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영향

일취월장7 2015. 10. 30. 10:14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영향
이철용 | 2015.10.28
올해 들어 성장 둔화 지속, 급격한 주가 조정, 기습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잇따른 기업 부도 등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지면서 중국 경제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파장을 살펴보려면 최근 불거지고 있는 리스크 요인들의 성격과 고유한 맥락, 중국 정부의 위기 대응 역량 등에 대한 적절한 고려가 필요하다.

 
2013~2014년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지방정부 부채, 그림자금융 급증,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 설비과잉 등이었다. 이 문제들은 이후 정책 대응과 시장여건 변화에 따라 상당히 완화되었다. 올 들어서는 기업 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기업 부도가 늘고, 시중 부동자금의 규모와 활동성이 강해지고 있는 흐름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아울러 성장률이 정부 목표 구간의 하한선에 접근함에 따라 고용 창출에 차질이 빚어질 공산이 있고, ‘안정적 성장 유지’와 ‘구조조정 및 개혁 추진’ 간에 정책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향후 중국 경제의 진로는 ▶경착륙 후 저성장 단계 진입, ▶경착륙 후 재반등을 거쳐 중고속성장 또는 중속성장 단계 진입, ▶중고속성장 단계로 연착륙 등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정책 운신 폭이 크고 그간의 구조조정 작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이외에, 크고 깊은 내부시장, 정부의 기업 지배력과 사회 통제 능력, 낮은 자본시장 개방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중국 경제는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나 세 번째 진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각의 주장대로, 지금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그 동안 중국 정부가 잘 다뤄왔던 문제들과는 성격이나 난이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이라면, 첫 번째 시나리오를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힘들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경우 세계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충격의 전파 경로는 국제교역, 중국의 대외직접투자, 금융시장의 동조적 움직임 등이 될 것이다. 중국발 수요 감소는 동일한 정도의 미국발 수요 감소의 2배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긴밀한 교역 및 투자 관계로 인해 중국 경기침체에 따라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기 급랭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사업 유형이나 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최종수요가 이루어지고, 구조조정의 니즈가 강한 제조업이나 투자와 관련된 부문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경착륙 상황에서도 ▶지금 발전수준이 낮아 향후 상대적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 ▶중국 정부가 저성장 극복을 위해 정책 지원을 집중하는 분야, ▶경기와 무관한 사회 트렌드를 반영하는 분야에서는 상대적 고성장 및 고수익성이 기대된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극복하고 기존 성장 추세로 회귀하는 두 번째 진로를 따라간다면, 구조조정 및 개혁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중국 산업과 시장이 단기간 내에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 목 차 >

 
1. 중국 경제 경착륙에 대한 우려 고조 
2. 경착륙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 
3. 향후 중국 경제의 세 가지 진로 
4.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한다면...

 

 
1. 중국 경제 경착륙에 대한 우려 고조

 

 
요즘 중국 경제에 대한 걱정들이 많아졌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성장률은 2012년 8% 아래로 떨어진 뒤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고속성장 단계 안착’을 목표로 한 ‘신창타이(新常态·new normal) 개혁’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던 ‘국가적 상승장(国家牛市)’은 1년만에 막을 내렸다. 이런저런 타산 끝에 올 여름 위안화 평가절하가 단행되었지만, 중국의 수출은 늘지 않고 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시중자금이 금융권에서 공전(空轉)하는 사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중국 경제 경착륙’은 어느덧 ‘블랙 스완(black swan)’이 아니라 하나의 발생 개연성 높은 사태, 나아가 향후 중국 경제 진로의 ‘메인 시나리오(main scenario)’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중국 경제가 비슷한 시기에 경착륙을 하게 된다면 그 파장은 대단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적지 않은 신흥국들이 그 여파로 경제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못지 않은 심각한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경제 데이터와 정부 역량에 대한 시각 차에 따라 전망 엇갈려

