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 사업 원점 재검토 필요한 이유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핵심 기술의 국내 이전이 어려워지면서 전체 사업계획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의문점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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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승인 2015.11.16 03:41:41 |
한국형 전투기 사업이 추락하고 있다. 10년간 개발 비용만 8조원 넘게 소요되는 KF-X 사업(보라매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KF-X 전투기에 탑재할 핵심 기술의 국내 이전이 어려워지면서 전체 사업계획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예산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원안대로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에게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미국에서 들여오기로 한 기술을 국내에서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 2025년까지 시제기 6대를 만들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체 개발해야 할 기술은 늘었는데, 사업 예산과 기간은 그대로다. 지난 10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 동행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미국에 재차 기술 이전을 요청했다가 면전에서 불가 통보를 받았다. 김관진 실장 말대로라면 이 같은 ‘외교적 굴욕’을 겪을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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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사업은 항공·전자·신소재 등 첨단 산업에 파생효과가 크다. 그만큼 엄청난 사업비가 소요된다. |
‘4대 핵심 기술’을 우리 기술력으로 개발할 수 있느냐가 진실 공방의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KF-X 사업의 속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전문가들은 애초 KF-X 사업이 ‘아슬아슬한 전제조건’ 아래서 추진되었다고 설명한다. 다른 나라와 협력해 비용을 줄이고, 미국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험난한 조건이었다. 그 밖에 사업상의 불안 요소도 많았다.
KF-X 사업은 전투기 완제품을 수입해왔던 한국이 직접 전투기 생산 기술과 설비를 구축해 전력화하는 프로젝트다. 자동차 산업이 철강·고무·유리 같은 부가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는 것처럼, 전투기 사업도 항공·전자·신소재 등 첨단 산업에 파생효과가 크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 사업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12년이 지난 2014년 12월에야 사업 추진이 확정되었다. 결정이 늦춰진 것은 비용 때문이다.
전투기 개발은 첨단 산업을 집약하는 일이다. 실전에서 쓸 만큼 완성도를 높이려면 엄청난 사업비가 소요된다. 방사청이 추산하는 KF-X 개발 비용은 약 8조8000억원, 대량생산하는 비용까지 따지면 총 18조원이 넘는다.
그래서 대개 전투기 개발 사업은 국가 간 합작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KF-X 사업도 우리나라가 전체 개발비의 60%를 책임지는 구조다. 20%는 인도네시아가, 나머지 20%는 국내외 민간 업체에서 투자하기로 되어 있다(인도네시아와 민간 업체의 투자가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KF-X 사업이 넘어야 할 세 가지 장애물
비용 문제 등이 해결되더라도, KF-X 사업은 크게 세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먼저 ‘시간 제약’이 문제다. KF-X 사업은 수명이 다한 공군의 낡은 전투기를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전투기는 통상 10년 주기로 새 기종을 도입한다. 10년 뒤 도입해야 할 물량과 기종을 정하고, 이를 미리 선정해 발주하는 식이다. KF-X 사업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F-X 3차 사업’도 10년 후(2020년대) 필요한 전투기를 수입하는 사업이다. 2013년 F-X 3차 사업 선정 기종으로 미국 록히드마틴 사의 F35가 선택되었는데, 이때 구입 조건으로 KF-X 개발에 들어갈 핵심 기술을 이전받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이 같은 구입-개발 연계 계획을 ‘절충교역’이라고 부르는데, 후발국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로 평가된다.
