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에서 박근혜까지, 1등이 다 먹는 정치 30년의 결과
진단 : 정치 패러다임 교체의 필요성
'촛불항쟁'은 시민혁명으로 승화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혁명은 언제나 분노-열망-좌절 악순환 사이클을 반복하며 미완에 그쳤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쓰나미. 도도한 촛불민심의 분노가 혁명의 에너지로 농축·승화되기 위해서는 낡은 앙시앵레짐, 즉 87년 체제를 해체하고 네오레짐, 즉 '포스트 87년 체제'의 선거제도-정당정치를 선차적으로, 혹은 권력구조 개헌과 병행하여 설계해야 한다.
토머스 쿤(T.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명저에서 현재의 패러다임이 과학발전에 부적절하다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치발전도 과학발전과 유사하다. 기존의 정치 패러다임이 경제민주화-복지국가-사회통합 창출에 한계를 드러낼 때 그 낡은 패러다임은 보다 적실성·실효성이 있는 패러다임으로의 교체가 불가피하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패러다임 교체를 갈망한다. 노후화된 한국의 승자독식의 '87년 체제'는 권력분점의 헌정체제로 그랜드 디자인되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87년 체제는 '1% 특권층'에 혜택·이익을 집중시키고 '99% 서민층'에 비용·손실을 분산시키는 정치적 재앙을 야기하는 시스템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분점의 정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야말로 '포스트 87년 체제' 창출을 위한 '제2의 민주화 물결'로서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역주행이 87년 체제의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양극화된 정당정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회고하고, 이를 혁파하는 '포스트 87년 체제'의 권력분점 선거제도와 연합정치 패턴을 설정, 권력구조와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87년 체제의 패러독스
1987년 6월 항쟁을 분기점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한 87년 체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크게 훼손된 건 사실이나, 큰 틀로 보면 자유권·참정권·국가권력 통제권을 강화해 왔다. 우리 국민은 87년 체제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시민권을 확대한 '실질적 민주주의'로 진화하는 경로를 밟을 것으로 열망했다.
그러나 87년 체제의 정치적 민주주의 진전이 사회의 공공성·형평성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에 정면으로 반하는 불평등과 차별과 소외와 배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회경제 양극화로 인해 금수저-흙수저-헬조선이 시대의 아픔과 절망을 웅변한다.
정치적 시민권의 진전과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역진 사이에 커다란 '단절의 강'이 도도히 흐른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간의 간극이 점차 커져가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87년 체제의 패러독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프레시안(최형락)
1. 87년 체제의 정치양극화…승자독식 소선거구제-지역(구)이권정치
승자독식 정치 패러다임은 수적 우위와 다수를 확보하기 위한 자유경쟁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고 다수당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정치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87년 체제는 소선거구제가 유인하는 거대정당 독과점체제-집권당 단독정부-제왕적 대통령제를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전형적인 승자독식 정치체제이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는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결합된 현행 '2표 병립제'이다. 소선거구제에선 51%를 획득한 1등 앞에 49%를 얻은 2등은 무의하다. 이러한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 의해 선출된 의석 비중이 과다하여 비례대표제보다는 단순다수대표제의 효과가 압도적이다. 이로 인해 정당의 득표율-의석율 간의 심각한 괴리가 발생한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하의 유권자들은 계층적·세대적·생태적 가치·정책 중심의 투표에 인색하다. 사회 저변층이 복지 친화적 진보좌파 정당을 외면하고 노동자들이 노동우호적인 정당이 아닌 지역주의 정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등 1등이 될 만한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는 작년 4·13 총선 이전까지 지역중심의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를 고착화했다. 유권자의 다양성과 이질성은 다당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선거제도가 이를 가로막았다. 민주화 이후 제3당 돌풍은 종종 있었으나 다음 총선까지 연달아 교섭단체가 된 적은 없다. 87년 체제에서는 한편으로 다양한 사회분열, 정치적 이해의 차이에 따른 다당제로 분화하는 정치적 에너지가,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직을 쟁취하는 경쟁과정에서 양당제를 압박하는 정치적 에너지가 교차한다. 이 때문에 대선·총선을 전후해 선거공학적 이합집산·합종연횡이 요동치며 유의미한 제3정당의 정치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작년 4·13총선 결과로 등장했던 3당 체제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소선거구제 국가인 영국의 2010년 총선에서 자민당이 득표율 23%로 하원 650석 중 57석을 얻어 제3당의 지위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2015년 총선에선 불과 8석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대단히 외람되지만 국민의당은 만일 금년 조기대선에서 패배하면 분당 혹은 해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국민의당이 승리하면 더민주당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 정당인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비슷한 운명을 밟을 것이다. 현재 정의당까지 포함한 5당 체제가 양당구도에 균열을 내는 듯 하는 착시 현상을 주지만,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이 모호하고 불분명해 지속가능할지 회의적이다.