 
경착륙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을 어떻게 보느냐’와 ‘앞으로의 경제 흐름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이 좋지 않고 앞으로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경착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이 나쁘지 않거나, 설혹 좋지 않더라도 앞으로 흐름을 바꿀 여지가 있다면 경착륙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이 두 가지 문제에 있어 시각 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엔 두 가지 신뢰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첫째,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공개된 데이터를 얼마나 믿을 것이냐는 문제다. 많은 외국 연구자들이 중국 거시경제 데이터의 부족과 공백, 그리고 ‘데이터 마사지’에 대해 불만이 크다. 특히 올 상반기에 월간 거시지표들의 흐름과 분기 성장률 추세가 크게 다른 것으로 드러나자 ‘중국 정부가 성장률 수치를 부풀려 경기가 심각한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경제 및 산업 구조의 변화를 고려해야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예를 들어, 제조업 경기 부진과 투자 둔화만 보고 ‘왜 성장률 수치는 안 떨어졌냐’고 따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투자보다 기여도가 커진 소비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제조업보다 비중이 커진 서비스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에 적절히 의미를 부여해야 최근 중국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림 1>, <그림 2> 참조).

 
둘째, 향후 전망은 중국 정부의 경제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의 정도에 따라 크게 엇갈리고 있다. 많은 외국 연구자들은 중국 경제가 이미 상당히 시장화되었는데도 중국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고 본다. 정부가 손을 떼고 경제 운영을 시장 메커니즘에 온전히 맡기지 않는 한 위기를 모면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부 연구자들은 “중국 정부가 실제로는 경제 개입을 줄이고 시장 메커니즘의 기능과 역할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국이 최근 겪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일부(예를 들어, 최근 주식시장의 급등과 급락)는, 원인(遠因)을 따져보면, 되려 정부가 손을 너무 빨리 놓아버려 악화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나아가, 최근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중국 정부가 앞으로 정부 역할과 시장 기능 간에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현재 직면한 위기 상황을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중국 경제의 특수성과 지금까지의 발전경로를 고려해야

 
이 글에서는 중국의 경제 시스템이 서구와 다른 점이 많으며, 최근 중국의 경제 상황은 나름의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중국 경착륙 가능성과 그 영향을 점검해 본다. 이 글의 기본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중국의 경제 시스템은 형성과정이나 작동 방식, 지금까지 거둔 성과와 구조적 제약 등에서 서구 선진국이나 개도국 경제들과 다른 점이 많다고 본다. 또한 현재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 문제들의 성격과 -향후 경착륙 같은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위기가 발현되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위기 요인들에 대한 경제 시스템의 내성에 있어서도 차이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지금의 현안들은 3년 전 중국 정부가 구조조정 및 개혁 어젠더에 포함시켰던 문제들이거나 그것이 변형되어 나타난 문제들이다. 새로운 문제들이 아니라, 이미 노출되었고 어느 정도 정책 대응이 이루어졌으나 중국 정부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높고 해결에 시간이 더 걸리는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셋째, 경착륙 여부를 포함한 중국 경제의 향후 진로에 있어서는 중국 정부의 역량이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시장은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의 보완요소로 도입되었다. 시장의 규모와 비중이 커지면서 정부 역할이 시장을 설계하고 육성하는 단계에서 시장을 조정하고 감시하는 단계로 위축되어가는 면이 있지만, 정부의 통제 범위나 영향력 면에서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정부가 만능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정책 대응의 여지와 영향력이 다른 어떤 서구 경제보다 클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합당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 입각해, 중국 경제가 만약 경착륙한다면 무엇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세계 경제는 그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경착륙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

 