예정대로라면 10년 후 우리 공군은 F35와 KF-X가 주력 전투기종으로 투입된다(26쪽 <그림> 참조). 그런데 이 말은 이때까지 전투기를 만들지 못할 경우, 공군 전력에 공백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KF-X 사업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은 당장 이 위험을 걱정한다. 항공기술 선진국도 20년 이상 걸리는 전투기 개발을 우리가 10년 만에 끝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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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정부는 원안대로 KF-X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KF-X 사업을 주관하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왼쪽부터). |
기술력과 영업 환경이라는 제약도 있다. 이 두 가지 제약은 KF-X의 ‘스펙’ 때문에 발생한다. KF-X 사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KF-X를 ‘괴물 전투기’에 비유한다. 애초 KF-X가 목표로 삼은 ‘스펙’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KF-X는 제트엔진을 두 개 달고(쌍발식), 기술 개발이 어려운 전자식 레이더를 장착한 ‘최첨단 고급 전투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기술력을 놓고 봤을 때, 현실화하기에는 목표치가 너무 높다. 국방기술품질원의 <국방과학기술 조사서>에 따르면, 국내 전투기 기술 수준은 2012년 기준으로 미국 대비 73%에 불과하다. 전 세계 13위인데, 인도(75%)나 이스라엘(79%)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기술력은 부족한데 기술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개발 기간 및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KF-X는 당초 ‘중급 전투기’를 목표로 했다. 향후 외국에 팔 때 틈새시장 공략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최고 등급의 전투기는 미국·러시아 등 항공 강국 사이에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펙을 최고급으로 높인 현 KF-X는 중급 전투기 시장에서 포지션이 애매하다. 많이 팔수록 대당 생산비가 하락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수출 물량을 늘려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수출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대당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전투기를 구입해야 하는 우리 군의 비용도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KF-X 사업이 추진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항공우주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는 ‘명분’이다.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주변국이 자체 전투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수입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항공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하면, 기술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명분은 KF-X 반대론 측에서도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전투기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전투기를 수입·유지하는 비용이 자체 전투기를 개발하는 비용보다 비싸질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됐다. 국산 신종 무기를 개발하더라도 이를 수입 전투기에 탑재하려면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개발이 경제적이라는 주장도 KF-X 찬성론의 주요 논거다.
결국 지금 핵심 쟁점은 국내에서 4대 핵심 기술 개발이 가능한가의 문제다. 방위사업청이 자체 개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기술 중 가장 논란이 큰 것이 AESA(에이사) 레이더다. 레이더를 통한 ‘탐지 능력’은 전투기 기술의 핵심이다. 지상 타격은 물론, 전투기 간 대결에서도 누가 먼저 상대를 찾아내고 조준하는지가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만큼 항공 선진국들도 최첨단 에이사 레이더 개발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였다. F-X 3차 사업에 입찰했던 유로파이터만 해도 개발 및 테스트에 총 22년간 약 3조원을 투자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레이더 개발을 총괄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2015년 에이사 레이더 개발 예산은 총 118억원, 2016년 예산은 총 74억원에 불과하다.
방사청의 호언장담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걸까. 핵심 기술 개발에 호의적인 전문가들은 ‘하드웨어’가 이미 시제품 수준으로 제작되어 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둔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기계를 전투기 전체 시스템과 통합하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레이더 작동을 확인할 ‘테스트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원래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으려던 기술이 이 두 가지 요소였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부족한 소프트웨어 기술만 해외 업체로부터 도입하면 나머지는 자체 개발로 충분하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방사청의 해명을 뒤집는 주장이 나왔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11월2일 “2014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주관 항전장비 기술성숙도 평가 결과 체계 개발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았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국내 개발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반박 자료를 발표했지만, “2014년 KISTEP 보고서에 에이사 레이더 국내 개발이 어렵다는 내용은 있으나…”라며 관련 사실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또한 방사청은 “국방기술품질원의 <국방과학기술조사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에이사 레이더 기술은 선진국 대비 약 65%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방사청 주장만 들어보면 기술력이 어느 정도 축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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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해당 자료에 나온 국내 기술 수준은 2013년 기준 63%였다. 또한 이 조사 자료에서 60% 미만은 ‘기초 수준 또는 미보유’로, 60~70%는 ‘응용연구 형태로 연구 중’으로 분류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60% 수준은 ‘시험개발 연구 단계’(70~8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군 관련 연구단체가 지속적으로 ‘어렵다’고 평가하는 기술 개발을, 방사청과 레이더 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만 자신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레이더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KF-X 사업은 심각한 좌초 위기에 처해 있다.
KF-X 사업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KF-X 사업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KF-X 사업은 현 시점에서 대안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추진해야 한다. 방법이 틀렸다고 해서 방향(국산 항공기술 발전)마저 전환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전투기 사업은 흔히 ‘대통령의 사업’으로 불린다. 국가 전체 예산의 막대한 부분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기 때문에 사업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직접 입법부와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사업 유지론자와 원점 재검토론자 모두 한목소리로 정부의 정무적인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여론 앞에서 사업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KF-X 사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지난 4월 방사청에 ‘절충교역’ 무산을 알렸지만, 청와대에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6월이었다. 대통령 보고가 누락됐고,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일을 무마했다. 10월27일 대통령이 기존 안을 고수하면서 아무런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도 사업 추진 의지를 의심케 한다.
