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한국, 이대로 가면 일본처럼 망한다 - 정의로운 '구조 조정'은 가능한가?

일취월장7 2016. 6. 21. 10:25

한국, 이대로 가면 일본처럼 망한다

2016.06.21 09:30:22


[복지국가SOCIETY] 일본의 경제 불황과 산업 구조 조정의 교훈  

             
(이 글은 오가사와라 씨와 한 대담을 정리한 글이다. 오가사와라 씨는 한국에서 몇 년간 유학을 하였고, 지금은 교토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복지 국가의 관점에서 한국의 사례와 비교하여 일본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오가사와라 씨와 한국에 앞서 장기적인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산업 구조 조정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의 경험을 통해 바람직한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의 근본적인 원인 

현재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세계적인 불경기와 중국의 발전에 따른 국제적 분업 체계의 변화 등으로 산업 구조 조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난 54년간 장기 집권한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대기업, 언론, 보수적인 학계, 법조계, 금융권 등 기득권 집단의 이기주의가 원활한 산업 구조 조정을 막았다. 그 결과 긍정적인 경제 구조의 개혁과 새로운 혁신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장기적인 불황의 주요 요인이 됐다.

일본 경제 장기 불황의 근본 원인은 내수 축소에 있다. 비정규직 고용 확대와 임금 정체는 국민 가처분 소득을 실질적으로 감소시켰다. 2000년대 초반 최장의 불황이라고 하는 고이즈미(小泉) 정권 동안에도 대기업은 미증유의 수익을 올리면서 내부 유보를 증대했고 주식 배당을 늘렸지만, 임금은 정체됐다. 이 기간 동안 일본 정부는 소비세 증세, 법인세 감세, 소득세의 누진성 완화, 중산층의 실질적 세금 부담 증대 등 재정 악화에 역행하는 정책을 시종 일관 추진했다. 증세 정책은 세수 확보뿐만 아니라, 조세를 통한 적극적인 2차 분배와 각종 복지 사업 등 정부의 역할 강화를 의미하는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기업의 성장과 국가 경제의 장기적 발전 간의 상관관계가 약해졌고, 국가에 의한 기업의 조절 관계도 약해졌다. 일본의 경우 상장 기업 주식의 약 30%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일본도 기업의 이익과 발전이 국민 경제의 활성화나 국가의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한국과 유사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주요 기업들은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이 높아 '한국의 기업'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의 이익이 자연스럽게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제 외국인이 주식의 반 이상을 소유하는 기업의 경우, 해당 기업의 이익은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유도하지 않고 고용을 적극적으로 창출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돈벌이가 오히려 국민 경제의 장기적 쇠퇴로 귀결된다고 할 정도로 그 관계가 달라졌다.

▲ 한 조선소의 그라인딩 작업 현장 모습. ⓒ프레시안


일본의 산업 구조 조정 경험 

조선 산업과 해운 산업 등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 구조 조정을 일본의 구조 조정 경험과 비교해 보면, 한국도 일본의 실패를 답습할 우려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최근에 읽은 <일본 기업 구조 조정 20년의 교훈>(이지평 지음, LG경제연구원 펴냄)이 한국과 일본의 구조 조정을 비교하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잘 기술해 놓았다는 생각에서 이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 <표 1> 장기 불황기 일본의 산업 구조 조정(자료 : 이지평, 일본 기업 구조 조정 20년의 교훈, LGERI 리포트 재편집). ⓒ프레시안


일본도 장기 불황 초기에는 문제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과잉 채무, 과잉 설비, 과잉 인력 등에 대한 구조 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하여 부실 기업이 확대되고, 은행의 부실이 심각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기업 간 합병 및 경쟁사 간 통합 등 적극적인 기업 구조 조정 및 산업 구조 조정을 동시에 진행해 철강 산업은 5개사를 3개사로 통합했다. 조선 산업도 여러 조선사를 통합하여 경쟁력을 갖추는 데 더해 신규 성장 산업의 개척과 육성을 동시에 추진했다. 

기업들의 절박함에 비해 일본 정부는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해당 산업의 위기가 찾아온 지 15년이나 지난 2000년대 중반에야 본격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구조 조정에 개입하였고 상시 구조 조정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는 등의 이유로 경제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실패했고, 디램(DRAM) 반도체 분야는 해외에 매각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의 인력 감축과 사업 축소, 부실기업 퇴출 중심의 구조 조정에서 이제는 점차 신소재 개발과 신산업으로의 전환 등으로 구조 조정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불경기와 금융 위기, 신기술의 발전 및 산업 구조의 변화는 일본의 산업에도 변화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왔고, 여러 분야의 변화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자민당을 지탱했던 주요 정치 세력인 농협이나 지방 건설회사와 같은 '구 기득권'의 일부가 퇴출되고, 오릭스나 미야우치(宮内)와 같은 금융 자본이나 락텐(미키타니(三木谷)나 소프트뱅크(손정의)와 같은 IT 자본이 '신흥 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산업 구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일본 기업들도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다. 