 
1990년대에 연평균 10.5%의 경제성장세를 보였던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고속성장의 지속을 가로막는 갖가지 구조적 문제들에 봉착해 해결 노력을 기울여왔다(<그림 3> 참조). 금융위기 직후에는 최소한도의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성장률 8%를 달성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이 과제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통해 달성되었으나 물가와 부동산 가격 급등이라는 혹독한 후유증을 낳았다. 중국 정부는 2010~2012년 통화 긴축과 부동산 규제를 통해 물가와 부동산 가격을 잡았다. 하지만, 금융위기 직후 공격적인 경기부양의 또 다른 후유증으로 지방정부 재무구조 부실화, 생산능력 과잉 등의 문제들이 이 시기에 불거졌다. 2012년 가을 권력을 승계한 제5세대 지도부는 ‘안정적 성장 속의 구조조정과 개혁’(稳增长,调结构,促改革)을 국정의 기치로 내걸고 2년 간의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한 결과 이 문제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구조조정과 개혁의 영향으로-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구조조정과 개혁 추진 2년만에 그것의 전제조건인 안정적 성장이 위협을 받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특히 2014년 말부터 기업 부도가 급증하면서 구조조정 및 개혁 추진과 안정적 성장 간의 상충(trade-off) 관계가 두드러지면서 정책 대응이 어려워지고, 일각에서 경착륙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중국 경제의 리스크 요인들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경착륙 우려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보자.

 
(1) 2013~2014년에 주목받았던 리스크 요인들

 
2013~2014년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방정부 부채, 그림자금융, 부동산 버블, 설비과잉 등이었다.

 
① 과도한 지방정부 부채

 
금융위기 직후 성장률 방어에 지방정부 주도의 투자가 대대적으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지방정부 산하 융자플랫폼 명의의 지방정부 부채가 급증했다. 중앙정부는 지방 부채 급증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2013년부터 지방정부 융자플랫폼에 대한 신규 은행 대출을 억제하고 기존 채무 상환을 독려했다. 하지만 대출 만기가 속속 도래함에 따라 2013~2014년 2년간 지방 부채는 연평균 27%의 속도로 계속 늘어났다(<그림 4> 참조).

 
그러자 올 들어서는 지방정부가 낮은 금리의 지방채를 발행해 그보다 금리가 높은 은행 대출을 갚는 방식의 지방채 차환을 허용함으로써 상환 부담을 덜어줬다. 올해 차환 한도가 3조 2,000억 위안으로 올해 만기 도래액 3조 위안을 웃돌아 지방 부채 상환 불이행 위험은 크게 줄어들었다. 중앙정부는 또한 내년 지방 부채 잔액을 16조 위안으로 제한하는 총량 규제도 동시에 시행할 계획이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해 지방 부채 리스크를 해소하겠다는 심산이다.

 
② 그림자금융 급증

 
2011~2012년 통화 긴축 과정에서 부동산업, 설비과잉산업 등 은행대출 규제가 집중된 부문의 긴박한 자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림자금융, 즉 전통적인 은행 대출을 우회하는 형태의 자금 공급이 빠르게 늘어났다. 중국의 그림자금융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다수의 금융기관이 간여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자금이 중개되고, 자금 조달과 자금 운용 간에 만기 불일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선진국의 그림자금융과 성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자금 공급자가 원금보장을, 자금 수요자나 금융기관은 지방정부의 음성담보나 중앙정부의 시장 구제를 철썩 같이 믿는, 선진국에서는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불합리한 관행이 중국에는 아직 온존하고 있다.

 
다행히 2013년에 관련 규제 및 감독 강화 조치가 쏟아져 나오면서 그림자금융의 팽창이 억제되었고, 2014년 하반기 이후 주가 급등으로 다량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빠져나가면서 그림자금융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완화되었다(<그림 5> 참조).

 
③ 부동산 버블

 
금융위기 직후 부양책에 힘입어 폭등세를 보였던 중국의 주택 가격은 2009년 말부터 잇따라 시행된 부동산 대출 금리 인상, 주택 가격 대비 담보대출 비율(LTV) 하향조정, 주택 거래 자격 규제 등에 타격을 입고 상승세를 접었다. 이후에도 도시화 촉진과 관련된 정책 호재들에 힘입어 2013년 전후 1선도시들(베이징, 상하이, 선전, 광저우)을 중심으로 단기반등이 있었으나, 2014년 가을부터는 완연한 하락세로 전환하였다.

