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수학 공부? ‘1+3’ 원리를 기억하라

일취월장7 2015. 6. 17. 12:59

 

수학 공부? ‘1+3’ 원리를 기억하라

많은 학부모들이 성적에 일희일비하지만,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성적은 의미가 없다. 수학은 1시간 강의를 들으면 3시간은 혼자 공부해야 잘할 수 있는 과목이다. 고교 시기를 감당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조회수 : 595  |  양영기 (안양 신기초등학교 교사, 노워리상담넷 수학 상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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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승인 2015.06.17  08:58:58

‘수포자도 웃는 신나는 수학’ 세 번째 강좌의 주인공 양영기 교사는 이력이 특이하다. 서울 대치동 수학 강사로 10년을 일하다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사교육 10년, 공교육 10년을 거쳤더니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은 것 같다”라는 그는 균형점에 서고 보니 아이들이 너무 고통스럽고 비효율적으로 수학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노워리상담넷(noworry.kr)의 수학 상담팀장으로 학부모·학생 상담도 활발하게 진행 중인 그가 5월26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려준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오늘 주제가 ‘학교만으로 충분한 수학’인데, 설득이 되시나?(웃음) 우리 시대의 상식과는 어긋나지만, 강의를 통해 이를 증명해보고자 한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오늘 학원가, 특히 서울 대치동 얘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대치동에서 어려서부터 30년 넘게 살았다. 대학 졸업 후 대치동 학원가에서 10년 넘게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수학을 가르쳤다. 그러다 공교육 현장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공교육·사교육을 두루 거친 양영기 교사는 지난해 <학교만으로 충분한 수학>이라는 책을 썼다.  
ⓒ시사IN 조남진
공교육·사교육을 두루 거친 양영기 교사는 지난해 <학교만으로 충분한 수학>이라는 책을 썼다.
 
먼저,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왜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지부터 살펴보자. 이유는 단순하다. 사교육으로 효과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대치동 키드’를 꿈꾸었던 한 학생의 얘기를 다룬 영상을 먼저 보자. 지방 출신으로 중3 때 대치동에 입성한 이 아이는 처음에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한다. 고1 때는 상위 1% 안에 든 적도 있다. 그런데 갈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학원의 빡빡한 스케줄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지쳤던 것 같다”라고 아이는 말한다. 결국 아이는 대학에 떨어져 재수 중이다. 엄마와 사이가 나빠져 지금은 말도 안 하고 지낸다고 한다. 이 엄마, 아마도 아이가 잘나갈 때는 “역시 대치동”이라며 여기저기 얘기를 퍼뜨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이다 보니 실패담은 사라지고 성공신화만 널리 유포된다.

학부모들은 정보를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믿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편향 효과다. 나 또한 사교육 강사일 때는 내가 강의를 꽤 잘한다고 착각했다. 내 강의를 듣고 성적이 올라간 아이도 많았다. 비결이 뭘까? 내가 잘나가면서부터 아이들을 골라 뽑았기 때문이다. 면접을 통해 될 것 같은 아이들, 간절함이 엿보이는 아이들만 뽑았다. 엄마한테 억지로 끌려온 듯한 아이들은 탈락시켰다. 이렇게 걸러진 아이들이다 보니 조금만 열심히 해도 성적에 날개가 달렸다. 이것이 바로 학원의 선발 효과다.

그래도 대치동은 다르다고 믿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유명 학원 중에는 강사를 경쟁시켜 주기적으로 30%씩 물갈이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피 말리는 경쟁을 하다 보니 사교육 강사들이 아무래도 교사보다는 긴장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학원이 학교보다 정보가 많고, 각종 학습 지원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걸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특히 수학은 더욱 그렇다. 수학에서는 이런 환경적인 요인보다 학생 개인의 역량이 훨씬 중요하다. ‘수학의 신’을 데려다놓는다 해도 학생 개인의 역량이 떨어지면 절대로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대치동이나 특목고가 성적을 올려주는 비결이 있기는 하다. 학습량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 그 비결이다. 어느 정도로 많으냐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공부시킨다고 보면 된다. 유명 특목고의 경우는 이미 고1 단계에서 수능 만점을 맞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이 하루 3시간 넘게 수학을 공부한다. 한 문제라도 실수로 틀리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해 수능 만점자 12명 중 4명을 배출했다는 대구 K고도 마찬가지다.

