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대학이라는 신경안정제에 중독된 사회 - ‘핵노잼’이 된 꿈을 위하여

일취월장7 2015. 11. 17. 09:57

 

대학이라는 신경안정제에 중독된 사회

문정우 대기자  |  woo@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426호] 승인 2015.11.16  03:39:34

 

몇 년째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갈수록 가르치고 배우는 환경이 나빠져서다. 강좌당 학생 숫자가 늘어만 가니 당연히 열정 있던 선생은 강단에서 하나둘 사라져간다. 각종 프랜차이즈 업소가 밀고 들어와 교정은 저잣거리나 다름없다. 어느덧 학생에게 나눠줄 교재 한 장을 마음대로 복사할 수 없게 됐다. 취업 준비를 하려고 자발적으로 모든 교우 관계를 끊어버린 ‘혼밥’(혼자 밥을 먹는다)이나 ‘아싸’(아웃사이더를 자청한다)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들은 수업에 들어와 자기소개서 쓰는 요령을 들을 때만 눈을 반짝인다.

특별히 내가 강의하는 대학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통계는 말해준다. 2014년 사립대학 교직원 계약직 비율은 36.4%로 치솟았다. 2년 전 30%를 돌파한 이래 바쁘게 기록을 향상하는 중이다. 계약직이 절반 이상인 곳도 12.8%에 달한다. 교수건 직원이건 사립대학에서 밥 먹는 사람 셋 중의 하나는, 아니 결국 전체가 고용이 불안하다. 올해 8월31일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발표한 뒤에 교정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가장 낮은 D, E등급을 받은 학교는 선생도 학생도 패닉에 빠졌다. 총장은 사퇴하고 학생은 자퇴한다. 취업률이 가장 큰 평가 기준이어서 취업률 낮은 과는 가차 없는 통폐합 대상이다.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정치안보국제학과를 졸업하게 생겼다. 안보나 국제란 단어를 집어넣으면 혹시라도 취업률이 좀 높아질까 기대해서 과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의생명융합학부 같은 듣도 보도 못했던 과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OECD 국가 중 대학 등록금이 비싸기로는 둘째가고(1위는 미국), 민간 부담률(결국 학부모 덤터기)로는 첫째가는데 어째서 A등급 대학이라는 곳마저도 이토록 피폐해져 가는지 의아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한성원 그림</font></div>  
ⓒ한성원 그림

 

2010년 3월 고려대 경영학과 김예슬 학생이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며 자퇴 선언을 해서 파장이 컸지만 그녀의 뒤를 따른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가 말한 대로 대학에서는 여전히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지만’ 대학 문턱은 초병목 상태이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포화상태라고 표현한다. 여러 대학을 전전하는 학생도 드물지 않아 100%를 넘나든다는 뜻에서다.

예전에는 우리만 유독 대학을 밝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미 대학은 정말 공부가 하고 싶은 친구들만 가는 곳은 아니게 됐다. 아프리카의 오지만 빼고 대학 진학률은 이 행성 전체에서 치솟는 중이다. 2012년까지 20년 동안 전 세계 평균 대학 진학률은 14%에서 32%로 늘어났다. 50%가 넘는 곳도 다섯 나라에서 54개국으로 불었다. 대학 입학자 증가율은 자동차 소비 증가율을 앞질렀다.

