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중견 국가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기고] 한미동맹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코리아 프로세스(Korea Process) 모색
2017.08.03 17:34:06
1. 한국은 지금
20세기 말 데탕트 등장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사회주의에서 이탈하면서 탈이념 실리추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이나 서구보다 더 천민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중국-러시아는 이념의 시대에 만들어진 판도를 중심으로 세력권을 형성하여 대결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념 중심으로 대결하고 있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분단체제의 국가보안법 등 동원-탄압구조 위에서 만들어진 압축성장 국가인 한국은 19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성공적인 산업화의 외피를 쓰고 탈냉전시대의 세계화의 주목의 대상이 됐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한 모범적인 개발도상국가로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로 진입하는 후발개도국과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 북핵사태의 장기화와 위협증대 그리고 점증하는 미국-중국 대결시대의 일상화를 맞으면서 한국은 안보-경제가 동반 질곡에 빠지면서 상시적인 국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양극화 청년실업 대량실업 저출산·노령화 수출 감소 저 성장 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분단-전쟁-장기적 정전시대 동안에 압도적인 미국의 안보개입 덕분에 두텁게 형성된 기득권층이 미국의 영향력 퇴조에 과도한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내수의 부진, 기업투자의 감소 형태로 그들의 불안감이 표출되고 있다.
국내외 정책 모든 부문에서 실패를 거듭한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체제는 끝났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가를 파탄상태에 빠뜨리고 탄핵을 당해 퇴출됐다. 시민들의 촛불평화집회로 대통령 보궐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성취됐다.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한반도에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 거론되고 북한의 보복대응이 선전되는 등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기조 발제를 발표하기 직전인 7월 28일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긴장이 고조되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은 적국이 아니며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의 수뇌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국의 지도부에게 우리의 운명이 맡겨져 있다는 사실에 한국 국민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한국 국민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의 분단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없이는 한국 경제와 안보를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 평화공존이 한국 경제와 안보뿐 아니라, 한국 자체의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이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늦게 가더라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전망 부재의 위기감에 빠진 보수기득권층이 위기극복에 동참하는 과제가 절박하다.
2. 한반도 위기 초긴급 현안은 북핵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에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 그리고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실험은 북한의 핵전력 자산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유엔안보리의 최고 수준의 강력한 제재안이 이행되었고 한-미군의 역대 최대 규모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미국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북핵방치정책을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해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국에서도 남북관계를 대결 일변도로 몰아넣은 박근혜 정권이 퇴출되고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을 공약으로 제시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이 맞으면 대화로 신속히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단속적인 미사일 실험이 이어졌지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6.15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경우 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음도 불구하고 6.15 기념사가 나온 하루 뒤에 미 국무성 대변인은 앙국 대통령의 발언을 무시하듯이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한 어떤 대화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은 새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북핵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정책을 정리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말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의견 조정이 있고 난 다음에 드러나겠지만,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제시한 북핵동결과 한-미 합동 군사연습의 중단이라는 교환 1단계, 그리고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의 맞바꾸기라는 2단계를 추진하는 것인데 이것은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상당한 기간의 진통을 겪으면서 진행될 것이다.
북핵 폐기와 평화 협정의 맞바꾸기 협상에는 중대한 장애가 기다리고 있다. 평화체제 수립의 전제는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있으면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된다.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기득권의 큰 부분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유엔군사령부의 후방기지인 주일 미군기지들도 존립 근거를 잃는다. 동북아시아 전반에 대한 군사적 장악이 흔들린다. 미군 감축과 철수, 기지폐쇄는 미 군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칠 문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정 체결은 먼저 북핵 동결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빅딜의 첫 단계를 마무리 지은 다음 본격적으로 다뤄질 사안이므로 오랜 진통을 겪으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제재와 봉쇄에 의존한 강경정책은 북핵의 고도화를 초래한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었다. 이제 한국과 미국은 '선 핵 폐기론'으로부터 '선 고도화방지 후 폐기론'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북핵의 고도화를 저지하는 현실적 대안이 비핵화보다는 핵동결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3. 이제 코리아 프로세스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조건, 한반도 평화에 접근하는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오바마-아베-박근혜 3각 동맹이 북핵을 무시하고 방치하면서 제재와 봉쇄에 안주하고 있는 동안에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미본토를 향하여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이 비현실적이며 차라리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 혹은 중지하면서 북핵-미사일 실험을 중지 혹은 동결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정책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핵 해결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 문제는 북한의 생존과 직결되는 현안이지 한국에게는 불필요한 희생만 강제하는 '화근(禍根)'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은 '북핵 너머(Beyond NK Nuke)'의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의 당사국이자 한국전쟁의 4대 교전당사국인 한국이 논의와 조율의 결과물을 상위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통보받는 처지로 격하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한국이 대립과 위기의 강경국면을 주도하도록 역할이 주어졌다가 대화-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경우 '강경한 말썽꾸러기'로 전락하는 처지가 반복되어왔다. 대화-협상 국면이 한국의 국익에 불리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단 대결의 타성에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싸움꾼 역할에만 자족하는데 그 까닭이 있었다.