 
약 1년간 지속된 이번 조정은 지난 수년간의 부동산 개발투자 버블 시기에 누적되었던 과잉공급 물량을 해소하는 의미가 컸으며, 중국 정부가 사실상 조정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이번 조정을 통해 중국 주택 가격에 끼어있던 버블은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그림 6> 참조). 1선도시들의 주택 가격 수준은 지표 상 여전히 주민소득에 비해 높다고도 볼 수 있으나, 빠른 도시화에 따른 왕성한 주택 수요와 가족 단위 주택 구매 관행 등을 고려할 때 버블 리스크 판단 시 어느 정도 할인해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100대 대도시의 평균 주택 가격이 10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하면서 이번 조정이 일단락되어가는 양상이다. 중국 경제의 발전단계나 빠르게 진행 중인 도시화 추세, 기업소득 대비 주민소득 증대에 초점을 맞춘 소득재분배 정책 추진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도시 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부동산시장이 재차 요동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이제 막 재고조정의 7부능선을 넘은 부동산시장에 단기간 안에 투기광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④ 설비과잉

 
설비과잉은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고질적인 문제로, 2012년 이후 제조업 고정자산투자가 가파르게 둔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줄곧 대응책이 논의되었고 2010년대 들어 ‘도태 목표 할당제’ 같은 일견 강도 높은 대책들이 시행되었지만, 관할지역 내 성장 및 고용에 대한 타격을 우려한 지방정부들의 비협조로 큰 진척을 보지 못했다. 과잉낙후설비 도태나 인수합병을 통한 설비총량 감축 등이 말 잔치로만 끝난 감이 있고, 서부대개발이나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생산 설비를 지리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경제성을 회복시키는 노력도 아직 이렇다 할 효과를 낳지 못했다.

 
하지만 올 들어 변화의 조짐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석탄, 코크스, 철광석, 평판유리 등 대표적인 설비과잉 산업들에서 생산 물량이 전년대비 역신장하고 있는 것이다(<그림 7> 참조). 특단의 대책이 먹혀들어서가 아니라, 경기 부진이 장기화함에 따라 경기에 민감한 상류의 설비과잉 업종들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감산에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장 둔화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이러한 상황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전반적인 경기에는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과잉설비만 도려내는 것이 중앙정부가 바라는 최선의 결과다.

 
(2) 2015년에 주목 받는 리스크 요인들

 
지난 2년여 동안 지방 부채 리스크와 부동산 버블 붕괴 우려는 상당히 완화되었다. 그림자금융은 규모 증가 속도가 떨어지고 위험성이 약화되었다. 설비과잉 문제도 실질적으로 해소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올 들어 그 동안 주목 받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고, 기존 리스크 요인이 형태를 바꾸어 새로운 골칫덩이가 될 가능성도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 부채비율이 치솟으면서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정부 영역(즉, 지방정부 부채 구조조정)에서 기업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과 성장률이 정부 목표에 크게 미달할 경우 일자리 창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전자의 사례들이고, 그림자금융 영역을 벗어난 시중자금이 여전히 실물로 흐르지 않고 폭발성 있는 부동자금으로 떠돌고 있다는 우려가 후자에 해당한다.

 
① 과도한 기업 부채와 연쇄부도

 
현 상황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기업 부채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중국 실물기업의 부채비율은 선진국이나 주요 신흥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그림 8> 참조).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가계 부채는 많지 않고 기업 부채가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기업 부채는 규모가 클뿐더러 증가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중국의 기업 부채는 금융위기 이후, 특히 2012년 이래 급증했다.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들, 특히 부동산 기업이나 과잉설비업종 기업들이 도태를 모면하고 차입을 통해 생존을 이어간 것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그림 9> 참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부진에 따라 수익 창출 능력까지 약화되고 있어 채무 상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제로 실물경기 둔화가 3년 이상 이어지면서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기업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설비과잉 업종의 전통 제조업체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고, P2P 대출, O2O 등 새로 생겨난 업종에서 적자생존에 밀려난 기업들의 파산행렬도 이어지고 있다(<그림 10> 참조).

