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김어준 영화 <더 플랜> 검증 요구 - 자이니치 감독이 만든 영화 <분노>

일취월장7 2017. 4. 20. 12:11

선관위 "투표지 남아있다" 김어준 영화 <더 플랜> 검증 요구

"투표지 현물 직접 검증하자…결과에 따라 무거운 책임"
2017.04.19 16:41:23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2년 18대 대선 당시의 개표 부정 의혹을 다룬 영화 <더 플랜>(최진성 감독, 2017)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검증을 요구했다.

선관위는 19일 보도자료를 내어 "최근 제18대 대선의 개표 부정 의혹을 주장하는 영화가 공개됐고, 시사회에서 '부정의 실체를 과학적 통계로 증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대선 진행 중에 이런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선거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론을 분열시켜 공명 선거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선관위는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그 근본적 원인이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에 있는 것으로, 18대 대선 당시의 투표지를 검증하면 모든 의혹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선관위는 18대 대선 종료 후 국회 상임위에서 '국회가 요구한다면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재검을 통해 모든 의혹을 해소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이런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검증 결과 대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선관위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며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기를 기대한다"고 영화 제작자 측을 겨냥했다.

"왜 박근혜 표에 미분류표가 많은가?"
 

선관위는 영화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우선 "영화는 투표지분류기에서 미분류로 처리한 비율이 3.6%나 되어 외국의 사례에 비해 지나치게 많고, 분류된 투표지와 미분류된 투표지에서 두 후보자 간 상대득표율이 같아야 함에도 미분류된 투표지에서 박근혜 후보자의 상대득표율이 분류된 투표지의 경우보다 1.5배 높아 이는 미분류표를 통한 개표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선거의 특성이나 미분류되는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일축했다.  

"미분류표가 많다는 것은 정확히 기표되지 않은 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기계적 오류가 아닌 불명확하게 기표하는 선거인의 기표 행태가 그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투표지분류기의 미분류율이 외국의 기계적 오류율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개표부정 의혹을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미분류 처리된 투표지는 모두 수작업으로 다시 분류하고, 분류된 투표지도 사람이 육안으로 모두 재확인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들은 '왜 박근혜 표에서 미분류율이 더 높은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기표로 인해 미분류 처리된 투표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연령이 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실제 18대 대선 결과를 보면 노년층이 많은 시골 지역(군단위)의 미분류율은 5% 초반대로 청년층이 많은 도시 지역(시지역)의 2% 후반대보다 1.8배 정도 높게 나타나는바, 이는 노년층의 투표에서 미분류표로 처리되는 비율이 청년층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방송3사(KBS, MBC, SBS) 출구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자의 예상 득표율은 20대에서는 33.7%, 30대는 33.1%인 반면, 50대에서는 62.5%, 60대 이상에서도 72.3%로 나타나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박근혜 후보자의 예상득표율이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노년층의 투표지가 더 많이 미분류 처리되었을 것이라는 사실과, 미분류된 투표지에서 박근혜 후보자의 상대득표율이 정상 분류된 투표지에서보다 더 높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표지분류기가 해킹됐다고?"
 

또 선관위는 "영화에서는 투표지분류기를 해킹해 개표 결과를 조작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투표지분류기는 외부 통신망과 단절돼 있을 뿐만 아니라 투표지분류기 운영요원 외에는 제어용 PC에 접근할 수 없으며 운영 프로그램이 위·변조된 경우에는 투표지분류기가 작동되지 않는 등 관리적·기술적·물리적 측면의 다중 보안체계를 갖추고 있어 원격은 물론이고 현장에서도 해킹 등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게다가 전국 250여 개의 개표소에서 1392대의 투표지분류기가 사용되었는데 개표소마다 수백 명에 이르는 일반 국민들과 개표 사무원, 참관인, 선관위원 등 개표 사무 종사자들의 눈을 피해 이들 모두를 개별적으로 해킹해 개표 결과를 조작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소에 부쳤다.

이들은 "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에만 의존해 개표 결과를 확정 짓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서로 심사·집계부에서 개표 사무원이 수작업으로 재확인하고 이 과정에 정당·후보자의 개표 참관인이 자유롭게 참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정당 추천 위원이 포함된 선관위 위원의 검열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며 "이후에도 투표지라는 실물이 남아 있으므로 개표 결과에 이의가 있는 정당·후보자는 소송을 통해 다시 한번 검증할 수 있다"고 재강조했다.