북핵 폐기와 평화 협정을 대타협함에 있어서 한반도에 화해와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는 각오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대결시대의 해법으로 페리 프로세스가 있었다면 화해-공존 시대의 해법으로 새로운 코리아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다. 코리아 프로세스의 핵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비핵화를 성취해가되 평화협정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상 앞으로 북미대화, 6자회담이 복원될 경우, 한국은 지난 2005년 9월 9.19합의를 도출할 때처럼 적극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비해 현재 한국의 재래전력이 월등하게 우세하며 북한의 비핵화의 진전은 일본의 군사 대국화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다. 주한 미군의 입지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의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와 같은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변화를 예상하면서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주한미군의 지위와 전력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지나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상대적 전력 강화를 예상하면서 한반도 미래에 적극적 구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이 취할 구체적 코리아 프로세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 남북대화를 복원하다, △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신속히 성사시킨다, △ 남북이산가족의 상봉, 서신교환을 재개 확대한다, △ 6.15, 10.4 남북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도록 한다, △이미 합의한 남북철도와 도로 연결사업을 신속히 이행한다, △ 한국 대기업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북한 산업화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 남북수교를 위해 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를 설치한다, △ 미국과 일본의 대북관계정상화를 한국은 적극 지지한다, △ 북한-러시아 당국과 시베리아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SR)의 연결 사업을 논의하는 한편 사할린 가스관 한국 연결을 논의한다, △ 중국-러시아의 산둥 가스관의 한국 연결을 논의한다, △ 한국 정부는 북한과 동부 시베리아의 개발에 국제컨소시엄 조성을 계획한다는 내용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남북수교를 중견 국가 한국이 주도해야
이상의 코리아 프로세스를 통해 한국은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협력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대결로부터 호해-공존으로, 공동번영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국가적 개발에 활력을 물어넣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을 것이며 북한이 포위된 농성 국가로부터 동아시아의 개방된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전환은 북한 자신뿐 아니라 한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전 세계에도 선 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이자 중견국가인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
코리아 프로세스는 또한 한계와 위기에 부닥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고 일본의 국가 동력을 다시 평화 쪽으로 돌려세우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코리아 프로세스가 한반도를 갈등과 대결의 중심으로부터 동아시아 평화번영의 중심으로 진화시키는 과정이 된다는 것이다.
위의 코리아 프로세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책선택은 중장기 전략 중에서 제1항인 "남북수교를 위해 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에는 다른 어느 제안보다 큰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 제안은 남북이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반드시 한 정부 아래 포괄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서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평화를 지키면서 안정과 번영을 누리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일제 식민지배 아래서 국권을 회복하려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지난 70여 년 동안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국가를 세우려던 통일운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남북수교는 통일을 전제한 채 추진하려할 경우 서로 각 정부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려함으로써 수교가 성취되기 전에 분쟁에 휩싸여 한 치의 전진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교류협력 평화공존을 추구하되 평화통일마저 거론하지 않는 신중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교류협력 평화공존이 평화통일로 가는 장기간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이해가 양측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해 우선 남북한이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미국과 일본이 지난 1990년, 92년에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던 것처럼 북한과 수교하도록 권고하자는 것이다.