소선거구제 하의 거대 정당 독과점 정치는 국가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자원을 지역 이해·개발 중심의 관점과 논리에서 배분하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재선을 위해 국가재정과 지역(구) 주민 사이의 정치 브로커·로비스트로 전락하여 지역 토건·서비스 사업 유치경쟁에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다.
연말 예산안 심의 때 밀실 담합과 '쪽지 예산'을 통해 수천 건의 지역(구) 민원이 예산에 반영되고 저소득층 예산이 삭감되곤 한다. 지역개발 프로젝트는 지역사회의 계급·계층·세대 간 불평등·차별·소외·배제 구조를 결코 교정하지 못한다. 결국 소선거구제 하의 거대 정당 독과점 정치에서 지역(구)를 넘어서는 전국민적 공공재인 증세·복지·교육·의료 등 사회개발 및 경제양극화 해소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이다.
거대 정당 독과점정치
패권적인 국회권력 독과점 정당들은 한편으론 상대 당을 타도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상살(相殺)정치를, 다른 한편으론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오월동주 뱃놀이정치'를 연출한다. 득표율에 관계없이 단순다수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모든 국가권력을 접수하는 '민선황제'로 등극, '점령군' 행세를 하며 집권당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한다. 반면 야당은 극도의 정치적 상실감에 빠져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사사건건 집권당과 대통령에 날선 대립각을 세우며 충돌한다.
소선거구제 하의 거대 정당 독과점 정치의 입법 과정은 교착의 연속이다. 집권여당이 과반의석을 상회한 단점정부인 경우 야당이 완강하게 반대하면 여당의 선택은 날치기와 법안 철회를 반복했으며, 야당은 강력한 비토 정당으로 물리력을 동원하여 격렬하게 저항했다. 여소야대의 분점정부에서도 대통령-야당(국회) 간 정면충돌로 인해 국정운영의 교착상태를 피해 가지 못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협치를 통해 대통령(정부)-국회 갈등관계를 조정하는 합의제 입법정치를 강제한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나 여야의 이해가 엇갈리는 쟁점 법안의 입법과정은 거대 야당이 타협해주지 않으면 국회의 입법 프로세스 진행이 원천 봉쇄되기 때문에 '식물국회'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소선거구제가 유인하는 거대 독과점 양당정치는 결국 지역양극화-유권자양극화-국회양극화-반쪽대통령-이념양극화 등 세계 유례가 없는 최악의 정치 양극화를 구조화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정당 정치의 양극화 현상도 예외가 아니다. 소선거구제가 유인하는 민주-공화 양당 독점정치의 갈등에 따른 의회-대통령 충돌로 인해 법안통과 지연, 국정마비가 발생한다. 2013년 3월 연방정부 지출 자동삭감 '시퀘스터', 10월 연방정부의 셧다운과 국가부채 디폴트 사태, 이민개혁과 총기규제의 입법 불발 등등.
그래서 사회주의 몰락을 예언했던 후쿠야마 교수는 몇 년 전에 미국 양당정치에 조종(弔鍾)이 울린다고 경고했다. 미국 양당정치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로 전락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양당 독점정치가 미합중국을 '두 개의 미국'으로 쪼개고 있다.
