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게임' 하려고 촛불 들었나?
한국의 사회안전망, 한계상황 노출하고 있다

근로능력
연 령 | 근로능력 있음 | 근로능력 없음 | |||
경제활동 가능 | 실업 | 경제활동 안함 | 근로능력 일부상실 | 근로능력 완전상실 | |
18세 미만 | 보육료‧양육수당 | 기초생활보장 | |||
18~65세 미만 | 국민연금 고용보험 | 고용보험 | 국민연금 | 고용보험‧서비스 | 기초생활 장애연금 |
65세 이상 | 국민(직역)연금‧기초연금(10%) | 공공부조 | |||
| ↓ | ↓ | |||
18세 미만 | - 현행 보육료, 교육급여 등으로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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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세 미만 | - 이별‧사별 등으로 인한 생계곤란자(한부모가구 등) - 자영업자(무급가족 종사자 포함) - 고용보험적용제외자 - 산재보험 미가입자 - 노숙자‧부랑인 - 기타 일시적 생계 유지 곤란자 등 | - 만성질환자, 정신질환자 - 미혼모 - 부양의무자 및 자산조사기준 미달자 | |||
65세 이상 | - 무연금 무소득: 국민연금 A의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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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맞는 대선 후보는 ○○○입니다.”
‘누드대통령’ ‘후보 선택 도우미’ 등 온라인 ‘맞춤 후보 매칭 서비스’ 인기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4(월) 15:00:00
“누굴 뽑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안성은씨(29)는 5월9일 대선 투표에서 A후보를 찍을 생각이었다. 이유는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A후보를 많이 선택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맞춤 후보 매칭 서비스’를 이용한 후 안씨의 결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B후보가 ‘가장 잘 맞는 후보’로 선택됐고 A후보는 하위 순위로 나온 것이다. 안씨는 “표심(票心)을 결정하지 못했거나 별다른 고민 없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에겐 해당 결과가 상당한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실패한 정권 이후 치러지는 조기대선인 만큼 유권자들 사이에선 보다 확실히 후보 면면을 살핀 후 선택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방증하듯 최근 표심 결정을 도울 다양한 서비스들이 온라인 상에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이 같은 서비스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투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20~30대 유권자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4월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 타워에서 대선후보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는 지난 3월 말 출시해 한 달 만에 누적 이용 50만 명을 돌파한 맞춤 후보 매칭 서비스 ‘누드대통령’이다. 사드배치·개헌 등 공통분야부터 경제·노동·복지 등에 대한 분야별 질문, 관심 공약에 대한 질문까지 3단계를 모두 마치면 이내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대통령의 얼굴과 매칭률이 공개된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결과를 SNS에 공유하며 “투표 전 참고하기 좋다” “몰랐던 내 성향을 발견했다” 등의 다양한 리뷰를 남기고 있다.
이 같은 서비스를 처음 제공한 곳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시작해 7번째로 실시된 경실련 ‘후보 선택 도우미’는 각 후보들의 답변을 받은 20개 문항으로 진행되며, 이용자는 찬성·반대·기타 중 하나의 답변을 선택하게 된다. 문항의 수나 내용 면에서 앞선 누드대통령보다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선택하기 쉽고 이용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그 밖에 주요 사안에 대한 후보들의 발언을 무작위로 추출해 보여준 후 가장 호감 가는 발언을 선택하는 ‘대선후보 블라인드 테스트’도 눈길을 끈다. 정제된 공약이 아닌 다양한 자리에서 후보들이 직접 언급한 발언이 보기로 주어진다는 점이 여느 테스트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경실련 후보선택도우미 캡쳐
2030 ‘공약 열공’ 돕는 사이트도 눈길
후보마다 연일 쏟아내는 발언과 공약들로 머리 아픈 유권자들을 위한 참고 사이트도 여럿 개설됐다. 대부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384개 시민단체들이 함께 만든 ‘2017대선주권자행동’은 4월20일 검찰·국정원 개혁 등 주요 의제 20개에 따른 후보별 공약을 정리한 ‘2017대선오디션’ 코너를 신설했다. 이용자들이 각 후보 공약의 타당성을 따진 후 찬성·반대표를 던질 수 있으며 찬반 수는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4월24일 현재 심상정 정의당 후보 공약에 대한 찬성표가 가장 많으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공약이 가장 적은 표를 얻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쏟아내는 가짜뉴스 속 ‘진짜’를 판별하기 위해 16곳의 언론사와 손잡고 ‘팩크 체크 서비스’를 내놓았다. 논란이 된 후보들의 발언에 대해 팩트 체킹을 진행한 언론사 기사들을 모아놓은 방식이다. 평가 기준에 따라 진실·거짓을 분류하고 언론사마다 입장이 갈리거나 판단이 어려운 사안은 ‘논쟁 중’, 혹은 ‘판단유보’로 표기한다. 다수 언론사가 함께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팩크 체크 전 과정을 함께 취재하는 외국과 달리 언론사 간의 협업이 없어 단순 ‘모아보기’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누드대통령(출처_누드대통령페북)
대선 판에서도 ‘인공지능’이 대세
이번 대선에선 특정 사이트에 미리 준비된 정보만 얻는 것을 넘어 유권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맞춤형 정보를 보다 능동적으로 얻을 수도 있게 됐다. 포털 사이트·SNS에 쏟아지는 대선 정보를 학습한 인공지능을 통해 가능해진 일이다.
