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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올리면 나라 망한다? 그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 것들

일취월장7 2017. 7. 20. 11:17

천원 올리면 나라 망한다? 그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 것들

[기자의 눈] 최저임금 인상 우려를 우려한다
2017.07.17 16:49:47

지난 15일 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확정됐다. 곧바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계의 극한 반발이 보수 언론을 보도됐다. 재계가 후폭풍을 우려한다는 이야기와 고용 위축을 부르리라는 전망, 자영업자 삶이 더 힘들어지리라는 주장이 포털을 도배했다. 타깃은 명확히 현 정부다.  직관적으로 이들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고용 취약계층이 피해를 입을 공산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가 고용 안전망 확충에 그만큼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할 까닭이 있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자영업자의 우려도 나쁜 의도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적자에 시달려 빚의 늪에 빠지는 와중에 16%가 넘는 최저임금 인상안은 실질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일종의 마타도어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따져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선, 최저임금은 노사정이 합심해 결정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안의 사회적 의미 중 하나는 오랜만에 3자 합의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정부가 결정한 인상액이 아니다. 굳이 비판의 화살이 향해야 한다면, 이는 노사정 위원 전원에게 향해야 한다.  

역으로 정부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을 지원하는 사실상의 공적자금 투입 방안을 곧바로 냈다. 최저임금 인상안이 확정된 바로 다음날인 지난 16일,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4조 원대 이상 규모의 재정 지원안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간 공적자금이 대기업에만 투입된다고 비판한 주체가 바로 중소기업중앙회다. 그간 자영업자 측은 여러 통로를 통해 소상공인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부당한 상가임대차 제도 등을 개선하고 프랜차이즈 업주의 갑질을 막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번 정부 대책에 이 같은 요구가 적잖이 담겼다. 사업주들은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순간이다. 사용자 측의 요구는 최저임금 인상 수준 비판이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 더 많은 재정 지원 혹은 더 강한 자영업자 보호 대책 요청으로 이어지는 게 맞다.  

정부의 지원액 덕분에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액 1060원 중 업주가 자비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491원이다. 하루 8시간 기준 3928원, 한 달(월 209시간 기준) 10만2619원 수준이다. 최저임금 노동자 1인에게 사업주가 이만큼 더 부담하면,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이전보다 22만1540원을 더 번 노동자가 소비 시장에 접근한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수는 약 462만 명이다. 곧바로 내년부터 효과를 보는 소비 가능액 증가분이 1조235억 원에 달한다.  

이만큼 늘어난 소비 여력이 결과적으로 다시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려준다.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더 높다. 당장 소비해야 할 자금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소득을 보전하면 고소득층 감세보다 더 큰 소비 진작 효과를 얻는다는 결과가 나온 이유다. 경제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간 특정 기업을 살리는데 투입된 공적자금과 이번 재정 지원 방안을 따져보면 형평성 차원에서도 이치에 어긋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997년 이후 올해 1분기까지 부실 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는 총 168조7000억 원에 달한다.  

외환위기 당시 부실화한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에 3조5000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됐고, 파산위기에 내몰린 서울보증보험에는 10조2000억 원이 들어갔다. 대우조선해양에만 두 차례에 걸쳐 7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금호타이어에 9조 원가량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공적자금은 자칫 경제적 형평성을 해칠 수 있는데다, 기업이 사실상 먹고 튀는 일도 일어나는 위험을 가진 자금이라는 점에서 투입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1997년 이후 투입된 공적자금 중 회수된 금액은 114조5000억 원이다. 아직 정부는 50조 원이 넘는 돈을 되찾지 못했다. 일부 금융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경우, 사실상 회수 불가능 판정을 받았다. 

