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북한의 '두개의 코리아' 전략, 현실을 냉혹히 보자 - 진짜 문제는 미국 핵이다!

일취월장7 2017. 7. 6. 10:46

북한의 '두개의 코리아' 전략, 현실을 냉혹히 보자

[한반도 브리핑] 남북관계에 매달리지 않는 북한…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2017.07.04 16:47:46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이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다. 탄핵 정국 이후 한미 정상외교의 공백을 메꾸고 동맹간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대화 추진에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동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은 성과임이 분명하다.

물론 한미 FTA 재협상과 방위비 분담금 압박이라는 청구서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확인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드디어 우리가 '운전석'을 잡았지만,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도권을 확보한 우리가 실제로 한반도 정세에서 긍정적 성과를 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오래전부터 미국 정부가 일관되게 동의해온 일반론이자 원칙이었다. 남북대화 지지 역시 미국 정부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포괄적 원칙이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FTA 재협상과 방위비 인상이라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얻어낸 한반도의 '운전석'이 실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비싼 대가만 지불한 '립서비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국에게서 운전석을 찾아왔지만 정작 북핵문제에 진전이 있을 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핵동결 입구론만 해도 생각처럼 만만한 게 아니다.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영변 등의 핵시설을 검증가능하게 동결하는 댓가로 우리도 북에게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대안으로 거론되었던 한미군사훈련 축소와 폐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불가하다고 못을 박았다.

북한과 중국이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군사훈련 축소중단이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북의 핵동결을 이끌어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당장의 조건에서 아무 댓가 없이 북한이 스스로 핵동결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결국 현 상황은 입구조차 열기 힘든, 운전석은 잡았지만 자동차를 출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높이 사지만 핵문제의 당사자인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을 태세다. 이미 북한은 '핵 포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김정은의 북한은 과거와 분명히 다른 핵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김정은의 핵전략은 협상보다 핵보유 자체를 우선의 목표로 하고 있다. 협상에 목을 매는 게 아니라 협상이 없는 동안 오히려 핵능력 고도화와 사실상의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다.

대북제재에 중국이 동참하는 것에 대해서도 <노동신문> 공식논평을 통해 중국을 직접 거명하며 거센 비난을 하고 있는 것도 이것 저것 눈치보지 않고 일단 핵보유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핵전략은 이미 헌법과 법률에 핵보유국을 명시화했고 당중앙위 전체회의를 통해 '경제-핵 병진노선'을 공식 천명함으로써 사실상 노동당의 자진해체 이전에는 핵보유를 포기할 수 없도록 못박아 버렸다. 7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의 핵대국, 핵강국의 의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제 북한에서 핵포기는 당노선과 헌법을 위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거의 매주 간격으로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것은 당분간 협상의 기대보다는 자신의 스케줄대로 핵능력을 완성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향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함으로써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구상하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의 발언도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이는 중국의 이른바 '쌍중단, 쌍궤병행' 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북한의 핵전략은 어긋나있다. 이미 북한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론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2015년 당창건 70주년 기념식 이후로는 선 평화체제, 후 비핵화로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당장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론이라는 이른바 '왕이 이니셔티브'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거부하고 말았다.

▲ 지난 6월 3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결국 지금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불편함을 무릅쓰면서까지 핵동결 협상을 시도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을 추진하려 해도 정작 북한은 핵동결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비핵화를 논의하는 평화체제 협상에도 관심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핵포기를 수용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고 이는 곧 북핵진전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추진하려는 문재인 정부에게 한발짝도 나가기 어렵게 하는 구조적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핵문제의 진전이 여의치 않은 조건에서 과연 남북대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이 역시도 운전석은 잡았지만 시동을 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접촉마저도 매몰차게 거부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이 남조선 집권자의 친미사대와 대미굴종 운운하며 감정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김정은 시대의 대남전략은 과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김정일 시대의 대남전략은 민족공조를 내세워 북미갈등의 국면에서 남측을 우군화하는 한편, 관계 개선과 교류 협력을 통해 남측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통해 얻을 게 별로 없다고 인식하게 됐다. 어렵사리 남북이 합의해도 정부가 바뀌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도 지켜봤다. 김정은의 대남전략은 본질적으로 남쪽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의존하지도 말자는 것이고 결국은 남북관계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새로운 대남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경제적 지원 차원의 남북관계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북한은 남북이 각자도생하자는 이른바 '두개의 조선'(Two Koreas)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과 체제 위기를 일단 넘겼다는 자신감과 함께 정치경제적으로 나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제 갈 길을 알아서 가겠다는 '마이웨이' 전략이다.  

