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가짜' 만드는 대학의 비극 - 우리는 여전히 '아전의 나라'에 살고 있나

일취월장7 2017. 6. 22. 10:04

'가짜' 만드는 대학의 비극

[기자의 눈] 중앙대 대학 평가 자료 조작 사건, '꼬리 자르기' 안 된다
2017.06.21 09:20:20

이 말을 해야겠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중앙대학교 대학 평가 자료 조작 사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습니다.

'가짜 자료' 만든 직원이 '의욕 과다'인 이유는?

사건부터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지난 6월 8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평가기관 영국의 QS(Quacquarelli Symonds) 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에 중앙대학교가 빠져있었습니다. 2015년 461위, 2016년 386위로 무려 75위나 껑충 뛰었던 터라 올해 성적이 기대됐었는데 말입니다. 

순위표에서 중앙대를 찾을 수 없던 건 등수가 떨어져서가 아니었습니다. QS는 "중앙대학교에 유리한 비정상적인 데이터 흐름을 발견해 올해 전체 순위에서 중앙대학교를 제외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평가 지표 가운데 하나인 '졸업생 평판도' 부문 자료였습니다. 이 졸업생 평판도 자료는 기업체의 인사 담당자들이 직접 작성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나 중앙대는 교직원인 대학 평가 담당자가 대신 작성해 QS에 제출했습니다. 한마디로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중앙대 측은 "한 직원이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의욕이 과했다"며 해당 직원을 징계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앙대 구성원들은 참담하다는 반응입니다. SNS에 올라온 중앙대 학생들의 글을 보니 '쪽팔린다', '자괴감이 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14일 "우리 대학은 부끄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탄식 섞인 성명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이 총장단·기획처장·평가팀장·실무자 등 연석회의에서 약속한 세 가지 사항을 공개했습니다. △총장 명의의 사과문 게시, △해당 실무자, 관리자 인사조치 공개, △재발 방지를 위한 관리체계 보완입니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페이스북


제가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세 가지 공약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허전한 감이 듭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학교 측은, 혹은 연석회의 참가자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를 한 직원의 '부정 행위'로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번 사태가 과연 한 직원의 그릇된 윤리의식 때문만으로 벌어진 일일까요. 

19일, 중앙대 교수협의회가 성명을 내 총장단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이제 우리 중앙대학교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비리대학으로 낙인 찍히게 됐다"면서, "언론과 외국기관 등 외부평가에 치중하면서 정작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과 내실은 철저히 훼손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과 외국기관 등 외부평가에 치중하면서 정작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과 내실은 철저히 훼손됐다." 저는 이 대목에 이번 사태의 진짜 원인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평가에 목매는 대학, 고통받는 학생과 교수 

3년 전, "대학 평가, '등수 놀이'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썼습니다. 당시 만난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외부평가에 치중하면서 정작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과 내실이 철저히 훼손됐다"는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이미 지면에 소개된 '하소연'들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대학이 대학 평가를 중심으로 목표로 움직인다. 취업 안 되는 과는 밀어주지 말아야 한단 얘기가 대학 사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러니 철학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공격적으로 변한다. 철학 얘기를 한마디라도 하려고 하면, '선비 납셨네, 유토피아 좋죠' 이런 식이다. 대학을 떠나고 싶다."(사회학자 오찬호 작가) 

"소위 경쟁력 높인다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복지 증진에 힘을 쏟기보다는 지표를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서울 소재 A 대학 송진태(가명) 교수)

"학교에서 영어 강의를 늘리려고 별 수를 다 써요. 이름만 영어 강의인 수업이 되게 많아요. 완전 사기죠."(서울 소재 B 대학 김종민(가명) 학생) 

각 대학이 대학 평가에 목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랩니다. 국내 모 언론사는 '경쟁 코드'를 심어 각 대학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명분 하에 지난 1994년부터 매년 각 대학을 평가해왔습니다. 취업률,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 교수 논문 수, 강의실 수, 평판도 등을 점수로 매겨 각 대학을 줄 세우는 것입니다. 

