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 김경욱 씨. ⓒ프레시안
<송곳> 구고신의 실제 인물은 누구일까
김경욱 씨가 지난 5월 열린 웹툰 <송곳> 출판 토크콘서트에서 한 말입니다. 실제 그의 말처럼 <송곳>이라는 작품은 오롯이 최규석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수인, 구고신이라는 인물에 투영된 게 <송곳>이죠. <송곳>은 이들이 푸르미 마트, 즉 까르푸에서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벌여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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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논의한 뒤,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며칠 뒤에 온 인물이 이은영 씨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지역협의회라고 해서 활동가들이 수십 명은 있는 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부천지역협의회의 활동가는 이은영 씨를 포함해 2명에 불과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그런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겠죠.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말도 많이 안 했어요. 생각해보면 다짜고짜 전임자를 지정해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어색했죠. 저 역시도 마뜩잖았어요. 그냥 어디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다 온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일 경험도 없는 거 같고… 이 사람이 얼마나 하겠나 싶었죠. 차라리 장교로 지휘 체계도 다 배운 내가 낫지 않겠나 싶었어요. 한마디로 '간지'가 나지 않았어요."
너무도 당연하고, 그리고 원론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김경욱 씨는 이은영 씨와 박양희 씨를 보며 강철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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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송곳>에 등장하는 이수인, 그리고 구고신의 실제 모델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한 듯합니다. 그럼 다음 편부터는 <송곳> 이수인의 실제 모델 김경욱 씨가 노조를 만들고 회사와 싸우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송곳> 이수인이 노동자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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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이수인은 어떻게 노조를 조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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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이수인, 파업 준비 중 만난 미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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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욱 씨. ⓒ이랜드일반노조
파업 끝낸 <송곳> 이수인,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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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욱 씨. ⓒ프레시안(허환주)
컴퓨터 한 대 받으려는 '찌질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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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한 번은 이기고 싶을 때
기업이 망해도, 매출이 떨어져도 노조 탓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이 말이 통하는 게 한국이다. <송곳>은 이렇게 오랜 시간 누적된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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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승인 2015.11.28 09:36:29 |
최규석의 <송곳>은 재미있다. 재미있기에 나는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사진)도 챙겨 보고 있다. 주말 밤 9시40분이 되면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이놈, 저놈, 아이고, 아싸” 하며 드라마를 시청한다. 드라마가 끝나면 만화책을 꺼내들어 방송한 분량의 내용을 복습하고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를 예습한다. 꼭 갑과 을의 대결, 노조 이야기 등 작품이 주는 메시지 때문에 다시 읽는 것은 아니다. <송곳>의 무시무시한 구성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배경으로 보이는 인물을 빼도 작품이 무너질 것 같고, 에피소드마다 작은 위기와 사건의 해결을 반복하고, 곧장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하니, 빠져들밖에. 만화가 주호민은 이렇게 추천사를 썼다. “이런 소재로 이런 재미를 뽑아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한마디로 심각하게 재밌다.”
<송곳>이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고,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방송된 <미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수많은 청춘들은 ‘장그래’와 신입사원들을 보며 우는 동안, 전국의 많은 과장님들은 자신을 ‘오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미생>은 ‘을’ 위에 군림하던 ‘갑’도 결국은 누군가의 ‘을’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어쩔 수 없는 세상’을 풀어갔다. <송곳>도 ‘어쩔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쩔 수 없는 세상에서 ‘불편’하게 살고 있는, 그래서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송곳>을 보며 불편한 건,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제 자신이 겪는 ‘불편’을 참는 사람이기 때문일 테다. 그냥 인정하면 속 편할 것 같다. 우리는 긴 시간 노동자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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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
정치권력은 잊을 만하면 ‘종북’을 외치며 빨간 펜을 들어 아무렇게나 채점을 한다. 아직까지 이런 멍청한 소리들이 선거에 큰 영향을 주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당신 좌파야?” 하면, “응, 나 좌파야” 하면 될 일인데, 일부 정치인들은 그렇게 불리길 꺼려한다. 이와 같은 수법으로 기업은 노동자를 체크한다. 기업은 툭하면 노조를 ‘귀족 노조’니 ‘강성 노조’니 몰아세우며 상식적이고 정당한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 기업이 망해도, 매출이 떨어져도 노조 탓이란다. 이게 말인가 싶은데, 이 말이 통하는 게 우리나라다. <송곳>은 이렇게 오랜 시간, 본의 아니게 우리 안에 유입된 노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있다. 그것도 ‘심각하게 재밌는’ 그리고 세련된 이야기로.
