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전자’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11월 중간선거의 의미는 크다. 중간선거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교착 상태인 이란 핵이 아니라 유화 국면인 북한 핵에서 성과를 내려 할 것이다.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측 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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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4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 간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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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 4월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그의 입지가 좁아졌다. |
북한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 ‘아킬레스건’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과 존 볼턴 전 유엔대사가 각각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되기 전 얘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폼페이오뿐 아니라 특히 볼턴은 ‘슈퍼 강경 인사’로 북한 핵을 절대 용인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볼턴에게 농담 삼아 “당신이 악마의 화신이라고 들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볼턴은 북핵 해법과 관련해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하며 북·미 정상회담 때 수송함을 끌고 가 북한 핵무기를 싣고 오면 된다는 식의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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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4월9일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 모습. 트럼프 대통령(가운데)의 오른쪽에 신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했다. |
무엇보다 폼페이오나 볼턴의 ‘주전선’이 북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아니라면 어딜까? 이란이다. 즉 이란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파기가 주요 미션이다. 2015년 7월 미국을 비롯한 안보리 5개국 및 독일과 이란 간에 이란의 핵시설과 우라늄을 제한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JCPOA가 체결됐다. 이를 반대한 공화당은 이란핵합의검토법(INARA)을 제정해 90일마다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JCPOA 준수 여부를 판단해 승인 내지 불승인 의사를 의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대(對)이란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 조치가 빠져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불승인 통보를 했다. 지난 1월에는 미비 사항을 보완해 의회가 협정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진행 사항이 전무하다. 다가오는 5월12일 미국은 탈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내에는 이란 핵협정을 둘러싼 트럼프 정부 내 갈등 양상이 소상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지난 1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및 제임스 켈리 비서실장 등의 갈등이 북핵 문제보다 이란 핵협정 파기 여부에 대한 견해차에서 주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은 바로 그 중심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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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선중앙통신 4월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겉으로는 북한 비핵화가 최대 이슈였으나 권력 내부에서는 5월12일로 다가온 이란 핵협정 파기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셈이다. 우리 대북 특사단이 백악관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4월에라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서두른 배경 역시 이 문제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빨리 안정시키고 이란 핵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11월 중간선거의 의미는 크다. 중간선거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이란 핵과 북핵 문제의 명암이 갈릴 수 있다. 대전제는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북한과 이란 양쪽에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순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실로 절묘한 타이밍에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북한과의 외교 협상 성과를 중간선거에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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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 2005년 7월26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 중국의 리자오싱 외교부장(가운데)이 다른 나라 대표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핵 폐기 기간은 북한 의지뿐 아니라 미국의 보상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다. 더구나 보상의 키를 쥔 쪽은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다. 북핵의 실험 유예(모라토리엄)나 동결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는 대통령 권한이나 행정명령으로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핵 폐기와 관련한 본격 보상은 의회의 동의 없이는 쉽지 않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의회 반대로 물거품이 된 경험이 있어, 북한이 이번에는 합의 사항에 대해 의회 비준을 거친 조약 형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의회는 1994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요구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실제로는 동결 수준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반적으로 동결은 확산 방지(수출 중단), 실험 중단(핵실험), 개발 중단(ICBM), 증량 중단(생산) 등 ‘4NOs’를 뜻한다. 미국 처지에서 핵심은 수출 중단과 더불어 수소폭탄을 이용한 탄두 소형화, 그리고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ICBM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 합의가 되면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진출하고 비핵화는 연락사무소를 기반으로 하겠다는 게 미국의 실제 복안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중순부터 북·미 양측은 뉴욕 채널을 통해 중간선거 이전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심층적으로 논의해왔다(<시사IN> 제549호 ‘평양 하늘에 성조기 휘날릴까?’ 기사 참조).
