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가계 부채의 근원적 해법은 '주거 복지'다 - 평등 빠진 '경제민주주의'는 반쪽짜리다

일취월장7 2017. 6. 28. 12:23

가계 부채의 근원적 해법은 '주거 복지'다

[복지국가SOCIETY] '부채 주도 성장'을 끝내야 할 때
2017.06.27 08:08:23

지난 6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미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지만, 자가 보유율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 전세 값은 계속 오르고, 전세가 월세로 전환돼 월세의 비율이 높은데, 전세의 월세 전환율이 금융기관의 금리보다 훨씬 높다"고 말하면서 서민 주거 안정이 정책 과제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주거 복지의 참담한 현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주택 자가 보유의 비중은 50%밖에 되지 않는다. 공공 임대주택을 대폭 늘리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며 "새로운 주택의 건설뿐만 아니라 기존 주택의 용도를 전환해서 공공 임대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대통령의 주거 철학이 이렇게 확고하므로 새 정부의 기본 정책은 주택 경기의 활성화에서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지원 및 주거 복지로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주거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 서울의 경우 집 주인 3명 중 1명은 다주택자이다. 임차가구 중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도 실태 조사 이후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득 대비 임대표 비율이 다른 계층보다 높다. 그래서 서민 주거 안정의 토대가 되는 공공 임대주택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임대기간 10년 이상'의 공공 임대주택 비중이 5.5%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 선진국 대부분이 16%를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5%인 데 비해 크게 부족하다.  

빚 내서 집 사는 시대는 끝나야  

6월 19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Loan To Value ratio, 자산의 담보가치 대비 대출금액 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차주의 금융부채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를 현행보다 각각 10%씩 낮춘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맞춤형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그래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각각 60%와 50%로 낮아졌다.  

▲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서울 전역 등 조정 대상 지역에서는 분양권 전매 금지, 1순위 청약 자격 강화, 재건축 규제 강화에 대출 규제까지 추가되었다. 집단 대출 중 잔금 대출에 대해서도 DTI가 새로 적용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8월 '가계 부채 종합관리방안' 발표에 앞서 LTV와 DTI 규제 방안을 서둘러 꺼낸 것은 더 이상 부동산 시장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들어 주택시장은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을 보이며 분기 연속으로 가계 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강남 재건축 등의 부동산 과열은 이전 정부의 '부채 주도 성장'이 원인이다.

2013년부터 주택 경기 활성화 대책이 추진되면서 LTV·DTI 완화, 주택 구입 자금 지원, 공공분양 축소, 세금 감면, 분양가 상한제 완화, 청약제도 개편,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주택 정책 실시로 부동산 시장은 과열되었고, 이에 따라 가계 부채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4월과 5월 두 달 동안 가계 부채는 11조 원이나 급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전면적인 규제가 아닌 국지적인 과열 지역 규제책을 꺼낸 것은 현재 입주 물량의 증가, 금리의 인상 등 주택 경기 급락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주택 경기의 과열 상태가 지속된다고 판단되고 가계 부채 우려가 증폭될 경우에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의 강도 높은 규제를 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6월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선별적 맞춤형 대책을 만들되, 실수요자의 거래는 위축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6.19 대책에서도 실수요자 보호 차원에서 일정 소득 이하, 일정 가격의 주택, 무주택 세대주 등은 이전의 규제 비율을 적용받게 된다. 올해 공급 예정이던 정책 모기지(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44조 원은 실수요자의 주택 구입에 차질이 없도록 공급하겠다고 한다. 서울지역 중심의 시세 차익 투자 확대 움직임 속에서 나온 선제적 대응인 '6.19 부동산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박근혜 정부를 상징하는 초이노믹스 '빚 내서 집 사는 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은행은 주택 전당포가 아니다  

가계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면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빚 갚느라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소비자의 지갑이 얼어붙어 내수가 위축되고 기업들은 고용과 투자를 줄이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다시 소득과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연결고리의 시발점인 주거 비용을 낮추고 금리 부담을 줄여야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게 된다.  

