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리포트] ① "내 청춘은 아직도 일용직"
KBS 사정원 입력 2016.02.01. 07:07 수정 2016.02.05. 14:34
누군가는 얘기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지만 사회라는 현실적 제도에 한 발짝 내딛기도 전에 희망보다는 절망을 배우는 청년들에게 이 말도 사치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오늘도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아우성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오늘도‘직장 구하기’에 청춘을 바치고 있지만, 우리사회는 그들의 청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봤다.
■이력서만 140번..일용직하며 자신감 떨어져
오전 7시40분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박준호(가명· 31)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눈을 떴다. 박 씨는 출근 준비를 하고 오전 8시30분 집을 나와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 씨가 근무하는 곳은 경기 하남시의 한 작은 창고.
액자를 만드는 회사인 이곳에서 박 씨는 직원 6명과 소중한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공장보다는 가내수공업이 맞는 표현일 정도로 작은 규모의 회사다.
지난 2014년 대학을 졸업한 박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이곳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근무한다. 그것도 정규직 직원이 아닌 일용직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근무를 하고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일을 하고 있다. 박 씨는 금요일에는 액자 배달을 위해 외부 출장도 다니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박 씨가 받는 한달 수입은 150만 원 정도다.
하지만 박 씨는 저축을 꿈도 꾸질 못한다. 월급 중 50여만 원을 생활비, 통신비 등으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대학교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기 때문이다.
여주대 자동차학과를 졸업한 박 씨는 기계를 좀 더 공부하고 싶어 한성대 기계공학과로 편입했다. 편입 후 학교에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 2,000여만 원을 받은 박 씨는 이 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 씨는 한국전력이나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에서 기계설계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등 틈틈이 노력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박 씨는 지금까지 이력서를 140여 번 냈다. 지금까지 몇 차례 면접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모두 면접에서 떨어졌다..
박 씨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도 열심히 서류를 넣고 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늘 한결같다”며 “언제쯤 나도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다닐지 요즘은 자신감도 떨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자 친구와의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그는 오래 만나온 여자 친구가 있지만 자신의 불안한 미래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을 이룰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다.
그래도 박 씨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나는 아직 젊고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며 “훗날 지금의 시련을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 편의점, 때론 음식점에서 알바…고단한 청춘들
이영석(29·가명)씨는 오늘도 작은 편의점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인 그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 한 편의점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 업무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본격적으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정확한 알바 비용은 말하기 힘들다. 그냥 내 용돈 정도 하고 있다”며 “보통 밤 12시까지 공부하는데, 힘들지만 경찰 제복을 입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상상을 하면서 지금의 현실을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 씨는 지금까지 경찰 시험을 두 번 봤다. 이 씨는 "내년이면 나이가 30이 되는데 올해 정말 이 악물고 공부해 합격하고 싶다"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니까 솔직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젊음을 무기로 지금의 시련을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2년 전 전문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전보윤(24·여·가명)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현재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시급을 받으며 홀서빙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루 6시간 일하는 그녀는 일을 마치면 몸이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전 씨는 지금까지 20여 군데 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고 말한다. 전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 취직을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가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며 “그래도 늘 도와주시고 격려해주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올해는 꼭 취업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춘들은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위해 노력하지만, 기자가 만난 젊은이들은 모두들 일자리 얻기에 실패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인터넷을 뒤적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일하고 있다고 1년간 가족을 속인 30대 청년의 자살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에 따르면 청년이 남긴 유서에는 부모에게 공무원이 된 것처럼 위장하고 생활한 것에 대한 고민과 죄책감 등을 담고 있었다.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결국 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9.2%’... 이 숫자는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청년(15~29세)실업률이다. 1999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최고치다. 학창 시절 ‘입시지옥’을 뚫고 대학에 왔건만, 졸업 후 수많은 청년들은 취업이라는 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게 현실이다.
[청년 리포트] ②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KBS 이승종 입력 2016.02.03. 07:01 수정 2016.02.07. 08:47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전수희(가명·31)씨는 단호했다. 간호사인 그녀는 올해 하반기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번듯한 직장인인 그녀가 이민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뭘까.
