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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한 IT플랫폼

일취월장7 2015. 12. 8. 11:57

 

민주주의를 위한 IT플랫폼

다수가 반대해도 국정교과서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간접민주제는 효율적인가? 직접민주제와 관련한 IT업계의 시도가 시작되었다.

  조회수 : 2,424  |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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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승인 2015.12.07  14:05:24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명확하다. 적어도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의 잘못된 행정을 막아낼 방법은 없어 보인다. 간접민주제라는 정치제도가 국민의 뜻을 배신하는 상황이다. 한번 선출된 대리권자가 4~5년 동안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는 만큼 간접민주제는 주권자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간접민주제가 정당성을 지니는 건, 많게는 수억명의 인구로 구성된 근대국가에서 모든 의견을 직접 수용하는 직접민주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행했던 직접민주주의는 인류사에 ‘닿지 못할 이데아’와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국가의 모든 요직을 직접 투표로 선출했던 사례가 인류사에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직접민주제가 절정에 이르렀던 때 그리스는 철학과 문화와 예술이 만개한 시기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수십만 대군을 물리친 최고의 황금기였으니, 이 얼마나 ‘이데아’적인가? 하지만 이는 이데아가 아니라 역사 속에 존재한 엄연한 현실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직접민주제가 가능했던 요인 중 하나로 당시의 미디어 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었는데, 당시 폴리스 하나의 크기는 서울시와 엇비슷했다. 도시국가 사람들은 대략 반나절을 걸어서 집회에 참석하고 다시 반나절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즉, 폴리스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는 하루 정도면 구성원 전체 의사를 전수조사할 수 있었다. 공동체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길어야 일주일, 짧으면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대의제를 거칠 이유가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비폭력과 직접민주주의를 주제로 열린 한 토론회.  
ⓒ연합뉴스
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비폭력과 직접민주주의를 주제로 열린 한 토론회.

전 국민이 인터넷을 공기처럼 마시고 사는 지금이 바로 고대 그리스와 비슷한 환경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덕분에 우리 사회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속도는 실시간에 가깝다. 우리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 4대강 개발 관련 논쟁,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짧게는 수일 만에 민의가 수렴되는 현상을 여러 번 목격했다. 하지만 현재, 민의와 무관하게 수개월씩 헛된 싸움을 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에게 간접민주제는 얼마나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가?

정치 벤처 ‘와글’과 민주주의를 위한 IT 플랫폼

눈치 빠른 사람은 직선제로 뽑힌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도 교육감이 지금 한국 민주주의에 ‘최후의 보루’ 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보 정당까지 포함한 정당들은 직접민주제 확대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각 권력기관의 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거나 시민 법안 발의를 법제화하는 정도는 공론화할 만한데 여전히 대의제 안에서 권력다툼만 하는 한국 정치가 안타까울 뿐이다.

다행히 최근 직접민주제를 앞당기려는 두 개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정치 벤처를 표방한 ‘와글’은 지구 곳곳에서 실험 중인 직접민주제 사례를 발굴하고 한국에서 소개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현재 와글은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인터넷과 SNS를 기반으로 기존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정치 실험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한편 ‘더 나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들’ 모임은 민주주의를 위한 IT 플랫폼을 개발하고자 나섰다. 민주주의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툴을 개발하는 작업은 한국에서 거의 처음 시도되는 일이다. 이들이 내놓을 결과물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가 성숙한 직접민주제를 완성하기까지 300∼400년이 족히 걸렸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새로운 역사의 시작은 언제나 미약한 법이다.

 

 

시위대를 향한 박근혜식 도발형 통치술

시위대를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IS 발언’은 박근혜식 통치술을 압축해 보여준다. 핵심은 ‘도발’이다. 반대하는 그룹의 분노를 달래기는커녕 자극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도발 통치의 위험요소를 정확히 보여준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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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승인 2015.12.07  14:03:41

11월22일. 한국 민주화의 거목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공과(功過) 논쟁이 치열한 대통령 김영삼보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는 민주화 투사 김영삼을 추모하는 정서가 도드라졌다.