특히 은행들이 주택 관련 대출을 취급하는 주택 전당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휘청거리는 하우스푸어를 위해 주택가격 한도 내 주택담보대출 상환 의무를 부담하는 '비소구 담보대출'(유한책임 대출, Non-Recourse Loan)은 주택 구입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확대해야 한다. 현재 주택도시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 재원의 '디딤돌 대출'로만 시행되고 있으나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향후 이용자의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

부득이 경매에 내몰린 가구의 경우 특단의 가계 대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담보 주택의 소유권을 맡기고 장기 임대계약을 맺으면, 채무자는 그대로 자기 집에서 거주하면서 장기 임차인으로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대출액과 주택 가격의 차액은 돌려받아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고, 경매 주택이 쏟아져 나오지 않아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장기 임대로 거주하는 기간 담보주택은 사실상 공공 임대주택으로 전환돼 주거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문재인 정부는 가계 부채 해결을 위해 3대 근본 대책과 7대 해법을 제시했다. 그 중의 핵심은 부채 총량의 관리로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이는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제한을 둬 1360조 원을 넘어선 가계 빚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6월 22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2017년 6월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의 비율'은 153.3%로 지난해 1분기 대비 8.6%, 2012년 말 133.1% 대비 20% 넘게 상승했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부채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2013년부터 4년간 가계 소득 증가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지만, 아파트 가격은 22%, 전세 값은 52% 이상 급등했다. 새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늘리고 대출 규제를 강화해서 이 비율을 제한할 방침이다.  

향후 금리 인상으로 가처분 소득이 원리금 상환액에 못 미치는 한계가구들을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임차가구의 소득 대비 주거 비용의 비율은 급격히 상승하고 전·월세 부담에 렌트푸어가 늘고 있다. 한계가구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고 있는 가구의 비중이 높은데, 가처분 소득보다 원리금 상환액이 더 많고 금융 자산 대비 금융 부채의 비율이 높아 연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계 부채 총량제에 따라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의 비율'을 150% 내로 제한하니 자영업자 대출의 급증, 제2금융권의 가계 대출, 취약계층은 미등록 대부업체나 비제도권 대출로 이전한다. 이른바 풍선 효과이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는 필라델피아 선언을 생각하며 다중채무자와 저신용자에 대한 원금 상환 유예 등 특단의 조치도 사회적 비용 감소 차원에서 채택을 고려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새 정부 초기에 '서민금융 차선제'의 도입을 제안해 본다. 버스 전용 차선을 만들어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편익을 제공하듯이, 서민금융 차선제를 도입해서 무주택 서민, 렌트푸어, 하우스푸어, 다중채무자, 저신용자들에게 따뜻한 금융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서민금융 차선제'의 도입으로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고 내수의 진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이 방안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편익을 제공하게 된다.  

적극적인 취약계층 부담 경감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새 정부는 고금리 이자 부담의 완화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대부업의 최고금리(연 27.9%)를 이자제한법 상의 최고금리(연 25%)로 조정하고, 단계적으로 최고금리를 20%까지 인하할 계획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소득 주도 성장' 중심의 정책 기조로 전화하고, 가처분 소득의 증대를 위한 종합 계획을 시행해야 할 시점이다.  

ⓒ연합뉴스

 
주거 복지 강화로 주거 안정 이뤄야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도 확충해야 한다. 공공 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해서 생애 최초, 청년층, 신혼부부, 다자녀 무주택 서민 등의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매년 17만 호의 공공 임대주택 공급, 신혼부부의 주거 사다리 마련, 청년 임대주택 30만 실 공급, 저소득 노인 영구 임대주택 확대, 다자녀 비례 우선 분양제 도입 등의 대선 공약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그동안 공공 임대주택은 정권과 지방자체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공급 프로그램의 설계로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고, 지역 이기주의 등 외부요인의 영향을 받아 왔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 모든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종합시스템을 구축하고, 각 사업주체별로 상이한 임대주택 관리시스템을 통합해야 한다.  