이번 정부 지원안과 최저임금 인상안은 공적자금보다 더 깨끗한 집행 과정을 거쳐 더 큰 효과를 얻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결코 사용자 측에도 나쁜 일이 아니다.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됐다.ⓒ연합뉴스



현직 시의원이 본 최저임금, 그리고 생활임금

[복지국가SOCIETY] 최저임금 인상, 생활임금도 올려야
2017.07.18 02:42:05

지난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할 때쯤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이언주 국회의원이 최근 정치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지난 6월 30일 민주노총 파업에 대해 "미친놈들이야, 완전히. 이렇게 계속 가면 우리나라는 공무원과 공공 부문 노조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고 발언했다. 또한 이언주 의원은 급식 조리 종사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되어야 하는 거냐?"라고 말했다.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이언주 의원이 머리를 숙였지만, 노동자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방정부의 생활임금 정치가 중요한 이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는 지방의 생활 정치가인 나로서는 이언주 의원의 이런 인식과 발언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저런 인사가 국회의원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는지, 개탄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진 국회의원들과 이런 의원들이 소속된 여전히 낙후된 정당 정치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 사회적 약자의 지위 향상, 나아가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정의로운 사회 실현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나는 여주시의회 의원으로서 생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복지는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지금보다 더 상향평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그렇게 하려면 많이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더 내려놓고 세금도 누진적으로 더 부담하고, 덜 가진 사람들이 좀 더 가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 두 계층 사이의 간극이 좁혀진다.  

그래서 나는 여주시의회 의원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집행기관과의 협의를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왔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주시는 2016년 초 의회에서 생활임금 조례가 통과되자마자 즉시 생활임금 제도를 실현시키기 위한 '생활임금위원회'를 구성했고, 나는 심의위원으로 참가하여 여주시의 무기 계약직 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의 생활임금을 높이기 위한 협상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6년 최저임금이 6030원일 때 생활임금을 6470원으로 결정했고, 2017년 최저임금이 6470원일 때 생활임금을 7250원으로 결정해 집행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도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급격한 인상을 반대하는 사용자 측의 대립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에 목표를 두고 있는 정부의 전향적 자세가 결국에는 최저임금의 상향 조정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여주시의 생활임금액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도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16.4% 올린 7530원으로 확정했다.) 

지금까지는 경기도가 앞장서서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할 것을 각 지자체에 권고하고 독려했다. 많은 지자체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여주시를 비롯한 상당수의 지자체는 복지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생활임금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가운데 촛불시민 혁명에 의해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노동자들이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주 40시간 기준의 월 소득 209만 원으로 1인 가구 노동자의 표준생계비에 근접한 수준이다.

지난 5월 여주시의회 정례회 시정 질문에서 나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이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에 비례해서 생활임금도 상향 조정됨이 타당하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여주시는 "2018년도 생활임금을 경기도의 모든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화답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확고한 배려의 의지를 확인해 주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위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것은 '최저조건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더 나은 생활임금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되 국가에서 정한 최저선 이하로 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과 고용주들은 마치 최저임금만 보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 기업들의 '반 노동자적 사고'가 안타까울 뿐이다.  

노동에 대한 저열한 인식 극복해야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여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추진을 분명하게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과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대한민국 1700만 명의 임금 노동자 중 절반에 해당하는 870만 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그 중에서 44.1%인 380만 명의 노동자가 최저임금 언저리의 저임금에 혹사당함으로써 차별과 착취가 만연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설사 비정규직이 존재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고, 그래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세상 모든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나는 11개월짜리 기간제 노동자들 중 상시적 고용이 필요한 직종에 한해 '무기 계약직'으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여주시도 이에 호응하여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 계약직 노동자로 전환하고 있으며, 2017년에도 180여 명의 기간제 노동자들 중 상당수를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 중이다.

세계 경제 교역 규모로 살펴본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은 세계 10위권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육박하며, 1년의 예산총액은 400조 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목전에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을 비롯한 복지 투자가 부실해서 우리 국민의 삶의 질 수준은 선진국에 진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는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을 천박하게 여기고, 노동하는 사람들을 경원시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이런 저열한 사회적 의식 수준으로는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 특히, 우리 정부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의무를 이행하기보다는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을 강조한다. 한심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이제 '고용 없는 성장'의 단계에 진입해 있고, 하루에도 어쩌면 수십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언제 또 일자리를 잃을지로 밤잠을 설치는 기간제 또는 시간제 등의 계약직 노동자들의 삶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작금의 시대적 과제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열망과 지혜를 모아야  

