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섬기는 진보
자신만의 정치철학”이 없는 리더와 당내에 “진보 진영을 약화시키는 보수적 프레임을 진보 혁신 논리로 오인”하는 전략가들이 포진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미지 포장과 포퓰리즘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교하게 다듬은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 동원했던 갖가지 인식론적 틀(여성화·아동화·신비화·무역사성 등)을 가리키며, 동양이 자신을 인식할 때 서양이 왜곡해놓은 동양관을 자청해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동양인이 자신의 기준이 아닌 서양의 기준을 참조점으로 삼는 전도된 현상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사이드의 착상을 고스란히 빌려온 장신기의 ‘진보 오리엔탈리즘’은 한국의 진보 세력이 자기 정체성을 보수의 시각에 맞추어 고쳐온 현상을 일컫는다.
진보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보수의 요구를 내면화하게 되는 배경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정치사회 기반이 보수 우위라는 현실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라는 기치만으로는 도저히 승리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무르익고, 보수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라 하면서 여론과 유권자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진보 오리엔탈리즘이 힘을 얻게 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동성결혼 합법화를 놓고 박원순·표창원·박영선 등의 민주당계 인사가 줄줄이 말 바꾸기를 한 것이 그런 사례로, 가장 최근에 문재인도 이 클럽에 가입했다.
“진보 오리엔탈리즘은 진보 세력 외부에서는 진보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조장하고, 진보 세력 내부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근거 없는 회의와 자신감 결여와 같은 의식의 식민화 현상을 초래한다”라고 주장하는 지은이는, 진보가 자승자박에 빠지고 마는 대표적인 진보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이렇게 압축했다. ①안보는 보수 ②이념 없는 민생 ③반대만 하는 진보 ④원칙 없는 역사 화해 ⑤탈호남과 반노무현. 장신기는 다섯 항 가운데 가장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①을 꼽는데, 실제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이 목도하고 있는 것도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과 안희정의 사드 배치 찬성론이다. 두 사람은 ‘햇볕정책이 안보’이며 ‘진보가 보수보다 안보를 더 중요시하고 잘한다’는 진보 정체성을 내팽개치고 표심이 선호하는 보수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자기모순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문재인 캠프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을 영입해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문 전 대표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뜻을 모아 만들어야 한다”라고 우기자, 안희정 지사 측은 “안 지사의 대연정을 비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경제 교사를, 김종인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모셔온 것은 일관된 논리에 맞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이재명 시장도 가세하며 이렇게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의 자문그룹인 ‘10년의 힘 위원회’ 60명 중에서 무려 15명이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다. 최근 문 전 대표의 ‘묻지마식 영입’이 민주당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진보가 10년 동안 ‘우클릭’을 거듭한 이유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이런 혼돈은 전임 대통령들의 경제정책을 군말 없이 이어받겠다는 안희정의 발언이 미리 보여주었듯이, 여당과 야당 간의 전통적인 정권교체가 더 이상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확인시켜준다. 민주당은 진보의 설계를 위한 비전의 제시 과정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두 가지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첫째, 이들은 표를 얻기 위한 감정적인 우민정치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장신기가 크게 우려한 것처럼, 청산 없는 대연정은 표를 얻기 위해 진보의 가치를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해전술이다. 둘째, 무엇보다 이들은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던 못난 대통령의 한계를 깨트려야 할 숙제로 여기지 못하고, 극복해야 할 한계를 자신들의 로두스로 삼았다. 우리는 저 로두스에서 장미꽃을 입에 물고 춤추는 자들이 누구인지 잘 안다. 리무진 좌파, 캐비어 좌파, 재력가들의 좌파가 그들이다.
신자유주의가 점령해버린 세계의 정치는 텅 빈 민주주의라는 형식으로만 남아 있다. 많은 정치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좌파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대응 세력을 잃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전횡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여당과 야당은 ‘극단적 중도’라는 무이념 지대에 혼거하게 되었고, 알리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야당 없는 세계에 산다. 민주주의는 유명론처럼 텅 빈 이름이 된 것이다.
한병철의 신간 <타자의 추방>(문학과지성사, 2017)은 정치에서 야당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생겨나는 끔찍한 폭력을 성찰하게 해준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인간은 타자에 의해 활력과 성숙을 얻게 되며 사회의 활력과 성숙 또한 타자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야당은 정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 타자라고 할 수 있다. 타자가 지옥이 아니라, 타자 없는 세계야말로 모든 것을 획일화하여 같은 것의 지옥을 만든다. 타자 없는 세계가 지옥인 것은 그 지옥이 정체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획일화를 벗어나기 위해 폭력적으로 차이(희생양)를 만들어내는 때문이다. 2013년 9월4일, 여의도 정치가 획일화의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인 차이가 바로 통합진보당이다. 다가오는 5월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후보들의 공약이 하나같이 어슷비슷하다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마련될 희생양 역시 극단적 중도에 저항하는 세력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 오리엔탈리즘의 구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정치철학”이 없는 리더와 당내에 “진보 진영을 약화시키는 보수적 프레임을 진보 혁신 논리로 오인”하는 전략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근 10여 년 동안 한국의 진보가 ‘우클릭’을 거듭해온 원인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전가하지만, 이미지 포장과 포퓰리즘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리더십과 생존에만 급급한 지도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미끄러운 비탈길’로 만들었다. 여기에 “진보 세력의 주된 정치적 기반이 중산층 리버럴 세력”이라는 잠금장치가 합세한다.
이제 보수는 '종이호랑이'다. 겁먹지 말라

그간 4년여 동안 우리를 무던히도 괴롭혔던 박근혜가 드디어 감옥에 갇혔다. 단언컨대, 구속은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최악의 길만 고집한 그 오만함과 어리석음의 산물이다. 그러한 오늘, 보면 볼수록 권위적이기만 한 청와대의 봉황 문양은 박근혜 시대의 종언과 함께 이제 청와대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민주권위원회를 설치하자
촛불집회를 이끌어 오늘의 이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이뤄낸 '퇴진행동'에 차기 정부의 정책 자문역을 맡기는 방안을 생각해본다. '국민의 정부' 때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의 국민주권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이는 헌법에 규정된 "국민주권의 원칙"의 구체적 실현이며, 촛불정신의 계승 발전이다. 충분한 정당성과 역사성이 존재한다.
