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야당은 지금 당장 '탄핵'에 나서라!

일취월장7 2016. 11. 8. 11:08

야당은 지금 당장 '탄핵'에 나서라!

2016.11.07 07:50:11


[서리풀 논평] '탄핵'을 조직해야 한다

             
이 격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돌아가는 일이 많다. 그중에는 묻혀 지나가면 안 될 중요한 것도 들어있다. 예를 들면, 11월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연 공청회 같은 것.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다루는 자리였다. (☞관련 기사 : 기재위, 서비스산업·규제프리존법 놓고 여야 공방)

이런 법의 정체와 노림수는 더 자세히 말할 겨를이 없다. 이 정권이 저지른 '문화 융성'과 '창조 경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으니, 그 허무함은 지난 '서리풀 논평'을 참고하기 바란다. (☞관련 기사 : 짝퉁 '민생'의 부도덕, 주술이 된 서비스 산업과 경제 성장) 

유감스럽지만, 이런 공청회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온갖 규제를 풀고 사회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는 법률 조치, 영리 의료를 촉진할 중요한 의제는 완전히 파묻혔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나라의 운명이 달린 사태 앞에서 이 정도는 사소(?)하다.

이 사태가 걱정이지만, 이번 주 '서리풀 논평'도 일상을 다루기는 어렵겠다. 아니, 모든 이가 대통령을 말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 새로운 일상, 정치적 일상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니 더 절박하다. 다시 공공성과 민주주의라는 (묵묵히 해야 하는)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일상이 아닌 일상을 말해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모든 이의 관심은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제도 권력을 해체 또는 변경하는 일에 모여 있다. 돌이킬 수 없다. 현 정권은 시간이 지나가면, 지지율이 회복되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권의 정치적 권력은 회복하기 어렵다.

대중의 집단적 정치 지성이 그렇다. 주말에 수십만 명의 인파가 광화문을 메웠다. 다른 지역 곳곳에서도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수도 없었다. 모인 이들은 한 목소리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탄핵되었고, 정권은 정지 상태다. 

그 정도로도 정권이 정당하다고 믿는다면, 여론 조사를 참고하시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5%는 '민주공화국'의 역사에서 처음이다. 어떤 지역과 일부 연령층에서는 여론 조사에서 가능하지 않은 응답, 지지도 0%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더 의견이 일치되어야 국민의 '여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 정권이 권력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적 권력은 크게 약해졌지만, 형식적인 제도 권력을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다. 총리와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장관과 각 부처를 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일본과 '군사 정보 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바로 제도 권력의 힘이다. (☞관련 기사 : 한일 군사 정보 협정 관여 前외교관 "시간표 정해놓고 해선 안 돼") 

박근혜 정권은 바로 이 제도 권력을 끝까지 부여잡고 정치적 권력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방법은 아마도 제도 권력의 핵심인 검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일 터. 누구나 아는 시나리오에 따라 검찰 수사가 면죄부를 주면, 정치권력까지 (어느 정도까지는) 회복할지 모른다.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대통령을 그만 두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요컨대 정권은 형식적 제도 권력을 발판으로 삼아 정치권력을 회복하는 전형적인 경로를 밟을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물리력'이 아닌 한 권력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점. 일부 여론과 구호, 소셜 미디어의 댓글만으로 권력은 '하야'하거나 '퇴진'하지 않는다. 끝까지 버틸 것이 명약관화, 자칫 교착 상태가 지속할 수도 있다.

새로운 권력 균형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으로는 시민의 직접 행동 이외에는 답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바, 관건은 힘의 크기다. 시민이 가진 힘이 정치권력을 넘어 제도 권력을 압도할 정도가 아니면, 그들은 버틸 것이다.

예상컨대, 오는 주말 집회는 지난 주말보다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여론을 읽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운동에 버금가는 규모가 아니면, 또는 그보다 더 커도, 그들은 (지금까지의 비민주적 행태로 보면) 눈도 끔쩍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치권력, 특히 현 정권은 조직되지 않은 대중의 무력함을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중은 곧 지칠 것이고 고단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윤리와 공적 가치, 심지어는 정치 공동체의 앞날도 그들의 일차 관심사가 아닌 바에야, 권력을 경쟁해서 이길 수밖에 없다.