마냥 주저앉아 우는 대신 기억해야 할 대사
우리는 “열심히 안 해서 그러는 거야” 하는 소리를 들어가며, 괜히 자책하며 살아왔다. 회사에서는 눈치를 보고 월급날에는 순식간에 비어가는 통장이 참 속상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겨본 기억이 별로 없고, 잘나가나 못 나가나 노동을 하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살면서 한 번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어코 한 번은 이기고 싶을 때,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을 때…. ‘시시한 약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마냥 주저앉아 울고 있기는 싫다. 그때가 되면 <송곳>의 이 대사를 기억하고 싶다. “당장 가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사로부터 퇴사 압박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노조를 찾아주십시오.”
다만, 드라마 <송곳>이 해결할 문제가 있다. 드라마 <송곳>은 배경음악 라이브러리 업체 ‘주식회사 로이’와 음악 공급 계약을 했다. 로이는 작곡가들에게 저작권을 영구히 양도하지 않으면 회사를 나가라고 했으며, 멀쩡히 존재하는 저작권자를 유령처럼 내몰고, 소액의 ‘창작지원금’을 주면서 저작권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 작곡가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름까지 지우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송곳>부터 먼저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싸웠으면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송곳’에 찔릴 수도 있으니까.
"박근혜, 6월 항쟁도 IS 테러에 빗댈 건가"
박근혜 대통령은 투쟁에 나서면 끝장을 본다. 투쟁을 입으로 하지 않는다. 끝장을 보기 전엔, '립 서비스'로라도 '이제는 투쟁이 끝났다'라곤 하지 않는다.
박근혜의 거리 투쟁
10년 전에 알아봤다. 지난 2005년 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사학 이사장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법안이었다. 박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장 및 이사를 지냈다. 1980년대에 입시 부정 및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영남대를 떠났었다. 박 대통령은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할 말이 많았을 게다. 박 대통령은 '사학 민주화'를 주장해 왔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해 '해충'이라고 불렀다.
법안 통과와 함께,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53일 동안 거리를 누빈 뒤에야 국회로 들어왔다. 그래도 투쟁을 접지 않았다. 사학 기득권을 공유하는 종교계와 연대 투쟁을 했다. 목사들이 승려처럼 삭발을 했다. 결국 사학법은 지난 2007년 7월 재개정됐다. 사학 이사장을 견제할 수 있는 조항은 대부분 삭제됐다. 사학 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장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비리 사학은 잠깐 민주화의 봄을 맛볼 듯 했으나, 다시 '이사장 독재'의 겨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계속 한겨울이다.
10년 전, 비리 사학을 몇 곳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세상이 꽤 민주화됐다고 믿었는데, 사학은 예외였다. 민주의 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 그게 사학이었다.
비리 사학, 역사부터 새로 쓴다
대부분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역사를 새로 쓴다. 친일파, 군부 독재의 말단 부역자, 비리 기업인, 세금이 싫었던 땅 부자였던 초대 이사장을 완전히 새 사람으로 둔갑시킨다. 역사 날조다. 그걸 학교 구성원에게 가르친다. 역사는 하나뿐이므로, 의문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 단계를 지나면, '신성화' 작업을 한다. 초대 이사장은 '반인반신'쯤 된다. 교사를 동원해 이사장 가족 묘소의 풀을 뽑게 하는 건 예사다. '반인반신'의 묘소에 난 풀을 뽑는 걸 오히려 영광으로 알라는 식이다.
그리고 학교 운영 정보를 꽁꽁 숨긴다. 그러니까 토론도 없다. 뭘 알아야 묻고 대답할 게 아닌가. 교무실엔 교장의 지시, 그리고 받아쓰기만 있다.
그래도 굳이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전교조 소속 교사다. 이사장 측은 이들과 투쟁한다. 이념이 달라서 싸우는 게 아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 가운데서도, 보수적인 이들이 꽤 있었다. 전교조 영향력이 컸던 노무현 정부 시절엔 더 그랬다. 이사장 측이 싫었던 건 이념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묻고 따지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게 싫었던 게다.
투쟁에 나서면 끝장을 본다. 방식도 대개 비슷하다. 첫 단계가 '왕따'다. 따져 묻는 교사를 고립시킨다. 다른 순수한 교사와 다른, 이상한 교사라는 낙인을 찍는다. 거기서 성공하면, 다음은 쉽다. 징계와 소송이 이어진다.
