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 이석기가 감옥에 왜 있어야 하는데?

일취월장7 2016. 11. 23. 10:54

야당, 계산기 두드리지 마라

[시민정치시평]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2016.11.23 10:47:43


시민 혁명이 시작되다

시민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파국적인 국면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문제는 기껏해야 버려진 태블릿 PC에 담긴 '의혹들'뿐일 수도 있었다. 거의 모든 정권들에서 으레 일어났던 권력형 비리의 일단이 드러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숱한 정치적 악행들에 고통받고 신음하던 민초들은 그 배후에 어처구니없는 권력 사유화가 있었다는 진실 앞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모욕감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다. 단 하루도 박근혜 치하에서는 살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당장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내라고도 소리쳤다. 수천수만 정도가 아니다. 수십만, 아니 백만, 이백만이 촛불을 들었고 또 들 것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한 달을 계속해서 이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타오를 것이다.

신화는 무너졌고 거짓의 장막은 벗겨졌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한 축을 그토록 오래 떠받들고 있던 박정희 신화가 어떤 참담한 폐허를 만들어냈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더불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정경 유착이라는 거대한 부패 사슬의 고리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확인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무엇이 그토록 무겁게 우리네 삶을 짓눌러왔고 왜 자신들이 그토록 처절하게 아파하면서 살아와야 했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주권자임을 새삼 자각한 우리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물으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광장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새로운 민주공화국, 새로운 국가,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끝났다. 설사 박 대통령이 끝까지 하야하기를 거부하고 청와대 안에서 장기 농성을 벌인다 해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중대한 범죄 피의자가 된 그이가 무언가 의미 있는 통치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장은 계속 분노한 시민들로 넘쳐날 것이고, 특검이다 국정 조사다 탄핵이다 하면서 대통령 범죄 행각을 드러내고 그 권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질 것이다. 퇴진 거부는 국정 마비라는 국가적 불행을 의미할 뿐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광장에서든 국회에서든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회피할 수 없는 질문 : 박근혜 이후는?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질문하고도 마주해야 한다. 바로 '박근혜 이후는?'이라는 질문 말이다. 돌이켜 보면 저 멀리 4.19 혁명도 구파와 신파로 갈린 민주당의 분열과 무능이 박정희의 쿠데타를 불러와 좌절해 버렸고, 지금의 6공화국을 낳은 1987년의 6.10 항쟁도 두 야당 지도자의 분열로 군부 독재를 계승한 세력이 정권을 이어가도록 했더랬다. 설사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하거나 탄핵당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환멸의 시간을 갖지 않아도 좋을 것인가? 지금 저 광장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에 대한 희망은 좌절 없이 그 결실을 제대로 맺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자신할 수 없다. 지금은 새누리당 비박계나 <조선일보> 등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의 핵심 일부가 반(反)박근혜 전선에 동참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근본적인 이익과 지향이 침해당한다고 여길 때 언제든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은 지금 더 근본적인 시민 혁명을 막기 위한 모종의 '수동 혁명'이라는 차원에서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퇴진이 현실화되었을 때, 틀림없이 그들은 야권의 분열 상태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또 다시 권력을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에서 보아 온 대로 우리의 야당들은 너무도 어리석고 무능해서, 저들의 수동 혁명 전략에 말려들고 말 가능성이 크다. 기우이기만 할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벌써부터 야권이 삐걱거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는 양자 영수 회담 제의 같은 말도 안 되는 헛발질을 했는데, 아마도 '자기 정치'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광장의 방식과 국회의 방식이 달라서 박근혜 퇴진 운동이라는 민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없다고도 했는데, 틀림없이 얼토당토않은 표 계산한다고 그랬을 것이다. 최근에는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조차 박근혜 대통령이 진짜로 덜컥 하야해 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야권이 제대로 박근혜 이후를 헤쳐 갈 준비가 안 되었다고 여기는 탓이리라.

다행스럽게도 야권은 대선 주자들이 공동의 로드맵에 합의해내는 등 아직까지는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야당들이 새로운 국가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끝까지 따르면서 시민 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낼 수 있을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해서, 야권,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치인들에게 당부 삼아 몇 마디 해두려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맞다. 광장의 방식과 국회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확실히 광장의 시민적 도덕의 문법은 국회에서 작동하는 법과 정치의 문법과는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다름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된다. 광장이 하야를 외치면, 국회는 그 외침을 받아 탄핵 절차를 밟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차이다. 

어쩌면 사실은 바로 그 다름이야말로 당신들의 존재 이유다. 광장의 목소리를 법과 정치의 언어로 제대로 번역해서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의 '사회적 권력'을 제어하고 주권자들의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일 말이다. 당신들은 그런 사회적 권력에 기대고 스스로 그 권력의 일부가 된 새누리당 정치인들과는 그 존재 기반을 다르게 갖고 있다. 당신들은 시민의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적 연대의 확장을 지향하는 '시민적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일뿐이다. 당신들은 바로 그 위임의 대가로 국회의원 배지나 지도자라는 명예와 정치적 자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당신들에겐 결코 그 시민적 권력의 지상 명령을 무시해도 좋을 권리가 없다. 

