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말고 ‘수법’을 배우세요
수학을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개념을 모르거나, 아는 개념도 연결시키지 못하거나. 수학 개념이 고전 명작이라면 수학 문제는 최신 경향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출문제도 통용기한은 10년 남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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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 승인 2015.07.01 09:00:40 |
‘수포자도 웃는 신나는 수학’ 다섯 번째 강좌를 맡은 임홍덕씨는 강사진 6명 가운데 유일한 사교육 종사자다. 그러면서도 ‘수학을 잘하려면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문제풀이에 매달리기보다는 개념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것이 수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란다. 학원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안의 수학 본능’을 일깨우는 수학 공부는 정녕 가능할까. 6월9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진행된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나는 수학 강사보다 수법(數法) 강사로 불리고 싶다. 수법이 뭐냐고? 수학하는 법이다. 우리가 초·중·고교 12년간 수학을 공부하면서도 정작 수학하는 법을 잘 모른다. 수학하는 법을 알면 사교육이 일어날 수가 없다. 수학은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학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래기스>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학 선생들 말은 믿지 마. 사회에 나가면 아무 쓸모도 없어.” 실제로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근의 공식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쓸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흔히 싸우다 말고 “너, 나이가 몇이야?” 시비를 거는 이들이 많다. 싸움 주제와 관계없는 나이를 느닷없이 갖다 붙이는 식인데, 수학을 알면 적어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우기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수학은 논리적이고 정교한 ‘연결’을 배우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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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사교육 종사자인 임홍덕씨는 문제풀이만 강요하는 현행 입시 수학이 더는 수학이라 불러서는 안 될 수준까지 와 있다고 지적했다. |
그런데 수학은 정답이 아닌 과정의 연결이 중요한 학문이다. 수학적 이해란 항상 자기가 아는 것을 이용해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다. 내가 수학 사교육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수학은 모르는 걸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더 깊이 보고 연결함으로써 내가 몰랐던 걸 떡하니 발견해내는 힘을 기르는 학문이 수학이다. 교사도 일종의 코치로서 수학하는 법을 지도할 뿐 새로운 걸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슨 말이냐고? 밑변이 3㎝이고 높이가 4㎝인 직각삼각형의 빗변(a) 길이를 구하는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머릿속에 뭐가 떠오르시나? 중학교 때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당장 떠오르실 거다. 알고 있는 공식대로라면 ‘밑변의 제곱+높이의 제곱=빗변의 제곱’이니까 답은 5가 맞다. 그런데 앞서의 정팔각형 문제처럼 이 또한 공식으로 구한 답일 뿐 내가 아는 것을 이용해 알아낸 답은 아니다. 반면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면 어떨까? 평행사변형의 넓이를 이용해 문제를 풀어보라고 할 수도 있다. 모두 초등학생 정도의 수학 지식만 있으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일단 밑변 3㎝, 높이 4㎝인 직각삼각형을 두 개 그려보자. 이 중 한 개는 세우고(파란색) 한 개는 옆으로 눕힌 다음(노란색) 이들 꼭짓점 사이에 선을 그으면 사다리꼴 모양이 완성된다(50쪽 <그림 1> 참조). 이 사다리꼴 넓이는 ½×3×4(파란색 삼각형 넓이)+½×3×4(노란색 삼각형 넓이)+½×a×a(흰색 삼각형 넓이)가 된다. 모두 합해 12+½a², 이것이 전체 사다리꼴의 넓이가 되는 셈이다. 그런 다음 이 사다리꼴의 오른쪽 귀퉁이를 잘라내 아래쪽에 갖다 붙이면 <그림 2>와 같은 모양의 삼각형이 다시 만들어진다. 이 삼각형 넓이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½×7(밑변)×7(높이)이다. 그런데 삼각형(<그림 2>)과 사다리꼴(<그림 1>)은 넓이가 같으니까 12+½a²(사다리꼴 넓이)=½×7×7(삼각형 넓이)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걸 풀면 a²=25, 곧 빗변(a) 값은 5라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까지 푸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나? 없을 것이다. 삼각형의 넓이만 이용해서 풀었으니까.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몰라도 얼마든지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다.
‘공식’ 도출하기까지 과정을 이해해야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못 푸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개념을 모르거나, 아니면 개념은 알아도 이를 연결시키지 못해서다. 그러니 수학 잘하는 법은 아주 단순하다.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다음에 연결하는 힘을 키우면 된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이른바 ‘연이개(연결되어 이어지는 개념) 수학’이다.
