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우산 의존 말고, 北과의 적극적 대화 필요”
[단독 인터뷰] ‘노벨평화상’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 팀 라이트 아시아본부장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6(화) 08:00:00 | 1477호
“핵무기가 실제 사용됐을 경우에만 치명적이라고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 없다. 핵무기가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의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핵무기는 세계에 광기를 조달하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식민지화한다.”
‘시드니 평화상’을 수상한 인도의 사회운동가이자 소설가 아룬자티 로이의 1999년 저서 《생존의 비용》은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핵무기는 사용 여부를 떠나 그 존재만으로도 인류 평화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지난해 7월7일(현지 시각) 유엔에선 핵무기 전면폐기와 개발금지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국제조약이 채택됐다. 이른바 ‘핵무기 금지조약’이다. 이 조약은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대체하는 것으로, 핵무기의 사용·보유·생산·실험·배치·운송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인류의 평화’를 목표로 하는 새 조약 채택 뒤엔 숨은 공로자가 있다. 국제 비정부기구연합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다. 핵무기 폐기를 위해 2007년 발족한 이 단체는 101개국에 468개 협력단체들을 갖고 있다. 지난해엔 유엔의 핵무기 금지조약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새로운 조약이 국제사회에 대한 핵무기 위협을 한 단계 완화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현실성 논란도 있다. 이 조약 채택 당시 유엔 회원국 3분의 1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데다, 공식 핵보유 5개국(미국·러시아·영국·중국·프랑스)과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4개국(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도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19일부터 조약에 참여하는 51개국이 공식 서명에 들어갔지만,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현재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핵무기 핑퐁’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핵 드라이브에 또 한 번 시동을 걸었다. 그는 1월30일(현지 시각) 국정연설에서 국방예산 증액을 촉구하며 “적대행위”를 막기 위해 핵무기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음 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미국의 핵전쟁 도발 책동을 완전히 중지시켜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게 굴러가고 있다. 시사저널은 1월말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의 팀 라이트(Tim Wright) 아시아본부장에게 서한을 보내 최근의 북핵 이슈와 한반도 상황에 대해 물었다.
2017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팀 라이트 핵무기폐기국제운동 아시아본부장 © 사진=Xinhua 연합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핵우산이란 개념 자체에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핵무기가 가진 핵 억지력이 상당하다고 보는 시각도 많은데.
“핵우산이란 개념이 성립하려면 핵무기의 존재가 전제된다. 핵무기 보유는 때론 그 자체로 핵무기 사용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 단체가 핵우산 개념을 반대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의존을 그만둔다면 핵무기 축소라는 전 세계적 목표 실현에 더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다. 일각에선 핵우산이 핵무기화를 둘러싼 북한의 위협적인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핵우산이 어떤 방향으로든 북한 정권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없다. 핵 억지력에 기대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핵무기 폐기 및 축소를 바라는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입지만 감소시킬 뿐이다.”
한국은 주권국가로서 비핵화 문제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정학적 문제 등 외부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미-북 간의 고조된 긴장감은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 긴장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적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북한 양국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새로운 유엔 핵무기 금지조약에 서명하고 비준에 참여함으로써 이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일본과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아베 일본 정부는 비핵화 문제에 있어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의 여론이 비핵화라는 대의명분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단 점이다. 중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을 멈추도록 설득해야 한다. 또한 중국 스스로도 오랜 시간 미뤄온 핵무기 축소 의무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평화적인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될까.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는 모두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다. 둘 다 비핵화라는 전 지구적 목표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른 국가들과 함께 비핵화 목소리를 높이고 관련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
북한은 극단적인 군사정책을 취하고 있다. 국가 명운을 여기에 걸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핵무기를 버릴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핵무기 축소를 위한 압박 과정 속에서 성취될 수 있다. 지난해 채택된 새로운 유엔 핵무기 금지조약은 이런 드라이브에 추동력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조약에 따르면, 지구상 어느 국가에서도, 어떠한 형태의 핵무기도 허락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우리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길 바란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문제에 긍정적인 고리가 될 수 있을까.
