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게 아닌 다른 걸로 중국을 이해해야
향후 5년 이끌 ‘시진핑 집권 2기’ 구성을 보는 지침서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2(목) 18:46:11 | 1463호
중국의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은 언제나 팽팽했다. 프랑스 정치사상가 기소르망은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의 파국을 예측했고, 그런 논리는 《중국이라는 거짓말》 등을 통해 설명됐다. 그뿐만 아니라 제임스 베커, 칼 라크루와, 피터 나바로 등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중국이 가진 폐쇄사회의 한계·빈부격차·환경문제·민족분열 등 다양한 근거를 제시했다. 반대편의 목소리도 있었다. 《메가트렌드 차이나》를 쓴 존 나이스비트를 비롯해 헨리 키신저, 마틴 야크 등은 중국의 웅비를 예상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지 70년에 근접하고,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들의 예상 가운데 어느 쪽이 맞았는가를 물으면 당장은 중국의 미래를 밝게 본 쪽이 맞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양적 성장을 거듭해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고속철도·도로·항만·전철 등 사회 인프라망은 물론이고, 우주항공이나 슈퍼컴퓨터·위성통신에서도 일 년에 몇 번씩 괄목상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을 보이기 때문이다.

조호길·리신팅 지음. 메디치 펴냄. 2만원.
수많은 석학이 다양한 논거를 통해 제시한 중국의 몰락은 왜 오지 않는 걸까. 그 물음에 가장 현명한 답을 해 줄 책으로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꼽고 싶다. 중앙당교 교수를 거쳐 중국 내에서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하는 조호길(趙虎吉) 교수와 산둥사범대 리신팅(李新廷) 교수가 공저한 이 책은 그동안 이해하기 힘들었던 중국 정치권력의 형성 과정과 중국 특유의 엘리트 승계 방법이나 논리를 상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 보면 무너질 것 같은 중국이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지 잘 알 수 있다. 책의 앞부분은 공산당이 이끌어가는 중국의 국가체제를 설명한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은 전체 인구의 6~7%를 차지하는 사회 엘리트를 당원으로 흡수해 하나의 유기체로 조직하고 국가·군대, 나아가 사회 각 분야에 침투시켜 당-국가체제를 완성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엘리트 수급과 철저한 교육
오늘날의 중국은 현재 8875만 명에 달하는 공산당원이 철저하게 리드하는 사회라고 분석한다. 과거 황제의 권한과 과거제도 등을 통해 선발되던 관료는 이제 공산당이라는 조직과 그 시스템에 의해 선발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농민을 근간으로 하는 공산당이 고도화되는 사회에 맞추는 관료 시스템으로 나가지 못하면 그 당도 미래를 담보하기 힘들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은 리더 그룹을 엘리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향과급(과장급) 부직에서 국가급 정직에 이르는 10개 직책의 정치 엘리트 그룹은 위임제·선임제·고시임용제·초빙임용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된다. 9급부터 5급까지 한 번의 시험에 의해 선발되는 한국과 달리 중국 공산당은 위·아래의 평가 등을 통해 인재를 찾아낸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선발된 현처급(중앙기관 처장급) 이상, 45세 이하의 간부는 대략 5년을 주기로 연수를 받는데, 기간은 최소 3개월 이상이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연수 등을 통해 인재로 길러지고, 이들 가운데 성부급(장관급) 예비간부가 배출된다. 이들 역시 도시나 대형 국유 기업·대학·연구소 등으로 들어가 다시 지도자 수업을 쌓게 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서 선발된 엘리트들은 최고 학습기관인 중앙당학교 등에서 코스를 통해 더 큰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선발도 중요하지만 새 엘리트에 대한 관리도 최고의 숙제였다. 특히 시진핑은 “각급 영도간부들이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능력, 혁신 개척 능력,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 리스크 대응 능력, 안정 수호 능력, 언론과 교류하는 능력 등 여섯 가지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봤다.
