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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즐기는 독설, 썰전

일취월장7 2016. 1. 28. 11:34

총선을 즐기는 독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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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승인 2016.01.27  16:00:03


‘짬짜면’의 순수성 논란은 뒤늦은 감이 있었다. 전원책 변호사가 국민의당을 두고 ‘짬뽕도 아니고 우동도 아니’라고 비판하자 유시민 작가가 요즘은 ‘짬짜면’이 있다고 대꾸했다. 대본은 없지만 받아치는 모양새가 짠 것 같은 합을 자랑했다. “첫 회부터 모든 것을 불사른다. 백두대간을 가로지를 기세”라는 유 작가의 표현대로 JTBC <썰전> 149회는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의 부제에 충실했다. 전 변호사의 “좌파죠?”라는 공격에 얼결에 중도 선언을 한 김구라가 방송 말미, 출연을 거부할 정도였다. 삼고초려 끝에 섭외했다는 두 사람이 합류하면서다.

MBC <무한도전> ‘예능총회’ 편에 출연한 김구라는 지난해, 본인이 시작한 프로그램이 모두 성공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시도로, tvN <집밥 백선생>은 쿡방 열풍을 주도하며 관심을 모았다.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에 자주 도전해온 그의 이력 중 ‘정치 예능’의 시초로 불리는 <썰전>도 있다. ‘떼 예능’ 전성시대에 1부의 시작을 세 명으로 단출하게 구성한 이 프로그램이 3년째 순항 중이다. 강용석 변호사에 이어 최근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하차하면서 1기가 마무리된 모양새다.

대선 이듬해인 2013년 2월, <썰전>이 ‘가장 핫한 뉴스만 골라 뉴스의 뒷이야기를 털겠다’며 방송을 시작했다.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영향력이 전만 못하던 시절이었다.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갈린 대선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침이 튀면 닿을 거리’에 세 사람이 모여 앉았다.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다. 세트도 그대로고, 늘 정장 차림인 패널에게선 계절감을 찾기 어렵다. 이철희 소장과 강용석 변호사가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를 비롯해 총리의 자격에 대해 분석했다. 시사 ‘예능’임을 알게 한 건 김구라였다. 공직 후보들의 필수 관문인 병역 비리 의혹이 화제에 오르자 “해병대 나온 사람을 양아들로 삼는 게 어떠냐”라며 가수 이정을 예로 들었다.

<썰전>은 예전에 없던 예능이었다. 오히려 연상되는 건 팟캐스트였다. 오디오 팟캐스트 녹화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당시 김교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가 주변인들과 나누는 수다를 TV에서 본다는 획기적인 경험을 선사한다”라고 평가했다. 시사 이슈를 활용한 예능이 전에도 있었지만 전면에 내세운 건 처음이었다. 2014년 <한국언론학보>(제58권 5호)에 실린 ‘정보인가 오락인가:정치 예능 토크쇼의 정치적 효과’를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정치·시사 정보에 오락을 접목시켰다는 점은 (타 예능과) 공통적이나, 정치 예능 토크쇼는 정치·선거 이슈 등 비교적 딱딱하고 어려운 주제의 핵심 정보 전달에 중심을 두고 단지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유머 등을 사용해 오락적으로 풀어낸다. 본질이 정치 시사 정보의 전달에 있다.”

제작진은 그 차이를 실감한다. 김은정 <썰전> PD는 “다른 프로그램은 편집을 통해 많은 부분을 재구성한다든지, 제작진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데 <썰전>은 다르다. 주장이 잘못 전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보와 예능의 결합이라는 특징 때문에 방송 초기 예능으로 분류되다 현재 교양에 속해 있다. 적은 제작비로 최대 효과를 내는 단순한 포맷은 종편의 전략이 되었다. 미술 비용이 제작비의 큰 부분인 걸 감안하면 절감 효과가 큰 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JTBC 제공</font></div>1월14일 방송된 JTBC <썰전> 149회는 유시민 작가(왼쪽)와 전원책 변호사(오른쪽)가 새롭게 합류하면서 ‘2기’ 체제로 정비됐다. 
ⓒJTBC 제공
1월14일 방송된 JTBC <썰전> 149회는 유시민 작가(왼쪽)와 전원책 변호사(오른쪽)가 새롭게 합류하면서 ‘2기’ 체제로 정비됐다.

