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명절문화 생각하기

일취월장7 2017. 10. 3. 16:57


"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며느라기①] 딴지거는 시어머니, 이간질하는 시누... 다가오는 추석, 나는 나를 응원한다

17.09.30 11:42l최종 업데이트 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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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바나나껍질 명절이 다가오자 남편이 먹고 아무데나 버린 바나나 껍질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 바나나껍질 명절이 다가오자 남편이 먹고 아무데나 버린 바나나 껍질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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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꿈의 내용은 다르지만 꿈의 결론은 같았다.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의 사소한 버릇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바나나 먹고 껍질을 왜 쇼파 위에 놨어요? 내가 아까 애기 보행기 위에 있는 바나나 껍질도 치웠는데?"
"아기 자요, 텔리비전 보지 마요. 아기 깨요."
"책을 봤으면 정리를 해야지 이거 누가 치우라고 또 여기다 널브러트려 놨어요?"

평소에도 잔소리를 했지만 이번 잔소리에는 한껏 짜증이 묻어난다. 어젯밤엔 남편이 자려고 침대에 눕자 나도 모르게 몸을 휙 돌려 버렸다. "화났어?"라는 남편 말에 내가 왜 화가 났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맞다. 나는 화가 났다. 명절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맏며느리 엄마의 명절 수난기

 염장식품은 짜야 정상이다. 싱거운 게 말이 되나.
 염장식품은 짜야 정상이다. 싱거운 게 말이 되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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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내게 명절은 엄마 눈치를 보는 날이었다. 막내 며느리였던 엄마는 친아버지 사후 재혼으로 인해 갑자기 맏며느리가 됐다. 맏며느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엄마에게 다가온 대형 악재가 있었으니... 시댁 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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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며느리가 돼 인사한 그날, 이번 겨울 김장 이야기부터 했다는 시어머니 말에 엄마의 스트레스는 1차로 폭발했다. 김장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엄마의 스트레스는 김장을 하고 나서 대폭발했다. 시댁에 가서 김장을 했더니 너무 짜다는 불평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다음해 김장은 싱겁게 했더니 이번엔 김장이 망했다. 그날 밤, 엄마와 함께 망한 김장 김치에 보쌈고기를 싸먹으며 한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염장식품이 그러면 짜야지! 싱거운 게 말이 돼?"   

1차 김장의 여운이 가시기 전, 엄마의 스트레스는 지구를 진동시킬 정도로 폭발했다. 설날이 왔기 때문이었다. 발단은 잡채였다. 명절이라서 손님들 오면 대접할 요량으로 엄마는 잡채를 해서 시댁으로 향했다. 그리곤 평소처럼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잡채를 따뜻하게 데웠다. 여기까지 평소의 우리 집의 모습이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눈에는 문제가 있었다.

 내게 잡채란, '시월드'의 상징이다.
 내게 잡채란, '시월드'의 상징이다.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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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 식용유로 잡채 볶았니?"

잡채를 식용유에 볶아서 식용유맛이 나서 못 먹겠다면서 뱉어내는 시어머니를 보며 엄마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뒤 시어머니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꼿았다.

"얘, 너 나물 무칠 때도 식용유 넣니?"
"아니, 어머니, 나물 무칠 때 식용유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해 설날이 끝나고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물어봤다. "너희 집은 잡채 데울 때 식용유 넣어, 안 넣어?" 그 후로 내 머리에 잡채라는 음식은 시월드의 상징처럼 남게 됐다.

설날이 끝나고 잠잠해질 줄 알았던 엄마의 감정은 10일 뒤 있을 시아버지의 제사 준비로 인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도 아침 일찍부터 거들었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와 손녀가 얼굴도 보지 못한 시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손에 밀가루와 계란이 범벅이 되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얼굴을 내민 시누이이자 고모가 나타났고 얼굴만 비춘 뒤 가버렸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바쁜 일이 있다던 시누이이자 고모는 바쁜 일이 없었다. 그냥 도와주기 싫어서 가버린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엄마는 무척이나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3년이라는 시간동안 명절 차례상과 각종 제사, 김장 등을 보이콧했다.