전씨는 "여기서 삶에 지쳤다"고 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삶은 갈수록 팍팍해졌다. 매달 급여를 알뜰히 저축해도 그녀의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집 한 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그녀를 절망케 했다. 전씨는 "매년 정부와 정치인들은 사회를 바꾸겠다며 떠들썩하지만, 나 같은 서민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오히려 무거워진 느낌"이라며 "'지금까지 변한 게 없구나'하는 생각이 더 힘들다"고 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는 캐나다를 택했다.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지내고 온 캐나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였다고 했다. 그녀는 혹시 모를 '비주류로의 삶'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지금 삶을 즐기면서도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봤어요. 물론 이민자로서 비주류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여기(한국)보다는 나을 거라고 봐요."
전씨처럼 한국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적 포기자(1만7529명)는 국적 취득자(1만3534명)보다 3995명 많았다. 대한민국호(號)로 들어온 사람보다 나간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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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이들이 한국에서 희망을 잃고 떠난 것은 아니다. 더 큰 포부를 갖고 떠난 이들도 많다. 하지만, 최근들어 젊은이들이 한국에서의 삶,현실을 피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헬(hell)+조선)' '금수저(부잣집 자식을 의미. 반대 의미는 '흙수저')' 같은 용어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젊은 층의 절망감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2개월 전 한 취업포털이 성인남녀 1655명에게 조사한 결과, 30대는 무려 82.1%가, 20대는 80%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답했다. 2030세대 10명 중 8명 이상은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 이민은 컨설팅 업체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다. 한마음이민법인의 김재동 부대표는 "예전에는 40~50대 위주로 이민 문의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20~30대들의 이민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젊은 층의 이민 문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점차 증가했다고 한다. 이민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배경이다.
김 부대표는 "상담을 하면 모두들 '한국에서 삶은 너무 힘들다'고 한다"고 했다. 그의 고객 중에는 회사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이 생긴 이들도 있다.
"회사에서 윗사람에게 혼나고, 야근하며 일해도 맘 편히 살기가 힘들잖아요. 여자는 육아 고민하고 경력 단절되기 일쑤고요. 이민을 가면 같은 시간 같은 노동을 했을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민을 권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우리나라의 '헬조선' 현상을 집중 보도하며 "오늘날 많은 한국 젊은이들 마음 속에 한국은 생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신문은 "많은 한국 청년이 한국에서 탈출할 궁리를 하고 있다"며 "돈이 많다면, 한국은 살기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하기도 했다.
외국언론의 집중조명까지 받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탈 한국 현상. 우리는 계속 방관만 할 것인가?
[청년 리포트] ③ 비싼 등록금에 "3년에 빚이 3000만 원"
KBS 정재우 입력 2016.02.07. 07:11 수정 2016.02.07. 08:54
◆ 대학생활 3년에 빚이 3000만원
H대 13학번 김민지씨는 대학생활 3년 만에 대출금이 3000만 원이 됐다. 3학년까지 여섯학기 동안 매번 등록금 350만 원에 생활비대출 150만 원을 받았더니 금세 3000만 원이 됐다.
아르바이트를 쉰 적도 없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 빵집, 피자가게 등에서 꾸준히 일하면서 매달 50~60만 원씩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대출금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걱정이 밀려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녀는 “취직 후 월급에서 70~80만원씩 상환하면서 몇년을 계속해서 갚아야 되는데 저축은 어떻게 하고 결혼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이런 고민들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3조9000억 원까지 늘렸다는 국가장학금은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그녀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집 때문에 장학금 혜택은 거의 못받았다. 그녀는 “매번 신청은 하는데 집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빚이 많아도 소득분위가 높게 나오더라”며 “부모님 생활은 윤택하지 않은데, 소득분위가 높게 잡혀서 국가장학금은 많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받았을 때 한 학기에 48만 원을 받았고, 3년 동안 받은 돈이 총 150만 원이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 열심히 벌어서 댔어도 학자금 대출 여전히 남아
올해 대학 3학년이 되는 K대 11학번 안희찬씨는 김씨보다는 빚이 적다.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후 그동안 한 아르바이트만 7가지다.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했을 때도 아르바이트는 쉬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극한알바’로 소문난 택배 상하차도 해봤다.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매 학기마다 35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 중 150만 원 가량씩을 냈다. 모은 돈을 등록금에 보태고 부족한 돈만 학자금 대출을 받은 덕에 2년 다니는 동안 생긴 빚이 650만 원 정도다.