좋은 학생을 모으려는 대학은 순위 높이기에 혈안이 되고, 그야말로 '평가'를 위한 투자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취업 안 되는 과는 밀어주지 말아야 한단 얘기가 대학 사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이름만 영어 강의인 수업"을 개설해 학생들의 불만족을 초래하거나, 한국어문학 수업마저 영어로 수업하는 어이없는 일도 생깁니다. 교수들은 연구 실적 올리랴 강의 준비하랴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강의실 수를 늘리려 쓸데 없는 '유령 건물'을 만드는 일도 허다합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은 갈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대학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가짜 자료 제출 사건'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대학 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일 따름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요.



▲2014년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시위. ⓒ프레시안(서어리)


직원 징계를 통해 '꼬리 자르기'하는 것으로는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해당 직원의 '의욕 과다'를 부른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대학 평가, 여기에 목 매는 지금의 대학 현실을 돌아봐야 합니다.  

"평가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외면할 수 없지 않느냐." 각 대학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오히려 대학이 대학 평가 제도의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평가에 동조하며 오히려 결과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온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각 대학은 '대학 줄 세우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바로 이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중앙일보> 평가는 문제다. 그러나 언론사 대학 평가는 언론사의 권리이다. 이걸 비난할 수는 없다. 나는 대응의 문제라고 본다. 총장들은 이 문제들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다. 특히 상위권 대학은 앞장서서 중앙일보를 지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대학 평가 결과는 총장으로서 명예와 직결된 일이다. 그래서 학생이 어떻게 되든, 우리말이 어떻게 되든, 일단 우리 대학 순위만 올라가면 된다는 식이다. 총장들이 묵인·방조를 하면서 이제 대학 평가 자체가 사회적 권력이 됐다. 누구도 그 권력을 제어할 수 없다. <중앙일보> 평가는 이제 저절로 구르는 마차가 되어버렸다." 

지금 중앙대가, 한국의 대학이 만든 것은 '가짜 자료'만이 아닙니다. 가짜 강의, 가짜 대학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가짜를 도려내는 게 개혁입니다. 누군가 칼을 들이밀기 전에, 가짜가 되어버린 대학 스스로 개혁의 방향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기사 : 대학 평가, '등수 놀이'의 그림자

① 고대생들이 <중앙일보> 대학 평가 거부한 까닭
② '등수'에 목매는 대학, '교육'은 나 몰라라
③ "<중앙>을 구르는 마차로 만든 게 누구인가?"
④ SKY 출신 아니면 학벌주의 비판도 못한다?
⑤ "철학 이야기에, '선비 납셨네'?…암울한 대학"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 학생이 말한다


by 박경류·윤혜주·이윤서

문재인정부가 대선 후보 시절 핵심 공약이었던 외국어고(국제고 포함)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공평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고교서열화를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가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명문고가 돼버렸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정책이 실행된다면, 특목고 위주의 고교서열화가 이전보다는 많이 사라질 것이다. 학생부종합, 교과 비중보다 수능 중심으로 많이 회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불평등한 교육의 문제가 사라진다는 점은 장점이다.

이처럼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학생들의 입장은 다르다. TONG청소년기자가 다니는 울산외고에서도 의견 차이를 보인다. 이 기회에 외고를 포함해 일반고 학생, 자사고 학생의 의견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또 그들이 생각하기에 특목고와 자사고의 특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먼저 폐지를 반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2015년 4월, 서울외고 학부모 400여명이 서울교육청 앞에서 서울외고 특목고 지정취소에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외고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받고, 오는 28일 발표될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중앙포토]
2015년 4월, 서울외고 학부모 400여명이 서울교육청 앞에서 서울외고 특목고 지정취소에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외고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받고, 오는 28일 발표될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중앙포토]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울산외고(*특목고) 정준영) “저는 폐지를 반대합니다. 제가 다니는 외고는 외국어 인재를 기르는 학교예요. 글로벌 시대에 필수인 외국어를 외고에서 미리 배우고 대학에서 각자의 전공을 배워 글로벌 리더로 성장해 나갈 수 있죠.”

