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박근혜 발언' 지지했을 것입니다
"진실된 사람만 뽑아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된 사람'만 뽑아달라고 했습니다. 야당은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중하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선거에서 누군가를 지지하는 말을 하면 탄핵감이니 말조심하라는 것입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 9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대통령에게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습니다.
보통 이쯤되면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고 한 발 물러나는 것이 상례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선관위의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고 밝히고 앞으로도 계속 특정정당을 공개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튿날 새천년민주당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탄핵 안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하고,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에 탄핵안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청와대는 부당한 정치적, 정략적 압력이라며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뒤, 한나라당 의원 108명, 새천년민주당 의원 51명이 서명한 대통령 탄핵소추 안이 발의되었고, 국회는 탄핵소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후에 탄핵은 헌재 판결로 돌이켜졌지만, 공직선거법 9조 위반은 여전히 인정되었습니다.
"대통령도 정치적 기본권 있다"
2007년 6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선관위의 선거법 준수 요청 조치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공권력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안 되겠지만, 발언을 통해서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은 허용하자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면서 정치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참에 여당 당적을 가진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실로 용기있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낸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노 대통령 본인도 통과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비현실적인 법은 고쳐져야 하고, 누군가는 그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두드리다 보면, 마침내 정치적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법안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발언할 수 있다면, 하위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부당한 법 조항들, 예를 들어 정치적 발언의 금지, 정당 가입 금지, 후원금 납부 금지, 정치적 결사 등 노동 3권의 제한 등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말로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저렇게 대응해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권에 속한다. 나에 대한 탄핵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알 것이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자.
단, 우려될만한 부분이 없지 않으니, 개인적인 정치적 발언이 공권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더욱 명확하게 하자. 국정원이나 기무사와 같은 권력기관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대해서는 그 기준과 처벌을 더 엄격하게 하는 개정안을 함께 처리하자. 용기 있는 발언을 한 박근혜 대통령이 고맙다."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프레시안
노무현은 되지만 박근혜는 안 된다
노무현은 믿을 수 있지만, 박근혜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은 정치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상호 신뢰와 존중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나는 옳고 정의로우니 반드시 당선되어야 하고, 상대방은 어떤 식으로든 당선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게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치는 일순간도 쉴 수 없는 영원한 투쟁의 장이 되고, 국민들 간의 갈등은 합리성이 아니라 오로지 싸움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지금 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 야당이 빠진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세상에는, 그리고 정치에는 더욱 분명히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입장에서서 하는 운동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정치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자신들이 소수파일 때는 말입니다.
'원칙 없이 반대만 하는 야당'은 맞는 말
야당이 반대만 한다고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틀렸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안정행정위원회는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건배사 문제로 내내 시끄러웠습니다. 선거를 주관하는 장관이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쳤습니다.
선거중립 위반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의원들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 건배사를 한 것이고, 다른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건배사를 한 것이라서 문제될 소지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이고, 행자부 장관이 와서 같은 말을 했다면, "건배사 한 마디 한 것과 선거관리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새누리당은 말도 안되는 정치공세를 그만하라"며 장관을 감싸 안았을 것이라는 점도 확신합니다.
정종섭 장관은 물론 문제가 있습니다. 고향인 경주 출마를 강력히 부인하면서도 28억 원이나 되는, 다른 지역 평균의 3배가 넘는 특별교부금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엊그제 총선 출마를 시사하며 갑자기 장관직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이런 관행은 잘못된 것입니다. 야당은 정 장관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마땅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야당의 지지율이 올라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바로 야당이 착각하는 지점입니다. 국민들은 야당이 여당되어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당을 욕하면서도 야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 장관과 같은 일이 전혀 없었습니까?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인가요? 청와대 측근들과 장관들은 출마하지 않을 것인가요? 공천을 앞두고 출마예정지에 혜택을 준 공천신청자들을 철저히 골라낼 것인가요? 그것을 지금 선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당에 대한 비판이 자신의 표로 이어지려면 대안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야당은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일, 그리고 앞으로도 또 할 일들을 가지고 청와대와 여당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알고 있는데 본인들만 철면피처럼 같은 비판을 합니다. 누가 공감하겠습니까?
친일과 독재가 아닌 국정교과서는 괜찮은가?