세대교체를 주창한 덩샤오핑 이래 이런 수업 과정을 거친 중국 최고 엘리트들은 일정한 방식을 통해 리더가 된다. 중국 최고 리더그룹에 들어가는 첫 단계는 임기 5년의 중앙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중앙위원의 정식 인원은 205명이며, 171명의 후보위원이 있다. 이 리더그룹은 이후 25명의 정치국 위원, 7명의 상무위원 순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중앙위원은 당정기관의 간부, 과학연구기관의 리더, 대학 출신의 간부, 국유기업 출신, 군대, 언론 등에서 다양하게 배출된다. 하지만 이 배출의 기준은 상무위원으로 가면 원칙만 있을 뿐 실제로 작용하는 것에 대한 논거를 내놓기 쉽지 않다.
중국 엘리트 선발 과정,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이 역시도 원칙은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상무위원은 정치국 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은 중앙위원에서 뽑는 게 원칙이고, 대부분이 부합해 왔다. 또 정성부급(직할시서기 이상) 간부를 5년 정도는 맡는 게 일반적이다. 또 지방 훈련 경험도 필수적 요소인데, 최소한 두 개 이상 지방의 경험을 가지는 것을 중시한다.
이런 절차로 선발한 엘리트들은 다양한 역학 관계에 따라 리더가 된다. 문제는 한 개인이 권력을 장악하거나 영구집권을 막는 것도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당 주석제를 없애고, 국가주석이 공산당 그룹을 리드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 체제는 지금까지 비교적 잘 유지된다. 특히 1982년 개정 헌법에 국가 최고 직책의 임기는 5년, 연임을 해도 2회 이상은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10월25일 마친 새로운 중국 공산당 정치국 구성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 리커창 총리,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 왕양 정협 주석,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자오러지 기율위 서기, 한정 부총리 등으로 새롭게 짜인 이 진용은 시진핑의 권력 강화와 앞서 설명한 엘리트 성장과 대부분 부합한다. 이들 가운데 기존 절차와 약간 차이가 있는 인물이 왕후닝 정도다. 하지만 왕후닝은 1995년부터 중국 정책 연구를 책임진 만큼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중국의 엘리트 선발 과정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은 그동안 일제가 시행한 고시제도를 근간으로 엘리트를 선발해 왔다. 이렇게 선발된 엘리트들은 위·아래의 평가나 훈련보다는 다양한 인맥이나 코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중국 공산당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 일색이다. 비난에 앞서서 그들에 대한 지식을 쌓고, 대처하는 게 최선이다. 최소한 상대를 틀리게 보는 게 아니라 다르게 보는 객관적인 관점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시진핑, 1인 권력 강화의 길로 들어서다
10월18일부터 1주일 일정으로 중국공산당(이하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이하 ‘당 대회’)가 열렸다. 5년마다 열리는 당 대회는 공산당이 견지할 이념 문제를 다루고, 전대(前代) 지도부의 성과를 평가한다. 또 차기 임기 동안 추진할 정책 노선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등의 차기 당 지도부도 선출한다. 당 대회의 안건과 결의 내용을 파악하면 중국의 현재 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공산당이 대회 개막 전에 공표한 공고에 따르면, 이번 당 대회에서 논의·결정할 주요 내용은 크게 빈곤 탈출, 반부패, 일대일로(육상과 해상 신(新)실크로드) 전략, 정치체제 개혁, 국가감찰체제 개혁, 간부 임용 등이다. 향후 새로운 5년 동안 시행할 국정 운영의 대체적인 방향과 원칙은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된 당 대회 첫날 행한 개막 보고로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대회장 연단에 서서 전국 450여만 개 기층 당 조직의 당원 8900여만 명을 대표해 대회에 참석한 2280명을 향해 보고를 했다. 이 보고에서 시진핑은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으로서 총 13개 분야에 걸쳐 지난 5년간의 당·정·군 전반에 걸친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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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nhua 10월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이 후진타오 (왼쪽 네 번째), 장쩌민(왼쪽 여섯 번째) 전 주석 등과 함께 서 있다. |