대신 대학생활은 힘들었다. 안씨는 “수업은 평일에 해도 조별 과제 같은 건 주말에 하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조 친구들한테 민폐도 많이 끼쳤다”며 “또 돈을 계속 신경쓰고 살아야 하니까 밥 먹을 때도 최대한 싼 메뉴만 찾고, 그러면서 성격도 변하는 것 같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둥바둥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참고 살았던 시간이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그는 “어차피 빚이 생길 거였는데, 차라리 아르바이트 한 돈 모아서 하고 싶은 것을 할 걸 그랬다”며 “이제 남은 등록금은 다 학자금대출로 충당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은 교환학생 갈 때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안씨 역시 정부가 마련한 국가장학금의 도움은 별로 받지 못했다. 그는 “입학 후 3학기 동안에는 소득 분위가 산정될 때 부채 상황이 반영이 안 돼 가지고 장학금을 하나도 못 받았다”며 “부채 상황 반영되고 나서 소득분위가 조금 떨어져 지난해 1학기에 40만 원 정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가장학금은 소득에 연계해 가난할수록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정부가 초기에는 빚이 많은 상황은 반영하지 않고 소득분위를 파악하는 바람에 실제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전혀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 반값등록금 실현 됐다는데..현실은 왜?
통상 한학기 400만 원 안팎인 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다. 때문에 정부는 2012년부터 국가장학금을 신설해 규모를 꾸준히 늘려왔다. 올해는 전체 대학생 등록금 14조 원 중에 7조 원을 정부와 대학이 장학금으로 마련해 '반값등록금을 완성했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 대학생이 실제 부담해야 하는 돈이 전체 등록금의 절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정부는 장학금을 소득과 연계해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때문에 소득이 낮은 학생들은 수혜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대신 모든 학생이 반값등록금 정책의 수혜를 보는 건 아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 부담에 시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직접 만나본 대학생들 상당수는 등록금이 줄었다고 느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12학번 최혜은 학생은 “반값 등록금이라고 말을 하면 학교에서 내는 등록금 고지서에 반값이 딱 돼 있어야지 반값등록금인 건데, 여전히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지하철에서도 광고 하는데. 광고비로 차라리 장학금을 더 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심리학과 11학번 이승준 학생은 "2011년에 냈던 등록금보다는 몇 만 원 줄어든 것은 맞다. 등록금을 내놓고 군대에 갔다 왔는데 내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렸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변동이 없다며 등록금 부담이 줄었다는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또 정부의 소득연계형 장학금이 실제로 정밀하게 소득을 측정하지 못해 엉뚱한 학생에게 수혜가 돌아간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혜수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실제로 외국에 부모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소득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것으로 잡혀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실제로 더 등록금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반값등록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라면서 "애초에 정부가 추진했던 반값등록금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소득이 적은 학생에 지원을 많이 하고, 소득이 많은 학생에겐 지원을 줄이는 정책이었는데, 반값등록금이라는 용어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는 얘기다.
아울러 반값등록금 완성 주장이 각 대학의 등록금 인상 시도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는 "반값등록금이 완성됐다고해서 다시 올려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며 "완성됐다고해서 등록금을 올려버리면 등록금 총액이 올라가기 때문에 계속 동결 내지 인하를 해줘야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 정책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청년 리포트] ④ "33살, 대학 3학년생"..빚 때문에 졸업도 못해
KBS 이승종 입력 2016.02.11. 07:02 수정 2016.02.11. 08:36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하며 갚아 나가도 줄어들지 않는 빚을 보면, 가끔 '난 빚 갚으려고 태어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대학생 김진환(가명·33) 씨는 덤덤했다. 김 씨는 이혼한 부친과 살고 있다. 부친은 장애로 소득 활동이 없어 김 씨가 실질적인 가장이다. 그의 고민은 '지금 있는 3000만원 가량 빚을 어떻게 갚을까'다.
그가 처음부터 '빚쟁이'였던 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부친 사업이 어려워지고 심지어 부친 건강마저 악화되자, 그도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졌다.

돈에 쪼들리던 그는 대학교 2학년 때인 2008년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그 땐 신용도가 좋아 카드 발급도 쉬웠다.
그러나 가볍게 생각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리저리 쓰다 보니 연체와 카드 정지가 코 앞이었다. 1금융권에서 돈 빌릴 곳이 없던 김 씨는 2금융권으로 넘어갔다.

