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삼성에는 왜 '송곳'이 없나?

일취월장7 2015. 11. 19. 12:15

삼성에는 왜 '송곳'이 없나?

[삼바대회를 준비하며 ④] "노조를 만드는 게 착취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창립된 2013년 7월 어느 날, 각종 언론에 '75년의 삼성 무노조 역사가 깨졌다'는 뉴스가 떴다. 삼성 무노조 경영의 역사가 그룹의 역사만큼 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하는 헤드라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재벌기업이자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겨루는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을 ‘삼성 스타일’로 여기고 있으니,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바닥을 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삼성은 왜 무노조를 고집할까?

삼성전자는 소재-부품-조립-물류-판매에 이르기까지 과정의 모든 단계를 수직적으로 하청계열화하고 있다. 원‧하청 관계에서 이익은 위로, 비용은 아래로 집중된다. 원청은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하청은 더 아래의 하청이나 노동자의 임금을 후려친다. 따라서 아래로 갈수록 출혈적인 착취가 나타난다. 삼성전자가 이룩한 경영 성과의 원천은 사실상 중소하청업체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다.

이 출혈적 착취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무노조 상태다. 삼성이 계열사 뿐 아니라 삼성에 납품하는 업체에도 무노조 상태를 요구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이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방식인 '밴드 아웃'(납품관계에서 퇴출하는 것)의 사유에는 필요한 시기에 생산량을 잘 맞추지 못하거나 불량률이 높은 것뿐만 아니라 '노조가 생기는 상황'도 포함되어있다. 이렇듯 삼성의 무노조 정책은 삼성의 하청기업 전체와 삼성이 주도하는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의 삶이 나아지려면 이러한 출혈적 착취가 중단되어야 한다. 그런데 삼성이 저절로 이윤을 내놓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정당성이나 '말'만으로 삼성을 바꿀 수는 없었다. 문제는 삼성이 변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었다. 2013년 결성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삼성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안은 노동자들이 뭉쳐서 힘을 키우고, 활발한 사회운동과 국민적인 여론이 뒷받침되는 것이었다. 

ⓒ 반올림


노동자들의 목소리 "삼성에도 노조 필요해"

삼성은 역설한다. "우리는 무노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무노조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무노조 경영은 지금껏 큰 사건·사고 없이 평화롭게 유지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견고한 무노조 경영 방침을 송곳처럼 뚫고 나온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삼성은 끊임없이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탄압하며, 노조에 대한 나쁜 인식 확산에 앞장서왔다.

삼성은 또한 주장한다.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필요 없습니다. 늘 최고의 대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만난 노동자들은 '삼성맨'이라는 미명 하에 가려진 문제들을 고발하기도 하고, 삼성을 위해 일하지만 협력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여기 전한다.

삼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노동자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문제 제기를 틀어막아버리는 것'이에요. 업무 능력보다는 '삼성에 대한 충성심'이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되죠. (에버랜드 노동자 조○○)

1994년쯤, 브라운관을 만드는 공정에서 브라운관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노동자들은 안전을 위협당한 것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로 작업을 거부했어요. 공장장은 금세 사원들의 요구안을 들어주겠다고 나섰지요. 하지만 현장 상황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작업 거부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차례로 퇴사 조치된 것이었습니다. 노동자 편을 든다던 노사협의회도 실제 현장에서 일이 터지면 회사 편을 들었어요. (삼성 SDI 노동자 김○○(2000년 해고))

삼성에서 매각된 기업 노동자들의 목소리

우리 회사가 매각된 사실을 작년 2013년 10월 23일 아침에 출근해서 알았어요. 어제까지 삼성직원이었는데 출근하니까 하루 아침에 코닝에 넘어갔다고 들었어요. (…)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니, 내가 회사를 29년을 다녔는데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을 다 합쳐서 10명도 못 봤어요. 40~50대 전에 퇴사를 했다는 거죠. 회사는 한 번도 자기들이 구조조정해서 내보냈다고 인정을 한 적이 없어요. (코닝정밀소재(舊 삼성코닝정밀소재) 노동자 신○○)

팀장 앞에서 인권을 너무 무시하고, 상의 없이 결정하고, 경쟁시켜서 고과로 돈 많이 주고 적게 주고 해서 동료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게끔 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요. (한화종합화학(舊 삼성종합화학) 노동자 송○○)

삼성의 협력(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목소리

김○○ 씨가 기억하는 모베이스는 '오늘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회사였다. "물량 변동이 있더라도 그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청소를 하더라도 5시 반까지는 현장에 있었는데, 여기는 뻑 하면 집에 가라고 하고, 사람을 잘랐어요" 사람을 수십 명씩 자르고, 무급으로 격주 근무를 시키다가도 물량이 많아지면 다시 알바를 수십 명씩 쓰고 급하면 새벽 2~3시까지 일했다.