더 큰 힘으로, 새로운 힘으로, 정치권력과 제도 권력에 직접 들이닥치는 방법이 유일하다. 사태가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민주적 요구 그 최소한이 평화롭게 수용되기 위해서도, 시민 권력은 모이고 표출되며 다른 권력으로 진화하여 이겨내야 한다. 그런 순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도 다른 공간과 통로가 더 필요하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소추가 바로 그 새로운 공간과 통로라고 주장한다. 오늘 시민이 실천하는 '거리 민주주의'는 국가권력 내부의 정치적 공간(탄핵소추)과 결합해야 살아나고 자라날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너지 또는 시민 권력의 부분적 제도화라고 부르자.

탄핵소추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제도 정당과 국회의원들을 정치화하여 시민(또는 유권자) 곁으로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발의와 의결 과정에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며, 시민은 다양한 경로로(예를 들어 지역 정치, 항의나 촉구, 공식/비공식 압력) 개입하고 압박할 수 있다. 생각하면, 특별한 과정도 유별난 실천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의 민주주의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 

시작은 오래 머뭇거리는 제도 정치를 압박하는 것이다. 거리 민주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여당과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 탄핵소추를 조직해야 한다.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책임 총리인지를 가리느라 시간을 보낼 일이 아니라, 탄핵소추에 나서라고 요구하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의 힘, 시민 권력이 아무런 성과 없이 제도 정치로 흡수되는 것을 걱정한다. 기껏해야 정당끼리 적당히 타협해 총리를 정하고 국정 질서를 회복했다고 자위할까 두렵다. 탄핵소추는 시민이 제도 정치를 감시하고 긴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물론, 탄핵소추에만 의존할 수 없다. 제도화된 국가권력이 시민의 모든 열망을 빨아들이도록 두어서는 곤란하다.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틈과 모순, 긴장은 여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따로 또 같이 합해서 더 넓게 가야 한다. 

그 때문에라도 한 가지 더, 시민의 권력을 더 크게 만들어내야 한다. 힘과 그것을 드러내는 것 자체로 물리적이며, 제도 정치와 국가권력을 움직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미 만발하고 만개한 집회와 집단적 의사 표시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보태서, 우리는 또 다른 실천 방법으로 '정치 총파업'을 제안하고자 한다. 

당장은 아니다. 여론이 무력해지면, 그리고 제도 정치가 시민을 배제하면, 더 강한 직접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전국적인 정치 총파업은 직접 민주주의를 표현하고 실천하는 새로운 방법이자 정치적 공간이 될 것이다. 

비정상이 일상을 지배할 때, 실무와 기술로는 가치를 성취할 수 없을 때, 학교와 직장, 지역이 '본업'을 쉬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직접 가 닿는 동시에 제도 정치를 압박하는 힘. 왜 불가능한가?          


문재인과 야당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마라
[김민웅의 인문정신] 우리가 헌법이다!

시민혁명은 정치협상 하지 않는다

지난 5일 서울의 광화문을 가득 채운 국민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박근혜는 물러나라'였습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은 더 이상 질문이 되지 않았습니다. '탄핵이요, 2선 후퇴요, 책임총리요, 분권제 대통령이요, 중립내각이요' 따위는 국민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게 어떤 방식이든 '박근혜'가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한, 나라는 계속 망가질 뿐이라는 것을 천하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명백한 것은 '박근혜 이후'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박근혜는 국민의 마음속에서 이미 퇴출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사퇴 발표와 이를 이행하는 절차뿐입니다. 들 사람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는 '하야(下野)'라는 품격 있고 우아한 말도 그에게는 분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국정 유린의 중죄로 당장 체포당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다행인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수를 쓰면,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국민은 야당과 야당 지도자가 미덥지 못해 다른 한편에서 박근혜에게 갖는 것과는 다른 우려와 분노를 키우고 있습니다. 정당은 국민을 대신하는 수권 조직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퇴진 이후를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 쩔쩔매고 좌고우면하고,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어 정치 협상을 시도하고, 정세 변화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국민이 '박근혜 퇴진' 이후에 생길 수도 있는 복잡한 상황을 몰라서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책임 있는 정당과 신중한 지도자는 민심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한다고, 그대로 주장할 수 없다는 가당치 않은 논리를 세웁니다. 그 말은 국민을 멸시하는 말입니다. '박근혜 퇴진'을 노도(怒濤)와 같이 요구하는 국민들이 그렇다면 책임감도 없고 신중하지도 못하다는 말인가요? 지난 역사를 통해 국민들은 지금 확고한 결심을 했습니다. "이런 식의 국정문란과 민주주의 파괴는 더는 용납할 수 없다. 그다음에 올 일을 우리는 능히 감당해나가겠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역량이 충분히 있다. 이건 시민 혁명이다"라고 말입니다.