4월17일 카카오톡을 통해 정식으로 출시된 대선봇 ‘로즈’는 ‘가장 인공지능다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즈와의 채팅창을 만들어 그 안에 궁금한 질문을 적어 올리면 곧장 로즈의 답변이 따라온다. 그 사이 걸리는 시간은 0.5초 미만이다. ‘문재인 일정’, ‘안철수 일자리공약’, ‘유승민 로고송’, ‘오늘 지지율’ 등 하나하나 포털에 검색해 이리저리 옮겨 다닐 일 없이 채팅창 안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출시와 동시에 해당 서비스를 사용했다는 김영환씨(31)는 “포털 사이트는 원치 않는 대선 정보까지 홍수처럼 쏟아져 종종 피로감을 준다”며 “로즈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항을 묻고 바로 답을 얻을 수 있어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즈는 해당 날짜 기준 매일 후보별 SNS 검색량을 그래프화해 보여주는가 하면, 수집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 당선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한다. 나아가 4월13일과 19일 열린 대선후보 TV토론회 이후엔 각 후보자가 사용한 어휘의 빈도와 복잡도를 분석해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어휘 사용 수준을 나누기도 했다. 로즈에 따르면, 토론회에서 가장 많은 질의응답을 받은 문재인 후보는 두 차례 TV토론 중 ‘동반성장’, ‘촛불민심’ 등의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전체적인 어휘 수준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톡 대선봇 로즈
이처럼 날로 똑똑해지는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그 위력을 검증해보이기도 했다. 미국 내 실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와 달리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모그IA(MogIA)’만이 대선 초반부터 트럼프 당선을 정확히 예측했다. 각 후보 진영과 전문가들이 여론조사 못지않게 포털·SNS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함께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작스런 조기 대선으로 한때 후보 검증에 소홀한 ‘졸속 대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불식시킬 만큼 다양한 선거 도우미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든든한 참고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여기에 IT(정보기술) 발전으로 정보의 정확도는 이전 선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상태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누굴 뽑을지 몰라서’, ‘정보가 없어서’라는 이유는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안철수의 시간'은 끝났는가?
지지율 추세는?
24일 <조선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21~22일 조사한 후 발표한 조사에서는 다자 구도에서 문재인 37.5%, 안철수 26.4%로 나왔다. 같은 기관의 직전 조사와 비교하면 안 후보가 5%포인트가량 하락해 격차가 벌어졌고,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섰던 2주 전 조사와 비교하면 안 후보는 10%포인트가량이나 하락했다.
문화방송(MBC)와 <한국경제>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1~22일 조사한 후 23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문재인 39.1%, 안철수 30.1%로, 지난 조사 대비 지지율 격차가 8%포인트 이상 벌어져 오차 범위를 넘어섰다. 같은날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21~22일 조사치)에서도 문재인 44.4%, 안철수 32.5%로 집계돼 격차가 10%포인트를 넘었다.