이와 동시에 추첨 방식으로 시민 대표를 선출해 자문단을 추가로 구성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더 이상 시민이 권력의 들러리가 돼서는 안 된다. 시민이 이 나라 이 사회의 주권자이며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해야 하고, 또 이를 반드시 불가역적으로 제도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보수와 안보에 겁먹지 말라
'풍성학려(風聲鶴唳)'라는 말이 있다. 적을 너무 두려워하는 나머지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도 적군(敵軍)인 줄 알고 놀라서 겁을 먹는다는 의미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안보나 보수 세력 얘기만 나오면 그리고 '조중동'이 주장을 하기만 하면 곧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이상한 '풍습'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 보수 세력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고 일패도지한 '종이호랑이'다. 우리가 스스로 패착을 두어 그들을 크게 돕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당분간 그들이 자력으로 크게 부흥하기는 어렵다. 지금 보수표를 얻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보수 기득권 인사들을 대선 캠프에 세우는 모습도 보이는데, 아무리 급해도 독초를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소한 박근혜와 관련된 인사를 모시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 부정이자 동시에 실패한 정권을 본받는 어리석은 일이다.
집현전을 세워 국가대계를 마련하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차기 정부는 이름만 거창한 춘추관이니 영빈관이니 그런 겉치레 말고 세종대왕을 본받아 집현전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현인'들을 초빙해 우리 민주주의와 민족의 미래를 살리고 튼튼하게 발전시킬 장기적 국가전략과 실사구시의 구체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자. 다만 차기 정부에서 갈수록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른바 '폴리페서' 교수 출신 발탁은 되도록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폴리페서'에 의해 실제 정책적 효과를 거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탁상공론이 많고 "종이 위에서 군사(軍事)를 논하는" 지상담병(紙上談兵)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학문적 범주의 자문 역할이 그 타당한 자리다.
오늘 광장에서 시민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이뤄낸 민주주의의 성과를 시민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국가로서의 관료가 가로채는 결과로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관료 집단에 의존했던 지난 시기 민주 정부의 잘못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한 교육부를 비롯해 블랙리스트를 아무런 '생각' 없이 시행한 문체부 그리고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를 막무가내 강행한 외교부, 국방부 등등…. 그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이렇게 맡겨놓을 수는 없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관련된 관료들은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것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밑거름이다.
일례로, 관료 시스템의 전반적 개혁에 앞서 정확한 위상을 지닌 (회계)감사원을 구축하는 것은 건전한 국가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갈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임기 2년의 '유람형' 장(長) 임기 제도가 너무 많은데, 이를테면 국회의장의 2년 임기는 역대 정권에서 권력의 하수인 위상에 지나지 않던 국회 권력을 나눠주기하던 관례에서 비롯된 폐습이다. 이제 그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이러한 식으로 각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차근차근 거둬나가야 한다.
미세먼지 가득한 이 봄날에
정말 '철 없는' 권력자가 가야 할 곳으로 간 이 화창해야 할 봄날, 하지만 푸른 하늘을 보기 어려운 '미세먼지'의 나날은 계속되고 있다. 언제나처럼 당국은 자기 책임은 하나도 없다는 듯 남 핑계대기만 급급하다. 애당초 믿지도 않는 환경부나 정부 대책은 이미 기대를 접은 지 오래지만, 지자체들만이라도 효과적인 대응책을 수립하기를 제발 바란다.
우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나서서 자동차를 자제하는 등 함께 우리의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합할 일이다. 언제 관(官)과 제도권이 뭘 하나라도 한 적이 있었던 나라던가! 촛불에 이은 제2의 시민 행동을 우리 시민이 다 함께 실천해 나가자.
촛불의 힘에만 기대어 개혁할 수 있을까?
2004년 탄핵이 기각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여대야소라 개혁의 적기였다. 하지만 1년여 뒤 재벌·관료·보수 언론이 좋아할 ‘신자유주의 대개혁’의 길을 갔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사무실 안팎에서 “와!” 함성이 솟구쳤다. 만에 하나를 걱정하던 나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뛸 듯한 기쁨은 없었다.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라는 다짐도, 어쩌면 내 스스로를 윽박지르는 것뿐이라는 예단 때문이었을까? 아니, 내 우울은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다.
지난해 11월이 되면서 나는 2004년 촛불 얘기를 꺼냈다. 나이 지긋한 분이라면 누구나 1987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얘기를 한다. 물론 5월에 접어들면 접전 양상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2007년 대선보다 훨씬 큰 차이로 야권 후보가 이길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2004년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다가 기각된 날, 그가 차에서 내려 청와대 본관으로 걸어 들어오던 그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동북아 비서관’이었다. “이제 개혁 한번 해보재이!” 지금도 쟁쟁한 그 목소리.
대통령 인기는 치솟았고 국회도 여대야소였으니 개혁의 적기였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뒤 대통령은 느닷없이 대연정을 들고 나와 좌절한 뒤, 그해 가을 한·미 FTA를 결심했다. 재벌, 관료, 보수 언론이 모두 찬성할 만한 ‘신자유주의 대개혁’이라고나 할까?
2005년 경주 공동선언과 그해 9월19일의 베이징 공동성명으로 한껏 고조됐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는, 참여정부가 미국의 대중국 군사적 포위망(전략적 유연성)과 경제적 포위망(한·미 FTA)에 전격 합류함으로써 산산조각이 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진행된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로 ‘무능하다’고 찍힌 민주파는 정권을 잃었고 뒤이은 9년여의 보수파 집권 결과는 참담, 또 참담하다.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때 평화통일도 가능한 게 아닌가, 꿈을 꾼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동북아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래도 4~5%를 유지하던 성장률은 올해 2%에 턱걸이하기도 힘들다. 중국은 사드 배치 때문에 경제 보복을 하고, 미국은 한국의 무역흑자를 빌미로 경제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겹쳤고, 그 강도는 현대사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또다시 촛불이 “이제 개혁 한번 해보재이” 상황을 만들었지만 유력 대선 후보들은, 심지어 진보 후보까지도 모든 문제의 원인인 사드를 입에 올리려 하지 않고 트럼프의 압력에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대개혁’을 촉발한 인사를 캠프에 영입하고 내친김에 박근혜의 ‘줄푸세’ 창안자와 악수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한 비전도 배포도 없는 분들이 오로지 촛불의 힘에 기대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참여정부가 그랬듯이 좌절과 좌절을 거듭하면, 기득권이 원하는 쪽으로 가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한 후보는 아예 처음부터 재벌과 관료, 보수 언론이 제시하는 길로 가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11년 전보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훨씬 더 절실해졌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현실화된 지금, ‘동북아 균형자’는 더욱 절실하다. 아니, 이제 미국과 중국에 동시 압력을 받는 모든 나라가 ‘동아시아 균형 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 트럼프의 환율 압력에 대해서도 동아시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외교안보 쪽에서도 동아시아에서 맞붙고 있는 미·중 군사대결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공동대응, 궁극적으로 안보 공동체가 절실하다. 미국의 동북아 개입에 빌미를 계속 제공하는 북핵 문제 역시 동아시아가 힘을 모아야 할 일이다.