핵보유로 안보를 챙기고 시장 확대로 경제를 회복함으로써 이제 체제위기가 아닌 체제유지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판단이다. 경제가 먹고 살만하고 스스로 버틸 만하면서 남북관계를 통한 경제적 지원과 협력에 그리 목말라 하지 않는다. 드레스덴 선언 등 박근혜 정부의 대화 제의와 대북지원 제안에 시큰둥했던 이유다.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는 관심 없고 '투 코리아'의 대외 환경으로서 전단 살포와 군사 훈련 중단에만 관심을 보인다. 2014년 국방위 중대제안 이후 일관되게 정치군사 이슈만을 대화의제로 요구하는 이유다.

김정은의 '투 코리아' 전략은 2015년 광복절을 기해 남측보다 30분 늦은 시간으로 북한의 표준시간을 변경한 데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정치적 경제적 분단을 이제는 일상의 분단으로 완성하겠다는 의도다. 남북이 서로 다른 나라라는 인식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이 아닌 상호 국가성의 강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는 애써 무시하면서 금강산 병충해 방지를 위한 협력과 개성공단에 메르스 검역장비 제공은 북이 먼저 요구하기도 했다.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을 강조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이웃나라의 긴급사태에 대한 즉각적 반응에는 신속한 모습이다. 민족성을 강화하는 교류협력은 거부한 채 국가의 안전에 필요한 것들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체제는 남북대화에 대해 기존의 적극적 필요에서 소극적‧원론적 대응으로 선회했다. 자신에게 도움에 된다면 남북대화를 마다하지 않지만 과거처럼 대화와 교류 그 자체를 절대시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북이 원하는 대로 나온다면 대화에 나서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경제적 지원따위 바라면서 남북대화에 나서지 않는 다는 게 지금 김정은의 생각인 셈이다.

운전석을 잡은 문재인 정부의 희망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북핵문제는 이미 최악의 상황이다.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김정은의 핵전략은 문재인 정부의 핵동결 입구론도, 평화체제 병행론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북핵문제의 교착은 그 자체로 남북대화를 제약하게 된다. 남북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남북대화에 올인하지 않는 김정은의 대남전략도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힘들게 하는 구조적 제약요인이다.

경제적 지원이라는 당근으로만 남북대화를 접근한다면 향후 남북관계는 십중팔구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의 핵전략과 대남전략 모두 문재인 정부에게는 풀기 힘든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대북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세현 "美 본토 위협 시간문제 …'쌍중단' 준비해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과 대화채널 복원해야
2017.07.05 09:24:19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새벽,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이 ICBM으로 완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북한과 대화를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시험 발사를 두고 미국과 직접 협상을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대미용인 ICBM을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라는 날짜를 택해 시험 발사한 것은 미국 사람들을 세게 자극한 것"이라며 "북한은 과거 미국을 세게 자극했을 때 오히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왔던 성공의 추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실험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라는 핵 문제 해결 입구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이번에 시험 발사한 ICBM은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 5500km를 넘게 된다. 이렇게 되면 6000, 7000km로 사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가지 않기 위해 미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미국 외교협회(CFR)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면서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고,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 역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 핵 동결을 이야기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 정책 방향을 틀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면서 "'코리아 패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변화 가능성에 준비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정 전 장관은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판문점 채널 복원 등 남북 간 대화 통로를 여는 노력은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핵 문제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한편 남북관계가 반 발짝 앞서가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소위 말하는 '디딤돌'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가려면 판문점 채널 복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회하는 방식으로라도 북핵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며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는데 무슨 판문점 채널 복원이냐며 비난 여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 돌파구를 여는 것도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닷새 만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의 응답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한 나름의 응답입니다. 북한은 아마 "도발을 하면 제재하지만 대화의 문은 열려있어? 기존 유엔 제재를 더 강화해? 그래 어디 해봐"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륙간 탄도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겁니다. 이건 미국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시험 발사를 공개한 날짜가 하필이면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새벽입니다.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최대한 자극해보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북한은 과거 자극을 세게 하니까 미국이 오히려 협상장에 적극적으로 나오더라 하는 이른바 '성공의 추억'이 있습니다. 어설프게 도발하면 미국이 "그래 너희들(북한) 그렇게 해봐, 어디까지 하나 보자" 이렇게 나오지만 세게 도발하면 협상장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식 '벼랑 끝 전술'이라고 볼 수 있죠.  

