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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교수가 폭로한 입시 비리 의혹

일취월장7 2016. 5. 3. 10:41

로스쿨 교수가 폭로한 입시 비리 의혹

소문으로만 돌던 ‘로스쿨 음서제’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혹에 불씨를 댕긴 주인공은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그는 현행 제도상 음서제를 부추기는 교수들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기자  |  prodeo@sisain.co.kr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 소문으로만 돌던 ‘로스쿨 음서제’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교육부는 지난 3년치 전국 25개 로스쿨 입시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고위 법조인 자녀 30~40명이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출신 학교, 사법연수원 기수 등 이른바 ‘부모 스펙’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발표 전부터 구체적인 부정 입학 의혹자 명단이 나돌았다.

의혹에 불씨를 댕긴 주인공은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지난달 펴낸 책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의 한 대목이 문제였다.

“한 로스쿨 교수가 다른 교수들의 연구실을 찾아다녔다. 그는 ‘ 변호사(검찰 출신) 아들이 이번에 우리 로스쿨에 원서를 냈다. 꼭 합격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해당 응시생은 이듬해 이 로스쿨에 입학했다. 신 교수의 ‘내부 고발’에 경찰이 부정 입학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경북대 법학대학원 측은 신 교수를 징계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4월19일 신 교수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정황을 물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신평 교수(위)는 최근 현행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담은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펴냈다. 
ⓒ시사IN 신선영
신평 교수(위)는 최근 현행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담은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펴냈다.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사건과 경위를 설명했다. 우리 학교 박 아무개 교수가 다른 교수들에게 ‘특정 응시자를 꼭 합격시켜야 한다’고 청탁했다는 내용이다.

폭로 내용이 보도되자 경북대 로스쿨에서는 즉각 ‘징계’ 이야기를 꺼냈는데.
김문재 경북대 로스쿨 원장이 나에게 통고서를 보냈다. ‘우리 학교 입시가 불공정하다는 증거를 대라. 대지 못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요지였다.

어떻게 대응했나?
“부정 청탁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다 알고 있는 사항 아닌가”라고 답했다.

학내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상황이었나?
경찰 조사에서, 김문재 원장이 (입학 청탁 의혹을)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보라고 말했다. 그럼 금방 드러날 것이라고. 박 교수와 김 원장이 워낙 친하기도 하고,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김문재 경북대 로스쿨 원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학내에서 조사 중인 사안이나, 부정 입학은 없다는 게 학교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박 아무개 교수는 ‘신평 교수의 책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며,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폭로하게 된 계기가 있나?
로스쿨 입시가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계속 있었다.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란 뜻인가?
그 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내가 알 바도 아니다. 다만 이번 사례는 내가 직접 경험했기에 쓴 것이다. 내가 면접관으로 있는 고사장에 그 학생이 들어왔다.

면접 시작 전부터  변호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나?
아니다. 다른 면접관이 학생에게 질문을 하다가 ‘아버지가 누구’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그때 ‘저 학생이 박 아무개 교수가 청탁을 했던 그 학생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로스쿨 입시에는 ‘블라인드 면접’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나?
전혀 없다. 학교 자율이다. 이번 사건이 생긴 뒤에야 마련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한국은 대학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로스쿨 입시에 국가가 손을 놓고 있다. 이번과 비슷한 부정이 이미 있었을 수도 있고, 앞으로도 생길 수 있는 시스템이다.

로스쿨 입시에서 면접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학교마다, 해마다 다르지만 보통 정량적 요소의 점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가령 학부 성적으로 4.0을 받은 학생과 3.0을 받은 학생 사이에는 큰 격차가 없다. 반면 면접에서는 점수 차를 상당히 낼 수 있다.

현 제도상 로스쿨 자기소개서에 집안 배경을 써도 문제가 없나? 이를테면 ‘우리 아버지가 대법관이다’라고 써도 탈락되지 않나?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가산점을 주는 사람도 있나?
교수들 각자의 판단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가정 배경’이 들어간 자기소개서를 일괄 탈락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경북대에서만 생기는 일인가?
성적이나 출결 관리가 부실하다는 사실은 로스쿨 교수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부정 입학 논란 역시 다른 학교에서도 나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4년 9월 전국 25개 로스쿨 공동 입학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2014년 9월 전국 25개 로스쿨 공동 입학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학생 개개인의 신상이 로스쿨 입학 후 성적 평가에도 영향을 주나?
로스쿨 성적이 100% 공정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로스쿨 학생들도 여기에 불만이 많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의문을 품어왔고 더러는 외부에 알리려고도 했다. 제도상 일부 교수들의 ‘일탈’을 견제할 수단이 전혀 없다.

졸업 뒤 진로에도 ‘가정 배경’은 영향을 주나?
그렇다. 대체로 신입 변호사들은 능력에 큰 차이가 없다. 사기업인 로펌 처지에서야 좋은 집안 아이들을 뽑으면 쓰임새가 많다. 그 아이들은 대형 로펌에서 3년 정도만 수련을 받으면 제대로 된 법조인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서민·중산층 집안 아이들에게는 부실한 로스쿨 3년 과정이 법학을 익힐 유일한 기회다. 어떤 이는 ‘로스쿨 출신이 경우에 따라서는 택시 운전도 할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하다’고 주장하더라. 무책임한 발언이다. 많은 시간과 학비를 들이고도 전문성을 살릴 수 없게 하는 사회는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외국은 어떤가?
일본은 로스쿨 인증 평가 기구에서 상세한 성적 평가 지침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의 로스쿨 성적 평가 지침은 두루뭉술하다. 교수들이 자의적으로 평가하기 훨씬 쉬운 환경이다.

하지만 로스쿨 내부에서는 개혁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다.
로스쿨 출범 이후 교수들이 받은 혜택이 크게 늘었다. 그 혜택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현행 로스쿨 제도는 지고지선이다. 이들은 반대자에게 ‘사법시험 존치론자’라는 딱지를 붙여 집단적으로 비난을 퍼붓는다.

‘로스쿨 제도의 최대 피해자는 로스쿨생’이라고 적었다.
한국 로스쿨 제도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실무 연수 과정이 턱없이 부족하다. 3년 동안 공부하는 양은 엄청난데, 졸업한 뒤 보여주는 전문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주에는 내 책을 본 법조계 고위 인사가 전화를 걸어와, “로스쿨 출신 법조인 다수가 엉망이다”라고 하더라. 로스쿨생들의 역량 자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커리큘럼이 부실해서다. 제도를 설계하는 데에 참여한 법학 교수들 대부분이 실무와 동떨어진 이들이어서 그렇다.

책이 나온 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나는 그들의 선생으로서, 학생들이 건실한 법조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 다만 다음 학기에 수강 보이콧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부 교수가 제자들에게 나를 ‘사법시험 존치론자’라고 부르며 비난한다고 들었다.

사법시험 존치론자는 아닌가?
유보적 입장이다. 독일식 법조인 양성 제도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교육과 실무 과정이 구분되어 순차 진행되는데, 교육 전반을 국가가 주도한다. 우리도 예비 법조인들을 대학 자율의 부실한 교육에만 떠맡기기보다는, 국가가 정한 매뉴얼대로 철저히 교육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이다. 현행 로스쿨 제도는 학생들을 또 다른 생존경쟁에 내몰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