시누는 나를 '비둘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시작된 간섭

엄마의 보이콧이 끝나고 4년 후, 나는 결혼했다. 걱정과는 달리, 남편은 아주 소박한 차례상을 원했다. "차례는 '차(茶)'를 올리기 위한 상차림이지 음식을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내가 명절에 해야 하는 음식은 삼색나물, 동태전 한 접시로 끝났다.

밥과 국은 남편이 했기 때문에 차례상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명절 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나의 장바구니는 가벼웠는데 엄마의 장바구니는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두세 번 왕복해야 할 정도였다. 음식 준비에 스트레스가 없어서 앞으로도 별일 없을 것 같았던 내 생활은 어느 날부터 시누이 때문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시누이는 결혼 전부터 밤낮주말을 가리지 않고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내게 문자 또는 전화를 해서 남편한테 당장 전화하라 말하라고 시켰다. 몇 번 생각 없이 그 요구에 응해줬는데 어느 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일에 화를 내는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구가 말했다.

"니가 비둘기야?" 

아기 속싸개 속싸개를 해줘야하는 시기 등은 정해져있지 않다.
▲ 아기 속싸개 속싸개를 해줘야하는 시기 등은 정해져있지 않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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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나서 시누는 더더욱 우리 집 일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시누는 남편에게 아기 사진을 보내라고 했고 아기 사진을 보냈더니 불같이 화내기 시작했다. 아기 속싸개를 100일까지 싸줘야 하는데 풀어놨다는 것이다.

한여름 출산한 나는 아기 속싸개를 조리원에서부터 팔 한쪽씩 풀어줬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다. 그렇게 사건을 일단락되는 줄 알았으나 시누는 끊임없이 문자로 속싸개 이야기를 했다. "누나가 계속 얘기하는데 한 번 싸주자." 그날 밤 우리는 같이 살지도 않은 시누이의 요구에 아이에게 속싸개를 꽁꽁 싸매줬고 한여름에 태어난 아이의 온몸에 땀띠가 났다. 그 뒤로 남편은 다신 속싸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매번 남편과 연락이 안 된다고 빨리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시키던 시누이가 이번엔 웬일로 잘 지내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보던 나는 시누이와 메시지를 하면 할수록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시누에게서 온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아이가 핑크색 옷을 입고 있던데요. 우리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남자아기가 여자 옷 입으면 출세 못한다고 해서 안 입혔을 거예요. 앞으론 입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말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설빔 아빠가 아들에게 사준 분홍색 설빔
▲ 설빔 아빠가 아들에게 사준 분홍색 설빔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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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없는 그들의 몽니... 그래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

남편이 설빔으로 아이에게 사줬다는 말에도 시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시누의 무례함은 계속됐다. 남편에게 연락해 "어디 가서 부인 자랑하지 말아라, 팔불출 같다"고 하는 건 약과였다. 첫째 아이의 돌잔치에 오고도 자신의 남동생에게는 인사를 하고 갔는데, 내게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시누의 무례함을 참고 참다가 드디어 폭발하는 날이 왔다. 시어머니 제사 때문이었다. 남편은 네 차례의 차례상과 두 차례의 시어머니 제사상을 새로 들어온 식구가 차리는 동안 연락 한 번 안한 시누에게 그건 무례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시누가 그에 대한 답변을 문자로 보낸 것이다.

"걔, 엄마 제사 진심으로 지내는 거 아니야.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제사를 진심으로 지내는 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누의 문자에 의해 교활한 사람이 된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있었는데 "산후우울증도 정신병이야! 내 문자 지워, 내 문자보면 또 난리칠라"라는 시누의 문자가 남편에게 도착했다. 그날, 남편과 나는 상의 끝에 당분간 시누와 왕래를 하거나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자 김승섭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요. 그 관계들은 종종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깁니다. …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시누는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이었겠지만 며칠 전부터 장을 봐 놓고 당일 날 새벽부터 음식을 하는 나의 노력을 '진심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거짓말로 매도했다. 이것이 나도 모르게 몸 속에 상처로 남아버린 것 같다.