11월24일. 민주화 이후 여섯 번째 대선에서 뽑힌 박근혜 대통령이 자국민을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에 비유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특히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

다른 시대가 같은 시공간에 존재했다. 여론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났다. 대통령이 주권자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한 사실에 분노하는가 하면, 왜 대통령이 저런 말을 하는데도 지금 야당은 민주화 투사 시절의 김영삼처럼 싸우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문제의 테러리스트 발언은 이제는 하나의 원리로 정립되다시피 한 박근혜식 통치술을 압축해 보여준다. 핵심은 ‘도발’이다. 박 대통령은 고비 때마다 ‘가장 치열한 반대자’의 분노를 달래기는커녕 자극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박근혜 정부 처지에서 보면, 민주노총 등 이른바 ‘과격·불법 시위 단체’가 주축이 된 11월14일 광화문 집회는 여론 반전의 좋은 기회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차벽을 무너뜨리려 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시사IN 윤무영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차벽을 무너뜨리려 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경찰은 ‘폭력을 연출하는 토끼몰이’에 능숙했고, 민주노총은 토끼몰이 덫에 정면충돌을 해주는 ‘고마운 상대’였다(<시사IN> 제428호 ‘시민을 정조준한 11월14일의 물대포’ 기사 참조). 다만 농민 백남기씨가 이날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중태에 빠지면서, 집회 이후의 여론이 일방적으로 청와대에 유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과잉 진압과 경찰 폭력 이슈가 만만찮게 힘을 받았다. 박 대통령의 도발적인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 12월5일에는 2차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1월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세계가 복면 뒤에 숨은 IS 척결에 나선 것처럼 우리도 복면 뒤에 숨은 불법 폭력시위대 척결에 나서자”라고 말했다. ‘복면’을 고리로 해서 집회 참가자와 테러 집단을 동일시하는 논리 구조가 같다. 김 대표는 11월27일에도 “민주노총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벌써 선진국에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말해 12월5일을 겨냥한 도발 기조를 이어갔다.

정부도 보조를 맞췄다. 11월27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어조는 강경했다. “불법시위를 주도하거나 선동한 자와 극렬 폭력행위자는 반드시 찾아내어 엄단하겠습니다.” 정부는 1차 집회 하루 전인 11월13일에도 5개 부처 장관이 경고성 공동담화문을 냈고, 집회 다음 날인 11월15일에도 법무부 장관 담화가 나왔다. 2주일 만에 세 번째 담화다.

‘도발’은 어떻게 해서 통치술의 핵심이 되었을까. 임기 첫해인 2013년부터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노선 파기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으로, 내용과 절차 양 측면의 정당성 위기를 겪었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해소하기보다는 도발 통치로 회피하는 노선을 택했다. 이해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11월 국무회의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헌재는 지난해 12월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이른바 ‘십상시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12월에는 대통령이 황선·신은미 토크 콘서트를 콕 집어 “종북 콘서트”라 부르며 공격했다. 그 토크 콘서트에서는 한 10대 소년이 인화물질을 던진 탓에 부상자가 나왔다(<시사IN> 제380호 ‘소년은 왜 폭탄을 던졌나’ 기사 참조). 두 사람은 테러의 피해자 처지였는데도 박 대통령은 종북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 국정교과서 파동 이후 박근혜 정부가 고른 대상은 민주노총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박근혜 대통령은 11월24일 시위대를 테러단체인 IS에 비유하며 앞으로 열릴 집회도 강경 대응할 것임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24일 시위대를 테러단체인 IS에 비유하며 앞으로 열릴 집회도 강경 대응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가 도발 통치의 대상을 고르는 몇 가지 원칙이 드러난다. 첫째,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좁아야 한다. 전교조·통진당·민주노총은 혼자 힘으로 다수파를 꾸릴 능력이 있는 조직은 아니다. 둘째, 대상의 전투력과 결집력이 높을수록 좋다. 지지 기반이 좁은 조직이 결집력과 전투 의지만 강할 경우, 다수파를 만드는 확산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셋째, 중산층이나 온건파가 공포를 느끼고 이탈하는 전장을 정교하게 고른다. 북한 문제, 노동 문제, 폭력 집회는 중산층과 온건파를 밀어내기 쉬운 이슈다.

좁은 지지 기반, 강한 결집력과 낮은 확산력, 중산층의 공포를 자극하는 이슈 선정. 이 세 요소가 합쳐지면, ‘똘똘 뭉친 소수 반대파 대 방관하는 다수파’ 구도가 등장한다. 정부는 소수의 반대파를 도발해 뭉치게 하고, 최대한 강경한 선택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형성된 강경 반대파는,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할 중산층 온건파를 밀어내는 효과를 낸다. 결국 반대 여론은 고립되고, 헌법재판소 담장과 경찰 차벽 아래에서 산화해버리는 경로를 탄다(<시사IN> 제322호 ‘약한 놈만 골라 패는 약한 정부’ 기사 참조).