교과서 국정화를 다루는 야당의 태도에도 원칙과 철학이 없습니다. '다원성을 부정하는 국정교과서 반대'와 '친일 독재 교과서 반대'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야당이 친일과 독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에서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당에게 '아직 교과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런 명분으로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는 말을 듣습니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야당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고 생각하는 교과서도 출간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당이 종북 교과서라고 간주하는 교과서가 출간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사 청산이 미흡한 현실, 분단이라는 정치적 한계, 교과서라는 특수성을 감한해, 당분간은 검인정 체제를 통해서 해석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또한 원칙적으로는 교과서를 자유 발행하는 것이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국가가 취해야 할 자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많은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만으로 불쾌해 할 것입니다. 친일 독재 교과서라고 해서 전선을 펼쳐야 유리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미래가 어두운 까닭입니다.
원칙과 철학이 있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막말정치를 그만두지 않으면 야당이 어려워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항변도 들려옵니다. 스스로 아젠다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여당이 아니고 언론환경도 나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당은 원래 반대를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성이 없는 반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정종섭 장관의 건배사에 야당이 원칙있게 대응하는 것, 그것이 야당이 대안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길입니다.
'저쪽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원칙과 철학이 있는 정당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면, 국민이 싫어할까요? 싸울 줄 모르는 정당이라고 할까요?
야당 스스로는 새누리당과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기득권에 연연하는 것을 보면, 두 정당은 별로 차이점이 없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새정치가 옳고, 저쪽에서 보면 새누리가 옳은 것 뿐입니다.
이념과 노선은 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민주화 이후 유권자 분포에서 진보/보수는 거의 5:5:로 비슷했습니다. 이런 선거 지형에서는 신뢰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원칙과 철학이 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공천 싸움,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는 정당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진화하는 양안관계와 퇴보하는 남북관계
지난 7일 중국의 시진주석과 대만의 마잉주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분단 후 최초, 66년만의 비공식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로써 중국과 대만은 양자 간 경제 관계 심화에 이어 정치 관계를 안정화하는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번 시-마 회담은 중국과 대만이 서로를 합법적 정부로 사실상 인정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에 따라 향후 양안 (비공식) 정상회담의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차기 총통이 된다 하더라도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대화에 의한 문제 해결 채널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양안의 심화된 경제 관계로 보아 현실적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 : 中 시진핑은 왜 레임덕 대만 총통을 만났나?)
(☞관련 기사 : 시진핑-마잉주 이벤트, 왜 성공했나? )
반면 지난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한국과 북한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퇴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2010년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한 5.24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경제 및 민간 교류가 끊긴 데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8.25합의로 남북 당국 회담이 기대됐으나 대북 전단 살포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쟁점화시켜 득표 전락에 활용하고 집권 이후에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등 종북 프레임을 국내 정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의 사상적 통제' 운운 하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시대착오적 폭거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반북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국내 정치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한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친일과 독재의 어두운 과거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친일 및 친미 세력이 주도해온 지난 70년 간의 한국정치사를 정당화함으로써 향후 영구 집권의 기반을 닦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해방 이후 계속돼 온 정권의 대외 예속성이 오늘날의 남북관계 퇴화 및 민주화의 역행을 초래한 것입니다.
시-마 회담의 성과
시진핑 주석이 마잉주 총통과의 회담에 응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내년 1월 16일 총통 선거에서 패배 위기에 놓인 국민당 주리룬 후보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습니다. 회담 이후 9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 후보와 주리룬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각각 48.6%와 21.4%,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32.7% 대 21.1%로 2배 내외의 격차는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관련 기사 : Taiwan, China summit makes no dent in opposition party support)
중국이 이번 회담에 응한 속내는 차기 대만 정권의 향방에 관계없이 양안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중국 관측통들은 이번 만남의 성과로 중국이 대만을 합법적 정치체로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을 꼽습니다. 역으로 대만이 중국을 합법정부로 사실상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 측은 상호 이견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한 셈이죠.
한 중국전문가는 차기 대만 총통으로 유력시되는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가 차기 이번 회담으로 2가지 이득과 2가지 문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개발은행(AIIB) 등 국제기구 참여의 길이 열렸고,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일단 제거한 것은 이득입니다. 반면 문제는 92공식(共識)을 거부하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그가 이러한 정치적 목표를 계속 추구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관련 기사 : Xi-Ma summit has changed the status quo)
92공식(共識)은 1992년 11월 홍콩에서 반민간 기구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회담한 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라 명칭을 사용(一中各表)' 하기로 한 합의로, 이후 양안 관계의 핵심원칙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에, 대만은 '각자 해석'에 방점을 두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치적 정통성에 대한 각자의 이견은 제쳐두고 평화로운 공존을 하자는 것입니다.