 
이를 반영해 은행 부실대출 비율은 14개 분기 연속으로 높아졌다(<그림 3> 참조). 부실대출 비율 수치 자체는 높지 않으나, 중국 은행의 관대한 대출자산 관리 관행에 가려져 있는 잠재부실 부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 수익성은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어 아직 우려할 단계는 아니지만,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예금금리 자유화가 머지않아 시행된다면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기 하강세가 가팔라지면 중소 규모 지역은행들을 중심으로 자산의 질이 빠르게 나빠지면서 ‘이자의 일부만 내도 정상여신으로 분류하고, 만기는 사실상 자동연장 해주는’ 종전의 관행을 깨뜨리는 은행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은행 주도의 기업 디레버리징의 단초가 그렇게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② 시중자금 부동화

 
그림자금융 영역에서 넘어온 돈을 포함해 2014년 하반기 이래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던 시중자금 중 상당부분이 올 6월 큰 폭의 주가 조정을 겪고 난 뒤 회사채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그림 11>과 <그림 12> 참조). 은행 예금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맛본 이러한 발 빠른 자금은 앞으로도 상대적으로 기대 수익률이 높은 영역으로 떼지어 몰려다닐 공산이 크다.

 
문제는 중국의 투자자금은 원금보장과 음성담보 관행에 길들여져 위험애호적 혹은 ‘위험무시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발 빠른 투자자들의 양떼행동(herd behavior)은 예기치 않은 시점에 자금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려면 정부의 규제와 가이드 역할이 중요한데, 이번 주가조정 국면에서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을 관리하는 데는 미숙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투자자들이 대책이 시장을 늘 이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상황에서 앞으로 중국 정부의 시장 안정화 조치가 얼마나 먹혀들지 의문이다.

 
부동자금의 민감도와 활동성이 강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투자 자산 간 기대수익률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정책(예로, 주식이나 부동산시장 부양책)이 급격한 자금 이동을 유발하여 정책 효과가 과도하게 나타나는 후유증을 낳거나, 최악의 경우 국지적 위기를 시스템 위기로 확대시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③ 성장률의 하한선 접근과 정책 선택의 딜레마

 
2013년 10월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신규 취업 1000만 명과 도시 등록실업률 4.0%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7.2%의 성장률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7%대 초반이 성장의 하한선’이라는 관점은 여기서 나왔다. 데이터 상으로 경제성장률 1%p가 만들어낸 취업자 규모(즉, 일자리 규모)는 2009년 약 120만 명에서 2011년 약 130만 명, 2014년 약 180만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단순한 계산으로는 1,000만 명 분의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성장률이 지난 2~3년 사이에 7%대 초반에서 5%대 중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이런 추세는 고용 흡수력이 높은 서비스업 비중이 늘고, 창업을 통한 자가고용이 급증한 것으로 어느 정도 뒷받침되지만, 취업의 질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점(예를 들어, 저임금 서비스업종에 불완전고용 형태의 일자리가 광범위하게 존재)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변화 속도를 납득하기 어렵다(<그림 13> 참조). 리 총리가 발설한 수치 산정의 근거가 되는, 중국 정부 내부에서 이야기되는 일자리 창출의 기준은 ‘일정수준 이상의 질이 담보된 일자리’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산업 구조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1,000만 명에 대한 ‘취업보장(保就业)’에는 6%대 초중반의 성장률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장 둔화 추세를 고려할 때, 중국 경제는 현재 성장의 하한선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장률이 중국 정부가 당초 설정한 하한선에 가까워지면서, 개혁과 성장 간의 딜레마가 증폭되고 있다. 성장 둔화가 한층 더 진행된다면 자칫 정책 조합의 폭이 크게 좁아질 수 있다. 즉, 그 경우 개혁을 강행하면 성장률이 하한선 밑으로 떨어져 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정반대로 성장을 위해 개혁을 연기하거나 후퇴시킨다면 현재 악화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키움으로써 당장의 위기는 모면하더라도 머지 않아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3. 향후 중국 경제의 세 가지 진로