위와 같은 코리아 프로세스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의 가스관 한국 연결 계획에 대응이라도 하듯이 미국은 최근 한국에 대한 미국산 셰일가스 대량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에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군사적 존재로서 긴장과 대결을 조성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호혜적 이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례일 수 있다. 시베리아와 한반도 철도 연결사업, 북한에 대한 투자와 시장에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의 참여를 컨소시엄 형식으로 보장하는 것도 한국이 북한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면 얼마든지 가능할 일이다.위와 같은 코리아 프로세스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와 동아시아 평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시해보는 시안(試案)이다.
5. 남북한의 화해는 한반도 평화, 동아시아평화공동체의 마중물
지난 2014년부터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공동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갈등을 화해와 공존으로 전환시키자는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들은 양국의 구체적인 현안에 공동협력하기로 했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은 일본 시민사회의 일본평화헌법 9조 수호운동에 연대하기 위하여 평화헌법 9조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천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한국 시민평화운동이 전개하는 평화협정 추진 운동에 동조했고 미국과 일본의 한반도 전쟁 위기 조성에 반대했다. 양국의 반 원전 운동 단체들은 원전 건설에 반대하고 원전 안전 대책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남북수교와 평화공존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을 '공동의 동아시아 집'으로 이끄는 위대한 과업이다. 큰 나라들이 아닌, 작은 나라들이 화해 공존함으로써 동아시아 구성원 모두를 위한 평화로 가는 길을 이뤄내는 국제 정치의 역설을 한반도에서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하노이 17차세계한민족포럼'에서 발표된 '한반도 평화통일로 가는 코리아 프로세스-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하여'를 대폭 수정하고 업데이트한 글입니다.
20세기 말 데탕트 등장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사회주의에서 이탈하면서 탈이념 실리추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이나 서구보다 더 천민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중국-러시아는 이념의 시대에 만들어진 판도를 중심으로 세력권을 형성하여 대결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념 중심으로 대결하고 있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분단체제의 국가보안법 등 동원-탄압구조 위에서 만들어진 압축성장 국가인 한국은 19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성공적인 산업화의 외피를 쓰고 탈냉전시대의 세계화의 주목의 대상이 됐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한 모범적인 개발도상국가로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로 진입하는 후발개도국과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 북핵사태의 장기화와 위협증대 그리고 점증하는 미국-중국 대결시대의 일상화를 맞으면서 한국은 안보-경제가 동반 질곡에 빠지면서 상시적인 국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양극화 청년실업 대량실업 저출산·노령화 수출 감소 저 성장 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분단-전쟁-장기적 정전시대 동안에 압도적인 미국의 안보개입 덕분에 두텁게 형성된 기득권층이 미국의 영향력 퇴조에 과도한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내수의 부진, 기업투자의 감소 형태로 그들의 불안감이 표출되고 있다.
국내외 정책 모든 부문에서 실패를 거듭한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체제는 끝났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가를 파탄상태에 빠뜨리고 탄핵을 당해 퇴출됐다. 시민들의 촛불평화집회로 대통령 보궐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성취됐다.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한반도에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 거론되고 북한의 보복대응이 선전되는 등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기조 발제를 발표하기 직전인 7월 28일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긴장이 고조되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은 적국이 아니며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의 수뇌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국의 지도부에게 우리의 운명이 맡겨져 있다는 사실에 한국 국민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한국 국민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의 분단구조에 근본적 변화가 없이는 한국 경제와 안보를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 평화공존이 한국 경제와 안보뿐 아니라, 한국 자체의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이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늦게 가더라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전망 부재의 위기감에 빠진 보수기득권층이 위기극복에 동참하는 과제가 절박하다.
2. 한반도 위기 초긴급 현안은 북핵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에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 그리고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실험은 북한의 핵전력 자산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유엔안보리의 최고 수준의 강력한 제재안이 이행되었고 한-미군의 역대 최대 규모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미국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북핵방치정책을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해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국에서도 남북관계를 대결 일변도로 몰아넣은 박근혜 정권이 퇴출되고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을 공약으로 제시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이 맞으면 대화로 신속히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천명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단속적인 미사일 실험이 이어졌지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6.15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경우 조건 없이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음도 불구하고 6.15 기념사가 나온 하루 뒤에 미 국무성 대변인은 앙국 대통령의 발언을 무시하듯이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한 어떤 대화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은 새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북핵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정책을 정리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말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의견 조정이 있고 난 다음에 드러나겠지만,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제시한 북핵동결과 한-미 합동 군사연습의 중단이라는 교환 1단계, 그리고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의 맞바꾸기라는 2단계를 추진하는 것인데 이것은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상당한 기간의 진통을 겪으면서 진행될 것이다.
