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한반도도 대형 재난 비껴갈 수 없어…위기관리 시스템 재정비해야
이채언 미래위기경영연구소장((前국가위기관리실 정책자문위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6(목) 17:49:19
현재 대한민국은 정의의 기 싸움이 한창이다. 언론과 함께 온 국민의 관심이 이 싸움에 집중되고 있다. 어느 한곳에 몰두하거나 집중하게 되면 다른 부분에 관심이 무뎌지고 소홀해지기 쉽다. 이로 인해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거나 허를 찔릴 수 있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자연현상들을 보면 예사롭지가 않다. 조류독감(AI)과 구제역, 대형지진 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있다. 자연이 주는 이러한 신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석해 미리 대비하고 대응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조류독감(AI)과 구제역, 바이러스의 진화
일례로 지난해 11월 조류독감(AI, H5N6형)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수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생매장됐다. 12월말에는 포유류인 고양이도 AI에 감염됐다. 우리나라에 유행중인 AI는 H7N6이었으나 H7N8형이 추가로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H7N9형 AI로 140명이 감염돼 3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중국 수도권에도 확진환자가 발생하면서 ‘AI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발굽이 두 갈래로 갈라진 동물(소, 돼지, 염소 등)에게만 발생하는 강한 구제역이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O형), 경기도 연천(A형)에서 발생했다. 두 유형의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방역당국에 초비상이 걸렸다.

ⓒ Pixabay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과 바이러스도 나타나고 있다. AI나 구제역이 진화를 거듭하게 되면 인간에게도 전염되는 새로운 변종이 발생할 수 있다. 자연현상으로 인해 인류의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진화한 슈퍼바이러스가 등장해 인류가 가지고 있는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할 수 없는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게 될 경우 대량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에는 태양의 흑점이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됐다. 8월에는 유래가 없는 폭염이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태양흑점이 조정기간을 거쳐 대규모로 폭발하면 지구 자기장이 교란되고 자기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고에너지 입자가 지상으로 쏟아져 전자지기에 영향을 미치고, 지각판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 북극과 남극의 자기장이 급속히 약화돼 태양의 북극과 남극이 완전히 뒤집히는 ‘태양 자기장 역전’ 현상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의 전류가 우주 공간으로 퍼지고, 태양계 밖의 위험한 방사성 입자가 더 많이 지구로 쏟아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제트기류(Jet Stream)의 이상 변화는 계절의 뚜렷한 구분이 사라지고 대형 태풍이나 집중호우, 가뭄 등의 극단적인 기상이변을 초래하게 된다.
2016년 한국서 254회 지진…6배 이상 증가
세계 곳곳에서는 대형지진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대형지진으로는 인도네시아(2004년, 23만명 사망), 중국 스촨성(2008년, 8만여명 사망), 아이티(2010년, 50만여명 사망), 칠레(2010, 2014년), 동일본(2011년, 1만8000여명 사망) 등이다. 2016년에는 전 세계에서 규모 5.0이상 지진이 1669회 발생했고, 2017년에는 이탈리아와 파푸아뉴기니, 일본, 대만, 필리핀 등에서 각각 지진이 발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은 총 254회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유감 지진은 평균보다 6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7월5일에는 울산 동쪽 52㎞ 해역에서 규모 5.0 지진이 관측됐다. 9월12일에 발생한 경주지진은 규모 5.8로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최대 규모로, 지금까지 580회(2.9일 기준)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2007년 들어 한반도에서 2.0 이상 지진은 영덕(1.4일), 여수(1.16일), 보령(1.16일), 황해송림(1.17일), 전남신안(1.18일), 제주(1.26일), 평강(1.29일), 함흥(2.5일), 울산(2.12일), 대전(2.13일, 규모1.9) 등에서 발생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국내 어느 곳에서든 규모 6.0이하 지진 발생과 강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의 화산 전문가들은 백두산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 중의 하나로 폭발 징조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재난은 단순한 환경재앙이 아니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전 지구적인 재난이 될 것이다. 모든 종교의 경전과 동서양 고금의 수많은 예언이나 비결서에서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재(天災)를 언급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사무엘 W. 메슈 박사는 ‘지구에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고슬라비아 천문학자 밀류틴 밀란코비치는 지구 자전축의 세차 운동을 제시했다. 프리스턴 대학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 박사는 ‘지축의 이동과 지각의 변동이 지구의 대이변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이다’고 밝였으며, 덴마크 대기과학연구소 총책임자인 토르스텐 노이버트 박사는 ‘지난 1세기 동안 자기 북극이 지리적인 북극으로부터 1,000km나 멀어졌다고 경고했다.