미국 정당정치는 유권자들의 지역·인물 중심 투표, 의원들의 지역구 이해관계 몰입, 월가 금융 큰손 등 특정 집단을 대변하는 로비스트, 정치자금의 젖줄인 부자·기업 등에 의해 돌아간다. 그 결과 미국 양당 독점정치는 경제민주화-복지-노동 등 전국적 의제에 둔감하다.
이런 맥락에서 해커(J. Hacker)와 피어슨(P. Pierson) 교수는 공화-민주 양당 중심의 승자독식-양극화 정치가 승자독식-양극화 경제의 원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의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는 부자 상위 1%가 미국 GDP의 23.5%를 독식, 나머지 99% 국민에게 절대적,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있다. 미국 스티글리츠(J. Stiglitz) 교수도 <불평등의 대가> 라는 저서에서 미국이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국가"가 됐다고 통탄한다.
'센더스와 트럼프 현상'은 신자유주의 희생자들의 반란이며 워싱턴 기득권 양당정치에 대한 아웃사이더의 도전이었다. 민주·공화 중심 양당체제가 제시하는 선거 공약, 정책 대안을 가지고 기존 지지자들의 요구나 불만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2. 87년 체제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대화의 실패
87년 체제의 소선거구제-양당정치는 노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며 복지국가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의 유의미한 국회 진출을 봉쇄한다. 이런 비대칭적인 정당정치 공간은 노동참여를 견인하는 노사정 대화·협치 시스템의 작동을 가로막고, 대신 과격한 '거리·광장정치'로 이익관철을 시도하는 갈등적·투쟁적 노사(정) 관계를 재생산한다.
양극적 정당정치 틀 속에서 사회적 대화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확률이 낮다. 노사는 사회적 대화보다는 각기 자신의 우호적인 집권 세력과의 담판·로비를 통해 이익을 관철하려는 전략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의 스웨덴, 1970년대의 덴마크·네덜란드의 이념 블록 간 양극단적인 블록 정치에서 사회적 대화는 정체되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사회협약이 국회의 입법화 과정에서 87년 체제의 지역중심의 거대 양당 독과점 정치의 제동에 걸려 노동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질되거나 부결되곤 한다. 심지어 국회에 입법의제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실망하고 분노한 노동은 노사정 정책협의체에의 참여를 거부했다.
돌이켜 보건대, 87년 체제의 역대 집권당 단독 정부는 사회적 대화 시스템보다는 권력자·관료·전문가 등 엘리트 중심의 의사결정 방식에 습관적으로 익숙했다. 따라서 정부와 이해관계자 간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예컨대 노무현 참여정부의 한미자유무역 체결은 대통령의 이너서클과 관료·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됐고, 대내적 정책협상 프로세스를 생략한 채 하향식으로 밀어붙여졌다. 정책(FTA) 이해당사자들인 노동자·농민·축산업자·중소기업 등 사회집단들을 배제, 소외시켜 극심한 사회갈등이 확산되었다.
재벌개혁 실패
소선거구제 하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재벌개혁,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의제화-입법화하는 데 소극적이고, 설령 적극적이라 하더라도 차기 지역구 선거에서의 재선을 보장받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협소한 지역(구)개발·서비스 프로젝트 중심의 선심성 예산배분정치(pork-barrel politics)에 몰입한다. 그래야 득표‧재선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이라는 국정철학의 표방에도 불구하고 재벌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로 경도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설파했지만,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실토하며 재벌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자유주의 진보정부가 재벌해체·노동경영참여 등 재벌개혁의 정책의제화·입법화를 시도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당시 한나라당의 거부권 정치와 정면충돌했을 것이고 재벌·사용자단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이념투쟁을 전개하며 자본스트라이크(투자축소·철회·해외이전) 위협으로 맞섰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자유주의 보수정부는 재벌중심 성장일변도 정책을 노골화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재벌 총수의 합작품이다. 결과적으로 정경유착 속에서 재벌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는 악화 일로에 있다.
