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여전히 힘이 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겠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교과서의 언어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간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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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승인 2015.11.06 02:18:47 |
역사 교과서에 대해 냉소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잠을 잔다. 교사들도 과거와 달리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기보다는 다양한 보조교재들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갈 경우 바로 검색을 해서 다양한 견해를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교과서를 바꿔봤자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겠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도 국정교과서를 통해 공부한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싹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교과서와 반대로 서술된 것이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반대로 국정교과서가 폐지된 다음 시대의 청소년들이 그 이전보다 더 보수적이라고도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교과서는 그 자체로 신뢰와 불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들었다. 즉 시대 인식에 따라 교과서를 대하지 교과서를 통해 시대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과서는 힘이 세다. 이것은 교과서가 말하는 ‘견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측면만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견해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다. 그 말이 공식 언어가 되어 큰 힘을 발휘한다. 5·18 광주항쟁을 교과서가 ‘민주화운동’이라고 말하는가, ‘폭동’이라고 말하는가, ‘민중항쟁’이라고 말하는가는 교과서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에 대해 학생들이 믿는가, 믿지 않는가와 달리 힘을 발휘한다. 그 사건을 지칭하는 공식 ‘언어’이기 때문에 그 말이 입에 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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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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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을 때 교과서의 언어로 말하는 아이들
이 공식 언어가 힘을 발휘하는 두 번째 맥락이 있다. 공식석상에서는 바로 그 언어를 무의식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은 학생들이 생각하기 귀찮을수록, 대답하기 난감할수록 바로 교과서의 언어로 말해버린다는 점이다. 이때 그들에게 그 교과서의 견해를 믿거나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난감해한다. 믿는지, 지지하는지 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물어보면 별달리 할 말이 없는데 굳이 말을 시켜서 뭔가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교과서의 힘이 있다. 교과서의 힘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데 있지,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나치의 유겐트와 같은 전위조직을 만드는 데 교과서의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그런 존재를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반대로 교과서의 힘은 생각하기 귀찮은데도 불구하고 뭔가를 말해야 할 때, 바로 그 생각의 빈 공간을 채우는 데서 힘을 발휘한다.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해 특별한 견해가 없거나, 굳이 그 사건에 대해 견해를 가지고 싶지 않을 때 교과서의 언어는 ‘편리’하고 ‘안전’하게 그 시공간을 모면하게 해준다. 교과서‘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로 생각(없음)을 대체한다.
여기에서 교과서의 세 번째 힘이 나온다. 교과서의 힘은 ‘생각 안 해봤음-할 말 없음’을 ‘생각 안 해봤음-말했음’으로 바꾸는 데 있다. 생각이 없고 할 말이 없었으면 말하지 말아야 하고 그 말하지 않음을 통해 자신이 할 말이 없다는 걸 생각하게 해야 하는데, ‘교과서의 말’(공식적이자 상투적인 말)로 말을 해버림으로써 사태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그는 이미 말한 사람이기에 그 말은 자기의 말이 되며 동시에 말을 했기에 할 말 없음에 대해 사유하지 않아도 된다. 이중으로 결박되는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견해가 되어버리는 첫 번째의 결박과 말을 했기 때문에 언어 없음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의 결박 말이다. 그러니 교과서는 여전히 힘이 세다.
일본인 교사도 한국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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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승인 2015.11.06 02:19:23 |
10월14일 ㅁ선생님이 연락을 해왔다. 한국 정부가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단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정권의 역사 인식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 쉽다고 걱정하셨다. ㅁ선생님은 일본 중학교에서 36년째 사회과(지리·역사·공민(公民:정치·경제))을 가르치고 계신다. ‘청일전쟁’ 단원일 때는 본인이 만든 수업 노트와 자료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청일전쟁의 원인이 된 동학농민군 위령비와 유적지 사진까지 직접 준비했다.
ㅁ선생님의 수업은 청나라와 일본이 싸운 전쟁터가 한반도였고 조선인 농민의 희생이 가장 컸다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실을 숨기지만, 연구가 축적될수록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도 전했다. ㅁ선생님은 본인이 참여하고 있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과 같은 한·일 시민 교류 소개도 잊지 않았다.
ㅁ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내용을 별도 자료로 준비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토론을 벌여 의견을 나눴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과서‘로’ 가르친다는 교사로서의 신념을 실천한 결과다. 그때 학생들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토론을 거친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 생각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이 조금 싫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 문제를 생각하는 데 일본이 싫고 좋고는 관계가 없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의견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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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5월25일 일본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역사학자 등이 위안부 문제의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한국과 일본의 일부 인사는 국적을 불문하고 가해의 역사를 배운 학생들이 자학적인 역사관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을 만나는 선생님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어른의 잘못을 지적하게 되고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한다고 입을 모은다.
ㅁ선생님은 이러한 수업 방식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의 가해 사실, 즉 한국인의 강제징용이나 전쟁 포로 학대 문제에 관해서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했던 선생님은 1980년대 초반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 학생이 많은 반의 담임을 맡으면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같은 생각을 하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충실하게 가르칠 수 있었다.