시민 혁명은 역사적으로 해체해야 할 상대와 정치 협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들을 지배할 뿐입니다. 이것이 민주 공화국의 질서입니다.  


야당과 문재인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박근혜 퇴진을 당론으로 세우지 못한 제1야당 민주당과 국민의당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민심의 현장과 결합을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대선후보 선두 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가 저 자리에 단 하루라도 더 있어야 할 이유가 한 개라도 있다면, 즉시 답해주길 바랍니다. 있나요? 아니죠? 퇴진까지는 아니니까 '국정에서 손 떼라느니, 2선 후퇴요, 책임총리요, 거국중립내각이요, 영수회담이요' 하는 기만책을 주장하거나 용납하는 순간, 역사의 죄인은 따로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둡니다. 이런 주장은 모두 국정 유린 중범죄자에게 '조건이 맞으면 일정하게 힘을 빼겠지만, 자리 보존 쪽으로 봐주겠다'는 논리 아닌가요? 그래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요?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건 아니겠죠? 더 보고 말고 할 게 아직 남아 있나요? 게다가 이 시국에 '책임총리법안'을 낸 정신 나간 자들은 대체 누구며, 또 뭔가요? 지금 뭣이 중헌데?

'박근혜 파면'이 시작입니다. 뒷일을 감당하는 건 '박근혜 퇴진' 즉시 폭포수처럼 터져 나올 국민적 지혜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민의 힘을 가볍게 보거나, 자신들보다 식견이 부족하다거나, 신중하지 못하다고 보거나 또는 위태롭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죠?

국민의 힘을 믿고 가는 지도자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6.10 민주항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부디 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떤 독재와 반민주적 현실에 굴복한 적이 없는 국민입니다.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거리의 시민을 보면서 3.1 독립운동의 기세를 떠올렸습니다. 모두가 떨쳐 일어선 것입니다. 그 힘이 우리의 역사를 버텨왔고, 헌법을 만들었으며, 민주주의의 성장을 일궜습니다. 정치가 정치인만의 전유물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국민의 힘을 믿고 가는 지도자와 국민을 믿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를 계산하는 지도자, 이 두 유형의 차이는 중대합니다. 국민의 힘을 믿고 가는 지도자는 새로운 정세 창출에 기여합니다. 국민을 믿지 못하는 지도자는 전리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기회주의입니다.

국민은 위기의 시대에 참 지도자가 누구인지 주목합니다. 지도자만이 아니라 세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것은 바로 이 뜻입니다. 혁명의 시대는 쭉정이와 진짜를 가려냅니다.  

민심을 하늘처럼 여기고, 그 민심과 하나 되어 앞으로 가는 이가 미래를 이끌 것입니다. '민심은 알겠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그와 함께하지 않은 이는 민심의 요구를 '사실은 위험하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 내부에 정작 위험한 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새로운 시대로 가는 격랑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거래로 민주주의의 적을 기사회생시켜 민심의 배를 좌초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또 다른 우려와 분노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 일을 벌인 자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말 겁니다.  

우리가 헌법이다 

결국 더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 합니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은 침몰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다음 대선에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간의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나요? 남은 것은 정권을 야당에게 이양하는 일에 협조하는 정도입니다. 과도정부로, 거국내각에 대한 발언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국중립내각의 '중립'이라는 글자는 지워져야 합니다.  

제정신을 차린 국민과 싸워 이길 자는 없습니다. 민심을 적당히 이용하려는 자들도 망해야 합니다. 정세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슬쩍 올라타 큰 소리를 내려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퇴진'으로 새로운 역사를 선포한 이 시대는 정치와 경제, 교육과 문화, 남북관계와 외교 전반에 걸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틀을 짜나갈 겁니다. 정당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 진정한 민주 정부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는 가슴 뜨거운 시절을 만나게 될 겁니다.  

11월 12일까지 민심은 더 강렬하게 타올라 '박근혜 퇴진을' 앞당겨 확정해야 합니다. 11월 12일은 그걸 확인하는 거대한 축제의 소용돌이가 되기를 뜨겁게 갈망합니다. 새로운 민주 정부 수립, 우리는 '박근혜 퇴진' 후 60일 안에 그걸 충분히 해낼 능력 있는 국민입니다.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하다고요? 그럼 100일 정도로 해볼까요? 우리가 정하면, 그게 헌법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오니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사사로운 애국심’

‘통치의 공공성’은 대통령이 갖춰야 할 핵심 덕목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투철한 국가관’으로 대체했다. 이는 통치자에게 무제한의 권한을 보장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공공성과는 정반대 작동 원리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6년 11월 07일 월요일 제477호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권의 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이 갖춰야 할 핵심 덕목으로 ‘공공성’을 지목한다. 2011년에 낸 책 <대통령의 자격>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국가의 공공성을 훼손한 것을 꼽았다. 2012년 대선 직후에 <시사IN>은 윤 전 장관을 인터뷰하면서 “박근혜 당선자의 공공성은 어떨 것이라 보는가?”라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엄격한 공공의식이나 절제된 언행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런데 이게 근대적·민주적 공공성이라기보다는 국가 전체를 가족 재산으로 봐서 나오는 거 아니냐, 이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공공성이 맞느냐, 이건 위험하다.”