미국 재무부가 지난 6월 29일(현지 시각) 중국 단둥은행을 제재하면서 북한 정권의 자금줄에 대한 강한 압박을 펼친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지난 2005년 미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제재했을 때 북한은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 북한은 핵이 있다고 간주되고 있고 미사일도 고도화됐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상대로 ICBM 발사라는 전술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미국과 한국 모두 정책적 공백기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 공백기를 북한이 절묘하게 낚아챈 것인데요.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은 대북정책을 다룰 책임자도 인선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트럼프가 험악한 단어만 쏟아냈지, 실제 일을 해야 할 실무자들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드러난 상태로 보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는데 그동안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걸 보여준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지금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선언할 수 있는 시간을 준 정부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북한 핵 능력이 커졌다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실제로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는 2008년 이후였습니다. 즉 오바마-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6자회담이 중단됐던 시기에 북한은 핵 능력을 키운 겁니다.  

그동안 한미 정부는 북한이 군사적인 도발을 하면 더 강력한 제재를 할 것이라고 반복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실제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간판을 걸고 실제로는 북핵 능력의 고도화 내지는 북핵 능력의 강화를 중국을 압박하는데 역이용했죠. 이를 통해 한국이라는 무기시장을 유지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패권도 유지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의 주장대로 ICBM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이라면 여기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핵 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하겠다면서 추가적인 핵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일단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소집해서 더 강한 결의안을 만들지 않을까요?  

정세현 : 당연한 수순 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밀어 붙이느냐에 달려있는데 중국이 이걸 받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안보리 결의와 함께 사드 배치가 당연한 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한미일 3각 동맹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상황입니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이 첨예해지는 신(新) 냉전시대가 다시 도래하게 되는 것이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결국 한미일 3각 동맹을 위한 기반 조성 아닙니까? 북한의 ICBM 시험 발사가 협정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증대시켜주는 결과를 만든 셈이죠.  

다만 미국이 다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이야기했던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책으로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이번에 시험 발사한 ICBM은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 5500km를 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6000, 7000km로 사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미국은 본토에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가지 않기 위해 쌍중단 해법을 생각할 겁니다.

실제 지난해 9월 미국 외교협회(CFR)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면서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 역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 핵 동결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이 그동안은 쌍중단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책을 급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런 가능성에 맞춰서 우리도 편승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 4일 시험 발사되는 화성 14형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래도 북한과 대화 채널은 열어야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6.15남북정상선언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ICBM 시험 발사라는 대형 도발을 감행했는데요.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올까요?

정세현 : 지금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판문점 채널 정도는 열어 놓아야 합니다. 또 조명균 신임 통일부 장관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이러한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남북 간 채널은 고정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물론 북핵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북핵 문제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남북관계가 반 발짝 앞서가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디딤돌을 놓겠다는 자세로 나가기 위해 물밑접촉이라든지 판문점 채널 복원이라든지 이런 조치는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가 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회하는 방식으로라도 북핵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는데 무슨 판문점 채널 복원이냐며 비난 여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 돌파구를 여는 것도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작업입니다.  

물론 남북 간에 판문점 채널을 연다고 해서 이게 북핵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채널을 열고 이산가족 상봉 등을 진행하면 인도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좀 더 공식적인 회담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이 인도적 지원이나 스포츠 등의 교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당장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체육으로 남북관계를 푼다는 것은 '천진난만'한 생각이라며, 평창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정세현 : 사실 장웅 위원의 언급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지난 1984년 LA 올림픽이 열리기 전 남북은 단일팀 구성을 위한 협의를 가졌습니다. 세 번의 회담을 했지만 결국 단일팀 구성에는 실패했습니다.  

당시 대통령과 대한체육회장 등은 단일팀을 만들려고 했지만 선수들이 반대했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나가려고 얼마나 땀을 흘렸겠습니까? 이들은 그런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2007년 10.4 정상회담 때도 대한체육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이야기를 꺼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실무자들이 안된다고 한다면서 단칼에 잘랐습니다. 이런 과거 사례를 좀 알고 대통령에게 정책적 건의를 해야 하는데 지금 문 대통령 참모들이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풀어보려는 아이디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일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땠는지 제대로 연구해서 실행 가능성을 따져봤어야 합니다. 그런 것 없이 대통령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직접 만나면서 의지를 표명하고, 이후 북한에 사실상 공개적으로 거절당하는 망신을 당한 겁니다.