XX 캐피탈, XX 저축은행들이 바로 수백만 원을 융통해 줬다. 연 이자는 20~30%. 법정 최고 이자를 넘어 40%대 이자를 받는 곳도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카드사, 저축은행, 캐피탈,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돈이 수천만 원에 달했다.
"신용회복위원회와 일부 사회적 기업의 도움을 받아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서 상당수 빚은 해결했어요. 그래도 아직 3000만 원이나 빚이 남았네요."
김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휴학을 거듭하다 보니 30대 초반인 지금도 대학생이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대출 이자 내기에 급급하다고 했다. 그래도 김 씨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빚을 지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쉽게 돈을 빌려주는 곳들이 너무 많더라"고 토로했다.
학원 강사 한지현(가명·31) 씨도 이자 갚는 데만 허덕이다 간신히 살아난 경우다. 그녀는 2013년 독립하며 강사 일을 시작했는데, 소득이 발생하자마자 신용카드사에서 "카드 하나 만들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한씨는 카드론까지 받으며 신용카드를 사용하다 수차례 연체를 하게 됐고, 연체액을 갚으려 대부 업체까지 찾았다.
대부 업체는 이자 상한선인 34.9% 이율로 수백만 원 돈을 빌려 줬고, 한 씨는 매달 급여를 받으면 이자 갚는 데만 벅찬 상황에 부닥쳤다. 견디다 못한 한 씨는 금융 시민단체 문을 두드렸고, 일부 고금리 대출을 탕감받았다. 지금은 시민단체에서 금융 교육을 받고 있다.
한 씨는 "간단한 서류와 몇 가지 확인 과정만 거치면 돈이 너무 쉽게 입금됐다"며 "한 번 연체되기 시작하니까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라"고 고개를 저었다.

빚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청년은 김 씨나 한 씨만이 아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30세 미만 청년층이 진 빚은 평균 1506만 원으로 2010년(936만 원)보다 60.9% 급증했다. 전 연령층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크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29세 이하의 개인워크아웃 신청 건수는 8023건으로 전년보다 20.3% 증가했다. 60세 이상(25.3%)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증가 폭이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청년층의 빚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돈을 빌리는 청년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금리로 돈을 너무 쉽게 빌려줘서 돈을 갚지 못하면 고금리의 연체이자를 물리고, 또다시 빚이 늘어나게 하는 저축은행,카드사,캐피탈 등 금융권의 '약탈적 대출' 관행도 문제다. 이렇게 돈을 쉽게 빌린 뒤 연체 이자가 늘어나면 돈을 버는대로 빚만 갚아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청춘이 그야말로 빚갚기 인생으로 전락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다.
한영섭 청년지갑 트레이닝 센터장은 "대출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양방의 계약 관계"라며 "채권자의 책임도 있는데도, 한국 사회는 채무자의 책임만 얘기한다"고 지적했다.
빚지는 청년들을 곁에서 지켜본 이들은 '적절한 금융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시민 단체인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급하게 돈이 필요한 청년에게 소액을 빌려주는데, 정해진 상환 기간이나 금리가 없다. 토닥의 김진회 이사장은 "금융 지식이 없는 백지 상태에서 대출을 받고 신용카드를 만들다 보니 점점 악순환에 빠진 이들이 많더라"고 전했다.
청년들에 대한 금융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고금리 대출을 쉽게 해주는 현 금융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청년 리포트] ⑤ "청춘은 슬픔? 백지?"..혼돈의 청년들
KBS 이재설 입력 2016.02.15. 07:01 수정 2016.02.15. 07:13
대학생 백 모(21) 씨의 1주일 생활은 빡빡하다.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수업을 듣다가 공강 시간에 '국장(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국가근로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호프집으로 향한다. 저녁 7시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 2시에 끝난다. 밤 12시에 문을 닫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동아리방이나 친구 집에서 쪽잠을 잔다. 주말에는 PC방 아르바이트를 한다. 간혹 시간이 날 때 들리는 야구 동아리 활동이 그나마 스트레스를 풀 기회다.
"(즐거운) 대학 생활을 꿈꾸며 들어왔는데, 학비 등 돈이 좀 많이 나가더라고요.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그것도 (생활하는데) 모자라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더 늘리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더라고요."
백씨는 청춘을 대표하는 단어로 '알바(아르바이트)' '국장(국가장학금)' '슬픔'을 꼽았다.