ⓒ Pixabay
과학자들도 전 지구적 재난 가능성 경고
프랑스 과학자 모리스 샤틀랭은 ‘여러 가지 대재난에서 가장 참혹한 것은 지구 양극의 전도’라고 말했다. 덴마크 지구물리학자들은 ‘지구의 남극과 북극 자극이 바뀐다면 지구의 자기장이 약화돼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우주선을 더 이상 차단하지 못해 각종 질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등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항공우주국은 극지방 빙하가 녹아 지구표면 질량에 변화가 생기거나 대기흐름의 변화 현상은 자전축 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현재 25기의 원자력전발전소를 통해 전체 전력의 30%를 공급하고 있다. 전체 원전의 절반이 넘는 13기가 경주 지진이 발생한 월성지역(6기)과 인접한 고리지역(6기)에 밀집돼 있다. 지진으로 인해 원전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영화 ‘판도라’는 원전사고의 위험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한 조사결과에서 부산 시민의 78%는 지진이 범죄보다 더 무섭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울어진 지축이 이동하거나 정립하면서 일본 열도의 일부가 침몰이라도 한다면 바로 인접해 있는 한반도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엄청난 쓰나미는 한반도 동부와 남부를 강타함은 물론, 해수면의 급상승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재앙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의 대유행과 지진 및 쓰나미 등 대형 재난 발생이 예상되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재난위기관리시스템을 포함한 재난위기 전반에 대해 재검토와 대비, 대응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재난과 관련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위기관리에서 경영으로 대응 태세 갖춰야
첫째, 재난에 대비하는 개념을 기존과 같이 단순한 관리차원을 넘어 상위 개념인 위기경영으로 확대해야 한다. 국가경영, 기업경영과 같이 경영은 상위개념이며, 재무관리, 인사관리와 같은 관리는 경영의 하위개념이다. 경영은 비전 기능, 전략 기능, 관리 기능, 운영 기능이 포함되며, 관리는 계획, 조직화, 지휘, 통제로 구성된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대비전략과 대비계획을 수립하고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준비된 대응전략과 대응태세를 실행해 인명을 최우선적으로 구조하고, 피해를 복구해야 한다.
둘째, 재난위기의 개념과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재난위기 관리는 인적재난과 사회재난 위주로, 재난위기가 발생하면 신속히 대응하고 복구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이제는 인재 위주에서 천재(天災), 다시 말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화산 폭발과 대형 지진과 쓰나미, 초대형 태풍과 집중호우, 괴질병 등으로 재난의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 발생 지역도 소규모 지역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로 확대해야 하며, 대비 및 대응방향도 피해복구에서 대피 및 피신의 개념으로 새롭게 바꿔야 할 것이다.
셋째, 실질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대비 및 대응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재난의 개념이 확대됨에 따라 대형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대비전략과 대응전략을 구상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대비 및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 현재 준비된 대형 재난에 대비하는 매뉴얼들이 현실성 있게 작성됐는지를 확인해 실질적인 보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재난 규모에 따라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통제해야 한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규모 얼마이상(규모 6.0)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이다. 이 경우 원전사고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생활에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전력 사용을 통제하고 원 전가동을 과감하게 중지해야 할 것이다. 원전가동 중지에 대비해 원전 자체에 대한 대응조치는 물론, 전력사용 통제에 관한 지침과 매뉴얼이 준비돼 있는지 확인하고 조속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 Pixabay
대형재난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경우도 대비해야
다섯째, 대형재난이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질병의 대유행과 전국 규모의 지진 등 대형 재난위기 상황이 동시다발로 발생한다면 가용한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고려해 선별적인 판단으로 대응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대형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고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대형 지진으로 인한 댐 붕괴나 쓰나미로 인한 해수면이 상승을 고려해 수몰지역을 사전에 판단하고, 국민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키기 위한 안전지역을 미리 선정해야 하며, 해당 지역에 식량과 물자를 비축하는 등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한반도에 대형재난이 발생할 경우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으로 탈북해 대피하는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굶주림에 지친 북한주민들이 평안도나 함경도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 대한민국 영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 때 지친 이들을 어느 지역에 수용해 어떻게 구호할 것인지도 국내 대피지역과 분리해 심층적으로 판단하고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대형재난에 대비한 컨트롤타워를 강화해야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국민안전처가 신편됐다. 하지만 국무조정실과 같이 국무총리실에 편성된 것이 아니고 국무총리실 소속의 처로 편성됨에 따라 개편 전의 안전행정부보다 오히려 힘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안전처에 대한 기능과 시스템을 보완하고 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국무총리의 조정․통제 하에 각 부처가 분야별 대형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발생시 통합된 대응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아홉째, 대형재난에 대비해 소요되는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해야 한다. 