지금 청와대 안보실에는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외교안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외교관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비서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참모진 중에 남북관계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이 주도권 잡았지만… 

프레시안 : 북한이 이렇게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았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습니다.  

정세현 :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국제정치에서 우리가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위상을 확립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어떻게 연결 짓느냐는 문제로 한미 양국의 입장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가 반대했던 때도 있었고, 우리가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면 미국이 견제하던 시절도 있었죠.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러한 시대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누가 보더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관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러한 간극을 완화시켰습니다. 게다가 남북관계를 중심 축으로 놓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평소 문 대통령의 주장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보증받은 측면도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경우로 보면 남북관계가 반 발짝 앞서가면서 북한을 설득하고, 이걸 가지고 다시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북미 간에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을 미국이 용인해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한미 FTA 문제와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거론됐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미 FTA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사항입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군대가 외국에 가서 그 나라를 지켜주는데 왜 미국이 돈을 더 내야 하느냐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충분히 예견됐던 사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따라서 이걸 두고 미국에 약속 어음 써주고 온 것 아니냐고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는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한미 관계가 큰 파탄이 나지 않고 무난하게 회담이 마무리됐다는 점에서는 성과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말했던 북핵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축소에 대해서 문 대통령이 대놓고 불가능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한 점은 우리의 운신폭을 스스로 좁힌 것 아닌가요? 비핵화와 평화협정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구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사실은 미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우리가 '주도적'이라는 단어만 얻어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세현 :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그동안 한국이 처해있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문 대통령이 미국 정상과 첫 만남에서 핵 동결, 평화협정 등의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경제적인 부상과 군사적인 지위가 올라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진행됐던 흐름을 볼 때, 그동안 동맹에 너무 의존했던 한국 입장에서는 어떤 사안이든 미국에 허락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이건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더 이상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즉 자주국방을 이루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미국에 완전히 할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남북대화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데 그동안 압박으로만 일관하다가 그게 안되니까 대화로 풀어봐야 한다는 방향만 설정하고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획기적인 전환 조치에 합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마리가 잡힐 수 있을 거냐는 의문이 있었는데요. 일부에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이어 이번이 북핵 해결을 위한 세 번째 시도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와는 달리 북핵이 상당히 고도화됐기 때문에 그 때의 해법이 지금도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1994년 때 북한의 몸값과 2005년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2005년 이후 북한은 5번의 핵 실험을 감행했고 지금 ICBM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 지원으로 비핵화를 이루려고 해도 액수가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비핵화의 진전을 봐가면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거는 식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도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북핵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규모 축소 또는 중단이라는 입구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북한의 핵을 검증해가면서 비핵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면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고, 최종적으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바꾸면서 핵을 없애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리가 먼저 했다가 미국이 받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또 국민 여론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북핵 문제가 우리로서는 참 다급한 문제인데, 문제를 푸는 열쇠는 미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협조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미국보다 앞서 나가면 국민들이 불안해하죠. 그 틈새를 북한이 파고 들고 이러한 행동을 벌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은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방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북한은 이번 ICBM 시험 발사처럼 계속 도발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정세현 :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한이 사고를 덜 치도록 유도하고, 북미 간에 접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한이 이런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난 상황에서 한국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선뜻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몸값이 너무 높아졌거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북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특사를 보냈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특사를 보낸 뒤에 그 결과를 들고 북한에 가서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북한의 이같은 행태를 방지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북한의 ICBM은 '게임 체인저'인가?

[정욱식 칼럼] 유일한 대안은 결국 북한과 대화
2017.07.05 09:22:15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4일 오후 '특별중대보도'의 내용에 따르면, "새로 연구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비행시간은 39분, 정점고도는 2802km, 비행거리는 933km라는 것이다.

ICBM은 사거리 5500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일컫는다. 또한 최대 사거리는 최고 정점고도의 3배 가량에 달한다는 점에서 화성-14형 미사일의 사거리는 8000km가 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장대로라면, 북한이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북한이 화성-14형을 실전 배치하면, 미국의 알래스카와 태평양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도 이 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들어오게 된다. 다만, 북한으로부터 9500km 가량 떨어진 미국 본토 서부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이 한미 양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ICBM 시험발사를 전격적으로 강행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더욱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 당장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이 나올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ICBM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하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트럼프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진 셈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온 북한이 ICBM 보유 문턱까지 도달한 것은 분명 우려스럽고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게임 체인저'로 간주하면서 과잉 대응에 나서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될 수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북한의 ICBM을 '게임 체인저'로 간주해왔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위협을 가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는 한반도 공산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과 연관되어 있다. 즉,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나 샌프란시스코의 희생을 감수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하거나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제기되어왔다.