먼저 당 이념은 변화나 조정이 된 게 없었다. 시진핑 주석은 선대의 이념을 계승하면서 자신의 기존 정책방향을 새롭게 강조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 사상, 과학발전관’을 계승하고, 자신이 새롭게 내세우는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사상(新時代中國特色社會主義思想)’을 당의 사상적 지표로 삼았다. 이는 대회가 끝나면 ‘시진핑’이라고 기명하지 않고 당장(黨章·당헌) 개정안에 시 주석의 지도사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당장에 그의 이름이 붙여져 ‘시진핑 사상’이라고 기술된다면 이는 그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오른 것임을 의미한다.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사상’ 강조는 덩샤오핑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한 경제발전을 지속하지만, 자신의 집권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는 차별화 의도가 내포돼 있다. 시진핑 주석이 개막 연설에서 유달리 ‘새로운(新)’이라는 표현을 강조한 이유다. ‘새로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69회나 언급했는데, 이는 이념 및 정책노선의 지속과 변용을 강조한 변증법적 수사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32차례 강조
시 주석은 자신의 ‘집권 1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의 이론 탐색으로 혁신적 성과를 거뒀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54조 위안에서 80조 위안으로 증가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으며, 6000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도시의 신규 취업자 수가 연평균 1300만명 이상이 돼 민생 안정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32차례나 언급했다. 집권 제2기 국가 운영의 기조로 2012년 자신이 집권하면서 제시한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 실현’,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 그리고 세계적인 리더 국가로 부상시키고자 하는 중화민족의 ‘중국의 꿈(中國夢)’을 다시 강조했다. 전자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 달성하고, 후자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안으로 달성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양대 100년의 꿈’으로서 ‘부강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실현’이라는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시진핑 주석은 당 차원에서 가장 중점을 둘 과제로 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그는 개막 보고에서 ‘샤오캉 사회 실현(17회)’보다 ‘반부패 투쟁(20회)’을 더 많이 언급하며 부패 척결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제18차 당 대회 이후 저우융캉, 보시라이, 쉬차이허우, 쑨정차이 등 당 최고위층 인물의 부패 사범을 엄정하게 처리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 기율과 국법을 위반하면 일벌백계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부패 방지를 위해 당내 법규 90여 곳을 제정하거나 수정하고, 전국 277개 당 조직을 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존 당의 감찰 기능을 국가 전체로 확대하고자 하는 국가감찰체제를 개혁해 당과 정부에 대한 사정 기능을 높이려 하고 있다. 현재 당 중앙의 지시로 베이징·산시·저장 3개 시범지역에서 성(省)·시(市)·현(縣) 3급 감찰위원회를 모두 구성한 상태다. 시범지역에서의 감찰위원회 성과를 기반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 국가 지도자로서 자신이 처한 국내외 정세가 대단히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성장이 둔화(성장률을 6.5%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는 그 이하일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된 데다 지난해 의욕적으로 시작한 국영기업의 개혁이 반발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성장동력 상실, 경제상황 악화, 토지분규 문제로 인한 농민계층의 집단적 저항, 만연된 부패 문제에 이어 3개 주요 격차(도시와 농촌, 동부와 서부 내륙지역,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경제 및 소득 격차)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불공정 거래와 위법·탈법·편법 행위가 난무하지만 이를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지방 당 간부나 관료들의 기강은 느슨하다. 관료들의 직무 태만과 부패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공산당과 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당 중앙의 통제는 헐겁다.