북핵 폐기와 평화 협정의 맞바꾸기 협상에는 중대한 장애가 기다리고 있다. 평화체제 수립의 전제는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있으면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된다.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기득권의 큰 부분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유엔군사령부의 후방기지인 주일 미군기지들도 존립 근거를 잃는다. 동북아시아 전반에 대한 군사적 장악이 흔들린다. 미군 감축과 철수, 기지폐쇄는 미 군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칠 문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정 체결은 먼저 북핵 동결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빅딜의 첫 단계를 마무리 지은 다음 본격적으로 다뤄질 사안이므로 오랜 진통을 겪으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제재와 봉쇄에 의존한 강경정책은 북핵의 고도화를 초래한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었다. 이제 한국과 미국은 '선 핵 폐기론'으로부터 '선 고도화방지 후 폐기론'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북핵의 고도화를 저지하는 현실적 대안이 비핵화보다는 핵동결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3. 이제 코리아 프로세스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조건, 한반도 평화에 접근하는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오바마-아베-박근혜 3각 동맹이 북핵을 무시하고 방치하면서 제재와 봉쇄에 안주하고 있는 동안에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미본토를 향하여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이 비현실적이며 차라리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 혹은 중지하면서 북핵-미사일 실험을 중지 혹은 동결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정책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핵 해결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 문제는 북한의 생존과 직결되는 현안이지 한국에게는 불필요한 희생만 강제하는 '화근(禍根)'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은 '북핵 너머(Beyond NK Nuke)'의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의 당사국이자 한국전쟁의 4대 교전당사국인 한국이 논의와 조율의 결과물을 상위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통보받는 처지로 격하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한국이 대립과 위기의 강경국면을 주도하도록 역할이 주어졌다가 대화-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경우 '강경한 말썽꾸러기'로 전락하는 처지가 반복되어왔다. 대화-협상 국면이 한국의 국익에 불리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단 대결의 타성에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싸움꾼 역할에만 자족하는데 그 까닭이 있었다.
북핵 폐기와 평화 협정을 대타협함에 있어서 한반도에 화해와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는 각오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대결시대의 해법으로 페리 프로세스가 있었다면 화해-공존 시대의 해법으로 새로운 코리아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다. 코리아 프로세스의 핵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비핵화를 성취해가되 평화협정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상 앞으로 북미대화, 6자회담이 복원될 경우, 한국은 지난 2005년 9월 9.19합의를 도출할 때처럼 적극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비해 현재 한국의 재래전력이 월등하게 우세하며 북한의 비핵화의 진전은 일본의 군사 대국화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다. 주한 미군의 입지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의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와 같은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변화를 예상하면서 평화협정이 논의되고 주한미군의 지위와 전력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지나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상대적 전력 강화를 예상하면서 한반도 미래에 적극적 구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이 취할 구체적 코리아 프로세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 남북대화를 복원하다, △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신속히 성사시킨다, △ 남북이산가족의 상봉, 서신교환을 재개 확대한다, △ 6.15, 10.4 남북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도록 한다, △이미 합의한 남북철도와 도로 연결사업을 신속히 이행한다, △ 한국 대기업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북한 산업화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 남북수교를 위해 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를 설치한다, △ 미국과 일본의 대북관계정상화를 한국은 적극 지지한다, △ 북한-러시아 당국과 시베리아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SR)의 연결 사업을 논의하는 한편 사할린 가스관 한국 연결을 논의한다, △ 중국-러시아의 산둥 가스관의 한국 연결을 논의한다, △ 한국 정부는 북한과 동부 시베리아의 개발에 국제컨소시엄 조성을 계획한다는 내용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남북수교를 중견 국가 한국이 주도해야
이상의 코리아 프로세스를 통해 한국은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협력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대결로부터 호해-공존으로, 공동번영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국가적 개발에 활력을 물어넣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을 것이며 북한이 포위된 농성 국가로부터 동아시아의 개방된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전환은 북한 자신뿐 아니라 한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전 세계에도 선 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이자 중견국가인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
코리아 프로세스는 또한 한계와 위기에 부닥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고 일본의 국가 동력을 다시 평화 쪽으로 돌려세우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코리아 프로세스가 한반도를 갈등과 대결의 중심으로부터 동아시아 평화번영의 중심으로 진화시키는 과정이 된다는 것이다.