모베이스 파견 노동자들은 3개월 혹은 6개월씩 계약을 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자동으로 퇴사와 입사를 반복한다. 모베이스에 인력을 공급하는 3개 파견 업체가 돌아가면서 퇴사와 입사를 시키고, 이 파견 업체들도 때가 되면 대표와 업체명을 변경한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퇴직금도, 연차도 받을 수가 없다. 그녀들이 일했던 모베이스 조립부 총 80여 사원 중 관리자를 제외한 정규직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삼성 휴대폰 케이스 제조사 모베이스 노동자 김○○ 씨 인터뷰)(<오늘보다>)

삼성 정규직 노동자, 한때 삼성이었다가 매각된 기업의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삼성의 비민주적 회사 운영과 지나친 경쟁 체제, 노동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구조 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삼성반도체 공장의 사례에서는 삼성이 노동자를 단지 생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외주‧하청 업체 노동자들은 고용 형태에서 삼성으로부터 배제되면서 저임금, 무권리로 일하며 삼성의 이윤을 늘리는 데에 희생당하고 있다. 글로벌 1위를 다투는 삼성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만을 받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만든 '삼성 유노조 시대'

제가 10년 정도 근무했는데, 노조가 생기면서 많은 게 변했어요. 우리는 점심 시간, 기본급, 업무 차량이 없었어요. 이제는 모두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건 다 집어치워도 돼요. 우리에게는 인격이 없었어요.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없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삼성 관리자들에게 개무시를 당하고 쌍욕을 먹으면 같이 항의할 수 있는 수많은 동지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는데, 이제 희망이 생겼어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박○○)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에서 최초로 대규모(1000명)로 설립된 민주 노조다.(기존에도 일부 삼성 계열사들에 대규모 노조가 있었으나 모두 회사에 순응하는, 소위 어용 노조·친사 노조였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자신들과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없기 때문에 책임도 없다고 발뺌했지만, 노동조합의 끈질긴 투쟁과 사회운동의 열정적 연대는 이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어 삼성을 움직이고, 임금·단체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 이후에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한다. 우선 완전 성과급제였던 임금 체계에 기본급이 생겨 최소한의 안정성이 마련되었다. 개인차 대신 회사차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유류와 통신비를 보장받게 되었다. 노조 사무실, 전임자, 교육 시간 등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확보했고, 막가파식 노무 관리와 숨 막히게 억압적인 평가 제도에 제동을 걸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주말에 쉴 수 있게 되면서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무엇보다 동료들을 경쟁 대상이 아닌 협력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스스로를 회사의 노예가 아닌 주체적인 노동자로 정체화하면서 자존감이 생겼다. 이 모든 것이 노동조합이 만들어낸,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마법 같은 희망이다.

더 많은 노조, 함께 잘 사는 길

결국 분명한 사실 하나는, 더 많은 노조를 만드는 것이 노동자가 착취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더 잘 사는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무노조가 하루아침에 깨질 리 없다. 우리는 이제 유의미한 발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자본의 권력은 공고하게 조직되어 있고, 노동자는 끝없이 분산되어있는 현실. 중심부와 주변부가 점점 더 멀어지고, 다른 세계로 조직되는 현실. 삼성을 비롯한 자본이 만들어온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노동조합의 권리를 확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숙제다.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례를 성공하고 지켜내는 것, '감춰지고 주변화된 노동'을 주목하고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것, 공고한 삼성의 권력에 맞서 우리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인 운동을 조직하는 것,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들어가는 것,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만나고 목소리를 듣는 것, 국민들의 지지를 모아가는 것.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노동조합, 사회운동이 꾸준히 해 나가야 할 일이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앞으로도 노동자들과 함께 현실 속에서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