 

 
향후 중국 경제의 진로는 이러한 리스크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것에 대한 대응의 성공 여부에 따라, 크게 ▶경착륙 후 저성장 단계 진입, ▶경착륙 후 재반등을 거쳐 중고속성장(6% 이상) 또는 중속성장(4~6%) 단계 진입, ▶중고속성장 단계 연착륙 등 세 가지 경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경착륙 개념은 통상 성숙된 시장경제에서 경기순환의 하강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현상을 가리킨다(13페이지 BOX 참조). 여기서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 자체보다는 경착륙 이후의 상황을 아우르는 중국 경제의 중장기 진로에 관심을 둔다. 중국 경제 경착륙은 단순히 경기순환 상의 한 국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발전경로와 성장모델을 가진 중국 경제의 양적 및 질적 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일부 사람들이 임박했다고 믿는 경착륙은 중국 정부가 작년 5월에 중국 경제의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정식화된 ‘신창타이’로 이행하는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양상으로 볼 수 있다.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착륙’ 문제 자체에 못지않게 그 과정을 거쳐 결국에 도달하게 되는 새로운 정상상태(steady state)가 어떤 모습일지, 그것이 중국 정부가 목표로 삼았던 ‘신창타이’와 어느 정도 닮은 모습일지 역시 중요한 문제다.  
첫 번째, 경착륙 후 저성장 단계 진입 시나리오는 기업 연쇄부도와 신용경색, 기업 디레버리징 등이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중국 경제가 저성장 단계로 내려앉는 경우다. 중국 정부는 돈을 풀고 지출을 늘리는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지만 사태의 흐름을 바꿔놓는데 실패한다. 그 결과 중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며, 거기서 끝내 헤어나지 못한다. 일본의 경우처럼 경제 주체들의 내면에 디플레이션 심리가 고착되거나, 남미의 일부 국가들처럼 정치사회적 불안상태가 지속되면서 정책 혼선, 제도 실패, 대외신인도 저하 등으로 위기가 만성화된다.

 
두 번째,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겪지만, 정책 대응을 통해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중고속성장 혹은 중속성장 단계로 들어가는 시나리오다. 개혁 주도 세력이 경착륙 이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질서 회복과 체제 유지를 명분으로 반(反)개혁 세력의 반대와 저항을 제압하고 개혁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개혁독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경제 경착륙이 구조조정의 타깃인 생산능력 과잉 기업이나 한계기업, 비효율적 국유기업들을 솎아내되 다른 기업들에겐 충격을 주지 않는 바람직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셋째, 경착륙을 겪지 않고 중고속성장 단계로 안착하는 연착륙 시나리오다. 성장률이 연차적으로 낮아지지만 경기침체 상황을 겪지 않고 ‘한 단계 낮지만 안정적인 성장 국면’(2015~2020년 연평균 성장률 6% 초중반)으로 순조롭게 진입한다는 점에서 연착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무난하게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경제가 성장을 계속해가는 경우는 과거 다른 나라들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속성장 또는 중고속성장 안착 가능성 높아

 
중국 정부의 정책 대응 여지와 역량, 중국 경제 구조의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는 경착륙 후 저속성장 단계 진입 가능성보다는 경착륙 후 반등 또는 연착륙을 통한 중속성장 또는 중고속성장 단계 진입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첫째, 정책 대응 여지가 충분하고 정책 대응 카드도 상당히 많이 있는 편이다(<표 1> 참조). 첫 번째 진로를 피하기 위해 1차적으로는 전통적 통화 및 재정정책을 활용할 수 있고, 2차 방어선으로는 양적완화 같은 비전통적 정책수단을 동원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개혁과 구조조정을 늦춰 시간을 벌면서 총력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