1949년 일본 초·중·고·대학교 역사 교육자들의 모임 ‘역사교육자협의회’가 창립되었다. 현재 사회과 교육자 20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협의회는 매년 한 차례 전국대회를 연다. 1970년대는 ‘민족의 과제’, 1980년대는 ‘평화 구축과 역사 교육’, 1990년대는 ‘지역, 평화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사회과’가 중심 주제였다. 이와 더불어 각 지부에서는 매달 한 번 회원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부교재를 제작해서 공유한다. 협의회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ㅁ선생님도 일찍부터 교과서에는 없는, 피해와 가해를 함께 가르치는 평화·인권 교육이 가능했다.
더욱이 교사의 노력을 받쳐주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1980~1990년대까지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의 재량권이 컸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 교육을 받고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업하기도 쉽고 성과도 컸다. 특히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1993년 고노 담화 발표에 이어 1997년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사실이 삽입되면서, 현장에서는 쉽게 일본의 가해 책임을 포함한 전쟁과 평화를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자학적이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및 전쟁을 긍정하는 중학교 교과서를 펴냈다.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2000년대부터 정치권력이 본격적으로 교육 현장이나 교과서 채택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일부 학교는 수학 여행지를 히로시마, 오키나와에서 다른 곳으로 바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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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우익 성향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새역모’가 8월15일 서명운동을 벌였다. |
동아시아 시각이나 젠더 관점 도입하면 ‘반일’?
특히 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서고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일선 교사들은 배포자료 한 장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교장이 수업 방식과 내용에 관해 일일이 지적하는 학교가 생기는가 하면, 익명의 시민이 ‘대동아전쟁 관련 시험문제와 수업 자료를 공개하라’고 학교에 요청하면 담당 교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검색하면 역사적 사실의 부인은 물론 생존자들과 한국이나 중국을 폄하하고 혐오하는 내용들이 먼저 검색되는 등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결국 올해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새역모’의 계통을 잇는 이쿠호샤(育鵬社)가 전국 공립·사립학교에서 6.6%를 점유했다. 시민들은 전국적으로 아베 정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오사카 시 등이 신규로 채택하면서 이전에 4%였던 점유율이 6.6%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초·중·고교 교사(퇴직 교사 포함)들이 교과서 출판에 나섰다. ㅁ선생님도 집필자로 참여한 마나비샤(学び舎)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다. 마나비샤는 학생의 눈높이에서 학생을 위한 교과서를 지향한다. 동아시아의 시각이나 젠더 관점을 도입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10월19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ㅁ선생님은 마나비샤의 교과서를 들고 한국의 전주·광주 등을 방문했다. ㅁ선생님은 한·일 시민 교류 자리에서 마나비샤의 교과서 이념과 내용을 소개하고, 일본 내 38개 학교에서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한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였다. ㅁ선생님은 전주 일정을 마치며 “교류회에 참가한 한국 측 시민이 ‘일본에서 생명과 인권을 귀중히 여기고 여성, 학생,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시하는 교과서가 선생님들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일본 측 참가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한·일 양국 시민은 동학농민군, 의병투쟁, 3·1 독립운동에서부터 민주화운동까지 시민이 지켜온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자. 역사의 바늘을 되돌리는 국정화는 절대 안 된다. 함께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가자고 의기투합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언젠가 ㅁ선생님이 한국과 일본의 중학생이 함께 동아시아의 역사 수업을 하는 장면을 그려본다(마나비샤 교과서를 ‘반일’ ‘매국’이라며 비난하는 일부 세력이 저자 신상털기에 혈안이다. 그 때문에 이 글에서도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
"누가 박근혜 대통령을 '환빠'로 만들었나"
지난 2년 사이, 정치 발언 때문에 오싹했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이야기 했을 때다. 이제까지의 통일론은 대부분 '민족 공동체 회복', '평화' 등 추상적인 언술에 바탕 했다. 그게 당연하다. 두 세대 이상 갈라져 왔던 남과 북이 하나로 합치는 일이 어찌 간단하겠나. 예상되는 온갖 갈등을 아우르려면, 크고 아름다운 가치를 내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대박'이라는 경제적 수사를 동원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정치, 사회, 문화적 차이가 빚어내는 갈등은 어떤 가치 지향 속에서 풀어내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건가. 북한을 그저 '내부 식민지' 쯤으로 삼겠다는 건가. '금광 채굴 대박'을 쫓던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21세기 북한에서 열겠다는 건가. 취업난에 허덕이는 한국 젊은이들을 위해?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미국 인디언의 운명을 겪게 되는 걸까. 그게 옳은지는 둘째치고서라도, 일단 가능한 일인지조차 모르겠다.
역사 해석 차이도 못 견디는 대통령, 남과 북의 차이는 어떻게 견디나
두 번째로 오싹했던 게 바로 오늘, 11월 5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라며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어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언론이 이 발언을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지어 해석했다. 기자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요컨대 박 대통령의 생각은, 역사 해석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그래서 국민의 가치관 역시 하나로 '통일'하는 게, 남과 북을 '통일'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게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통일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뚜렷해졌다.