중국이 북한의 동결 감시 및 보상 떠맡을 듯
주목할 점은 미국이 동결 대가로 북·미 관계를 어느 선까지 진척시킬 것인가와 비핵화는 어떻게 될 건지 하는 문제다. 비핵화부터 보면 미국이 결국 중국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즉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국제 감시단을 이끌고 북한의 동결 감시 및 비핵화를 관장하고 경제 보상을 떠맡는 방식이다. 대신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주한 미군의 성격이나 규모를 조정한다. 이런 구도가 바로 2016년 9월 발표된 미국외교협회(CFR) 보고서 이후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미국 사회 주류의 기본 해법이다.
비핵화의 짐을 중국에 떠맡기는 대신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대북 제재 완화, 북한의 국가 승인, 나아가 북·미 수교 등이다. 미국이 직접 경제 부담을 지지 않는다 해도 북한을 도울 방법은 있다. 베트남 예에서 보듯 미국 시장에 대한 최혜국 대우 보장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의 대북 융자 제공 등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하다못해 평양에 트럼프 타워가 진출할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미국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원산항을 미국 함선에 개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떠돈 것 역시 그런 맥락이다.
쟁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미국 측에 제시해야
문제는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얘기했듯 앞으로 몇 달이 우리에게는 역사적 기회다. 이 기회에 한반도의 평화 보장과 남북관계 개선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이 모든 것의 대전제다. 그러나 그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정전체제와 분단체제 아래서 해결되지 못했던 남북문제 역시 이참에 해결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더 이상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1948년 제헌헌법에 따른 영토 조항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자격 시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70여 년을 흘러왔다. 앞으로 북핵은 온존한 채 북·미 관계만 진전되고, 주한 미군 역할이 바뀌는 등 변화가 일어나는데 분단체제에 따른 남북문제만 그대로 남으면 우리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때 당사자로서 참여하는 문제부터 향후 남북 간 불가침 및 무력 불사용 문제, 서해 평화 문제 등 그동안 쟁점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미국 측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안보 우려와 경제 재건과 관련해서도 우리 측 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모든 功은 트럼프에게, 대신 한반도 평화를 얻어라”
[미리 보는 4·27 남북 정상회담] ‘협상 전문가’ 김홍국 교수·박상기 대표 “트럼프는 지독한 비즈니스 협상가”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월) 14:05:13 | 1488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전에 비즈니스맨이다. 때문에 정치인 관점에서 트럼프를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 전문가인 김홍국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겸임교수와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가 내린 공통된 진단이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김 교수는 학부는 건축학, 석사는 경영학, 박사는 정치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런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다. 협상학 분야 활동도 두드러져 현재 한국협상학회 연구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에 비해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는 실무형 전문가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메디슨)에서 MBA(경영학석사)와 협상학 과정을 마친 박 대표는 귀국 후 삼성·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을 돌며 협상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 대표 역시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이번 대담을 기획한 것은 ‘정치인 트럼프’의 또 다른 진면목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협상 스타일로 볼 때, 지금이 한반도 평화를 논의할 적기”라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 특히 박 대표는 “자기 이익을 다른 사람하고 나누고 싶지 않은 트럼프의 성격을 감안할 때 ‘너무 좋아서 버릴 수 없다(Too Good To Loose)’라는 협상의 원칙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담은 4월5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시사저널 최준필
- 비즈니스맨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의 협상전략에 대해 평가해 달라.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김 교수): 트럼프의 협상 전략은 힘을 기반으로 미국의 국익을 관철시키는 전통적인 외교 방식과 다르다. 강한 톤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이익을 만들어내는 ‘미치광이 전략’을 펴고 있는데 지금까지 미국이 사용했던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박 대표): 트럼프의 협상은 초강대국의 입지를 활용한 ‘초(超)갑질 외교협상’이다. 트럼프의 협상 원칙 중 하나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가라’는 것이다. 대신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켜 협상 과정에서 이익을 키운다. 트럼프가 한 말 중 인상적인 것이 ‘진실이 가득한 과장(Truth full Hyperbole)’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교묘한 사기’다.
김 교수: 트럼프의 협상전략과 관련해 한마디 더 첨언한다면 1971년 쓴 《거래의 기술(Art of Deal)》에 나오는 ‘싱크 빅(Think Big)’이다. 직역하면 ‘크게 생각하라. 담대하게 생각하라’는 거다.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트럼프는 ‘외교적으로 밟아야 할 것들을 일일이 따지면 일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듯싶다. 기만 전술까지 넣으면서 담대하게 판을 정리해 나가는 게 트럼프의 장기다.