내년에 차이잉원 집권 후 92공식을 거부하고 대만 독립을 추진하는 경우 양안 관계는 중대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간 심화돼온 양안 경제 관계 때문에 이처럼 극단적인 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마잉주(馬永九) 대만 총통. ⓒAP=연합뉴스
심화되는 양안 경제교류, 관계 안정화의 초석
대만 GDP의 40%, 수출의 40%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4년 224억 달러였던 양안 무역액은 작년 1300억 달러(대만 340억 달러 무역 흑자)로 20년만에 5.8배 늘었습니다. 그동안 대만의 대중국 누적 무역흑자는 17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중국의 대만 투자액은 3억3460만 달러, 대만의 중국 투자액은 98억3000만 달러의 대만의 투자액이 중국의 29.4배에 달합니다. 대만인 200만 명이 중국에 상주하며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양안 간에는 매년 800만 명의 관광객이 오가며 매주 840편의 민간항공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양안 간 유학생도 4만 명이나 됩니다. 대만 경제가 압도적으로 중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때문에 대만 내에서는 대만 경제의 중국 예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양안 관계의 급격한 단절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만 출신으로는 처음 지도자에 오른(1988~2000년) 이덩후이 총통(국민당 소속)은 이러한 대중 경제 예속을 우려해 대만 기업들에게 중국이 아닌 베트남, 필리핀 등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지만 언어, 문화적 차이로 인해 대부분 실패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의 경험으로 대만 경제의 활로는 중국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죠.
따라서 내년이 차이잉원이 집권한다 해도 양안 경제 관계를 해칠 수 있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지난 10여 년 간 가속화된 양안 경제 교류가 정치 분야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양안 경제 관계가 가속화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체결된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입니다. 이후로도 양안은 23개의 경제 관련 협정을 맺었다고 합니다. 마잉주 총통은 지난 4월 대만을 방문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에게 이러한 양안 경제 관계 심화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압도적 경제력을 앞세운 경제 교류 확대를 분단국 관계 안정화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한국이 먼저였다는 얘깁니다.
(☞관련 기사 : 'DJ 햇볕정책' 본뜬 대만 양안정책 큰 성과)
남북 경제 교류, 양안의 55분의 1
하지만 현재 남북한 경제 교류는 극히 미미한 실정입니다.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교류가 전체 남북 교역액의 99.8%, 인적 교류의 99.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남북 교역액은 23.4억 달러로 양안 교역액의 55분의 1에 불과합니다.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GDP는 11조 2119억 달러로 대만(5278억 달러)의 21배 쯤 됩니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북한측 자료의 미비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40배라고 얘기됩니다(한국은 중국의 8분의 1 쯤 됩니다). 즉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남북 경제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애깁니다. 또한 남북 경제 교류 확대는 수백조 원에 이르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에게 좋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런 가능성을 외면해 왔습니다. 재고 쌀이 130만 톤이 넘어 쌀값을 떨어뜨리고 농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대북 인도적 쌀 지원을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반북 이데올로기와 종북 프레임이 정권 유지의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복지국가 등 사회경제적 정책에서 진보세력에 우위를 점할 수 없는 보수정권은 반북이데올로기와 종북 프레임을 정권 안보의 주요 무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이러한 종북몰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양안의 공산당과 국민당은 비록 내전을 치르기는 했지만 함께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맞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차례의 국공합작(1924~27년, 1938~45년)이 이를 말해줍니다. 비록 내전은 했으나 두 세력 모두 항일세력이었다는 것이죠. 같은 항일세력이었으니 비록 이념적으로는 대립했다 하더라도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극단적 대결은 없었습니다. 리영희 선생에 따르면 대만이나 중국의 교과서에는 상대방을 헐뜯는 내용이 일체 없다고 합니다. 이런 공통점이 양안 관계의 안정적 진화를 이루는 바탕이 된 겁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은, 비록 미미했다고는 하나, 항일 세력이었습니다. 한국은 이승만을 제외하고는 친일 세력이 정치세력의 중추를 이뤄왔습니다.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박정희도 대표적인 친일파입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주도적 정치세력은 역사적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기가 매우 어려운 입장입니다. 무리하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정통성의 결여를 은폐하기 위한 것입니다. 해방 이후 친일 및 친미 세력이 한국 정치를 주도해 온 역사적 부담이 바로 현재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반동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와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 해도 엄연한 역사적 진실은 은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치세력이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치부를 무리하게 가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아가 천하대란의 이 시점에 한반도의 안녕과 평화, 한민족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남북 화해와 국내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1%만의 행복을 위해 99%가 고통 받아야 하는 '헬조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박근혜는 안다 '경제 망하니 혼이 비정상인 자들 …'
정부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제 부총리가 3분기 경제 성장률을 놓고 "서프라이즈"라고 환호한다든가, 내년(2016년)에는 3.5%의 성장률을 달성하겠다고 또 한 번 호언장담했지만 실제로는 정부도 지금 경제가 매우 나쁘고, 내년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겁니다.
