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머리, 수다 떨고 놀 때 좋아진다" -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일취월장7 2017. 2. 13. 10:36

"머리, 수다 떨고 놀 때 좋아진다"

[격월간 민들레] 읽기, 이야기와 뇌 발달의 상관관계
신성욱 과학 저널리스트    
2017.02.11 11:46:06

책을 많이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까?

오늘은 흔히들 뇌 발달에 좋다고 여기는 '읽기'와 '이야기'에 대해 말할 텐데요. 우선 발달이라는 용어가 우리를 헷갈리게 합니다. '발달'이라는 건 달리 말하면 '바뀐다'라는 뜻이에요. 뇌는 좋은 쪽으로 계속 진화하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상태가 변하는 것뿐이죠. 

'이야기'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책을 떠올리시죠? 저는 '독서'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독서는 이미 이데올로기가 되었어요.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세뇌되었죠.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 따져보면, 책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요. 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 대신 '읽기'라고 합니다. 서구에는 '독서학'이라는 학문이 있는데, '사이언스 오브 리딩(Science of reading)' 을 번역한 말이에요. 여러분은 오늘부터 '독서도 과학'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과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체계적인 독서에 관한 내용도 자연스럽게 뇌과학의 범주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책 속에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일 텐데요. 인간의 뇌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뇌가 '정보성' 이야기보다 '다른 존재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죠. 이야기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입니다. 제가 말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수다'예요. 실제로 수다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왔습니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쪽에는 친근한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게 하고 다른 한쪽에는 어려운 주제를 던져주고 심각하게 지식과 정보를 끌어내는 토론을 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30분 뒤에 같은 문제를 주고 시험을 쳤는데, 어느 쪽이 점수가 더 잘 나왔을까요? 수다 떤 그룹이 15퍼센트나 높았어요. 수다를 떨었더니, 인지능력이 올라가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된 거예요. 토론했던 그룹은 전혀 변화가 없었고요. 신기한 일이죠? 전두엽은 대뇌의 앞쪽이에요. 전두엽의 가장 앞쪽이 전전두엽인데, 이 부위가 왜 중요한가 하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는 곳이거든요. 다른 동물들도 전전두엽이 있긴 하지만, 인간만큼 복잡하진 않아요. 전전두엽은 마음을 부여하거나,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능력, 절제하는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기억'에서 비롯되는 능력이에요. 기억력이 나쁜 동물에게 미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추론해요. 예를 들어 '아, 태풍이 오겠구나' 싶으면 식량을 조금씩 비축하면서 재난에 대비하죠.

'기억' 덕분에 공감 능력 같은 마음을 부여하는 능력도 생겼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도 하고요. 이게 참 중요해요. 남의 고통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느낀다는 거죠. 인간의 절제력도 마음 덕분에 생겼어요. 다른 동물들은 욕망, 본능의 수준에서 살아가지만 인간은 본능대로 다 하지 않아요. 운전하다 보면 서로 추월하면서 싸우는 사람들 있죠. 그건 인간의 상태가 아니에요. 제어하는 능력을 잠시 잃은 거죠.(웃음)

수다에 관한 연구 결과를 가장 많이 가져다 쓰는 곳이 경영 쪽이에요. 제가 미국 실리콘밸리를 가본 적이 있는데요. 인상적이었던 건 어떤 회사 안에 24시간 운영하는 호텔 수준의 카페테리아가 있다는 거예요. 한쪽에선 당구 치고, 맥주 마시고, 다른 한쪽에선 해먹을 걸어 놓고 낮잠을 자요. 그것도 근무 시간에…. 그런데도 그런 회사가 왜 망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수다 떨고 놀 때 머리가 좋아져요. 실리콘밸리의 기업 경영인들이 한국의 경영자보다 더 착해서가 아니고, 그렇게 하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죠.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적용한 거예요. 

제가 2년 정도 동네 카페에서 수다에 대한 후속 연구를 했거든요.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를 엿들었죠. 그런데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어요. 첫째,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해요. 일정한 주제나 내용이 없어요. 주된 목적이 정보성 대화가 아니라는 뜻이죠. 둘째, 수다 떨다 보면 꼭 '그분' 얘기가 나와요. 모두가 싫어하는 그분, 동네마다 한 명씩 있잖아요? 그러다가 그분이 실제로 등장하면 수다가 뚝 끊겨요. 이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예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수다 떨다가 교장이 오면 얘기가 뚝 끊기죠. 회사나 군대에서도 똑같아요. 인간은 마음을 트지 않은 사람과는 수다를 떨지 않아요. 수다에서 주고받는 것은 '마음'이라는 뜻이죠.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마음 이론'  

인간과 유전자가 98.7퍼센트 일치하는 침팬지도 "나 여기 있어!" 정도는 알릴 수 있는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 이야기는 없어요. 침팬지나 동물들의 언어는 일종의 신호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복잡해서 문법을 가지고 있어요. 침팬지의 언어는 문법이 없어요. 유전자는 1퍼센트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어째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요. 이게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때문이에요. 인간의 마음 이론이 '이야기'로 발전한 거예요.

뇌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마음 이론은 '마음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는 뜻이에요. 마음 이론의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알아본다는 거예요. 개는 거울 속 자신을 보고 언제까지 짖을까요? 한평생 짖어요. 개는 자아가 약하기 때문이에요. 자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져요. 그런데 개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분에서 10분 정도로 기억력이 굉장히 짧아요. 자아의 기본 재료는 기억이기 때문에, 기억이 많지 않으면 자아가 형성될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의 아이는 두 살 전까지는 개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여섯 살 정도 되면 포유류 중 가장 지능이 높고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돌고래와 비슷해집니다. 

마음 이론의 두 번째는 나와 남을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면 아이들은 그전에 안 하던 무엇을 하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게 거짓말이에요. 이야기를 막 지어내는 것. 아이가 거짓말하기 시작하면 속으로 기뻐해야 해요. '이 녀석이 드디어 나와 남을 분명히 알기 시작했구나' 하고요. 

세 번째, 인간에게는 마음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어요. 저는 결혼할 때 아내한테 선물 받은 지갑을 10년째 애지중지 하고 다니는데요, 갑자기 이게 없어지면 제 마음이 어떨까요? 이건 그냥 지갑일 뿐인데, 저는 왜 이걸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누구나 이런 물건이 하나씩 있죠.

이걸 일상적으로 얘기하면 '정(精)'이라고 해요. 정은 기억 속에 있죠. 아직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지 못했어요. 예를 들면 오래된 전통, 그 '전통'이 어디 있는 걸 말할까요? 한국인의 '얼'은 어디 있나요? '정'은 공감 능력의 기반이기도 해요.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다른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요. 그게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에요.  

인간은 온 천지 만물과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예요. 돌덩이 앞에 서서 수능 백일기도 올리고 그러잖아요. 그 돌덩이는 그냥 돌이 아니죠. 거기 켜켜이 마음이 쌓여 있어요. 수많은 엄마들이 거기에 간절한 마음을 쌓아 올렸어요. 사실은 돌덩이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만나러 온 거예요. 

마음의 산물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문화예요. 인간들은 생물학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불필요한 일을 정말 많이 해요. 술을 먹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손해가 많은 행위예요. 돈 들고, 몸에도 안 좋고, 정신도 못 차리게 되죠. 그러나 이게 문화예요. 생물학적 단계를 뛰어넘어서 문화를 가진 존재로 성장하는 휴먼 스킬(human skill), 앞으로는 인간의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될 거예요.  