지난 금요일인 21일자 <프레시안>-리서치뷰 조사(18~20일 조사치)에서도 문재인 43.3%, 안철수 31.3%로 안 후보의 지지율이 5%포인트 추가 하락했다. 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집계(18~20일 조사치)에서 역시 문재인 41%, 안철수 30%로 나왔고, 안 후보 지지율은 전주 대비 7%포인트 하락했다. (이상 5건의 조사 관련 응답률과 통계 보정 기법 등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철수 하락, 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데에 일치된 판단을 내렸다. 이는 국민의당 지도부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4일 당사 기자 간담회에서 "이제 선거가 15일 남았는데, 14일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도 초반·중반·종반이 있다. 안 후보에게 지금 좀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음 주말부터 긍정적인 상승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는 국면인 것은 맞다"며 "처음 양강 구도가 형성됐을 때는 박빙이거나 일부 조사에서 앞서기도 했지만, 지난주 초까지 5%포인트 이상 벌어진 데 이어 최근에는 10%포인트 정도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오르면서 안 후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는데, 그 이후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보수층이 안 후보에게 주목한 것은 맞지만, 그건 안 후보가 뭘 잘해서 모여든 게 아니다"라며 "그런 상태에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게 없고, 그저 '성원에 감사하다'는 정도 메시지만 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안보 이슈가 주요 쟁점화되면서 보수 표의 분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보 이슈로 보수 후보들이 문재인을 때리는데, 그 효과는 문재인이 아닌 안철수 지지율이 흔들리는 기묘한 현상"이라는 것. 윤 센터장은 또 "'조폭' 논란이나 경선 동원 논란은 안 후보에게 별 타격을 주지 않았는데, 부인 채용 특혜 논란이나 단설 유치원 논란은 다소 타격이 됐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지지층의 특성은…
이 대표나 윤 센터장의 분석에는 공통점이 있다. 4월 중순 문재인 후보와 양강을 형성했던 안 후보의 높은 지지율은, 안 후보 본인이 내놓은 행보나 메시지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일종의 '반사 이익'이었다는 것이다.
윤 센터장은 "보수층의 안철수 지지는 열성적 지지가 아니라 문재인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견제 차원"이라며 "지속적으로 '문재인을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을 유지해야 하는 게 관건이다. 그걸 보여주지 못하고 여기서 격차가 더 벌어진다면 추가 이탈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 역시 "유권자 50~60%가 '반문(反문재인)' 정서를 갖고 있고, 이들의 현실적 대안이 안철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민의당과 안 후보 측의 자신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TV토론에서 안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호남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안 후보에 대한 기대를 상당히 접게 한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23일 TV토론에서 안 후보가 '갑철수', 'MB 아바타' 등의 발언을 내놓은 것을 "대단한 패착"으로 평가하며 "안 후보가 토론을 잘 했다면 홍준표 후보가 '돼지 흥분제' 등 논란으로 인해 주저앉으면서 (안 후보가) '보수의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어제 토론으로 인해 실망감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금 문재인 쪽으로 여론이 기울어진 상태인데, 문재인 캠프는 최근 '적폐 청산'에서 '통합'으로 전략을 변경했다"며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처럼 문재인이 '적폐 청산'만 강조한다면 안철수에게도 기회가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중도층이 문재인에게 반발을 가질 요인이 약해진다. 양측이 모두 통합을 내세우며 집권 후 국정 역량 대결로 가게 된다면 문재인의 비교우위가 지켜져 안철수가 역전의 발판을 만들기 쉽지 않게 될 것"이라고 평론했다. 실제로 최근 문 후보 측에서는 캠프 안팎에서 '입 단속'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공식·비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다. 선거 막판 설화(舌禍)에 대한 경계령이다.
향후 판세는?
