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숨은 고수 복도에서 만나다
학교 화장실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치거나 지저분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런 화장실이 전보다 깨끗해졌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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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승인 2015.08.03 09:12:40 |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더럽고 웃기는 곳은? 정답은 ‘학교 화장실’이다. 지금은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비누와 휴지가 비치돼 많이 좋아졌지만 한때는 화장실이 더럽다고 점심시간이면 집으로 뛰어갔다 오는 아이도 있었고, 수업만 시작하면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뭐 하고 이제 화장실을 가려느냐고 물으면, 화장실 문이 잘 잠기지 않거나 더럽거나 해서 맘 놓고 볼일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유였다. 겨우 하나 차지하고 들어가 앉아도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밖에서 문을 흔들고 이름을 부르는 통에 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나.
여름이면 체육을 하고 들어와서 청소용 호스로 서로 물을 뿌려주며 샤워 하는 녀석들이 있지를 않나, 휴지를 물에 적셔 화장실 벽에 던지기 놀이를 하지 않나, 큰일 보러 들어간 친구 머리 위로 물을 뿌리거나 물총놀이를 하느라 화장실 입구를 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장난에 불과하니 야단을 치면서도 웃고 말지만 사실 화장실에서는 심각한 일도 많이 일어난다. 고체비누를 다 으깨서 세면기를 막아놓은 적도 있고 대용량 휴지를 통째로 빼서 변기통에 처박아놓은 일도 몇 번 있었다. 아이들에게 대대적인 훈화도 하고 당분간 비누나 휴지를 화장실에 두지 말아야 하나 선생님들 사이에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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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
그렇게 온갖 너저분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던 화장실이 요즘은 많이 깨끗해졌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아주머니 덕분이다. 청소를 워낙 잘하셔서 깨끗해졌느냐고?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주머니는 청소가 힘들어 땀을 많이 흘리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한다. 교복 바지가 터진 아이를 위해 바느질도 해주시고 누군가 의자에 풀죽어 앉아 있으면 옆에서 위로하는 모습도 보았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아이를 보면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나았는지 꼭 물어보신다. 아주머니는 아이들 이름도 많이 안다. 특히 수업시간마다 단골로 복도에 내쫓김을 당하는 아이들과는 더욱 친하다. 교과서 안 가져왔다고, 떠들었다고 복도로 내보내진 아이들은 무안해하면서도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아주머니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번은 아침 등교시간에 선생님들 사이에 말버릇 나쁘기로 소문난 녀석과 마주쳤다. 겅중겅중 계단을 뛰어오르는 녀석을 발견한 아주머니는 갑자기 “아무개 잡자~!” 하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잡으러 뛰어왔다. 남자아이들 사이에 많이 하는 잡기놀이를 하듯 함께 뛰어오르던 두 사람은 계단이 끝나자 하하하 웃으면서 헤어지는 게 아닌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와서 이 선생님, 저 선생님에게 말을 툭툭 걸던 그 아이는 아마도 어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교사들은 늘 녀석의 말버릇을 못마땅해했지만 아주머니는 그런 투덜이조차 예뻐라 하셨던 것이다.
“아이들이 없으면 하루가 너무 길고 지루해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화장실이 전보다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좋아한다. 아주머니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복도를 지나가다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느껴진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고마운 아주머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의 변화는 “힘드신데 얼른 방학이 되어야겠어요” 하는 나의 인사에 “아니에요, 아이들이 안 나오면 하루가 너무 길고 더 지루해요.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해야 청소하면서 시간이 후딱 가죠”라는 아주머니의 대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말았다. 청소를 해주어서가 아니라 우리 개구쟁이들을 귀히 여겨주시는 마음이 감사했던 것이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인생 도처에 ‘상수(上手)’가 있다고, 본인은 그런 숨은 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말을 해서 무릎을 치면서 읽은 적이 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청소하는 아주머니께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교실이 정말 행복해지려면 교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운다.
급식 한 끼에 담긴 지역의 현재와 미래
학교급식은 지역의 교육자치와 행정자치, 시민사회가 맞부딪치는 정치 공간이다. 충남 홍성군과 강원도 횡성군의 학교급식지원센터 모델은 급식 한 끼를 제대로 만들려면 좋은 협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9년, 공전의 히트를 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성질 고약한 이순재(이 드라마에서는 극중 이름이 출연자들의 실제 이름과 같은 경우가 많았다)는 식품회사 사장이었다. 이 업체에 급식을 위탁하는 학교의 교감, (지금은 고인이 된) 김자옥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계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매일 실수를 저지르는 사위 정보석은 낙하산 부사장 역할이었다. 그런데 정보석에게 전화위복의 기회는 엉뚱한 데서 온다. 위탁급식 업체를 운영하는 이순재의 회사가 ‘직영 급식’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극중 이순재가 ‘다들 직영을 하니까 우리도 대책을 세우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보석이 자신의 이름을 딴 ‘보석비빔밥’으로 대박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가 직영 급식의 전환 유예기간 마지막 해였다.
