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수출 부진, 장기화될 가능성 크다 - 장기불황 극복해 온 일본 중소기업 무엇이 달랐나

일취월장7 2015. 4. 23. 15:42

수출 부진, 장기화될 가능성 크다
강중구 | 2015.04.21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유가 등 단가하락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이나, 주요 수출품에서는 물량 측면에서의 부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산유국 성장 둔화, 유럽, 일본 대비 상대적 환율 절상이 수출 부진의 주된 원인으로 판단된다. 올해도 수출이 경기를 이끄는 힘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관 수출이 올해 들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면서, 1분기 기준 전년동기대비 2.9%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2011년까지 두 자릿수 증가세가 당연시되던 우리 수출이 2012년 이후 지지부진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해 말부터는 뚜렷한 하강흐름을 보이고 있다(<그림 1> 참조). 최근 우리경제의 실물경기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는 소비 부진과 함께 수출 감소세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수출 부진은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물량보다는 단가하락 요인이 크다. 수출단가는 전년동기간(1, 2월) 대비 10% 감소한 반면, 물량은 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수출 중 석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6.1%라는 점에서 최근의 유가하락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화학제품까지 포함하면 비중은 16.6%까지 올라간다. 만약 수출 감소가 유가 하락만의 영향이라면, 최근의 수출 부진은 단순한 착시효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가하락 요인 이외에도 수출 흐름에 부정적인 측면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 보다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석유제품 이외에도 대부분의 주요제품 수출단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반등했던 철강제품 단가는 올해 들어 다시 7.7%(1, 2월 기준 전년동기비) 감소했다(<그림 2> 참조). 중국의 공급능력 증가 등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공급과잉현상이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세탁기 등 가전제품 단가도 5.5% 감소했으며, 정보통신기기 수출단가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내구소비재의 경우, 세계수요 회복이 더딘 가운데 중국 등 개도국의 후발업체들이 경쟁에 나서면서 수출단가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수출단가도 올해 들어 2.3% 하락했다. 저유가로 타제품의 수출단가 약세 흐름이 가려져 있지만, 최근의 수출 부진은 주력제품들의 단가하락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주력 수출품, 물량 단가 모두 부진


수출 감소세는 단가 하락 요인이 크지만 수출 물량 증가율도 지난해보다 뚜렷하게 낮아졌다.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나면 우리의 대부분 주력 수출품들이 단가 뿐 아니라 물량측면에서도 부진함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3> 참조).


IT기기 수요 회복으로 반도체 등 전자부품 수출의 활력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1분기 실적치도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구소비재의 경우 2012년 이후 세계경기의 더딘 회복으로 수출활력이 낮아져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더욱 위축되는 모습이다. 경쟁심화로 중국 등 개도국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수출 물량은 올 초(1, 2월) 전년동기 대비 18.6% 감소하였으며, 승용차는 지난해 대비 10.9% 줄어들었다.


철강, 석유화학 등 원자재 및 자본재의 경우도 수출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다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던 1차금속제품은 공급과잉으로 인해 올해 수출이 다시 둔화되는 모습이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경우 올 초 수출물량이 다소 늘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중국의 자급률이 상승하면서 수출 시장이 축소되는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통관수출보다 국제수지의 상품수출이 훨씬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림 4> 참조). 최근 통관수출의 경우 해양플랜트의 인도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 지표간의 차이를 만든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국제수지에서는 선박 등의 장기 구조물의 경우 인도시점에서 한번에 인식하지 않고, 생산 스케줄에 따라 나누어서 선반영하게 된다.


현재의 국내경기 흐름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는 선박 수출 증가세는 제외하고 볼 필요가 있다. 실제 선박을 제외할 경우 우리 수출(통관, 금액 기준)은 1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6.7%로 감소폭이 확대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선진국 중 대미수출만 호조, 개도국 부진은 심화


지역별 수출 추이는 최근 세계경제의 성장흐름과 그 궤를 같이한다. 세계경제는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개도국은 중국 등을 중심으로 성장률이 둔화되는 모습이다. 선진국 경기흐름이 양호한 것은 미국의 성장세가 좋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의 수출은 지난해 13.3% 증가했는데, 올 1분기에도 거의 유사한 수준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그림 5> 참조). 반면 대중수출은 지난해 0.4% 감소하였고, 올 초에는 감소폭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대OECD 수출은 올 1분기 3.7% 증가한 반면, 비OECD국으로의 수출은 6% 감소하였다. 그동안 우리 수출에서 중국 등 개도국 비중이 높아져 왔었다는 점에서 세계경기흐름이 우리 수출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속도에 비해 우리 수출이 위축되는 속도가 더욱 빠르다. 가공무역을 줄이는 등 중국경제의 질적인 구조전환이 우리 수출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중국의 생산능력이 확대되고, 우리와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자급률이 높아지는 점도 중국시장의 크기가 성장둔화 이상으로 줄어드는 요인이다.