(울산외고(*특목고) 박재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특목고를 설립한 목적 자체가 애초에 인문계와는 다른 교육을 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거꾸로 이것이 이유가 돼 폐지해야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또한 인문계 학생과 특목고 학생이 같이 수업을 듣는다면 저희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요? 서로의 학습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조화를 맞추려다 보면 당연히 평균 성적은 낮아지고 저희들의 학습욕 또한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울산 무거고(*일반고) 정하윤) “특목고는 이름 그대로 특수목적고등학교, 즉 목표가 뚜렷한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다가기위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찍이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굳이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학생들을 장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울산 에너지마이스터고(*특목고) 장우석)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현재 특목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근거 중에는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에 유리한 특목고의 환경을 들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이 재학 중인 특목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특목고는 특정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을 그 쪽 분야로 특화시켜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니까요. 제가 다니는 마이스터고 같은 경우에는 일반고에 비해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과목에 할애하는 시간이 상당히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전공 과목시간이 그 시간을 대체해요. 이러한 부분은 저희 학교가 목표로 하는 영 마이스터 육성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마디로 특목고와 일반고의 설립 취지, 교육 목적이 다르다는 말이죠. 특목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에 유리한 특목고의 환경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만약 특목고를 폐지하게 된다면 특목고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상당히 줄어들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학생들은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더 학원을 다니려 하지 않을까요.” 

-특목고나 자사고가 인문계에 비해 가진 특권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울산외고(*특목고) 정준영) “앞서 말했 듯, 고등학생 때 영어와 제2전공어를 미리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라고 생각해요. 고등학생 때 외국어를 습득해 장차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거죠.”

(울산외고(*특목고) 박재현) “아마 환경 아닐까요? 학생들 사이에 형성된 분위기, 그리고 교사들이 형성해주는 환경이라고 봅니다. 학생이 공부하기 보다 편안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거죠. 이것이 대학 진학에 영향을 끼친다고 봅니다. 학생들은 경쟁 등의 이유로 치열하게 공부하고, 교사들은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교수법이나 수업 내용을 몇 번이고 검토하죠. 이 두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해 보다 나은 학습 환경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울산 무거고(*인문계) 정하윤) “특목고나 자사고가 타 인문계보다 누리고 있는 특권 중 가장 큰 건 아무래도 학교의 이름값, 학교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특목고나 이름 있는 자사고의 2~3등급과 일반 인문계의 2~3등급은 숫자는 같아도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내신시험의 난이도가 어려워 모의고사나 수능시험에 조금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정도 같아요.” 

(울산 에너지마이스터고(*특목고) 장우석)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잘하는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고에서는 저희가 원하는 분야를 전담하는 선생님이 없지만, 특목고에는 이러한 분야를 전공과목으로 만들고 전담해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목고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 외에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목고마다 학교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그리고 특목고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분야에 도움되는 것을 일반고보다 많이 체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쌓여 학생들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됩니다. 이런 부분이 저는 특목고가 가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폐지를 찬성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취재원이 희망한 경우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울산외고(*특목고) 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특목고에 다녀보니 확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못했는데 고등학생 때 재기를 꿈꾸는 학생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학생들은 특목고 학생보다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요. 중학교 때 공부가 좀 부족했다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기회가 적다는 건 억울한 것 같아요. 솔직히 외고 학생이 4등급이라면 운이 좋을 경우 서울의 웬만한 대학교를 갈 수 있지만 일반고는 지방 대학도 힘든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평등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울산 우신고(*일반고) 황룡) “폐지에 찬성합니다. 특목고는 입학 성적이 다른 일반계에 비해 상당히 높으며, 면접을 요구하는 경우 또한 있습니다. 입학이 쉽지 않은 만큼, 그에 이점도 있는데요. 바로 ‘대입에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대입에 있어 전형 요소는 ‘과정이 중요한 요소‘, ‘결과가 중요한 요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과정‘의 경우는 학생부 교과·비교과, 실기(특기)입니다. 학생부 교과·비교과의 경우 학생의 학교생활이 3년간 계속 기록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실기(특기)의 경우 학생의 적성에 맞게 수상, 어학 성적 등 고교 과정 동안 축적한 내용이 주요 평가 요소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죠. ‘결과’의 경우는 논술, 그리고 수능입니다. 모의고사나 수능 학력평가보다 대입의 최종 시험인 수능을 활용하고, 논술 역시 각 대학에서 실시한 논술 시험 결과만을 활용합니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죠. 특목고는 대입을 준비하며 ‘과정과 결과 두 가지 모두 관리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줍니다. 당연히 대입에 유리하죠.