도발형 통치술에서는 중산층과 온건파가 반대 블록에 가담하지 않도록 관리해내는 것이 핵심 과제다. 이 목표만 달성되면, 강성 반대파의 저항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기는 기류마저 있다. 이 ‘관리’가 실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박 대통령 임기 중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2013년 연말 철도노조 파업은 노동 이슈에 파업과 과격 시위까지, 도발 통치가 기대할 수 있는 요소를 다 갖춘 전장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 싸움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KTX 민영화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가 기반시설 민영화는 중산층과 온건파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슈다. 중산층 온건파가 결합하면서 철도파업은 ‘도발-폭발-고립’의 연쇄 고리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7개월 동안 유지하던 지지율 50%선이 붕괴했고, 철도 파업은 ‘파업치고는’ 이례적인 지지를 얻었다(<시사IN> 제329호 ‘정동의 추억이 그녀에게 남긴 것’ 기사 참조).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청와대가 고립을 자초한 사례다. 기존 교과서에 ‘종북’ 딱지를 붙여가며 국정화를 추진했다. 역사 연구자들을 자극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구도와 이슈가 매우 나빴다. 온건파는 물론이고 보수 일각에서도 국정화 반대론이 터져 나오면서 오히려 청와대가 고립됐다.

두 사례는 도발 통치의 위험요소를 정확히 보여준다. 이슈 관리가 중요하다. 중산층과 온건파가 공감하는 이슈로 도발했다가는 아무리 강경파라 해도 고립시킬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감각이 오작동을 일으킬 때가 특히 위험하다. 교과서 문제는 정치적인 득점을 노린 도발형 통치술이라기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강한 신념 때문에 무리를 각오하고 밀어붙였다고 보는 관찰자가 많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체포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앞서 깜짝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앞서 깜짝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발 통치’와 바꾼 한국 사회의 합의 능력

이번에는 어떨까. 11월14일 집회 날짜가 잡힐 때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도발 통치의 전장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농민 백남기씨가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다쳐 중태에 빠졌다. 이슈가 ‘폭력 집회’에서 ‘과잉 진압과 경찰 폭력’으로 어느 정도 이동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경찰 물대포가 아니라 시위대가 백씨를 가격했다”라는 온라인 음모론을 국회로까지 끌고 왔다가 빈축을 샀다. 이슈 관리가 실패하는 징후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회 참가자를 IS에 비유한 것은 교과서 국정화 사태 때 경험했던 ‘대통령 리스크’에 가깝다. 이 발언은 강경파만 정밀하게 자극하는 데서 멈추기에는 지나치게 도발적이다. 세계적인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 한국 지국장인 앨러스테어 게일 기자는 11월24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한국 대통령이 자국의 마스크 쓴 시위대를 IS에 비교했다. 정말이다(South Korea’s president compares local protestors in masks to ISIS. Really.)”라고 썼다. 대통령의 이 과속 발언 이후,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집단 복면 퍼포먼스 제안이 나오는 등 전형적인 ‘폭력 집회’ 구도를 비트는 제안들이 등장하고 있다.

민주국가의 행정부 수장은 보통 능숙한 다원주의자다. 웬만한 민주국가에서는 여론이 성향과 계층과 지역과 세대를 따라 여러 덩어리로 나뉜다. 한두 개 덩어리만 갖고서는 다수파를 만들기 힘들다. 그래서 정권을 잡으려는 사람은 여러 블록의 지지를 통합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박근혜식 도발 통치는 독특한 예외다. 박 대통령은 다원적인 지지 기반을 유지하는 데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반대 블록에서 결집된 강경파를 골라 도발한다. 적극적으로 다수파를 규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다수파를 못 만들도록 쪼개는 데 통치술의 무게중심이 가 있다. 이런 통치술을 한두 차례 임기응변이 아니라 아예 통치의 기본 원리로까지 끌어올린다.