산유국들에 대한 수출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00년대 유가상승기에 산유국들의 구매력이 확대되면서 우리 수출도 빠르게 늘어난 바 있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주요 산유국으로의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약 2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가급락과 러시아 경제 제재 등에 의해 최근 이들의 구매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수출 감소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산유국으로의 수출이 전년대비 1.5% 증가로 둔화되었는데, 올 초에는 -3.4%로 부진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환율 경쟁이 수출부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


유럽, 일본의 경우 최근 수출흐름이 이들 지역의 경기흐름과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ECB와 일본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통해 화폐가치를 절하시키면서 4분기들어 실물경기가 회복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들 지역으로의 우리 수출 감소세는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그림 6> 참조). 점유율 측면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아 우리가 타국대비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들 지역의 수입물가 상승으로 경기 회복 대비 전반적인 수입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우리 수출이 처해져 있는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 공급과잉과 경쟁심화로 주력제품의 수출단가 하락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최근의 수출 부진은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적, 구조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첫째, 우리 수출의 가장 큰 대상국인 중국의 성장방식 변화는 장기간 이어질 것이다. 신창타이로 대변되는 구조 변화는 중국경제가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교역방식도 가공무역에서 탈피하고 소비재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중 수출은 자본재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상당기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저유가 또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산유국에 대한 수출효과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타이트 오일의 생산 증가로 석유공급능력이 빠르게 확대된 반면, 석유소비 효율화, 중국의 성장방식 전환 등으로 석유수요 증가는 더디다. 지정학적 돌발요인 등 유가 변동 리스크가 있지만 저유가 국면이 일시적 현상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중론이다.


셋째, 중장기적 원화흐름 역시 수출에는 부정적인 요소이다. 원자재 가격 하향세와 만성적인 내수부진으로 수입이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금리 인상 등으로 일시적인 원화약세가 나타날 것이나 금융시장이 안정된 이후 원화는 절상압력을 받을 것이다.
세계교역에서 우리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대 중반에서 아직 크게 변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원화의 상대적 절상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이 나타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세계경기 흐름 속에 구조적인 부진요인들을 고려해 본다면 올해도 수출이 경기를 이끄는 힘이 매우 낮은 한 해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끝>

 

 

20년 장기불황 극복해 온 일본 중소기업 무엇이 달랐나
이지평 | 2015.04.22

20년 이상 계속된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일본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내수부진과 함께 엔고가 진행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했으며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지역경제 위축의 이중고를 겪었다. 저출산, 인구고령화는 장기불황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한편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각종 소비재 시장을 위축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내수부진과 경쟁력 약화로 제조업의 공동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99만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에는 여전히 수많은 강소기업들이 산업계 전반에 포진해 있다. 장기불황에도 빛을 잃지 않았던 일본 중소기업은 4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초기술에 투자하면서 대기업과 협력해 제품 이노베이션에 성공한 중소기업들이다. 둘째, 현장의 숙련된 응용기술을 높이고 다양한 고객에 대응하면서 점차 기초기술을 강화한 글로벌 틈새시장의 강자이다. 셋째, 전기전자나 기계 등 자사의 기존 기술적 강점을 친환경 등 뉴비즈니스 트렌드에 맞게 고도화하여 신사업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넷째, 소재 및 부품 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경제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오랜 장기불황에도 자신의 강점을 유지 발전 시켜온 일본 중소기업의 네 가지 유형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요소로 협력을 들 수 있다. 특히 일본 중소기업이 고객인 대기업이나 대학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기술력 제품력을 높여 온 사례가 많다. 공동연구와 지역 기업들의 협력과 정보교류, 경쟁이 일본 중소기업의 저변을 흐르는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목 차 >


1. 중소기업에게 더 혹독했던 장기불황
2. 장기불황을 극복한 중소기업 사례
3. 시사점

 


1. 중소기업에게 더 혹독했던 장기불황

 