급식에는 다양한 주체가 얽혀 있다. 당사자인 학생, 수익자인 학부모, 실제로 급식 현장에서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영양(교)사와 조리 종사원, 생산자인 농어민, 그리고 수많은 ‘순재씨’, 즉 유통업체까지. 그리고 학교급식은 지역의 교육자치와 행정자치, 민간(시민사회)이 맞부딪치는 정치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급식의 메뉴를 짜는 데에는 다양한 주체가 얽혀 있으니 그만큼 이해관계도 다르고, 주체끼리의 충돌 가능성도 상존한다.
학교급식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를 조율하고 묶어내는 테이블이 바로 ‘학교급식지원센터’다. 학교급식지원센터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관할 지역에서 생산된 우수 농산물이 학교에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현물(농산물)이나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운영체계”로 정의되지만 실제로는 그 양상이 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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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그림 |
물론 이런 학교급식지원센터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없는 곳에서는 각 학교가 알아서 해야 한다. 전국의 절반 이상 학교가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eaT)을 통해 급식 재료를 조달한다. eaT의 경우 한국농수산유통공사가 ‘나름’ 심사한 급식업체를 등록해놓으면, 학교의 영양(교)사가 개별 발주하는 체계다. 그 업체들은 전국 팔도를 다니며 식재료를 매집하는 일종의 유통업자다. 게다가 eaT의 경우 사후적으로 식재료 안전검사를 하지만 급식센터 시스템은 아예 사전에 식재료 검사를 해서 학교로 배송한다.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관’에서도 식재료의 안전관리 측면에서는 eaT보다 낫다고 인정한다(감사원 2014년 보고서). eaT는 87.745%라는 낙찰 하한가가 정해져 있지만 여전히 질보다는 양에 힘을 싣는 ‘저가 낙찰’이 기본 운영체제다. 무엇보다 지역의 예산으로 유지되는 학교급식인데도 지역산 식재료를 적극 수용하지 못하는 점이 한계다.
그런 맥락에서 충남 홍성군과 강원도 횡성군의 학교급식지원센터 모델은 주목할 만하다. 타 지역의 급식센터나 eaT와의 가장 큰 차이는 학부모와 영양사, 교육청, 공무원이 모여서 ‘식재료 조달지원체계’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기존 학교급식 납품업체인 ‘순재씨’들도 배제하지 않는다. ‘순재씨’도 결국 지역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선 물품 선정, 후 메뉴 작성’의 장점
해마다 12월에 모여 안전성 검사까지 담보한 물품을 선정하고, 매달 각 학교로 ‘조달 가능한’ 물품 리스트를 보낸다. 물품 리스트를 보고 영양(교)사들은 식단을 짠다. eaT는 영양(교)사들이 메뉴를 먼저 짜고 가능한 품목을 동원하는 방식이라 어디에서 무엇을 동원하든 한 그릇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식재료의 제철성과 신선도, 지역성을 살리는 데에는 홍성과 횡성센터를 따라갈 수 없다. 홍성 사람이 ‘홍성 테이블’에 모여서 물품을 선정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로컬푸드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 학생들에게 한 끼를 먹이는 거야 전국 공통의 과제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가장 결정적 차이다. 급식 한 끼를 제대로 구성하려면 좋은 협치(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홍성과 횡성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아무리 돈이 많은 지자체여도 ‘협치’의 의미와 묘미를 알지 못하면 이 모델은 실현하기 어렵다. 급식정책에서 각자도생의 감각만 도드라지는 대구나, 급식이 시민운동의 성과라는 점을 무시하고 이를 중앙정치 진출의 교두보로만 여기는 듯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해내기에는 쉽지 않은 모델이다. 그러나 지역 학생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지역의 현재는 물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므로 어렵지만 꼭 해야 한다.
이 연재의 마무리 원고를 쓰는 와중(7월14일)에 인천시의회는 강화군 중학교 1학년생의 무상급식 예산 47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도시의 원룸 전세비도 안 되는 액수의 예산을 줄여 아이들한테 밥 한 끼 못 주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급식이 정치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먹는 일이란 가장 치열한 정치 행위다. 학교급식은 여전히 싸워서 얻어내야 할, ‘뜨거운 식판’이자 ‘뜨거운 한판’이다.
※ 이번 호를 끝으로 ‘밥 먹으러 학교 가자’ 10회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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