반면 지방 학교나 일반고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떨까? 나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사라진 이유가 개천이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유혹의 요소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특히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치명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데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대치동 아이들과 경쟁을 하겠나? 서울·강남·특목고와 지방·강북·일반고 간 아이들의 학습량 격차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 심지어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시달리는 학생은 대치동으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독한 학습량에 치여 폭력이나 왕따를 시킬 힘도 없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치동이다.

언제까지 학원 전기세나 보태줄 건가?

물론 이런 과도한 학습량은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엄마표’ 내지 엄마 주도형 학습에 휘둘려 공부한 아이들은 일정 시기에 이르면 ‘고무줄 현상’을 보인다. 이미 팽팽할 대로 팽팽해져 조금만 힘을 가해도 줄이 툭 끊어져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력 질주해야 할 고2, 고3 단계에서 ‘더는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며 절망에 빠진 아이들이 생겨난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와 사이가 아주 나빠지거나 정반대로 부모가 뭔가 해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양산된다.  

다시 말해 대치동 학원가나 특목고의 성공 비결은 공부할 준비가 돼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죽도록 공부시킨 것이라 보면 된다. 그 학원에 다닌 덕분에 아이 성적이 오른 게 아니라, 그 학원이 제시하는 로드맵이나 학습량을 감당할 만한 아이들이었기에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내 아이는 어느 쪽일까? 지금 학원비를 내는지 안 내는지 돌아보시라. 명문대에 갈 만한 싹수가 있는 아이들한테는 학원에서 연락이 온다. 장학금을 줄 테니 자기네 학원으로 오라면서. ‘SKY 합격생 ○○명 배출’ 식으로 학원이 내건 현수막에 오른 명단은 대부분 이런 아이들의 것이라 보면 된다. 반면 나머지 대다수 아이들은 허리띠 졸라매면서 학원비 대줘봐야 그 학원 전기세나 보태줄 뿐이다.

학원마다 촘촘히 레벨 테스트를 하는 이유가 뭘까? 부모들은 내 아이 수준을 파악해 맞춤형 수업을 해주기 위해서일 거라고 착각한다. 학원이 학생 레벨을 따지는 건 결국 선별을 통해 자기네 이름값을 올리기 위해서다. 학원이 레벨 테스트보다 더 신뢰하는 건 학교 내신이다. 내신을 우습게 보는 분들이 있는데, 오랜 학원가 경험으로 보면 내신 좋은 아이가 학원에서도 잘한다. 결국 학원을 다녀 아이가 최상위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원이 최상위권 아이들을 데려다 전시하는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상위 1~2% 아이들이 ○○학원에 다닌다더라”며 그리로 몰려간다. 특목고도 비슷하다. 비평준화 시기, 안양에 서울대에 50명을 보낸다고 소문났던 학교가 있다. 그런데 그 학교가 평준화로 바뀐 해에는 단 한 명도 서울대에 보내지 못했다. 교사, 시설, 건학이념 등 모든 것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결국 선발 효과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한 입시학원 복도에 붙은 대학 합격자 포스터. 이들 학원의 ‘선발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사IN 자료
한 입시학원 복도에 붙은 대학 합격자 포스터. 이들 학원의 ‘선발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해도 ‘학원발’을 맹신하는 분들이 있다. 중3인 딸을 학원에 보낸 뒤 수학 성적이 크게 올랐다고 기뻐하는 엄마를 만난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고교에 진학한 뒤 엄마 표정이 바뀌었다. 죽도록 열심히 해도 아이 성적이 더는 오르지 않아서다. 장담컨대 이 아이가 학원에 다닌 직후 성적이 반짝 오른 것은 유형별로 문제를 수천 개씩 풀어봐서일 것이다. 중학교까지는 이 방식이 그런대로 통한다. 정해진 유형 내에서 시험 문제가 나오니 많이 풀어본 사람이 유리하다. 그러나 고교 단계에 이르면 수학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고 범위도 넓어지기 때문에 본인의 내공, 곧 수학적 사고력이 있어야만 이를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 ‘수학 성적=수학 실력’이라고 착각했던 아이들은 추락을 경험하곤 한다. 수학 실력이 오르면 수학 성적이 오르지만, 수학 성적이 올랐다고 수학 실력이 오르지는 않는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하셔야 한다.