- 전임 공화당 정권인 부시 행정부와 비교하면 어떤가.
박 대표: 취임 후 트럼프의 협상 기법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 스노우잡, 직역하면 ‘파상공세’다. 그러면서 충분히 검토하기도 전에 두 번째 카드를 내놓는데 영어로 ‘테이크 잇 오어 리브 잇(Take it or leave it)’이다. ‘내말을 듣든지 아니면 떠나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할 거다. 그때 세 번째 카드가 나오는데, 바이스 테크닉(Vise Technic)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알게 뭐냐.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건 외교협상이 아니다.
김 교수: 부시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한 나라이기에 그런 가치에서 상대를 응징하는 게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이다. 전쟁도 그래서 불사했다. 반면 트럼프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상대를 압박하면서도 뭔가 이익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현안을 안보 문제와 연결 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교수: 과거 미국 정부는 동맹국의 안보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의 약점을 건드리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아베 일본 총리가 그렇게 양보했는데도 최근 ‘재팬 패싱’을 하고 있는 걸 봐라.
박 대표: 북한 문제는 동북아 힘의 균형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정치학 용어로 스윙 보터(부동층)다. 북한은 중국, 우리는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이어가면서 동북아 균형이 맞춰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관계가 개선돼 미국과 가까워지면 힘의 균형이 깨진다. 그러니 중국이 급해진 거다.
- 우리 정부는 이런 위기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나.
박 대표: 우리에겐 지금이 기회다. 보통 협상에서 ‘내가 뭘 해 줄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상대가 어디에 더 관심이 있느냐’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는 북한에도 미국의 의사를 전달하고 중국에도 간략하게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면 된다.
김 교수: 협상에선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는 옵션을 개발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서로의 입장이 아니라 이익을 봐야 한다. 과거 미국 정부는 굉장히 절차를 중요시했는데 지금 트럼프는 그걸 과감하게 생략한다. 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회다.
- 트럼프의 이익이란 무엇일까.
김 교수: 한국을 압박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되면 트럼프는 역대 미국 행정부가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건 엄청난 업적이다. 국제 정치학계에서 요사이 ‘트럼프가 노벨상을 타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는가. 만약 이것이 성공하면 미국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게 된다.
박 대표: CNN이 3월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존 볼턴(현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을 후임으로 지명하기 전 수차례 만나 맥매스터 보좌관(전임 보좌관) 경질 문제를 논의했으며 볼턴은 만약 자신이 임명된다면 ‘어떤 전쟁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다.
김 교수: 볼턴은 현재 자신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지 발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트럼프와 볼턴이다. 지금 트럼프는 국무부나 국방부 등의 관료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려 한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강한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 전략이다. 극단적으로 위기를 끌어올린 다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 역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관건은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박 대표: 김정은은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리비아식’ 핵 폐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리비아에서 완전한 핵 폐기가 진행된 뒤 어떤 일이 일어났나. 카다피가 축출됐다. 김정은은 이 점을 너무 잘 안다. 표면적으론 비핵화를 선언할 것이지만 테이블 아래선 이면 합의를 할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 비핵화와 경제제재 완화 가운데서 북·미가 절충점을 찾을 것이다. 다만 미국은 과거 북한이 합의를 깬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전력을 유지하고 싶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보상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 한·미, 북·중 관계가 예전만큼 끈끈해 보이지 않는다.
김 교수: 완벽하게 해체되는 구조는 아니다. 다만 과거처럼 전폭적인 신뢰가 흐르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협상학에선 ‘양측 간 서로 갈등하고 있을 땐 중재가가 황금의 다리를 놓으라’는 말이 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이 황금의 다리다.
