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N포 세대'를 만나다

일취월장7 2015. 12. 5. 11:45

"우리도 모르게 자학코드가 나와요"

[민들레] 'N포 세대'를 만나다
정가람 극작가 2015.12.04 15:43:43
살면서 나의 윗세대와 아랫세대에 대한 관심을 둬본 적이 별로 없다. 순간순간의 나 자신에 집중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20대는 당연히 그렇고, 결혼 후 아이를 낳아 키우는 30대는 더더욱 그러했다. 막내의 세 돌과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이 가까이 오자 아이에게 묶여 있던 두 손이 드디어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그 자리엔 내 아이들이 들어갈 세상과 지금의 내가 이어받고 물려줄 사회에 대한 걱정이 묵직하게 들어섰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그려보니,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운 40대와 내 뒤를 이어 아이를 키울 20대가 보였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배들은 '강남 엄마'로 지칭되는 40대가 되어 '중2병'에 걸린 무서운 10대를 키우고 있고, 부럽던 청춘의 20대는 3포, 7포를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산다는 'N포'세대가 되어 있었다.

▲ '포기세대'가 된 대한민국 미생들은 오늘도 '내 탓'을 한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tvN


20대를 만나다

얼마 전 남편의 직장에 다니던 20대 중반의 연구원 이수정 씨(가명, 26세)를 만났다. 오가며 얼굴을 익히고 안부 인사를 건네는 정도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쓰이는 동생 같고 후배 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밥 한 끼 먹자 전화를 걸었다. '사회적경제 지역특화사업단'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곳을 첫 직장으로 다니다 얼마 전 여러 이유로 사직 후 쉬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러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요즘 어때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다들 얘기하는 것처럼 희망이 없어요."

사회생활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자금 대출이 거대한 산처럼 남아 있다고 했다. 자신도 올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데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공대 신입생이 된 남동생을 위해 자취방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동생과 함께 살 집까지 마련한 수정 씨는 대출금에 장녀의 책임감까지 짊어진 채 다시 취업준비생(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나와 띠동갑인 1990년생이 들려주는 20대는 나의 20대와 참 많이 다른 얼굴이었다.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스펙트럼이 넓다고 해야 하나? 자기 힘으로 일어선 애들도 있긴 한데, 요즘 '금수저' '흙수저' 그러잖아요? 그게 확 보여요. 되게 심해요. 빈부의 차이가 엄청나요. 집안 형편에 따라 20대 일하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요. 잘되는 애들은 정말 잘되고, 안 되는 애들은 계속 안 되고."

"희망이 없다"는 그 친구의 입에서 "가난"이란 단어까지 이어진다.

"아빠가 IMF 타격을 제대로 받았죠. 그때 빚 엄청 지고. 일곱 살 때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가 지금도 가끔 그때 얘길 하세요. 한 달에 30만 원 가지고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다고. 못 먹은 건 아닌데, 진짜 싼 것만 먹었어요. 먹고 싶은 게 있는데 엄마는 못 사주고…. 그래서 동생이랑 저랑 먹는 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학교에서 급식지원을 받았는데, 가난하다는 게 너무 창피했어요. 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매일 싸우니까 돈이 가족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걸 어렸을 때 강하게 깨달았죠. 그래서 좀 없는 사람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생겨서 사회적 경제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도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주 강해요."

스무 살에 대학에 들어와 IMF를 겪었던 나와 달리 부모님 그늘 아래서 한참 자라야 할 일곱 살이 겪은 IMF의 차이는 생각보다 아주 컸다. 어쩌면 지금의 20대는 '한글'보다 '돈의 무서움'을 더 먼저 깨치지 않았을까.

경쟁의 시기 10대와 불안의 시기 20대

"중학교 갈 때 되니까 엄마가 그러셨어요. 넌 꼭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벌어라. 그래서 공부에 올인(all-in)했어요. 다행히 공부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았고, 공부 외에는 답이 없는 거 아니까, '무조건 서울로 가자' 하면서 정말 공부만 했어요.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집에 돈 없는 거 아니까, 아예 말도 못 꺼내고 혼자 해야 했어요."

내 10대 시절, 대학은 꿈을 위한 관문이었다. 그러나 수정 씨에게 대학은 성공으로 가는 절실한 수단일 뿐이었다.

"뭔가 될 것 같아서 희망을 품고 죽어라 공부했는데, 20대가 되니까 너무 다른 세상이 펼쳐져서 암담해요. 좌절, 절망, 자학만 남은 것 같아요. 30대가 되어도 지금하고 별로 달라질 거 같지 않아서 더 포기하게 돼요."