국제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의 고압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환율조작을 수단으로 한 대미 덤핑 수출을 시정하라고 압력을 가한 데다 북핵 문제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만약 중국의 역할이 시원찮으면 미국이 직접 나설 것이라는 최후통첩까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의 의지대로 일방적으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대외문제에서 상호 존중, 공평 정의, 협력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신형 국제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미국을 염두에 두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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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PHOTO 7월8일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포즈를 취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이러한 총체적 난국, 내우외환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단으로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기존 권위적인 강경책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임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시진핑 주석은 경제적 부, 즉 물질로 공산당 일당독재 통치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획기적으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정공법은 아니지만, 그는 향후 당을 중심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한 경제 성장을 계속하면서 평등과 복지를 중시하는 전면적 샤오캉 사회를 실현시키는 쪽으로 정책을 펼 것이다. 빈곤 탈출의 지표로 먼저 2020년에 농촌의 빈곤인구를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과제는 인민에 대한 당의 약속이며, 물러날 퇴로가 없는 임무로 규정했다.
과연 시진핑 주석의 이러한 대응책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둘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중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은 과감한 제2의 혁명적 조치가 없으면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의 근원은 공산당이 표방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이 부분을 건드리려는 의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미래는 점진적으로 복수 정당이 상호 견제하고 협력하는 다당제로 나아가는 ‘위로부터 개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아래로부터의 반정부 저항’은 더욱 드세질 것이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의 개혁 의지와 로드맵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위로부터 개혁을 지속하되 개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공산당이어야 하며, 아래로부터 변화하는 싹을 차단하려는 의지만 읽힌다. 이는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공간의 확대를 막는 방향으로 당과 권력이 운영될 것임을 예견케 한다.
집단지도체제 약화시키고 1인 권력 강화
물론 이번 당 대회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정치체제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인민과 괴리된 공산당 단독의 개혁이라 한계가 있다. 그는 정치개혁이나 민주국가의 제도를 받아들일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중국은 다른 나라 모델을 모방하거나 답습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중국의 독특한 문화 전통, 독특한 역사적 운명, 독특한 기본 국정으로 반드시 중국만의 고유한 발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당의 새로운 건설을 위한 방안으로 당원들의 개인주의·분산주의·자유주의·종파주의 등 총 8개 항의 작풍에 반대해야 한다는 ‘8개 주의 반대’를 추진할 것임을 알렸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작동돼온 집단지도체제를 약화시키고 1인 권력 강화의 길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열린 18기 3중 전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조직한 ‘개혁소조’가 맹위를 떨치는 친정체제를 강화해 당·정·군을 총괄적으로 진두지휘할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개혁·개방 노선을 지속하는 한편, 반부패 투쟁과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하게 공산당을 통제함)’을 축으로 당과 관료뿐만 아니라 군과 언론에 대한 통제와 감찰을 강화할 것이다.
시 주석의 이런 구상을 뒷받침할 인물로 누가 포진될 것인지도 주목 대상이다. 향후 시진핑 체제를 이끌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할 정치국 위원과 상무위원은 당 대회 폐막 뒤인 10월25일부터 시작하는 제19기 중공 제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중 전회’)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1차 회의가 끝나면 공표된다. 현재 당 대회에서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라는 불문율에 따라 최고 지도부인 제18기 상무위원 중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제외한 5명은 퇴임 대상이어서 교체가 확실시된다. 그 자리에 시진핑 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이 포진될 가능성이 크다.
시자쥔이란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의 고향이자 청년 시절 하방(下放·지식인을 노동 현장으로 보냄)했던 산시 출신, 또는 시 주석이 푸젠성, 상하이 등의 지방 관리로 일할 때 함께 근무했던 이들이다. 여기에 속하는 주요 인물은 기율검사를 전면에서 지휘한 왕치산 중앙기율위 서기, 리잔수 당 중앙판공처 주임, 자오러지 중앙조직부장 등과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중산 상무부장 등이다. 시자쥔은 개혁을 개시하면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경제정책 추진에서도 역할이 커질 것이다. 이는 집단지도체제에서 총리의 전담 영역이었던 경제와 행정 등의 내치도 시 주석이 장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 민주주의 위기…중국의 선택은?