선관위는 '박근혜 후보자에게 유리한 투표함을 먼저 열고, 문재인 후보자에게 유리한 투표함은 나중에 개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은 대도시보다 개표가 빨리 종료되며, 박근혜 후보자는 대체로 노년층 유권자가 많은 농촌 지역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 개표 초반에 더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고 해명하며 "영화는 선관위가 투표함 속 투표 정보를 이미 알고서 박근혜 후보자에게 유리한 투표함을 먼저 개표하고 문재인 후보자에게 유리한 투표함은 나중에 개표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선관위가 개표하기 전 투표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선관위는 "우리 위원회는 이번 대선에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개표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더 이상 진실을 왜곡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선거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행위를 삼가줄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했다. 정부 기관이 낸 보도자료치고는 이례적으로, 행간에서 분노가 묻어났다. 

앞서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대표이자 라디오·팟캐스트 등을 통해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어준 씨는 지난 10일 영화 <더 플랜>(연출 최진성)을 공개했다. 영화는 18대 대선에서의 개표 부정 의혹을 강하게 암시하는 내용으로, 19대 대선에서는 투표지분류기를 믿을 수 없으니 수개표를 도입하자는 등의 주장을 담고 있다. 개표 부정 의혹이나 수개표 주장 등은 이미 2012년 대선 직후부터 SNS 등을 통해 제기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SNS 달군 '대선 부정투표 의혹', 배후는 MB?) 

지난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총 선거인 수는 4050만7842명이었고 투표 수는 3072만1459표였다. 유효투표 수는 3059만4621표, 무효표는 12만6838표였다. 김 씨 등이 영화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투표지분류기에서 미분류로 판정됐던 표'는 총투표와 유효투표 가운데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하든 110만여 표에 해당한다.


김 씨 등의 주장대로 이 표 가운데 '박근혜 표 : 문재인 표'의 비율이 1.5대1(즉 3:2)로 나왔다면, 110만여 표 가운데 박근혜 표는 66만여 표, 문재인 표는 44만여 표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두 후보 간의 최종 표차는 108만496표(박근혜 1577만3128표, 문재인 1469만2632표)였다.



대선 개표 부정 의혹 영화 '더플랜'에 선관위가 발끈한 이유

18대 대통령 선거 개표 조작 의혹 제기 내용에 선관위 “13대 대선 부정 논란 검증 방법으로 응할 것”

조유빈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0(목) 17:01:57


5월9일 치러질 ‘장미대선’을 앞두고 영화 《더 플랜》이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 4월20일 개봉한 영화 《​더 플랜》​은 ‘프로젝트 부(不)’​의 첫 번째 작품으로, 지난 12일 온라인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이 영화는 2012년 치러진 제18대 대선의 개표 과정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19대 대선을 목전에 두고 공개된 영화는 온라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동영상 조회수는 100만건을 넘어섰다.

영화는 2012년 12월19일 치러진 대선에서 251개 지역선관위의 개표상황표를 분석한 결과 분류표의 후보자간 비율과 미분류표의 후보자간 비율이 차이가 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분류표란 무효표와 투표 분류기가 정상표로 분류하지 못한 표를 더한 것을 말한다. 영화는 박근혜 당시 후보와 문재인 당시 후보의 전체표 비율이 5대5였다면 미분류표의 비율은 6대4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구리시의 경우 분류표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표 차가 0.1% 밖에 나지 않았지만 미분류표는 18%의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상표와 미분류표 사이에 두 후보 표의 비율이 정상적인 ‘​1’​이 아니라 ‘1.5’로 나타나는 현상이 모든 개표소에서 동시에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미분류표 개표과정에서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영화를 제작한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 “​19대 대선은 해킹에 노출될 수 있는 전자개표가 아닌 수개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젝트 부(不)’에서 제작한 영화 《더 플랜》 포스터

‘프로젝트 부(不)’에서 제작한 영화 《더 플랜》 포스터


선관위 “국론 분열시켜 공명선거 분위기 저해하는 행위”