3년 전의 의문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내걸었을 때, 사학법 재개정 투쟁이 생각났었다. 사학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는 얼개가 거의 같다. 사학 이사장의 권한을 법에 따라 규제하자는 게 '사학 민주화'였다. 아울러 사학 운영에 다양한 학교 구성원이 참가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자는 거였다. 같은 논리를 재벌 총수에게 적용한 게 '경제 민주화'다. 그런데 사학 민주화를 극력 저지했던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내건다? 이상했다. 그래서 박 후보 측이 경제 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입했던 김종인 박사에게 물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옮긴다. (☞관련 기사 : "내 나이가 몇인데, 누구 밑에서 심부름 하나")
"프레시안 : 경제 민주화도 결국 민주화 아닌가. 그러니까 다른 영역의 민주화와 동떨어진 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부문에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데 경제만 민주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박 후보는 다른 정치, 사회 영역에선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낮아 보인다. 예컨대 사립학교법 문제를 보자. 이사장의 전횡을 막는 '사학 민주화'와 관계가 깊다. 하지만 박 후보는 사학 개혁에 몹시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박 후보는 사학 개혁을 '이념 투쟁'이라고 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립학교 교사, 학생들에겐 삶의 문제다. 사학 민주화는 반대하면서 경제 민주화만 하자는 논리가 과연 성립할까. 사학 개혁 등 다른 문제에선 기득권층을 옹호하던 사람이 재벌 문제에서만 반대 입장을 취한다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말이다.
김종인 :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어차피 대선 후보가 모든 분야를 샅샅이 알 수는 없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지도자의 덕목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역사책을 많이 읽어서 국가의 흥망성쇠를 꿰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가 원칙을 갖고 사람을 잘 골라 쓰면 별 문제 없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은 "원칙을 갖고 사람을 잘 골라" 쓰지 않았다. 임기 초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여대생을 성추행 했다. 그 뒤로도 온갖 인사 참극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 민주화'는 이제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대선으로부터 고작 3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렇다.
박 대통령은 아직 끝장을 못 봤다
이젠 선명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 나라가 족벌사학처럼 되길 원한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시절의 영남대처럼 되길 바란다. 10년 전,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며 장외 투쟁에 나섰던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학교에 민주주의가 들어서면, 기업과 정부 역시 영향을 받는다. 그럼 민주주의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가 만든 세상은 민주의 물결에 영원히 떠내려간다. 그래서 10년 전, 박 대통령은 그토록 가열 차게 투쟁했던 게다.
박 대통령이 최근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해 복면을 하고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IS(이슬람 국가) 테러리스트에 빗대는 말을 했다. 여당은 복면금지법을 추진하고, 정부는 법 통과와 관계없이 처벌을 강화한다고 한다.
복면을 금지하면, 그걸로 끝날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투쟁에 나서면 끝장을 본다. 그 다음엔 시위 자체를 막으려고 들 것이다. 그 뒤엔 '다른 의견'을 찍어 누르고, 따지고 묻는 걸 죄악시 할 게다. 박 대통령이 10년 전에 거리투쟁으로 지켜냈던 비리 사학이 대개 그랬다.
복면 싫다면, 최루액부터 금지하길

▲ 1987년 6월항쟁 당시 연세대학교 앞에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최루탄 피격 직후 모습을 정태원 당시 <로이터> 기자가 촬영했다. 이한열 열사를 안고 있는 학생도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한열 열사 역시 다른 사진을 보면, 이날 집회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수건 혹은 마스크는 최루탄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최루탄으로 인한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정태원
'전문 시위꾼'이라서 자기 얼굴을 숨기려고? 아니다. 박 대통령과는 다른 방식으로 19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답을 안다. 최루탄 냄새가 너무 독해서다. 그래서 얼굴을 가린다. 6월 항쟁 당시,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섰던 시민과 학생 역시 박 대통령이 보기엔 IS 테러리스트 같았을까. 궁금하다.
지금도 마찬가지. 박 대통령이 나무랐던 지난 14일 집회에서 경찰은 종전 집회의 5배에 달하는 물을 사용했다. 그런데 최루액(PAVA, 파바)는 종전의 14배를 썼다. 최루액 농도가 훨씬 높았다는 뜻이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파바'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눈에 닿거나 입으로 삼키면 '매우 유해'하다. 코나 입으로 호흡할 경우는 '유해'하다. '심각한 과량 노출'은 사망을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시위 참가자들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토록 복면이 싫다면, 최루액(파바) 사용부터 금지하겠다고 약속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박 대통령은 시위에 참가한 시민의 복면을 벗기는 걸로는 '끝장'을 봤다고 여기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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