이 노정객의 “위험하다”라는 예언은 집권 4년 만에 더할 나위 없는 방식으로 현실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를 거의 통치 불능 상태에 빠트린 최순실 게이트는 무엇보다도 공공성의 파산이었다.

ⓒ연합뉴스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해명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최씨를 두둔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국가관이 투철하고 사사롭지 않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녀의 전임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대비되어 박 대통령의 공적인 태도는 더 돋보였다. 여론은 그녀가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이 역시 국가관이 투철하다는 이미지 덕이 컸다. 그러나 임기 4년 만에 이 이미지는 크게 위태로워졌다. 통치를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로 보는 지도자는 사익 추구를 위해서라도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공에서 사로 자원을 이전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세습받은 가산(家産)으로 보는 통치자는 애초에 공과 사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공사 구분 자체가 흐려지기 때문에, 통치는 한없이 사사로워진다. 박 대통령이 가졌다는 ‘투철한 국가관’이란 “근대적 공공성이라기보다는 국가 전체를 가족 재산으로 봐서 나오는” 태도라는 윤여준 전 장관의 관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근대적 공공성이란 무엇을 뜻할까?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존 듀이는 <공공성과 그 문제들>에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이렇게 구분했다. “인간 활동의 결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직접적인 교류 당사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별하는 근원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듀이에게 국가란 이 ‘공적인 것’을 집행하기 위한 “조직화된 공공성”이다.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은 결정 당사자들을 훌쩍 뛰어넘는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므로 ‘공적인 것’이다. 국가의 결정 때문에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공성이 훼손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과)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결정이란 거의 필연으로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그 결정이 공동선에 입각한 것이라고 입증해 손해 본 이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적법 절차를 따르고, 논의 과정을 공개하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 공공성은 그럴 때 충족된다.”

국가는 인민이 권력을 위임한 기구다. 그렇기에 제 힘을 휘두르는 과정을 납득시켜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투명한 정보공개, 공개 토론, 적법 절차다. 통치의 공공성을 구성하는 핵심 기둥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투철한 국가관’을 자랑하는 통치자는 보통 반대로 움직인다. 그 통치자에게는, 자신의 결정은 곧 국가를 위한 것이며, 따라서 곧바로 ‘공적인 것’이 된다. 정보공개도 적법 절차도 생략 가능하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2015년 퇴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애국심 그 자체다. 나라 생각밖에 없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묘사는 박근혜 정부 들어 참모들로부터 유난히 자주 듣는다. ‘투철한 국가관’ 신화는 통치자에게 무제한의 권한을 보장하는 논리로 이용된다. ‘애국심 그 자체’가 내린 결정이니 따져볼 것도 없이 공공성을 충족한다고 간주된다. 이것은 통치자를 제약하는 근대적 공공성과는 정반대 작동 원리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굵직한 판단이 공식 의사결정 절차와 공개 토론을 통해 내려진 사례를 찾기 힘들어졌다.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순간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백화점에서 양복을 수선하고 있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잠정 중단’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통일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한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은 공단에서 사업을 하던 기업과 노동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피해 기업들이 주장하는 추산 피해액은 약 1조5000억원이다. 이 자체는 공공성의 훼손이 아니다. 이 의사결정을 납득하게 만드는 과정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대목이야말로 공공성을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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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최순실’을 대입하면 모든 것이 납득되니

최순실 게이트는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대목에서는 특별하지 않다. 비선 실세들은 거의 모든 정권에서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다른 정권의 사례들이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사사롭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사실은 박 대통령도 인정했다. 최씨가 만진 연설문 중에는 박근혜 정부의 초기 대북정책을 규정한 ‘드레스덴 선언’도 있다. JTBC의 추가 보도로, 최씨가 외교안보상 1급 비밀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의견을 냈다는 의혹도 무더기로 제기된 상태다. TV조선은 최씨가 문화체육부 예산안 편성에도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의혹이 제기된 범위가 대통령의 패션부터 메시지, 외교안보, 인사, 예산 등 사실상 국정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다.