‘대통령의 시그널’이 실무진에 끼친 악영향
이 같은 ‘대통령의 시그널’은 결국 사업을 추진하는 실무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항공 분야의 한 전문가는 “엔지니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움직임은 책임 방기로 읽힌다”라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만 봐도 정부가 정말 사업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방위사업청이 1681억원을 신청했지만, 이걸 기재부에서 670억원으로 삭감해서 예산을 신청했다. 정부에서 정말 의지가 있다면 기재부에서 이 정도로 삭감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키는 결국 정권이 쥐고 있다. KF-X 사업은 군 핵심 전력 사업이라는 점 때문에, 사업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확인하기가 어렵다. 어느 하나라도 삐끗할 경우 의혹이 무성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정부가 사업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사업에 힘이 실린다. F35 도입 과정에서 내홍을 겪은 캐나다의 경우, 감사원이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기 때문에 캐나다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 사안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28~30쪽 관련 기사 참조). 앞으로 10년 동안 이 사업이 재앙이 될지 혹은 항공 강국이라는 꿈을 실현할 지름길이 될지는, 지금 이 사업을 어떤 방향으로 다잡느냐에 달려 있다.
캐나다가 F35 사태를 수습한 비결
캐나다 자유당이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F35 전투기가 있었다. 캐나다는 F35를 둘러싸고 벌어진 국론 분열을 투명한 정보공개와 국민의 감시로 수습했다. 뒤에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야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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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승인 2015.11.16 03:40:52 |
지난 10월19일 열린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이 하원 전체 의석 338석 중 184석(득표율 39.5%)을 차지해 압승했다. 집권 보수당이 기존 의석보다 60석이나 적은 99석(득표율 29%)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제1야당이던 신민주당은 겨우 44석(득표율 13%)을 확보했다. 자유당의 승리로 캐나다는 1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2011년 총선에서 겨우 34석을 건지며 창당 이래 처음으로 제3당으로 떨어졌던 자유당이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데에는 F35 전투기가 큰 역할을 했다. 쥐스탱 트뤼도 신임 총리와 자유당은 ‘집권당의 F35 스텔스 전투기 구매 계획을 취소하겠다’는 것을 이번 선거의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캐나다의 숙원 사업이자 동맹국 미국과의 협력 사업을 전면 취소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캐나다 공군은 1983년, 미국 군수기업 맥도널더글러스 사의 전투기 80기를 도입해 사용해왔다. 이른바 CF18이다. 그러다 1997년, 역시 미국 회사인 록히드마틴으로 거래처를 바꿨다. 록히드마틴과 계약하면, 전투기 꼬리날개 부품의 하청 생산을 캐나다 기업들에 맡긴다는 조항이 결정적 유인이었을 것이다. 이 전투기의 개발이 완료 단계에 접어든 2010년 7월, 캐나다 국방부는 공대공 요격용으로 F35(캐나다에서는 CF35라 부른다) 65기를 구매한다고 발표했다. 인도 시점은 201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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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마틴 제공 전투기는 계약 시점에 가격이 결정되지 않는다. 개발에 추가로 들어간 자금과 기간을 모두 반영한 가격이 최종 가격이 된다. 위는 F35 시제품. |
그러나 이 계획이 나온 뒤 캐나다는 엄청난 국론 분열에 시달리게 된다.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집권당인 보수당의 하퍼 총리는 노후화된 CF18 80기를 CF35 65기로 교체하는 데 모두 160억 달러가 든다고 발표했다. 전투기 구매 가격 90억 달러와 이후 20년 동안의 운영유지 비용(70억 달러)을 합친 액수다. 1기당 2억4600만 달러가 필요하니 대단히 비싼 전투기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생산지인 미국에서 F35 프로그램이 구설에 오르면서 캐나다 정치권은 폭풍우에 휘말리게 된다. 2011년, 당시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예비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F35 프로젝트를 “사실상 비극이자 스캔들”이라고 부르며 강력히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2000년대 초부터 10년 동안 무려 560억 달러를 록히드마틴의 F35 프로젝트에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까지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록히드마틴은 엄연한 민간 기업이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미국의 국방력과 관계된 군수기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투기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뿐 아니라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약 시점에 가격이 결정되지 않는다. 군수기업 측은 개발에 추가로 들어간 자금과 기간을 모두 따져서 이를 반영한 가격을 청구할 수 있다. 전투기 개발을 지원하고 완성품을 납품받는 미국 정부 처지에서는 군수기업을 적절히 통제해서 예산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개발 프로젝트가 계속 지연되고 이에 따라 가격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이니, 매케인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정보공개 안 하는 정부, 의회모독죄로 규정