우선 시급한 것은 세입자 전·월세 부담과 이사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사회통합형 주거 정책을 제시하는 일이다. 전·월세 상한제, 계약 갱신 청구권, 임대차 등록제, 임대과세 정상화 등으로 세입자를 보호하고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세제 혜택과 사회보험료 특례 부과 등의 다양한 인센티브 도입으로 집 주인의 임대주택 등록을 촉진해야 한다. 사회적 임대 시스템 운영으로 주거 문제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이 도입되면 주거 불안은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주택 사다리 5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한 후부터 제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한 청년의 말 속에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할 때, 국민은 더 많은 꿈을 펼쳐 국가에 돌려줍니다. 헌법이 정한 국가의 의무입니다. 문재인의 새로운 정부는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높여 국민의 주거 권리를 지키겠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우리 국민은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 없는 주거 환경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이 그대로 실천되어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의 꿈이 밝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새 정부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확실하게 경제, 복지, 일자리, 금융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국민이 행복한 복지국가의 새 시대로 가는 문을 활짝 열 것이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제고의 중요성과 의미)

(팟캐스트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는 국민라디오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함께 만드는 정통 정책 시사 방송입니다.)  



평등 빠진 '경제민주주의'는 반쪽짜리다

[기고] 로버트 A. 다알의 경제민주주의, 의미와 약점
2017.06.28 11:27:00

문재인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경제민주주의를 꺼내 들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경제민주주의 또는 경제민주화를 국가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구체적인 과제로 격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미 비정규직 영역, 대자본과 소자본 사이의 거래관계 영역 등에서 차별을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비록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가 경제의 모든 영역에 걸쳐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핵심 분야인 기업민주주의 영역에서는 주주민주주의가 기형적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문제까지 있지만. (☞관련 기사 :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가 가야할 길"). 

어쨌든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A. 다알(Roert A. Dahl)의 탁월한 책 <경제민주주의>(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평가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다알의 <경제민주주의>는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을 다룬 책으로, 그 주장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와 평등은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며, 특히 평등이 결여될 때 민주주의 체제에는 두 가지 위험("다수가 합법적 과정을 통해 소수를 억압할 위험"과 "다수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대중에 기초한 독재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사회적·경제적 심각한 불평등은 시민들을 적대적인 양극단의 진영으로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약화시키며 빈민층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하든 그들이 축출되게 하든 독재에 대한 지지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국가에서 자유가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평등이 과도해서가 아니라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주의가 국가통치에서 정당화 된다면 기업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기업 내에서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국가통치에서도 민주주의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대기업으로 이전된 소유권은 노동자들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경영자의 권한 아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침해하는 비민주적 지배"이므로, "(자신은)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기업경영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자주관리기업)을 제시"한다.

넷째,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서의 차이는 모든 형태의 불평등의 기원은 아니지만", "다양한 불평등에 깊이 관련되어"있으므로, 대안적 소유경영구조를 가진 민주적 기업체제(노동자 소유기업 또는 자주관리기업)를 통해 평등을 증진시켜야 하며, "경제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있어서 평등"이 증진된다면 "현재보다 더욱 광범위한 평등을 획득"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다알의 이와 같은 주장은 이전까지 자연발생적으로만 주장되던 사회의 경제민주주의 요청에 대해 정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특히 탁월한 것이며, 또한 정치학자가 새로운 사회의 맹아형태인 노동자소유기업이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대안으로 이해했다는 측면에서 독창적인 통찰이자 민주주의 지평을 크게 넓힌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알의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은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도 동반한다.