박원호 교수는 과거 비선 논란과 차이를 이렇게 짚었다. “과거 정권의 비선은 어쨌거나 대통령의 조언자이고 최종 판단은 결국 대통령이 한다는 것은 의심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은 유권자의 정서적 체감이 다르다. 그간 잘 이해가 되지 않던 통치 행태가 여럿 누적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최순실’을 대입해보니 하나같이 납득이 되는 거다. ‘통일 대박’이나 ‘혼이 비정상’과 같은 낯선 메시지도 그렇고, 개성공단이나 사드 관련 의사결정도 그렇고. 비선이 실제로 개입했든 아니든 간에, 유권자들은 ‘아, 그 장면이 최순실이었구나’ 하고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것 같다.” 최순실은 그동안 시민이 납득하기 어려워했던 여러 장면들에 ‘맞춤형 해답’을 제시하면서, 조언자 수준이 아니라 통치를 통째로 외주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통치의 공공성은 ‘투철한 국가관’으로 대체되면서 크게 후퇴했다. 비선의 국정 개입 의혹은 최순실 본인이 최종 국정 운영자라는 인상을 여론에 줄 정도로 폭 넓고 심도 있게 제기되었다. 거기에 최순실 일가의 독특한 종교적 성향이 겹치면서, ‘무당 통치’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비선이 공적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한 합리적 조언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무너뜨린다. 모든 장면에서 공공성이 후퇴하고 일련의 사사로움이 조합된 끝에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다.

국가 지도자가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만큼 중대한 결격사유도 흔치 않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공식 시스템보다는 비선 통치를 선호하는 것은 40년에 걸쳐 일관된 성향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의 특수관계는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즉, 박 대통령이 이번과 같은 위험요소를 가진 지도자라는 사실은, 가까이서 보좌한 정치인이라면 2012년에도 2007년에도 예측 가능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 주요 정치인이 공동 책임을 요구받는 이유다. 유승민 의원, 김무성 의원 등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도 앞으로 관련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역대 어느 정권과 비교해보아도, 최순실 게이트의 폭발력은 이례적이다. 공공성의 후퇴와 비선의 약진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공적인 것’의 빈 공간이 유례없이 크게 발생했다. 그러나 동시에, 비선 논란 자체는 어느 정권에서나 반복되어온 고질병이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최순실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6공화국 내내 반복된 현상이라는 의미다.

ⓒ연합뉴스
김무성 의원(왼쪽)과 유승민 의원(오른쪽) 등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도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선은 왜 반복되는가’를 물어야 할 때


무슨 뜻일까.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지금은 오히려 ‘비선은 왜 반복되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왜 청와대가 모든 의사결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까. 왜 대통령은 내각이 아니라 비서실을 통해 밀실 통치를 할까. 왜 대통령은 필요 이상으로 비밀주의에 싸여 있을까. 결국 대통령이 공적 토론·정보공개·적법 절차 원리를 따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정치세력이라면 사건의 선정성에 편승하기보다는, 대통령이 어떻게 공공성 원리를 따르도록 할지를 놓고 대안으로 경쟁해야 한다. 수권을 준비하는 정당은 ‘우리가 집권하면 이런 방식으로 비선 위험을 제어하겠다’라는 안을 내놓고 그걸로 평가받을 때다. 그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충격이 가라앉은 후에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정치 세력의 책무다.”

2012년 대선 직후 <시사IN>과 윤여준 전 장관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박근혜 당선자가 공적 체계보다는 비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은 새누리당 안에서도 나옵니다.” 노정객의 답은 지금 더 의미심장하다. “측근 중에 정말 유능한 사람이 있어서 꼭 써야 하겠다면 비선으로 두지 말아야 합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히면 되잖아요? 못 그럴 사람이면, 힘 실어주지 말라는 거고. 비선 중심으로 청와대를 운영하면, 아이고 큰일 나죠.”



야 3당,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하라

[시론] 진실 규명 주도권 잡아야 보수 정권 연장 음모 끊는다
   
2016.11.08 10:16:42


지금 한국 사회는 중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모두 밝혀졌다는 착각. 그리하여 이제 남은 것은 정국 수습뿐이라는 착각이 그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진실 규명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에 의해서. 이는 마치 자기 답안지를 자신이 채점하는 것과 같다. 검찰이 지난 44개월간 박근혜 등이 저지른 국기 문란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진실 규명을 외면한 듯 보인다. '대통령 2선 후퇴'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등 부차적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러한 착각이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의 전면적 자기 쇄신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1979년의 10.26이 신군부의 집권으로 귀결된 것처럼 2016년의 10.26이 보수세력의 재집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 야당 세력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해 지난 44개월간 박근혜 등이 저지른 헌정 유린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현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 특검에 의해 보수세력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법적, 정치적 구속력을 갖는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것이다. 