개념을 연결하다 보면 무엇보다 과정을 설명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일단 과정을 설명하려면 문제가 제시한 조건(‘삼각형의 넓이로 빗변 길이를 구하라’)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일종의 조건 파악 능력이 필요한 셈이다.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물론이고 소통 능력과 배려심도 필요하다. 수학적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뭘 알고 있는지를 파악한 다음, 서로가 공유한 지식을 기반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특정 용어에 대한 정의가 다르거나 공리(公理) 자체가 다르다면 더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둘째, 개념을 연결하다 보면 과정 생략법을 만드는 능력도 길러진다. 흔히 공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내가 붙인 이름이 ‘과정 생략법’이다. 공식이라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어렵게 말하느냐고? 공식보다 그 공식을 도출하기까지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각형 넓이를 이용해 빗변(a) 길이를 구하는 앞서의 문제에서 밑변과 높이를 각각 b와 c라는 기호로 바꾼 다음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 a²=b²+c²이라는 공식이 도출된다. 이런 과정 생략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시스템 구축 능력, 일반화 능력, 인내심, 메타인지 능력 등이 길러진다.
과정 생략법을 만들 줄 알게 되면 세 번째는 과정 생략법을 활용하는 단계다. 여기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워낙 열심히들 하는 것이 이 세 번째 단계, 곧 공식으로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 생략법을 이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반드시 필요하다. ‘암기냐, 이해냐’ 하는 식의 이분법은 수학에서 타당하지 않다. 수학에도 암기해야 할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18×15를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은 구구단을 외운 덕분이다. 구구단을 외우지 않았다면 답을 구하기 위해 18을 열다섯 번 더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수학을 할 때는 암기와 이해를 조화시켜 새로운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현행 입시 위주 수학교육의 경우 사실상 암기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실제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암기하지 않은 채 삼각형의 넓이만으로 문제를 풀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런 방식으로는 1분에 한 문제꼴로 풀어야 하는 수학시험을 감당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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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학생들이 수학 공부 시간 대부분을 이것들을 소비하는 데에 쓴다. 그래도 문제를 안 푸는 것보다는 푸는 게 낫지 않겠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렇게 문제를 풀다 보면 이해 못한 문제와 개념 등이 머릿속에서 엉키면서 쌓이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십중팔구 수학을 싫어하게 된다. 이들 처지에서 수학 문제란 끊임없이 덤벼드는 게임 속 좀비 같은 존재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념 A를 수학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개념 A를 개념 A가 아닌 다른 개념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지구의 모양을 볼 수 없듯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삼각형의 넓이나 평행사변형의 넓이처럼 우리가 아는 다른 개념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곧 ‘이것’을 ‘이것이 아닌 것’과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 이것이 수학 공부에 관한 단 하나의 규칙이다. 그런데 대다수 아이들은 이 규칙을 지키지 않고 문제풀이에만 매달린다. 그 결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을 점점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다, 궁극에는 수학을 시험에나 필요한 과목으로 여기게 된다.
‘삼각형에서 두 변의 길이의 합은 나머지 한 변의 길이보다 길다’는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의 명제를 두고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맞은편에 당근을 놔두면 당나귀가 당연히 최단 코스로 가지 먼 길을 돌아가겠느냐”라고. 수학자들이 뻔한 이치를 증명한답시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비웃은 셈인데, 나는 이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다. 수학은 단순히 정답을 구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지식과 연결해주는 수학
그렇다면 수학이 삶에서 무슨 도움이 되느냐? 나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인간의 모든 지적 행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연결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반 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테라스>는 대중적인 카페를 배경 삼아 그린 그림이다. 당대 수많은 사람들이 밤마다 그 카페에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흐는 그림 속 밤하늘을 검은색이 아닌 보라색·초록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창조해낸다. 음악이 발전한 것 또한 소리를 시각(음표)으로 연결해냈기 때문이다. 통상 잘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에서 공통의 속성을 잡아내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다. 수학은 이런 연결 능력을 키워준다.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지식과 연결해 설명하는 게 수학의 목적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정답을 맞히는 식의 문제풀이를 강요하는 현행 ‘입시 수학’은 더는 수학이라 불러서는 안 될 수준에 와 있다. 내가 수학 강사 대신 수법 강사를 자처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수학은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의 ‘풀꽃’ 중)라고 시인은 노래했다. 수학도 그렇다.
정리·김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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