사실 서구 민주주의와 그 제도는 국제정치 영역에서 부단하게 논의되는 주제로서, 최근 중국의 적지 않은 매체와 학자는 서구 사회가 이를 '민주, 자유, 인권'의 미명 하에 중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를 강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국제정치 사상과 정치적 실천의 과정에서 서구가 독점한 민주의 개념은 이미 충분하게 남용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진영이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민주라는 수단으로 중국을 분열시키거나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서구는 자신의 제도와 모델에 기초한 '자유 민주, 인권' 등의 약을 처방하고, 중국이 순진하게 이를 따라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중국 티베트, 신장위구르, 타이완, 홍콩의 독립주의자들이 서구의 이러한 책동에 동조하고 있다며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편 근래 서구 민주국가 자신이 포퓰리즘과 대결 정치의 함정에 빠지면서, 민주주의가 그들에게 성공의 요인이자 동시에 실패의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서구 국가는 근래 수십 년간 민주주의 수출에 열을 올렸는데, 무분별한 도입에 변질과 실패가 이어지며 국제정치 생태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나아가 서구 내부에 극단세력과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보수주의와 배외주의가 팽배하며 권력 투쟁은 민주 정체의 마지노선을 넘나들었다. 결국 그들은 서구 정치가 소수에 인질로 붙잡혔고, 그 운영이 정치적 체증에 직면했다 진단한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학자는 현재 서구의 3대 권력은 재벌, 대중매체, 정권으로 정권은 앞의 두 권력의 제약과 보통선거 및 임기라는 두 근본적 한계로 인해서 재벌의 이익을 건드릴만한 그 어떠한 정치경제 정책도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서방 위기의 근원은 이미 세계화 시대에 진입한 상황에 그 체제가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라 설명한다. 역사의 종말을 고했던 후쿠야마 역시 최근 언론의 기고를 통해서 "민주적 국가 역시 실패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서구와 민주주의 체제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한편으로 서구의 혼란과 국제사회 본래의 복잡 다변한 현실에 직면하여, 중국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정치‧경제적 노선을 걷고 있기에, 그 역사적 의미와 국제적 영향과 의미에 대한 관심이 재차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냉전이 끝난 후에도 소련과 동구의 해체나 내부 갈등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고, 중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 경제 성장과 국가 부흥을 실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의 노선은 여전히 개혁, 성장, 안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세계 정치와 경제 발전에 강한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은 서구와 다르게 국가 경제 총량과 그 성장 속도, 기초건설, 공공건설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고, 종합 국력과 국민 소득도 크게 제고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국제 사회와 그 제반 문제에 대한 영향력과 발언권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
중국의 한 학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일련의 상황과 변화를 지켜보며 자연스레 양자 간의 차이를 발견했고 그 원인을 고민하게 되었으며, 상술한 서구식 민주와 그 제도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고민과 반성의 결과라 주장했다.
중국은 어렵게 찾아온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실제 지난 몇 년간 '중국의 가치'나 '중국의 방안(方案)'을 국제 사회에 널리 전하고, 국제 사회에 보편 가치로 확립시키려 노력해왔다. 중국 <인민일보> 해외판은 2017년 2월 10일 '인류운명공동체구축' 문구가 포함된 결의가 유엔 사회개발위원회를 통과한 것을 그 성공 사례의 하나로 제시한다. 2014년 이래로 꾸준히 추진한 '일대일로' 구상은 그 구체적 실천의 사례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방식은 서구의 약탈적, 불평등 체제와 다르게 국제 사회에 호혜의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주장한다.
동시에 중국 언론과 학계에 서구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제도의 근본적 오류를 지적하고 그에 대해 맹목적 신뢰를 보냈던 과거를 자성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리고 주류는 아니나 중국식 현인정치나 엘리트주의 제도를 주장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게 등장하였다.