도요다, 닛산(자동차 산업), 락텐, 소프트뱅크(IT 산업), 오릭스(금융 산업) 등은 승자(勝者)라고 할 수 있지만, 소니, 파나소닉, 샤프와 같은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들은 패자(敗者)가 되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저자는 "기업의 벌어들이는 힘을 끊임없이 강화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가 장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고, 노동자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기업의 벌어들이는 힘을 끊임없이 강화"한다는 것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정부도 그것을 지지한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 시장 경제'에 반(反)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흥하든지 망하든지 그것은 시장에 맡겨야지 기업 활동에 정부가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데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신봉한다면 정부가 어려워진 기업을 지원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필요할 때는 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고 말하면서 세금으로 부실화된 기업과 산업을 지원하고, 그 과정이 끝나면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일관되지 못한 자세는 문제다. 

일본의 각종 구조 조정은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시행됐다는 한계가 있다. 산업 구조 조정을 위해 투입된 정부의 자금은 해당 대기업을 살리는 데만 집중되었고, 유럽 국가들과 달리 구조 조정 과정에서 국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거나 민간 기업을 공공화하거나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병행하지 못했다. 정부가 국가 재정을 투입하여 구조 조정을 한다면 적극적 복지와 사회 정책을 동시에 실시하여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내수 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그런 역할을 못한 것이 산업 구조 조정의 한계였다.

일본 양적 완화, 서민 부담만 늘어나 

한국도 최근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양적 완화 정책이 논란이 되었고, 실제로 얼마 전에는 조선 산업의 구조 조정을 위한 기금 조성 목적으로 추가 발권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 자민당은 19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다. 하시모토(橋本) 내각부터 고이즈미(小泉) 내각에 이르도록 자민당은 일관되게 대기업을 위한 정책을 추구했다. 나중에 아베 총리 등 자민당 우파 정권이 다시 집권하여 '엔화 무제한 방출 정책' 등 통화량 팽창을 중심으로 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경제 구조가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임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아 지속적인 통화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내수나 기업 투자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아 재정 투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엔화 무제한 방출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아베(安部) 정권의 양적 완화 정책은 그 목적 자체가 '내수 진흥'이 아니고 '엔저(低)로 인한 수출 확대'였다. 그 결과, 엔저로 인해 도요타를 비롯한 수출 대기업들은 미증유의 수익을 얻고 내부 유보와 배당금을 증액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엔저는 수입 물품들의 가격을 증가시켜 서민 생활을 압박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쌀을 제외하면 먹을거리 자급률이 40%에 불과하여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할 수밖에 없으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는 엔저로 인해 국민에게는 유가 상승을 초래했다.

▲ <표 2> SOC 투자의 적정 배분 비율. ⓒ프레시안


한국과 일본이 유사한 또 하나의 분야는 유럽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달리, 경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구시대적인 토목과 건설에 대한 투자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아베 정권의 재정 투입 또한 과거 자민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공공사업에 투자했던 것이 눈에 보인다. 신칸센 확장, 핵발전소 건설, 도쿄 올림픽 관련 경기장 개축 등 필요가 없거나 효율성이 낮은 공공사업에 자민당과 연관된 특정 기업이 수주했지만, 이로 인해 국가 경제가 나아지고 내수가 확대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도 영남권 신공항 건설로 나라가 들썩이고,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 건설이나 수서발 KTX 건설 등 여전히 토목 건설에 돈을 쓰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실패를 뒤따라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은 이미 2004년도 사회 간접 자본(SOC) 축적도 조사에서 SOC가 충분히 과잉이다. 도로 건설은 당시에 전면 중지해도 120% 과잉(200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 결과에 따른 기획예산처 대통령 보고)이었고, 공항도 예상 수요보다 더 증설됐는데, 그로부터 1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도로 건설이 계속되고, 공항 신설 논란도 일고 있다. 

당시 기획예산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의 재정 지출 중 경제 사업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4%인데 비해 한국은 5.6∼6.4%로 매우 높은 수준이므로, 최소한 2∼3%를 줄여야 한다고 보고했다(SOC 스톡 진단 연구 결과에 대한 대통령비서실 내부 토론회, 예산처,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참여, 2004년 4월). 이것을 현재 수준으로 평가하면 연간 30조∼45조 원 정도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이런 연구 결과와 대통령 보고 때문에 정부 재정에서 SOC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줄었지만, BTO(민간이 건설하고 소유권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 양도한 채 일정 기간 동안 민간이 직접 운영하여 사용자 이용료로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 투자 사업 방식)나 BTL(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정부가 이를 임대해서 쓰는 민간 투자 사업 방식) 사업으로 민간 자본이 참여하도록 하면서 수익률을 정부 재정에서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도로와 교량 등 건설 사업이 연구 결과만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가와 기업들은 부유한데 다수의 국민은 가난하고, 국민이 가난하니 소비가 원활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물론, 현재 상태로 지속하기에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 일본 모두 복지 국가가 해결 방안이다 

현재 일본은 자본주의라는 입장에서 봐도 건전한 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이면서 산업 구조의 변화나 국제 경쟁력의 약화로 본래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들이 존속하는 원인이 되고, 또 한 축에서는 정부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하는 저임금 체계가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을 존속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힘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이들 두 가지는 불식하고 중지해야 한다. 