미국의 대학 입학생은 내년에 2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91년에 비해 43% 불어난 수치다. 대학생 숫자를 늘리는 경쟁에는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같은 인구 대국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 같은 중동의 석유 부자도 뛰어들었다. 중국은 1998년 100만명이던 대학생 입학자 수를 2010년에는 700만명으로 불렸고, 풀타임 교직원 90만명을 새로 채용했다. 2020년에는 대학생 수가 미국을 앞지를 전망이다. 1947년 27개에 불과했던 인도의 종합대학 수는 2007년 367개로 늘어났고, 전문 단과대학은 1만8000개에 달한다. 100만명은 전문 분야를 연구하며, 또 다른 100만명은 대학원에 다닌다. 인도 공과대학과 인도 경영대학은 옥스브리지(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합성어)나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중동의 국가들은 아예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대학 운영 시스템과 교수들까지 통째로 자국 영토 내로 실어 나르는 중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17세기에 그들의 거칠고 버릇없는 자식들을 공손하게 키우려고 영국의 옥스브리지와 독일의 연구대학 모델을 결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존스홉킨스·하버드·예일·프린스턴·칼테크이다. 이 대학들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자국의 젊은이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준 데 힘입어 양적·질적으로 크게 발전해 세계의 기술 발달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기상 관측 위성부터 인터넷까지, 이런 첨단 이기들은 미국의 대학들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대학 모델은 곧 선망의 대상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대학은 중산층과 부유층으로 가는 여권이 됐음은 물론이다.

어찌 보면 이 세상 누구나가 대학물을 먹겠다고 기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20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새삼스럽게 미국의 대학 진학률이 40%도 넘게 치솟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는 미국의 블루칼라층이 몰락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의 경제구조가 금융이나 IT 같은 지식산업으로 재편되면서 미국 노동인구의 저변을 이루던 근육남들, 즉 블루칼라들은 갈 곳을 잃었다. 대부분 고졸이었지만, 벌목 산판이나 농장, 굴뚝형 공장에서 일하며 대졸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걱정 없이 살던 이들이 서서히 일터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들은 현재 길거리와 술집을 배회하면서 미국의 중소 도시를 황폐화하는 중이다. 인종차별과 여성혐오의 진원지이며 극우 정당의 먹이가 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미국에서는 고졸 학력으로 먹고살기가 힘들게 됐고 그것이 대학 문 앞이 붐비게 된 주요 원인이다. 1970년 이래 대졸자의 임금은 오히려 떨어졌다.

제3세계에서 대학 졸업장은 여전히 상류층으로의 초대장이지만 부자 나라에서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제 대학에 가는 것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다. 학위를 가지지 않는 게 매우 위험해졌다. 미국과 영국의 성인 14%가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자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2008년 미국의 대출 위기는 학자금 폭증이 한 원인이었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은 신용카드 대출액을 넘어섰다. 부자 나라의 중산층은 자기 노후의 안락을 아이들 교육비로 대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탈출구가 없으니 대학에 병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학이 일종의 신경안정제인 셈이다.

절망을 잊으려고 대학에 가는 사람들

근래 들어 다국적 자본은 단순한 생산설비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서비스 분야까지 얼마든지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특히 머리가 기막히게 좋고 영국 대학생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데도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며 임금은 적게 받는 인도의 두뇌들이 미국과 유럽의 대졸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제1세계 고학력자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중력 구실을 한다. 이런 흐름은 전 세계 대학 졸업자들을 저임금 고학력군으로 만드는 결과를 빚는다. 생산직뿐 아니라 기술직이나 관리직까지 전 세계 노동자 모두가 가장 싼값을 불러야 팔려가는 역경매 시장에 나앉게 되었다.