"더 이상의 폭로나 증거가 필요할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았다."

<한겨레> 2일 자 '김동춘 칼럼'의 첫 구절이다. 지난 5일 '박근혜 규탄 집회'에 나온 시민들의 생각이 아마 이럴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 실정(失政)의 모든 것을 알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를 끌어내리는 것뿐'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즉 박근혜에 비판적인 시민들의 생각일 뿐이다. 보수세력도 그러할까? 나아가 박근혜의 실정을 알았다 해서 다음번 집권을 스스로 포기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수세력은 '그들'의 진실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적으로 구성되고 사회적으로 공인됐을 때만 비로소 진실일 수 있다. 

(☞ [김동춘 칼럼] 박근혜 청와대, 하루도 더는 안된다) 

2년 반 전, 세월호 사태를 돌아보자.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달라졌는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리고 무산시켰다. 나아가 세월호 사건은 '애들이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 당한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만의 '진실'로 간직하고 있다. 대통령의 '7시간 행방불명'도 밝혀지지 않았다. 해수부 관피아와 유병언의 유착과 부패 등은 '비판적 시민들의 진실'로만 남았다. 권력자와 보수세력 상당수는 아직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는 '애들이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 당한 것'이 사건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도자의 무능, 관료와 기업의 부패 등을 사고의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진실'과 '권력자의 진실'이 다르다. 따라서 권력자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세월호 사태의 교훈이다. 권력자로 하여금 '시민들의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했을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JTBC와 <한겨레> 등의 활약으로 진실의 상당 부분이 드러났다. 그러나 진상의 윤곽일 뿐이다. 총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에 불과하다. 예컨대 최순실이 재벌들을 '삥 뜯었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 배치 등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 또는 인사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최순실의 개입 정도, 청와대 내 실세라는 우병우와 최순실의 관계 등은 아직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나아가 재벌이 일방적으로 '삥을 뜯긴' 피해자인지, 헌금의 대가로 훨씬 더 큰 반대급부를 받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례로 이중근 부영 회장은 안종범과의 대화에서 노골적으로 세무조사 중지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다. 또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미르재단 모금이 완료된 다음날(2015년 10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201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에서 예산과는 별 관련이 없는 법들의 조속 처리를 주문했다. 첫째 4개 경제 활성화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국제의료지원법), 둘째 5대 노동개혁법, 셋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그것이다. 올해 1월 13일 즉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다음 날에는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회에 또다시 주문했다. 첫째, 노동개혁법 처리, 둘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법 및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 처리 등이 그것이다. 즉 헌금을 대가로 재벌들의 소원 수리를 해준 것이다. 

(☞ 재벌이 입금하자, 박근혜-최순실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런 언론 보도는 엄밀하게 말해 의혹 제기일 뿐이다. 대통령이 2차례에 걸쳐 사과했다는 점에서 진실임이 입증됐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구속력이 있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결국 법적 권한을 갖는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 지금 그 역할을 검찰이 하고 있다. 그리고 수사 상황은 최재경 신임 청와대 민정 수석에게 보고되고 있을 것이다.  

과연 검찰은 실체적 진실, 진실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까? 검찰의 수사 결과를 이번 사태에 대한 전체적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난 수십년 간의 검찰 행태로 미루어 그 대답은 '노(No)'다.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라며 전임 대통령도 처벌하지 못했던 검찰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권력을 칠 수 있을까?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안종범에 대해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한 전임 특수통 검사에 따르면 직권남용은 법원에서 유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무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는 '뇌물 수뢰 후 부정 처사'로 기소하는 게 맞다고 지적한다.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우병우는 수사 개시 75일, 민정 수석 사임 후 1주일 만에야 검찰에 '황제 출두'했다. 팔짱을 낀 채 여유만만한 모습의 우병우는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 한겨레> 5일 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우병우는 최재경을 검찰총장 후보로 밀었다고 한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김수남 대검 차장이 0순위였는데 우병우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해 최재경 변호사도 후보로 올라갔다"고 전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최재경 검찰총장 지명을 막아서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세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재경 민정수석' 카드를 오래 전부터 구상한 사람은 이명재 청와대 민정특보다. 경북 영주 출신인 이 특보는 검찰의 대표적인 티케이 원로다. 최재경은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경선 1주일 전에는 이명박 후보에 불리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가 그해 12월 대선 2주일 전에는 BBK 주가조작 사건 등 이명박 후보의 모든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다. 한마디로 정치적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대표적인 정치검사다.  