좌절과 좌절을 거듭하면, 기득권이 원하는 길로 간다
때마침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중단해 배 위에 둘둘 말린 그물 꼴이 되었으니 한동안 경제적 포위망을 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드 배치가 대중국 군사적 포위망의 신호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실 사드에 관한 협상의 여지는 넓고 그 결과로 우리가 얻을 것도 무궁무진하다. 이미 현실이 된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들고 나오는 건 국제정치의 기초도 모르는 바보의 헛소리이고, 더구나 한·미 동맹 운운하는 건 얼마나 역사적 지각이 없는지 증명할 뿐이다.
2004년 촛불의 교훈은 ‘개혁적’ 대통령이라도 힘들고 지치면 오히려 개혁 대상의 편을 들 수 있고, 그 후유증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원인과 대책을 끝없이 광장에서 소리쳐야 한다. 그럴 때만 어리숙한 지도자도 역사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 제 삶이 나아지나요?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부과 체계 개편은 지역 가입자와 직장 가입자 간의 형평성 문제와 '고소득자가 보험료를 덜 내거나 소득 있는 피부양자가 무임 승차하는 것' 등의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요구해오던 사안이다. 특히 이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1년 동안 관련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완성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보건복지부 장관의 일방적 결정으로 유예되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결국 부과 체계 개편은 촛불 혁명과 박근혜 파면으로 다시 살아난 정책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법률안의 내용과 의미
이번 개편으로 성별과 나이 등을 기준으로 소득을 추정해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던 '평가 소득'이 폐지된다. 지역 가입자의 자동차에 부과하던 건강보험료도 폐지되거나 줄어든다.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가 직장 가입자인 자녀나 가족에게 무임 승차하던 것도 이제 어렵도록 변경된다. 이들은 무임 승차 대신에 지역 가입자로 전환되어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또 형제와 자매는 피부양자에서 제외되었다.
이 법률의 통과로 직장 가입자들 중에서 임대 소득이나 금융 소득 등 월급 이외의 소득이 연간 3400만 원 이상(1단계)이거나 2000만 원 이상(2단계)인 고소득자들도 건강보험료를 더 내게 된다. 또 '7년 동안 3단계'로 진행되도록 설계된 정부안이 국회의 심의 과정에서 '5년 동안 2단계'로 변경되어 시행 기간이 2년 앞당겨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이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면서 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전체적으로 건강보험료를 경감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다. 부과 체계 개편으로 인해 전체 건강보험 재정은 연간 3조982억 원이나 적자가 나는 것으로 최종안이 통과되었다.
부과 체계 개편은 정책의 목표가 불공평한 부과 체계를 바로 잡아서 부담의 형평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즉 건강보험 재정을 튼튼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재정 중립 상태로 부과 체계를 개편해서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은 이렇게 중차대한 법안조차 원칙에 어긋나게 천박한 '선심성 정책'으로 타락시켜 버렸다. 이는 온 국민과 함께 개탄할 일이다.

▲ 여야가 지난 3월 30일 통과시킨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가 나게 생겼다. ⓒ연합뉴스
여야 정치권의 천박성 : 온 국민과 함께 개탄할 일
지금까지 각 정당들은 부과 체계 개편을 통해 최소 5조1817억 원(국민의당)에서 최대 9조 3400억 원(더불어민주당), 또는 9조4500억 원(정의당)의 재원을 추가적으로 더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런 내용으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서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의해 왔었다. 건강보험연구원의 자료를 근거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시행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에서도 퇴직, 양도, 상속, 증여 소득 등 보수 외의 소득을 가진 가입자들로부터 5조2897억 원과 금융 소득에 대한 건강보험료 1조3480억 원 등 약 7조3017억 원을 추가적으로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6.12%로 일본의 8.5%나 대만의 9.1%와 비교해도 3분의 2 수준이고, 프랑스나 독일의 15%에 비하면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동안 시민사회와 학계 전문가들이 건강보험료의 적정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여야 정치권은 부과 체계 개편으로 인해 애초 약속한대로 건강보험재정을 증가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연간 3조 원이 넘는 재정 적자를 용인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것이다.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이 중요한 이유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부과 체계 개편 방안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시간에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차기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 :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정책 제안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3% 수준에서 정체되면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과 이로 인한 고통은 지속되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증 질환에 걸리면 발생할 고액 의료비 부담은 재난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전체 가구의 88.1%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 의료보험료로 가구당 월 평균 30만8265원을 내고 있다. 이날 대토론회에서는 이런 의료비 불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차기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이 제안되었다.
전체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 되도록 80%로 높이고, 입원 진료의 경우에는 90%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더해, 비급여 항목을 전면적으로 급여화하고, '연간 본인 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국민들이 환급율이 50%에도 못 미치는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거의 없어진다.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최대 68조 원으로 예상되는 2018년도 건강보험료 수입 외에 18.2조 원의 추가적인 건강보험 재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법률에 정해진 대로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의 '20%를 국고에서 부담'하는 내용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2.7조 원을 추가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으로 약 7.3조 원을 추가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나머지 8.2조 원(14.4%) 정도를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부담하면 된다.
만약, 여야 주요 정당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해오던 대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안을 반영했다면, 여기에서 7조 원 이상의 추가 재원이 조성되므로 우리 국민은 개인당 월 평균 약 8000원, 가구당 월 평균 약 1만7000원의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것으로 의료비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매달 납부하던 민간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기존에 가입한 민간보험은 해지해서 일시불로 환급받거나 나중에 연금과 같이 받을 수 있는 보장성 보험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은 매월 그 금액만큼을 추가적으로 소비할 수 있고, 중병에 걸려도 의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이는 의료비 보장을 넘어 내수 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야권발 '공약 축소'나 '공약 파기' 없어야
국민의당은 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하면서 '중부담-중복지'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적정 부담-적정 급여'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의 당론을 채택했다.
