피스 병동. 환자 보호자들이 자유롭게 조리를 할 수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8월 28일 로렐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 보호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아버지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호주 정부, 2019년까지 '질 좋은 임종 돌봄 위한 사회적 합의안' 적용

호주 정부는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2006년부터 일찌감치 임종기 돌봄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호주 국민 3분의 2는 75세~95세에 임종을 맞이하고, 그 중 70%는 예측할 수 있는 임종이다. 호주 연방 정부는 앞으로 25년간 매년 호주 국민의 임종 숫자가 지금보다 두 배가 넘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2013년부터 호주 공공 기관인 '안전하고 질 높은 환자 돌봄을 위한 호주위원회'(Australian Commission on Safety and Quality in Health Care)가 '질 좋은 임종 돌봄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을 만든 이유다.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16년 한국의 사망자 수는 28만여 명으로 1983년 통계청이 사망 통계를 낸 이래 최대였다. 통계청은 2035년이면 사망자 수가 현재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추계한다. 특히 한국은 재택 임종이 쉽지 않아, 75%의 임종이 병원에서(암 환자는 91%)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호주 정부가 급성기 병동에서 생애 말기 돌봄(End of life care)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주 정부가 채택한 사회적 합의안의 핵심은 간단하다. '환자 중심적인 돌봄'을 제공하자는 것이 제1의 원칙이다. 둘째가 한 환자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지역 사회 간에 협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환자와 죽음에 대해 의사소통하고 적절한 생애 말기 돌봄을 제공하며, 환자의 통증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정부는 생애 말기 돌봄에 대한 적절한 정책을 펼치고, 생애 말기 돌봄에 대해 모든 의료진을 훈련시켜야 한다.

▲ 로렐 호스피스 병동 15병상은 모두 1인실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4인실이 기준 병상이었으나, 요즘 새로 짓는 공공 병원은 1인실이 기준이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 사회적 합의안은 2019년부터 전체 국가에 적용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호주 정부는 환자와 의료진 사후 평가를 통해 합의안을 매년 수정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8월 30일 시드니에서 만난 호주위원회 연구원인 앤지 달리(angie dalli) 씨는 이 합의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환자 맞춤형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호주는 다문화 사회라서 임종 문화가 다 달라요. 병원마다 호스피스 병동이 다 있어서 환자 특성과 문화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임종기에 전체 가족이 와서 경건하게 추모하는 문화도 있고, 바비큐 파티를 하며 축제 분위기로 임종을 맞이하는 문화도 있죠. 2016년 제 아버지가 리버풀 병원에서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키우던 개와 작별하고 싶어하셨어요. '개를 병원으로 데려 와서 작별 인사해도 돼요?'라고 물으니 병원에서 '당연하죠'라고 했죠."

양질의 '환자 맞춤형 모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호주의 의료 시스템이다. 호주는 조세 기반의 '메디케어'라는 무상 의료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전체의 69.5%가 공공 병상이고, 공공 병원을 이용하는 한 거의 무상 의료다. 병원에 오면 환자와 의사가 보통 10분~15분 정도 상담할 수 있고, 메디케어가 이를 보장한다. 일차 의료에서는 주치의 제도가 의료 자원을 배분하고 조정하는 역할(care coordinator)을 하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의 '임종 계획'에 대해 의사와 자유롭게 상담하는 분위기다.  

"의사가 환자에게 '죽어도 괜찮다'고 말해도 괜찮아"  

▲ 왼쪽부터 로렐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유닛 매니저인 헬렌 워커(Helen Walker) 씨와 킴 데버리(Kim Devery) 플린더스 대학 간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김윤나영)

한국 현실은 다르다. 환자 보호자가 당사자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가족들의 반대로 임종 돌봄의 첫 관문인 '임종 고지'가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자문형 호스피스를 담당하는 김대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국은 환자가 자신이 말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의해야만 급성기 병동에서의 호스피스 완화 의료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는데, 환자 가족들이 환자에게 정확한 병의 상태와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는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길 자체가 막혀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킴 데버리(Kim Devery) 플린더스 대학 간호대학교 교수는 환자와 의료진이 임종 계획을 적극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독려한다. 데버리 교수는 "젊은 인턴 의사들에게 '생애 말기'가 언제냐고 물으면 죽기 하루이틀 전이라고 답한다"며 "하지만 만약 환자가 죽기 1~2년 전부터 '생애 말기 돌봄'을 준비한다면, 환자들이 무엇을 할지 선택할 폭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마지막 생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진과 환자 간의 임종에 대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킴 데버리 교수는 '완화 의료'를 환자에 대한 포기로 받아들이는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죽음은 인생의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말해줘도 좋습니다. '죽어도 괜찮아요.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당신이 꼭 죽음에 맞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연명 의료가 있다면 '안 받겠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호스피스(hospice)

악성 질환에 걸려서 치유의 가능성이 없고, 진행된 상태 또는 말기 상태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이 죽을 때까지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해서,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광범위한 치료를 호스피스 케어라고 한다. 이런 케어는 집이나 입원해서 행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한 특별한 시설을 호스피스라고도 한다. 이 말은 원래 순례자의 숙박소를 의미했다. 또한 호스피스 케어를 보급하는 운동을 호스피스 운동이라고 하는데, 호스피스 운동은 당초 유럽에서 전개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종교학대사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