▲로버트 A. 다알

우선 다알은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를 "기업자본주의"(corporate capitalism)로 이해했기 때문에,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기업민주주의 영역에 집중되어 있고, 기업 이외의 경제영역에 대한 경제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보더라도,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과 임노동 관계 영역, 대자본과 소자본 및 소비자와의 거래관계 영역, 토지부동산 소유 및 임대차 관계영역, 채권 채무관계 영역,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조세 및 재정의 영역 등 다섯 가지 범주로 구분되는데도, 다알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일반적으로" 자본과 임노동 관계를 기초로 짜여진 기업 활동을 뼈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여 자신의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기업민주주의 영역에서만 전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다알의 논의에서는 경제민주주의의 세분화된 개념인 금융 민주주의, 재정 민주주의, 소비자 민주주주의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록 기업민주주의가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분야라고 하더라도, 다알의 논의는 경제영역 전체에 걸쳐 있지 않은 절름발이 논의다. 

또한 다알은 경제적 불평등의 배경에 재산권 문제가 가로 놓여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는 있지만, 시장경제(market economy)가 자유와 꼭 같은 비중으로 평등에도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자유와 평등은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행동양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는 사실, 경제민주주의는 차별 또는 불평등 상태에 놓인 시장참여자들이 이를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해달라는 자연발생적인 요청으로부터 성립된 사상이라는 사실, 특히 시장참여자들 중에서 "어느 한 쪽에 의한 차별과 불평등의 자유는 다른 쪽의 경제적 자유를 구속하거나 침해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제거해야 마땅한 유형의 자유로 경제적 관계에서 차별을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하려는 경제민주주의는 시장참여자들 모두의 경제적 자유를 온전한 형태로 증진시키고자 하는 사상이라는 사실 등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시장경제가 자유와 꼭 같은 비중으로 평등에도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입증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판매자나 구매자로 "대등하게 만나" "준 것만큼 받는, 받은 것만큼 주는" 평등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며, 반대로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예로 들어도 충분하듯이 시장에서의 평등에 반한 차별과 불평등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시장경제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영역에서도 다알의 논의에도 여러 가지 약점이 있는데, 이런 여러 약점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소유문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결여한 부분이다.

즉, 다알은 "자주관리는 소유권을 주주에서 종업원으로 이전하는 것"(제4장 '기업 내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 중에서)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정작 논의의 전개에서는 국공유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인위적인 자주관리제도를 접목시킨 유고의 자주관리기업도 "특정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적 소유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틀린 생각이다. 즉, 과거 유고연방의 국공유 형태는 다른 소비에트 유형의 국가주의 사회(이른바 사회주의 사회)와는 달리 중앙정부가 정한 전략 산업영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을 유고의 지방정부인 코뮌의 소유로 분산시켰다는 특이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그 소유의 전제 때문에 유고의 자주관리기업들은 당과 국가의 영향력으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다알은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을 했을 뿐, 보다 근원적으로 정치에서의 민주주의가 거꾸로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행동양식인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것은 아닌가 하는 형태의 문제의식은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이라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전할수록 상품생산과 상품교환의 장인 시장경제도 발전하며, 따라서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행동양식인 "자유와 평등"도 사회적 행위양식으로 발전할 것이라 자연스럽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나 자본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물적 토대에 기초한 것처럼,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회적 행위양식도 사회의 물적토대인 시장경제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고 성숙되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론을 바탕에 깔고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다알처럼 제한된 범위 내의 경제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제 전 영역에 걸친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정치에서의 민주주의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다알에게서는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로버트 A. 다알처럼 정치 민주주의적 접근을 하든, 이와는 달리 정치경제학 접근을 하든 경제영역에서의 결과는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슷한 결과가 상부구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 영향은 매우 상이할 수 있다. 