대학 간 경쟁은 국경을 넘어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돼간다. 자연스럽게 국가도 대학도 모두 ‘평가’에 목숨을 걸게 되었다. 미국 대학에는 오랫동안 독점적으로 대학 평가를 해온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가장 무서운 존재다. 미국과 유럽이 서로 견제하는 통에 국제 대학 평가의 공신력은 뜻밖에도 중국 상하이 대학 차지가 되었다. 이 대학은 2003년부터 국제 대학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는데 순수하게 연구 결과만을 잣대로 삼았다. 다행히 이 평가는 중국이 자국에서 개최했던 올림픽에서의 판정보다는 공정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10여 년 동안 하버드·예일·스탠퍼드 등 미국 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이 변함없이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나라는 가르치는 걸 더 중시하는 독일이다. 따라서 대학의 공적 기능과 평등에 더 무게를 두는 유럽은 따로 평가 기준을 만들어 대학 랭킹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동안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즉 세계 각국의 청소년 학력을 조사해 발표해온 OECD가 평가 권력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OECD는 각국의 졸업생을 대상으로 경제학과 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전공 지식 습득 정도와 분석 능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려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물론 열두 살짜리를 평가하기보다 스물두 살짜리를 평가하기가 훨씬 어렵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PISA 평가에서 항상 뒤처졌던 미국은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심산이다. 반면 그동안 국제 평가에서 박한 점수를 받아왔다고 여기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각국 정부와 대학은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당장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대학이 마주한 현실은 엄혹하다.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서가 아니라 절망을 잊으려고 자녀를 대학에 밀어넣는다. 교육과 일자리를 둘러싸고 외줄타기 경쟁을 벌이는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이 과연 창의력을 길러주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한발 잘못 내디디면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리라는 두려움에 떨며 모험을 꺼리고 대학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다. 그런 학교에서 학생들은 행복할 리 없다.

미국식 대학 모델은 분명 강점이 있지만 약점 또한 뚜렷하다. 설비·관리·수업료 대부분을 개인이 부담하게 한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식 모델을 따른 모든 나라에서 대학 등록금은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 학생의 미래와 학부모의 노후를 위협할 수준인데도 교육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교직원 비율만 커지고 있지 않은가. 부분적으로는 대학이 글로벌 경쟁에 내몰려 비용이 늘어난 탓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대학은 금융 시스템처럼 세상의 돈을 마구 빨아들이지만 신기하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대학은 당대 자본주의의 첨병, 자화상, 심하게는 합병증 맞다.

참고한 활자:<이코노미스트>, <더 많이 공부하면 더 많이 벌게 될까>(개마고원),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해냄)

 

 

‘핵노잼’이 된 꿈을 위하여

대학 진학 아니면 취업, 정말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걸까? 스펙을 아무리 쌓은들 꿈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내 꿈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내가 직접 그릇을 만들면서 말이다.

김은남 기자  |  ken@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426호] 승인 2015.11.17  02:15:46

“꿈 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죠. 교장선생님 아니면 여러분의 부모님.” ‘직업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2015 <시사IN> 드림콘서트’ 강사로 무대에 선 서동효 모티브하우스 대표의 말에 청중석에서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드림콘서트는 <시사IN>이 특성화고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하는 사회 환원 프로그램이다. ‘대학 진학 아니면 취업’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기획됐다. 올해는 서울·충북·강원에서 진행했다.

드림콘서트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12년. 진로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당시와 달리 4년이 지난 지금은 초·중·고별로 진로 교육이 체계화되고 있는 추세다. 역설적인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서동효 대표는 그 이유를 ‘꿈=직업=돈’이라 여기는 고정관념 탓이라 진단했다. “내 꿈은 변호사”라는 식으로 특정 직업 내지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꿈으로 여기다 보니, 그것을 목표로 아등바등 ‘스펙’을 쌓는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한 전부인 양 착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본즉 ‘헬조선’에 살고 있는 아이들로서는 스펙을 쌓는다고 그 꿈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 말마따나 꿈이 ‘핵노잼’(엄청나게 재미가 없다는 뜻의 은어)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10월29일 열린 드림콘서트에서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0월29일 열린 드림콘서트에서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안정된 길을 걷던 강사들도 예외 없이 고민에 봉착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기계공고를 졸업했지만 전국기능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던 이준배 JBL&아이빌트세종 대표는 몇 년 지나지 않아 학벌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기술은 자신이 뛰어날지 몰라도 승진은 대졸 출신들이 훨씬 빨랐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술대학 졸업 후 청소년 교육기관인 하자센터에서 10대 아트상품전, 홍대 앞 프리마켓 등을 벌이며 기획자로서의 삶을 꾸려가던 한영미 오가니제이션요리 대표는 어느 날 문득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고 했다.드림콘서트에 선 강사들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이들 또한 순탄하게 꿈을 일군 사람들은 아니었다. 서동효 대표는 대학도 안 가고 자격증도 없던 20대 시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넌 뭐가 되려고 그러니?”였다고 했다. 최근준 애로우애드코리아 대표는 대학은 졸업했으되, 뭘 하며 살고 싶은지 꿈이 없었다고 했다. 그 또한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밤새 손님 시중들고 술에 절어 살던 20대를 보냈다.