그런데 이는 캐나다 정부가 F35를 구입하는 비용 역시 당초의 계획을 훨씬 웃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후 캐나다 정계에서는 F35 비용의 현실성과 투명성을 둘러싸고 끝없는 논쟁이 전개된다. 캐나다 언론들은 이를 ‘F35 스캔들’로 부르며 연일 기사를 내놓았다. 캐나다의 한 정치평론가는 “F35의 비용 문제는 정쟁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정계는, 집권 보수당의 찬성 의견과 자유당·신민주당(최근 총선 이전까지 제2당이었던 좌파 정당) 등 야권의 반대 의견으로 첨예하게 분열되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캐나다 야당들은 의회가 열릴 때마다 보수당 정부를 격한 어조로 비난했다. F35 프로젝트의 비용 관련 질의 문건만 20여 차례 제출했다. 이에 하퍼 내각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한 것은 큰 실수였다. 야당들은 급기야 2011년, 정부의 자료 제출 거부를 의회모독죄로 규정하면서 정부 불신임 의안을 제기했다. 이는 본회의에서 ‘찬성 156표 대 반대 145표’로 가결됐다. 정부가 의회모독죄로 불신임당한 것은 캐나다 역사상 최초였다. 이처럼 야당이 물고 늘어진 결과, 캐나다 정부는 2012년 국방부와 별도로 F35 구매를 감독하는 조직을 설치했다.
이렇게 논란이 이어지던 끝에 결국 캐나다 회계감사국(AGC)이 나섰다. F35의 정확하고 객관적인 비용이 투명하게 추산되고 알려져야 국가 차원의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회계감사국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조직으로 정평 높으며, 조사 결과를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세계적 회계법인인 케이피엠지(KPMG)에도 비용 추산을 의뢰했다.
그런데 2012년 11월, 회계감사국이 의회에 보고한 결과는 캐나다 시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총비용이 보수당 정부가 당초 산정했던 160억 달러의 2배 이상인 458억 달러로 추산되었던 것이다. 구매 비용은 90억 달러로 정부 발표와 같았지만, 운영 비용이 200억 달러, 유지(수리)비 역시 133억 달러로 추정됐다. 이 보고서는, 사업 추진 주체인 캐나다 정부는 물론이고 반대파인 야권과 관계없는 독립적 외부업체 KPMG를 끼고 작성된 것이므로, 지금까지 나온 각종 자료 중 가장 객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의 한 정치부 기자는 “캐나다 국민들은 회계감사국의 발표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보수당이 세금을 물 쓰듯 사용했다는 의미니까…. 개인적으로는 이 발표 이후 자유당 쪽으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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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10월4일 취임식을 마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신임 각료들과 함께 국회의사당으로 가고 있다. |
캐나다 시민들은, 보수당 정부가 F35 프로젝트의 비용을 고의로 축소했다고 받아들였다. 심지어 캐나다의 F35 프로젝트 참여에 중추적 구실을 맡았던 앨런 윌리엄스 전 국방부 차관보까지 “돌이켜보면, 정부 관료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정보가 지난 2년 동안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왜 (F35 프로그램에서) 신속하게 발을 빼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라며 보수당 정부를 비난했다.
“더 개방적이고 투명한 방식 채택하겠다”
결국 보수당 정부는 2012년 말, F35의 구매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전투기 꼬리날개 부분을 하청받기로 했던) 캐나다 부품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시기에 구매 계획을 재추진하겠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보수당이 당시로부터 1년10개월 정도 남은 총선(2015년 10월)에서 승리하면 F35 프로젝트를 다시 논의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총선에서는 자유당이 압승을 거뒀고, 그 결과 캐나다의 F35 스캔들은 자연스럽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캐나다는 국책사업의 비용을 공개하고 이와 관련된 결단(F35 프로젝트 포기)을 내림으로써 국민적 신뢰와 정책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비용도 크다. 노후화된 캐나다 공군의 주력 전투기 CF18을 늦어도 내년부터는 서서히 퇴역시켜야 한다는 게 빼도 박도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토 회원국 중 가장 시급하게 신형 전투기를 도입해야 할 캐나다가 그동안 진행해온 F35 도입 계획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군은 침체기에 빠져 있다”라며 현재 운용 중인 CF18을 대체할 전투기 구매를 위해 더 개방적이고 투명한 경쟁 방식을 채택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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