그러나 이런 점들은 어디까지나 특목고에 진학한 학생들의 것입니다. 특목고는 앞서 말했듯 준비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운데, 높은 수준의 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면접까지 신경써야 합니다. 성적은 좋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 모든 준비과정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고교 진학부터 이미 격차가 벌어지고 맙니다.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가 그동안 계속 야기됐던 학생들 간의 평등한 출발선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걸음 나아가는 방향이 되진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산동고(*일반고) 김민지) “찬성합니다. 물론 외고나 자사고에 들어가기 위해 학생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특목고·자사고와 일반고가 다른 시작점을 두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일반고든, 또는 특목고·자사고든 모두 시작점은 똑같아야 하고,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혜택이나 이득이 없어야 한다는 거죠. 현재 외고나 자사고를 보면 일반고에 비해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어요. 공부 환경은 학생들 수준에 따라 비평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비교과 부분(소논문, 동아리 등등)에서는 외고나 자사고 학생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많습니다. 그리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학업성적이 좋아도 장학생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높은 비용 때문에 입학지원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목고나 자사고가 인문계에 비해 가진 특권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울산외고(*특목고) 조○○) “대학 갈 때 메리트겠죠. 이처럼 특목고가 큰 메리트로 작용하기 때문에 폐지가 맞다고 생각해요.”

(울산 우신고(*일반고) 황룡) “위에서 언급했듯 ‘과정과 결과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관리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일산동고(*일반고) 김민지) “메리트는 좋은 공부환경과 학벌이죠. 또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는 활동을 많이 지원해 준다는 점도 있죠. 학교 자체에서도 대학 입시에 관심이 많아서 설명회 같은 행사 등을 통해 학생들을 많이 지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특목고·자사고 폐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폐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동등한 시작점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고,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은 특정 분야에 뛰어난 학생들에게 차별화된 교육을 실시해 미래의 인재 육성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특목고, 자사고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우리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박경류·윤혜주·이윤서(울산외고 2) TONG청소년기자



우리는 여전히 '아전의 나라'에 살고 있나

[기고] 법원행정처 사태, 아전을 다시 생각한다
2017.06.21 13:22:22

법원행정처 사태에 '아전'을 생각하다

원래 행정사무 업무란 보조적 업무여야 한다. 즉,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돼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전반적으로 행정사무 업무가 오히려 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사법부 법원행정처가 대표적 사례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인사관리와 기획조정 업무를 장악하면서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렇게 관료 조직 대부분 행정사무 부서가 인사와 예산 그리고 각종 사무분담 업무에 의거해 원래 보조기관이지만 상위에 군림하면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다. 주객전도다. 공공성과 가치와 철학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사무와 규정 그리고 상명하복과 형식주의가 대체했다.  

전체 관료사회에 보편화된 이러한 특수 기제는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하고 재생산하는 토대로 기능하며, 관료주의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은 이러한 풍토에서 횡행할 수 있었다.  

관리 능력의 제한을 목표로 한 '아전 독재'의 관료 역사  

조선시대 혹은 중국 역사에서 아전(衙前)이란 사회적 지위가 낮아 일반적으로 멸시를 받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아전들이 실제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이들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고, 세금을 더 걷을 수도 덜 걷을 수도 있었으며, 어떤 공사든지 중단시킬 수도 있었고 아니면 더 크게 짓도록 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에서 특히 극심했다. 아전들은 지방의 실제 정황에 매우 정통했고 관아의 하부 행정 역시 오직 아전들만이 이해하고 처리해낼 수 있었으므로 지방으로 파견되는 관리들은 전적으로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각 아문의 각종 조문들도 모두 아전들이 제정했다. 조례의 제정은 대부분 이들의 의지가 조정(朝廷)의 의지로 전화됐고, 지방 관리의 임명은 대개 이부(吏部) 서리가 결정했다. 사실상 실제적인 일체의 사무에 있어 이들 아전들이 전문가였고, 따라서 그 처리는 철저하게 이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명말청초의 대학자인 황종희(黃宗羲)는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천하에 아전(吏)의 법만 있고 조정의 법은 없다"고 풍자했다. 사실상 '아전 독재'였다. 

중국에서 역사상 황권(皇權)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정책은 중앙에서 각종 방법으로 재상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지방에서는 각종 방식으로 지방장관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방장관의 임기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그들로 해금 근본적으로 지방 정무에 숙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황제는 기꺼이 이들 아전들과 천하를 함께 통치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역사상 이러한 구조 속에서 모든 행정 시스템의 설치와 운용이 관리(官吏) 개인의 능력 발휘를 제한함으로써 효율적인 통치의 도구화에만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과연 '아전공화국'을 넘어섰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과연 '아전독재', '아전공화국'을 넘어선 것인가? 가령, 유신과 국보위가 국회를 자신들의 하수인 혹은 거수기로 전락시키기 위해 도모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시스템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회판 "가만히 있으라!"이며, 이는 입법관료의 득세를 동반했다.