(☞ '전설의 특수통'은 '의뢰인 박근혜'를 구할 수 있을까)

유시민은 지난 3일 방영된 JTBC <썰전>에서 검찰이 당연히 '박근혜 게이트'를 축소·은폐하려 하겠지만, 시민들의 제보와 그동안 JTBC, 한겨레, 경향, 조선 등 언론들이 확보해 놓은 사실들 때문에 쉽사리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 및 기소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 사태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특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려다 낙마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최근 검찰의 수사에 회의적 전망을 내놓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정신 나간 두 여인의 개인적 일탈이나 비리가 아니다. 지난 44개월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거대한 부패의 덩어리다. 여기에는 새누리당-검찰-보수언론-재벌이 공범으로 가세했다. 채동욱의 돌연한 낙마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그 공범 중 하나인 검찰에게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해 독립적 특검으로 하여금 사태의 전모를, 있는 그대로 소상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적어도 30명 이상의 양심적 법률가들을 임명해 2년 이상 별도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현재의 특검으로는 안 된다. 3년 8개월간 자행된 부정부패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별도 특검, 즉 '박근혜 특검법'이 반드시 제정, 시행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9.11사태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2년 10개월이 걸렸다. 60일, 90일 시한의 특검으로는 결코 사태의 전모를 밝혀낼 수 없다. 우리 국민 모두가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만든 이 세기적, 세계적 스캔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한국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하여 권력자도, 보수 집권 세력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태의 '사회적 진실'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바로 한국이 거듭 태어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진실' 없이는 '쇄신'도 '개혁'도 있을 수 없다.

박명림은 지난 4일 자 <중앙일보> 시평에서 박근혜 정부 4년을 '사설 정부'로 규정하면서 "국가를 위해 한국의 보수는 상당 기간 집권하면 안 된다. 민주화 이후 보수는 최초 10년 집권의 결과 국가를 환란의 나락에 빠뜨렸다. 두 번째 10년 집권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민생 파탄에다 국기 붕괴와 헌정 파괴까지 초래했다. 한국 보수의 실정과 악정은 당분간 치유 가능성이 없다. 집권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한국의 보수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스스로 집권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질까? 나는 이것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보수가 이 나라를 어떻게 말아먹었는지가 총체적으로 규명되고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않는 한, 보수의 정권 연장 음모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 [중앙시평] 박근혜 최초·최대의 애국과 박근혜 이후) 

진실 규명 작업은 정국 수습과는 별도로 일관되고 집요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리하여 보수세력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왔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야당과 시민 세력이 진실 규명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 2선 후퇴'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등은 그 주도권이 청와대에 있다. 청와대가 안 들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박근혜 특검법'에 의한 진실 규명은 지금이라도 야 3당이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국회 과반 의석(165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야당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에 대해 별도 특검을 받으라고 요구할 때가 아니다. 당장 '박근혜 특검법'을 발의해 이를 통과시켜야 한다. '책임총리법'이니 '최순실 일가 재산환수법' 같은 부수적 법안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오는 12일 민중총궐기가 지나면 청와대 등 보수 집권 세력은 물타기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성난 민심에 떠밀려 뭔가 개혁을 할 것처럼 코스프레를 했지만, 12일 이후에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 사회 쇄신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과연 민주당은 제대로 된 '박근혜 특검법'을 제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구 여고생 "본질은 박근혜, 최순실은 게이트일 뿐"

촛불 문화제 발언 화제 "이럴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어"
성현석 기자              
대구 여고생 "본질은 박근혜, 최순실은 게이트일 뿐"
성현석 기자

       