문재인 후보는 2012년 대선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의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 정책에 대해 '심장은 되고 간은 안 된다는 말입니까?'라고 비판하면서 '모든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강조했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정책이 연간 6000억 원 수준의 국민 부담을 줄이는 정도에서 그쳤고, 결국 보장성을 확충하는 데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므로 촛불 혁명의 수혜를 본 야권 후보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

▲ 문재인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공약을 제시했다. ⓒ문재인 캠프
그런데 여야 주요 정당들이 기존의 당론과 달리 오히려 '건강보험료를 내리고 건강보험 재정을 축소'하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가 불안이 엄습한다. '공약 축소'나 '공약 파기'라는 박근혜 정권에서 우리 국민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서다.
현재 21조 원의 건강보험의 누적 적립금은 내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현재의 보험료율을 유지할 경우 2025년이면 약 20.1조 원의 적자로 전환되므로 건강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적립금은 국민의 삶이 어려워져 필요한 의료 이용을 못하게 되어 건강보험 급여가 덜 지출된 결과이고, 정부가 국고 지원을 줄이기 위해 흑자를 쌓아 놓고도 급여 확대를 하지 않은 결과이다. 그 돈이 쌓여 있는 것만큼 국민은 아파도 의료기관을 가지 않은 것이며, 본인 부담 의료비를 더 지출하거나 불필요한 민간 의료보험에 더 많이 가입을 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여야 정치권이 박근혜 정부와 꼭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연간 150만 명에 이르는 건강보험 장기 채납자 문제도 그대로 남게 되고, 가구당 매달 30만 원이 넘는 민간 보험료도 계속 내야 한다. 그러고도 가난한 사람들은 큰 병이 걸리면 치료를 포기하거나 집을 팔아서 치료비를 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국민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큰 병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앞으로도 여전히 의료비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내 삶이 바뀌는 것이 정권 교체 :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물론 새 정부가 당면할 어려움은 꼬일 만큼 꼬인 외교 문제에서부터 침체한 경제 문제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차기 정부를 이끌 지도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은 책임이 더 막중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건강보험료 몇천 원 깎아주는 정책이 아니라 솔직하고 정중하게 국민을 설득하고 어려움을 나누어 가지자고 호소하는 참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의료'만큼은 누구라도 차별받지 않고 필요한 만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담대한 선언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고통스러운 차별은 바로 '의료 이용의 불평등'이다. 차기 대통령은 아픈 사람이 차별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적어도 의료에서는 형평성이 보장될 것이라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분명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이다. 그것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부담금 100만 원 상한제'이다.
광화문 촛불 혁명으로 탄생하게 되는 차기 정부에서조차 건강보험료 몇천 원을 줄여주고 현재의 낮은 보장성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우리 국민 입장에서는 탄핵 이전과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국민건강보험의 낡은 '저부담 저급여' 체계를 그대로 지속하려고 보통사람들이 지난 5개월 동안 20회가 넘는 주말을 반납하며 그렇게 끈질기게 촛불을 든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앞으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통과된 부과 체계 개편 안을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다시 한 번 개정해서 고소득자들에게 부담을 더 지울 수 있다. 아니면 부과 체계는 재정 중립 상태로 개편하되,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연동한 약 25-30% 수준의 건강보험료 인상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동의를 얻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차기 정권이 가져야 할 보장성 확대 정책의 목표는 더 이상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것이라야 한다.
대선 TV 토론에서 비춰지는 후보들의 모습만으로는 누가 바람직한 대통령이 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광화문 촛불 시민의 뜻을 계승한 차기 정권의 역할이 단순히 '박근혜 적폐 청산'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투표에서 우리의 판단 기준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해답은 명확해진다. 우리의 판단 기준은 정권이 바뀌면 실제 나의 삶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보자가 복지국가를 만들 의지와 능력이 있는 지도자인지, 이 부분을 명확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다)
'부역 언론인' 청산하고 발 못붙이게 하는 방법은?

1987년 체제가 이룩했던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는 '이명박근혜 집권'으로 '민주주의 후퇴'라는 역설적 상황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국민은 촛불을 들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 냈다.
이제 국민의 염원은 다시는 후퇴하지 않을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파면'은 "보수도 버린 이상한 대통령 제거"에 불과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하나 제거했다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담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를 버렸다는 보수 인사들 중에는 "황교안을 찍으려고 했는데, 출마를 안한다니 황당하다", "안희정을 찍으려고 했는데, 민주당 경선 문턱을 넘기 힘들다고 하니 아쉽다"는 식으로 "문재인만은 안된다"는 인식을 가진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언론 분야만 놓고 보자. 박근혜 정부에서 MBC 기자들은 '공영 기레기'로 불렸다. 대표 공영방송이라는 KBS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가 이어질 때 몸을 사렸다. 한국에서 공영방송이 실종된 상황이 이어졌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권력의 도구에서 벗어난 공영방송이 들어설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언론개혁을 외치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발언은 표심을 끌기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노력은 뒷전에 밀려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은 '박근혜 너머'의 언론개혁의 큰그림을 그려줄 적임자로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기로 했다. 김 교수는 진보성향의 언론학자이자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KBS 이사로 참여하는 등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비판과 대안 제시에 앞장서고 있는 언론개혁 활동가로 꼽힌다.
언론개혁은 '박근혜 아웃'과 정권 교체 정도로 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언론개혁을 위한 활동가의 현실적 고민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그래서 결국 언론개혁은 '언론인의 자율성'과 시민의 수준이 동반 상승하지 않고는 바라기 힘든 과제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다음은 지난 22일 조계사 나무 카페에서 진행된 김서중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언론개혁이라고 할 때,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방송들이나 이른바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종이신문들을 개혁대상으로 떠올리게 되는데, 언론개혁의 대상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김서중: 우선 언론을 하나의 생태계라고 볼 때, 각각의 매체들이 나름대로의 역할과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모바일 시대가 득세하고 전통적인 매체들이 사양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통적인 신문, 방송 매체 모두 잘 살려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논의했으면 한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언론개혁은 구체적인 매체를 언급하기 전에 매체가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현상도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급하게 현실적인 해결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정치권력의 탄압이나 개입을 심각하게 받고 있는 매체들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가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 질서에 따라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광고주에 알아서 기는 식의 행태, 뉴스 '어뷰징'이나 일삼는 매체들의 행태가 그런 것이다. 정치권력보다 더 무서운 자본권력에 의해 왜곡된 이런 상황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프레시안: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공영방송이 어용방송이 되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이런 방송들이 공영언론으로서의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이들이 어떤 탄압을 받았다고 보나.