설마 당신들의 유일한 정치적 목적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는 것이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틀림없이 당신들에게도 절실하게 추구하는 정치적 '도(道)'가 있고 지향하는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 정치적 도나 가치의 이름으로 이 불의하고 병든 사회를 바로 잡는데 얼마간 기여해 보겠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당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정치적 명분이 그저 당신들의 알량한 권력을 위한 장식품일 뿐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당신들은 그 진정성을 증명해 보일 때가 되었다. 

솔직히 우리 시민들은 당신들이 왜 따로 당을 만들어 갈라져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당신들이 말하는 혁신이니 영남 패권주의 거부니 하는 따위의 명분 이면에 숨어 있는 당신들의 날선 욕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시민들은 그저 더 현저한 불의에 맞서라고 그것들에 눈감아 왔을 뿐이다. 당신들이 그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낼 때, 우리 시민들은 처절하게 당신들을 응징할 것이고 그 때 당신들은 역사의 범죄자가 되고 말 것이다. 

잊지 마시라.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다. 시민들은 단순히 박근혜와는 다른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정말 민주공화국다운 민주공화국을 원한다. 지금의 앙시앵레짐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사회적 권력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그 권력의 일부가 되겠다고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드리려 하지 마시라. 그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당신들의 무덤이 있을 뿐이다. 

'이익의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정치'를 하시라. 그리하여 새판을 짜겠다고 나서시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시라.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을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퇴장시키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받아 민주적 정의와 시민적 연대의 토대 위에서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을 열 새로운 희망의 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가지시라.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시라. 

지난 총선 때처럼 야권이 분열해도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억지는 부리지 마시라. 이 중차대한 역사적 국면에서 우리가 그런 무모한 도박을 감행할 여유는 없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모두가 이기고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으시라. 가령 앞으로는 분열을 얼마든지 해도 되게끔 이른바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하겠다고 일치단결하시라. 필요하면 개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헌은 시간도 걸리고 그 자체가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개헌 방침만 확인하고, 차기 대통령이 합의된 절차에 따라 그 작업을 완수하는 사명을 가지고 거기에만 집중해서 임기를 단축하는 그런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런저런 정치 공학적 설계는 아니다. 지난 1987년에도 2012년에도 단지 결선 투표제 같은 것이 없어서 정권을 부패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내 준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당신들 정치인들의 비루한 욕망과 당신들이 지녔거나 앞으로 누리고 싶어하는 권력의 본성에 대한 자기 오해였다. 그리고 문제는 언제나, 마키아벨리의 용어를 빌리자면, 당신들 정치인들의 부족한 '비르투(virtue)'였다. 이것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탁월함이기도 하고 덕성이기도 하며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사자의 용맹'도 '여우의 교활함'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민적 권력에 대한 충성, 시민의 힘에 대한 믿음, 시민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리더십에서 성립한다. 언제나 시민의 편에 서고, 시민을 믿고, 시민과 함께하시라. 명심하시라. 지금은 시민 혁명의 시간임을.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이석기가 감옥에 왜 있어야 하는데?

2015년 이석기 전 의원을 포함한 통진당 당원 10여 명은 내란음모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당 해산을 결정하고 유죄를 확정한 증거는 날조된 녹취록 하나가 전부였다.

장정일 (소설가)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제479호


‘박근혜 퇴진’ 구호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메아리치는 이 시국에 문영심의 <이카로스의 감옥>(도서출판 말, 2016)을 읽는 마음은 착잡하다. 영문 모를 독자에게 이 책의 부제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이라고 말해주면 이심전심을 얻게 될까? 나는 고주망태가 된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묻곤 한다. ‘이석기가 거기(감옥) 왜 있어야 하는데?’ 당신들, 나는 깨어 있다는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고, 2015년 1월22일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을 포함한 통진당 당원 10여 명에게 징역 2년6개월~9년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내란 혐의를 내세워 통진당과 이석기 등에 대해 해산 결정과 유죄를 선고하게 된 유일한 증거는, 2013년 5월12일 경기도당 초청으로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강당에서 이루어진 이석기 의원의 강연 녹취록이다.