어떻게 이런 임기응변 통치술이 되풀이해 먹힐까.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정치학 박사)은 “민주화 이전과 민주화 이후는 전선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달라졌는데, 진보 진영에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박근혜 특유의 통치술이 계속 작동할 공간을 주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민주화는 단일 전선이다. 그 전선에 사실상 모두가 양쪽으로 갈려 집결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그런 단일 전선을 상상하면 안 된다. 전선과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는데, 박 대통령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통치술을 본능적으로 안다. 진보는 거기에 되풀이해 당하고 있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앨러스테어 게일 한국 지국장이 대통령의 IS 발언에 대해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월스트리트 저널>의 앨러스테어 게일 한국 지국장이 대통령의 IS 발언에 대해 자신의 SNS에 남긴 글.

11월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기 대부분은 민주화 투쟁기였다. 민주화라는 단일 전선에서는, 가택연금과 단식투쟁을 되풀이한 김영삼이나 아예 정권 차원의 살해 시도를 여러 차례 넘긴 김대중과 같은 단호한 투사가 거대 대오의 깃발 구실을 했다. 깃발 하나가 진영 전체를 결집시킬 수 있었고, 싸울 줄 아는 투사가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그런 거대한 단일 전선 의제가 사실상 사라졌다. 야당 처지에서는 투쟁도 타협도 답이 아닌 딜레마로 내몰렸다. 대오도 의제도 단일화가 거의 불가능한 ‘중구난방’의 시대가 열렸다.

민주화 이후 기존 기득권 세력이 붕괴하지 않고 안정적인 다수파를 만들어 민주화에 적응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과제였다. 박근혜식 도발 통치는 이 과제를 아예 우회해버린다. 안정적 다수파를 만들지 못하면, 상대의 연합을 쪼개버리면 된다. 임기 3년 동안 청와대는 위기 때마다 이 카드를 꺼내들고, 대체로 승리를 되풀이했다. 그 승리란 한국 사회의 통합과 합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대가로 하는 것이었다.

‘중구난방’의 시대에 권력을 장악한 진영은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핵심 지지 기반을 지켜내면서 상대는 분열시키는 전략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국면에서 반대 블록의 ‘전면전’이 좋은 대응 전략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상훈 학교장은 “이런 권력 최대의 약점은 농담하는 사람을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를 다룬 연구를 보면, 권력은 증오받을 때보다 조롱받을 때가 더 위험한 때다”라고 말했다.

 

 

정부 광고의 딜레마

이숙이 편집국장 

12월4일 편집국에 들어온 일간지들의 1면 광고를 보고 입맛이 썼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모든 일간지가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이라는 정부 광고를 일제히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래 사진).

내용부터가 불편했다. 농민 백남기씨를 위독하게 만든 무자비한 진압에 대해서는 한마디 유감도 없이, ‘2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하려는 이들을 일찌감치 불법·폭력 시위자로 낙인찍으려는 의도가 선명했다. 법원이 “12월5일 집회가 집단적인 폭행·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서울경찰청장의 집회금지 통고를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그런 정부 광고를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싣지 않았다. 독자들의 거부감과 사내 일각의 반발이 주된 이유다. 지난 10월19일 <한겨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는 정부 광고를 조·중·동 등과 똑같이 실었다가 홍역을 치렀다. 당시 유일하게 정부 광고를 싣지 않았던 <경향신문>은 “광고 역시 지면의 일부라고 생각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광고국에 전했다”라고 편집국장이 밝혀 앞으로도 기사 논조와 충돌하는 광고는 받기 껄끄럽게 됐다.내용 못지않게 불편한 것은 이런 정부의 선전전에 국민이 낸 세금을 물 쓰듯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특정 성향 언론만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식의 정부 광고는 중앙일간지의 경우 한 회에 3000만~5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인쇄매체 쪽 광고 사정이 나빠지면서 같은 위치, 같은 크기에 1000만원 아래 광고가 수두룩한 데 비하면 몇 배 비싸다. 매체들로서는 정부 광고를 적극 유치하고픈 구조다.

 

   
 

이를 두고 언론계와 학계에서는 “기사와 광고는 별개다. 인종차별, 범죄 조장 같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기사와 다른 목소리의 광고도 싣는 게 맞다”는 의견과 “독자는 기사와 광고를 함께 소비하기 때문에 지면과 광고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표현의 자유냐 사회적 책임이냐는 논쟁이라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때는 오히려 정부가 <시사IN>에 광고 제안을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에 앞서 고삐 풀린 정부 광고를 견제하고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해 보이는데, 그 역할을 해야 할 야권이 저리도 지리멸렬하니 참으로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