미래사회에 필요한 교육  

참 안타까운 게, 오늘날 교육은 국영수 위주의 인지 교육에 지나치게 치중해 있어요. 지금처럼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억누르고 인지능력만 뽑아내 교육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인간의 방식을 갖춘 인간으로 자라는 데 큰 문제가 생겨요. 게다가 이미 인지 교육의 시대가 저물고 공부하는 기계, 인공지능이 등장했어요. 인간의 지능은 종류가 다양해서 아직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된 결론이 없어요. 사회성도 일종의 '지능'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능'이라고 하면 아이큐(IQ)만 떠올리잖아요. 인지능력은 인간의 뇌가 수행하는 여러 미션 중 일부분일 뿐이에요. 

인지 교육에 매달리는 건,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거예요.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인지능력 중심의 작업들을 대신 수행하게 될 거예요. 4차 산업혁명을 봤을 때 지금 매달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여전히 부모들은 국영수 과목에 매달리고, 대학시험 볼 때도 그것 위주로 보고 있지만 기업은 좀 달라졌어요. 그것만 가지고 사람을 뽑았더니, 잘 안 돌아가는 걸 경험한 거예요. 기업이 가장 먼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거죠. 교육계는 가장 늦게 쫓아가요, 항상.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건 교육이 아니에요. 그건 권력자의 논리예요. 권력자는 그동안 학교를 자신에게 필요한 무엇을 생산하는 수단으로 생각했어요.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요? 자본가들, 그중에서도 대기업들이죠. 기술이 지금보다 더 진보하게 되면, 그들이 과연 사람을 고용할까요? 사람 대신 기계 쓰면 월급, 휴가, 야근수당 안 줘도 되고 24시간 전기만 꽂으면 돼요. 그러면 당연히 자본가들은 기계를 더 쓰고 싶어 하겠죠. 온 세상이 기계 천지가 되는 거예요. 인간의 방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인간들이 기계를 조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지옥문이 열리는 거예요. '아이들을 미래에 필요한 '인재'로 키운다' 이 말은 굉장히 천박한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 미래를 열어갈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는 학교야말로 희망의 근거라고 봐요. 가정의 교육 기능도 약화됐고, 마을공동체도 약화되었어요. 근데 공교롭게도 학교는 그 동네 애들이 다 모이는 곳이에요. 그리고 아이들을 매개로 부모가 연결될 수 있어요. 학교가 그런 기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학교는 아이들이 '수다 떨러 가는 곳'으로 바뀌면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이유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아이들이 휴대폰 붙들고 문자질만 한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지금 친구랑 수다 떠는 거예요. 저는 아이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해요. 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어야 하니까,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는 틈틈이 휴대폰으로 수다를 떨죠. 눈물겹도록 지혜로운 학생들이에요. 

다만, 마음의 재료가 빈약하다는 점은 안타까워요. 마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기억이 시간과 함께 머물렀을 때 둘의 합작품이 바로 마음이에요. 내가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으로 다른 존재와 마음을 나누면, 그게 기억이죠. 책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는 책 속에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마음'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될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기억을 가지게 되느냐에 따라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를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고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미래사회, 지속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마음'을 잘 간직한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감시'하지 말고 '응시'하라  

인간에게 언어가 있기 전에는 몸짓, 손짓으로 소통을 했어요. 그전에는 뭐가 있었을까요? 눈빛과 표정이 언어였어요. 눈빛과 표정은 가장 오래된 소통의 도구예요. 인간의 이야기 중 가장 강력한 형태는 '응시'죠. 부모가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면 아이의 뇌가 작동해요. 우리는 말로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해보면, 말로 전달되는 의사는 7퍼센트 정도밖에 안 됩니다. 10분의 1도 안 되는 거죠. 어조나 억양은 38퍼센트고, 자세·손짓·몸짓·표정·눈빛 같은 나머지 55퍼센트의 비언어적 요소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전해요.

사실 유념할 것은 '이야기하기'가 아니라 '잘 듣기'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에요.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가 말을 잘하게 돼요. 그게 아주 좋은, 진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에요. 잘 듣는 사람의 특징은 주장이 아니라 질문을 아주 잘한다는 거죠. 이게 과학자들의 분석일 뿐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비언어적인 요소로 서로 소통하며 살아요. 결혼한 분이라면 차마 떠올리고 싶진 않겠지만(웃음), 지금 살고 있는 그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세요. 최초의 순간, 아마 눈빛을 주고받았을 거예요. 

그래서 '바라보면' 정보보다는 마음이 건너갑니다. 그러면서 삶이 바뀌는 거죠. 그게 쉽지는 않아요. 우리는 사실 응시보다 다른 것을 더 잘합니다. 감시, 지시요. 대체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쓰는 말을 보면 지시와 명령이 많아요. 유격 훈련할 때 조교가 병사들에게 하는 말 같죠. "앉아. 앉으라고! 하지 말랬지! 셋 센다. 하나! 둘!" 그리고 부모들은 '주시'도 잘해요. '너, 내가 다 보고 있어!' 하는 눈빛 말이에요. 부모들은 대부분 자기가 아이를 응시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입장에선 그게 아닐 수 있어요.  

사실은 '아, 누군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응시는 인간의 뇌를 잘 자라게 해요. 여러분은 '부모님'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세요? 저는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근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어요. 평소 무뚝뚝하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지 않던 분이셨는데, 제가 군에 입대할 때 한참 가다가 돌아보니까 멀어질 때까지 제 뒷모습을 지그시 보고 계시는 거예요. 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런 장면들이 쌓이면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아이가 클수록 '눈을 맞추는 게'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의미를 더 보탰어요. 지그시 바라보되 '한발 물러서라'고요. 

예전에 어른들은 '자식 농사'라는 말을 썼잖아요? 농사는 농부가 다 하는 게 아니에요. 농부의 손길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보면 그건 정말 일부분이라는 걸 알게 돼요. 아이도 그래요. 그래서 자식 농사라는 표현은 정말 기막힌 과학적 통찰이에요. 내가 어떻게 키우고 싶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인간이 되는 것은 부모 말고 다른 수많은 작용이 연결되어 이뤄지는 거예요. 그게 자식 농사의 진짜 뜻이에요. 그러니 부모가 자식의 삶을 디자인하겠다는 건 잘못된 거예요. '커서 의사가 되라. 선생님이 되라'라고 하는 건 농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거죠. 그런 개입은 애들을 망쳐요.

근대 교육의 핵심적인 논쟁은 본능과 양육이었어요. 그동안 우리는 양육과 교육을 본능보다 훨씬 강요해왔죠. 끊임없이 아이의 삶에 개입해 단점을 찾고 교정해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아이들은 유전자의 영향을 따라 생물학적 시간표에 의해 본능적으로 스스로 인간이 되려고 하는 속성을 이미 가지고 있어요. 아이를 그냥 믿어주면 되는 거예요.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내버려 두라'는 얘기죠. 오늘날은 인지 교육이 중심이 되면서 양육과 교육이 본능을 완전히 압도해버렸어요. 

1990년대 이후 뇌과학이 크게 진전되면서 우리가 인간의 뇌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인간에게도 본성이 있다'는 겁니다. 전에는 없다고 믿었거든요. 그 잘못된 믿음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대표적으로 '사당오락'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나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하루에 잠을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죠. 그런데 날마다 4시간만 자면 죽어요.(웃음) 졸리면 자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잠 많이 자는 걸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그건 우리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논리예요. 개인의 수면 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바꿔서 빼앗아간 거예요. '미래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려다 보니, 교육에도 자본가의 논리가 적용되는 거예요. 성장기 아이들은 반드시 8시간씩 자야 돼요. 밤에 제대로 못 자니까 낮에도 계속 조는 거예요. 자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니까요.

뇌를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뇌에는 본능이 지배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릴 때는 유전자가 훨씬 우세한 시기예요. 그래서 저마다 정해진 '생물학적 시간표'가 있다는 말을 쓰는 거예요. 자식 농사와 작물 농사는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이치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요.  