박 대표: 우리 국민은 외교안보 문제와 경제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북·미가 협상 말기에 ‘패키지 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중국도 받아들을 만한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통일 후 우리 지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 북한뿐만 아니라 반대로 미국의 대북 의제에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트럼프의 변호사였던 조지 로스가 트럼프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더라. 담대한 비전과 효율적 체계가 트럼프의 장점이라고. 국가 간 협상에 있어선 자국민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좌우 진영으로 분열된다면 그건 실제 협정을 맺어놓고도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4월5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회의실에서 본지 송창섭 기자와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왼쪽),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오른쪽)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북한의 협상 전략은 어떻게 봐야 하나.
김 교수: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있다. 지금 김정은은 정상 외교를 추구한다. 각종 회담에 부인 리설주를 데리고 나오는 걸 봐라. 실무 접촉을 할 때도 과거 북한은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 대해 트집을 잡았는데 이번엔 그런 게 전혀 없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실용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 대표: 지금 북·미 협상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종전 선언과 같은 급격한 변화도 예상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트럼프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을 컨트롤할 테니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얻으라’고 제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외교, 경제, 군사적 영향력은 한층 강화된다.
-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구체적인 합의안이 나올까.
박 대표: 북한 핵시설에 대한 24시간 감시, 작동 전 상태로 되돌리는 단계적 비핵화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핵시설의 파괴와 같은 퍼포먼스도 나올 것이다. 근본적인 비핵화를 선언하지만 핵 폐기 단계는 실무자 협상으로 넘어갈 것 같다.
김 교수: 비핵화 선언이 이뤄질 것에 대해선 공감한다. 이미 정의용 대북 특사를 통해 이를 밝힌 바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감시 체제로 들어갈 것이다. 단계적 비핵화에 대해서는 미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협정 선언까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김 교수: 어쩌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교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의 스타일로 볼 때 큰 진전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박 대표: 트럼프의 협상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실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트럼프는 자기 이익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자기 이익을 남하고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 과시욕이 강하다. 협상에 있어서 ‘너무 좋아서 버릴 수 없다’는 명제를 잘 활용해야 한다.
김 교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부시 정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한·미 정부는 정체성이 잘 맞지 않았다. 지금처럼 이익을 내기 위해 실용적인 마인드를 갖춘 지도자들이 만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남·북·미 세 정상이 이익을 나눌 게 많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 김정은 압박 위한 고단수?
[미리 보는 4·27 남북 정상회담] 대화 상대편에 혼선 줘 실리 추구…‘통 큰 전술’도 자주 사용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월) 11:42:16 | 1488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인이다. 과장과 비난이 반복되는 트럼프의 행보를 보고 워싱턴 정가조차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이는 정치라는 영역에서만 트럼프를 바라볼 때 생기는 오류다. 트럼프 인생에서 정치인의 삶은 지극히 짧다.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업가(Businessman)로 살아왔다.
미국 경제지 ‘포천’의 2016년 4월21일 기사 ‘비즈니스; 트럼프의 길(Business; The Trump Way)’은 정치인 트럼프가 아닌 인간 트럼프의 면모를 설명하고 있다. 포천은 기사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트럼프의 행동에서 그의 의사결정 과정은 딱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를 ‘트럼프 본인은 언제나 최고고 가장 앞서 결정한다(Trump always comes first)’라고 설명했다. 포천을 비롯해 미국 유수의 매체들은 트럼프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서 ‘트럼프는 돈을 버는 것보다 사장(Boss)이 되는 것, 명성(Publicity)을 얻는 것을 중시한다’고 설명한다. 대선 출마 때부터 공화당 주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워싱턴 정가에 부채의식도 없다.