재벌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는 수출산업-내수산업 양극화, 첨단산업-비첨단산업 양극화, 노동시장(고용·임금·근로조건·사내복지) 양극화,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소득양극화, 계층양극화 등 구조적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저(低)복지-저조세부담
한국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음에도 저(低)복지-저조세부담 국가이다.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조세부담율에서 OECD 국가들은 평균 약 22%-35%인데 반해, 한국은 10%-19% 안팎에 그친다. 한국은 복지후진국이다. IMF 관리체제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 배출된 시장 희생자·실패자·낙오자들의 '눈물의 계곡'이 속절없이 깊어만 간다.
왜 한국은 복지후진국일까? 소선거구제하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공공복지의 적극적인 정책의제화-입법화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선을 위해 경쟁적으로 지역예산배분, 지역구 토건사업·서비스 확충 등 지역 챙기기에 몰두한다.
거대 정당 독과점 체제에서 그들은 유권자들에게 증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직접적으로 져야하기 때문에 세금민감도가 높다. 결국 소선거구제-거대 정당 독과점 체제는 저세금-저복지의 경로를 유도한다.
설령 증세-복지친화적인 진보적 대통령-집권당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증세-공공사회복지 능력은 보수우파의 제동 혹은 보수야당-진보적 대통령 간 정책·입법 교착에 의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권력독점-책임전담의 위치에 선 진보적인 집권당-대통령에게 증세 드라이브는 '정치 무덤'이다.
갈등사회
한국사회는 복합적 갈등·분열이 상존한다. 노동-자본, 저소득층-고소득층 간에 뿌리 깊은 갈등·긴장이 쌓여 있다. 교육·환경·복지·증세·남북관계 등 다양한 사회경제 이슈를 둘러싸고 진보-보수, 좌파-우파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세대갈등은 일자리 갈등, 노동시장 개혁 갈등과 맞물리며 이념갈등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지역갈등은 정치적, 경제적 자원을 독점한 패권지역과 소외지역 간, 특히 수도권-비수도권 간 발전격차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갈등공화국이다.
87년 체제의 소선거구제-거대정당독과점체제-집권당단독정부–제왕적 대통령제를 잇는 제도적 배열구조는 한국사회의 노사·계층·세대·지역 갈등을 조정 관리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87년 체제의 정치적 양극화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촉발하고 종국적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씨앗이 되고 있다.
문제는 결국 '선거제도', '정당 정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거대정당독과점 정치는 정치양극화, 갈등적 노사정 관계, 재벌 대기업의 황제경영 및 시장독과점, 저(低)복지국가 등 구조적 악순환을 단절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그 결과 대·중소기업 양극화-노동시장양극화-사회양극화가 확대 재생산되고 복합적인 사회갈등이 상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거대정당독과점 정치는 경제민주화-복지국가의 정책의제화-입법화를 어렵게 하여 종국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간의 공존가능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포스트 87년 체제'의 선거제도-정당정치가 설계돼야 한다.