“평화를 위한 유일한 해법은 지속적인 대화뿐이다. 이런 점에서 평창올림픽은 매우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 선수들의 참가 소식은 한반도 평화에 있어 매우 반가운 진전이다.”
단일팀 반대했던 2030 목소리, 새겨야 하는 이유
[한반도 브리핑] 변화된 현실에 맞는 유연한 대북정책 펼쳐야
평창 올림픽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참가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올림픽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의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평창발 한반도 평화를 마련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정세 관리를 통해 장차 북핵 문제와 관련한 북미 간 의미 있는 대화의 첫 단추를 만들어보자는 게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프로젝트다.
단순히 북한 선수단의 참가로 머물지 않고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 마식령스키장에서의 남북 합동 훈련 및 남북 단일팀 구성 등의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바로 평창을 입구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진전이라는 출구를 모색하겠다는 의도다.
평창에서 시작된 평화 분위기를 모태로 해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우리 정부의 지렛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확보한다면 향후 북미 간 핵 협상을 견인할 수 있다는 구상인 셈이다.
결국 평창 프로젝트의 시작은 북한의 평창 참가이지만 이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되어야 향후 북미협상이라는 기회의 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평창발 남북관계 개선 시도가 일단 초반이긴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난항을 겪고 있다.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고 남북이 합동 공연하고 단일팀을 구성하고 북한 예술단이 오면 쉽사리 남북교류와 화해협력에 대한 국민적 분위기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로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남북 단일팀 구성에서 부족함이 있었다고 자책했고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잘못으로 단일팀 구성 논란이 거론되고 있다. 예상보다 냉랭한 분위기는 비단 남쪽만 놀란 게 아닌 듯하다. 북한이 예정되었던 금강산에서의 남북합동공연을 갑자기 취소한 배경에도 아마 한국의 차분한 분위기가 고려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올림픽이 본격 진행되고 남북의 접촉과 교류가 활발해지면 과거와 같은 활발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의 각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의 국민여론이 남북화해에 열광하는 분위기로 쉽게 달아오르지 않고 오히려 북한에 대한 저자세와 지나친 환대 논란 등 과거와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층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문화공연 및 단일팀 구성 등에 대해 싸늘한 시선이 부각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창 프로젝트가 남북의 교류와 이벤트만으로 2030을 비롯한 국민들의 대북인식이 순식간에 바뀌고 과거의 화해협력에 열광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변화된 현실을 모르고 과거의 기대만으로 남북관계를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2030이 들뜬 기대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2030이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에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공정과 정의의 관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접근이 옳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당당히 공부하고도 취업을 못하는 좌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혐오스런 것은 바로 금수저와 갑질 부류다. 실력도 없이 부모 잘 만난 이유로 정규직을 꿰차 남의 사다리를 걷어차면서 갑질만 일삼는 특정 일부 계층에 대한 반감이 우리 젊은이들의 분노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김정은은 화해의 대상이거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부모 잘 만나서 떵떵거리고 사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다. 그것도 핵무기까지 손에 쥐고서 남쪽에 큰소리치는 핵 수저이자 슈퍼 갑질의 대명사다.
핵 실험하고 미사일 쏘아올리고 남쪽을 상대로 막말이나 일삼던 김정은이 어느날 갑자기 평창에 참가한다고 해서 예술단장을 칙사 대접하고 비용을 대주고 특별 배려로 올림픽 출전권을 주고 단일팀을 만들어 수년 간 고생해온 한국 선수의 출전 기회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은 도저히 수긍하기 힘들다.
2030 젊은이들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추억보다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과 연이은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이라는 부정적 기억이 훨씬 강렬하다. 갑질과 금수저도 모자라 핵수저 김정은의 남쪽에 대한 슈퍼 갑질을 남북 화해와 관계 개선이라는 당위성으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2030 젊은이들은 민족 담론이라는 거대 담론에 익숙치도 않고 친화적이지도 않다. 자유분방하고 실용적이고 유연한 2030에게 민족화해와 같은 담론과 당위성은 오히려 꼰대와 아재의 고지식한 잔소리로 들린다.
