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인재 플랫폼이 직업 세계를 변화시킨다 |
나준호 | 2015.12.22 |
구직자들이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해외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구인 기업들에게는 적절한 인력을 빠르고 저렴하게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온라인 인재 플랫폼이 최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인재 플랫폼의 확산은 기업들의 인력 운용 방식과 직업 세계의 구조에 새로운 변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개인들도 협업 기술을 쉽게 사용하는 시대
특히 2010년대 들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협업 애플리케이션들은 클라우드 기술에 기반해 작고 가볍기 때문에 대규모 IT 인프라 투자 없이도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서 쉽게 구동된다. 아사나(Asana)나 트렐로(Trello) 같은 프로젝트 일정 관리, 야머(Yammer), 포디오(Podio)같은 기업용 소셜 네트워크, 슬랙(Slack), 힙챗(Hipchat)같은 폐쇄형 그룹 채팅 앱들은 이러한 협업도구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때문에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개인들도 쉽게 원격 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공짜 서비스인 구글 앱스의 메일, 캘린더, 문서 및 스프레드 쉬트 기능들만 잘 활용해도, 원격 팀 작업이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기술 발전이 전통적인 일의 개념을 크게 뒤흔들 잠재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90년대만 해도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당연히 지정된 사업장이나 사무실에 나가 정해진 업무시간 동안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얼굴을 맞대고 일하지 않아도 팀을 이루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해외 글로벌 기업들 중에는 한 부서 직원들이 전세계에 흩어져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예로 애플에서 부품자재 공급을 담당하는 GSM(Global Supply Management) 부서 사람들은 전세계 협력사로 흩어져 일하며 이메일, 화상회의를 통해 업무 상황을 실시간 공유한다. 한국에서도 통계청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시차 출퇴근, 선택적 근무시간 등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해 전체 임금근로자 1,849만 명 중 16.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집, 카페, 스마트워크 센터 등에서 원격 근무하는 스마트워크제를 도입한 사업체들도 2014년 2.4만 개로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다양한 온라인 인재 플랫폼 등장
원격 협업 기술과 함께 최근 확산 중인 온라인 인재 플랫폼(Online Talent Platform)들도 직업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온라인 인재 플랫폼이란 인터넷을 통해 구인 기업들과 구직자들을 중개하는 사이트들로 <표>처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전통적인 구인구직 사이트 외에도 업워크(Upworks), 프리랜서(Freelancer)처럼 프로젝트성 일자리들을 매칭시켜 주는 플랫폼들이 빠르게 세를 넓혀가고 있다. 또한 미국의 링크드인(Linkedin), 유럽의 바이어디오(Viadeo)같은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들도 구인구직의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우버(Uber), 태스크래빗(TaskRabbit)처럼 운전, 배달, 수리 등 일회성 허드렛일들을 주문만 하면 즉시 연결시켜 주는 온디맨드 서비스 플랫폼들도 새로운 인터넷 노동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심지어 크라우드 플라워(Crowd Flower), 아마존 미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처럼 자동화하기 힘든 대규모 노동집약적 작업을 잘게 분해해 전세계 인력들에게 위탁 처리하는 마이크로워크 플랫폼도 나타나고 있다.
근로자들의 가상적 국제 이동 창구로 활용
온라인 인재 플랫폼은 사실 전 세계 인력들에게 열려 있다. 능력있는 근로자라면 자신의 기량과 기술을 본국 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에게도 얼마든지 팔 수 있게 되었다. 1,000만 명의 인력들이 참여하고, 이용 기업 수도 400만 개에 달하는 미국의 온라인 인재 플랫폼 업워크(Upwork)의 경우, 구직 공고의 50%는 미국 기업들이 내지만, 정작 미국 프리랜서들이 매칭되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영어 소통도 원활하고 낮은 임금을 제시하는 인도, 동유럽, 필리핀 등 신흥국의 프리랜서들이 대부분의 일들을 수주해 가기 때문이다. 이는 본국에 살면서도 해외 일감을 받아 돈을 버는 글로벌 온라인 프리랜서 집단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터넷 인력 플랫폼에 참여하는 인력들은 2013년 4천4백만 명에서 2016년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즉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고 성장 기회가 부족해지면서 기업들은 비용 효율화와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원격 협업 기술과 온라인 인재 플랫폼을 활용해 비전통적 일자리들을 늘리려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택 근무자나 프리랜서의 활용을 늘리고, 외부 인재나 퇴직자들을 프로젝트나 파트타임 형태로 활용하려 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직무들을 마이크로워크 형태로 잘게 분해해 외부에 아웃소싱한 후 결과물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려 할 수도 있다.