시누와 연락을 잠시 끊기로 했음에도 명절이 다가오자 계속해서 시누가 남편에게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문자가 떠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분노가 차 올라왔다. 이런 대접 받으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시어머니의 차례상을 차려야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결혼 전부터 시누의 무례함을 참고 견뎌야 했는지 나름 고민을 했다. 이것은 혹시, 권력이 없는데 권력이 있다고 착각한 시누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이런 수모를 참고도 나는 추석 차례상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추석이 끝난 일주일 후, 갑자기 진심이 아니게 돼 버린 시어머니의 제사상도 차리게 될 것이다. 이번 명절, 그래서 나는 나를 응원한다. 손수레를 끌고 시장을 두세 번 왕복할 우리 엄마도 응원한다.


[며느라기②] 여성으로서 차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 날

[오마이뉴스 글:박은지, 편집:박정훈]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설거지를 안 한다고 시댁이 편한건 아닙니다
ⓒ pixabay

"올해 추석 연휴 봤어? 너무 길지 않니, 정말."

연휴가 너무 길다는 유부녀 친구의 푸념에 순간 깜짝 놀라 반짝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그랬다. 나도 결혼을 했으니, 이제부터의 명절은 지난해까지의 명절과는 달랐다. 한쪽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을 건너온 듯한 현실감이 일단은 아주 가볍게 나를 한번 휘감고 지나갔다.

지난해 생전 처음으로 명절을 맞아 기차표를 예매했다. 티켓팅이라고는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치열하게 해봤지, 그보다 더 경쟁률 높은 티켓팅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도 물론 어릴 때 시골 중의 시골인 해남 외할머니댁에 가봤던 기억이 있지만, 제천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였다.

게다가 낯선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시댁 친척 식구들 대부분 결혼식 때 보고 인사도 나눴겠지만, 정신없는 식장에서 친구들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낯선 어른들 얼굴이 기억날 리 만무했다.

아무튼 내가 믿을 건 그나마 2년 동안 봐온 얼굴인 신랑밖에 없었다. 신랑 손을 꼭 잡고, 서먹하고 어색하게 제천에 도착했다. 밤하늘에 별이 보이는 건 좋은 일이었고, 그것 말고는 통 시선 둘 곳이 없다는 게 안 좋은 일이었다. 늘 가족들과 보내던 명절인데, 갑자기 내가 이런 곳에 와 있다니... 이방인이 된 것처럼 이상했다.

시어머니가 '친척들이 많아 어려울 테니 명절 전날 늦게 기차를 타고 오라'고 하셔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미리 해두는 음식 준비는 이미 다 끝나 있었다. 늦은 술자리에 슬며시 끼어 술을 몇 잔 받아먹고, 이불을 깔고 생전 처음 남편의 시골집에서 잠을 청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다음 날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찍 눈이 떠졌다.

신랑을 쿡쿡 찔러 깨우고 보니 이미 시어머니를 포함해 여자들은 다 일어나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고 남자들은 더 자다가 근처 목욕탕에서 씻고 온다고 나갔다. 시골집이라 욕실에서 간단한 세면은 가능하지만 샤워 시설이 없는 탓이었다. 남자 어른들이 신랑도 같이 가자고 불렀지만 그는 나 때문에 가지 않았고, 그중에도 남편 여동생인 시누는 차례를 지내기 직전에 일어났다, 친정에서의 내가 바로 작년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이 차려놓은 차례상에서 목욕재계하고 돌아온 남자들이 절을 한다. 절이 끝나면 또 여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아침 식사를 차린다. 남자들은 이미 상 앞에 앉아 있고, 여자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다가 가장 늦게 자리에 앉는다. 여태까지 친정집에서는 엄마, 아빠, 남동생, 나까지 네 명이서만 명절을 보냈기 때문에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전형적인 명절 풍경인 셈이었다.

시어머니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 불편하다

 차례상.
ⓒ wiki commons

"언제 올라가니?"

누군지 모르는 어른 한 분이 물었다. '차례 지내고 바로 올라가요' 대답하니 그분이 시아버지를 향해 농담처럼 한마디 건넸다.