▲ 북한이 3일 대륙간 탄도 미사일 화성 14형을 시험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의 ICBM은 그 자체로는 결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 'ICBM-전략폭격기-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구성된 미국의 핵 삼중체계는 북한의 능력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신뢰'가 생명인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북한의 ICBM으로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도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ICBM을 비롯한 "핵 억제력"의 목적은 생존에 있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북한이 생존을 위해 만든 핵미사일을 쏘는 순간 북한을 끝장낼 수 있는 충분한 군사적 힘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가 분명 우려스러운 상황이지만, 한미동맹의 대북 억제력에 큰 손실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이러한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하루빨리 동결시켜야 할 시급성을 거듭 일깨워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을 방치할 경우 북한은 다양한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갖게 된다. ICBM 전력화하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추가적인 시험발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실전 배치에 이르기 전에 미사일 활동을 중단시켜야 할 사유도 분명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취해온 방식은 대화와 협상에 조건을 내걸고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에 또다시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유일한 대안은 한미 양국이 북한과 조속하고도 조건 없는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건 결코 유화정책이 아니다. 대화와 협상이야말로 김정은의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미국 핵이다!

['전쟁 국가' 미국] 북핵 해결을 원한다면 미국 핵의 실체를 보라


2015년 11월 이후 중단됐던 <'전쟁국가' 미국> 연재를 재개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핵무기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핵은 인류의 생존에 대한 최대 위협이며, 북한 핵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발표했습니다. 2006년 이후 다섯 번의 핵 실험과 이번 ICBM 성공으로 북한은 사실상 세계에서 9번째로 핵보유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 핵 외교의 명백한 파탄을 의미합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북핵 불용'을 수없이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북한의 핵 보유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와 2005년 9.19성명 등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숱한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근본 원인을 도외시 했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의 체제 안전입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이며, 우리식으로 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확립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 적대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즉 북한의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 한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사력으로 북한 핵을 무력화 하려는 시도는 공멸을 불러올 뿐입니다.  

지난 70여 년간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고 다른 나라들의 핵무기는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라는 이중기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이 증언하듯이 '모든 핵무기는 절대 악'이며 '핵무기와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양식 있는 세계 시민들의 보편적 결론입니다.

특히 미국 핵무기는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입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핵에 의한 위협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로의 핵무기 확산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북핵의 뿌리는 미국 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핵무기를 초석으로 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적으로 직시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비판을 바랍니다. 편집자.

▲ 2010년 림팩 훈련에 참가한 미군 함정들. ⓒnavy.mil


핵무기와 함께 시작된 전후 

2차 대전은 핵무기라는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핵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당초 원자폭탄의 개발은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에 대해 사용됐다.  

미국의 원폭 투하는 군사적 필요 때문이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군사적 패배는 명약관화 했다. 게다가 미국의 무차별 공중폭격으로 이미 도쿄 등 64개 도시가 초토화됐다. 이런 상태에서 단 두 방의 원폭으로 수십만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진정한 속내는 또 다른 승전국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였다.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세계 질서를 따르라는 엄포였다. 이후 핵무기는 미 대외정책의 핵심 초석이 된다.  

가장 강력한 재래식 폭탄보다 무려 1500배 이상 파괴력이 큰 원폭을 손에 넣은 미국은 완전히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된다. 트루먼 등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원폭은 포커판의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존재였다. 어떤 패도 누를 수 있는 절대 반지, 만능의 보검이었다. 원폭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목표는 세계를 미국 주도의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어내는 것이었다.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 복원, 즉 세계 전체를 미국의 투자 및 수출시장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이 각각 유럽대륙,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자신의 배타적 경제권으로 만들려 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자신의 생활권(Lebenslaum)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쟁 직후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했고, 여기에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두 핵심 지역인 독일과 일본은 물론 소련까지도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체제에 통합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소련이 지향한 것은 세계 공산혁명이 아니라 일국사회주의 건설이었다. 주로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치른 소련의 경제는 완전히 망가졌다. 게다가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을 상대로 세계 공산혁명을 시도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소련은 미국을 따라갈 수 없었다.  