엮이며 풍성해지는 '언어의 풍경'  

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한국말이 뭘까요? '24시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이에요.(웃음) 실제로, 몇 년 전에 조사한 겁니다. 인천공항부터 넓은 도로, 높은 빌딩 이런 거 보고 감탄하던 외국인들이 시내 뒷골목에서 이런 간판을 보고 기겁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같은 간판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글자만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가고, 소주도 한잔 생각나죠. 내가 몸으로 경험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와요.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을 알 수 있어요. 인지 교육을 해장국에 빗대어보면, "받아쓰기 하자. '해장국' 써봐. 야, 너는 2학년씩이나 됐는데 아직도 '해' 를 '헤'로 쓰니?" 이렇게 다그치다가 읽고 쓸 줄 알면, 해장국에 대한 심화학습을 시작해요. "'전주 콩나물 해장국'과 '양평 해장국'의 차이가 뭐지?" 어떤 애가 손을 들어요. "콩나물 해장국에는 선지가 안 들어갑니다." 이게 인지 교육인 거예요. 중학교 가면 해장국의 레시피를 달달 외우게 하고, '다음 중 양평 해장국에 들어가는 재료가 아닌 것은?' 하는 문제를 시험에 내면서 교육이라고 해요. 이건 다 껍데기에요. 진짜 해장국을 가르치려면, 가서 먹어보게 하면 됩니다. 같은 간판을 보고 한국인은 군침을 삼키고, 외국인은 소름 끼쳐 하고,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가지고 있는 기억, 시간,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죠. 몸으로 경험한 기억들이 마음을 만들어요. 이런 현상을 각자의 '언어의 풍경'이 달라서 그렇다고 말해요.

제가 '물'이라는 글자를 써볼게요. 여러분이 물과 관련된 시간과 같이 맞물려 있는 기억, 직접 몸으로 기억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게 물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언어의 풍경'이에요. 어떤 사람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겠죠.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와 약수터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리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것들이 언어의 풍경이에요. 이것이 한 인간의 모든 것이죠.

그런 면에서 책은 아이에게 위험한 물건이에요. 아이들이 우선시해야 하는 건, 언어의 풍경을 풍성하게 만드는 거예요. 인간이 이루어낸 문화의 핵심도 바로 언어의 풍경입니다. 예술은 철저하게 이것에 의존해요. 똑같은 작품을 두고 이를 정보로 대했을 때는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암기하게 됩니다. 근데 잘 떠올려 보세요. 학창시절에 시험 보기 위해서 밤새 외우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메모한 것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참 신기한 일이죠. 온 나라의 수십만 수험생들이 별의별 선행학습을 하고, 돈을 쏟아부으면서 공부했던 게 어째서 10년도 못 갈까요? 마음과 상관없이 기계가 데이터 처리하듯 한 거예요.

우리는 학창시절 시험 보는 것에 길들어서 모든 텍스트를 지식과 정보로 인식하는데, 익숙해요. 하지만 이건 앞으로 기계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니 텍스트를 인간답게 읽으려면 마음으로 읽어야 해요. '이 작가는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마음을 주고받는 게 빠지면 그저 데이터에 불과해요. 마음을 주고받는 '읽기'는 단순히 문학작품에 국한되지 않아요. 흔히 학술 논문도 정보만 담고 있는 것 같지만, 논문을 쓴 사람의 마음마저 고스란히 녹아 있거든요. 저는 취미로 논문을 읽어요. 학자들이 아닌 듯 슬쩍 드러낸 마음을 읽는 게 얼마나 고소하고 재밌는지 몰라요. 법조문도 한번 읽어보세요.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같이 읽으면, 각종 사건에 대한 판결문이 얼마나 재밌는데요. 

몸으로 경험하는 언어의 풍경이 한 인간의 모든 것이고, 그게 마음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서로 나누는 거죠. 이게 인간이 가진 소통 방식의 핵심입니다.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민들레] '3세 결정론'의 신화와 진실
신성욱 과학 저널리스트       
2016.11.11 15:37:48
지난 10월 4일 서울 '삼각산재미난학교'에서 열린 특강 '뇌 과학과 교육'을 두 번에 걸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 주

뇌 발달, 지능 발달?

저는 과학 저널리스트입니다. 과학자가 아니죠. 공부하는 게 제 일이에요.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의 뇌가 주된 관심사입니다. 여긴 주로 초등학생 부모들이 많으시네요. 그 아이들이 '사람 구실'하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요? 제가 말하는 '사람 구실'은 엄마아빠한테 다달이 꼬박꼬박 용돈 주는 걸 말해요.(웃음) 한 20~30십 년은 더 있어야겠죠?  

다음 세대인 이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요? 제가 말하는 건 막연한 '어떤 세상'이 아니고, 아주 구체적인 세상이에요. 우리 세대가 기를 쓰고 좋은 대학 들어가려고 했던 건 명문대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였잖아요. 인생에 아주 유용한 티켓이 됐죠. 취직하거나 시집, 장가를 갈 때도 유리하고요. 그런데 그 효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요. 지난해 통계를 보면, 이른바 스카이 졸업생 중 45%가 취업을 못 하고 있죠. 지금 같은 지식정보화시대에는 그들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거든요. 그러니 굳이 그 친구들을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게다가 인구까지 급감하고 있으니, 직업을 선택하는 방식이 앞으로 굉장히 달라질 거예요. 그 변화의 속도마저 무척 빠르고 폭도 넓죠. 그래서 다음 세대를 어떻게 잘 길러야 할까,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오늘 그런 얘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우리 뇌는 기쁘고 즐겁고 신이 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언제 가장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가 하면, 나 아닌 다른 존재와 마음을 주고받을 때예요. 뇌의 별명은 '소셜 브레인'이에요. 소셜(social)은 '사회적'이라는 뜻 정도로 번역할 수 있죠. '사회적 뇌'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때 보통 제도를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은 '관계'를 말해요. 인간의 뇌는 관계의 산물이라서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해요. 혼자 있으면 우울증이 오거나 병에 걸리기 쉽죠. 

어디 가서 뇌 이야기만 하면 부모님 눈이 반짝반짝해지더라고요. 아이의 뇌에 대해 정보가 많아지면 지능 발달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근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의 뇌를 '지능'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을 천박하게 이해하려는 나쁜 태도가 깔렸어요. 물론 지능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 지능이나 생각이 인간의 지능, 인간다운 생각으로 구현되려면 여러 가지 부수적인 요소가 많이 필요해요. 뇌는 사실 그 역할을 훨씬 더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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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교육의 위험성 

여기 운전할 줄 아시는 분들, 자동차에 대해 잘 알고 계시나요? 엔진의 구조, 공기 저항, 열역학, 모듈에 대해 몰라도 운전하는데 아무 문제 없죠. 뇌도 모듈마다 자기 일들을 알아서 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은 철저히 인지 능력, 지적 능력만 뽑아내서 극대화하는 거예요. 학교에서 하는 건 100% 인지교육입니다. 수학 문제 풀고, 언어 처리하고. 뇌가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그것만 해요. 쉽게 말하면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데 운전이 중요하다면서 다른 부품은 엉망이면서 운전대만 신경 쓰는 거예요. 지금부터 우리가 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간단하게 퀴즈를 내볼게요. 이 영상 보면서 하얀색 옷을 입은 친구들이 서로 공을 몇 번 주고받는지 세어 보세요. 자, 몇 번 주고받았나요? 정답은 열여섯 번이에요. 하지만 이게 진짜 문제가 아니고, 영상 속에서 사실 아이들 사이로 고릴라가 지나갔어요. 고릴라 찾으신 분 계신가요? 반도 못 찾으셨네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 실험을 '안 보이는 고릴라'라고 부릅니다.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확인해주는 실험이죠. 자신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봅니다. 뇌는 굉장히 허점이 많아요.