"며느리 들이면 절대 친정에 안 보낸다고 하시더니?"

시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지만 나는 순간 당황해(혹은 황당해) 말문이 막혔다. 시어머니가 옆에서 손사래를 치셨다. 친정 엄마가 명절 당일에도 일을 나가시는데, 엄마 출근 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시골에서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라고 미리 나와 말을 맞춰두신 상태다. 시어머니는 여태까지 한 번도 명절에 친정에 간 적이 없으시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밖으로 나와 버렸다.

"네?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시어머니는 당신이 겪으신 것을 나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시곤, 명절 당일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차례를 지내자마자 우리 부부를 친정으로 보내주셨다. 첫 명절에 나는 전을 부치지도, 설거지 한 번도 하지 않고 끝난 셈이었다.

그런데 첫 명절이 어땠냐고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별일 없었어, 설거지도 안 했어'라고 대답하는 마음이 찜찜한 이유가 뭐였을까. 며느리가 들어오면 당연히 부엌일을 넘긴다고 생각하는 시댁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시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절 아침을 시댁에서 보내고, 이제 우리 부모님을 뵈러 친정으로 가는 것을 눈치 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일까? 내가 명절에 친정에 가는 것이 시댁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던가? 시댁의 배려를 받는 그 상황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요즘 젊은 것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설거지를 시키지 않고, 명절 아침에 친정으로 흔쾌히 보내주는 시댁이 좋은 시댁이라면, 남편 입장에서의 좋은 처가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 엄마도 신랑에게 한 번도 설거지를 시킨 적이 없는데, 남편 친구들도 그에게 "명절에 설거지하느라 안 힘들었어?"라고 묻고, "아니, 우리 처가댁은 일 안 시키고 잘해주셔"라고 대답하고... 뭐,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 첫 명절, 나는 누가 내 몸에 묵직한 돌을 달아 묶어놓은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들만 일하는 모습을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풍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나를 챙겨주신다 한들, 내가 일하지 않으면 며느리를 잘못 들였다고 나중에 흉이 될까 봐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돕는 건 당연한 도리지만, 거기서 시어머니가 일하는 것을 의식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들, 딸을 제치고 며느리인 나밖에 없었다.

그날 하루만 고생하면 되는 거니까, 싹싹하게 나서서 설거지도 하고 과일도 깎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난 이 집안 남자들과 결혼한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명절마다 시댁에 와서 남편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원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시집을 와서' 그의 집안에 덧붙여진 기분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그럼 결과적으로 남편 입장에서는 결혼을 통해 일손을 늘리는 셈인데, 그럼 우리 엄마의 명절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나 기존의 관념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 부부의 관계를 과연 더 좋아지게 할 리 없다. 나는 남편이 우리 부부의 평등한 권리를 나만큼이나 원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권리를 위해 같이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적은 없지만) 어른들에게 맞춰드리자고, 명절에만 참자고, 대신 내가 집에서 혹은 친정에서 잘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주어진 불평등과 차별, 그로 인해 남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이 된 것 같은 상처를 그런 주고받기 식으로는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 내가 도달한 현실

 나는 결혼을 통해 시댁에 편입된 것이 아니다
ⓒ pixabay

두어 번의 명절을 보내고 나서, 나는 시집살이가 험하지도 않은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게 왜 싫은지 조금은 알게 됐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걸 1년 중에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날이 바로 명절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 '가족'의 테두리 속에서 나는 그냥 며느리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회 구성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며느리는 계급 사회로 치자면 남편(혹은 시댁에) 내조만 잘하면 되는 최하층민인 셈이었다.