또한 MIT 테크놀로지 리뷰 최근 호(2015.9)에는 흥미로운 1인 기업 사례가 소개된 바 있다. 금융 데이터베이스 회사인 디스트레스 프로(Distress Pro)는 브레히트 팰롬보(Brecht Palombo)가 혼자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가족들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지낸다. 1인 기업이라 오피스가 필요없고, 중요한 일이 생기면 길에 주차시키거나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업무를 보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람은 정직원 대신 필리핀, 동유럽에서 사는 프로그래머들을 온라인 인재 플랫폼에서 구해서 가상 팀으로 일하고 있다. 슬랙(Slack)이라는 폐쇄형 채팅 프로그램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 구글의 문서도구를 이용해 작업한 뒤 결과물은 공용 클라우드에 올리는 식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인력 관리 변화로 인해 과거 정규직 중심으로 단순했던 직업 세계는 점점 다양한 고용 형태가 혼재된 복잡한 직업 세계로 변해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고정된 장소, 시간에 일을 하는 정규직 근로자가 줄어들고 대신 자유롭게 시간, 장소를 선택해 일을 하는 비전통적 근로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노동 시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뉘어져 같은 일을 하더라도 서로 다른 대우를 받는 이중화 문제가 큰 이슈가 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다양한 고용 형태가 확산되면서, 노동 시장이 이중화를 넘어 다중화, 다층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협업 기술과 온라인 인재 플랫폼은 개인 미디어 창작자, 기술 창업가, 프리랜서 등 1인 기업의 매력도를 높일 수 있다. 혼자 일하다보면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이때 온라인 인재 플랫폼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같이 일할 사람들을 찾고 협업 도구들을 활용해 원격으로 공동 창작을 시도하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사업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도 클래러파이(Clarify)나 엑스퍼파이(Experfy) 등의 전문가 플랫폼을 활용해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노동 시장에서는 기업체 종사자들 외에도 창작자, 창업가 등 새로운 형태의 자기 고용(self-employment) 직업인들의 비중이 점점 증가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청년들의 창업 의향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올해 컨설팅사 언스트앤영(Ernst & Young)에서 세계 각국의 청년 2,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65%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길 원한다고 응답했다.
한편 우버, 리프트, 태스크래빗 등 온디맨드 플랫폼들이 확산되면서, 실업 상태나 정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근로자들 중에는 여기서 일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이들은 플랫폼에 올라온 주문 중 적당한 것을 선택해 일하고 건별로 수입을 얻게 된다. 온디맨드 플랫폼은 원론적으로 불완전 취업자들에게 잉여 시간에 쉽게 허드렛일이라도 찾아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에게 쉽고 빠르게 필요한 개인 서비스를 얻게 한다는 측면에서 상호호혜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계성 고용 형태라는 새로운 사회적 이슈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즉 온디맨드 근로자들은 법적으로 피고용자가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영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사회보장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문제에 노출된다. 예를 들어 우버 운전사는 차량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보험 처리를 받기 힘들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에서는 온디맨드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독립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의 처우 문제가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직업 기회는 많아지나 불안정성도 커져
이처럼 협업 기술과 온라인 인재 플랫폼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고용 형태의 등장과 이로 인한 직업 세계의 변화는 많은 직업인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위협을 제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향후 직업 기회는 더욱 다양하고, 유연하고, 넓어질 수 있다. 즉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기업과 일할 수 있는 옵션이 생길 것이다. 또한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을 뚫는 대신 창업가, 창작자 등 새로운 형태의 자기고용을 시도할 기회도 많아질 수 있다. 또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경우 새로운 직업 형태를 택해 일하는 방식, 시간, 장소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파트 타임이나 프로젝트 형태로 여러 기업들과 동시에 일을 하는 프리랜서나 멀티 잡(multi-job) 직업인들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MBO 파트너스의 집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서 21세 이상 프리랜서의 수는 3,020만 명으로 미국 실질생산가능인구(20~54세) 1억 4,850만 명의 20%를 넘어섰다. 나아가 글로벌 온라인 인재 플랫폼은 적절한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춘 구직자들에게 본국에 거주하면서도 전세계 기업들에게 자신의 기량을 세일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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