다음 대통령, 연합 정치 안하면 '동물 정치' 된다
반기문은 보수의 꽃놀이패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드디어 귀국했다. 지난 여름부터 친박세력이 지지하는 여권 대선 후보로 이야기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아오더니, 박근혜 탄핵 소추 이후에는 '나라를 구할 위인', '문재인에 맞설 수 있는 유력 대선후보'로 더 큰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 도착했다. 언론들은 귀국 비행기에 동승해 기내 인터뷰를 하면서 실시간 뉴스를 내보냈고, 인천공항 도착부터 현충원 참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되었다.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들도 '턱받이 논란',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기 논란', '퇴주잔 논란'과 같은 가십성 뉴스를 소비하기 바쁘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반기문과 같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열광은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그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월드컵 열기 속에 등장했던 정몽준 전 의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반기문에게 쏟아지는 언론과 여론의 주목은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논란의 당사자인 박근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세력, 문재인까지 모두 질서 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했다. 이는 퇴진 이후 로드맵으로 각각 박근혜 세력 불처벌과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이를 중단시킨 건 매주 광장에 모였던 수백만의 촛불이었다. 김기춘, 우병우를 비롯해 박근혜-최순실에게 부역했던 정관계 인사들, 이들과 결탁해 막대한 이익을 취해 온 재벌 총수들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 박근혜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탄핵시켜서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바로 국회의 탄핵소추와 광범위한 특검 수사를 만들어냈다. 탄핵이 점점 가시화돼가자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재빨리 정국을 대선국면으로 전환해 나갔다. 그 중심에 반기문이 있다. 박근혜와 함께 박근혜 체제를 만들었던 보수 세력은 반기문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결집하기 시작했고, 촛불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던 문재인은 유력한 야권 후보라는 간판 하나로 정국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날 인천공항 풍경. ⓒ사진공동취재단
보수가 선택한 전(前) 유엔 사무총장
한국에서 유엔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유엔 인권특별보고관과 인권이사회에서 권고하는 한국 인권 상황 개선에 대한 요구,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의 공격적 태도, 난민이나 기아와 같은 지구적 문제에 대한 인도주의적 대처, 강대국에 좌지우지되는 무기력한 유엔 등의 이미지가 병존한다. 오로지 외교관 생활만 해왔던 반기문이 유력 인사가 되고 어린이 위인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건 유엔 사무총장을 세계 대통령에 빗대어 성공한 사회적 지위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유엔이 갖는 유일한 힘은 보편적 인권실현과 평화라는 윤리적, 정치적 지향에 있다. 이를 통해 개별 국가들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지구적 이슈해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과 협의체를 구성해내기도 한다. 반기문의 유엔은 어땠을까.
성소수자 인권신장과 파리 기후변화협약 체결은 반기문 전 총장 시기 유엔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반면 리비아 군사개입 승인, 시리아, 스리랑카 내전의 격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재제와 압박,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는 평화 촉진자로서 유엔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유발한 아이티 콜레라 사태와 이에 대한 책임을 6년 동안 부인하고 은폐해 온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의 사무총장 재임 시기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은 그의 말마따나 '복합적인 국제 정치 상황에서 나오는 좌절'이기도 하다. 또한 ‘사무총장은 통치를 하는 게 아니라 협상과 중재를 하는 자리’라는 말도 일리 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은 복합적인 국제정치 상황 속에서도 보편적 인권 신장과 평화라는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협상과 중재를 해야 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반기문 전 총장은 인권과 평화의 원칙 하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에 맞서기보다는 이들과 보조를 맞추며 유엔이라는 거대 조직을 운영해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로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유엔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과 기후변화 대응을 미국에 맞서가며 추진할 수 있었을까?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군사작전의 일차 행위자는 언제나 미국이라는 사실,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까지 권고한 유례없이 강력한 대북 제재, 한미일 군사동맹의 첫 단추가 될 위안부 합의 지지는 반기문의 친미주의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 대사는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며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에서,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장점이라는 뛰어난 정무감각은 권력의 냄새를 잘 맡는 능력, 누가 기득권자인지를 판별하는 능력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반기문에겐 정치적 신념이나 원칙보다 권력을 향한 타협과 조정이 훨씬 중요하다. 앞으로도 상황을 재가며 친박, 친이, 친노,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 부지런히 접촉할 것이다. 그는 기득권자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재벌이 한국경제를 지탱해야 하고, 강력한 한미일 동맹으로 북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본다. 적대감에 가득 찬 국민들의 눈빛을 바꾸기 위해, 적대의 근원 해소가 아닌 대통합과 대타협을 주장한다. 보수가 그를 선택한 이유다.
