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기본소득이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우파 정책'으로 통한다는 것은 프레시안이 2015년에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 이재명 시장 '청년 배당'은 '우파 코스프레'?) 흑묘백묘(黑猫白猫)라는 말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복지국가'의 진짜 목적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을 내건 녹색당과 국가 역할을 강조하는 복지국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주로 엇갈리는데요, 그 가운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가 기본소득 정책을 분석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대한 반대론입니다. 프레시안은 반론, 재반론을 언제든 환영합니다.편집자
(☞ 원문 바로 가기 : 지금 기본소득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
나는 최근 언론에 회자되는 기본소득 논의가 불편하다. 이것은 내가 기본소득을 반대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나는 보수든 진보든 모든 담론과 정책의 열린 논쟁을 언제나 환영한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수년 전 우리나라에 기본소득 제도가 처음 소개됐을 때부터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복지국가 건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자칫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 다른 견해가 등장했고, 그것도 자칭 진보 쪽 사람들의 주장이니 존중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기본소득 제도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비판도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기본소득의 핵심 내용들을 숨기고 애매하게 포장해서 유포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장차 복지국가의 걸림돌이 될 게 자명하다. 그래서 나는 복지국가 운동가로서 당연히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 기본소득 비판 칼럼들을 쓰기 전에 나는 이런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대선 예비 주자의 한 명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기본소득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고 나왔고,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재명 시장은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개발한 한국형 사회 서비스 정책인 '공공 산후조리원' 사업을 실천했던 사람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이 글은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단지 한국의 기본소득 옹호론을 비판하고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을 밝히기 위한 것임을 밝혀둔다.
기본소득 제도의 핵심 내용을 숨겨서는 안 된다
탄핵과 대선 국면을 맞아 기본소득 제도가 세간의 이슈로 등장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 전부가 가짜다.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의도했던 것이겠지만, 다수의 언론들도 기본소득 제도의 본질과 핵심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외국의 사례들을 마치 기본소득인양 잘못 보도하는 많은 오류를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대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기본소득의 핵심과 본질에서 벗어난 가짜 기본소득으로 정치사회적 시민권을 얻으려 한다는 의심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지난 20년 동안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의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쟁취하기 위해 사회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보편주의 복지국가 운동을 해온 복지국가 운동가로서 나는 최근의 기본소득 논의가 장차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걱정스럽고 불편하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핵심 내용을 통해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모든 국민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게 진보적이고 좋지 않으냐'는 세간의 말에서 보는 것처럼 '기본소득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니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애매하고도 편의적인 이해의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유럽의 진보적 또는 좌파적 관점을 가진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정의한 기본소득 제도의 핵심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산 조사 없이 다른 소득이 있더라도 개인 단위로 매달 현금을 균등하게 지급한다. 둘째, 노동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되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소득을 지급한다. 이 원칙들을 충족해야 '진짜 기본소득'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다.
다시 설명하자면, 소득이 있거나 재산이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들을 제외하는 현금 지급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또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동일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1인 가구든 4인 가구의 구성원이든 각 개인이 매달 받는 기본소득은 같아야 한다. 여기에 차등을 두는 것도 기본소득의 개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는 무조건성은 기본소득 제도의 핵심 내용이므로,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삼는 기본소득은 가짜다. 실업자든 취업자든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 현금 지금이라야 진짜 기본소득이다. 마지막으로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가 가능할 정도의 현금이라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2015년 1인당 최저생계비가 62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수준을 넘는 금액이라야 한다.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진짜 기본소득'의 사례는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스위스의 기본소득 방안이 유일하다. 기본소득의 핵심적 개념에 비춰볼 때 미국의 알래스카 사례나 저개발 국가들의 실험적 소득분배 정책들은 '진짜 기본소득 제도'와 무관하다. 그래서 '가짜'다.