대형 재난에 대한 준비와 대비를 국민 개인이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앙정부가 주체가 돼서 지방정부와 함께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생명을 지킬 것인가에 주안을 두고 소요되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열째, 대형재난에 대비하는 국민들의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안전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면 그 당시에는 흥분해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무디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화에 나오는 늑대소년 이야기처럼 웬만한 상황에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고 있다. 일본과 같이 대형재난에 대한 행동지침과 절차를 전 국민들에게 숙지시키고 행동요령을 숙달해야 하며, 개인과 가정에서도 필요한 재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맑은 하늘에 우산’이라는 말 명심해야
‘맑은 하늘에 우산’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대형 재난에 대비해 지금까지의 인재 위주 재난위기의 개념을 전 지구적인 대형 재난에 대비하는 개념으로 확대하고, 대비 및 대응전략을 구상하며, 세부적인 계획과 실질적인 실행 준비를 조속히 보완하자는 것을 담론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한 때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저서 《의식혁명》에서 인류의 평균 의식수준은 207이었다. 의식수준 200이상은 전 인류의 15%에 불과하다. 말이 통하지 않고 대화의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의식수준의 층위가 차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은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깨어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다가오는 전 지구적인 재난에 총체적인 대비를 해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창조경제 헛발질 인프라 혁신으로 극복해야
디지털 경제의 길이 놓이는 큰 판은 인프라·플랫폼·솔루션 세 가지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었지만 지난 4년 동안 한국은 IT 분야에서 정체되고 뒤처졌다. 이 판을 활성화시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이후 창조경제에 길이 있을까? 한국 경제를 지탱할 신성장동력이 사라져간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주변국은 이미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질주, 일본의 귀환, 유럽의 각성,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슈퍼아시아의 대두 등 암울한 이야기뿐이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바이오산업, 빅데이터, 드론, 신소재 등 어느 신산업에서도 한국 경제를 지탱할 것이라고 자신할 만한 분야가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 의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고도의 기술혁신이 반복되는 때다. 길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생긴다. 웹과 모바일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경제에서 길이 놓이는 큰 판은 세 가지다. 모든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 그리고 그 인프라 위에 만들어지는 플랫폼, 마지막으로 플랫폼에서 파생되어 재화나 용역을 전달하는 솔루션이다.
![]() |
ⓒ연합뉴스 2016년 12월13일 5G 버스에서 동계 스포츠 콘텐츠를 5G로 수신하는 것을 시연하고 있다. |
인프라는 제품이 개발될 수 있게 하는 기본 기술이자 환경이 된다. 주로 ADSL, 3G, 4G LTE 등 물리적 세계에 기반을 둔다. 여기에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등의 기반 기술 혹은 이를 깊이 이해하거나 경험을 갖춘 고도의 인적자원 등이 포함될 수도 있다. 인프라는 가장 눈에 안 띄고 덜 빛난다. 하지만 인프라가 깔려 있지 않으면 디지털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플랫폼은 페이스북·구글·네이버·애플 iOS·안드로이드·카카오톡 등 사람이나 재화·정보·콘텐츠가 두루 연결될 수 있는 마당을 말한다. 플랫폼은 주로 판매자 영역과 구매자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에 공히 가치를 제공하고 불편을 제거해준다. 최대한 많은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넓게 개방되고, 최대한 많은 재화와 콘텐츠가 공유될수록 가치가 커지는 것이 플랫폼의 특징이다. 인프라는 플랫폼에 선행한다. 인프라가 없으면 플랫폼은 작동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솔루션이 있다. 솔루션은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콘텐츠를 판매한다. 플랫폼과 다른 점은 구매와 판매의 흐름이 일방향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유사 솔루션들과 서로 대체재 관계라는 점이다. 솔루션은 대체로 플랫폼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플랫폼은 경쟁 혹은 대체 관계에 있는 솔루션들을 많이 품을수록 영향력이 커진다. 자연스럽게 솔루션이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은 인프라에 따라 달라진다.
이전 시대의 인프라·플랫폼·솔루션은 다음 시대 인프라·플랫폼·솔루션과의 경쟁에서 대체로 패배한다.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의 것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치와 제도, 사회적 인식밖에 없다. 제도와 인식을 포괄하는 사회적 역량이 한 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자동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는 도로와 주유소 및 충전소라는 물리적 인프라, 그리고 3G 혹은 4G라는 무선인터넷 인프라, 최적 경로를 추천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혹은 인적 인프라 위에 놓여 있다. 우버가 채택한 것은 iOS 및 안드로이드라는 스마트폰 생태계 플랫폼이다. 우버는 그 플랫폼 위에서 운전자와 탑승자를 매개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만약 스마트폰 앱 생태계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버는 존재할 수 없다. 운전자와 탑승자를 실시간 위치 기반으로 연결해주는 것이 우버의 핵심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 플랫폼은 초고속 무선 인터넷망이라는 인프라 덕분에 구현 가능했다. 무선 인터넷망이 3G 이전 세대였다면 우버 서비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치 기반 서비스이다 보니 데스크톱에서 활용하기는 매우 번거로웠을 것이다. 결국 인프라와 플랫폼 조건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에 오늘의 우버가 존재한다.
