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경원선에서 시작된 ‘밀월’

일취월장7 2015. 9. 4. 11:23

 

경원선에서 시작된 ‘밀월’

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기공식이 열렸다. 최근 남북 간에 전개된 일련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기공식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남북한의 ‘밀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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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승인 2015.09.04  08:35:11

아무리 봐도 어색했다. 전체 구간이 아니고 남쪽 구간만 잇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주관할 필요가 있었을까. 지난 6월25일자 국토교통부·통일부 공동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기공식 예정일자는 7월 말이었다. 자료에는 나오지 않지만 주관자도 애초에 국무총리로 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8월5일로 늦춰졌고, 대통령 주관 행사로 격상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8월5일 오전 강원도 철원에서 있었던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기공식 얘기다. 8월20일 이후 남북 간에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을 이해하려면 이날의 기공식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

경원선의 남쪽 구간만이라도 잇자는 제안은 금년 초 통일준비위 업무 보고 때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는 사실 절벽에 가까웠다. 지난해 10월의 1차 고위급 회담이 10월 말, 11월 초의 2차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산된 후 북한은 남한 측의 대화 제의를 철저히 묵살했다. 그렇다고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인 올해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어서는 해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게 올해 초의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통일부 제공</font></div>8월22일 남측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의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황병서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이 남북 고위급 회담에 나섰다.  
ⓒ통일부 제공
8월22일 남측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의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황병서 총정치국장(오른쪽부터)이 남북 고위급 회담에 나섰다.

이 사업은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공식 화답함으로써 일사천리의 과정을 밟게 된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국토부가 전문기관의 기술조사 용역을 실시했고, 5월26일 국무회의에서 경원선 복원계획이 마련됐다. 그리고 6월25일 제273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는 남측 구간 복원사업에 대해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경원선 남쪽 구간 중 신탄리와 백마고지 구간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연결됐고 백마고지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11.7㎞만 남았다. 이 중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백마고지~월정리 구간인 9.3㎞뿐이고 남방한계선에서 군사분계선 사이 2.4㎞와 북측 구간은 북한과 협의해야 한다. 그래서 1단계로 9.3㎞(사업비 1291억원)를 복원하면서 DMZ 및 북측 구간과 관련해 북한과 협의할 계획이었다. 이것이 대략 6월 중순까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그 뒤에 극적인 상황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북한의 호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측은 심지어 남측 구간 건설을 위한 기공식에 북측의 해당 분야 고위급 인사(건설상 또는 내각 총리)가 방문할 수 있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공식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한편 북측 인사를 초청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행사 일정이 7월 말에서 8월5일로, 행사 성격이 국무총리 주관 행사에서 대통령 주관 행사로 변경된 내막이다. 7월 중순 이후 북측에 대한 초청장이 비공식으로 발부됐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 기공식이 열리는 8월5일 깜짝쇼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평양 외곽의 농촌 풍경.  
ⓒAP Photo
평양 외곽의 농촌 풍경.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남북한의 밀월기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슈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 통일대박론을 터뜨린 이후 갈고닦은 ‘도농복합단지 구상’이다. 일명 ‘북한판 새마을사업’ 또는 ‘새마을사업 Ⅱ’ 구상으로 불린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구상이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28일 드레스덴 선언부터였다.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세 가지 원칙이 세워졌다. 그 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특히 지난해 10월13일에 있었던 제2차 회의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백화제방식 아이디어 분출로 주목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판 새마을운동’

그런데 드레스덴 선언과 이 회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대통령이 유달리 집착하는 개념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북한 농촌에 도농복합단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드레스덴 선언에서 세부 실천사항으로 제시됐던 이 구상이 2차 회의에서는 대통령의 모두 발언 때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올해 1월 통일부가 발표한 민생·환경·문화의 3개 소통로 구상에서도 역시 문화를 제외한 민생과 환경은 바로 도농복합단지, 즉 북한판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연결된다. 급기야 7월26일 통일부는 과거 쌀·비료 지원에 초점을 맞추던 남북협력기금의 사용 기준을 민생개발 협력 사업 중심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보건의료 협력, 농·축산 협력, 산림·환경 협력 등으로 세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사업이 바로 북한판 새마을운동, 즉 도농복합단지 구상인 것이다.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을 보면 주택개량·산림녹화·도로·상하수도·보건의료 사업 등과 함께 농어촌 수익 증대 사업까지 동시에 진행했다.