소련의 재건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안전보장과 경제 재건이 그것이다. 안보를 위해서는 독일을 중립화하고 폴란드 등 동유럽을 소련의 통제권 아래 두어야 했다. 독일은 1,2차 대전에서 소련을 침공한 최대 안보 위협이었으며 폴란드 등 동유럽은 역사적으로 독일 등 외부세력의 침공 경로였기 때문이다.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독일로부터 전쟁 배상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의 전후 목표는 충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 회담에서 독일의 전쟁 배상 규모를 200억 달러로 하며 그 중 절반을 소련에 할당할 것에 합의했고,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의 대일본 참전을 절실히 원했던 미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양보였다.

미 대외정책의 핵심 초석이 된 핵무기 

그러나 미국이 원폭을 가지면서 미소 협력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미국은 핵무기의 위력으로 미국의 의지를 소련은 물론 세계에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는 소련을 배제한 채 일본을 단독 점령했고, 유럽에서도 독일의 대소련 전쟁 배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독일의 분단을 밀어붙였다. 냉전의 시작이다.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는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시작된 것이다.  

▲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이다. ⓒ위키피디아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도 원폭 덕택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은 일본과 함께 자본주의 복원이라는 미국 전후 구상의 핵심지역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었다. 핵무기가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래식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설령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한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격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국은 지상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냉전이 핵무기경쟁 등 극단적 군사 대결 상황으로 치닫는(냉전의 군사화) 결정적 계기였다. 1950년 4월 미 국가안보회의는 NSC-68을 통해 소련이 군사력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대대적인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두 달 후 발생한 북한의 남침은 소련의 세계 정복 야욕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고, 미국의 국방비는 단숨에 3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전쟁으로 본격화된 미국의 대대적 군비 확장 및 군사적 일방주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패전국 일본과 서독의 재무장도 추진됐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증강됐고 소련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 미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초래했다. 소련의 개입과 반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베트남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한 제네바 합의(1954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군사개입에 나선 것이다.  

소련은 미국과의 피 말리는 군비 경쟁 끝에 1991년 스스로 무너졌다. 군비 경쟁의 핵심은 핵무기였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 학자 유르겐 브룬은 냉전에 대해 "소련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고의적 군비경쟁"이라고 말했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핵무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례로 부시 행정부는 2002년 핵태세보고서(NPR)를 통해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등 7개 국가에 대해서는 핵 선제공격(First Strike)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 나라는 미국의 잠재적 적국(러시아, 중국)이거나 미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들이다.

이 가운데 이라크 후세인과 리비아 가다피는 이미 미국에 의해 제거됐고, 시리아에서는 2011년 이후 내전이 진행 중이다. 이란과는 핵 협상이 타결됐으나 트럼프 이후 합의가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2006년 이후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으며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2002년 부시 행정부는 요격미사일금지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이란과 북한의 핵위협을 이유로) 동유럽과 동아시아에 미사일 방어망 건설을 밀어붙였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겹치면서 러시아, 중국과의 군사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자국의 핵 군사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했다는 이유로 그해 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향후 30년간 무려 1조 달러를 미국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북한 등 불량국가와 테러 세력에 의한 핵위협에 대비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진정한 속내는 러시아, 중국 등 잠재적 적국에 대한 핵 군사력의 우위 유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핵무기는 미 대외 정책의 핵심 초석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핵은 나쁘고 미국 핵은 좋다? 

최근 들어 북한의 핵 개발이 세계 평화의 최대 위협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과연 그런가? 미국 핵은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고, 북한 핵은 평화를 해치는 나쁜 것인가? 핵무기는 미국에게 무엇인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핵무기가 있음으로 해서 세계는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인류 절멸의 위기에 처했는가? 

미국의 주류 정치인과 제도권 학자들은 미국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며 북한, 이란과 같은 무책임하고 무모한 세력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핵무기로 인해 2차 대전 이후 세계가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반면 비판적 지식인과 시민들, 평화운동가들은 미국에게 핵무기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망치(hammer)이며,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했고,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국가로서 이후 핵무기를 앞세운 압도적 군사력으로 세계에 대해 미국의 의지를 강요하고 관철시켜 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고 핵무기를 앞세운 군사주의를 계속하는 한, 이에 저항하려는 국가와 세력들의 핵무기 보유 시도는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 위협 세력이라는 말이다.  

북한 핵이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북한의 핵 위협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주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미국의 주류 정치인, 제도권 학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북한 핵문제가 제기된 후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의 대(對)북핵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이후 30년 가까이 '북핵 불용'을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북핵 보유였다.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에 대한 미국 언론의 반응은 지난 60여 년간 미국의 핵정책이 불러온 결과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미국의 핵위협을 받아온 국가다.