수학 싫어하게 된 계기 1순위는 ‘학습지’

많은 부모들이 성적에 일희일비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성적은 의미가 없는데도 그렇다. 이 시기에는 아이가 혼자 수학을 풀면서 재미있어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이렇게도 풀고 저렇게도 풀어보면서 실패를 경험해야 어느 순간 사고의 회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입학 전 사교육은 절대적으로 자제해야 한다. 학습지도 제발 시키지 마시라.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수학을 싫어하게 된 계기 1순위가 학습지다. 엄마는 싼 맛에 이것저것 시켜보는데, 이로 인해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기다리지 않으면 교육이 아니다. 항상 예습·복습을 중심으로 자기 학습시간을 확보하면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게 해주어야 한다. 수학 학습에서는 ‘1+3’의 원리가 중요하다. 1시간 수업을 받으면 3시간은 혼자 공부해야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수학은 듣는 것이 아니라 푸는 과목이다. 아무리 좋은 강의도 혼자 책상에 앉아 고심하며 푸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서는 소화하기 어렵다.

그래도 학교 수업만으로 수학이 가능하겠냐고? 지금 대다수는 사교육 중심의 로드맵을 따라 한다. 그런데 공교육 중심으로 ‘가지 않은 길’을 가라니, 미심쩍어 하는 분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 있게 저 길을 추천할 수 있다. 일단 공교육 중심으로 로드맵을 짜면 정보를 애써 따로 구할 필요가 없다. 학교마다 교육과정이나 교과서가 평준화되어 있으니 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교과서대로 따라가면 심화학습 효과도 있다.  ‘¼÷¼은 얼마인가’ 같은 문제를 풀 때 학원에서 배운 아이들은 한결같이 나눗셈(÷)을 곱셈(×)으로 바꾼 뒤, 뒤쪽에 있는 분수를 뒤집어 곱하는 방식으로 답을 구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뒤집는지 물어보면 대답하는 아이가 없다. 이미 결과를 아는데 과정이 궁금하겠나? 드라마 결말을 알면 재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교과서는 이를 과정 중심으로 설명한다. 더욱이 초·중·고교의 교육과정은 불완전하나마 나선형으로 연계돼 있다. 초등 5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최소공배수 개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면 중1 과정에 나오는 소인수분해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다. 심화학습이 곧 선행학습이 되는 것이다.

현행 수학 교육과정은 어쩔 수 없이 선행을 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고교 이과 학생들의 경우 3년 과정을 고2 때까지 마쳐야 하다 보니 한 학기 또는 1년 정도 진도를 미리 나가야 한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때 미리 중학 수학을 배우고, 중학교 때 미리 고교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진도를 나가는 식의 선행은 어리석다. 대부분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내용들을 주입받다 보니 내용은 내용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학습 결손만 쌓여간다. 역설적으로 고교 시기에 선행을 감당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수학적 사고력으로 심화된 내용을 꾸준히 쌓아온 아이들만이 선행을 제대로 소화한다.

학교만으로 충분하다는 얘기는 학교가 잘 가르치니까 다른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수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학생의 주도적인 노력이 없이는 좋은 강의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핵심은 학교에 즐겁게 다니게끔 만들어주시라는 거다. 학교라는 자원을 포기할수록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몸에 좋은 집밥 대신 외식에 의존해서야 건강만 해치고 돈은 돈대로 쓰게 되지 않겠나.

정리·김은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