누군가 특별히 나를 부려먹지 않아도, 시부모님이 좋은 분들이어도, 어쩔 수 없이 내게는 며느리로서 역할의 잣대가 씌어 있었다. 며느리가 전을 부쳐야 하는데 아직 처음이라 봐주는 것이고, 원래는 친정에 안 보내도 되는데 배려해서 보내주는 것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벌초하러 가야 하는데 올해는 안 와도 된다며, '옛날 같으면 장손이 빠지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는데, 네 시아버지도 많이 유해졌나 보다' 하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그랬다. 그 일정에서 내 의견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 

나는 남편과 내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명절의 시댁에는 어쨌든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친정집에서는 남편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그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나 마땅히 충족시켜야 하는 기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댁에서 나는 시부모님의 배려가 있어야 친정집으로 떠날 수 있고, 설거지를 안 시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평소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느낄 필요 없었던 그와 나의 계급 차이를 나는 앞으로도 명절마다 느껴야 할 것이다.

결혼 전부터 명절에는 양쪽 집을 번갈아가면서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편도 동의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던 대로 하면 굳이 싸우고 얼굴 붉힐 일이 없는데, 한 번씩은 친정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싶다고 고집하면 어른들과 갈등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만 있으면 싸울  필요도, 변할 필요도 없는 남자들 입장에서는 결심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이 말을 하니 친정에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 취급을 했다.

명절에 시댁부터 가면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데, 그 반대로 하면 모두가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 맞다. 그러나 나는 그냥 갈등을 감수하고 내 합당한 권리를 찾고 싶다. 우리가 불공평한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불편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다. 적어도 남편은 이 싸움에서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명절마다 일부러 깁스를 하거나 출근을 하는 여자들도 있다고 할 정도다. 결혼을 하면 모두들 축하해주지만 명절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로부터 '이제 힘들겠네'라는 동정의 시선이 쏟아진다. 나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나서서 싸우기보다 그냥 '나만 그렇게 안 살면 돼'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벗어나기 어려운 명절의 불평등이 짧은 시간 내에 모두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지금도 마음이 답답하다. 결혼 후 명절이 주는 의무감과 부담감은 명백하게 여성들에게 치우쳐져 있다. 그것은 심지어 남편의 가족들을 위해서만 일방적으로 소비된다. 나는 결혼을 통해 시댁에 편입된 것이 아니다. 며느리로서 시댁에 소속된 명절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애초에 무엇을 위한 날인가

명절은 대체 뭘 위한 날일까? 예전에는 양반들만, 그리고 남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조상에 대한 예를 지내는 날이었다고 한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의미는 아닌가 보다. 지금은 그냥 여자들이 일하고, 남자들은 절하고, 그 탓에 부부끼리 마음이 상해 다투는 날이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명절 때문에 양 집안의 우선순위가 갈리고 사회 제도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자와 바꾸고 싶은 자 사이에 싸움이 날 바야에 차라리 이런 날은 없는 게 낫겠다. 일 년에 두 번씩, 멀쩡히 잘 지내던 부부 사이에서 아내는 시댁을 우선으로 챙기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행사가 필요한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명절을 가족 행사로 생각한다면 더더욱 전통은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명절마다 시댁 먼저 가고, 친정은 나중에 간다면 세상에 둘뿐인 우리 남매는 명절에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 아마 딸만 세 명인 내 친구네 집 부모님은 영원히 명절 아침을 자식들과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지켜야 할 전통인가? 

결혼 전의 여성들에게 명절은 긴 연휴, 휴식으로 여겨지지만 결혼 후에는 '노동하는 날'로 한순간에 의미가 바뀐다. 결혼 후의 명절이 여자들에게는 큰 변화라는 것, 그리고 그게 부정적인 변화라는 것을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안다. 여자든 남자든, 그걸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게 바뀌지 않으면 굳이 결혼이라는 족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여자들이 있을 리 없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결혼해도 여전히 명절에 휴식할 권리, 부부의 합의에 따라 각자의 부모님을 챙길 수 있는 권리, 남매끼리 만나 밥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권리, 선택에 따라 여행 가거나 직장생활에 지친 일상을 재충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면 자연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순수한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명절은, 외동이거나 한두 명씩밖에 없는 형제끼리 한 번씩 부모님과 시간 맞춰 만나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나눠먹고, 아니면 여행이나 가면서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돈독하게 하는 편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명절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가족의 만남과 민족의 축제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며느라기③] '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며느리들.. 우리도 즐겁고 싶다