국민의당 측에서는 '지지율 조정 기간'일 뿐, 여전히 역전의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 박지원 대표는 "2주 전부터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고 했지 않느냐"며 "전국적으로 '문재인은 안 된다'는 공포증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고 했다.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은 불교방송(BBS) 라디오에 나와 "격차가 오차 범위 밖으로 벗어난 것이 맞다. 안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전국적으로 세고, 특히 호남에서 'MB 아바타' 같은 구전 네거티브가 안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데 많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중도 개혁 세력이 다음 정부를 이끌어 나간다는 믿음을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의당의 새로운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희웅 센터장은 안 후보에게 남은 기회를 4월 마지막주까지로 봤다. 그는 "다음 주(5월 1주)는 연휴 기간이어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완화·분산될 수 있다"며 "안철수로서는 이번 주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일 대표는 더 비관적으로 봤다. 이 대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보수층은 '차라리 보수당을 살리자'고 하거나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 있다. 심하게는 2등이 누가 될지도 알 수 없는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특히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의 연대 논의가 추격의 불씨가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때가 지났다. 지지율이 빠지는 국면에서 연대 카드는 효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 전문가는 "다만 남은 변수가 있다면 송민순 전 장관이 제기한 북한 인권 결의안 논란 정도"라며 "안보 이슈는 (전통적 보수-진보라는) 이념 진영이 결집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보수층이 (문 후보에게) 화가 나서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과 "안 후보가 진보-보수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취할 수 없어 오히려 더 곤혹스러워질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재원, 포퓰리즘, 퍼주기...습관성 용어, 그 진실은?
오늘 우리는 돈(자원)을 배분할 때 나타나는 대통령 선거의 오랜 관행과 습관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단지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대통령 선거와 그 후보, 정당을 움직이고 반응하게 하는 오랜 습관. 그것은 어떤 약속을 할 때마다 따라붙는 질문, '재원 대책'이다.
다음은 눈에 띄는 대로 고른 일간 신문 기사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6 더 나은 삶 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38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심지어 2012년과 비교하면 4계단이나 하락한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기초연금 인상 등 복지 확대에 힘을 쏟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대부분 재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아 ‘포퓰리즘’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관련 기사 : "기초연금 인상…복지 확대" 합창…재원 대책은 '빈칸')
특정 신문이나 기사를 가릴 필요가 없다. 조금만 돈이 많이 든다 싶으면, 재원, 포퓰리즘, 퍼주기, 탁상공론 등의 습관성 용어가 꼬리를 문다. 대통령 후보들이 직접 만나는 토론 때도 빠지지 않는 주제다. 공허하다고 서로 공박하는 것이 보통이다.
바람직한 변화에 돈(자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가가 하는 일에는 반드시 재정과 재원이 필요하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생각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당연하다.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재정과 재정 대책이 한 사회의 가치와 지향, 그리하여 권력관계에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언제나 진실인,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재정 판단과 계획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거나 작은 것이 달라지고 쉽고 어려운 것도 변화한다.
재정 규모에 대한 '감'을 익히기 위해.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저출산 대책에 지난 10년간 150조 이상의 국가 재정을 투입했다(☞관련 기사 : 유일호 "4차 산업혁명·인구변화·사회자본 중장기전략 수립"). 특히 이명박 정부의 씀씀이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악명 높은 4대강 사업에는 22조~32조 원의 재정이 들어갔고(☞관련 기사 : 이해찬 "4대강 사업, 총 32조 들었다"), 2009~2013년 '녹색성장'을 위해 100조 원이 넘는 돈을 쓰는 계획도 세운 바 있다(☞관련 기사 : 그린코리아 국제회의 개막..녹색성장 논의).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또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2020년까지 고속도로 건설에 30조 원을 쓴다고 발표한 것이 작년이었다(☞관련 기사 : 72조원 대규모 재원 투입…경제성장 견인차 역할). 한마디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바로 그 고속도로 건설에 저만큼 돈을 쓴다니. 이런 계획이라면 국방도 빠질 리 없다. 며칠 전 국방부는 내년부터 5년간 방위력 개선에 78조 원을 사용할 계획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 軍, 내년부터 5년간 국방비 238조원…탄도미사일 조기배치). 이것도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
낭비를 없애고 지출을 효율적으로 하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이런 예를 드는 것이 아니다. 국가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지출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치'라는 것, 따라서 어떤 지향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러 후보가 약속한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국민연금, 장기요양 확충, 일자리에는 돈이 많이 든다. 몇 조에서 몇 십 조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관련 기사 : 5명 모두 기초연금 인상 공약…"선거 때마다 오를 것" 현실로). 언론이 처음 보는 듯 호들갑을 떨지만,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재원 대책이 없다는 지적(또는 비난)도 새삼스럽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돈이 더 든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증세를 피할 수 없지만,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증세를 둘러싼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권력과 경제권력, 언론이 합작한 '증세' 정치!