18~19세기 서양 자연주의 철학이나 자연 과학에서는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간의 뇌에 관한 온갖 신화들이 나왔던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는 뇌에 대한 해석들은 1990년대 이후에 제기된 새로운 뇌 과학입니다. 현대 뇌 과학의 역사는 150년 정도 되는데, 1990년대부터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장비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죽은 사람의 뇌를 꺼내서 관찰하거나 뇌를 다친 사람의 행동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직접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분명히 두 눈 부릅뜨고 있지만, 뇌는 정보를 다 처리하지 못해요. 제가 지금 퀴즈를 내면서 하얀색 옷을 입은 학생을 주시하도록 '유도'했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쟁여 놓은 결과예요. 그래서 그걸 너무 깊이 믿다가는 바보 꼴을 면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아이를 양육할 때도 이런 태도가 심화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어른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그것을 극대화해놓고 '교육'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게 바로 인지교육이에요. 굉장히 위험하죠.

'ㅇㅂㅌ, ㅅㅁㄷ, ㅌㄱㄱㅎㄴㄹㅁ, ㅁㅅ, ㅈㅅㅂㅇ ㅂㄹㄴㄴ'

또 퀴즈를 하나 내볼게요. 맞춰보세요. 영화나 드라마 제목의 초성만 따서 나열한 거예요. 제가 이 힌트를 드리는 순간 뇌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영화나 드라마에 관련된 것으로 재배열합니다. 최근 자신에게 익숙한 정보에 따라 '퉁' 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대부분 <아바타>라고 대답하신 건, 그게 최근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정보이기 때문이에요. <오발탄>이라고 하신 분, 굉장히 독특한 취향이시네요. 1960년대 영화거든요.(웃음) 우리는 흔히 자기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생각과 판단, 행동은 어떤 맥락에 의해 작동해요. 맥락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누가 만들어줬거나 휩쓸려가는 거죠. 일일이 꼼꼼하게 따져 판단하고 생각하려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니까요. 

뇌의 신화, 상품이 된 교육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에 한국의 교육 상황을 분석한 기사에 실린 사진의 제목이 '400만 달러의 교사'였어요. 우리 돈으로 50억 원이 넘죠. 그 교사가 바로 한국에 있어요. 이건 한국 교육이 이미 완벽하게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뜻이죠. 뱃속에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부모들은 '뭘 사다 안겨줘야 똑똑한 아이, 건강한 아이가 될까?'를 고민하죠. 교육은 다음 세대를 길러 내는 일이에요. 양육,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소중한 전통이고 문화였기 때문에 지극 정성으로 간직하려고 했어요. 이걸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불과 한 세대 만에 상황이 바뀌었어요.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죠. 물론 그전에도 학원은 있었지만 이렇게 압도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신성욱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제가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어크로스 펴냄)는 쓰기 위해 5대 일간지와 지상파 3사를 분석했어요. 20년 치 기사 중에서 '뇌' 자가 들어가는 내용을 모두 뽑아놓고, 뇌 과학에서 아이들의 뇌 발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분석했죠. 그 결과, 신문에 아이들의 뇌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발언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사설학원장이었어요. 신문마다 교육 섹션이라는 게 있지요. 사설학원장이 쓴 기사 형태의 광고에서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아이들의 뇌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이 상품화되어 유통되는 거죠.

그래서 뇌 과학자들은 이런 것을 '신경계 신화' '뇌의 신화'라고 말해요. 하도 엉터리 정보를 많이 생산하고 유통하니까 과학자들이 이런 말을 만들었어요. 그들이 '신화'라는 말을 쓰는 건 부정적 의미예요. "이거 뻥이에요"라는 뜻이죠. '모차르트 효과'라고 들어보셨죠? 임신했을 때 태아한테 모차르트 음악 들려주면 지능 지수가 좋아진다고 해서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태교 음반도 만들어 팔았잖아요. 그런데 독일 정부에서 조사해보니,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모차르트 태교' 같은 정보가 미디어에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이라는 겉포장을 하기 때문이에요.  

영어는 몇 살부터 가르치는 게 제일 좋을까요? 보통 어릴 때라고 하죠. 이런 연구 결과가 있어요. 미국에서 열두 살 이전에 이민 온 아이와 열두 살 넘어서 이민 온 아이를 비교 연구했더니, 열두 살 이전에 온 아이는 두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더랍니다. 억양이나 발음도 정확했죠. 근데 열두 살 이후에 온 아이는 여전히 한국 발음과 억양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대뇌피질의 다른 영역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좀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데, 신경계 신화와 관련된 핵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성인은 영어를 할 때 머릿속에서 한국말로 먼저 떠올린 다음 영작해서 말을 꺼내는데, 어릴 때부터 하면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온다는 거예요. 한국어하고 영어가 뇌의 같은 영역을 쓰니까 따로 번역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열두 살 때까지 한국어를 쓴 아이는 이미 만들어진 모국어 영역에, 뒤늦게 영어 영역이 생긴 거예요. 한국의 조기교육 시장에서는 이 연구를 '영어 뇌 만들기'라고 홍보하면서, 어렸을 때 시작해야 '영어 뇌'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죠. 이 연구 결과가 과학계에서는 권위 있는 <네이처>라는 잡지에 실렸어요. 그러자 조기교육업체들이 발 빠르게 가져다 쓴 거죠.  

그런데 과학에서 논문을 썼다는 것은 하나의 '데이터'에 불과해요. 뉴스를 보면, 가끔 "○○연구팀에 의하면, 당근이 암세포를 죽인다고 밝혀져"라는 기사가 나오잖아요? 이 "밝혀져"란 말을 조심해야 해요. 그런 '데이터'가 생겼다는 것뿐이고, 이게 실제로 적용되려면 비슷한 결과가 오랫동안 쌓여서 '가설'로 자리 잡혀야 해요. 그리고 그 가설이 오랫동안 지지를 받으면, '이론'으로 성장하죠. 또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이게 정말 가능한지 수없이 많은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만 해도 수십 년 걸린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밝혀져"란, 단어는 수십 년에 걸친 과정 중 첫발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데 그 '데이터'만 가지고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거죠.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이처>에 실린 논문도 많은 반론에 부딪혔고 실험 방법의 오류, 데이터의 부정확성 등이 밝혀지면서 신뢰를 크게 잃었습니다. 즉, 대뇌의 다른 영역, 같은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를 쓸 때 일어나는 일반적인 뇌의 작용을 말하는 것뿐이지, 외국어 실력 차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그 주장이 흐지부지 사라졌어요.  

그래도 아이를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시다면, 비법이 있어요. 초등학교 3~4학년까지 동네 말을 잘하면 돼요. 한국말도 아니고 서울말도 아니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쓰는 말이요. 인간은 언어 유전자를 본능으로 갖고 태어나요. 실제로 언어를 잘하려면 '유전자'라는 설계도가 적절한 재료를 만나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그 '재료'예요. 이건 언어의 본질과도 닿아 있는데, 언어라는 것은 단어나 문장이기 이전에 소통의 도구죠. 그래서 아이들이 단어나 문장 이전에 익혀야 할 것은 소통이고, 그래서 주변의 언어를 잘 써야 해요. 그걸 '기축 언어'라고 불러요. 우리에게 그건 한국어죠. 그중에서도 자기 사는 동네의 언어가 기축 언어예요. 기축 언어가 잘 닦여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 언어도 가능한 거예요. 이 맥락 없이 "영어는 어릴 때 가르쳐야 한 대" 하고 기축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아이들은 모성어, 즉 엄마아빠가 쓰는 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쓰지 못하면 공포심을 느껴요. 왜냐면 소통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엄마가 영어 잘하는 걸 좋아하니까 참으면서 그 언어에 적응하죠. 사실 그건 재밌어서 익힌 게 아니라 적응한 거예요.