"제 상황이랑 비슷하잖아요. 하고 싶은 건 하나도 하지 못하니깐..."

◆ 청춘=고민+방황+포기+불안?
요즘 20~30대에게 청춘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봤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갖춘 SK플래닛 광고부문에 의뢰해 작년 SNS와 블로그, 카페 등에 올라온 게시물 중 '청춘' '취업' 젊음' 등과 함께 쓰인 단어를 살펴봤다.
'청춘'과 관련한 단어는 총 58만여 건. 이중 고민이나 방황, 포기, 불안 등 부정적 단어와 함께 언급되는 비중이 30%에 달했다. '취업'과 관련한 단어는 337만여 건이었는데, 고민, 걱정, 부담, 부족, 장애, 해고 등이 함께 언급된 게시물이 74만여 건(24%)으로 나타났다. 52만 건의 '젊음' 관련 단어 중 낭비, 고민, 갈등, 걱정, 포기, 후회 등 부정적 단어의 비중은 15%(약 7만여 건)로 조사됐다.
긍정적인 단어로는 청춘은 사랑, 시작, 도전 등이, 취업은 성공, 희망, 도움 등이, 젊음은 행복, 사랑, 시작 등과 함께 언급됐다.
물론 긍정적인 단어의 비중이 컸지만, 추세로 보면 부정적인 단어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게 SK플래닛 측은 분석이다.
특히 청년들이 겪는 취업난과 관련한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취업과 관련한 단어 중에서는 전쟁, 심각, 극심, 문제, 구멍, 바늘 등과 같은 단어가 함께 쓰이면서, 좁은 취업의 현실을 보여줬다.
SK플래닛 광고부문 서헌주 팀장은 "취업 준비에 대한 고민과 불안, 실패, 포기 등에 대한 우려가,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SNS상에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해 졸업·취업 시즌을 맞이해 20대의 관심사도 조사했다. 제일기획의 빅데이터 분석 조직인 제일DnA센터에도 의뢰한 결과, 지난 1월 한 달간 '취업' '졸업' '새해'와 연관된 검색어를 살펴봤다.
취업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선, '고졸 취업'과 관련한 단어가 가장 많이 검색됐다. '취업 성공 패키지' 등 정부의 취업 정책을 검색하는 경우도 많았고, 자격증 등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기업 연봉 등의 돈과 관련한 정보, 취업 분야나 해외 취업 등도 주요 관심사였다.
새해와 관련된 단어로는 공무원 봉급표, 연말정산 등 '돈'과 관련한 단어가 가장 많이 검색됐다. 공무원 시험 일정이나 자격증 시험 등 취업 관련 단어도 검색 비중이 높았다. 졸업과 관련해서는 행정 인턴이나 고졸 취업, 알바 등 취업과 관련한 연관어가 많았다.
◆ 혼돈의 청년들, 그래도 희망을 본다?
빅데이터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청년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대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충실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쌓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20대 직장인들은 막상 취업 고민을 벗어나면, 팍팍한 삶에 대한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고 얘기한다.
대학생 손유정(24) 씨는 "학업을 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한다. 그러면 친구들도 못 만나고 자기만의 시간도 없다"고 얘기한다. 대학생 정다운(27) 씨는 "너무나 짧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바로 청춘이 아닐까"라며 "나중에 20대의 청춘을 기억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현선(27) 씨는 "3년 뒤, 5년 뒤, 계속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한다고 한다. 청춘과 관련한 단어로 '경쟁, 스펙, 취업'을 꼽은 대학생 김예린(24) 씨는 "주변에 여행을 가는 친구를 봐도, 온전히 즐기는 친구는 없다"며 "과연 그것이 청춘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청년 세대인 그들은 인터뷰 내내 '청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청춘과 관련한 긍정적인 단어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말하는 희망을 들어본다.
[청년 리포트] ⑥ “왜 모두 대학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한국 청년들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만을 목표로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어요”
벽안의 외국인 젠스터 브롤리(27·미국)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대학 진학률에 대한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청년들이 비슷한 위치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영어, 자격증 등 스펙을 높이고 있는데 이는 결국 본인과 사회에 큰 스트레스(부작용)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나름 한국 청년 사회를 진단했다.