  북한의 4군데가 도농복합단지 협력 대상으로 거론된다.  
북한의 4군데가 도농복합단지 협력 대상으로 거론된다.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종전의 쌀·비료 지원이 퍼주기 논란이나 피로증, 유엔의 대북 제재 등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있는 데 비해 이 프로젝트는 물품 지원보다는 개발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분란의 소지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의 기획안대로라면, 남쪽의 민간단체가 북쪽 파트너의 협력을 얻어 북한 마을에 도농복합단지를 조성하면 정부는 단지당 20억~30억원을 지원한다. 또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대규모의 복합영농단지 조성도 구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상에 맹점이 있다. 이 사업은 남쪽의 민간단체나 기업이 북한의 농촌에 직접 들어가서 일정 기간을 같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만큼 남북 간에 신뢰가 구축되어야 가능한 사업인데, 이명박 정권 이래 최악의 남북 관계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경원선을 북한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 사업 역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변화는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 3월은 각 정부 부처의 한 해 업무 보고가 끝나고, 새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정부의 대북 자세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통일부에서 나타났다. 전임 류길재 장관이 학자 출신으로서의 한계에 머물렀다면 신임 홍용표 장관은 그것을 뛰어넘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당국 간의 공식 라인에만 의지하지 않는 양상이었다. 경원선 복원의 주관 부서인 국토교통부 역시 3월부터 북측과의 간접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우리 정부의 자세가 달라지자 북측의 변화도 감지됐다.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경원선 북측 구간 연결과 관련해 우리 측이 생각한 것은 원산까지였다. 그런데 이를 마식령 스키장까지 연장하자고 제안한 것은 북측이었다. 경원선 복원이 가능해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또 하나의 숙원 사업인 DMZ 생태평화공원이 자연스럽게 철원 근처에 들어설 수 있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역시 현실감을 갖게 된다.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남북협력을 생각하면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과제이다. 경원선이 연결되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선수단과 관광단이 그것을 타고 마식령 스키장을 관광할 수 있다. 이 같은 협력을 토대로 한두 개 종목을 백두산에서 분산 개최하는 일은 2022년 중국이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중국은 2022년 동계올림픽을 대부분 장백산에서 치름으로써 ‘장백산 공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따라서 남북이 힘을 합쳐 미리 ‘백두산’을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경원선 문제에서 돌파구가 열리자 이산가족 문제 역시 의견 조율이 가능해졌다. 조건부나 대가를 따지기에 앞서 이미 고령인 이산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므로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인도적 사업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경원선 열차에 탑승했다.  
ⓒ연합뉴스
8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경원선 열차에 탑승했다.

도농복합단지 구상 역시 애초에 우리 측이 제안한 것에 대해 북한이 수정 제의하는 식이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우리 측의 원래 구상은 500세대 규모로 두 군데를 조성해주는 것이었다. 북측은 이에 대해 200세대 규모로 줄이는 대신 이미 발표한 13개 개발구 중에서 4~5군데를 시범단지로 하는 방안을 수정 제안했다고 한다. 첫 번째가 개성공단 배후지역이다. 남북 근로자 5만4000명이 사용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 수익성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함경북도 청진경제개발구다. 이곳은 단천·무산 등의 자원 매장지와 김책제철소, 청진항을 연계해서 자원개발구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원산의 현동공업개발구다. 현동은 금강산 관광지구와 백두산 관광지구를 연결하는 동해안 관광 벨트의 중심지다. 관광산업과 연계한 민속공예품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함경북도 어랑농업개발구다. 어랑은 13개 개발구 가운데 북청, 숙천과 함께 3대 농업개발구로 분류돼 있는 곳이다. 이미 농업과학 관련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어서 과수농업단지에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왼쪽 지도 참조). 북측이 제시한 이 네 지역의 특징은 기존 지역개발구와의 연계 개발이나 맞춤형 개발이 가능하고, 남측 민간 중소기업이 북측 파트너와 사업을 진행하면서 BOT 방식(도로·항만·교량 등의 인프라를 건조한 시공사가 일정 기간 이를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한 뒤 발주처에 넘겨주는 수주 방식)으로 상환하게 함으로써 퍼주기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이 할 수 없는 인프라 개발은 정부에서 뒷받침하면 된다.