관료집단의 무능에 관련해 저명한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은 '훈련된 무능력(trained incapacity)'라고 했다. 공정과 효율, 합리성을 추구해야 할 관료사회가 제도와 규칙을 준수하도록 훈련받으면서 독선과 형식주의, 무사안일, 책임 전가, 규제만능 등의 병리적 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기 어렵고 유독 한국에만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비정상적 시스템 중 관료조직이 예외일 리 없다. 오히려 그 정도가 더욱 심한 편에 속한다.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우리의 공무원 선발제도를 비롯해 전일적인 상명하복 문화의 존재와 오로지 승진만이 지상 목표가 된 조직, 이 구조와 그 구성원들은 블랙리스트며 댓글부대며 4대강 사업 등등 그 어떤 일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이 조직은 체계적인 회계감사 시스템과 사업평가 시스템이 철저히 부실했다.  

"영혼 없는 공무원"만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바꿔라
 

공무원 관료 조직은 외부에서의 진입이 철저히 봉쇄돼 있을 뿐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지금은 5급 공채로 그 이름만 바꾼 고시 출신의 성골을 비롯해 진골 그리고 육두품 등등의 차별과 장벽의 철옹성으로 둘러쳐진 강고한 조직이다. 온전히 그들만의 영토이고 그 영토 안에서 승진을 매개로 하는 상명하복의 문화와 관행으로만 '잘 훈육된' 구성원이 존재하며, 그들이 쌓아올린 그들만의 금자탑이다. 그들이 곧 규칙과 룰(rule)의 제정자다.

명색이 박사인 필자는 근무하는 기관에서 "연구 분야의 직위"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공직 사회의 현 주소다. 필자를 잘못 뽑았거나 최소한 '인력 낭비'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아픔, 필자도 그 아픔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래 희망하는 직업 1위는 바로 공무원이다. 정의감 있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해마다 속속 공무원 조직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별난 관료문화의 '강력한 훈육' 속에서 진입 후 대부분 불과 몇 년 만에 초록동색 유사한 조직 구성원으로 변한다. 나라가 나라답기 위해서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공무원 조직이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영혼 없는 공무원"을 재생산하는 지금의 시스템을 바꿔내지 않는 한, 블랙리스트는 다시 출현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 사회는 결코 희망으로 내일을 채색하기 어렵다.



《82년생 김지영》 신드롬에 담긴 남성 중심 사회 경고

7개월 만에 판매부수 10만 부 돌파…주장·대결 아닌 공감으로 접근

정덕현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2(목) 08:30:00 | 1444호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7개월 만에 판매부수 10만 부를 돌파했다. 최근 서점가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생긴 베스트셀러는 희귀한 일이다. 특히 소설이라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단지 소설과 출판가라는 범주 안에서만 이 현상을 해석하기는 어렵고,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을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이 신드롬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100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린 《노무현입니다》 같은 다큐 영화나, 봄만 되면 마치 좀비처럼 되살아나 가요 차트에 올라오는 장범준의 노래들처럼, 최근 신드롬이 된 대중문화 콘텐츠들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양상들이 비슷하게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역주행·입소문·소외된 것들, 그리고 보편성 같은 것들이다.

 

ⓒ 민음사 제공

ⓒ 민음사 제공


 

역주행·입소문·소외된 것들, 그리고 보편성

 