ⓒ이지영 그림

언론 보도는 녹취록을 만든 이성윤을 통진당의 내부고발자라고 소개하지만, 그는 2010년 8월부터 국정원으로부터 녹음기를 건네받아 통진당을 불법 사찰한 요원(수사 업무를 위탁받은 자)이다. 국정원은 이석기와 통진당에는 녹취록을 보여주지 않은 채, 그들이 ‘RO (Revolution Organization·혁명조직) 회합’에서 나온 증거라고 강변한 녹취록 전문을 언론에 흘렸다. 근 3년 동안 통진당을 사찰했던 국정원은 그들에게 매수된 녹취 당사자의 추측성 발언 말고는, 통진당 안에 RO라는 비밀 지도부가 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이석기 등의 내란음모 혐의 역시 국정원이 제출한 증거라고는 녹취록이 전부였다.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을 도무지 마련하지 못했던 국정원은 통진당과 이석기를 대한민국 정계에서 영원히 쫓아내기 위해, 자신들이 날조한 녹취록 전문을 언론에 제공했다. “선전 수행”을 “성전(聖戰) 수행”으로 날조해놓은 국정원 녹취록을 단독 입수해서 이틀 연속 게재한 <한국일보> 사회부 법조팀은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국정원으로부터 녹취 원본을 건네받은 검찰은 그보다 많은 450곳을 악의적으로 오녹취하는 신공을 보였다. “전면전이야 전면전!”(검찰 날조)→“전면전은 안 된다.”(실제 발언), “폭력적인 대응”(검찰 날조)→“통일적인 대응”(실제 발언), “실탄이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검찰 날조)→“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실제 발언), “중앙 지휘부가 다 없는 거예요.”(검찰 날조)→“중앙 당직이 다 없는 거예요.”(실제 발언)

<이카로스의 감옥>
문영심 지음
도서출판 말 펴냄

<이카로스의 감옥>에는 변호인단이 검증 작성하고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한 이석기의 강연문 11쪽, 이 의원과 당원들 사이에 이루어진 질의응답 2쪽 반, 이 의원의 마무리 발언 2쪽 반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 강연에서 이석기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이어지는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통진당이 보수 세력의 종북 공세를 지혜롭게 차단하는 방법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안을 화제로 꺼냈다. 두 가지 현안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대외적 선전 활동이었지 무력이나 내란이 아니었다. 이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어느 분반 토론에서 실없이 나온 총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총? 총 가지고 다니지 마십시오. 핵폭탄보다도 중요한 게 사상의 무기입니다.” 핵폭탄보다 중요한 이들의 사상을 살펴보자.

“현재 진보당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의 기치를 든 유일한 정치집단입니다. 어찌 보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자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민주당, 안철수 막론하고 누구나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자주만은 누구도 어떻게 못합니다. 자주라는 가치는 한반도의 복잡한 정세, 다양한 이해관계를 한 번에 단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주의 기치를 든 자주·민주·통일 세력을 제거하려는 것이 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것이 진보당 탄압의 배경입니다.”

이석기가 감옥에 왜 있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와 통일을 이야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진보’ ‘골방 진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째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인가? 통진당을 시대착오적인 진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인권·자유·복지를 우선 가치로 내세우지만, 전시작전권조차 돌려받지 않으려는 비자주적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인권·자유·복지를 돌볼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당시에 진보 세력이 벌였던 한·미 FTA 반대와 이라크전 참전 반대, 그리고 현재도 깨어 있는 많은 민주시민이 거부하고 있는 미군의 사드 배치는 모두 자주의 산물이거나, 필요할 때마다 자주를 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통진당의 지하 지도부라는 RO의 실체를 제시하거나, 내란음모의 증거나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북쪽과 접선한 증거가 없자 검찰은 ‘접선이 필요 없을 만큼 북에 내면화된 증거’라고 우겼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심리를 한 것은 항소심에서 내란선동죄로 바뀐 내란음모죄가 아니라, 국민의 사상과 말이었다.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지 못했던 노무현 정부의 후과가 진보의 싹을 잘랐다. 그때 민주당과 정의당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보다 더 힘없는 아이를 이지메하는 비겁함을 선택했다.

2014년 8월11일, 9년의 징역형을 받은 이석기 전 의원은 만 3년째 0.75평 독방에서 날마다 내란 사건 최장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통진당 해체의 지휘자였던 박근혜는 불법 자금 모금과 제3자 뇌물공여죄로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현재 광화문광장과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도 공범이다!’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지만, 저 구호는 동어반복이다. 제대로 된 구호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이석기를 석방하라!’이다. 대통령의 무능과 측근 비리를 규탄하면서, 어느덧 외부 세력이 되어버린 ‘정치’와는 담을 쌓은 순결한 당신은 결코 저런 구호를 외칠 것 같지 않다. ‘광화문 극장’은 자기개발을 망쳐버린 사람들의 ‘욕망의 포르노’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집어삼킨다. 마치 술자리의 내 친구들이기라도 한 양, 당신께 묻고 싶다. 이석기가 거기 왜 있어야 하는데? 이승만에게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은 52년 만에, 박정희에게 사법살인을 당한 민청학련 관련자 8명은 32년 만에 재심을 받고 무죄가 되었다. 이석기가 나온 자리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는 우주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