아이들이 태어날 때 인간의 뇌는 굉장히 수준이 낮은 상태로 출발해요. 예를 들어 8개월 된 아기의 종합적인 뇌의 능력은 개보다도 떨어지는 상태예요.(웃음) 지금 단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물론 인간은 불과 두 살 만에 그 단계를 가뿐히 뛰어넘어요. 자기 몸과 뇌에서 공사를 계속해나간다는 뜻이죠.  

기고 일어서기 시작하는 단계의 아기를 보면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 굉장히 더딘 것 같지만, 사실 오랜 기간 뇌와 인간의 집 짓는 공사를 급속하게 하고 있어요. '인간의 유전자'라고 하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죠. 아이들이 억지로 영어 유치원에 적응하면, 기축 언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1차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나이로 치면 18세 정도부터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영어는 잘하는데, 소통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 아이가 커서 무역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무역이란, 일이 영어만 잘한다고 됩니까? 수완도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볼 줄도 알아야 하고, 아부도 해야 하고 온갖 사회적 관계 능력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경험으로 뇌를 키운다 

또 하나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3세 신화'입니다. '세 살 무렵에 아이의 뇌가 거의 다 완성된다'는 얘기 들어보셨죠? 시장이 교육을 주도하고, 교육이 완전히 산업화한 맥락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 순간, 여러분들은 자본의 포로가 돼요. '부모교육' 강연하는 분 중에 꼭 엄마들을 책망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국 엄마들은 극성맞고, 제 자식밖에 몰라서 오히려 애를 괴롭힌다는 거예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의 바람은 한결같아요. 자식을 똑똑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거예요. 그건 위대하고 숭고한 바람이죠. 그 마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게 나쁜 거죠.  

뇌가 발달한다는 것은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된다는 건데요. 이 연결되는 부위를 '시냅스(synapse)'라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텔레비전을 연결하기 전까지는 그냥 고철 덩어리죠? 텔레비전이 작동하려면 전기선도 꽂아야 하고, 셋톱박스도 꽂아야 하죠. 시냅스는 텔레비전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뇌도 마찬가지예요.  

생후 8개월에서 1년까지 최고치에 달했던 시냅스의 밀도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떨어져요. 그렇다면 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점 머리가 나빠질까요? 아니요. 뇌는 어릴 때 가설 공사를 해요. 일단 꽂아놓고 차츰 필요한 것만 남기면서 기능을 향상시키는 거예요. 그걸 뇌의 전략, 즉 '가지치기 전략'이라고 해요. 식성 같은 게 그런 거예요. 애들이 처음엔 이것저것 다 먹다가 좋아하는 음식이 생겨요. 식성을 가지치기한 거예요. 시냅스의 연결은 줄어들지만, 식성은 확고해지죠. 이렇게 만들어진 게 '자아'예요.  

그럼 무엇으로 가지치기를 하느냐? '경험'이에요. 저는 왜 냉면을 좋아할까요? 왜 북한산만 보면 마음이 설렐까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냉면을 사주고, 북한산을 데려갔던 기억이 있어서 그래요.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몸으로 경험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극단적으로 열두 살까지 인지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들이 열두 살까지 뭐가 중요한지 따졌을 때 학습지 풀고, 외국어 배우는 건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요.

우리가 뇌의 전략을 안다면,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부 앉아서 문제만 풀어요. 아이가 있는 집에 가면, 연구실 서재 수준으로 책이 빽빽하죠. 제발 그러지 마세요.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 같이 앉아서 개그 프로 보면서 웃어야 합니다. 책은 골방에서 보면 되고요. 그런데 전부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텔레비전 없애라고 하죠. 지능계발에 좋다고 하니까 너도나도 손으로 꼼지락대는 거 하다가, 지능지수(IQ)만 가지고 안 된다니까 이번엔 감성지수(EQ)가 중요하다고 또 극성이죠. 가만히 앉아서 교구를 만지작거리는 지능발달 훈련은 언제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거동이 불편해질 때 하는 거예요.(웃음) 

지금도 밖에 나가 보세요. 애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몸으로 경험하고 싶은 거죠. 뇌를 가다듬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거예요. 나에게 냉면이 맞는지 스파게티가 맞는지, 식물이 좋은지 동물이 좋은지 찾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만 데 손을 다 내밀어 세상을 만나려고 하죠. 아이들은 오지랖 넓은 게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래야 나중에 그 경험들이 솎아지고 뚜렷한 자아가 생기니까요. 


"자고로, 여자는!"

[격월간 민들레] 여성의 '태도' 말고, '권리'에 대해 배웠더라면…
여백 청년       
2017.02.11 11:45:05


일상이 자꾸만 불편해진다

가족끼리 외식하러 갈 채비를 하면서 원피스 안에 속바지를 입을까 말까, 잠깐 고민했다. 치마를 입을 때면, 엄마나 아빠는 스무 살이나 된 내게 꼭 "속바지 입었어?"라고 단속하듯 묻는다. '안 입으면 한소리 듣겠지?' 싶어 입으려는데 문득 '속바지'라는 게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속바지를 입어도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으면, 엄마는 가자미눈으로 날 노려보면서 '다리 오므려!' 하는 신호를 보낸다. 속옷이 보이면 안 되니까 그 위에 껴입는 게 속바지인데, 속바지마저도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단다. 그럼 속바지가 안 보이게 그 위에 '겉바지'를 또 입어야 하나? 목이 조금 파인 상의까지 입으면, 위아래로 단속은 더 심해진다. "끈 보인다. 옷 올려!" 당연히 브래지어 끈도 단속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도 입고 남들도 다 입는 속옷, 좀 보이면 뭐 어떻다고. 예전 같으면 부모님 말씀 따라 속바지 꼭 챙겨 입고 옷매무새 좀 가다듬고 말았을 텐데, 요즘엔 이런 사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더 이상 사소하지만은 않은)한 문제들이 그냥 안 넘겨지고 턱턱 걸린다. 

'강남역 살인 사건'. 대한민국에 '여성 혐오'라는 큰 화두를 불러온 이 사건은, 나에게도 여러 의미로 큰 충격을 주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여자들끼리 있을 때는 직접 당했거나 전해 들은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과 성추행 경험담을 나누기에 바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무척이나 놀랐다), 남자 친구들과는 아무리 얘기를 나눠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어색하게 자리를 파하는 일이 잦았다.

남자들과 결론 없이 힘만 빠지는 논쟁을 몇 차례 하고 나서 나름 얻게 된 것도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자꾸 불편한 게 많아지고, 일상이 새삼스럽게 다시 보이는 눈이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불쾌하고 찝찝했지만 그냥 넘겨 버렸던 사건들이 바로 '성추행'이었다는 것, 나에게도 집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고정된 여성성'이란 게 있었다는 것, 나 스스로도 "그래, 여자니까" 하고 순응하며 부당한 성차별에 무뎌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딸내미는 감출 게 너무 많아  

말해봤자 결론도 안 나고 감정이 퍽 상하지만,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들과 나는 기존의 생각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집에만 오면, 깨진 생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일상 속에서 가족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살펴보면 "딸(여자)이니까" "아들(남자)이니까"로 시작되는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신신당부하던 게 몇 가지 있다. 앞에서 말한 '속바지 입기'와 같은, 주로 여자다운 몸가짐이나 조신함과 관련된 것인데, 그중 하나는 (가족끼리 있을 때조차) 빨래바구니에 속옷을 넣을 땐 반드시 수건으로 둘둘 말아 아빠나 남동생한테 안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 따갑게 듣고 자란 덕에 습관이 되었지만, 가끔 깜빡하고 욕실에 속옷을 두고 나올라치면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남동생은 샤워만 하고 나오면 벗은 속옷이 그대로 허물처럼 남아 있는데도 아무 말이 없으면서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담배도 절대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다. 왜냐고 물으면 당연한 듯 "여자는 엄마가 될 몸이잖아"라고 했다. 예전보다 여자들이 기를 펴고 살게 됐다지만, 담배 피우는 여자들 보면 아니꼬운 마음이 먼저 든다는 거다. 그리고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게 보기에도 안 좋단다. 딸내미인 '나'보다 아직 있지도 않은 내 '미래의 아기'가 더 먼저 걱정된다니.