김서중: MBC와 KBS는 모두 노골적인 정권의 개입이 있었다.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신속하게 해결해야 하는 언론개혁의 과제다. 그런데 사실 공중파 방송이나 종편들이 권력의 개입을 받지 않게 됐다고 해서, 제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으로 금세 바뀐다고 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광고시장 등 시장 자체가 이들이 정상적인 언론으로서 기능하기에는 이미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언론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공영방송을 제기능을 하는 언론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즉. 공영 방송은 정치적 탄압도 받고 있고, 광고와 시청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존 논리에서도 자유롭지 않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종편까지 정권에 의해 인위적으로 탄생하면서 시장질서는 더욱 왜곡됐다. 일단 존재하게 된 종편을 폐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종편까지 정상적인 언론으로 만드는 개혁이 필요한데, 역시 힘든 과제다.
프레시안: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언론개혁을 시도했을 때도 저항이 심했다. 인위적으로 언론환경을 흔들어댄다고 보수언론들이 공격하지 않았나.
김서중: 보수언론이 그런 프레임을 짜고 반격을 했지만, 그들이 영향력을 누리는 질서 자체가 왜곡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자전거 등 경품으로 판촉을 하는 행태가 정상적인 자유시장 질서인가? 그리고 이를 정상화하자는 것이 억압하는 조치였던가? 그들이 옹호한 시장질서는 언론 수용자 입장에서 좋은 언론 콘텐츠를 구매하려는 콘텐츠 경쟁시장이 아니다. 경품으로 판촉 경쟁이나 하는 시장은 개혁이 필요한 왜곡된 시장 질서다.
프레시안: 당시에 이미 종이신문들은 사양산업이라는 위기감이 컸다. 생존을 위해 경품을 내건 판촉이라도 하겠다는 언론사의 영업을 막는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문을 닫게 하는 조치일 수 있지 않나?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28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없이 회의를 단독 개최해 신상진 위원장과 새누리당 박대출 간사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미방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해 6월 제출된 언론장악방지법에 대해 새누리당이 반대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심사조차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KBS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
김서중: 언론개혁에 사회적 지원이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는 주요 언론을 '중심언론'이라고 할 때, 이런 중심언론이 왜곡된 시장질서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KBS의 경우 수신료를 인상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KBS가 수신료 인상으로 광고에 덜 의존하게 만들어서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고, KBS가 가져가던 광고 일부를 다른 매체들이 가져갈 기회를 제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수신료 인상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구실을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프레시안: 언론개혁을 위해 사회적 지원을 하려고 해도 재원 조달에는 한계가 있다. 공룡같이 비대해진 공중파 방송을 사회적으로 지원해 유지시킨다는 것은 사회적 낭비가 아닐까?
김서중: 중심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낭비라고 여기는 것은 언론이 창출해 내는 문화적 자원에 대한 기대 수준과 평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유럽 선진국 언론에 비해 미국 언론은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독일의 공영방송 ZDF는 방송 프로그램을 공중파로 방송하기 1주일 전부터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한다. 화질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보고 싶은 시청자가 먼저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광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이런 방송 프로그램을 특별히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활용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것이 그 사회에 얼마나 많은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언론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무형의 자산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문화적 자산으로 연결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프레시안: 중심언론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4차 산업혁명의 문화적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김서중: 4차 산업혁명을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실제 최종으로 상업적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그런 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보편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적 자원을 제공하는 중심언론 특히 공영언론이다. 기초학문이 응용학문이 발전할 토대가 되고,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의 기반이 되는 것처럼 중심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곧 장기적으로는 생산적인 투자라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중심언론이 콘텐츠를 팔아 당장의 수익을 얻기 위해 급급한 시장질서에 매몰되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이행할 수 없다.
'숙의 민주주의'를 위해 중심언론 육성해야
프레시안: 중심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하는 문화적 투자라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그런 시각을 연장하면, 중심언론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단순히 산업을 위한 투자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서중: 그렇다. 중심언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바로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투자이기도 하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 '박근혜 탄핵' 사태는 공공정책을 논의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부실한 토양 탓도 크다. 숙의 민주주의 사회가 되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습관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런 습관이 정착된 사회라면, 종이신문의 사양화도 그리 급속히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더 높은 수준의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부추겨야 한다. 종이신문은 독서를, 방송은 신문을 읽도록 권장하는 것이 각각 신문과 방송이 사는 길일 수도 있다. 책을 보기 부담스러우면 신문을 읽고, 신문이 부담스러우면 양질의 방송 콘텐츠를 수용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다. 하지만 지금은 역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상업적 저질 콘텐츠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로 가고 있다.
프레시안: 중심언론이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시민들이 이를 수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뜻 도덕적인 요구 같이 들린다.
김서중: 단순히 도덕적인 요구가 아니다. 사람들은 유용함을 느껴야 구매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도 사람들이 유용함을 느껴야 유지되고 강화된다. 민주주의가 유용하고 효율적인 제도가 되려면 이런 양질의 콘텐츠를 수용하여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로서 행동하는 수용자가 많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회는 중심언론이 만드는 콘텐츠뿐 아니라, 다른 언론들이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도 수용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서 여러 언론들이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중심언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현재 확대되고 있는 개인의 소통 즉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 현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심언론이 생산하는 양질의 콘텐츠는 이에 기반을 둔 개인의 다양한 민주적 토론에 기여할 것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2월 24일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김장겸 신임 사장의 첫 출근에 “김장겸씨를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피케팅 시위를 벌였다.ⓒ언론노조 MBC본부
"공영방송 구조조정 논리는 천민 자본주의적 발상"
프레시안: 중심언론이 생산하는 콘텐츠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대안은 어떤 것이 있나?
김서중: 현재 공영방송이 편파성을 띠게 되는 것은 정권이 사장을 선임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KBS의 경우 사장을 임명하는 이사회 자체가 균형이 맞지 않게 구성돼 있다. 이사진이 7대 4로 정권의 뜻을 따르는 성향이 강한 이사들이 두 배 가까이 많다. 이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사가 되지만, 친정부 성향 이사들이 다수 추천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이사 구성을 여당 추천인사 7명과 야당 추천인사 6명으로 통일하고,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할 때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특별다수제를 포함하는 '방송법 개정안(일명 방송장악방지법)'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이 방안은 사장 임명을 위해서는 여야의 합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최소한 편파적인 성향의 인물이 사장이 될 수 없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사회 구조로는 공영방송을 정상적으로 이끌 인물을 사장으로 선출하기 어렵다고 비판도 한다. 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공영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삼고 싶은 유혹이 있기 때문에 이런 최소한의 개선이라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조차도 현 여당의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한 게 현실이다. 또 기존안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시민사회에서는 이런 방안의 한계를 극복하고 악용 가능성을 막을 보완책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를 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박근혜 정권의 부역언론인 청산 없이 언론개혁을 얘기할 수 있겠나?