지난해 10월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당시만 해도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역주행하기 시작하더니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는 지금도 순항 중이다. 그 역주행의 진원지는 입소문이다. 소설을 읽어본 이들이 차츰 그 공감대를 넓혀 나갔고, 그래서 별다른 홍보 마케팅 없이도 이 소설은 누구에게나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대중들 스스로가 입소문을 내게 되는 데는 이 소설이 던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하는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어왔던 일들이지만, 그다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외되었던 이슈를 이 소설은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남녀와 세대를 떠나 ‘82년생 김지영’이 아니어도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거나 목격했을 사건들을 담았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역주행·입소문·소외된 것들, 그리고 보편성이라는 키워드들은 한 가지 특별한 지점을 공통영역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권위에 대항하는 ‘대중’의 힘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차트는 그 권위를 통해 자본의 힘과 결탁해 노래들의 순위를 세우지만, 그 안에서도 역주행하는 노래는 그 권위를 거스르는 대중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권위에 의해 소외된 것들이고, 그 권위의 방식과 대결하는 방식은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입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존재를 ‘김지영’이라는 대표성을 띠는 인물의 삶의 행적을 통해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조남주 작가가 《PD수첩》의 작가였던 전력이 있어서인지 마치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까울 정도로 객관적인 문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건 호칭이다. 조 작가는 호칭을 지영 혹은 김지영, 이렇게 붙이지 않고 굳이 ‘김지영씨’라고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불렀다. 물론 이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 이야기가 한 정신과의사의 보고서 형식이었다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그것은 또한 작가가 우리 사회 현실에서 갖가지 일상적인 폭력에 처해 있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그리면서, 그것이 여성들만을 위한 토로나 눈물에 머물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남성과 다른 세대까지를 포괄하는)로 나아가기를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편성의 확보는 《82년생 김지영》을 그 많은 페미니즘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왼쪽 사진)와 서울시청 시민청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서 여성들이 추모 글귀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왼쪽 사진)와 서울시청 시민청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서 여성들이 추모 글귀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주장으로 읽히지 않아

 

물론 《82년생 김지영》이 현재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하나의 중요한 전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이 여성들만이 아닌 남성들까지 공감대를 확보하고, 책을 읽은 남성들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말하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주장’으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페미니즘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했고, 지난해 벌어졌던 ‘강남역 살인 사건’은 일상적 폭력 속에 노출되어 겨우겨우 생존해 내고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의 문제로 확인시켰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일상적 폭력이 자행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올해 대선에서 후보자들이 중요하게 신경 쓰는 화두이기도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여성의 틀을 벗어나 더 확장되기 위해서는 ‘주장’보다는 ‘공감’의 방식이 더 필요했다는 걸 《82년생 김지영》은 제대로 보여줬다. 소설이라는 양식은 주장하기보다는 거기 등장하는 인물에 공감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장점을 가졌고, 게다가 이 소설은 보고서 형식이라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관점으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우리네 사회의 모습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통찰해 낼 수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해 여혐 논란을 일으킨 《92년생 김지훈》이 나왔던 건, 이 소설의 공감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남성과 대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성이 겪어온 삶의 행적을 공감하자는 것이었다. 만약에 《92년생 김지훈》이 여성을 염두에 두고 대결하기보다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 속에서 겪게 되는 남성의 어려움을 담담히 담아내 어떤 ‘연대’로 나아갔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를 남녀 갈등의 차원이 아닌 보편적인 공감대를 통해 얻어내고 있다는 건 중요한 대목이다. 이것은 이제 지금의 대중들이 여성 문제를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외와 차별의 문제’ 같은 보편성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권위가 세워지고 남성과 여성이 구별되고 했던 그 시대의 흐름에, 지금의 대중들은 ‘역주행’을 하려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입소문’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며, 이런 소외를 없애는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위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끼어들어 있는 정치권의 미담과 거기에 보내는 대중들의 찬사는 이렇게 달라진 시대의 공기를 읽게 해 준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며 건넨,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라는 문구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냈고,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돌렸다는 미담은 이 책이 제기하는 여성 문제를 모두가 숙고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말 광화문 촛불시위(왼쪽 사진)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유세 현장에 20~40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지난해 말 광화문 촛불시위(왼쪽 사진)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유세 현장에 20~40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밀레니얼 세대가 꿈꾸는 다른 사회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이런 정치권에 박수를 보내는 세대와 그 세대들을 유권자로 안고 가는 정치권의 공조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요 독자층은 30대를 중심으로 20대에서부터 40대에 걸쳐 있고, 그중에서도 여성이 80% 가까이에 육박한다. 올해 조기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당선을 가른 세대 역시 바로 이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세대였다(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20대 47.6%, 30대 56.9%, 40대 52.4%의 지지를 얻었다).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더 컸던 대선이 말해 주는 건 뭘까. 달라지고 있는 세대의 생각을 말해 주는 건 아닐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점에 우리는 전 세계적인 불황을 겪었다. 특히 지난 2008년 말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글로벌 침체기(Great Recession)는 젊은 세대들에게 취업난과 실직으로 고통받고, 학자금 융자로 인해 일찌감치 빚을 떠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경제적인 압박을 안겼다. 이들 세대를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출생자까지를 포함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세대로 자리 잡았다. 이 세대들이 갖고 있는 박탈감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후유증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깨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생각과 시스템을 요구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바로 이 밀레니얼 세대들이 갖고 있는 다른 생각과 시스템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끄집어낸 작품이 되었다. 그간 기성세대들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그래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그 바위처럼 단단했던 생각들에 균열을 냈다. 그리고 바로 그 밀레니얼 세대들에 의해 향방이 갈리고, 마치 ‘운명’처럼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이 생각들을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새 정부 출범 인사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여전히 이 ‘유리천장’을 깨려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대중들은 이 흐름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과거라면 방탄유리처럼 견고했을 남성중심사회(특히 정치권 같은 경우는 더욱 공고하다)의 반발은 흐릿해졌다. 그 든든한 지지자들로서 82년생 김지영으로 표징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서 있어서다. 《82년생 김지영》 신드롬은 그래서 여성주의의 한 챕터를 연 것 그 이상의 의미로 읽힌다. 이 책이 추구하고 있는 ‘연대’는 또한 여성에서 나아가 이 땅에 소외된 많은 존재들을 향해 어깨를 내밀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文정부의 교수 사용법