[오마이뉴스 글:김기정, 편집: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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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며느라기] 기획은 시댁과의 관계, 가부장제 구조 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명절의 사회적 의미는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마다 즐기기는커녕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명절후 증후군'에 걸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의 친척'들이 모이는 '가부장제의 끝판왕' 행사에서 며느리는 그저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뿐, 목소리를 내어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듯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명절의 악습을 없애지 못하면 '성 평등'한 가족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명절도 달라져야 합니다. <편집자말>

 웹툰 <며느라기> 6_4.제사편 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추석이 다가온다. 올 추석에도 텔레비전에서는 며느리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탈 것이다. 아침방송에서는 고부갈등을 겪는 이야기가 되풀이될 것이며, 특집 방송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나와 수다를 떨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시골의 며느리가 밥 짓는 모습이 나올 것이며, 뉴스에서는 '명절 증후군'에 대해 보도할 것이다. 그만큼 며느리는 우리네 명절을 감당하는 큰 축이다. 그런데 명절이 끝나면 이혼율이 10%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왜일까.

결혼 전에는 추석이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 사과, 배, 딸기, 한과, 떡, 강정 등 귀한 음식들을 마음껏 먹으며 친척들과 신나게 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낯선 시할머니댁에 며느리로 앉아있으니 밥 한 숟갈 뜨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제일 눌은 밥은 왠지 내가 먹어야 할 것 같고 밥상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 숟가락을 놓고 일하러 가야될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며느리가 '할 일'

'며느리'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시집 식구들에게 음식(뫼)을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속에는 이미 시집과 며느리라는 상하관계가 뚜렷하게 내포돼 있다. 방송을 통해 아무리 며느리의 애환을 심각하게 다루고 며느리의 행복을 위해 애쓴다고 하더라도, 이 틀 속에서 며느리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통상 우리 사회가 '며느리'에게 부여하는 의무와 기대는 너무나도 크다.

시어머니는 "명절에 내려올 거지? 할 일 별로 없을 거야"라는 말씀은 하시지만 나는 말하지 않아도 내가 척척 해야 하는 그 수많은 일들을 안다. 친정으로 넘어가고 싶어도 시댁 눈치부터 볼 수밖에 없고, 설령 명절에 여행을 간다 해도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잠깐의 일탈밖에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약자의 서러움 속에서 며느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뒤돌아 우는 것 밖에 없다. 어쩌면 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너만 며느리니?" 하면 할 말이 없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축적돼 온 며느리의 슬픔이 입까지 막아버린다.

명절의 본래 의미로 되돌아가 보자. 명절은 본디 축제였다. 상하관계가 뒤바뀌고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즐기며 정서적 합일을 이루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추석은 '가배'라고 불리며 여자들이 모여 길쌈을 하고 가무를 하는 등 각종 놀이를 하던 큰 잔치였다. 우리는 모두를 위해 축제로서의 명절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며느리에게 과중한 노동의 의무를 얹는 기존의 명절 문화 대신, 함께 어울려 즐길 만한 것들을 발굴해보는 것은 어떨까. 체험할 만한 것들, 눈 여겨 볼만한 전시들, 혹은 명절날 가기 좋은 국내 여행지, 명절 가족 패션 제안, 가족 힐링 프로그램, 레크리에이션 등 새로운 명절 문화들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바쁜 현대인에게 명절 휴일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이 아까운 시간에 서로에게 상처만을 안기고 감정의 묵은 앙금들을 찔러대는 문화는 너무나 낭비적이다. 며느리도 동등한 인간으로서 명절을 마음껏 즐길 권리가 있다. 축제로서의 명절이 주는 치유의 힘을 되살려야한다. 음식을 나눠먹는 것만큼이나 기쁨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도 명절의 중요한 요소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명절 문화에서 탈피해 명절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해보자. 추석날 가장 큰 원무를 그렸다는 강강술래처럼, 모두가 축제 속에서 함께 어울렸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며느리들의 얼굴에도 보름달만큼이나 큰 함박웃음이 깃들 수 있기를 바란다.

며느리도 명절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