생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다. 생리대는 검은 비닐봉지에 잘 싸서 욕실 선반 구석에 숨겨놓아야 하고, 생리대가 떨어져도 아빠와 함께 마트에 갈 때면 카트에 담지 못했다. 건강한 가임기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인데, 마치 생리를 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굴어야 할 때가 있다. 남녀공학 학교를 다녔는데, 생리대가 없을 때 나는 남자애들 눈을 피해 아주 은밀하고 신속하게 생리대를 찾으러 다녔다. 생리대를 가지고 있던 친구는 들키지 않도록 잽싸게 주머니에 찔러 넣어 줬고, 나중에는 여자애들끼리 생리대와 초성이 같은 '샐러드'라는 은어를 만들기도 했다. 

▲ 영화 <러브픽션>(전계수 감독, 2011)에는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는 여주인공(공효진 분)이 나온다. 개봉 당시 여성의 겨털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삼거리픽쳐스 , (주)판타지오픽쳐스


사람의 신체에 붙어 있는 '털'에 대한 인식도 남녀 간 차이를 보인다. 친구는 욕실에서 겨드랑이털(흔히 줄여서 '겨털'이라고 한다)을 밀다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니 겨털 깎는 것을 깜빡했고, 수북한 겨털을 보는 순간 남자친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는 거다. 적어도 그 헤어진 남자는 겨털을 깎으며 울음을 터뜨릴 일은 없을 것 아닌가! 나도 내 주위 여자들도, 데이트가 있거나 중요한 날을 앞두고 주기적으로 제모를 한다. 누가 그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 준 적도, 살면서 겨털이 불편했던 적도 없지만, 그냥 한다. 겨드랑이털을 깎는 남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여자애들이 팔을 움직일 때 겨드랑이 사이로 털이 슬쩍 보이면, 남자 애들은 정말 이상한 무엇을 본 것처럼 뒤에서 수군대곤 했다. "야, 깬다. 어떻게 겨털이 있냐?" 남자애들끼리 어떤 애 겨털을 봤다고 얘기하는 걸 엿듣고는, 그 여자애를 찾아가 "너, 겨털 보여" 하고 조심스레 말해주고 "우리 조심하자"고 했다. 그게 그 애를 돕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내 것도 자라 있진 않은지 슬쩍 만져봤던 거 같다.

그동안 내가 보고 배운 '여성'은 많은 것을 감춰야 하는 존재이고, 동시에 늦은 밤에 혼자 다닐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오후 9시 통금이 해제되었지만, 그렇다고 귀가 시간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귀가가 늦어지면 엄마는 내가 들어올 때까지 잠 안 자고 기다리고 아빠는 10분마다 어디냐고 전화를 건다.

엄마가 벌건 눈으로 늦게까지 잠도 못 자는 게 싫으면, 내가 일찍 들어오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남동생이 늦을 때는 별말이 없다.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막차가 끊겨 집까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남동생 혼자 택시 타고 온 날, 엄마는 드르렁드르렁 자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여자친구를 집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준 일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밤에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난 남동생과 대비되는 처우가 못마땅했다.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남자들이 해코지할까 봐, 무슨 일 날까 봐, 걱정인 거지? 그럼 여자를 가둬놓을 게 아니라, 해코지할지 모르는 남자들을 가둬놔야지!" 입에서 이런 말들이 굴러다녔지만, "다 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잖아"로 시작될 말싸움이 그려져 입술만 삐죽거리고 말았다.

남동생에게도 종종 '남자다움'이 요구될 때가 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비위가 약해서 꿈틀대는 산낙지나 선짓국, 곱창, 닭발 같은 걸 못 먹었는데 아빠는 "사내자식이 이런 것도 먹을 줄 알아야지" 하며 숟가락에 조각난 낙지 다리, 때로는 개고기를 발라 얹어주었고, 동생은 한참 버티고 가끔은 울다가, 안 먹으면 고추가 떼일까 봐 코를 막고 겨우 목으로 음식을 넘겼다. 

집안일을 할 때 형광등 갈기, 망치질, 가구 조립하기, 무거운 짐 옮기기 같은 일은 남동생을 시켰고, 예쁜 글씨로 메뉴판 쓰기, 과일 깎기, 빨래 널고 개기, 청소, 식사 준비 돕기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집안에서조차 여성의 성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행동들은 때때로 칭찬이 되었고 어떤 것은 흠이 되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과 잘하는 일과 관계없이 나와 남동생은 각자 맡게 되는 일들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얼마 전엔 할머니 댁에서 남동생이 다 먹은 저녁 밥상을 옮기려 하자, 할아버지는 남자가 부엌에 가는 거 아니라며 발로 날 툭툭 밀었다. 네가 가서 할머니 좀 도우라고. 따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방으로 들어갔다. 매번 뭐든 나만 부리는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그런데 따질 수 있다 해도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할 수 있는 언어가 내 안에 별로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던 것이 더 분했다.  

여성의 '태도' 말고, '권리'에 대해 배웠더라면  

엄마, 아빠나 남동생, 할아버지, 친구들이나 택시기사, 편의점 점원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타인들과 말을 섞을 때 "여자가"라는 부당한 말에 자주 고개가 갸웃거렸다. 조목조목 따지고 싶다가도 어려서부터 엄마가 나에게 당부해 이미 깊숙하게 자리 잡은 통념을 스스로 깨기 어려웠다. 바락바락 따지고 덤벼들고 싶다가도 내 안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과 이미 깊이 박혀 있는 의식과 습관이 부딪히면서 말문이 자주 막혔다.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지닌 할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엄마의 말에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때는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수도 없이 "자고로 여자는" "어디서 여자가" 하는 말을 들었을 텐데, 엄마는 한 번도 억울하다거나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을까? 하긴, 내가 그동안 엄마 말을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들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강남역 사건 같은 충격을 겪지 않았다면, 그대로 커서 나중에 내 딸에게 서운하고 부당한 말들을 늘어놓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성교육은 붙들고 앉아 교육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정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낀다. 예를 들면, 내가 만난 남자애들은 엄마가 생리를 어떻게 여기는가에 따라 생리를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랐다. 내가 쿡쿡 찌르는 생리통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을 때 "그렇게 아프면 참지 말고 화장실 가서 (생리혈을 똥 누듯이) 싸고 오라"며 무식함을 드러내는 애가 있는가 하면, "우리 엄마는 면 생리대 쓰던데, 생리통에 좋대" 하며 정보를 일러주는 애도 있었다. 집에서 일상적으로 보고 배우는 것, 즉 가정의 문화가 한 사람에게 '인식의 출발점'을 만든다. 집에서 알게 모르게 습득하는 것들은 내면 깊숙이 박혀 있어 교육으로도 고치기가 힘든 것 같다. 