브롤리는 “미국은 한국처럼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또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한국 학생들과는 다르게 자원봉사, 운동, 리더십 활동 등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며 “많은 고용주도 학점보다는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한 학생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창조적 경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창조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청년들의 상상력과 잠재력이 중요한데 한국 청년들은 오로지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브롤리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특히 더 어려운 것 같다”며 “이는 한국 청년들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목표로 오로지 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들한테 보여주는 직장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 청년들이 다른 어떤 나라 청년들보다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브롤리는 “한국 청년들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한국 청년들의 단점일 수도 있다”며 “왜냐하면 많은 학생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되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의사나 법률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자신이 실제로 할 줄 아는 기술(능력)그리고 그 같은 기술로 어떻게 사람들을 돕는가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의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취업을 두고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미국에서도 과거 산업이 성장하면서 좀 더 많은 기회가 생기면서 기성세대가 젊은 층에 비해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젊은층 취업이 힘들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한국도 지금 이 문제로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다. 결국 세대 간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코네티컷 출신인 브롤리는 지난 2012년 아메리카대학에서 홍보를 전공하다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이후 그는 한국이 좋아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정착, 지금은 서울 신촌에서 한국인 친구 3명이랑 같이 살고 있다. 현재는 모 신문사에서 영자신문 에디터로 근무하고 있다.
■ 뉴질랜드 출신의 눈에 비친 한국 청년들
“대학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한국 청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뉴질랜드 모토루아 출신인 말콤루크(36)는 “한국 고등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 대학에 진학해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취업하길 원한다”며 “뉴질랜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좀 더 공부할 사람만 대학을 가고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며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 의아해 했다.

그는 또 이해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더 있다고 했다.
루크는 “대학에 입학했으면 전공과목 등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한국 청년들은 전공은 멀리하고 오로지 영어에만 힘을 쏟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영어는 물론 중요하지만 해외 고객이나 해외 사업부를 상대할 일이 아니면 영어에 올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영어에만 집중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한국에 온 루크는 분당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한국 여성과 결혼, 지금은 서울 용산구에서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일에 집중하는 능력과 근면함은 뉴질랜드보다 더 대단하다”며 “이런 장점을 가진 한국 청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지금처럼 대학 입학 후 취업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년 리포트] ⑦ 대학 대신 내 길 갔지만.."고졸로 살기 쉽지 않아요"
KBS 윤창희 입력 2016.02.22. 07:01 수정 2016.02.22. 09:52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부른 여자 가수 김상희에게 늘 붙는 수식어는 ‘여성 학사 가수’였다. 많은 희트곡을 낸 당대 최고의 여성 가수였지만, 그녀에게 따라 붙는 단어는 엉뚱하게도 유명 대학을 나왔다는 이른바 '가방끈'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학 가는 게 흔치 않던 시절이 지나고, 지금 한국은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의 나라다.
청년 10명중 7명이 대학을 가는 한국에서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았던 청년들은 자신의 길을 어떻게 얘기하고 있을까.
증권사 입사 문턱서 좌절, 두차례 사업 실패
최동권(33)씨는 현재 세 번째 자영업을 준비 중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건 자영업이었다. 성공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찌개 음식점을 차렸지만 갑자기 토지가 수용되면서 문을 닫았다. 동대문에서 시작한 한 옷 가게는 6개월 만에 접어,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대학 갈 기회는 있었다. 20대 초반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중국 대학에 입학 허가까지 받았지만 포기했다. 공부가 맞지 않았고, 대학이 돈만 많이 들지 살아가는 데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대학 안 간 걸 후회한 건 금융회사 입사 문턱에서 좌절했을 때였다. 군 현역 복무시절, ‘명문대생’ 고참을 만난 게 계기가 돼 주식 공부에 매달렸다. 코스닥에 있는 중소형주에 대한 몇 년간의 실전투자와 학습으로 그는 관련 동호회에서는 ‘고수’라는 소리도 듣는다.
몇 년 전 한 언론사 주최 투자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뒤, 증권사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최씨는 “입사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고졸이라는 점 때문에 회사도 망설였고, 나도 자신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간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동권 씨의 꿈은 종잣돈을 불려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단 현재는 여자친구와 함께 식당 창업을 준비중이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게 입지, 아이템 선정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씨는 “고졸이라는 게 가끔 제약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면서 “하지만 10여년 전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고 말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가지 않은 대학.."후회는 안하지만.."