위기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들이 달랐던 것은 이를 푸는 방식이었다. 궁극적인 선택의 순간, 이들은 꿈을 놓지 않았다. 현실을 좇아 꿈을 포기하는 대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을 끝까지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다. 직장을 그만둔 뒤 홀로 서는 훈련을 위해 캐나다로 떠난 한영미 대표는 현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이 음식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때의 경험은 그녀가 귀국한 뒤 청소년 요리 대안학교 ‘영셰프스쿨’을 만들고, 집밥을 그리워하는 도시인들을 위한 식문화 카페 ‘카페 슬로비’를 여는 원동력이 됐다. 이준배 대표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체를 창업한 뒤 여러 차례 고비를 겪었다. 그러나 지인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안한 골프장비를 개발해 상용화에 크게 성공한 것을 계기로 ‘남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을 돕는다’는 자신의 꿈을 명확히 한 그는 1인 창업 등 다른 사람들의 창업을 돕는 민간 인큐베이팅 센터를 세종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왜 사회복지사 대신 창업을 택했을까

꿈을 좇는 과정에서 이들은 세상에 없던 직업을 창조하기도 했다. ‘내 꿈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내가 직접 그릇을 만들자’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다. 서동효 대표는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해 스스로 ‘꿈 문화 기획자’가 되기로 했다. 최근준 대표는 자신처럼 한때 ‘놀아본 아이들’이 직원으로 일하는 길거리 광고 퍼포먼스 기획사를 창업했다.

   
 

행사가 끝나면 버려지는 현수막이 늘 거슬렸던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는 이들 폐기물을 가방·화분·교구 등으로 재탄생시키며 ‘업사이클링(업그레이드+리사이클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재활용으로 가치를 더한다는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기획자 출신인 박종범씨는 농촌이 미래라는 생각을 굳힌 뒤 자신을 ‘농촌기획자’로 명명했다. 대한민국 1호다. 그는 봄 파종기에 도시 소비자가 농민에게 투자하면 가을 수확기에 이를 건강한 먹을거리로 돌려받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농사펀드’를 운영 중이다.

꿈은 개인의 힘으로만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것 또한 이들의 공통점이다. 본래 사회복지사가 되려 했던 조한솔 동네방네협동조합 대표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는 이들이 자립하는 데 한계가 있겠다 싶어서 사회를 바꾸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강원도 춘천 구시가지의 쇠락한 여관촌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전통시장에 여행자 카페를 운영하는 등 지역 재생을 실험 중이다. 김연석씨 또한 아이템·자본·인맥 그 무엇도 변변치 않은 청년들이 장사로 살아남을 길은 지역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2012년 ‘청년장사꾼’을 공동 창업한 그는 전통시장, 버려진 인쇄소 골목 등에 음식점을 여는 한편 마을모임, 장터 등을 기획해 낙후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직원들을 끊임없이 공부시키며, 1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는 창업자금도 지원한다.

드림콘서트의 백미는 강연이 끝난 뒤 이어지는 멘토·멘티 시간. 자신이 원하는 강사를 골라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에 학생들은 “제 꿈을 찾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막막해요” “애니메이션이 좋아 특성화고에 진학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요” 같은 고민을 호소하며 멘토의 경험담을 듣고자 했다. 이에 대해 최근준 대표는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일이 바로 좋아하는 일이고, 꿈이다”라고 말했다. 김연석 대표는 남이 하라는 것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되, 사회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온몸으로 부딪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것 말고 다른 일은 하지 말자’(박종범 대표)는 결심이 선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이 만들어갈 꿈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