그런 20대에게 기성세대는 "해보지도 않고 나약한 소리 한다", "눈이 너무 높아 그런 거다" 하며 모진 소리를 던진다.

"대학만 오면 뭔가는 될 줄 알았는데 계속 어렵고,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온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건 너무 어렵기만 해요. 어른들은 '눈이 높아서 취업이 어려운 거다' 그러잖아요. 월 200만 원이라도 벌어서 학자금 갚고, 전세금 이자 내면서 살고 싶은데, 그것도 욕심이라고 질책하니 답답해요. 친구들 중엔 너무 취업이 안 되니까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월급 조금 받으면서 살까?' 그러기도 하는데, 제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살 거면 공부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나, 대학엔 왜 왔나,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눈을 낮추기엔 노력한 게 너무 아까워요."

유년을 지배한 가난, 불안의 기억은 10대를 지나 20대까지 이어지면서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꿈을 위해 용기를 내는 청춘의 초상을 밀어내고 '안정적인 삶을 위한 직장'에 대한 강한, 불안한 갈구만 남겨버렸다.

"저처럼 자존감 낮고 위축된 애들도 있지만, 안 그런 애들도 있어요. 학자금 대출 없고, 집안 문제도 없고,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어디서든 당당한…. 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게 꼭 성격 탓만은 아닌 거 같아요. 졸업과 동시에 3000만 원이라는 빚이 생기니 어디 가서도 당당하지 못해요. 학자금 대출이 남았다고 얘기하는 순간 자신이 너무 짠해지는 그 느낌이 너무 싫어요. 이 빚을 안고 연애, 결혼, 출산?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양극화가 심해져 서로 위로받지 못하는 20대의 초상은 '나만 고달픈 걸까? 힘든 걸까?'라며 한숨을 내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어른들 말에 '미쳤느냐? 아프면 환자지!'라고 받아쳐 보기도 하는데, 그건 그냥 해소일뿐이에요. 3,40대가 살았던 20대와 우린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계속 같은 잣대로 요구하고 위로하니까 우리도 모르게 자학코드가 나오는 거 같아요. 청년들이 힘들어진 건 사회 탓이 큰 거 같은데 자꾸 '내 탓'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화살이 나를 향해요. 어른들은 계속 잘살고 있고 우린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도 없고,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시간도 뺏겨버렸어요. 어른들이 요구하는 대로 키워져서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해져 버린 것 같아요."

1990년대 후반 IMF의 상처는 개인의 노력으로 회복될 작은 문제가 아닌데, 균형을 잃은 사회는 개인의 스펙으로 복원을 요구하는 듯하다. 가난의 불안 속에 내버려두었던 20대에게 IMF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성공만을 답안으로 제시하며 말이다. 기성세대의 갇힌 시선에 숨이 막히는 그들의 분노는 갈 곳을 잃고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

▲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패러디했다. ⓒtvN


지금 같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수정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돈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엔 그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금융 위기에서라도 이 사회 많은 어른들이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지금의 20대는 어땠을까.

"지금처럼 포기 먼저 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저래도 잘 사네. 저렇게 살아도 되네. 꼭 돈을 많이 벌고, 정규직이 되어야만 성공한 삶이 아니구나.' 그런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 20대인 우리도,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한숨 섞인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간절한 기도 같은 마음을 전해주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의 20대도 이렇게 힘든데, 과잉보호와 과잉교육 속에 더더욱 자생력을 잃어가는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이라는 수정 씨는 지금의 부모들이 그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한 20대의 이야기를 통해 1997년 경제위기 후 물질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 극단의 모습만 부각시켜온 양극화 사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과정의 소중함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 다그쳐온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수정 씨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일곱 살인 첫째의 20대를 상상해보았다. 모든 것이 넘쳐서 오히려 부족하게 키우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의도적인 결핍을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장난감, 책, 먹고 입는 그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이 부모가 만들어주는 평균의 유년기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계속 자란다면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어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서는 힘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부모 된 마음으로는 그저 막연하게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서 지금과는 다른 20대를 보낼 것'이라 믿고 싶지만, 사실 그도 자신이 없다. 기술적인 발전은 있겠지만,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적 문제로 개인의 삶은 여전히 힘들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일생에 찾아오는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다 막아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그러니 '세대를 잇는 중간다리 역할'을 부탁한 수정 씨의 말을 되새기며, 일단은 아이들이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조금씩 물러나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중간이 사라진 이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할지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긴 고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