즉, 경제민주주의가 온전히 실현되어 경제생활 참여자들 모두가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된다면(따라서 일체의 불평등이 소멸된다면), 다알의 접근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현재보다 더욱 광범위한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적 접근에서는 이 경우 일체의 사회계급은 소멸할 것이므로, 계급과 계급이 대립하는 낡은 자본주의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이리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얘기했던 "실질적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자유로운 공동체의 첫 단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어쩌면 마르크스가 예측했던 대로 국가조차도 공동체에 필요한 부분들만 사회적 기관으로 형태 변환되고 스스로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물론 나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조차 소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끝으로 우리는 보다 중요한 측면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어떤 접근을 택하든 경제민주주의를 진전시키려는 사상은 사회 속에서 사회구성원들이 갈등 없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가장 인간다운 이상을 목표로 하며, 따라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장하고 격려해야할 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경제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접근방식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역사가 입증하도록 내맡겨 둬도 무방하며, 특히 다알의 접근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그이의 사상적 공헌은 매우 높게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 다알은 분명히 경제의 영역에서 획기적인 사상전환의 토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지금의 이 평가는 정치경제학,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 영역에서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음도 밝혀둔다. 예컨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구분, 자본의 민주주의 vs 경제민주주의, 이행론과 단계론(주주자본주의 vs 국가독점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이후의 문제(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vs 국가소유를 기초로한 사회주의)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쟁점들은 경우에 따라 "사상 투쟁" 수준의 격렬한 논쟁을 동반할 수도 있는 것들로, 나는 이와 관련된 문제제기들이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이라면 언제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평등이 어떤 자유를 위협한다는 말인가?

[기고] 자본의 민주주의 vs. 경제민주주의
2017.06.29 15:08:29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란 자본관계(또는 자본과 임노동관계)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생산관계를 가진 생산양식을 말하며, 자본주의(capitalism)란 바로 이처럼 역사적으로 특수한 생산관계에 기초해서 시장경제를 출발점이자 배경 또는 환경으로 운동하는 경제를 말한다.


반면에 시장경제(market economy)란 말 그대로 "상품교환의 장(field)"인 시장이 형성된 경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의 전통적인 3일장, 5일장 같은 시장들은 대개 소생산자들이 자신의 생산물의 일부를 관행적으로 약속한 날 약속한 장소에서 거래하면서 형성되는 시장으로 자본관계라는 특수한 사회적 관계없이도 성립될 수 있는 시장경제이다. 한마디로 시장경제는 다양한 사회적 생산관계를 바탕으로 할 수 있고(심지어 시장경제는 노예제나 봉건제 또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으며,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와 같이 생산자소유기업들을 바탕으로 할 수도 있다!) 자본 관계(따라서 자본주의)없이도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

또한 시장경제는 모두가 다 "자유로운" 판매자와 구매자로 "대등하게 만나" "준 것만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받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받은 것만큼 주는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경제로, 자유와 평등은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두 요소이자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행동양식이다. 

반면에 자본주의(capitalism)는 시장경제를 출발점이자 배경 또는 환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다른 유형의 시장경제들과 구분하여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하지만,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네 가지 자본형태인 화폐자본(또는 금융자본), 산업자본, 상품자본(또는 상업자본), 토지자본을 통해서도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준 것보다 더 많이 받는 또는 받은 것보다 더 적게 주는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경제로,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면 실질적 평등이 아니라 "형식적 평등" 또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경제다. 

즉,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참여자가 100원 어치를 주면 100원만 받아야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룰이자 행동양식이며, 이것이 곧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대전제다. 


반면에 시장을 배경으로 운동하는 자본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아야 한다. 화폐자본(또는 금융자본)에서는 100을 줬다면 그 대가인 이자와 합쳐 예컨대 110을 받아야 하고, 산업자본, 상품자본(또는 상업자본)에서는 100을 투자했다면 그 투자의 목적인 이윤과 합쳐 예컨대 110을 회수해야 하고, 토지자본에서는 사용의 대가인 지대(흔히 임대소득이라 하지만, 여기에는 토지사용의 대가인 지대와 함께 건물의 가치감가비용 등의 포함된다!)를 합쳐 예컨대 110을 받아야 한다. 

만일 자본의 운동이 시장경제원리와 꼭 같이 처음 100에 대해 100만을 받는다면, 시작과 끝은 꼭 같고 따라서 운동은 무의미하게 된다. 더구나 시장에서는 경우에 따라 판매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준 것보다 받지 못할 위험성도 있으므로, 이 경우 최선은 본전이고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므로 시장경제 원리가 온전히 적용되는 것을 자본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다.