몇몇의 사례를 보자면 우선 캐나다 출신 한 학자는 과거에 자신은 선거 민주주의 제도 시행 국가만이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믿었지만, 중국에서 생활하고 연구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에서 지도자 자질, 정치적 발전 등의 문제를 논할 때 그 기준은 '현인정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이유로 첫째, 중국의 규모를 들었다. 민주적 이상은 중국과 같은 규모 국가에 비현실적이란 의미이다. 둘째, 역사적 배경을 들었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주류 가치관에 따라 정치 제도를 선택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은 지난 2000년 동안 현인정치를 시행한 주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중국은 지난 30여 년 현인정치 제도를 회복했다. 넷째, 대부분의 중국인이 현인정치 기준에 근거하여 그들의 지도자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국가는 자신의 방식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중국의 선택은 '현인정치'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중국학자는 원칙과 결과를 지향하는 자신의 엘리트주의(優主主義)를 제안하며 이는 절차 지향에 문제가 다분한 민주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높은 수준의 덕과 지혜를 갖춘 지도자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국가에 서로 다른 형식의 조직 구성과 운영이 가능하나 다만 몇 가지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지도자 조직의 문은 모두에 열려 있으나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고, 그 내부에 지속적 자기 계발 기제를 운영하며,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지도적 업무를 부여하고, 대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정리해 보자면 중국은 각국은 자신의 국정에 적합한 자신의 제도를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중국의 관련한 제안과 실천은 기존의 서구와 다른 보다 나은 국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협력적, 호혜적 성격의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가치와 방안이 결국은 국제 사회가 공유하는 보편 가치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대국 세력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역에서 역사의 대부분을 중국과 이웃하며 살아왔던 그리고 중국과 서로 다른 이념과 제도를 따르는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인식과 주장을 간단히 넘길 수만은 없다.
근래에 한국도 보기 드문 체제 위기를 겪었고, 내부 분열과 갈등 역시도 여전한 상황이다. 중국의 일부 학자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나 비효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한국을 그 사례로 들기도 하였다. 물론 그러한 지적은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고, 서술에 다소간의 논리적 오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한국의 가치나 현 체제 혹은 구현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내외 혼란이 극심한 전환기로 새로운 목표와 비전의 제시가 절실한 상황이다. 서구의 혼란과 중국의 대응을 보면서 한국도 자신만의 답안을 찾아내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국의 시혜자 코스프레에 저자세는 곤란하다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한중 관계 회복 중요하지만, 사드 보복 사과 당당히 요구해야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3(금) 16:09:14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은 1인 지배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정립시켰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당대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중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해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연장선상에서 10월31일 중국은 그동안 갈등 상황에 빠져 있던 한중 관계를 개선하는 차원의 의미로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중단을 선언했다. 중국이 우리에게 시혜자(施惠者) 스탠스를 취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민 상황이다. 그런 후 한국과 중국의 합의문 발표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우리와의 갈등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외교 전략을 급격히 전환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어 중국과의 얽히고설킨 갈등 관계는 당장 풀어야 할 시급하고 중요한 국정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복원하느냐에 따라 사드 보복으로 치명타를 입은 국내 대기업과 중국 시장 진출에 발목을 잡힌 기업들의 원망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외교적 측면에서도 우리가 선제적으로 한반도 긴장 분위기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 직후 국가안보실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으며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이번 ‘한중 관계 개선 관련 협의 결과 발표’는 우리에게도 얻는 이득이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의 한중 사드 갈등 봉합 환영 인사말에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외교전략 급선회에 대한 배경 우선 주목
1992년 8월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이후 한국과 중국은 25년째 수교를 맺고 있다. 그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두 국가는 지난 25년 간 협력 동반자에서 전면적 협력 동반자로, 다시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관계를 계속 격상시키며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의 폭을 확대시켜 나갔다. 지난 10년간 국내 대기업의 주요 해외 진출 지역도 중국이었고 국내 기업이 최다 매출을 창출하는 글로벌 시장도 중국이었을 만큼 두 국가의 동반자적 관계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정치·경제·외교적 측면에서 급성장을 거두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자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갈고 닦은 역량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라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벗어난 시진핑 주석의 사자후(獅子吼)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시진핑 주석은 세계를 대국과 주변국,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며 대국 관계는 균형과 안정을 갖추되 주변국가에게는 친밀함과 성실함, 호혜의 원칙을 통해 외교 관계를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메시지가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중국은 대국과 주변국, 개발도상국 등으로 천하를 세 집단으로 분류하면서 균형적인 관계는 오직 대국과의 관계에서만 설정해 놓았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중국은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 및 정상회담에서 동등한 위치, 수평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즉, 중국은 언제든지 자신의 입장에 따라 공세와 화해의 손길을 동시에 내밀며 주변국을 길들일 수 있다는 시그널을 던졌다.