'북핵 불용'이라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미국의 말과 행동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은 아닌가? 이런 의문들에 대해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70여 년간 핵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핵무기를 어떻게 활용해 왔고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를 알아야 한다.

▲ 지난 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아래 검은색 옷)이 '화성 14형'(오른쪽 위)을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관계자들과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


핵 억제인가, 핵 테러인가 

'핵무기'는 2차 대전 후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초석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말해오고 있다.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존 포스터 덜레스는 1953년 국무장관 취임 직후 "유사 이래 우월한 문명은 언제나 보다 효과적인 무기를 개발해냄으로써 저급한 문명에 대한 우위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3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원자탄, 그리고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현재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군사 공약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2005년 채택된 미국의 합동핵작전교리(doctrine for joint nuclear operation)는 "분명히 말하건대 핵무기는 앞으로 50년간 미 군사력의 초석으로 건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정치가, 군인, 외교관들은 핵무기가 미 대외정책의 초석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평화'를 내세운다. 지난 70여 년간 핵무기가 세계 평화를 유지해온 근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억제 이론(deterrence theory)'이다.  

한마디로 말해 핵무기가 강대국 간의 (핵)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핵전쟁이 초래할 무시무시한 인명 피해를 감당할 수 없기에 강대국은 전쟁을 피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유식한 말을 쓰자면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20세기 전반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1억 명이었던 데 비해 (핵시대가 도래한) 20세기 후반의 전사자는 2000만 명에 불과(?)했다는 통계 수치를 제시한다. 핵무기가 평화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나아가 핵무기가 냉전 시대의 '긴 평화(long peace)'를 가져왔다며 이를 국제정치에서의 '핵혁명(nuclear 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핵이 국제정치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 정부와 전략가, 국제정치학자 등에 의해 널리 유포돼 왔다. 대다수 미국인은 물론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이를 신봉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는 "억제 이론의 핵심적 측면은 이제 (현실로) 잘 정립돼 있다. 어떤 종류의 '핵전쟁'도 불가능하다는 점(infeasibility)이 매우 잘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최소한 그렇다고 기대해 보자)."고 말할 정도다.  

케네스 월츠라는 또 다른 저명 학자는 이란의 핵무장이 중동 정세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스라엘 핵무기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여 년간 핵의 역사는 억제 이론이 부분적 진실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리하여 전체적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핵공격 이후 1949년 8월 소련의 핵실험 때까지, 즉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을 동안 핵무기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있지도 않은 소련의 핵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핵 공격이 전쟁 종결을 앞당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위 군 장성들이 핵공격에 반대했다는 사실, 전쟁 조기 종결을 위한 다른 대안들이 있었다는 사실, 일본 핵 공격의 1차적 목적은 소련 등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냉전 시대가 '긴 평화'였다는 허구 

냉전 시대의 '긴 평화'라는 것도 지극히 서방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냉전의 주요 무대였던 유럽에서 미국/서유럽 대 소련/동유럽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종의 평화 상태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30년에 걸친 국제전이 벌어졌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은 핵무기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베트남전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핵 위협과 핵 공갈을 했다. 6.25 발발 직후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공격 계획을 세웠으며, 1950년 11월 중공군에 패퇴했을 때는 실제 핵 공격을 하려 했고, 휴전 협상 과정에서도 핵 위협을 했다.  

1954년 프랑스군이 베트남군에 패배했을 당시 미국은 프랑스에 전술 핵무기 공격을 제안했다가 프랑스의 거부로 무산됐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해 조기 휴전 협상을 강요하기 위해 핵무기를 탑재한 B-52 폭격기 등을 출격시키기도 했다. 이른바 '광인 이론(madman theory)'에 따른 핵 공갈이다. '나는 실제 핵 공격을 강행할 수도 있는 미친놈이니까 알아서 기어라'는 협박이다. 

▲ 1965년 미군 헬기가 남베트남의 베트공 기지를 공격하고 있다.ⓒAP=연합뉴스


뿐만 아니다. 1946년 이란 북부에 주둔해 있던 소련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핵 위협을 시작으로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 1958년 이라크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등 중동지역에서도 미국은 수시로 핵 위협을 동원했다. 석유자원의 보고인 중동지역에 대한 소련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시대의 긴 평화란 미국, 유럽, 소련에만 해당되는 지극히 국지적인 현상이었다. 