어쨌든 마르크스가 그의 자본론을 통해 명쾌하게 구분해 냈듯이, "시장경제"와 "시장경제를 출발점이자 배경 또는 환경으로 운동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이와 같이 다른 개념 다른 범주로, 그 표현하는 행위양식에서도 "시장경제"가 경제에서의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를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인 반면에 "자본주의 경제"는 본질적인 불평등을 전제로 자본의 평등을 추구하는 '자본의 민주주의'(capital's Democracy, 마르크스의 표현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Bourgeois democracy)를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가 된다. 

다시 말해 경제민주주의는 모든 시장참여자들의 실질적 평등을 추구한다. 즉, 경제생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관계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 경제민주주의다. 

그러나 자본의 민주주의는 주주자본주의 시대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기업형태인 주식회사에서의 1주 1표에 기초하는 주주평등의 원칙(stockholder's equality principle)이나 또는 'one dollar, one vote'('1원 1표')의 원칙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시장참여자들의 실질적 평등을 배제하고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권리를 행사하는 불평등을 전제로 자본들 사이의 평등만을 추구한다. 


예컨대 자본의 민주주의에서는 자본들 사이의 경쟁의 평등을 위해 독과점은 규제의 대상일 수 있고, 동일한 자본은 동일한 이자 이윤 임대소득을 요구한다. 또한 기업에서 자본이 노동을 사용하는 관계조차도 경제민주주의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사용하는 따라서 노동의 입장에서는 사용당하는 불평등한 관계로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해야할 대상으로 한 눈에 드러나지만, 자본의 민주주의에서는 노동을 평등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등만이 문제로 된다. 

어쨌든 약간의 경제학적 통찰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장경제(market economy)"와 바로 이 시장경제를 출발점이자 배경 또는 환경으로 운동하는 "자본주의 경제 또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capitalism economy or capitalist market economy)가 다르다는 것은 쉬이 구분해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장경제"를 물적 토대로 하는 경제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를 물적 토대로 하는 자본의 민주주의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특히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이미 자본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민주주의를 'one dollar, one vote'('1원 1표')의 원칙에 따라 운동하는 자본의 민주주의와 같은 것으로 둔갑시켜, 시장참여자들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시정 해소하거나 또는 평등을 도모하려는 노력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하기까지 하다.


참고로, 이에 대한 최근의 예는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의 <한국경제신문> 칼럼 "경제학 개념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뉴데일리> 인터뷰 "노동자 권익, 노조 아닌 기업경쟁력이 보장" 등이다. 덧붙여 참으로 황당한 얘기라 생각되지만, 김승욱 교수는 아예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주의가 (레닌의 소비에트) 공산주의 개념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예컨대 자본에 의한 노동차별의 자유를 조장한 결과 발생한 저임의 비정규 노동자 차별문제를 시정 해소하거나 평등을 도모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자본에 의한 노동차별의 자유를 제한하는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이며, 또한 노동차별의 자유란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마땅히 제거해야 할 유형의 자유로 헌법에 보장된 기업 고유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 그 자체는 한 움큼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장참여자들 모두의 경제적 자유를 온전히 증진시키기 위한 경제민주주의 조치다. 그러나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가 경제민주주의를 자본의 민주주의와 같은 것처럼 왜곡 또는 혼용한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주의 진전은 영원히 불가할지도 모르며, 그 자리에는 자본의 민주주의와 차별과 불평등의 자유까지 내포한 자본의 경제적 자유만이 또아리를 틀게 될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경우,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는 자들이 다른 시장참여자들을 차별할 자유, 권한남용을 할 수 있는 자유, 부정한 이익을 편취할 자유, 불평등을 조장하고 지속시킬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자유는 차별 및 불평등 상태등에 놓인 다른 시장 참여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 구속하는 것들로,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 제거해야 마땅한 유형의 자유일 뿐이다.

그러므로 로버트 다알이 자신의 탁월한 책 경제민주주의에서도 반문했듯이, 경제민주주의와 자본의 민주주의를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반문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평등이 어떤 종류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말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