둘째, 주변국 및 개발도상국과의 관계에서 중국은 진실, 친근, 성실 등의 키워드를 내세우며 협력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미국의 강공 외교 드라이브에 대해 전 세계가 반감을 보이기 시작하자 중국은 시진핑 2기의 외교 전략을 ‘강공’에서 ‘실리 중심의 유연성’으로 급격히 전환시켰다. 동북아에서 점점 거세지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지렛대로 이용해서 중국의 동북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이다. 단적인 증거로 중국은 우리에게 이른바 3불(不) 조건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중국이 강조한 진실과 성실은 중화사상에 기반 한 그들의 시혜자적 스탠스를 표현한 슬로건일 뿐 상호 수평적인 관계로 정상화하자는 취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3NO 정책’ 요구하며 관계 정상화 제스처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사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취임 초, 중국의 대표적 ‘육상 실크로드’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총회 개막식에 직접 참석하는 등 다방면으로 중국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중국은 사드를 빌미로 우리를 거칠게 비난하며 경제 및 문화 전반에 걸쳐 보복 조치를 꾸준히 확대시켜 나갔다. 10월31일 ‘한중 관계 개선 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다행히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주춧돌을 마련했지만 중국과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에 대해선 지금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건으로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 세 가지 사안에 대해 명확히 ‘3NO’정책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했고 중국 역시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해당 안건에 대해 양국이 사전 조율을 마쳤다는 식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논란은 오히려 확대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그동안 중국이 침묵으로 일관한 점, 그리고 전 방위적 사드 보복 조치에 대해 중국의 유감 표명이나 사과 문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지나치게 ‘저자세’ 또는 ‘눈치 보기’ 전략으로 접근한 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실제로 이번 한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합의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은 사드를 반대하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안보 동맹 등 군사 전략적 측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이 적절하게 문제를 처리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다. 반면,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한다는 수동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중국이 한중 정상회담 등을 이유로 관계 회복을 먼저 제안하면서도 끝까지 우리에게 사드 배치에 대한 유감 표명을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중국은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주변국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첫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합의문 어디에도 중국 지켜야 할 원칙이나 기준 없어
합의문을 조율하고 반영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에서도 ‘합의문에 중국의 사드 보복 철회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이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이 부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우리 정부는 사드 보복에 대한 중국의 유감 표명을 요구하지 않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사안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정부와 물밑에서 고생한 국가안보실의 노고(勞苦)를 국민들이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한국 스스로 중국의 외교 프레임 전술인 주변국의 수혜자(受惠者) 입장에 매몰돼 자주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건 실책이다. 합의문 어디에도 중국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나 기준은 적시돼 있지 않다.
우리는 중국이 강력하게 요구한 ‘3NO’를 관계 회복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중국이 지난 2년간 폭력적 조치로 우리의 산업과 관광, 문화를 마비시킨 점, 이와 동시에 한국의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 유례없는 내정 간섭을 통해 보복을 일삼은 점에 대해 우리 정부가 중국에게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중국은 이번 합의 과정에서도 대국으로서의 시혜자 스탠스와 사드로 인해 자국의 안보가 위협 당했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세 외교, 눈치 보기 외교로 일관하면 중국에게 우리는 주변국에 불과하다는 시그널만 줄 뿐이다.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 마라. 그러나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케네디 前 미국 대통령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 새로운 전략으로 시진핑 2기를 상대해야 한다. 노골적으로 한국을 주변국으로 바라보는 중국으로 인해 국가적 자존심이 짓밟힌 사례는 남한산성 참극(慘劇) 한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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