© 일러스트 정찬동
“트럼프, 돈보다 사장 자리 좋아하는 사람”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를 쓴 서강대 국제대학원 안세영 명예교수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을 동물의 제왕인 사자와 비교했다. 사자는 한번 목표를 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달려들지만, 배만 차면 눈앞에 어떤 동물이 와도 그냥 보고 마는데 트럼프가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학의 대가인 하버드대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 교수가 말한 협상가 분류법을 기준으로 하면 트럼프는 하드 포지션(Hard Position) 협상가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협상가란 남의 말을 잘 듣고 궁지에 몰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는데 트럼프는 그와 다른 유형이다. 굳이 구분 짓자면 트럼프는 승부근성으로 똘똘 뭉쳐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는 협상가의 종류를 원칙적 협상가와 소프트 포지션 협상가, 하드 포지션 협상가로 분류했다. 하드 포지션 협상가에게 방어는 없다. 오로지 공격뿐이다. 상대방을 코너로 몰고 협상을 자신의 승리로 이끌어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대체로 협상은 51 대 49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협상의 세계에서 100 대 0의 게임은 없다. 내가 51을 갖고 오고 상대가 49까지만 가져가도 성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전형적인 소프트 포지션 협상이다. 반면 하드 포지션 협상은 100 대 0에 가깝게 도달하도록 상대를 몰아친다.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으면 양보하라는 식이다. 우리를 비롯해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상(FTA)에서 미국 통상 당국의 자세가 이와 비슷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트집 잡기를 짜증스럽게 보지만 협상의 관점에서 트집은 흥정을 위한 고단수 전략이다. 하버드대 협상연구소의 데이터를 분석해 《하버드 협상수업》이라는 책은 쓴 중국의 대표적 협상가 왕하이산은 “이런 식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다 보면 상대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역시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트집 잡기에 나설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나가는 현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하나. 협상 타결을 위한 진심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일 경우도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협상 현장에서 속임수는 사수(詐數)가 아니다. 상대가 속임수를 쓸 경우를 가정해 얼마든지 맞불작전 식으로 방어막을 칠 필요성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북·미 관계 전체를 비관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다녀온 뒤로 미국 최고위급 인사인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평양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협상 어드바이저로 활동한 조지 로스가 “트럼프는 딜 메이커로서 숲을 보는 법을 배웠고 나무들은 아랫사람들이 보도록 했다”고 말했는데 이번 북·미 협상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를 가리켜 ‘미치광이’라고 비판하지만, 협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상대방에게 혼선을 주는 효과가 있다. 큰 밑그림을 그려둔 상태에서 좌충우돌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 상대에게 자신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물론 자신의 목표는 이미 크게 정해 놓는다. 이른바 트럼프의 ‘통 큰 전술’로 불리는 싱크 빅(Think Big) 전략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종종 파이트 백(Fight-Back) 전략을 쓴다. 트럼프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부분 사람들과 잘 지낸다. 나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들에겐 잘 대해 준다. 하지만 나에게 나쁘게 하거나 불공정하게 대하면 나는 그들에게 철저히 응징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 생애에 거쳐 그렇게 해 왔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파이트 백 전략이다.
국제무역 세계엔 도덕적인 협상가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모두 비겁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나만 윤리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북한이 1993년과 2000년 두 차례의 핵 협상을 걷어찬 것을 예로 들며 이번만큼은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할 생각이 없다. 이를 트럼프의 언어로 해석하면 ‘상대를 보고 반응하라(Response in kind)’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협상은 ‘총 안 든 전쟁’
그렇다면 북한의 협상 전략은 무엇일까. 그동안 주요 서구 언론에서 많이 거론된 것이 벼랑 끝 전술이다. ‘이렇게 나를 벼랑 끝으로 몰면 나도 죽지만 너도 죽을지 모른다’는 식이다. 이는 구 소련 체제 아래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때문에 국제정치학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와 협상하기는 정말 힘들다’는 말이 있다. 협상에 임하는 게임의 룰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협상은 총을 안 든 일종의 전쟁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기만책도 사용된다. 또 자주 인용되는 협상이론이 라이파 딜레마 이론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대가 지저분한 술책을 쓰면 “그들과 똑같은 술책으로 맞받아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마냥 점잖게 협상하면 질질 끌려 다니다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클린턴, 오바마 정부의 대북 협상력이 한계를 보인 것도 북한의 전략에 끌려 다녔기 때문이라고 본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를 때에는 2~3수 앞서 선제적으로 결정하라’는 것도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대외 협상 패턴이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김정은을 비롯해 북한의 수뇌부는 어릴 적부터 협상을 제왕학의 중요한 한 가지로 여기고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로 이용될 수 있다는 한·미 보수층의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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