남과 북의 차이, 전쟁 경험 등에서 비롯된 갈등을 풀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통일이 아니다. 지극히 미미한 역사 해석의 차이도 못 견디는 대통령이다. 그가 남과 북의 거대한 차이를 참아낼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꿈꾸는 통일은, 남과 북을 하나의 색깔로 칠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 남쪽을 먼저 하나의 색깔로 통일하겠다는 의도다.
평화 공존 통일인가, 한 가지 색깔로 도배하는 통일인가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부분 통일을 희망하며 자랐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학교에서 불렀다. 박 대통령에 비판적인 이들, 즉 민주화 운동 세대 역시 '자주, 민주, 통일'을 염원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군대 정훈 교관 역시 '통일은 우리의 과업'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 나라에선 통일에 대해 나쁜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 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따져 물을 때가 됐다. 대체 어떤 통일인가. 통일도 통일 나름이다. 남과 북의 차이를 최대한 존중하며, 평화 공존하는 통일이 있다. 약자, 소수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한 가지 색깔로 도배하는 통일도 있다.
그러고 보니, 박 대통령은 '통일'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통일론'을 제출한 적이 없다. 김일성, 노태우, 김대중 등은 각각 나름의 통일론을 제시했다. 연방제, 한민족공동체, 삼단계 통일 방안 등이다. 예컨대 김일성은 연방제와 함께 남과 북의 파격적인 군비 축소를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정치 공세였다. 그래도 무시하긴 힘들었다. 현재 모습만 기억하는 이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극우 논객 지만원 박사도 1990년대에 김일성과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군비를 줄여야 한다는 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북방외교를 했다.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과 수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신라 방식 통일 꿈꾸나?
그런데 박 대통령의 통일론은 무엇인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과정 없이 이뤄진 통일 사례가 한국 고대사에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신라는 당(중국)과 손잡고 폭력으로 통일 했다. 당과 신라의 매소성 전투가 사실상 통일전쟁의 마지막이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옛 백제와 고구려 일부 영역을 신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기까지는 그 뒤로도 많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신라 방식의 통일은, 갈등 해소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정말 이런 통일을 꿈꾸는 건가. 그래서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건가. 도무지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사상의 노예' 만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통일이 되어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 역시 궤변이다.
사상적으로 지배 받는 일, 즉 '사상의 노예'가 되는 걸 피하는 길은, 사상의 자유 시장에 몸을 내던지는 것뿐이다. 획일적인 테두리에 갇힌 정신이 자유롭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상은 오로지 비판 속에서만 자유롭다. 획일적인 반공 교육을 받았던 세대가, 가장 격정적인 운동권이 됐던 역사가 입증한다. 청소년 시절, 상대적으로 다양한 사상을 접했던 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은 오히려 퇴조했다. 자유를 찾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억눌린 사상은 거센 반동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국가가 나서서 "정신의 중심"을 잡아주겠다는 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의도라면,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을 대통령이 원한다는 뜻이다.
누가 대통령 축사에 <환단고기> 넣었나
통일을 이야기할 땐, '대박'이라는 경제 용어를 썼던 대통령이 뜬금없이 '사상'이라는 추상어를 꺼냈다. 그것도 이상하다. 여기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지난 2013년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환단고기>의 한 대목이다. 우리 민족이 인류 문명사의 새벽을 열었으며, 유라시아를 사실상 지배했었다는 내용을 담은 상고사 서적이 <환단고기>다. 책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는 역사학자는 거의 없다. 20세기에 쓰여진 '위서(僞書)'라는 게 정설이다. '남녀평권(男女平權)' 등 근대적인 용어가 책 안에 있다는 점이 주요 근거다.
< 환단고기>는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인 1980년대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다. '민족 자긍심'을 고취시키니 좋은 일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민족 자긍심'으로 포장된 지나친 국수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현실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이는 1990년대 노동현장에서 노조 무력화를 위한 이념적 장치로도 이용됐다. 당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 대기업 공장에서 국수주의 역사관에 바탕 한 모임이 속속 생겨났었다. 기업 및 보수 진영이 이를 후원했다.
누가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 <환단고기> 속 문장을 집어넣었을까. 텔레비전에 가끔 '일베' 화면이 등장하는 방송 사고처럼, 그저 실수였을까. 아닌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부터 상고사, 고대사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연태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오히려 (국수주의 성향의) 재야사학자의 의견이 옳고 전문학자는 식민사학의 후예로 몰아가는 구도가 아닌가 걱정 된다"고 지적했다.
< 환단고기>만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어도, 국수주의 역사관은 뿌리가 깊다. 무술 혹은 정신 수련 단체 가운데 일부가 이런 역사관을 퍼뜨리기도 했다. 일부 민족 종교, 신흥 종교 역시 부분적으로 관계가 있다.
정말 궁금하다. 누가 박 대통령에게 '상고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줬을까. 누가 박 대통령의 '사상'을 지배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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