김서중: 물론, 부역언론인 청산은 언론개혁의 기본전제다. 하지만 청산을 이전 정권처럼 불법, 편법으로 무리하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언론계에서 대표적인 부역언론인으로 지목된 김장겸 MBC 사장을 예로 들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강제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그가 언론인으로서 비정상적으로 진행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진상조사와 청문회 등으로 책임을 물어 경영의 중심에서 배제하고 법적으로 처벌할 것이 있으면 처벌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부역언론인 청산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정도로 어용방송이 공영방송으로 탈바꿈하기는 어렵다는 회의론도 있다.
김서중: 사실 언론개혁을 위해 사장 임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의 경우, 보도.제작.편성의 일선에 있는 기자와 PD들이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보도.제작. 편성 책임자에 대한 직선제, 동의제, 중간평가제 등으로 기자와 PD들이 이들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설기구로서 편성위원회와 공정보도위원회를 법제화하고, 위원회 구성을 적어도 노사동수로 해서 균형있는 기구가 되도록 하는 것도 자율성 강화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 최근에는 가짜뉴스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류언론이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장본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있나?
김서중: J.S 밀의 <자유론>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에는 100% 진실도, 100% 거짓도 없다. 또 진실도 거짓의 도전을 받지 않으면 교조화된다.' 거짓이라는 것을 인위적으로 걸러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옳은 건지 의문이다. 일부 허위를 담은 정보도 진실이 더욱 다져지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가짜뉴스를 인공지능으로 걸러낸다는 얘기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존 언론의 기사에는 허위 정보가 정말 없겠는가? 누가 판단할까? 결국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사회가 진실과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더 많이 유통시켜서 가짜뉴스와 거짓이 자연스럽게 가려지게 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가짜뉴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다. 그렇기에 신뢰도 높은 중심언론의 정립이 더욱 중요하다.
프레시안: 가짜뉴스를 수용자들이 가려내는 사회라는 것은 수용자들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져야 할 것이다. 언론개혁을 논의하다보니 결국 수용자의 수준까지 연결된다. 그런데 한편 공영언론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공영방송이 방만하다는 지적도 있지 않나?
김서중: 중심언론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람직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내용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공영방송에 종사하는 인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발상은, 적은 비용으로 생산한 수준 낮은 콘텐츠라도 시장에서 많이 소비되면 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이런 논리는 시장에게 권력을 넘겨주자는 천민 자본주의적 발상이다. 콘텐츠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완성도가 높을수록 훨씬 더 많은 자원이 요구된다. 이런 자원을 지원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이 결국 더 큰 사회적 유용함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언론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가 한국당과 단일화하는 순간, 호남은..."


본선 대진표가 얼추 짜여 간다. 5당의 대선후보들이 사실상 확정됐다.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홍준표, 심상정. 원외에선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출마할 채비다. '5+1' 구도다.
여론조사 수치만 놓고 보면 나머지 후보 지지율을 다 합쳐도 문재인 후보 지지율보다 낮다. 대선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유인태 전 의원에게 각 당의 경선이 남긴 의미와 향후 본선 전망을 들어봤다.
우선 5자 구도에서 지지율 1, 2위를 기록하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역관계가 갈라지는 호남이 관심이다. 호남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경선에서 두 사람에게 표를 몰아줘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양분된 호남 민심은 본선까지 이어질까? 유 전 의원은 "과거같이 한쪽에 일방적으로 몰아주지는 않더라도 호남은 나중에는 될 사람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후보의 딜레마를 지적하며 한 말이다.
"안철수는 1대1 구도를 기대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유한국당과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 그러면 호남은 문재인에게 확 쏠리겠지."
후보 단일화 전망도 부정적으로 봤다. 유 전 의원은 "단일화를 한다면 방법이 여론조사뿐인데, 밀리는 쪽에는 사실 양보하라는 거다. 그건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이니까 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특히 반(反)문재인 단일화의 명분 부족을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은 "안철수가 연대를 하려면 국민의당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과 매우 괴리된 결정을 해야 한다"며 "안철수가 단일화 연대를 하고 호남에서 지지율이 빠지면 그나마 있는 10%대 지지율도 반 토막 날 수 있다"고 했다.
홍준표-유승민 간의 보수후보 단일화에 대해서도 유 전 의원은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 후보 단일화를 한다면 대선 후에는 자유한국당에 바른정당이 흡수될 것"이라며 "바른정당과 유승민은 지지율이 낮더라도 이번에는 길게 보고 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단일화 논의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5자 구도라는 큰 틀이 변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김종인 전 의원의 파괴력도 낮게 봤다. 유 전 의원은 "(40년생인 김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무렵의 나이"라며 "김 전 대표 출마가 판세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겠나"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김종인 전 의원과 회동해 관심을 끈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행보에 대해선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보수와 진보를 다 아우르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사회 원로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선 변수다. 유 전 의원은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게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른다. 문재인 후보로서는 이런 변수가 안 생기는 게 일단 유리하기는 하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승리가 확정적인 가운데, 유 전 의원은 안희정 충남지사가 "친노와 운동권 두 집단이 국민들에게 갖는 나쁜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 세력을 얼마큼 잘 포용하고 진정성 있게 화학적 결합을 이루려고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이렇게 하는 게 문재인을 위해서도 좋고 당을 위해서도 좋다"고 통합 행보를 조언했다.
다음은 지난 29일 유인태 전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 유인태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안희정이 당을 살찌웠다"
프레시안 : 호남 경선을 지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의 승리가 확정적이지 않나 싶다.
유인태 : 나는 안희정이 대단히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전 '선의' 발언을 한 것이 상당한 악재가 됐다. 그렇게 얘기한 것은 큰 실수이지만 억울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안희정이 내세우는 연정이나 협치라는 가치는 사실 요즘 정치인들에게 아주 절실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그 특유의 저돌적 성격 때문에 어떤 정책을 추진해도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앞으로도 문재인 후보가 당선 후 대통령이 되어 무얼 하려고 하면 야당은 일단 부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똑같은 것을 안희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주장하면 선입견 없이 상대편이 볼 것이다.