 
둘째, 구조 전환 작업이 어느덧 일정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산업으로는 제조업, 성장방식으로 보면 투자 부문인데, 그 간의 구조조정으로 서비스업과 소비의 비중이 상당히 커져 ‘자유낙하(freefall)’ 식 경기침체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중국은 경제총량이 크고 내부시장이 깊은 거대 개도국이다. 오랜 기간의 불균등발전을 거쳐오는 과정에서 발전 단계나 발전 속도가 다른 다양한 부문을 갖고 있는데, 이런 복합적인 경제 구조가 위기에 대해 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연간 1%p 가까이 도시화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내수 확대의 공간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넷째, 다른 경제주체들, 특히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이 강하고 사회 통제 능력 역시 강한 점도 중국이 경제적 및 사회적 혼돈 상황을 피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다섯째, 자본시장의 개방 수준이 낮고, 부동산은 물론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에 대한 외국인들의 소유 비중이 매우 낮아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도 중국 정부의 재량과 운신 폭을 넓혀주는 환경이다.

 
경착륙 후 저성장 단계 진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덩샤오핑(邓小平)은 개혁개방 작업을 ‘돌다리 더듬으며 강 건너기’(摸着石头过河)에 즐겨 비유하곤 했다. 마르크스도 이야기한 적이 없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해본 적이 없는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회를 맞이할지, 어떤 방해물에 부딪힐지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해 방법을 깨우쳐나가고 목표를 정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안문사태(1989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등 개혁개방 이후의 중대한 위기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 방식도 이와 비슷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은 이러한 실사구시 (實事求是) 접근이 지금 중국이 직면한 문제, 즉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구조조정 및 개혁 추진’과 ‘사회 안정과 개혁 공간 확보에 필요한 안정적 성장’ 간의 상충이 우려되는 상황을 풀어가는데 유효할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들이 성격과 난이도에 있어 과거의 문제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이라면, 덩샤오핑의 유연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꼭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서구의 많은 연구자들이 중국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이번 주가조정 국면에서 드러났듯이, 고속성장과 과감한 시장 도입의 결과, 중국 경제는 어느덧 기존의 ‘사회주의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게 되었고, 그 해법은 ‘사회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정확하게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만 남기는 것이라고 본다.

 
과연 현재 중국의 구조적 문제들이 천안문사태나 금융위기 당시의 문제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거나 난이도가 훨씬 높은 문제인지를 사전적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지금 상황에서 ‘경착륙 후 저성장 단계 진입’ 시나리오를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

 

 
4. 중국 경제가 경착륙 한다면...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하게 될 경우, 세계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규모가 두 번째로 크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경기침체에 빠지면 세계 교역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교역 및 투자 관계가 긴밀한 경제들이 먼저 영향을 받겠지만, 산업 간 및 산업 내 국제분업의 고리를 따라 짧은 시간 안에 전세계 각국으로 파장이 미칠 것이다.

 
중국의 경착륙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금융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주요국 주가가 순차적으로 급락하고,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글로벌 자금의 급격한 이동을 초래하고 각국의 실물경기에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 경기 급랭과 통화가치 급락에 따라 선진국 투자자금이 신흥국 자본시장에서 유출되면서 일부 신흥국들이 외환위기나 경제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성장 방어를 위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리는 환율전쟁이 시작된다면 세계 교역이 더욱 위축되고 보호주의적 장벽이 높아져 개별 국가들이 얻는 이득은 오히려 줄어드는,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가 빚어질 공산이 크다.