좌파든 우파든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를 대체하려는 기획
기본소득은 좌파 버전만 있는 게 아니다. 사실, 기본소득은 우파의 주장을 담기에 매우 좋은 그릇이다. 그래서 본래 기본소득 제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가 주목한 정책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은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세금을 많이 징수하거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것 등 국가 개입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복지국가 반대의 선봉장이었지만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좌파나 우파 모두 기존 복지국가 체제의 복지 제도들을 폐지하고, 이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면 복지국가의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 등 여러 복지 정책들에 들어가는 행정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시장주의의 효율성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더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시장임금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이것도 기본소득이 우파 시장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중요한 지점이다.
실제로 2012년에는 일본의 극우파 정치인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이 이런 기본소득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었다. 2017년 1월부터 국가 단위로는 핀란드가 처음으로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갔는데, 이것도 우파의 기본소득이다. 핀란드 정부는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2년 동안 매달 약 70만 원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것은 진보적 또는 좌파적 기본소득의 핵심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노동의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것인데, 핀란드는 취업자들은 제외하고 실업자들에게만 현금을 지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편, 핀란드는 기본소득을 추가로 지급하는 게 아니다. 실업자들에게 지급하던 기존의 실업급여와 공공부조 같은 복지국가의 제도적 복지 급여들을 중단하고 이것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 중도우파 정권의 유하 시필레 총리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 체계의 간소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를 효율화해서 공공 복지의 크기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또 실업자들에게 실업급여 대신 기본소득을 지급해서 이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취업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노동시장을 더 유연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진보적 또는 좌파적 기본소득 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모든 성인에게 매달 300만 원씩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국민투표의 내용은 노동의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를 가능케 할 정도로 충분한 현금을 보편적으로 지급한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의 본질에 해당하는 핵심적 내용들을 잘 담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복지국가 체제의 효율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파 기본소득 제도와 같은 우려를 낳게 한다.
결국 기본소득 제도는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를 대체하려는 기획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 체제는 무엇인가? 복지국가 체제는 국민 모두에게 생애주기에 걸쳐 보편적으로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한다. 먼저, 복지국가들은 소득의 보장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사회보험과 사회수당 제도를 운용한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기초생계비가 부족할 경우에는 공공부조 제도가 작동한다. 다음으로, 사회 서비스의 보장을 위해 보육·교육·의료·요양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한다.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근로 능력이 있는 성인들은 누구라도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도록 하고, 국가는 국민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보편적 사회보험 제도가 작동해서 어떤 위험 상황에서도 소득의 단절이 없도록 한다. 그리고 근로 소득이 없는 특정 인구에 대해서는 조세 기반의 아동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 같은 보편적 사회수당 제도가 작동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복지국가가 해법이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복지국가의 이런 소득 보장 제도들을 폐지하고 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우파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효율성의 논리를 앞세워 보육이나 사회복지 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도 상당 부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입장이다. 이들은 장차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일자리 수가 감소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하는데, 복지국가 체제로는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므로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선진국들은 이런 주장을 거부했고, 현실의 세계에서 진짜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 이는 기본소득 제도의 전제가 틀렸거나 너무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겠지만,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복지국가의 소득보장 제도들을 폐지하고 전 국민에게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주면서 일자리 문제를 주로 시장에 맡겨놓자는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주장대로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새로운 일자리는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로 전락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다. 이는 다분히 신좌파의 무정부주의적 입장이며, 우파의 시장주의 기본소득은 더 노골적으로 복지국가 체제를 효율화하려는 '작은 정부'의 시장 만능주의 노선일 뿐이다.
결국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본소득 제도는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노동시장과 일자리 정책의 성공적 집행을 위해서도 그동안 성과가 입증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책임 있는 역할이 더 크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민간과 협력하고 공공 부문의 역할을 강화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들 간의 임금과 복지 격차를 최소화해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총체적인 개입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좌파의 방식이든 우파의 방식이든 장차 기본소득 제도가 복지국가의 역할을 대체하면, 국가는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경우에 따라 거의 대부분)을 국민 개개인의 통장에 입금하는 소극적 역할만 담당하게 된다. 여기서 정부는 규제와 재정을 통한 시장 개입 능력을 크게 상실해서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주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다.