다시 지뢰 사건 대응의 미스터리를 살펴보면…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 이후 초지일관 도농복합단지 구상을 밀어붙여온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부친의 유지인 ‘새마을운동’을 북한 농촌에서 구현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감회와 기대가 남달랐으리라 여겨진다. 바로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후에 전개된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림이 좀 더 분명해진다.

먼저 8월4일 경기도 파주 인근 철책선 바깥에서 터진 지뢰 사건과 그다음 날(8월5일) 정부가 보인 이상한 대응의 상관관계다. 8월5일은 남북 관계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가 한꺼번에 진행된 날이다.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평양을 향해 출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강원도 철원에서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 참석했다. 또 예정대로라면 북측에서 고위급 인사가 내려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인 8월4일 파주 인근 철책선 안에서 지뢰가 터져 우리 측 부사관 두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며칠에 걸친 조사 결과 북측 목함지뢰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올해 들어 몇 차례 반복되는 공교로운 사건이었다. 즉, 남북 간에 뭔가 성사가 되려는 기색이 보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파투가 나곤 해왔다는 것이 일각의 갸웃하는 시각이다. 따라서 지뢰 사건 하루 뒤 정부가 보인 수수께끼 같은 모습도 이해가 된다. 대통령은 예정대로 기공식을 거행하고 통일부는 북측에 대화를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지뢰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남북 간 흐름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조사 결과 북측의 목함지뢰라고 판명된 이상 대응은 불가피했다. 결국 대북 확성기 공세가 펼쳐지고, 북측은 8월20일 두 차례에 걸쳐서 대남 포사격을 하며 판을 키웠다. 그런데 유심히 볼 것은 두 차례 모두 의도적으로 사람이 없는 비무장지대에 발사했고, 동시에 대화파로 분류되는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가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왔다는 점이다. 내용도 눈에 띄고 군부가 주도할 법한 국면에 그가 등장하는 형식도 이례적이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처음부터 김양건을 내세워 ‘대화를 통한 사태 수습과 관계 개선의 출로 열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남쪽이 첫날의 제안을 무시하자 다음 날 이번에는 개인 서한까지 보내며 대화를 재차 촉구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무박4일간의 밀고 당기기라는 진통을 겪은 후 북측의 유감 표명이 나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는 그대로라면 북측의 유감 표명이 단지 남쪽의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에 눌렸기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아전인수에 가깝다. 8월4일 지뢰 사건 이전까지 남북이 같이 꾸어온 꿈이 없었다면 북측이 그렇게 유연하게 나오지 않았으리라는 게 중론이다. 8월27일 김양건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대담에서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번 사태에 대한 북측의 시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남과 북은 애당초 이번과 같은 비정상적 상태에 말려들지 말았어야 한다. 북남 관계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 대해 각성 있게 대하여야 한다.”

 

 

“5·24 조치 재검토할 때 되었다”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이 조심스레 일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 지한파들의 평가와 전망은 어떨까?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과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존 메릴 박사를 만났다.

  조회수 : 332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최근 타결된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이 조심스레 살아나고 있다. 우선은 10월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이런 희망을 확인해볼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미국 지한파들의 평가와 전망은 어떨까?

미국 워싱턴의 정재민 편집위원이 <한국전쟁의 기원과 진실(Korea:the Peninsular origins of the war)>의 저자 존 메릴 박사(71)를 만났다. 그는 1987년부터 근 30년간 미국 국무부의 정보조직인 정보조사국(INR)에서 일했다. 지난해 7월 동북아실 실장을 끝으로 은퇴한 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SAIS)과 조지타운 대학 등에서 한반도 문제를 강의 중이다.

이번 남북 고위급 회담 결과를 평가한다면?
아주 훌륭한 결과다. 영어 속담에 “세 번째는 마력이다(Third time is the charm)”라는 말이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메르스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홈런을 쳤다.