▲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시민들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쪽지를 남겼다. ⓒ연합뉴스


기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졸고 있는 내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댄 적이 있다.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여성이 느끼는 성적인 불쾌감은 생각보다 만연해 있고,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언어적 추행까지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때마다 불쾌하다고 말하는 게 망설여졌다. 막상 현실로 닥치면,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를 분명하게 외치라던 성교육 교과서 가르침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불쾌한 것을 불쾌하다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남동생 대신 부엌에 가서 할머니 일 좀 도우라는 할아버지에게 내 생각을 조목조목 전할 수 있었다면, '여자는 여자답게'에 익숙해진 엄마에게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함께 이야기하자고 설득해내는 능력을 가졌더라면, 초등학생 때 귀엽다며 뽀뽀 한 번 해보자던 동네 오빠의 정강이를 보기 좋게 걷어찼다면, 지하철에서 내 허벅지를 더듬던 그 자식에게 따귀를 날리며 사과를 요구했더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여성으로서 나의 '권리'라는 걸 어딘가에서 진즉에 배울 수 있었더라면, 이제야 불편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내 인생이 조금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말할 용기는 없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질문은 자꾸 생겨나니 확실히 인생이 더 피곤해졌다. 주위 사람들과는 얼마나 더 숱한 말싸움을 벌이게 될까. 그래도 이 '까칠함'이 무지한 누군가를 자극할 수 있다면, 주위에 나처럼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조금씩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자고로 남자는" "어디서 여자가"로 시작하는 언어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조기교육 선행학습이 열풍이지만, 진짜 선행해야 할 학습은 바로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을 깨는 열린 사고일지도 모른다.



[위기의 변호사]① "변호사 자격증 있어도"..'생존 정글'에 내몰린 청년 변호사

전효진 기자 입력 2017.02.10 06:05


변호사 업계에 찬바람이 분다. 사법시험 체제에서는 1년에 1000명 미만의 법조인이 배출됐지만, 로스쿨 도입 뒤 매년 1800명 정도의 인력이 진출하면서 청년 변호사들의 생존권 문제, 직역 다툼, 법률시장 3단계 개방 등으로 위기와 갈등 요인이 곳곳에 놓여있다. 지각 변동이 시작된 변호사 업계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대학 캠퍼스 안에서 한 젊은이가 ‘법과대학' 표지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변호사만 되면 상황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국내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박오름(가명⋅로스쿨 5기)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중위권 A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지원서를 쓴 12곳의 로펌 채용에서 모두 떨어졌다. 결국 신생 로펌에서 월 200만원을 받으며 실무수습을 받게 됐지만, 로스쿨을 다니며 생긴 1억여원의 대출 상환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사법연수원 출신의 이수곤(가명⋅34)씨는 이직을 위해 로펌 면접을 봤다가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다. 그는 “전에 일했던 사무실에서의 급여 수준을 묻더니 대뜸 다른 지원자보다 얼마가 비싸니 깎아주지 않으면 채용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무슨 상품도 아니고, 가격 흥정을 하듯 해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과 사법연수원 수료자가 뒤섞여 해마다 1800~2000명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형로펌에 입사하는 잘 나가는 변호사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중소로펌을 전전하거나 반(半)고용 변호사, 심지어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취직하지 못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로이어 푸어’(Lawyer poor)가 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대형로펌⋅공기업 취업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생존 정글'에 내몰린 젊은 변호사들

법학전문대학원 입시 현수막이 걸린 국내 한 대학 캠퍼스 안의 모습./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빅4’ 로펌(김앤장ㆍ광장ㆍ세종ㆍ태평양)의 경우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 상위권 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각각 20~25명 정도를 채용했다. 10대 로펌까지 합치면 신규 로스쿨 변호사 채용 규모는 200~250명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변호사는 취업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서울 상위권 B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김시운(가명・로스쿨 4기)씨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법조계 취업 전쟁을 ‘생존 정글’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김씨는 “어차피 다들 똑똑하다 보니, 누구나 알아주는 로펌 취업은 실력보다 혈연이나 인맥이 크게 좌우되는 것 같다"며 “실력으로만 승부하고 싶어서 전문직종을 택했지만, 금수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건 법조계도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안정적인 공기업이나 대기업 사내변호사 채용 경쟁률도 치솟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014년 경력직 변호사 채용 전형에서 정관을 변경해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아들이자 로스쿨 출신 신입 변호사를 채용한 것을 두고 최근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법조계 채용 비리도 잇따르고 있다.

한쪽 몫을 다른 쪽이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되다보니 출신과 세대간 적대감이 커지기도 한다. 현직 변호사 중에서는 혐오와 비하의 뜻을 담은 ‘사시충(蟲)’, ‘로퀴벌레’(로스쿨+바퀴벌레) 등의 표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시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세계에도 ‘빽'이 없으면 시작부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 출신에 따른 적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시험 출신 이채림(가명・31)씨는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과거 고위 관리의 자녀를 시험 없이 채용했던 제도)란 비판을 받는 게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몇몇의 채용비리 때문에 (로스쿨 출신) 전체가 역차별을 받는 느낌이다. 나처럼 인맥도 변변치 않고 혼자 힘으로라도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은 더욱 말 못할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수료생 취업률./조숙빈 디자이너

사법연수원생들의 취업률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올해 사법연수원 수료생인 연수원 46기 209명과 43~45기 25명 등 총 234명 중 입대인원을 제외한 연수생의 취업률은 45.03%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51.61%보다 6.6%포인트 하락한 규모다.

수료일 기준으로 사법연수생 취업률은 로스쿨 1기가 배출됐던 2012년 41기가 40.9%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한 이후 줄곧 50%를 넘지못했다. 2016년 상반기에 50%대로 올라섰지만 다시 40% 중반대로 떨어져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半)고용 변호사, ‘무늬만 로펌’도 등장...‘전문', ‘최고' 광고하다 과태료 물기도

변호사들의 취업전쟁을 틈 타 완전히 취업한 것도 아니고, 개업한 것도 아닌 중간 형태의 ‘반(半)고용 변호사’들도 생기고 있다. 이들은 중소 로펌 등에서 매달 200만~300만원 정도를 받고 최소한의 어쏘 변호사(associate attorney⋅고정 월급을 받고 일하는 변호사로 주로 연차 어린 청년변호사가 많음) 역할을 하면서도 나머지 시간은 직접 사건을 수임하는 일종의 별산 형태로 움직인다.

그러나 실상은 젊은 변호사들에게 득이 되는 형태가 전혀 아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인적 네트워크가 없는 청년변호사들이 스스로 사건을 수임해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다"며 “사실상 중소 로펌에서 싸게 변호사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생긴 형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변호사 생존권 보장 및 행정사법 개정안 저지집회'에서 대한변호사협회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변호사업계의 취업난을 악용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중구의 W법무법인은 변호사를 채용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법무법인 구성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구성원 변호사로 올려 품위유지의무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 취업 게시판에는 “법무법인 00에서 별산제 변호사님을 모십니다" 등 개업이 부담되는 젊은 변호사들을 유혹하는 ‘무늬만 로펌' 구인구직도 늘고 있다. 별산제 법무법인이란 별개의 법률사무소를 묶어 하나의 법무법인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건은 따로 수임하지만, 사무실 임차료와 임금 등은 공동 경비로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별산제 법무법인은 일반 고용 관계가 아니면서도 소속 구성원 전체가 위험을 똑같이 부담해야 해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전문 분야 등록을 하지 않고도 ‘전문', ‘최고' 등을 표시해 광고하다 변호사업무광고 규정을 위반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서초동의 법무법인Y⋅K⋅W 등은 최대 800만원까지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 젊은 고용 변호사들 “복지나 인센티브 주장하기도 어려워"...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심각한 취업난이 문제가 되다 보니, 이미 취업을 한 젊은 고용변호사들은 복지나 인센티브 및 근로기준 등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빌딩 안에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연합뉴스 제공

서초동의 소형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유상원(31⋅가명)씨는 “취업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나 싶지만 연차휴가도 못 쓰고, 새벽 1시까지 근무하거나 휴일 근무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며 “일반 기업에는 당연한 연봉이나 인센티브 금액이 담긴 근로계약서 작성도 딱히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청년변호사들의 96%는 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경우에도 연장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 근무할 경우 야간근로수당을 받지 못한 비율도 9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를 할 경우 또는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센티브 등 상여금 규모는 평균적으로 소송 사건의 착수금 내지 성공보수의 20%~50% 수준이지만 젊은 변호사에게는 이런 기준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변호사는 “명목은 인센티브이지만 매월 받는 월급을 한번 더 준다든지, 아니면 파트너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성공보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중견 변호사 사무실 중에서는 어린 연차의 변호사들을 조수격으로 쓰다가 일방적으로 해고하거나, 중간에서 사건을 가로채는 등의 문제도 일어나고 있다. 이 밖에도 ‘4대 보험 미가입’, ‘급여 체납’,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인한 해고'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젊은 변호사들도 있었다.