<썰전> 스튜디오에는 세 개의 삼각형이 등장한다. 삼각형 무대 위에 삼각형 모양의 책상이 놓여 있고 천장 역시 삼각형이다. 꼭짓점마다 한 명씩 앉아 있다. 세 사람의 균형이 그만큼 중요하다. 개인의 캐릭터와 역량에 전적으로 기대는 건 강점이자 약점이다. 제작진은 김구라의 역할을 강조한다. “토론을 중재하면서 예능감을 잃지 않고 전체를 관장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매우 탁월하다.” 이철희 소장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오해를 푸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비판할 게 있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한다”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구설로 자진 하차한 강용석 변호사의 강점은 방송감이 뛰어나고 말의 전달력이 좋다는 데 있었다. 약점 역시 웃음의 포인트로 활용하는 능력은 천부적이다. 후임이었던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역시 젊은 나이에 갖기 어려운 경험을 자산으로 자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이들의 대화는 토론 내내 각을 세우는 ‘본격’ 시사 프로그램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팽팽한 싸움을 이어가다가도 어느새 농담을 주고받는다. 웃음이 길어질세라, 다시 설전을 벌인다.

‘보수의 거성’과 ‘진보의 사이다’가 만나면?

<썰전>은 방송국에서 단단히 ‘찍힌’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방송 사고에 대비한 입고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늘 어긴다. 현안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방송 직전까지 수정을 한다. 월요일에 녹화해 목요일에 방영되는데 그사이 지난 이슈가 되어버릴 때가 있다. 제작진이 중요도를 고려해 아이템을 뽑은 다음 패널과 상의한다. 출연진이 직접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슈를 현안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이철희 소장이 “국회랑 싸우지 말고 메르스랑 싸웠으면 좋겠다”라고 일갈한 메르스 사태 당시 반응이 좋았다. 성완종 게이트, 국정원 이슈 등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호응이 있는 편이다.

100회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아 20회 특집을 거하게 마련했던 <썰전>이 150회를 앞두고 있다. 김은정 PD는 롱런의 비결로 균형 잡힌 시각과 웃음을 꼽았다. “하루에도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모든 이슈를 사람들이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이슈가 뭐고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판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데다 적당한 웃음까지 있다”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방송을 보기 전엔 몰랐다’는 반응이 더러 있다. “사람들이 자기 관심사를 찾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이나 편향된 지식을 좇는 경향이 있다. 지식량을 늘려줄 수는 있지만 한쪽 면을 잘 안 보게 되기도 한다.”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TV조선의 <강적들>, tvN의 <쿨까당> 등이 꼽힌다. 비교적 패널이 많고, 연성 이슈가 많다는 점이 차이다. 김교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시사 프로그램들이 여럿 있지만 정제된 정보와 입장 차에서 오는 논리와 재미를 갖춘 정치 시사 토크는 <썰전>이 유일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지난 3년 다소 날이 무뎌진, 침체의 시기도 있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썰전>은 ‘나랏일만 아니면 호감’이라는 시청자의 시선을 얻는 데 성공한 강용석 변호사의 ‘이미지 세탁’을 도왔다. 최근 하차한 두 사람 모두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태는 이들도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양당 주류의 시선만 보여준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이제 ‘보수의 거성’ 전원책과 ‘진보계의 사이다’ 유시민이 합류하면서 2기의 전열을 가다듬게 되었다. 촬영 목격담에 따르면 방송감이 좋은 두 사람은 논쟁할 땐 확실히 싸우지만 아닌 부분에서는 웃음을 많이 준다고 한다. 여운혁 JTBC 국장은 예능에서 정치 소재 자체가 ‘매력적인 밭’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적 공방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슈가 끊임없이 공급된다는 점에서 <썰전>의 동력은 무한대다. 게다가 거대한 ‘떡밥’, 20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