현재 총선을 앞두고 아베 정권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 정책을 시행할 마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불량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지 않고 존속시키는 한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의 공정한 발전은 어렵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제 한국도 성숙한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내수를 확대하고, 각종 보편적 복지를 확충하는 등 사회복지가 제도적으로 충실해져서 국민 생활의 진정한 풍요로움이 충족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복지 국가로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의로운 '구조 조정'은 가능한가?

2016.06.20 15:56:34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구조 조정의 철학 : 지원과 성공의 원칙

             
현재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 속에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대규모 해고의 위험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국책 금융 기관의 자본 확충 방안이 마련되면서 구조 조정의 출발을 위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지만, 실제 구조 조정이 시작되면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해고된 근로자들로 인한 일자리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 조정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할 기본 원칙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의 상태를 배제한 채로 합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철학적 원칙으로 고려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원의 원칙만으로는 구조 조정의 성공을 이끌 수 없기에 성공을 위한 또 하나의 원칙이 필요한데, 이는 회생 가능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을 구분할 수 있는 옥석을 나누기 위한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다. 하지만 사전적인 이성적인 판단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제 구조 조정이 시행되면 계속적으로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이 일부 부실 기업이 정책 금융 기관 산하에서 상황이 악화된 데에는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지 못한 측면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불황과 내부적인 디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침체에 빠져들면서 수익성이 장기간 악화된 부실 기업이 증가한 가운데 '구조 조정'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물론 '구조 조정' 용어 자체는 경기 불황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 환경이 변화하거나 시장 여건이 바뀌는 경우에, 기업과 산업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며 대응해 나가는 것을 뜻하는 '구조 조정'은 실제로는 일종의 상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인 변화는 반드시 대규모 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 침체 속에 증폭되는 대규모 해고의 위험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 조정은 상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경기가 악화된 이후에 실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직면하는 구조 조정이기에 근로자들이 대규모 해고를 앞두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지고 있다. 

더구나 조선업 같이 최근 구조 조정의 첫 번째 대상으로 지적되는 산업 내에는 장기간 국책 금융 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생존을 유지해온 기업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지원하던 국책 금융 기관마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어서, 과연 추가적인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지 지원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하더라도 과연 실제 지원이 가능할지, 지원한다면 해당 기업이 살아날 수는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물론 최근에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자본 확충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마련됨으로써 일단 구조 조정을 시작하기 위한 작업의 단초는 마련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체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고 일부 논란과 문제도 있지만, 구조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 신용 경색으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렵게 되면서 다른 정상 기업까지 부실하게 하거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 조정 집행은 신속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일단 출발점으로는 비교적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국책 금융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은 구조 조정의 여러 단계 가운데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구조 조정이 실제 시작되면 근로자들의 해고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것이 실제로는 자본 확충 펀드의 설계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구조 조정 대상 기업의 고용 및 해고 문제와 관련해서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구조 조정 대상 기업의 근로자들이 고용된 채로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에 지원을 계속하거나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 국민 부담으로 특정 산업 또는 종사자를 도와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지금도 어려운 사람이나 계층이 많이 존재하고, 비단 조선업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도 힘든 곳이 많은데 왜 하필 특정한 산업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차라리 그 돈을 국민 개개인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구조 조정 지원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실 이는 미국에서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동차 산업이나 금융 기관에 대규모 구제 금융을 지원할 때도 똑 같이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현재의 처지를 배제해도 합의될 수 있는 원칙이 구조 조정의 철학

이 문제는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존 롤스(John Rawls)가 무엇이 공평한 것인지를 논할 때 사용했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개념을 응용한다면 합리화의 논거는 찾아 볼 수 있다. 사회 계약 이론을 통해 정의(Justice)의 개념을 제시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자신의 현재의 처지를 배제한 상태에서도 합의될 수 있는 법칙이 정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조선업이라는 특정한 산업에 종사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관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이 공평한 지원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존 롤스가 제시한 것은 일종의 가상적인 상황에서의 '사고 실험(思考 實驗)'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하다. 현실에 적용한다면 흔히 최악의 상황을 최소화하는 원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서 생각한다면 결국 구조 조정 지원의 핵심은 해고를 최소화하되, 불가피하게 해고해야 한다면 해고 근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해고 근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일반적인 실업 지원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같은 산업 구조 조정에서는 일순간에 대규모 해고로 실업자 풀이 크게 증가하면서 다른 실업자들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고를 최소화하거나 실업 상황에서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필요 