 
나아가 중국 경제가 경착륙의 충격에서 회복되지 않고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다면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버금가는 대공황 수준의 디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는 중국발 충격에 특히 취약

 
한국은 중국 경제 경착륙이나 경기침체의 영향에 가장 취약한 경제 중 하나다. 중국 수입 시장 점유율 1위국인데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긴밀한 국제분업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액의 GDP 대비 비율을 비교해 보면, 2003년에 중국과 미국이 비슷했지만, 10년 후인 2013년엔 중국이 11.2%로 미국(4.8%)의 2.5배 수준으로 커졌다. 내수시장에 대한 수출 비중만 따지면 2003년에는 미국이 더 높았지만, 2013년에는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커졌다(<그림 17>과 <그림 18> 참조).

 
미국에서 100단위의 수요 감소는 국제적 산업연관 관계를 통해 한국의 부가가치를 0.2단위 감소를 가져오는데 비해, 동일 규모의 중국 발(発) 수요 감소는 한국에 1.0단위의 부가가치 감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2> 참조). 즉 중국발 수요 변동의 임팩트는 동일 규모의 미국발 수요 변동에 비해 우리나라에 대해 5배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한다는 얘기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한국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경기침체에 따라 중국의 수입수요가 감소하고 중국 내 요소비용 저하에 힘입어 중국 로컬기업의 가격경쟁력이 강화됨에 따라 중국 향(向) 수출이 크게 감소할 것이다. 또한 중국 이외 수출시장에 대한 한국의 수출 역시 최근 양국간 경합도가 빠르게 높아져가고 있는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업 유형과 방식에 따라 대응 달리 해야

 
중국 경제의 경착륙과 장기 저성장은 한국 기업들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중국 사업 전략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충격은 사업 유형과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응 역시 사업 유형이나 방식을 고려해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을 하든 중국에서 생산과 판매를 일괄 수행하든 중국 내수시장에서 최종수요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가 해외시장에서 최종수요가 이뤄지는 경우에 비해 타격이 클 것이다. 한국에서 직수출하는 경우 소비재보다는 중간재 부문이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고, 중국 내 생산의 경우 내수보다는 수출을 겨냥해 사업을 하는 기업이 충격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에서 생산되어 선진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의 경우 위안화 평가절하와 중국 내 요소비용 하락에 따라 경착륙 초기에 오히려 수출이 증가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둘째, 중국 내 전반적인 수요 위축은 설비과잉 산업 내 기업들의 대량 파산과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의 니즈가 강한 부문, 즉 소비보다는 투자 분야,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이 받는 타격이 클 것이다.

 
셋째, 기업에게 경착륙은 사업 수익성(투하자본수익률)의 전반적인 저하를 의미한다. 하지만 경착륙과 그에 이은 저성장 국면에서도 시장이 커지고 수익성이 좋아지는 사업도 있다. 지금 발전수준이 낮아 향후 상대적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 중국 정부가 저성장 극복을 위해 정책 지원을 집중하는 -중국 경제에서 레버리지가 강한- 분야, 경기와 무관한 사회 트렌드를 반영하는 분야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구체적으로는 서비스업, 도시인프라산업, 중국이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미래산업, 고령화 관련 사업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이 경착륙 이후 일부 남미 국가들처럼 안정적 성장의 기제가 망가지는 경제가 된다면 다른 문제이겠지만, 중국 경제가 경착륙한다고 해서 엑시트(exit)를 서두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은 경제 내부에 미개발 혹은 저발전 부문이 많기 때문에 저성장 속에서도 사업 기회가 꾸준히 생겨날 수 있는 성장 잠재력 있는 거대 개도국이다. 경착륙을 제반 사업 환경과 비즈니스 게임 룰 변화의 단절적 계기로 받아들이고 관심 있는 사업 분야에서 시장경쟁 구도, 소비자 취향, 규제나 제도 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가면서 경착륙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을 극복하고 기존 성장 추세로 회귀하는 두 번째 진로를 따라 간다면,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구조조정과 개혁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중국 산업과 시장이 단기간 내에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래선을 재편하고, 제품 및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고, 사업 영역을 변경하는 등의 능동적인 대처를 통해, 급락에 이어지는 급등 국면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