보수진영의 이른바 종북 프레임과 빨갱이 낙인찍기에 대해서도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고 그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2030에게 화해협력의 당위성과 '우리는 하나'라는 민족주의 담론은 종북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탐탁지 않은 기득권 기성세대의 강요로 들린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적 지지와 함께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북핵 현실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국민 여론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평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이를 통해 북미협상을 견인한다는 로드맵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김정은이 하나도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화해 진전으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하는 국민도 없다.
이미 김정은은 당규약과 헌법과 법률에 핵 보유를 명시하고 있고 국가 핵 무력의 완성을 공언했다. 김정은의 협상은 핵 보유 인정을 전제로 한 협상일 뿐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자회담이 진행되던 시기 김정일은 한반도 비핵화를 김일성의 유훈이라 인정하고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협상에 나섰다.
2030을 비롯해서 적잖은 국민들이 단일팀 구성과 예술단 교류뿐 아니라 한반도기 공동입장마저도 마뜩잖게 생각하는 배경도 바로 변화된 북핵 현실과 변하지 않는 김정은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평창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려면 엄연히 달라진 이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 방식대로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핵 문제를 견인한다는 구상은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도 햇볕정책의 지지자이지만, 지금의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고 엄중한 한반도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본다면 '남북관계를 통한 북핵 해결 견인'이라는 과거 햇볕의 기대와 공식은 지금 상황에서 여의치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이 변화했음에도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변화된 현실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남북 희토류 공동개발 직전, 김정일 사망으로 '물거품'
[강천구의 자원이야기] 2011년 김정일 사망 전 긴박했던 남북 간 희토류 개발 비밀 프로젝트
강천구 영진회계법인 고문 (前 한국광물자원공사 본부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6(화) 15:30:00
2010년 9월 중국 어선 한 척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해에서 조업하다 일본 순시선에 나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 일본의 전자제품에 꼭 필요한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다. 깜짝 놀란 일본 정부는 총리특사를 파견해 공식사과 함으로써 갈등을 마무리했다.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 제한을 감행한 이 사건은 중국이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한 사례다.당시 중국과 일본의 희토류 전쟁으로 세계는 희토류 광물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다. 북한 희토류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북한 국가자원개발지도국이 2010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희토류 매장량은 금속 기준 2000만 톤가량(남한 연간 수요량 3200톤)이다. 매장량 면에서는 세계적 수준으로 희토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북한 희토류 매장량은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정보의 정확성을 위해서는 정밀조사가 시행되어야 하지만, 당시 북한 발표는 충분한 근거를 갖춰 조사만 잘 이뤄진다면 개발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북한 희토류에 대한 관심이 미약했던 이유는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따른 희토류 관련 정보 미공개와 북한 내부에서 희토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 등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희토류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가격 또한 상승하면서 북한도 희토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북한 정부는 매장량이 풍부하고 채굴조건이 유리한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계획과 연구사업 추진, 외국기업 투자유치 등을 통해 희토류 개발을 서두르려던 참이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남도 룡양광산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1년 10월17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정확한 촬영 일자를 밝히지 않았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