선관위는 4월19일 《​더 플랜》​에 대해 “대선 진행 중에 이런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선거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론을 분열시켜 공명선거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라며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선관위는 제18대 대통령선거 개표부정 의혹 영화《​더 플랜》​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더 플랜 시사회에서는 부정의 실체를 과학적 통계로 증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분류표의 비율이 많고 상대 득표율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선거의 특성이나 미분류되는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그 근본적 원인이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에 있는 것으로 제18대 대선 당시의 투표지를 검증하면 모든 의혹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18대 대선 종료 후 ‘국회가 요구한다면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재검을 통해 모든 의혹을 해소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러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개봉 영화의 내용에 대해 국가기관이 공식적인 입장을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선관위는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여부 검증이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검증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의혹 해소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관위가 보관하고 있는 18대 대선의 투표지와 개표상황표 현물을 직접 검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지만, 검증 결과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측에서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을 바란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앞서 4월18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더 플랜》​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의원회에 공개 질의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더 플랜’ 영상이 공개되면서 개표과정에 대한 여러 의혹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며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개표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고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가중시키고 사회적으로 큰 비용이 든다”고 질의했다. 또 “개표 전반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라며 답변을 28일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관계자는 “아직 선관위 측에서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며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한 보도자료와 같은 내용을 (우리 측에) 발송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선관위 측이 4월28일까지 답변을 보내지 않을 경우, 공개질의를 다시 발송해 답변을 촉구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6년 7월21일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던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구로구을 우편투표함 진위검증을 위한 개함 및 계표 작업이 진행됐다. ⓒ 연합뉴스

2016년 7월21일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던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구로구을 우편투표함 진위검증을 위한 개함 및 계표 작업이 진행됐다. ⓒ 연합뉴스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있었던 부정투표 논란 
투표함 탈취하고 선관위 점거해…29년 만에 논란 검증 작업

선관위는 영화 《더 플랜》 제작팀의 요구가 있다면 공개 검증에 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검증 방법은 지난해 한국정치학회 주관으로 실시한 1987년 대선의 구로을 부재자 투표함 검증 사례를 준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선관위의 관리 분야에서만큼은 어떠한 조작행위도 없었음이 명백히 밝혀졌기 때문에 이번 의혹에 대해서도 그 검증 절차를 준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78년 열린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부정투표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대선 투표 당일인 1987년 12월 16일 당시 구로구청 농성자들이 부재자 투표과정에 부정이 있었다며 투표함을 탈취하고 44시간 동안 구로을 선관위를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투표함을 되찾았으나, 당시 개표결과 당선후보(노태우 당시 후보)와 차점후보(김영삼 당시 후보)간 194만여표의 차이가 있어 구로을 부재자 투표함에 든 4325표(선관위 추정)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논리로 투표함을 개봉하지 않은 채 수장고에 보관해 오다 지난해 7월 개봉해 검증 작업을 거쳤다. 

선관위는 2016년 10월 보도자료를 내고 구로을 우편투표함 진위 검증에 대한 한국정치학회의 연구용역보고서가 최근 제출됐다 “조작되거나 위조되지 않은 정규 우편투표함이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검증 방법에 대해서는 “한국정치학회가 우편투표함의 개함과 계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관계자 인터뷰, 사건 자료 조사·분석 등을 통해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한 결과를 근거로 도출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자이니치 감독이 만든 <분노>

[김경욱의 데자뷔] 한국사회와 공통점을 발견하는 <분노>
2017.04.20 16:19:2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관객이 가장 적은 시기이기 때문인지,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인지, 눈에 띄는 한국영화가 별로 없다(물론 가장 핫한 영화로 김어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더 플랜>이 있기는 하다). 그런 가운데 자이니치(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의 <분노>가 제목이 주는 강렬함으로 관심을 끌었다.  

영화는 무더운 여름, 도쿄 교외의 주택가에서 평범한 부부가 무참히 살해된 현장에서 시작한다. 형사들은 방문에 희생자의 피로 '怒(분노)'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걸 발견한다. 도입부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설정은 범인과 범행의 동기 그리고 글자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신주쿠의 게이 사우나에서 매춘을 하는 나오토, 하마사키 어촌에서 일하는 과묵한 외지 청년 다시로, 오키나와의 호시 섬에서 기거하는 다나카. 이들은 모두 과거 이력이 불분명한 미스터리한 인물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에피소드를 계속 교차편집으로 나열하고, 여기에 텔레비전을 통해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몽타주를 제시하면서, 그 가운데 누가 범인인지를 놓고 거의 마지막까지 관객들과 내기를 벌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악인>의 원작자인 요시다 슈이치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이야기에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이치하시 다쓰야 사건(영국인 여강사를 살해한 후, 수차례 성형을 거듭하며 2년 7개월 동안 도피 행각을 벌인 일본판 페이스오프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서 2년 반에 걸친 범인의 도주 행보나 범행 자체보다 공개수사 후에 물밀듯이 밀려든 수많은 제보 쪽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길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와 친밀한 사람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의 원경(遠境)'에 마음이 어수선하고 술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 바로가기 : 분노) 