그런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정치사회적 과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일부 '상대적 상실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기간제 노동자와 시간제 노동자를 무기 계약직 노동자로 전환시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동의한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는 데 대해서는 일단 고개를 가로젓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서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건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대해 "그러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한 것은 어쩌고!"라며 상대적 상실감을 공공연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같은 수준의 일을 한다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다른 일을 한다면 다른 일들의 직무상 성격에 따라 달리 대우하면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임금과 복지의 격차여선 안 된다. 이 둘은 단지 직업의 안정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시민들 각자의 개인적 필요에 따라 같은 일이라도 시간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어떤 차별도 없다. 제도의 변혁과 함께 인식의 변화도 필요한 것이다.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차이는 있어도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패자부활전이 언제나 가능하도록 사회안전망이 잘 제도화된 세상을 건설하는 데 '감당할 수 없는 재정'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려는 노력에 대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왜곡된 근거에 기초한 과장된 재정난을 이유로 정의로운 사회로 거듭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들의 일방적 이윤 극대화로 인해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이 설 자리를 빼앗겼던 근본 원인을 치유하는 공정한 거래 질서의 확립이 실현돼야 한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불안 심리를 해소시키려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수십 년 간의 노력으로 오늘의 복지국가를 이룩한 스웨덴은 먼저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했고,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에 의존하는 경쟁력 떨어지는 기업들을 일회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강한 경제의 토대를 다져간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경쟁 지상주의'를 넘어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모두의 평화롭고 윤택한 삶을 위해 복지의 상향평준화가 필요한 것처럼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넘어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람 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열망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재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여주시의원입니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채용문화, 직무 중심으로 바뀌어야)

(팟캐스트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는 국민라디오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함께 만드는 정책 시사 방송입니다.)     


'헬조선' 유지하자는 수구언론의 '최저임금론'
[다른백년 칼럼] 최저 임금 – 법칙인가 ? 조건인가 ?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다는 것은 자연현상(現狀)이고, 이러한 물의 성질들을 소상히 이해하는 것을 수리(水理)라고 하고, 성질을 잘 터득하여 우리 생활에 활용하는 것을 치수(治水)라고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최저임금 액수와 인상률에 대하여 사회적 논쟁과 불협화음이 정도를 넘고 있다.