위의 코리아 프로세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책선택은 중장기 전략 중에서 제1항인 "남북수교를 위해 서울과 평양에 남북대표부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 방안에는 다른 어느 제안보다 큰 논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 제안은 남북이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반드시 한 정부 아래 포괄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서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평화를 지키면서 안정과 번영을 누리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일제 식민지배 아래서 국권을 회복하려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지난 70여 년 동안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국가를 세우려던 통일운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남북수교는 통일을 전제한 채 추진하려할 경우 서로 각 정부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려함으로써 수교가 성취되기 전에 분쟁에 휩싸여 한 치의 전진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교류협력 평화공존을 추구하되 평화통일마저 거론하지 않는 신중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교류협력 평화공존이 평화통일로 가는 장기간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이해가 양측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한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해 우선 남북한이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미국과 일본이 지난 1990년, 92년에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던 것처럼 북한과 수교하도록 권고하자는 것이다.
위와 같은 코리아 프로세스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의 가스관 한국 연결 계획에 대응이라도 하듯이 미국은 최근 한국에 대한 미국산 셰일가스 대량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에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군사적 존재로서 긴장과 대결을 조성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호혜적 이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례일 수 있다. 시베리아와 한반도 철도 연결사업, 북한에 대한 투자와 시장에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의 참여를 컨소시엄 형식으로 보장하는 것도 한국이 북한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면 얼마든지 가능할 일이다.위와 같은 코리아 프로세스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와 동아시아 평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시해보는 시안(試案)이다.
5. 남북한의 화해는 한반도 평화, 동아시아평화공동체의 마중물
지난 2014년부터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공동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갈등을 화해와 공존으로 전환시키자는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들은 양국의 구체적인 현안에 공동협력하기로 했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은 일본 시민사회의 일본평화헌법 9조 수호운동에 연대하기 위하여 평화헌법 9조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천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한국 시민평화운동이 전개하는 평화협정 추진 운동에 동조했고 미국과 일본의 한반도 전쟁 위기 조성에 반대했다. 양국의 반 원전 운동 단체들은 원전 건설에 반대하고 원전 안전 대책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남북수교와 평화공존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평화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을 '공동의 동아시아 집'으로 이끄는 위대한 과업이다. 큰 나라들이 아닌, 작은 나라들이 화해 공존함으로써 동아시아 구성원 모두를 위한 평화로 가는 길을 이뤄내는 국제 정치의 역설을 한반도에서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하노이 17차세계한민족포럼'에서 발표된 '한반도 평화통일로 가는 코리아 프로세스-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하여'를 대폭 수정하고 업데이트한 글입니다.
문재인 정부, 진정한 '협상가'가 되려면?
[기고] 때론 영리한 '협박'도 필요하다
2017.08.04 18:00:54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가?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대북전략이 위축될 거라는 전망들이 분분하다.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우려 때문에 섣불리 한국이나 일본에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ICBM 능력을 더욱 정교화해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극대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연 북한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북한의 ICBM 실전배치로 미국은 강경한 대북 정책을 자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북한의 의도대로 게임의 구조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ICBM을 실전배치해도 패권국가인 미국이 '불량국가' 북한에 머리를 조아릴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ICBM 실전배치와 핵도미노
물론, 미국은 북핵에 대한 대응 방식을 바꿀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희망하는대로의 백기투항이 아니라 '대북 적대시' 정책의 세련화가 될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 한국과 일본의 대북 견제력을 더욱 활용할 것이다. 한일 양국에 핵억지력을 '아웃소싱'할 수도 있다.
남한내 전술핵 재배치는 당연시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일 양국에, 아니면 최소한 남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무장 용인은 당연히 국제사회를 의식해 암묵적 형태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모델이다.