가짜 기본소득 논의 대신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에 주력해야
최근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기본소득은 노동의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생계 보장이 가능할 만큼의 현금을 보편적으로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핵심 개념과 무관하다. 이재명 시장의 대선 공약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국민 5000만 명 모두에게 매달 2만5000원씩(연간 30만 원) 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2015년 1인당 기초생계비인 62만 원에 크게 못 미치는 푼돈일 뿐이다. 그래서 '가짜 기본소득'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아동, 노인, 장애인에게 주겠다는 기본소득은 성숙한 복지국가들에 이미 다 있는 보편적 사회수당인 아동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이다. 이들은 복지국가의 사회수당 제도에 기본소득 이름을 붙였다. 심지어 이들은 보편적 사회수당 제도를 선별적 복지라고 호도하기도 한다. 학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옳은 처사가 아니다. 복지국가의 사회수당 제도에 기대어 기본소득 용어를 연착륙시키려는 꼼수로 보인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다.
논쟁을 제대로 하려면 모든 성인에게 노동의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1인당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약 70만 원 이상의 현금을 매달 지급해서 복지국가의 소득보장 제도를 대체하겠다는 기본소득 제도의 핵심 내용을 정책으로 들고 나오는 게 옳다. 이렇게 한다면, 나는 반대는 하겠지만 더 이상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은 독일 좌파당의 일부 세력 등 유럽의 기본소득 제도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진짜 기본소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온갖 종류의 '가짜 기본소득' 정책들에 노출돼 있다. 일부 미취업 청년에게 현금을 주고는 여기에 청년 기본소득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이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며, 성숙한 복지국가 체제에 이미 존재하는 일자리와 소득 보장의 제도적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복지국가의 아동수당 제도에 아동 기본소득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 대신에 "모든 아동들에게 월 15만 원씩 아동수당을 지급"해서 복지국가의 소득보장 제도를 확립하겠다고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정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시장은 대선 공약으로 모든 아동들에게 연간 130만 원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월 10만8000원씩이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16세 미만의 아동 770만 명에게 보편적으로 월 15만 원씩 지급하는 연간 14조 원짜리 보편적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재명 시장이 모호한 개념의 아동 배당이나 아동 기본소득이란 이름 대신에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수당 제도인 아동수당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초보적 복지국가에 머물고 있다. 갈 길이 바쁘다. 지금은 무익한 가짜 기본소득 논의 대신에 한국형 보편주의 복지국가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 당장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에 맞게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급여(소득 대체율) 수준을 높여야 한다. 아동수당의 도입과 함께 고용과 연계한 청년수당을 도입해서 실질적으로 청년의 고용과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인 A값의 15%(32만 원)로 올려야 한다. 현재의 약 20만 원보다 12만 원 정도를 더 지급하자는 것이다. 장애인 수당도 마찬가지이다. 이재명 시장의 경우에는 노인과 장애인에게 월 10만8000원씩을 더 지급하겠다고 했으니 노인과 장애인 기본소득이라는 말 대신에 기존의 노인수당(기초연금)과 장애인수당을 A값의 15%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하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서비스에 대한 재정 투입을 늘리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 4대 사회서비스의 외형적 보편주의는 달성했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질적 수준과 공공성 수준이 여전히 낮다. 갈 길이 멀고 급하다. 왜냐하면 사회서비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구성원 누구라도 누려야할 사회권적 권리이자 '사람에 대한 보편적 투자'를 의미하는 경제학적 가치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사회서비스는 일자리의 보고이다. 유럽 선진 복지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회서비스에 대한 재정 투자를 지나치게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보육과 요양 분야 등의 취업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받으며 CCTV 감시를 당하기도 한다. 공교육은 부실하고 교육비 부담은 여전히 높다. 의료와 요양은 본인 부담의 비중이 여전히 높고, 이들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우리는 지금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사람에 대한 보편적 투자'에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런데 5000만 명 모두에게 월 2만5000원씩을 나눠주자는 주장이 대선을 앞두고 하나의 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나는 소득재분배 효과라는 이 정책의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둬들이고 여기에 소요될 연간 15조 원을 보육 등 4대 사회서비스 분야에 투입할 것을 요청하고 싶다. 이를 통해 사회서비스의 공공성과 질적 수준을 높이고, 이 분야의 일자리를 공공성 높은 안정된 일자리로 바꿔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유럽 선진 복지국가들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이룬 "공공 복지 향상-일자리 창출-여성 고용 확대-조세 부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의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의 길을 재촉해야 한다. 독일 좌파당의 일부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이나 스위스 국민투표에 포함된 것과 같은 '진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 여부는 먼 훗날 다시 정식으로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끝으로 이 글은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와는 완전히 무관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지금 우리는 국민 행복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기본 소득이 아닌 보편적 복지국가)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가짜라니요?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을 내건 녹색당과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복지국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주로 엇갈리는데요.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히자,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프레시안은 반론, 재반론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편집자
2월 28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이상이 교수의 칼럼("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을 보고 기본소득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로서 토론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일단 반가움이 앞섰다.