재원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문제다. 치우침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재원 대책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누구인지 유심히 보라. 국가와 공동체, 공익을 앞세우는 듯 보이지만, 세 가지 특징을 숨기지 못한다.
1.
기존의 국가 재정과 그 권력관계를 보호하고 옹호한다. 그들은 어떤 공약에는 결사적으로 재원 대책을 따지지만, 어떤 공약에는 몹시도 너그럽다. 공약의 내용뿐 아니라 방식도 문제 삼는다(예를 들어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돈을 쓰는 것은 반대한다).
과거에는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지금은 여러 후보가 거론하는 4차 산업혁명에 재원 대책이 없다고 비판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국방 선진화 계획과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쓸 예산은 또 어떤가? 그것이 경제나 성장인 한, 누가 감히 '퍼주기'나 '포퓰리즘'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기존 패러다임을 흔들지 않으면 재원의 크기와 종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 채무 증가를 지상 최대의 악으로 보다가도,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양적 성장을 추구하자고 말할 정도다(☞관련 기사 : 성장과 일자리, 확장적 재정정책이 답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의 대해서는 정세은 교수의 글을 참고할 것. ☞관련 기사 : '나라 빚'에 대한 착각이 재정정책 망친다). 재원 대책을 문제로 삼는 공약은 정해져 있다!
2.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 하나. 증세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다그친다. 재정을 생각할 만큼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의 본심은 다르다. 말만 그렇게 하지 증세, 더 정확하게는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형태의 증세에 반대한다.
무엇에 반대하는지 본심은 이미 드러나 있다. 법인세를 올리고, 고소득자에 대해 더 많은 소득세를 물리는 것. 또는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보유세를 크게 올리는 것. 왜 반대하는지도 뻔하다. 이런 세금에 반대하는 본심을 "증세에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으로 치환한다.
후보들이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순간, 이들이 비판하는 대상은 바로 바뀔 것이다. 증세는 기업과 경제 살리기, 국제 경쟁력과 성장동력, 연구개발 투자로 연결되고, 그런 말을 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무능한' 경제 패러다임을 덮어씌울 것이다.
3.
이들은 또한 효율성 논리를 금과옥조로 삼는다. 투입에 대비한 산출, 가격에 대비한 성능이 효율성의 산술이지만, 투입과 가격은 알게 모르게 고정되어 있다. 복지 예산에 국방 예산을 같이 생각하기 어려우니, 이른바 '주어진' 자원 논리다.
OECD 평균 또는 꼴찌의 복지예산 논리가 있어 그나마 낫지만, 이것도 빠른 고령화와 압축 성장 논리로 묶인다. 지금 평균 이하여서 안심할 일이 아니라, 조만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는 시간과 추세의 논리. 그 익숙한 건강보험과 연금 재정의 '고갈론'도 비슷하다.
재원 대책을 묻는 말은 (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효율화의 압박을 숨기고 있다. 낭비와 비효율, 도덕적 해이, 복지 부정수급이 괜히 나온 말일까. 효율화와 동반하는 재정 대책은 사실은 재정 억제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재정을 둘러싼 완고한 권력관계를 쉽게 바꾸는 묘수는 없다. 다음 정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토목예산, 국방예산, 무슨 차세대 성장 동력에 쓴다는 돈을 생각해 보라. 무수한 이해관계자와 그를 둘러싼 현실 정치는 쉽지 않은 도전이자 과제다.
대통령 선거는, 그래도 기회다. 국가재정 규모는 물론이고, 4대강이나 창조경제의 예만 생각해도, 기초연금 확대나 아동수당 말을 꺼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니, 거의 유일한 기회다. 건강보험 재정을 생각하면, 진료비 부담 상한을 낮추고 장기요양을 확대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가. 다시 얻기 어려운, 새로운 논의와 결정의 계기가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국가 재정은 기술 이상이다. 무슨 정책을 왜 해야 한다는 목표와 가치, 그리고 그를 위해 대중과 유권자와 소통하고 공유하는 정치가 더 중요하다. 돈이 어디 있느냐 묻지 말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라.
꼭 해야 하는 일이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할 것, 질문과 대답을 전환해야 돈에 합의하고 또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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