[위기의 변호사]② 변호사업계, 전문자격사에 포문..해법은? 통폐합 vs 동업

정준영 기자 입력 2017.02.12 08:56            


‘유사직역과의 전쟁선포’
’법조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들이 들어서 있다./전효진 기자

법정 변호사단체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장 선거전에 등장한 공약이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래 매년 1500명 이상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국내 변호사 수는 5년 내 3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난 변호사 수에 비해 일감은 크게 늘지 않았다. 국내 변호사의 70% 이상이 몰려 있는 서울의 경우 평균 한 달에 2건 이상 수임하기도 어렵다. 변호사업계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법무사, 노무사, 변리사, 세무사 등 전문 자격사들과 시장을 공유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달 27일 2년 임기를 시작하게 될 김현 신임 대한변협 회장 당선자(61·사법연수원17기)는 “전문자격사, 이른바 유사직역은 보충적으로 마련된 제도”라면서 “법률전문가의 본질적 업무인 소송사무, 소송대리권만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 변호사들의 생존싸움, 전문자격사 향해 날 세워

변호사업계는 지난해 변리사업계와 힘겨루기 양상을 보였다. 지난해 1월 법정 변리사단체 대한변리사회 소속 개업 변호사들의 모임인 대한특허변호사회가 출범했는데, 변리사업계에서는 변호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곳이라고 보고 있다. 한동안 소강국면을 보이던 변호사와 변리사의 충돌은 지난해 말 변리사회 징계위원회가 초대 특허변회 회장을 맡은 김승열 변호사(56·연수원14기)를 제명하면서 재점화됐다.

변리사회는 김 변호사의 "변리사는 법률 전문성이 부족하고 소송대리권이 없다“ "소송전문가가 아님을 인정하고 소송대리권 운운하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훼손하는 주장을 중단하라" ”변리사회는 실무수습을 수행할 역량과 자격이 없다“ 같은 발언들이 변리사 제도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변리사법상 법정단체인 변리사회가 제명하면 변리사로 활동할 수 없다.

변협 등 변호사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징계처분에 불복하고 이의신청을 내 이달 10일쯤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의신청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징계 취소 소송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도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도전했던 황용환 변호사(60·연수원26기)는 검찰에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회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변리사들은 특허·실용신안·디자인·상표 등 출원사무 외에 지식재산권(IP) 분쟁도 다룬다. IP 관련 분쟁은 크게 보호 권리의 유무효 등 특허심판원이 내린 심사결과 처분의 적절성을 다투는 심결취소소송과 권리침해에 대한 금지, 손해배상을 다투는 침해소송으로 나뉜다. 사법부는 심결취소소송과 달리 침해소송의 경우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변리사들은 법률상·사실상 이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변호사업계는 직역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변리사 외에도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을 허용하는 행정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하반기 일부 변호사들이 1인 시위에 나서는 풍경도 펼쳐졌다. 김현 변협 회장 당선자도 1인 시위 대열에 합류한 바 있다. 종전까지 행정심판 관련 서류 작성·제출만 대행하던 행정사의 업무영역 확대가 변호사 시장을 침범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승열 변호사./법무법인 양헌 제공

변호사업계에서는 업무영역 충돌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전문자격사 통폐합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법의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최승재 변호사(46·연수원29기)는 “(직역갈등은)변호사의 업무를 파편화해 유사직역이 나눠가진 데 따른 현상”이라며 “국민 편의를 위해 자격증 체제를 변호사, 회계사 중심으로 통합·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승열 “제명 유감”...변호사업계 “변호사로 전문자격사 통폐합”

변호사-변리사 갈등 재점화의 불씨가 된 김승열 변호사는 최근 조선비즈와 만나 “제명은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충격적인 일이었다. 주무관청인 특허청의 업무를 위탁받은 기구가 권한을 남용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대리권 문제로 예민해진 측면이 크다”면서 “특허명세서 작성은 변리사, 침해소송은 변호사가 맡아왔는데 궁극적으로는 이를 융합·통합하고, IP 분야 컨트롤타워도 특허청으로 일원화해 제대로 된 서비스 제공, 국제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그동안 쌓였던 문제들이 공개 노출된 계기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향후 유사직역 통폐합 등 건설적으로, 포용적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합의 방향에 대해서는 “변호사 쪽으로 흡수·상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 오규환 변리사회장 “변호사들 주장 시대에 역행, 침해소송도 변리사가 맡아야”

변리사업계는 공감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규환 변리사회장은 “변호사들이 잘못된 것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전문자격사의 업무영역도 더 세분화된다”면서 “변호사 수가 부족해서 변리사 등 다른 전문자격사가 생긴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변리사 수가 부족해서 서류작성 업무 등을 일시적으로 법률분야 제너럴리스트인 변호사들에게 맡겼던 것일 뿐이라는 취지다. 나아가 “변호사에게 일괄적으로 변리사 자격을 부여한 뒤 업무능력에 따라 스스로 활동범위를 자제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전문성을 (시험 등으로)객관적으로 검증해 요건을 충족해야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회장./대한변리사회 제공

침해소송 대리권에 대해서는 변리사가 맡는 것이 보다 본질에 충실하다고 주장했다. 오 회장은 “변리사법 문언상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침해소송은 특허의 유무효, 침해혐의 기술이 특허권 범위에 해당하는지가 핵심으로 소송을 수행하려면 기술에 대한 이해, 특허법과 실무에 대한 이해, 민사소송법 등 소송절차에 대한 이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면서 “그동안 법원이 변리사의 침해소송 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아 실무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을 뿐 자격 취득시를 기준점으로 보면 변리사가 변호사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전문자격사 통폐합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오 회장은 “통폐합은 전문의 제도를 없애고 일반의만 남기겠다는 주장과도 같은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으로 변호사들이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직역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 공생, 시장평가에 맡겨야

변호사, 변리사 양측 모두 큰 틀에서 서비스 소비자의 선택, 시장평가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는 대목에서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김승열 변호사는 “(직역충돌은) 사법소비자의 수요에 부응토록 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규환 회장은 “서비스 수요자들이 현실적으로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침해소송 등을 맡기고 답답해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시장의 수요 판단에 맡길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자격사 업계에서는 ‘통폐합’ 대신 ‘동업’이 답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 회장은 “자격사를 변호사로 통합하기보다 자격사들이 동업해서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원스톱 서비스를 가능하게끔 해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문성 부족으로)할 수 없는 일까지 모두 하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전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변호사와 타 직역 전문가가 동업하는 형태 또는 조직체가 갈등해소방안의 하나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과거 변호사의 공급 부족 등을 전문자격사가 다양해진 배경으로 꼽으면서 기득권, 이해관계 등으로 자격사 통폐합은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