그러나 이번 합의문에는 북한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문구가 없다. 보수층에서는 이미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 우려는 이해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 이번에 남북 양측은 병력을 동원해 준전시 상태로 돌입하는 등 말 그대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북한 잠수함 50척이 소재를 감춘 채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포병대를 전진 배치했고, 특수전 병력도 움직일 준비가 돼 있었다. 모든 지표가 위험신호를 가리켰다. 어느 면에선 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슷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과열된 정치 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고가 났다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양측은 결국 합의를 일궈냈다. 북한은 ‘유감’을 표시했다. 이 표현이 사과에 해당하는 수준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외교적 용어로 보면 (사과에) 상당히 가까운 표현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얼마나 더 얻어낼 수 있었을까? 합의문 비판자들은 추가적인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정재민</font></div>존 메릴 박사(위)는 1987년부터 30년간 미국 국무부의 싱크탱크인 정보조사국에서 일했다.  
ⓒ정재민
존 메릴 박사(위)는 1987년부터 30년간 미국 국무부의 정보조사국에서 일했다.

향후 남북 관계가 실제로 개선되리라 보나?
남북 양측은 현재 합의 사항을 실천 중이다. 양측은 이런 상태를 지속해야 하며 가급적이면 모멘텀을 가속화해야 한다. 나는 단기적으로는 낙관적이다. 추측건대 추석 즈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릴 것이다. 하지만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축하행사가 골칫거리가 될 소지가 있다. 북한은 이번 축하행사의 하나로 다시 로켓을 발사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70주년 행사를 축하할 것인가. 로켓을 발사한다면 어떤 식으로 쏘아 올릴까. 미사일? 우주 발사체? 이에 남한은 어떻게 대응하고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은? 우리는 북한의 위성 발사가 남북 관계의 진전을 망가뜨리도록 보고만 있을 것인가? 변수가 많다.

남북 관계의 걸림돌로 ‘5·24 조치’가 자주 거론돼왔다. 남한은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선행해야 5·24 조치를 풀 수 있다는 방침이다.
사견이지만, 이제는 한국이 남북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5·24 조치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5·24 조치가 해제된다면, 지난 몇 년 동안 논의돼온 남북 간의 교역과 철도, 에너지 및 기타 인프라 사업이 확대돼 한국 경제는 큰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중국 경제의 감속을 감안할 때 특히 그렇다. 한국이 5·24 조치 해제의 기준(북한이 해야 하는 일)을 너무 높게 설정하면 이번 합의안의 시행까지 틀어지는 등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이 ‘대북제재 완화’를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실패할 것이고, 이번 합의마저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다. 초기 협상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모멘텀을 확보하는 일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지난 6월2일 통일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5·24 조치 해제와 6·15 선언 이행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지난 6월2일 통일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5·24 조치 해제와 6·15 선언 이행을 촉구했다.

이번 협상 결과를 놓고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분적으로는 동감한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은 기본적으로 협력이 가능한, 덜 논쟁적인 이슈 분야에서부터 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는 기능주의적인 접근 방식이다. 그래서 해당 부문에서 상황이 개선되면, 안보 문제 등 좀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 쪽으로 나가자는 발상으로 이해한다. 개성공단을 설립한 배경에도 이런 발상이 스며들어 있었다. 박 대통령의 “원칙 있는 접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박 대통령이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한 것은 옳았다. 그러나 ‘원칙’을 강조하다 보면 종종 너무 멀리 나갈 수 있다. 