우선 지난 10월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기업 경영 분석>을 보시죠. 이 보고서는 국세청에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 중 금융 보험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니까,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반적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관련 자료 : 2014년 연간 기업 경영 분석)
[그림 1]은 이 보고서를 요약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우선 성장성 지표를 보면 매출액 증가율, 총자산 증가율, 유형 자산 증가율이 일제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익성 지표 역시 2010년 이후 추세적으로 악화하고 있습니다. 주로 금융 지표로 구성되는 안정성 지표는 다행스럽게도 위험한 상태가 아닙니다.
![▲ [그림 1] 기업의 경영 성과. <2014년 기업 경영 분석> ⅳ쪽. ⓒ한국은행](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51146/art_1447361453.jpg)
▲ [그림 1] 기업의 경영 성과. <2014년 기업 경영 분석> ⅳ쪽. ⓒ한국은행
국내외 수요 감소로 매출이 감소하고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평균적으로 재무적 파산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과잉 투자로 인한 금융 위기로 발전했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오랫동안 경기가 좋지 않아서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신흥 발전 국가에 대한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부문은 곧 깊은 불황에 빠져 들어서 파산의 위협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1월 1일에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의 '2015년 수출입 동향'은 이런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련 자료 : 2015년 10월 수출입 동향)
금년 10월의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8%나 감소했고 이는 패닉 상태에 빠졌던 2009년 8월(-20.9%) 이후 최대 감소폭입니다. 언론의 대대적 보도를 놓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10월에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고 해명했습니다만, [그림 2]를 보면 수출 증가율이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지면서 세계 교역 규모가 급격하게 축소했기 때문입니다.
![▲ [그림 2] 10개월째 마이너스 수출 증가율. '2015년 10월 수출입 동향' 4쪽. ⓒ산업통상자원부](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51146/art_1447361551.jpg)
▲ [그림 2] 10개월째 마이너스 수출 증가율. '2015년 10월 수출입 동향' 4쪽. ⓒ산업통상자원부
[표 1]을 보면 우리의 중화학 공업이 모두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특히 선박(-63.7%), 가전(-24.2%), 반도체(-7%) 등이 이미 위기에 빠졌거나 곧 위험해질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42.1%의 높은 증가율을 보인 무선 통신 기기마저 중국 제품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니, 2014년 기업 경영을 보여 준 [그림 1]마저 이 더 나쁜 모습으로 바뀔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 [표 1] 주요 산업 수출 감소폭과 원인. '2015년 10월 수출입 동향' 8쪽. ⓒ산업통상자원부](http://www.pressian.com/data/photos/20151146/art_1447361591.jpg)
▲ [표 1] 주요 산업 수출 감소폭과 원인. '2015년 10월 수출입 동향' 8쪽. ⓒ산업통상자원부
파시즘은 민주노총을 노리고 있다
1997년의 외환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를 겪은 한국의 관료들은 이제 위기를 관리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해서 "선제적 구조 조정"에 나선 것이고, 이를 위해 "노동 개혁"="일반 정리해고"를 법에 명시하려는 겁니다.
10월에 대기업에 대한 구조 조정 방침을 밝힌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소기업의 구조 조정 대상을 발표했습니다. 금년의 구조 조정 대상은 175곳으로 지난해에 비해 40% 증가했고, 2009년(512곳) 이후 가장 큰 숫자입니다. 이렇게 구조 조정 대상이 급증한 직접적 이유는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최근 3년간' 영업 활동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이거나 이자 보상 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을 선정했지만 이번에는 '최근 2년간'으로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으니까요. 즉, 정부도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 위기로 확대되는 걸 막으려고 하는 겁니다.