그러므로 영화는 진짜 범인에 대한 관심보다 친밀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고 내기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오토는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를 만나고 그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한편, 다시로는 아이코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수배 된 범인과 가장 닮은 인물은 나오토와 다시로이다. 유마는 친구들의 집에 동일한 수법의 도둑이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다음 나오토가 거짓말을 하자,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아이코 역시 점점 다시로를 의심하게 되어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한다. 

유마의 경우에는 나오토를 성매매로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믿지 못한다. 또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나오토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된다. 그는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 못한다"는 말을 했지만, 결국 자신이 편견에 빠져 나오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코의 경우에는 자신이 성매매를 했던 트라우마가 장애가 된다. 아버지 요헤이는 그런 딸을 평범한 남자가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에서 다시로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에피소드에도 편견에 따른 의심이 문제가 된다.  

나오토와 다시로의 에피소드가 '믿음(의 복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공개수배 된 범인과 가장 닮지 않았지만 결국 범인으로 밝혀지는 다나카(본명은 야마가미)의 에피소드는 그 뒷면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 범인과 범행의 동기에 대해 궁금하게 하면서도 끝내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대신 추측하게 만든다. 

사건 당일 날, 다나카는 일터인 공사현장을 찾아 헤매다 파견회사에 확인 전화를 한다. 담당자는 "저번 주 현장이었다"며 사과도 없이 비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낯선 장소에서 길을 잃은 다나카는 더위에 지쳐 어느 집 앞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있게 된다. 그 때 집으로 돌아온 주인여자는 그에게 차가운 음료수를 건네는데, 그 결과 살해당한다. 다나카는 '남을 무시하고 냉소하는 재미로 사는 인간'이며, 그의 행동에서 분노조절장애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그의 분노는 자신을 비웃은 공사현장 담당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여자로 향했을까? 타인에 대한 냉소를 통해 소소하게 분노를 표출하며 우월감을 느꼈던 그는 그녀의 친절에서 자신이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다나카는 호시 섬에 은신하던 중에 놀러온 고등학교 이즈미와 타츠야를 알게 된다. 이즈미와 타츠야는 다나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번화가인 나하에 놀러 가는데, 이즈미가 미군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나카와 타츠야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 광경을 숨어서 보고만 있는다. 이즈미를 걱정하며 자책하는 듯했던 다나카가 그 사건을 냉소의 대상으로 치부하자, 타츠야는 '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면서 그를 살해한다. 이 분노에는 배신감뿐만 아니라 강간을 막지 못한 자신의 죄책감이 더해진 것 같다. 그런데 이즈미의 입장에서 보면, 믿었던 두 남자에게서 완전히 배신당한 셈이 된다. 그녀의 분노는 바닷가에서 절규하는 모습으로 표출된다(그녀의 모습은 노(怒)라는 한자를 형상화한 것 같다(사진1). 이와 대조되는 장면은 다시로와 다시 만나 신뢰를 회복한 아이코의 모습이다(사진2). 유마는 나오토의 죽음과 그의 진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사진3).)

▲ 사진 1.


▲ 사진 2.


▲ 사진 3.


위의 인터뷰에서 요시다 슈이치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 것처럼, <분노>는 보편적인 현대인의 믿음과 사랑, 배신과 분노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른 많은 소재들 가운데 특히 오키나와라는 공간의 설정과 그곳에서 미군들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의 문제, 이에 대한 이즈미의 대처방식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무언가 일본사회의 증후 같은 느낌을 준다.  

이즈미는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아무리 울고 화를 내도 아무도 몰라준다. 싸울 자신도 없고 그렇게 해도 변하는 건 없다"고 말한다. 집안에서 강간사건을 인지한 주민은 그저 창문의 커튼을 닫아버린다. 아이코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 숍(성매매 장소)에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울어도 소용없었다." 또 타츠야는 아버지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 관련된 반대시위를 하는 걸 싫어하면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까?"라며 냉소한다. 

여기에는 사회전반의 적폐가 쌓이면서 그것이 개인의 사적인 피해와 분노로 표출되는 일본사회에 대한 절망이 엿보인다. 아마도 지난해에 보았다면,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