그렇다면 '해고의 최소화' 원칙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다른 국민들의 부담이 될 수 있는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그 지원을 받는 경제 주체가 지원을 해주는 이들보다 더 나은 봉급을 받으면서 '해고까지 최소화' 된다면, 롤스가 이야기한 현재 처지를 배제 한 상태에서도 합의될 수 있는 법칙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해고의 최소화'는 '임금의 적절한 감소'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대규모 해고 사태를 막는 구조 조정 지원을 받기 위한 기초에는 '임금의 적절한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가 있다. 

이러한 원칙은 미국과 같이 시장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 어떻게 특정한 산업에 대해 정부가 대규모 구제 금융을 제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 조정과 함께 이루어진 대규모 구제 금융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재원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제네럴 모터스(GM, General Motors)에 우선주 매입의 형태로 지원된 자금은 130억 달러(한화 15조 원)에 이른다. TARP 지원에 따라 GM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경우는 대부분 금융 회사(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AIG, JP Morgan Chase, Wells Fargo 등)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제조 업체에 이렇게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 것은 흔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구조 조정 지원의 원칙 : 사회적 합의 

물론 미국에서도 많은 논란과 비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원이 가능하고 결국 GM을 회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일종의 원칙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고 근로자 지원'은 결국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데, 경영진, 근로자, 그리고 일반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讓步)'한다는 개념이다. 

무지(無知)의 장막이 전제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고도 불리는 롤스의 아이디어를 구조 조정 지원의 철학으로 해석한다면 한 경제 내의 모든 주체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원래의 자리에서 기존에 가졌던 기득권을 양보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구조 조정 성공의 원칙 : 옥석(玉石)을 나누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

그렇지만 이렇게 지원을 받아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모든 구조 조정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구조 조정이 결국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원칙은 또한 무엇일까? 19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유명한 경제학 교수였던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학자는 '차가운 이성(cold head)과 따뜻한 감성(warm heart)'을 가져야한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구조 조정의 원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구조 조정의 지원을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만, 결국 구조 조정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차가운 이성도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가 주도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던 GM은 결국 지원받은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결국 회생하면서 구조 조정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데, 여기에는 살릴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냉정히 구분한다는 옥석을 나누는 이성적인 판단의 기본 원칙이 있었다. 

당시 GM은 구조 조정을 통해 회생이 가능한 부분과 회생이 어려운 부분으로 일단 사업을 분리시키는 작업이 있었다. 결국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일부는 떼어내 청산시키고 나머지 부분은 매각해 새로운 회사로 탄생시키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부를 청산시키고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GM이 탄생했던 것이다.

흔히 조선업 위기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채 비율에 있어서도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채무로 사실상 심각한 정도의 자본 잠식 상태인 곳과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존재하는 상황이고, 가장 심각한 상황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기술 경쟁력이 확보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이 함께 있다. 즉, 세계적인 조건 경기 침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이질적인 역량과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정리해야 하는 부분과 끌고 나갈 부분에 대한 옥석을 나누는 작업이 구조 조정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특히, 지금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산업은 대규모 고정 설비가 들어 있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후일 경기가 회복됐을 때 다시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없다. 물론 우리가 조선업을 넘어서는 더 높은 발전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기술력과 생산성을 갖추고 있다면 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재로는 그렇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산업 자체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지금의 과잉 설비 상태를 그대로 끌고 나갈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배제한 철저히 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옥석을 나누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구조 조정의 성공을 위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대규모 해고의 위험이 증대되는 형태의 구조 조정이 임박해지고 있다. 대규모 해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경제 전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큰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불가피해지는 구조 조정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먼저 구조 조정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의 원칙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이를 이끌기 위한 정부의 주도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의 대원칙은 '일자리 나누기와 결합된 해고의 최소화' 그리고 '해고 근로자 지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제주체의 '양보(讓步)'이다. 하지만 지원만으로 구조 조정은 성공할 수 없듯이, 성공의 원칙 역시 필요하다. 그 성공의 원칙은 회생시킬 부분과 청산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되어야할 것이다. 

계속적 평가와 모니터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물론 때로는 사전적인 '냉철한 이성적 판단'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조 조정의 과정을 계속해서 평가하고 모니터하며 지원 여부를 결정해 가는 계속적 작업의 중요성이라는 또 하나의 원칙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부실 기업이 정책 금융 기관 산하에서 현재와 같이 심각하게 상황이 악화된 데는 바로 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측면이 크게 역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