대부분의 논쟁은 매우 지엽적이고 한정된 예를 일반적인 것으로 과장하고, 자신만의 위치를 고집하는 좁은 시각에서 상황을 해석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말 악의적인 것은 수구적 지식인과 언론이 중심이 되어 최저임금이라는 주제를 을과 을, 즉 저임노동자 와 자영자중·소상공인간의 이해충돌로 몰아가면서 갈등과 불안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최저 임금의 논쟁은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고백적 접근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개혁적 관점과 이를 과제적 상황으로 설정하면서 우리사회를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노력의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시급 7530원, 지난해 대비 16.4% 인상에 대한 결정은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문재인 정권에 참신한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고, 다중다층의 이해관계 속에 한국도 이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대의 쾌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을 비판하는 핵심적인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의 현실에서 시급 일 만원 수준의 최저임금은 지나치게 과도하여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산업활동을 위축시키며 경제활동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가능성 매우 높으며, 최저임금 이하의 저소득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중소 상공업과 자영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고용을 축소시키거나 폐업을 하면서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증가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지역적 업종별 편차가 큰 현실적 조건에서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위법자를 양산시키는 매우 비현실적 조치이며, 정상적 노동조건을 적용할 수 없는 노령층과 장애우 등에게는 오히려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는 역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위의 주장은 한마디로 헬조선 같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무리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적당히 대처해 나가자는 것(status quo)이 요지이다. 엘버트 허쉬만은 <The rhetoric of Reaction>(우리말 제목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입장을 허구적이거나 과장된 '역효과와 무용론과 위험이론'으로 포장한 수구적 논리라고 명쾌히 혁파한 바 있다. 유럽의 18세기 역사를 들여다 보면 당시에 보편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우 불순하고 위험한 인물로 취급한 황당한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우선 최저임금의 인상이 과다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전개해 본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단순히 최저임금 액수만을 떼어놓고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더불어 사회이전 소득과 공공서비스 수준 즉 사회안전망의 질적 수준이 고려된 종합된 내용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당연히 소속사회에서 인간적인 삶이 지속가능한 필요조건인 생활비용에 대응하여 설정되어야 하며, 생활비용은 소속사회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의 수준과 질적 내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의 경우 2016년 현재 GDP의 9~10% 수준이 사회안전망과 공적 서비스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으며 이전소득효과는 3~4% 수준에 불과한 반면에 OECD 평균으로 보면 GDP의 22~25% 수준이 공적 서비스비용으로 지출되면서 사회이전소득 효과가 10%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국가의 복지기능 결핍으로 한국시민들의 가계비에서 차지하는 주거, 교육, 의료, 통신 등 비용이 상대적으로 과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 최저생계비 수준의 편차가 매우 큰 조건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외국의 예로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통계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2017년 현재 시점의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의 신속한 인상을 요청하는 것은 그 동안 발생한 국가의 실패에 대한 보상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수준은 소속사회의 복지정책과 공적 서비스의 수준과 상대적이며 반비례적인 함수관계를 지니게 된다고 할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으로 발생하는 최저임금의 앞에 붙는 인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다움 또는 존엄은 기업의 비용문제를 넘어서서 현대국가가 존재하는 제1의 근거이다. 만약 국가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하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고, 시민들 입장에서는 국가에 의무를 다하고 공적 강제력에 승복해야 할 근거가 사리지는 것이다. 국가의 선택권이 자유롭지 못한 조건에서 소속국가에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로서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이기도 하며, GDP 규모에서 10위권을 형성한 한국에서는 국가의무적 사항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정책의 2차적 영역인 복지영역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조밀하게 구성하여 미시적 가계소득에 실질적 증대효과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20년간 궤도를 이탈한 (rush to bottom) 한국의 현실에서는 단기적으로 산업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차적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최저수준의 임금을 신속히 인상하여 보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양질의 노동력이 공급 가능한 조건에서,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은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다. 적정한 임금인상은 기술개발과 산업혁신에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임금과 경쟁력과의 관계는 역 포물선적인 상관성을 가지며, 일정수준의 임금인상은 해당기업과 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포물선의 극점을 넘어서면 급격한 부담을 주면서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포물선의 극점을 넘어서는 위험은 최저 임금의 인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밥통인 공공기업과 재벌수준의 대기업의 과다한 임금 부문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기업을 파산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한국경제의 실력을 넘어선 과다한 임금분야에 있는 것이지, 기본생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산업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필자는 매우 중요한 제안을 던지고자 한다. '일시적인 최저임금 인상에서 오는 한국경제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평균임금의 두 배 이상 받는 영역의 임금을 5년간 동결 또는 억제하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구조는 수직하방적 삼각형 구조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주장하는 낙수효과와의 정반대방향으로 대부분 경제활동의 성과가 상층부를 향해서 이동하는 빨대의 경제이다. 양질의 노동력을 생활수준 이하의 최저임금으로 고용하면서 발생하는 잉여와 혜택을 상층부의 재벌기업과 공공기업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는 전문가 집단이 배타적으로 즐기고 있는 구조이다. 당연히 개혁정부로서 문재인 정권의 역할은 최저임금, 연대임금, 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이러한 수탈적 빨대구조를 혁파하고 선순환적 재분배구조로 이동하여 한국 산업과 경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저임금인상이 중소상공업과 자영분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최저임금인상을 포함한 종합적 소득주도 성장론의 배경에는 위축될 대로 위축된 내수시장 수요을 확장하여 내수에 기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정상화하고,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두 분야에 시장의 적정규모를 기반으로 기술혁신과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데 있다. GDI 50% 미만인 800조 원에도 못 미치는 내수시장규모를 OECD 평균인 65% 이상인 1000조 원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면, 다른 어떠한 경제적 수단과 정책보다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2~3년 이상 잠복기간이 필요할 터인데, 이 기간 동안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기와 자영업이 잘 버티어 내서, 잠복기간 이후 나타날 선순환적 성과와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여하히 필요한 과정과 절차를 적정하고 효과적으로 설계해 내야 하는 점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임금인상에 따른 제품과 서비스비용의 인상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저임금인상의 적용혜택을 받는 250~400백만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하여 5000만 시민들이 연대적으로 물가인상의 부담을 공유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경험을 할 것이고, 현재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이 이루어 질 것이다. 정부는 당연히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와 절차가 이루어지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 도입하고, 필요하면 강력한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 