2011년 한국광물자원공사(이하 광물공사)는 희토류의 안정적 확보라는 과제에 대한 해답을 북한 희토류에서 찾고자 했다. 당시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쿼터제, 희토류 생산 제한 등을 실시하여 희토류 수급 불안정성이 갈수록 가중되고 국제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공동으로 희토류 광산을 개발해 국내에 반입함으로써 공급선 다변화 뿐만 아니라 안정적 자원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했다. 특히 희토류는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광물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기술력과 자금이 결합 된다면 고품위 희토류 생산에서 대량생산 체제로의 전환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선광·분리·정제·가공·판매까지 수직 계열화를 구축함으로써 공급 안정성과 수익성 극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5.24 조치' 이후 남북 자원개발 실무자 회담 가져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9년부터 북한 철산광산 등 희토류 관련 정보 수집에 나섰다. 당시 광물공사가 수집한 북한 희토류 정보는 모나자이트 등 일부 광물의 부산물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0년 중·일 간 희토류 분쟁 이후 광물공사는 보다 세밀한 정보 수집에 나섰다. 중국 현지 통신원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광물공사는 2011년 남북한 공동으로 희토류 광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우선적으로 2010년 5․24 조치로 중단된 남북간 교류 재개를 위해 통일부를 설득했다. 통일부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광물공사는 2011년 6월23일 북한의 광산개발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명지총회사와 전화·팩스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북한주민 사전접촉 신고를 승인받아 중국 단둥 등의 지역에서 8차례에 걸친 북한주민 사전접촉을 갖고 북한 자원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광물공사는 2011년 9월7일 북측으로부터 북한 방문 동의서를 발급받고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 북측 명지총회사와 개성공업지구에서 1차 북한 지하자원개발 실무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 희토류를 포함해 일부 광물에 대해 공동 개발키로 합의했다. 이어 그 해 11월30일 개성공업지구에서 가진 2차 실무회담에서 남북간 희토류를 포함한 지하자원개발 합의서를 체결했다.
당시 북측은 희토류 샘플 4개를 광물공사에 제공했다. 그리고 3차회담을 그 해 12월 한 차례 더 개최하고, 이듬해인 2012년 1월 남한은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이, 북한은 민족경제연합회 회장이 참석하는 양기관 대표자 회담을 평양에서 갖기로 약속 했다. 그러나 이는 2011년 12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로 성사되지 못했다. 2011년 11월30일 광물공사와 북측의 명지총회사간 체결한 남북간 자원개발 합의서 내용은 이러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의 2006년 기투자 사업인 북한 정촌흑연 광산 정상화 추진과 북한 광물자원 공동 개발건에 있어 개발 대상은 희토류를 포함해 흑연·마그네사이트·연·아연·석회석·석탄·철광석 등 7가지 광물과 북한이 제안하는 광물과 광산으로 하고, 이와 관련하여 북한 명지총회사는 한국광물자원공사로부터 탐사 지원을 받기로 한다. 또한 양기관은 상기 합의서의 후속조치를 위하여 2011년 12월 중 차기 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될 시 즉각적으로 공동개발을 추진키로 한다”
합의서 체결 서명은 남측에서는 한국광물자원공사 개발지원본부장 강천구, 북측은 명지총회사 부총사장 허철만이 했다.
북한 희토류 세계 평균 이상의 품위
광물공사는 북한 명지총회사로부터 받은 희토류 샘플을 자체 기술연구소에서 분석해본 결과 평균 품위가 10.888%로 평가 됐다. 이는 일반적으로 세계 평균 품위인 4%내외보다 크게 높은 함량이었다. 세계 최대 희토류 광산인 중국 바이윈어보 광산의 평균 품위가 4.94%이고, 아직 미개발 상태이지만 세계적인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마운틴패스 광산의 경우 8.9%다. 특히 북한 희토류는 우리나라가 제일 많이 수입하는 세륨의 함량이 가장 많았다. 희토류내 세륨은 유리(탈색제·연마제), 자동차(배기가스촉매제), 인광체, 세라믹, 자석 등 첨단산업의 주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광물공사는 북한의 대표적인 희토류 광산인 철산광산·선암광산·룡포광산에 대해 탐사를 실시 한 후 경제성이 확인되면 투자사업으로 연계한다는 구상이었다. 투자방식은 광물공사 단독 또는 민간기업과 합작방식으로 추진키로 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도 북한은 희토류의 정확한 매장량을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기술 수준이 낮아 첨단산업에 이용되는 희토류 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희토류 전반에 걸친 기술력을 보유하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국가로 성장했다.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희유금속 중 하나인 희토류 확보를 위해 또 다시 희토류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희토류 광물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