[시론]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3(금) | 1444호


청문회 대상의 고위공직 후보들 중 교수 출신들이 곤욕을 겪고 있다. 사실 별 특별한 일도 아니다. 매번 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들의 학문적, 도덕적 자질 문제가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공직 배제 5대 원칙 중 하나가 논문표절이다. 다른 4가지 배제원칙도 적용되지만 교수 출신 후보자들의 비양심적 학술행위를 의심하기 때문에 콕 찍어서 배제원칙에 넣은 것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교수가 학생으로부터 캔커피를 받는 것도 금하고 있다. 교수가 그깟 물건을 받고 학생에게 편의나 호의를 베풀어줄 수준 정도라고 보는 것에 다름없다.

 

썰렁한 농담 중에 담배를 끊은 사람과 박사 학위를 한 사람은 독하기 이를 데 없다는 말이 있다.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썩 틀린 말도 아니다. 학위를 마칠 때까지 변변한 수입도 없이 수차례 좌절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정을 오롯이 혼자 겪어내야 한다. 박사 학위가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청춘을 바친다는 것은 굉장한 독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교수라는 직업은 속성상 고립성이 강하다. 박사 과정에서 혼자 학문에 정진했고 교수가 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경우, 특히 인문사회 영역에선 단독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논문을 게재하는 등 연구 성과는 객관적으로 평가받지만, 성과가 나오기까지 주제 설정과 분석 그리고 결론을 맺는 연구 과정을 홀로 수행한다. 교수의 삶은 비속어로 ‘독고다이’다. 교수들은 혼자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혼자 노력하고 성과를 쌓는 교수들에게 조직문화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특히 절차와 관례를 중시하는 공무원 조직의 우두머리 역할을 해낼 자질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장관들의 평균 임기가 1년이 채 안 되는데 교수가 수장으로 임명돼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고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교수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에 더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교수들은 겸손하지도 않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학자 출신이 장관이 돼 뛰어난 업적을 쌓은 사례가 없는 것 같다.

 

정치지도자는 논리성과 규범성이 우월한 교수의 말에 솔깃할 수 있다. 평생 한 우물을 판 교수들은 현실을 개탄하고 자신이 중책을 맡으면 곧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 어느 날 갑자기 공직을 권유받은 교수는 소명감에 가득 차서 수락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소신만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구성원의 존경을 받는 리더십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자칫 취임해 관료들로부터 교육만 받다가 임기가 끝날 가능성마저 있다.

 

학자이기 때문에 양비론(兩非論)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주장을 해도 귀 기울여준다. 은퇴한 선배 교수들로부터 캠퍼스를 떠나고 보니 본인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놀랐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아주 특별히 뛰어난 자질이 아니라면 교수는 대학에 그대로 두자. 몇 년 정치권에 기웃거리던 교수가 대학으로 돌아와서 학자의 기질을 잃은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