우버는 한국의 제도와 기존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한국 내 확장이 저지되었다. 그사이 카카오택시나 카풀 앱 ‘풀러스’ 등의 서비스가 제도적 허점을 공략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법제 및 사회적 인식이 우버에게는 제약 조건으로, 후발 주자들에게는 기회로 발현된 경우다. 하지만 후발 주자들도 언제 제도에 발목을 잡힐지 알 수 없는 노릇인 건 매한가지다.
![]() |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정부 때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통신망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구축했다. |
사진 기반의 인스타그램이 10년 전에 과연 가능했을까? 위피(WIPI:스마트폰 도입 전까지 한국 무선인터넷 표준) 기반의, 메가바이트 단위로 요금 폭탄이 쏟아지던 시대에, 이미지 기반의 SNS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10년 전 2G 핸드폰으로 간신히 접속할 수 있었던 ‘모바일 싸이월드’도 데이터 통화요금 부담 때문에 이미지를 상당히 덜어낸 채로 서비스했다.
이처럼 디지털 경제에서 새로운 기회의 길을 여는 시작점은 인프라 구축에 있다. ‘다음 인프라 구축 시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테스트를 거치는 5G는 2020년부터 본격 상용화된다. 5G는 웬만한 HD급 화질의 영화 한 편쯤은 1초 만에 다운받을 수 있는, 다시 말해 1초에 2.5기가바이트 정도의 용량을 전송할 수 있는 통신망이다. 중계기당 대역폭이 최대 1000배, 연결 가능한 장비 수는 최대 100배로 늘어난다. 지금보다 엄청나게 뛰어난 물리적 인프라다. 몇 초 만에 한 달치 가용 데이터를 소진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데이터 요금제 개편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평창올림픽에서 테스트하는 5G가 새로운 기회
인프라가 바뀌면 그 위에 얹힐 플랫폼도 재빠르게 진화한다. 페이스북이 준비 중인 홀로그램을 연상시키는 가상현실(VR) 통신, 그리고 <포켓몬 고> 게임으로 가능성을 증명한 증강현실(AR), 스냅챗이나 스노, 아자르 등 스티커나 필터를 겹쳐주면서 현실과 가상을 오버레이하는 동영상 기반의 채팅 서비스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모바일에 별세상처럼 펼쳐져 있던 디지털 세계가 현실과 더 밀접하게 붙어버리는, 진정한 의미의 ‘온·오프 믹스’ 시대가 열린다. 더 빨라진 인프라 위에서 정신없이 흘러갈 사람들의 ‘일상’을 누가 잡고 있느냐에 따라 그다음 플랫폼의 승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텐센트, 알리바바 등 기존 플랫폼 강자가 2020년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스냅챗과 스노를 사려다가 실패한 페이스북은 유사 서비스를 재빠르게 만들어냈다. 플랫폼이었던 구글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 구축에 연달아 실패하다가, 최근에는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을 단 솔루션형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애플은 자율주행차로, 텐센트는 실시간 방송은 물론이고 새로운 형태의 앱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모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의 발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로 방향성 없이 표류했던 몇 년이 아쉽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2000년대 초반, 인프라·플랫폼·솔루션 혁신을 경험한 바 있다. 초고속 인터넷통신망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구축하고, 그 위에 검색 포털 플랫폼과 전자상거래 솔루션이 도입됐으며, 부분 유료화라는 혁신적인 모델을 도입한 온라인 게임 산업을 성공적으로 확대한 경험이 있다. 기가바이트 단위의 고용량 동영상을 몇 초 이내에 다운받을 수 있는 통신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면, 인프라 위에서 사람들을 엮어줄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 것이다. 플랫폼 위에 얹힐 새로운 서비스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 더 많은 고용과 부를 창출할 것이다. 조금 뒤처졌다고 낙담할 일이 아니다. 곧 새로운 길이 열린다.
'사회, 문화,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제의 폭력에 맞선 역적…서민들 숨통을 틔우다 - 국민이 바뀌고 있다 (0) | 2017.02.23 |
---|---|
이제 스마트폰은 잠시 놓아두고, 연필을 쥐어보자 - 대화조차 사치스러운 ‘혼밥’ 시대의 자화상 (0) | 2017.02.20 |
'혁명' 아닌게 있었나? '4차 산업혁명'의 허상 - 대선주자 누구도 '노동'을 말하지 않는다 (0) | 2017.02.14 |
"귀농 결심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사람" (0) | 2017.02.11 |
“지구 운명의 날은 이제 2분30초 남았습니다” (0) | 201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