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팩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마라”

일취월장7 2015. 8. 26. 11:04

 

“팩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마라”

최근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시사IN> 기자학교가 연세대 공학원에서 열렸다. 중고생·대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전현무·고재열·김영미 세 강연자가 언론과 언론인의 세계, 언론 환경의 변화 등을 소개했다.

김은남 기자  |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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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승인 2015.08.26  08:57:13

“좋은 기자란 어떤 기자일까요?”(전현무)

“이성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을 고루 갖춘 기자요.”(청중 1) “열정도 있고, 논리력과 책임감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청중 2)

“그런 걸 다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약 위에 있는 데스크가 지금 쓰려는 기사를 못 쓰게 한다면요?”(전현무)

“그런 상황이라도 불의에 맞서야죠.”(청중 3) “저 같으면 데스크와 직접 부딪치기보다는 개인 블로그 같은 데 제가 취재한 내용을 따로 올리겠어요.”(청중 4)

“그랬다가 내가 올린 내용이 잘못되면 어떡하죠?”(전현무)

“…….”(청중 4)

“이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매체에 속해 있건 오늘날 거의 모든 기자들이 직면한 갈등 중 하나가 이 부분이죠.”(전현무)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8월12일 서울 연세대 공학원에서 열린 ‘2015 여름방학 <시사IN> 기자학교’. YTN 방송기자·KBS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전현무씨가 강사로 참여했다.  
ⓒ시사IN 신선영
8월12일 서울 연세대 공학원에서 열린 ‘2015 여름방학 <시사IN> 기자학교’. YTN 방송기자·KBS 아나운서를 거친 방송인 전현무씨가 강사로 참여했다.
 
스무고개를 연상케 하는 질의응답이 숨가쁘게 펼쳐졌다. 8월12일 서울 연세대 공학원에서 열린 ‘2015 여름방학 <시사IN> 기자학교’의 풍경이다. <시사IN>이 일반 독자를 상대로 처음 주최한 이날 기자학교에는 중고생과 대학생 200여 명이 참가했다. 기자, PD, 아나운서, 시사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개인에서 고교 방송반 활동 중인 동아리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참가자 면면은 다양했다.

이들에게 언론과 언론인의 세계를 소개하려 나선 강사는 세 사람. 이 중 ‘뉴뉴미디어 시대, 기자가 사는 법’을 주제로 첫 강의에 나선 고재열 기자(<시사IN> 문화팀장)는 매체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기자), 뉴스에 나오는 사람(취재원),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독자)이 뚜렷하게 구분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열린 광장에서 3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뉴스의 생산-소비-유통의 경계가 사라진 오늘날 중요해진 것은 쌍방향 소통을 넘어선 ‘3방향 소통’이다. 이런 시대에는 기자 또한 전통적인 리포터 구실을 떠나 ‘이슈의 코디네이터’ 구실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방송인 전현무씨 또한 비슷한 문제의식을 청중과의 문답으로 풀어나갔다. 뉴스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 데스크로 표상되는 외압과 재미만 추구하려 드는 대중 사이에 낀 기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청중들은 저마다 손을 번쩍 들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했다. ‘대중의 이목을 끌려면 일정한 타협은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그럼에도 언론의 힘은 공신력에서 나온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전현무씨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10여 년 전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고재열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 뉴스에 나오는 사람,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시사IN 신선영
고재열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 뉴스에 나오는 사람,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KBS 입사시험을 치르던 당시 그의 최종 면접관은 정연주 전 KBS 사장(전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왜 언론인이 되고 싶으냐?”라는 질문에 전씨는 “제 신념을 잃지 않고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 전 사장은 ‘굉장히 위험한 사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날것 그대로의 팩트(fact)다. 본인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개입되는 순간 기사는 더럽혀지고 외부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팩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마라.”

<돌발영상>과 <썰전>은 왜 인기를 모았을까

그 말에 전현무씨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고 한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넘쳐나는 게 현실이라지만, 기자라면 이처럼 팩트를 추구하고 ‘불편부당(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지키는 애초의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기자 윤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런 기본을 지키면서도 대중이 YTN <돌발영상>이나 JTBC <썰전>, 종편 뉴스쇼에 왜 호응하는지 끊임없이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전씨는 말했다. 뉴스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메시지를 담는 형식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강단에 선 김영미 <시사IN>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은 ‘분쟁지역 전문 PD가 사는 법’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전현무 “사회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앞서,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라는 말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시사IN 신선영
전현무 “사회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앞서,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라는 말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처음부터 분쟁지역 PD가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프리랜서 PD로서 소형 캠코더를 들고 아프간 난민촌을 취재하러 갔다가 갑자기 등장한 미군기의 폭격으로 고막이 터진 순간부터 그녀는 운명처럼 이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TV에서 보던 폭격 장면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데 이런 현장을 직접 찾아가 취재하는 공중파 TV나 유력 일간지 기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면 나라도 가야겠다 싶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고 취재차 들른 나라만도 70~80개국에 달하는 오늘, 김씨의 존재는 한국 언론에서 독보적이다. 분쟁지역 취재를 자원하는 언론인이 여전히 귀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기자에게 ‘언론의 자유’라는 귀한 선물을 주었기에 이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현장을 찾는다는 그녀는 기자학교에 모인 청중에게 “여러분 중 분쟁지역 전문기자가 나온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은퇴하고 싶다”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김씨가 이날 특별히 공을 들여 설명한 것은 이슬람국가(IS)의 실체. 누구보다 일찍 IS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위험성을 보도해왔지만 한국에서마저 IS에 합류한 청소년이 등장하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IS가 세계 각국의 10대를 끌어들이려 온갖 홍보전을 펼치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한 노동력과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10대들이 이를 모른 채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리아 국경에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김영미 “처음부터 분쟁지역 전문 PD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가지 않기에 제가 가야겠다 싶었죠.”  
ⓒ시사IN 신선영