여기서 이 교수는 요즘 대선 국면에서 회자되는 "가짜 기본소득" 때문에 "불편하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교수의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오해와 몇 가지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인해 이 교수만큼이나 불편하다. 그래서 우선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과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에 대해 명확히 함으로써 작으나마 토론이 올바르게 전개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관련 기사 :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먼저, 이상이 교수는 기본소득의 정의를 "첫째, 자산 조사 없이 다른 소득이 있더라도 개인 단위로 매달 현금을 균등하게 지급한다. 둘째, 노동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되,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소득을 지급한다. 이 원칙들을 충족해야 '진짜 기본소득'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월 62만 원 이하의 금액이나 알래스카 사례(금액 미기재)는 "가짜"이고, 작년에 부결된 스위스의 기본소득만 유일하게 "진짜"라고 주장한다.
물론 기본소득의 정의에 대해서도 논자마다 다른 견해를 가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세계적 네트워크인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 Basin Income Earth Network)는 각양각색의 정의들을 종합하여 그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즉, 기본소득은 1) 정기적으로, 2) 현금으로, 3) 개인 단위로, 4) (자산 조사 없이) 보편적으로, 5) (노동 또는 노동 의사에 대한 요구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다(www.basicincome.org).
이 교수의 정의를 이것과 비교해 보면, '정기성'이 '매달'로 국한되어 있고, "충분한 소득"이라는 소위 '충분성'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다. '정기성'은 분기 단위, 1년 단위 등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매달'로 국한한 것은 작은 오류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충분성'의 추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금액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의 현금지급은 위의 다섯 가지 특징을 충족하더라도 "가짜 기본소득"이고, 정확하게는 "기본소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충분성 요소에 대해서는 논란이 너무 커서 BIEN도 그것을 공식적 정의에 포함시키지는 않고, 금액이 모든 개인의 사회‧문화적 참여에 충분할 경우를 '완전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으로, 그에 미달할 경우를 '부분 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으로 구분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 부분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한 채 소득을 추가하는 낮지만 점증하는 기초(low and slowly increasing basis)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국제적 합의가 철칙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상이 교수는 BIEN의 공식적 정의를 도외시하고, 독자적으로 충분성을 기본소득 정의에 포함시킴으로써 기본소득의 개념을 협소화시키고, 부분 기본소득을 "가짜"라고 비난하고 있다. 무언가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이런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무리수는 이 교수가 기본소득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을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사실, 기본소득은 우파의 주장을 담기에 매우 좋은 그릇이다. 그래서 본래 기본소득 제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가 주목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 일본의 극우파 하시모토 전 오사카 시장, 최근의 핀란드 시필레 정부를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 관계가 틀렸다.
기본소득 사상은 저 멀리 16세기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 이론 체계를 갖춘 것은 198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로버트 판 더 밴(Robert van der Veen)과 벨기에의 필립 판 빠레이스(Philippe van Parijs)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이들 논문의 제목이 "공산주의로의 자본주의적 길"(A Capitalist Road to Communism)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우파가 아니라 좌파 이론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까지도 BIEN을 주도하고 있다.