그 긴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였는가. 아니다. 우선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다. 당시 케네디를 비롯한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실제 핵 전쟁이 일어날 확률을 30~50%로 봤다고 한다.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40여년 뒤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행운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사태 당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면 핵 전쟁이 벌어질 뻔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우선 베를린 위기가 한창이던 1961년, 미국은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 계획을 세웠다. 소련의 핵무력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백악관에서 핵 전쟁 분석가로 일했던 다니엘 엘스버그에 따르면 실제 핵공격이 단행됐을 경우 사망자는 6억 명으로 추산됐다. 엘스버그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이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보다 100배나 되는 참극을 계획했다고 개탄했다. 당시 미 군부는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를 말린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1983년 11월에도 미.소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그해 3월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매도했다. 또한 '별들의 전쟁', 즉 전략방위구상(SDI)이라는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천명하는 등 대대적인 핵전력 증강에 나섰다.  

그해 10월에는 소련 영공에서 대한항공(KAL) 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등 미소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유럽에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에이블 아처(Able Archer, 유능한 궁수)'라는, 소련에 대한 모의 핵 공격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호전적 태도에 극도로 긴장했던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고 한다. 미국에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소련 레이더에는 미국의 핵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으로 비쳐졌고 핵 전쟁 매뉴얼에 따르면 소련은 대응 공격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당시 레이더 책임을 맡았던 소련 관리가 매뉴얼을 무시함으로써 핵 전쟁을 회피할 수 있었다. 훗날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0년대 전반이야말로 미소 핵 대결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이것이 평화인가. 인류 전체를 몇 번이고 몰살할 수 있는 핵 전력으로 무장한 채 대치하고 있는 불안한 휴전 상태일 뿐이다. 결코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은 언제나 핵 우위를 추구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냉전 시대를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이 대등한 핵 전력으로 무장한 채 팽팽하게 대립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두 핵 강국의 대치'라는 사실은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왜냐하면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의 핵전력이 소련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중반까지 소련은 미국의 핵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1961년 미 군부가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을 주장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소련의 핵 전력이 미국과 대등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내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독립연구자 가레스 포터에 따르면 1955년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격차는 45대 1이었다. 1965년에는 9대 1로 그 격차가 좁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 우위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근대 국가간 체제가 성립된 이후 최대 군사 강국과 2위 군사 강국 간의 군사력 격차가 이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사실상 끝이 난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압도적 군사적 우위 때문이라는 게 포터의 주장이다. 미 핵전력의 압도적 우위에 기가 질린 소련과 중국이 계속 미국에 양보를 했고, 이에 따른 행동의 자유에 도취된 미국은 남베트남에 반공 친미 정권을 세울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 후 20년에 걸친 야만의 전쟁이었고 미국의 치욕적 패배였다.

억제 이론에 따르면 핵 보유국 간의 전쟁은 불가능하다. 핵 전쟁의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핵의 역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0년대까지 미국은 압도적 핵 우위를 바탕으로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소련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켜 왔다. 어느 한 쪽이 압도적 핵 우위를 누리고 있고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상대방도 알고 있다면 굴복과 양보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이 1945년 이후 20여 년간 미소 관계의 진실이다.  

1962년 흐루쇼프가 미국의 턱밑, 쿠바에 비밀리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압도적 핵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미국은 핵 전력의 압도적 우위 외에도 독일과 이탈리아, 터키 등 소련의 주변에 핵무기를 배치해놓은 반면 소련은 자국 영토 외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해외 기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루쇼프의 시도는 실패했고 2년 후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후 소련은 대대적인 핵 군비 증강에 나섰고 1970년대 중반에 비로소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소의 핵탄두는 한때 무려 7만 개 가까이에 이르렀다.  

핵무기가 단지 상대방의 핵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인류 전체를 몇 십 번 죽이고도 남을 핵탄두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핵 우위를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야망', 이것 외에는 핵 군비경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핵 군비경쟁의 주도자는 언제나 미국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핵군비 경쟁은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한 것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생활과 복지에 쓰여야 할 소중한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1961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이임사에서 고백한 군산복합체가 바로 그것이다. 끝없는 군비 경쟁 끝에 소련은 제풀에 쓰러졌고 미국은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군사국가로 변모했다. 막대한 자원을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부은 결과 미국의 민생은 피폐해졌고, 민주주의마저 위협당하기에 이르렀다.

미 내무장관을 역임한 스튜어트 우달은 현재 미국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핵무기 경쟁, 그리고 그 실상의 은폐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핵무기 경쟁과 그 실상의 은폐는 미국 정부가 거짓 현실을 근거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이는 정의를 왜곡했다. 또한 미국의 도덕성을 망가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