중국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사드와 달리 한국의 핵무장에 딱히 반발할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핵폭탄에 사드처럼 X밴드 레이더가 달려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내 사드 배치를 전격적으로 철회하기라도 한다면 중국은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동북아 핵 도미노는 결국 북한의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대북제재 역시 계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핵을 둘러싼 게임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은 핵을 가졌지만 그것은 카드로서의 효용을 상실했다. 대북 제재는 계속된다. 북한은 서서히 말라 죽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루저'가 되는 것이다.
북한은 연금술사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국제제재가 지속되고 자본의 유입이 끊긴 상태에서 무슨 수로 경제건설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장마당 경제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김정은 정권이 이런 상황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알고도 그런다면 그것은 결국 핵개발의 목적이 '국내용'임을 실토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든 뭐든 상관없다. 핵무기만 가지고 있으면 정권의 힘을 과시해 인민들을 동원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정말 이렇다면 북핵문제는 정권이 붕괴되지 않는 한 해결 될 수 없다.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극구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북핵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김정은 정권이 정말 핵카드로 대미 관계 개선에 나설 요량이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벗어나 핵을 실전배치하는 순간 오히려 북한의 몸값은 급전직하한다. 북한은 그나마 지금껏 향유해 왔던 '약자의 힘'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문재인 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취임후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해 사드의 추가배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기도 하였다. 급작스러운 정권 교체라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단 기존의 전략 자산인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겠다는 전술적 의지로 보인다. 인수위도 없이 시작된 외교 업무와 취임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보다 확실히 해야할 지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에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한국의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그 어떠한 전쟁도 불가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시켜야 한다. '한반도에서 수천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트럼프의 비상식적인 발언에 숨죽이고 있으면 안 된다.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보다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부조리에 항거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수천 수만의 시민들이 탄생시킨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중 한반도 전쟁을 원하는 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위선'이라도 어쨌든 자유민주주의를 최상의 가치로 간주하는 미국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이유다. 말끝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외치는 중국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무엇이 두려운가?
둘째, 역시 미중관계를 정확히 독해해야 한다. 싫든 좋든 국제정치가 강대국들의 놀음이라면, 미중관계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인 구조이다. 현재 많은 논자들은 미중관계를 패권국과 부상국의 갈등구조로 채색하려 한다. 그러나 갈등지향적 미중관계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수면 밑 미중관계는 훨씬 안정적이다.
핵무기로 인해 패권 전쟁이 더 이상 불가능하고, 아울러 미중 양국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핵심 구성국이라는 사실은 미중관계를 일종의 전지구적 '지배연합'으로 만들어 왔다. 2016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한국의 1년 예산보다도 많은 400조에 달한다. 중국은 그렇게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채에 투자한다. 2017년 중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무려 1조1000억 달러에 달한다. 1천조 달러가 넘는다.
당연히 미중 양국은 이러한 질서의 근본적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현 국제질서의 안정적 관리에 강력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테러, 환경, 국제범죄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국과의 비용분담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미 대통령 클린턴의 20여년 전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한반도 문제는 바로 그러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대상이다. 한반도 분쟁은 곧 미중 양국을 연루시켜 극단적으로 인류 종말의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끼리 싸울 합리적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수면 아래 숨겨져 있는 미중관계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안정'을 전략 자산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한반도 안정의 주체임을 미중 양국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극단적으로 한반도 안정을 뒤 흔들 수 있다는 제스처로 미중 양국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핵개발 시그널도 그 한가지다. 사드배치는 한국을 미중 양국의 탁구공 신세로 만들었지만, 남한판 벼랑끝 전술은 한국을 균형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 한국이 게임체인저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전술은 매우 '세련되게' 수행되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핵의 실전배치가 초래할 후과를 인지시켜야 한다. 상술한 바와 같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하면 필연적으로 역내 핵도미노를 초래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북한은 게임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 따라서 협상으로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는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뿐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협상가(negotiator)는 누구인가? 협상가는 단순히 시류에 편승하는 자가 아니다. 게임의 당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정확히 읽고, 그들이 현재의 게임구조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중재해 줄 수 있는 자이다. 이를 위해 때론 영리한 '협박'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진정한 협상가가 되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이제 당당하게 그 배포를 드러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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