물론 이상이 교수가 언급한 대로, 신자유주의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에 기본소득과 유사한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 소득 이하의 저소득층에게 보조금(부의 소득세)을 지급하는 제도로 자산 심사(소득 심사)를 전제로 하고 있어서 '보편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 교수가 "기본소득은 본래 우파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소득 논의의 흐름에 대한 왜곡이다.
물론 기본소득은 좌파뿐 아니라 우파 중에서도 지지자가 있다(동시에 좌‧우파 모두에 반대자들도 있다). 그리고 우파들은 대체로, 이 교수의 주장처럼, 다른 사회보장 제도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서 복지 수준을 하향시키자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교수가 "진짜(충분한 금액이 지급되는, 좌파적) 기본소득"은 없고 지금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모두 우파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이고 일방적인 아전인수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의 구체적 모델은 지급 대상(보편성), 금액의 수준(충분성), 기존 사회보장과의 통합(대체) 수준(통합성), 재원 조달 방안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으며, 좌파적으로도, 우파적으로도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 부연 설명하자면, 기본소득이 '보편성'을 갖지만, 그것은 국민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산 심사가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특정한 연령대와 특정 집단(예컨대 장애인)으로 지급 대상을 국한하는 것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리고 '충분성'은 애초에 기본소득 정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금액이 낮은 부분 기본소득이라고 해서 "가짜"는 아니다. 또 '통합성'은 선택의 문제이지, 이 교수의 주장처럼, 모든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회보장보다 낮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본소득으로 통합하자는 우파적 모델도 있고,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하자는 모델, 충분한 금액을 지급하면서 통합하자는 좌파적 모델도 있다. 끝으로 재원 조달과 관련해서는 조세 체계의 개혁(예컨대 소득세 폐지와 부가가치세로의 일원화)이나 공유 자산세(토지세, 환경세, 인공지능세 등) 신설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요컨대 기본소득의 모델은 "가짜"(우파적) 모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의 요소들을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캐나다의 Young & Mulvale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모델은 이념형(ideal types)적으로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즉, 적은 금액의 기본소득으로 기존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최소주의적 자유주의 모델'(minimalist-libertarian model), 기존 사회보장을 유지하면서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혼합 복지 모델(mixed welfare model), 그리고 충분한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존 사회보장과의 통합에 대해서는 유동적인 '강한 기본소득 모델'(strong basic income model)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교수가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 공약은 "가짜", "꼼수" 또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기본소득이다. 즉, 지급 대상을 아동,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 등으로 국한하고(토지 배당은 전국민), 금액이 낮은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하며, 기존 사회보장은 유지하고, 국토보유세라는 새로운 세원을 개발한 '혼합 복지 모델'의 기본소득이다. 그에 대한 세세한 분석은 생략하고, 나는 그 공약이 이 교수 말대로 "초보적 복지국가"인 우리나라의 복지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이상으로 이상이 교수의 '기본소득 반론'을 개념과 사실관계 위주로 검토해 보았다. 혹시라도 재반론이 있다면, 기본소득 논의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논점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하고, 두 가지만 간단히 지적하고 마무리 하고자 한다.
앞에서 이 교수가 우파의 사례로 일본의 극우파인 하시모토를 언급하였는데, 그가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주된 이유는 공공부조 지급을 위해 실시하는 자산 조사(means test)가 없어서 행정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좌파도 인정하는 기본소득의 장점이다. 저소득자에 대한 '낙인 효과'가 없다는 장점과 함께.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보편적 사회 수당을 기본소득이라 한다고 "꼼수"라 비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열정적인 복지국가론자인 오건호 내만복 운영위원장의 다음 말로 갈음하고 싶다. "사회수당이 왜 기본소득이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지만 이름이 무엇이면 어떤가, 오늘 걷는 길이 같으면 함께 가면 된다." (<경향신문> 201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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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 일자리 창출 기업환경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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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 임기 내 정규직 고용 55%에서 80%로 확충,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최저임금을 1만원, 공공부문 비정규직 ‘원샷 정규직 전환’, 불법파견 엄단,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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