북·미 관계로 화제를 돌려보자. 북핵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방치돼왔다고 보나?
그 점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방치해왔다. 북한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관련 노력마저 중단한 듯하다. 비극이다. 북한은 동북아 주변국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라도 미국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역대 미국 정부들 역시 공화·민주당 가릴 것 없이 북한과의 협상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좌절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포기할 이유는 없다. ‘전략적 인내’는 시간이 우리 편일 때만 작동한다. 최근 위기 상황에서 북한이 보여준 군사적 움직임을 감안하면, 북한은 지금까지도 상당한 군사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쉽게 붕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매일 더 많은 핵융합 물질을 생산하고, 운반 체제(대륙간 탄도미사일 등)를 개발 중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평양 조선중앙통신</font></div>존 메릴 박사는 김정은 제1비서(위)가 북한의 경제 관리자는 숙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존 메릴 박사는 김정은 제1비서(위)가 북한의 경제 관리자는 숙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을 평가한다면?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포함된 스탠퍼드 대학 일행과 함께 몇 년 전 북한 영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한 항상 헤커 박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헤커 박사는 1년 전 <원자력과학자 협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20기 정도의 핵무기를 비축한 핵무기고 구축 과정에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북한은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해서 발사한 뒤 대기권에 재진입시켜 폭발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은 결국 이런 기술적 문제까지 해결하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인내’를 주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해 11월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안보국장의 방북 이후 북·미 접촉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올해도 성 김 대표가 지난 1월 베이징까지 날아가 북한 측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북·미 접촉이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클래퍼 국장과 성 김 대표의 노력을 치하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지속되지 못했다. 미국에서 북한은 ‘힘든 사안(hard case)’으로 간주된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과연 양대 ‘힘든 사안’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을까? 미국인들은 북한에 대해 많이 피곤해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이란 등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외교적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관계에선 그렇지 않다.
지금은 한국이 좀 더 눈에 띄는 역할을 할 때인지도 모른다.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광범위한 현안을 갖고 있지 않은가. 여러 분야 가운데 일부에서라도 진전이 가능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곧 미국을 방문할 텐데, 최근의 위기 상황을 논의하고 대북 접근방법을 미국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일본 아베 총리가 평양 방문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아베의 방북은 겉으로 납치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선 북·일 간 경제적 대가가 오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아베 총리가 자국인 납치 문제에 대해 막후에서 끈질기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종종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양측은 제3국에서 계속 접촉 중이다. 만일 납치자 문제가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 해결된다면 북한에겐 막대한 경제적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최근 북·일 회담의 의제가 과거 실종된 일본인, 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갔다 남게 된 일본인 처, 납치자 자녀, 2차 대전 말 북한에서 사망한 일본군 병사와 민간인 유해 문제 등으로 확대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문제들 가운데 일부에서 진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 경제가 유엔 제재나 중국의 지원 축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에서 비공식적 시장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는데.
한국은행 등 대다수 연구자들의 추정치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비록 느리긴 해도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지금까지 고위 인사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면서도 경제 관리자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흥미로운 일이다. 김정은이  스위스에 있을 때 현대 경제에 대해 뭔가 배운 것이 있다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대단히 결과지향적 유형인 듯하다. 북한은 최근 더 많은 특별경제구를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북한이 경제 부문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 시대부터였다. 그러나 관련 시도는 실험으로 그치거나 중도에 좌절됐다. 당시의 북한은 군사 문제에 최우선으로 집중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시장) 없이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 시스템이 발전하고 있다. 시장의 발전은 북한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한 정권은 처음엔 시장화를 차단하려 했지만, 지금은 체념한 것 같다. 시장의 발전이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반드시 약화시킬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시장 시스템 발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국 정부는 최근까지도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대북 제재가 북한의 시장화를 지체시키고 투자자들을 두렵게 만들 가능성은 없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가해 부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북한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내부의 시장화 세력과 협력하도록 노력하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지 모른다.

김정은의 국가 생존전략을 무엇이라 보는가?
김정은은 경제를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현대 세계에서 경제력이 국력의 주된 요소임을 안다. 동시에 그는 강력한 군대를 원한다. 그러나 점차 소모되고 노후화되는 군사 장비를 대체할 만한 돈이 없다. 예컨대 김정은이 최근 위기 때 동원한 막대한 잠수함 함대를 어떻게 다른 장비로 대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북한 지도부가 들고 나온 해답이 핵무기라고 생각한다.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 미국 정부는 ‘새로운 조망’(New Look)이란 정책을 갖고 있었다. 핵무장을 통해 재정적으로나 군 인력 측면에서 군비를 절약하자는 시도였다. 마찬가지로 김정은 역시 핵무기와 비대칭적 군사 능력을 북한의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구축한 대규모 재래식 병력을 현대화하고 대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무기는 북한 정권의 안보 개념에 뿌리박은 안보 수단이고, 북한의 핵 해체도 무척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