김영미 “처음부터 분쟁지역 전문 PD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가지 않기에 제가 가야겠다 싶었죠.”

 

 

그 집 아이가 시험을 유난히 겁내는 이유

가정 폭력이 심한 경우를 가끔 접한다. 대부분 성적 탓이다. 가족의 논리가 어떠하든 성적이 낮기 때문에 맞는 게 당연하다고 배우는 것은 문제다.

  조회수 : 187  |  해달 (서울 목동 입시학원 강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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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승인 2015.08.26  08:54:17

체벌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고 고소당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부 학원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 교육 현장에서는 더 이상 학생을 때리지 않는다.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선생과 제자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랑받는다’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으면 훈육조차 어렵다. 훈육과 체벌의 경계가 모호한 까닭에 선생이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가정 내 체벌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대전제가 모든 폭력을 정당화한다. 시험이 끝난 후 가족끼리 밥을 먹다가 밥그릇이나 먹던 과일로 맞았다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아버지로부터 날아오는 리모컨을 맞기 싫어서 피했다가 방 안에 갇힌 채 두들겨 맞거나 집에서 도망가려다가 현관에서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들어갔다는 ‘무용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집이야말로 폭력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체벌의 원인은 대부분 성적이다. “네게 부족할 것 없이 다 투자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라서” “너만 잘하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화목한데” “집안 어른들 보기 창피하다” 따위 부모의 말은 성적이 안 나오면 맞아야 한다는 당위를 성립시킨다. 물리적·언어적 폭력에 계속 노출된 아이들은 시험을 보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맞을 걱정 때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부모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아이들도 안다. 게다가 본인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속에서 폭력은 만성화된다. 피해자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정하지 않게 된다. 폭력은 암묵적 합의를 얻는다. ‘널 위한 일’이라는 명제는 견고해진다. 아이들은 ‘합의하에’ 맞는다.

“저는 맞아도 싸요”라는 말을 내면화한 아이들

“너 잘되라고 때리는 것이다”라는 한마디는 폭력을 훈육으로 둔갑시킨다. 아이 스스로도 “못하면 맞아야죠”라고 인정한다. 나만 공부를 잘하면 맞을 일이 없다. 이것은 못난 자신을 교정하기 위한 과정이다. 문제없는 가정에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학생들은 “저는 맞아도 싸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나면, 저항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다.

하지만 “부모님이 잘못했네”라는 선생의 말 한마디에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원인 제공자’라는 비난을 더는 받고 싶지 않아서 자기를 방어했던 것이다. “나를 때린 부모가 밉다” “억울하고 속상하다”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됐다”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부모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푸념이 그제야 나온다. 마음이 풀린 다음에는 스무 살만 되면 꼭 집을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성적표가 나온 날, 코뼈가 부러질 만큼 얻어맞고서 호기롭게 집을 나온 아이가 있었다. 아이에게 청소년 쉼터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권해봤지만 아이는 오히려 “그런 곳에 내가 왜 가요”라며 기가 막혀 했다. 아이에게 “그런 데는 결손가정이나 비행 청소년 등 문제 있는 애들이 가는 곳”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에서 자란 ‘내’가 뉴스에 나오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와 같은 사람일 리가 없다. “나만 없어지면 이 가정은 행복하고 완벽할 것”이라는 아이들의 말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오늘은 몇 시간 맞을지 내기하자’고 말하면서도 아이들은 그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부모의 생각도 같다. ‘엄한 아버지라서 아이와 갈등이 있다’거나 ‘애 아빠 성질이 불같아서 그런 것’일 뿐, 우리 가정에 문제는 없다. 그렇다고 문제 상황을 학생에게 인식시키는 게 꼭 좋은 일만도 아니다. 아이가 지니고 있는 삶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아동복지법에 뭐라고 적혀 있든 부모가 ‘사랑해서’ 그런다는데 ‘외부인’인 선생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를밖에. 하지만 가족의 논리가 어떠하든 아이가 성적이 낮기 때문에 맞는 게 당연하다고 배우는 것은 문제가 된다. ‘맞을 짓을 하니 맞고’ ‘무시당할 만하니 무시당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한 아이들이 오늘도 집에서 양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