자영업 분야에 대해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까지 2-3년정도의 일정기간에 한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정부분을 국가가 보조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EITC처럼 보상적 방식도 가능할 것이고, 고용에 대한 개별적 직접적 지원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10조 원 이상의 재정 투입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半)실업자 영역으로 머물고 있는 자영업 분양에 일대의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사회적 경제라는 주제를 결합시켜 지역단위의 협력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재구성하여야 한다고 본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매우 복합적인 내용이 서로 얽혀져 있다. 우선 대기업과의 거래 또는 시장에서의 경쟁 관계에서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거래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한국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양질의 인적 재무적 자원을 대기업과 공공영역에서 싹쓸이 해나는 조건에서 독자적으로 생존의 기반을 닦아나가야 하는 이중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역차별적으로 중소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공정거래의 환경을 조성해 주고, 중소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영역에 보호막을 쳐서 중소기업 영역에서 발생한 부가가치가 삼각형 빨대 구조로 상층부에게 일방적으로 흡수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잘 지적하였듯이 중소기업 영역에도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원과 함께 혁신과 변화를 위한 촉매적 자극이 매우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제고 없이는 한국경제에 미래는 없다. 환경적 일반적 지원제도와 정책은 강화할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개별적 직접적인 지원은 오히려 독약이 되고 정치적 부패의 요인을 제공한다. 부득이 하게 직접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면 사전적인 방식이 아닌 사후적으로 엄격하게 평가하여 집행되어야 한다. 경영을 잘못하거나 시대에 뒤쳐진 기업은 자연스레 퇴출되어야 한다. 썩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새살이 돋는 법이고, 장기적으로 최저임금을 지불할 수 없는 기업은 문을 닫는 것이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향후 2~3년간을 유예기간으로 설정하여 가능한 세제적 재무적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업종별 지역별 편차에 따라서 최저임금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일리가 있는 듯하나 동시에 함정일 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예컨대 미국과 같은 연방합중국 또는 개별적 국가주권이 여전히 유효한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현지 조건에 맞는 차별적 적용이 가능한 반면에, 헝가리 만한 조그만 국토 안에 도시와 농촌 그리고 지역단위의 편차가 심각한 한국현실에서 편차에 따른 차별적 적용을 허용하는 순간에 기존의 격차는 굳어지면서 오히려 더욱 벌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과 업종에 관계없이 혁신과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오히려 예외가 없는 적용을 통하여 격차를 점차적으로 좁혀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 보다 심층적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노동시장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분야에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시장의 조건이 작동되는 영역에만 최저임금이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 온다. 노령층과 장애우 같은 영역은 임금을 비용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노동시장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예컨대 65세이상의 노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는 인생 이모작이라는 새로운 경험과 사회적 봉사와 참여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노령층 생활비용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복지적 정책으로 풀어가야 할 사항이다. 장애우 문제 역시 주체적 참여적 사회활동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면서 이에 대한 보수는 정부의 지원정책과 연동하여 보상적 방식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순리적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최저임금정책을 노동시장이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법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일체의 예외가 없이 적용되도록 해야 하지만, 적용이 불가한 예외적 영역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명하게 합의되지 않은 예외가 묵인되는 정책과 법규는 더 이상 실행해야 할 의미가 없어진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임금이 비용이라는 사실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현상에 얽매여 규정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잘 이용하고 극복하여 자유의 확대라는 역사 이야기를 형성하여 왔듯이,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의 잘못된 현실과 대립하는 장애물적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세상을 위한 견인적 조건으로 작동해야 한다. 물의 성질을 이해하고(水理) 이를 활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이어온 것(治水)이 자유를 향한 인류의 기록인 것처럼,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최근 최저임금의 합의 과정은 한국사회를 보다 성숙한 미래로 이끌어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