만일 대선이 연말이어서 후보들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국민적 분열을 부르는 정치권 대결 구도를 해결할 적임자로 국민들은 안희정을 고려했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대선까지 시간이 굉장히 짧다. 결정적인 때에 '선의' 발언이라는 큰 실수를 해서 상승세가 꺾였다.
경선 결과와 별개로 안희정이라는 인물은 앞으로 민주당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문재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안희정의 존재는 문재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보수층에서는 민주당의 친노나 486들을 다 '뿔난 사람'으로 알지 않나. 운동권 출신도 모자라 심지어 종북 좌파라고 공격한다. 이런 조건에서 안희정이란 인물이 선전한 것은 당을 살찌운 측면이 있다.
당내 비주류에게도 안희정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 비주류들을 보면 자신들의 위치가 불안해서 그런지 정치 행보에서도 안정감이 없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을 자주 보여서 신뢰를 주지 못했다. 비주류들은 주류보다 노선으로 보면 조금 오른쪽인데, 어떤 때는 초급진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일관성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안희정은 자기주장을 잘 다듬어서 탄탄하게 펼쳤다. 조직만 봐도 문재인 캠프는 이지스함이고 안희정 캠프는 돛단배 수준인데, 돛단배로 참 잘했다.
앞으로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 세력을 얼마큼 잘 포용하고 진정성 있게 화학적 결합을 이루려고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하는 게 문재인을 위해서도 좋고 당을 위해서도 좋다. 국민들이 보기에 친노 486과 달리 '민주당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번 대선 경선의 아주 큰 소득이다.
프레시안 : 선의 발언과 함께 대연정 문제도 안 지사에겐 득표 면에서 장애물이었다. 반대로 보면 누가 집권해도 연정은 상수인데, 문재인 전 대표는 연정 자체에 대해 매우 협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유인태 : 문재인 쪽에서는 연정이나 협치는 당선 후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은 적폐 청산에 주력할 때라고 한다. 국정농단 세력과 무엇인가를 함께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얘기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광장의 민심도 적폐 청산이고. 안희정의 협치론이나 문재인의 적폐청산이나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도 집권하면 연정 안 할 수 없을 텐데.
유인태 : 지금의 민주당 121석 가지고 연정이나 협치를 안 할 수 있겠나. 그런데 문재인은 워낙 안철수와 관계도 그렇고…. 안희정이 되면 연정이 좀 더 부드럽게 구성될 거고 문재인이 되면 좀 더 애를 먹긴 하겠지.
프레시안 : 문재인 캠프의 당 안팎의 세 불리기를 어떻게 보나. 캠프가 비대해지면 집권 후 논공행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유인태 : 대선 경선이건 전당대회건 당의 지역위원장은 중립을 지키게끔 하는 문화나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수의 참모진이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지원 활동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느 지역의 대의원이 특정 후보에 줄을 서면 그 지역에선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말을 못 꺼내게 된다. 다들 제각각의 선호가 있는 거 아니겠나. 그건 좀 열어줘야 한다.
다만 문재인 캠프 쪽에 워낙 많은 인사가 합류하다 보니, 집권 후에 논공행상 문제가 불거질 거란 지적도 나오는데 문재인이라는 사람은 원칙주의자다. 그 문제에선 냉정할 것이라고 본다.
"단일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 유인태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유인태 : 호남에서 6만 명이 투표한 것을 가지고 국민의당이 '대박'이라고까지 할 일인가 싶기는 했다. 박지원 대표가 참 그런 선전을 잘한다. 국민의당이 지난 총선에서 호남을 싹쓸이하지 않았나. 23명의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이란 점을 고려하면 6만이 아주 많은 숫자는 아니라고 본다. 6만 정도면 망신은 면했구나 싶다. 그래도 어느 정도 흥행을 해서 이번에 컨벤션 효과는 많이 누린 것 같다.
프레시안 : 호남이 문재인과 안철수로 일찌감치 구도를 정리해 준 셈인데, 문재인과 안철수로 양분된 호남 민심이 지속될 것으로 보나?
유인태 : 물론 과거같이 한쪽에 일방적으로 몰아주지는 않더라도 호남은 나중에는 될 사람 밀어줄 것이다. 구도가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다. 안철수는 1대1 구도를 기대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유한국당과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 그러면 호남은 문재인에게 확 쏠리겠지.
프레시안 : 기계적인 단일화든, 여론으로 자연스럽게 후보 정리가 되든, 문재인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의 단일화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유인태 :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단일화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단일화를 한다면 방법이 여론조사뿐인데, 밀리는 쪽에는 사실 양보하라는 거다. 그건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이니까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때 10%포인트 이상 뒤지는데도 던진 거다. 그건 노무현이라는 승부사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내가 안 돼도 좋다. 이회창이 되는 거보다 정몽준과 승부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한 거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세론이 강할수록 반 문재인 단일화 압박도 강해지지 않을까?
유인태 : 그건 단일화 명분이 될 수 없다. 개헌을 명분 삼아 연대하는 건 틀려버렸다. 이제 다른 명분이 뭐가 있나. 무조건 문재인은 안 된다? 안철수가 반문재인을 기치로 자유한국당하고 손을 잡는 순간, 그 당의 의원들과 지역 민심이 어떻게 되겠나. 안철수가 단일화 연대를 하고 호남에서 지지율이 빠지면 그나마 있는 10%대 지지율도 반 토막 날 수 있다. 안철수가 연대를 하려면 국민의당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과 매우 괴리된 결정을 해야 한다.
안철수는 호남 민심을 외면하는 합종연횡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당의 입장에선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도 있는데, 이번 대선에서 보수당과 단일화를 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국민의당 후보들은 어디 가서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나.
프레시안 :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간의 '보수후보 단일화'도 어렵다고 보나?
유인태 :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유승민 쪽에선 단일화 조건으로 자유한국당의 제대로 된 친박계 청산을 내걸었는데, 지금 자유한국당은 친박이 주도하고 있지 않나. 자유한국당에서 탄핵에 찬성한 사람이 30명이란 말은, 뒤집어 말하면 탄핵을 반대한 사람이 60명이고 여전히 당 주도권은 친박계에 있다는 것이다. 유승민의 단일화 조건은 현실화될 수 없다.
잠깐 첨언하면, 나는 홍준표의 출마를 자기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고 기소되면서 홍준표 정치 생명은 다들 끝났다고들 보지 않았나. 그런데 재기의 기회가 온 것이다. 정치인들 가운데 그런 사례를 많이 봤다. 1심이나 2심에서 유죄 판결받았는데 선거에 나가는 경우들. 이건 선거에 나가면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보고 출마하는 것이다. 홍준표도 대선 출마로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거다.