정부는 대기업그룹 41계 계열 중 11개 계열을 재무 구조 개선 약정 대상으로 선정해서 자구 계획을 이행하도록 했고, 개별적으로는 지난 6월에 35곳을 구조 조정 대상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미 위기에 빠진 조선 산업뿐 아니라 해운, 석유화학, 철강, 건설 산업에서 대규모 구조 조정이 일어날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노동 개혁이란 이런 구조 조정 과정에서 틀림없이 일어날 노동 쟁의를 법으로 처단하겠다는 겁니다. (☞관련 기사 : 중소기업계 구조 조정 칼바람…대기업 살생부도 내달 '윤곽')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직접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한테 역사를 잘못 배워 "혼이 비정상"이라서 일어난 일이겠지만, 경제 위기와 겹쳐 보면 파시즘의 망령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통령 밑의 전략가라면 현재의 갈등을 경제 위기 돌파의 수단으로 백분 활용할 겁니다.
파시즘은 흔히 희생양을 만들어 냅니다. 경제 위기가 빚어낸 불만을 그 쪽으로 돌리려는 거죠. 만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강하게 저항한다면 "아이들이 역사를 잘못 배우게 한 주범"으로 몰아 단죄할 겁니다. 구조 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제2의 도약을 가로막는 종북 좌파"로 만들 겁니다.
중화학 대기업의 노동자로 구성된 민주노총이야말로 딱 희생양이 되기 좋은 집단이죠. 경제 위기는 급기야, 한국의 4자 동맹(재벌-관료-언론-사법부)이 민주노총과 야당을 궤멸시키기 딱 좋은 시기로 돌변하게 됩니다. "줄푸세"의 "세"가 드디어 완성되는 겁니다.
기업 위기에서 가계 금융 위기로…
중국의 성장률이 6% 이하로 떨어진다거나, 중남미나 러시아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한다면 현재의 기업 위기가 곧 바로 금융 위기로 진전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부 쇼크가 없다면 내년에 한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금융 위기라는 암 덩어리는 다른 곳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경로는 대대적 구조 조정으로 인한 내수 위축입니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임금까지 떨어진다면 내수마저 급격하게 축소될 겁니다. 원리금 상환이 힘겨워진 가계가 일제히 소비를 줄이겠죠. 내수는 더욱 위축되고 신용 경색이 일어나면 가계 부채 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최경환 부총리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던 정책, 즉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동시에 집값도 올리려는 정책은 가계 부채의 급증으로 귀결됐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제 세 번째 토끼도 잡아야 합니다. 즉, 위기가 터지는 걸 막기 위해선 가계 부채를 억제해야 하는 거죠. 당연히 정책은 갈팡질팡, 헤매게 됩니다.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밀고 있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정책은 "빚내서 집사고, 전세 올려줘라"로 요약됩니다. 전세가 오르면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니 때 맞춰 금리도 인하했습니다.
이런 정책의 결과, 최근 집단 대출이 급증했습니다. 9월 말 현재 5대 시중 은행(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농협)의 집단 대출 잔액은 85조803억 원으로 한 달 새 1조7472억 원이나 늘어났습니다. 아파트 신규 분양이 49만 가구나 되니까 중도금, 잔금 대출, 이주비 대출 등 집단 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기사 : 금감원, 아파트 집단 대출 건전성 검사 나섰다)
결국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10월 말부터 주요 시중 은행에 집단 대출 심사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고, 11월 들어서는 자영업자 대출 점검도 시작했습니다. 금년 들어 자영업자 대출도 23조원 이나 늘어났으니까요.
현재 KB국민, 신한, KEB하나, NH농협, 우리, 기업 등 6대 시중 은행의 주택 담보 대출 잔액은 9월 말 현재 331조8844억 원입니다. 지난 7월 말 가계 부채 관리 방안 발표 때와 비교해도 두 달 만에 10조3000억 원이나 증가한 겁니다. 집값이 떨어지거나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치들이죠. (☞관련 기사 : 집단,자영업 대출 심사 강화…은행 문턱 높아지나)
경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병을 누가 만들었는지 돌이켜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경제 위기는 기업의 위기로부터 시작될 겁니다. 대대적 구조 조정이 일어나고 임금이 삭감되면 내수가 더 위축되고 본격적으로 가계 부채가 위험해질 겁니다. 중국의 경기 급락이든, 중남미의 금융 위기든, 미국의 금리 인상이든 외부에서 상당한 충격이 오면 곧바로 터질 수 있는 상태라고 봐야겠죠.
역사 교과서 때문에 일기 시작한 광풍은 곧바로 노동자를 향한 파시즘으로 돌변할 겁니다. 선제적 구조 조정이 내수의 위축을 낳을 것이고 이로 인한 경제 위기에는 파시즘으로 대응하게 될 거라니,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주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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