대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이 하나 없던 보수 세력에게 반기문은 미국에서 날아 온 선물이다. 그를 간판으로 바꿔달고 보수 세력의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박근혜와 함께 처벌돼도 시원찮을 판에 반기문을 필두로 다시 대선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반기문과 문재인이라는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탄핵 정국이 급격히 대선 정국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데 있다. 어쩌면 보수세력에게는 대선 승리보다 광장의 에너지를 잠재우고 기존 정치권과 사법부가 중심이 된 제도와 절차의 복원이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어느새 뉴스는 반기문과 문재인의 대권 행보가 중심을 차지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특검 수사와 헌재 탄핵 심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기문과 문재인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 먼저 둘 다 박근혜 탄핵 정국을 열어낸 촛불의 흐름과 별 관련이 없다. 반기문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은 지난 대선 이후 수년째 유력한 야권 후보라는 타이틀 하나로 촛불의 꽁무니를 쫓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을 통해서 광장의 에너지나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시민들의 집단의지가 드러난다고 느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선 정국이 다가올수록 박근혜 세력에게는 절대 대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촛불의 왜곡된 절박함이 그에게 투사될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으로 중도를 지향한다. 이미 사드 배치 수용부터 적당한 수준의 재벌 개혁까지 정책적으로 수렴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 방안과 의지가 결여된 문재인의 개혁에 대한 정치적 수사는 반기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난 12월 19일 민주당이 발표한 촛불 혁명 정책 입법과제에는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노동기본권 후퇴, 집회시위의 권리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한국사회 기득권층에게 문재인, 반기문만큼 믿음이 가는 후보도 없을 것이다. 결국 대선은 이들에게 짧은 권력의 과실을 어느 정치 집단이 취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촛불은 박근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민주주의를 주권자인 시민이 직접 나서 만들어가겠다는 권리 선언이자 운동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직접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수백만 명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고, 탄핵 소추를 이뤄낸 힘이었다. 반기문-문재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대선 정국은 바로 이 힘을 철저히 억누르면서 시민들에게 다시금 주권의 위임을 요구하고, 자신들이 잘 대리할 수 있는 인물임을 선전하는 인기투표로 대선을 만들고 있다. 반기문 귀국 행사장에서 울려 퍼진 '나라를 구해주십시오'라는 구호는 광장을 가득 메운 함성의 정반대에 자리한다. 구원자는 없다. 그동안 광장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우리의 권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주권자이기를 포기한 순간 박근혜-최순실은 언제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광장의 촛불이 곳곳으로 퍼져가는 들불이 되도록
조만간 탄핵이 결정된다면 차기 대선이 코앞에 닥치게 된다. 문재인과 반기문이 촛불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들임에도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유다. 시간은 보수 정치권의 편이다. 촛불은 대선 이후를 생각하며 다가올 대선 국면에 대응해야 한다. 지난 3달간의 촛불이 우리의 일상에 정치를 깊숙이 들여왔던 것처럼, 대선은 반기문-문재인의 거짓 이미지 경쟁이 아닌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성과를 이어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촛불과 대선 기간 동안 의제화된 사회적 현안들을 가지고 싸우는 운동과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돌아보면 한국사회에서 보수 정치인들은 언제나 민중들의 기대를 배반해왔다. 1987년 6월 항쟁이 쟁취한 첫 직선제 대선은 노태우 정권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6월 항쟁의 경험은 이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일터에서의 민주주의, 노동자를 기계가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요구는 군부 독재에 맞서 주권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싸웠던 시민들의 투쟁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역사의 한 시기로 흘러갔지만, 그 유산은 수많은 운동과 조직을 통해 면면히 이어졌다. 대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들은 각각 자신들의 대중 조직을 통해 1987년 이후에도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변화를 일구어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3당 합당은 많은 이들을 좌절케 했지만 5.18 특별법을 제정해 광주 학살자들을 처벌하고 1996년 총파업을 벌여 노동개악을 막아냈던 것은 김대중이 아닌 조직된 운동이었다.
2017년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촛불의 열망을 보수 정치인들이 이용하든 말든,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 일터에서 노예가 아닌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한 권리 투쟁, 집회 및 시위가 더 이상의 경찰과 법원의 허가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한국이 동북아의 평화 촉진자가 되기 위한 행동,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는 행동은 몇 달 뒤 들어설 차기 정부가 아닌 바로 우리가 싸우고 조직할 운동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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