내년에 지방선거도 있는데 만약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 후보 단일화를 한다면 대선 후에는 자유한국당에 바른정당이 흡수될 것이다. 바른정당과 유승민은 지지율이 낮더라도 이번에는 길게 보고 가야 한다. 바른정당이 보수를 주도해야 한다. 그런 흐름이 생겨야 하고, 길게 보면 생길 거라고 본다.

▲ 유인태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김종인, 노익장 과시는 좋은데…"
프레시안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출마가 임박한 것으로도 보인다. 김 전 대표의 민주당 탈당과 독자 출마를 어떻게 보나.
유인태 : 민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 중진들이 논의한 끝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몇 명이 거론됐고, 거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누가 이 당에 구원투수로 오겠다고 하겠나. 그런데도 김 전 대표는 와서 총선을 승리를 이끌었다. 김 전 대표로선 여세를 몰아서 당을 좀 개조해야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그런데 그게 당에서 받아들여지겠나. 김 전 대표에 불만이 있었던 의원들도 선거 때라 참았던 것뿐이다.
총선에서 이기고 나니 김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연말까지 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붙었다. 그런 일로 김 전 대표의 심기가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선거 때 데려다 쓰고선 토사구팽 하는구나 싶었을 수 있다. 이후 문재인 후보 쪽으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전윤철 전 감사원장, 조윤제 서강대 교수 등이 합류하는 것을 보고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민주당에 대해서 김 전 대표가 너무 몰랐던 거지….
김 전 대표는 지금 출마하면 못 해도 5% 정도의 지지율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 김 전 대표 나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무렵의 나이다. 노익장으로서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좋은데…. 5% 이상 나온다고 해도 그 지지율로 바른정당 유승민과 단일화를 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와 단일화를 하고 이런 구상이라면 산 넘어 산이다. 김 전 대표 출마가 판세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김종인 전 대표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만나서 관심이다. 홍 전 회장 구상은 뭐라고 보나?
유인태 : 홍 전 회장은 어떤 자리를 탐하거나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언론사 회장 출신으로서 한국 사회에 무엇인가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홍 전 회장이 출범시킨 '리셋 코리아'도 그런 일환으로 본다. 꼭 어느 후보를 지지하기보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보수와 진보를 다 아우르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사회 원로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두 번 섰다. 사법적 처리 절차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나.
유인태 : 박 전 대통령은 인지부조화 상태 같다.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인식을 못하고 있다. 처음엔 얼떨결에 사과 성명을 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억울하다, 엮였다'고 한다. 심하게 말하면 사회화가 안 된 사람이다. 10살 때 청와대 들어가서 누구와 친목을 할 수 없지 않았나. 동생들과는 인연 끊어졌고 최 씨 일가하고 식구가 된 거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이웃도 만나면서 사회화가 되는 건데, 박 전 대통령이 그 대목이 제대로 안 됐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소위 인식 능력에도 상당한 결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거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가 대선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유인태 : 알 수 없다.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게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른다. 문재인 후보로서는 이런 변수가 안 생기는 게 일단 유리하기는 하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으니 법과 원칙대로 진행돼야 한다.
다만 시간이 흘러서 '이제 불쌍하다 그만 하자. 반성도 하는데' 이런 민심이 형성되면 그때는 대통령이 사면을 판단해볼 수 있겠다. 요즘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면 질문자가 후보들에게 '사면을 할 것이냐 아니냐'를 집요하게 물어보는데, 그 질문은 가혹하다. 대통령은 민심을 따라야 하고, 민심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을 때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민심이 사면을 원하고 그것이 국민적 화합을 위해 좋다고 판단되면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대통령의 사면권이 아니겠나.
박근혜 구속, 변수는 있으나 역풍은 없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으로 일부 강성 보수층의 결집은 다소간 있을 수 있으나, 범보수층이 새로 조직되거나 판세의 변화가 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층에 의해 핍박받은 것이 아니라, 검찰과 법원의 결정에 의해 구속됐기" 때문이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 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전체 판세에 역풍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윤 실장은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친박근혜계인) 김진태 예비 후보와 친박 단체들이 강하게 결집해서 홍 지사가 당을 장악하기 어려울 수는 있겠다"고 내다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까지만 해도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여부, 구속 여부에 따라서 대선판이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에 대해 윤희웅 센터장은 "탄핵이 한참 남았을 때는 오지 않은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만, 탄핵이 현실화된 지금은 보수의 회복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이 증명되는 상황"이라며 "박근혜 변수는 원래 없었다"고 말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구속 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작 탄핵이 인용된 지금 대선의 주요 변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라, '인물'과 '구도'로 넘어왔다는 분석이다. 보수층 '스윙 보터'가 결집하지 못하는 것은 '박근혜 변수'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줄 인물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조차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절하고, '대선 모드'에 돌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31일 SBS 라디오에 나와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 보수 결집을 만드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이 새로운 미래를 엮어갈 올바른 대통령을 뽑는 데 더 선명한 판단을 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을 '과거'로, 다가올 대선을 '미래'로 규정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조차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타깝지만 박근혜 시대는 이제 끝났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날"이라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만약 홍준표 지사가 이날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다면, 원내 5개 정당 후보들 가운데 '친박 후보'는 한 명도 없는 구도가 짜인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보수의 결집'을 위해서라도 자유한국당 후보마저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연정 배재대학교 교수는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나와 "홍준표 지사가 후보가 된다면,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1차적으로 정리해내고 '보수의 개혁'과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실제로 보수를 재편하는 개혁적인 노력을 충분히 해야만 경쟁력이 생기고, 보수가 결집하는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유한국당 후보가 최종 결정되는 데 이어 다음주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후보가 결정되면 남은 것은 구도다. 특히 최근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소속 후보들이 10%대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는 가운데,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지율 2위로 약진한 점이 도드라진다. (☞관련 기사 : 안철수 9%p 상승…'안철수의 시간' 오나?)
다만, 안철수 전 대표가 약진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철수 전 대표는 '국민이 양자 대결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대선은 다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큰 탓이다. 정연정 배재대학교 교수는 "안철수 후보에게 가장 좋은 구도는 양자 대결 구도이겠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이 막판에 안철수 전 대표가 원하는 것처럼 실제로 국민이 알아서 연대를 해주실지는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윤희웅 센터장은 "보수 진영 후보가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우니, 만약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최종 후보로 확정된다면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중도, 보수층의 지지가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한 지지로 순차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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