지난 5일 대구 시내 228공원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고교생의 발언이 폭발적인 화제다.  대구 송현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 학생은 이날 시민 4000여 명이 참가한 문화제 연단에 서서 7분여 동안 발언했다. 원고도 없었는데, 조리 있고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학생은 “저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평소 같았다면 역사책을 읽으며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살아있는 역사책' 속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 씨에게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 외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반도 사드배치, 위안부 합의,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과 대처로 국민들을 농락해왔으며 증세없는 복지라는 아주 역설적인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직에 당선됐을 때에도 그 이후에도 담뱃세나 간접세 인상 등으로 우리 서민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치와 경제를 위해 하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여러분, 그녀가 있을 때에도 국정이 제대로 돌아간 적이 있기는 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복지는 물거품이 되었고 국민들의 혈세는 복채처럼 쓰였습니다"라며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현실을 보며 이럴려고 공부했나. 자괴감도 들고 괴로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 대통령, 아니 박근혜 씨야 말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본질이며 최순실 씨는 이 모든 사건의 포문을 여는 게이트(출입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꼭두각시 공주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개·돼지가 아닙니다"라며, "(박 대통령에게) 앞서 언급한 모든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촉구하는 바"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신 걸 보니 제가 혼자는 아닌 것 같아서 굉장히 힘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박 대통령, 사실 그녀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 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이 세상 어느 나라 어느 사전에도 나라를 무당에게 맡기고 꼭두각시 노릇을 한 지도자를 칭한 호칭이 없어서 아직은 부득이하게 대통령이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박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최순실 씨와 함께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를 저버린 죄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굉장히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평소 같았다면 저는 역사책을 읽으며 다가올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허나 저는 이 부당하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에 저는 오늘 살아있는 역사책 속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저를 위해 피땀 흘려 일하시는 그러나 사회로부터 개돼지, 흙수저로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저희 부모님을 위해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수험생 언니를 위해, 또 아직은 어려서 뭘 잘 모르는 동생을 보면서 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과 모레를 주기 위해서 저는 무언가 해야만 했습니다. 

현재 박 대통령은, 그리고 대한민국 대부분의 언론은 박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 씨에게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 외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반도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정책과 대처로 국민들을 농락해왔으며 '증세없는 복지'라는 아주 역설적인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직에 당선됐을 때에도 그 이후에도 담뱃세나 간접세 인상 등으로 우리 서민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치와 경제를 위해 하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여러분, 그녀가 있을 때에도 국정이 제대로 돌아간 적이 있기는 했습니까? 

대체 당신이 만들고 싶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당신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약속했던 복지는 물거품이 되었고 국민들의 혈세는 복채처럼 쓰였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현실을 보며 이럴려고 공부했나. 자괴감도 들고 괴로울 뿐입니다.

박 대통령, 아니 박근혜씨야 말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본질이며 최순실 씨는 이 모든 사건의 포문을 여는 게이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 박 대통령이 대통령, 즉 국민을 대표자라는 권력과 직위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권력이란 그 힘의 크기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 또한 커지는 법입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국민, 우리 주권자가 선사한 권력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발하고 제멋대로 국민 주권자의 허락 없이 이를 남용하여 왔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권력을 남용했다면 이제는 남용한 권력에 대한 책임을 질 차례입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 개국 57년 11월 5일 다음과 같은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하나. 박 대통령은 연설문 및 청와대 홍보자료를 무단으로 배포 수정하여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모든 최순실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줍잖은 해명이 아닌 진실입니다. 우리 국민, 주권자는 이를 알아야할 이유가 있고 이를 알 수 있는 권리 또한 있습니다. 

하나. 박 대통령은 본인을 포함해서 국민을 농락하고 유린한 자들에 한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검찰 수사를 지금 즉각 진행해 주십시오. 정부도 국회도 믿을 수 없는 이 마당에 검찰의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아주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를 위해 엄중히 처벌해 주십시오. 우리는 더 이상 이 의미없는 진실 게임을 계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 박 대통령은 감성팔이식의 쇼를 중단하고 진정성 있는 책임과 사과에 응답하십시오. 우리는 꼭두각시 공주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당신의 100초, 또는 9분 20초짜리의 정성스런 헛소리가 아닌 앞서 언급한 모든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물론 당신의 지지율이 5%이고 10~20대 지지자가 100명 중 1명인 이 판국에서 당신의 사과는 먼저 당신이 하야했을 때 그 빛을 진정히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두렵습니다. 오늘의 우리 이 민주를 향한 노력이, 이 사건의 본질이 언제나 그랬듯이 다른 사건들처럼 점차 희미해지고 변질돼 잊혀질까봐 그래서 이 제정일치 사회속에 몸담아야 할까봐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이런 사회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꿈꿀 수 있는 내일을 위해 부디 오늘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56년전 1960년 2월 28일. 바로 이 땅에서 대구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을 규탄하여 민주주의를 지켰듯이 바로 오늘 또다시 우리 대구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일궈내야할 때입니다. 

존경하는 대구 시민 여러분. 이게 마지막이 아닌 시작입니다. 이 길이 끝이 어디일지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함께 손을 잡고 꼭 그 끝을 봅시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민주주의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