한용수(34)씨가 영국 연수를 마치고 대학 입학을 포기한 채 귀국한 것은 24세 때다. 비교적 집에 경제적 여유가 있어 유학까지 갔지만, 대학을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국 생활의 막막함도 그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자식의 선택에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했다.
군대를 마치고 26세 사회에 나오니 막연했다. 오라는 곳도 없었고,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나이였다.
대부분이 대졸인 나라에서 고졸인 그에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아르바이트 등 돈이 되는 일은 다했다. 결국 입사원서를 수십번 쓴 끝에 그는 도시가스 회사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자격증을 따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30살이 되기 1년전, 회사를 나왔다. 박봉에다 고졸 학력으로는 직장에서 미래가 안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선택 역시 자영업.
휴대전화 일을 선배에게 몇 달 배운 뒤 창업을 했다. 4000만원을 대출받아 지금은 판교에서 휴대전화 대리점을 한다.
10년전 대학을 안가고 귀국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
한씨는 “후회는 안한다”고 했다. 벌이도 월급쟁이보다 낫고, 더구나 대학 4년 동안 수 천만원 되는 등록금을 쓰지 않은 기회비용 생각하면 다시 그 시절로 간다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학을 나와서 버젓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솔직히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아침부터 저녁 8시반까지 하루 종일 매여 있는 자유없는 생활, 메르스 같은 일이 벌어지거나, 경기 상황에 따라 수시로 들쭉날쭉한 영업 성적은 사실 참 힘들다.
한씨는 "대학 졸업해 직장 다니다가 구조조정 당하고 명예퇴직해서 뒤늦게 자영업이 뛰어든 사람 보면 내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넘기 힘들었던 고졸의 벽
김회주(25)씨는 고교 졸업 후 자동차 딜러 일을 시작했다. 인천과 서울 강남구 율현동의 중고 자동차 매매 시장에서 일하는 당찬, 직업 여성인이다.
그녀도 대학을 가지 않았다. 넉넉지 않은 집은 형편도 있지만,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딜러로 일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한 공고에서 홍일점이었을 만큼 그는 남자들과 경쟁해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친구들보다 4년 늦게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김 씨는 “직업도 직업이지만, 여자로서 고졸이라는 시선은 분명히 핸디캡이 됐다”면서
"겉으로는 사람들이 대학 안 갔다고 해서 무시하는 그런 건 없지만, 뒤에서는 사람들이 학력을 말하고, 고등학교만 졸업했다고 하면 '음' 하는 반응들. 그런 말할 수 없는 약간 미묘한 느낌으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게 됐다" 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취미로 하던 서예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아 다른 친구들보다 5년 늦은 지난해 대전대 서예학과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2~3번은 학교를 가고 나머지는 딜러일을 계속하고 있다.
김씨는 “주위에 대학 안갔던 친구도 연락을 해보면 대부분 대학에 뒤늦게라도 들어갔더라”면서 “한국에서 고졸이라는 게 아무래도 제약이 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의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세계 1위지만, 대졸자의 몸 값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와 비교해볼때도 대졸자들의 몸 값은 높은 편이 아니다.
고졸자 임금을 100%로 두고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전문대졸은 115%, 대졸은 150%, 석박사는 200%의 임금을 받았다. 반면 OECD 평균은 각각 125%, 157%, 214%로 격차가 더 많았다. 대학진학자가 지나치게 많으면서 몸 값이 내려간 현상으로 풀이된다.

고졸자보다 평균 임금이 낮은 대졸자 비율은 2004년 23.8%에서 2014년 32.7%로 빠르게 증가했다. 대졸자의 3분의 1은 고졸보다 평균임금이 낮다는 얘기다.
대졸자의 몸 값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청년들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2위인 캐나다(58%)보다 한국은 10%포인트나 앞섰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46%에 그쳤고, 이웃나라 일본은 37%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육부는 매년 직업 고교 지원 정책 등을 통해 대학 진학률을 65% 정도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발표하고 있지만, 대학 진학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 뿌리 깊은 학벌 중시 풍조에다 여전한 고졸자 차별 등으로 대학에 일단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졸취업자는 줄고 있지만 고졸 취업자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일자리 ‘하향 평준화’로 해석하는 견해도 많다. 고졸 취업자가 양질의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미 레드오션이 된 각종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통계 착시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LG경제연구원 고기영 선임연구원은 “고졸 취업자 수 증가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청년층 고용이 확대되는 것이 청년 전체 일자리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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