일본정부의 법인세 인하, 엔저 유도 등 각종 기업 지원정책에 힘입어 일본 대기업의 수익이 개선되고 있다. 일본 거대 제조업체들이 고수익을 기반으로 임금 인상에 나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체감경기지수의 회복, 기업 부도 건수의 감소 등 전반적인 기업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체감경기는 전반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일본경제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던 중소기업이 1990년대 이후 20년 이상의 정체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일본 내에서 정책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장기불황과 함께 일본 중소기업들이 겪게 된 어려움은 저출산·인구고령화에 따른 시장 위축, 신흥국 기업의 추격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이와 같은 일본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향후 낮은 성장률과 저출산·고령화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직면하게 될 상황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은 일본의 소재 및 부품 산업의 토대가 되었으며, 동시에 대기업이 캐치업 경영에서 벗어나 이노베이터로 도약하는 데 기여해 왔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에 버금갈 정도로 특정한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면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일본에는 여전히 많이 있다. 이들이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전략들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조적 불황업종 확대와 제조업 공동화


일본 중소기업 수는 1990년대 말과 2012년 사이에 99만개, 20% 이상 감소했다. 장기불황으로 부도가 확대되고 창업이 부진을 보이면서 일본경제의 각 제조거점에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섬유 등 경공업 분야의 타격이 컸다. 예를 들어 섬유산업의 경우 1985년 기준으로 6만 6,174개를 넘었던 사업체수가 2010년에는 1만 5,902개로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에 종업원 수도 115만명에서 30만명으로 크게 줄었다.


산업과 지역경제의 공동화 현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하는 산업단지에서도 진행되었다. 경영악화를 극복하려는 대기업의 생산거점 해외이전으로 지역내 중소기업의 생산 기반이 장기불황과 함께 크게 약해졌다. 특히 섬유와 함께 전기전자 산업의 매출 및 생산 감소 충격이 컸다(<그림 4> 참조). 이는 일본 전자조립 기업의 공장폐쇄가 각 지역 하청 중소기업의 경영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DP TV 사업을 주도해 왔던 파이오니아의 경우 TV 조립공장을 단계적으로 폐쇄할 때마다 공장 주변의 하청 중소기업도 동반 위축되었다.


1990년대 버블 붕괴의 영향이 점차 심각해지면서 은행부실채권 문제가 악화되어 중소기업 대출이 부진을 보인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2000년대 중반에 일본의 부실채권 문제가 거의 해결된 이후에도 디플레이션과 함께 통화량과 대출이 둔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를 압박하는 현상은 이어졌다. 중소기업 대출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정체되었다(<그림 5> 참조).


중소 제조기업의 어려움은 각 지방 중소도시의 경제적, 재정적 어려움을 가중시켜 해당 지역 서비스 기업 경영도 압박했다. 지방도시의 중심가에서는 상점들이 영업 부진으로 폐업한 후 신규점포가 들어서지 않아 낮이나 밤에도 가계 문이 잠겨있는 집들이 즐비한 셔터 마을 현상이 확산되었다. 중소기업청의 위탁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 전국 상가의 빈 점포 비율은 2000년의 8.5%에서 2012년에는 14.6%로 확대되었으며, 리뉴얼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융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 상태에 빠진 지역 상가조합도 증가했다.


저출산·고령화가 중소기업 경영 압박


장기불황의 배경이기도 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중소기업 경영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방 중소기업들은 좋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신흥국기업과의 경쟁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일본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을 때 세계적으로는 IT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현장 기술자도 제품 설계나 제조 가공 과정에서 IT 기술 등 새로운 노하우를 축적할 필요가 있었으나 중소기업의 인력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이러한 대응이 어려웠다. 인력 부족 심화로 인해 주문 받은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흑자 도산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중소기업이 가진 특수 기능이나 지식을 젊은 인재들이 계승하지 못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중소기업청의 조사에서도 각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경제의 과제로서 인구의 감소 및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50% 이상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6> 참조). 인구 증가율이 둔화되는 가운데 지방에서 대도시로 젊은 층의 인구이동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대도시보다 지방의 인구감소가 상대적으로 일찍 본격화 되었다.

 


2. 장기불황을 극복한 중소기업 사례

 


① 대기업과 함께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이처럼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고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일본 중소기업의 불황 극복 사례를 보면 우선 기존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를 단순한 하청거래 관계에서 공동기술개발, 공동제품개발 단계로 발전시켜서 성과를 거둔 경우가 눈에 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기존의 공정혁신, 개선활동을 중심으로 한 프로세스 이노베이션의 한계(신흥국의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캐치업으로 인해 발생)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한계를 타파할 수 있는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에서 대기업과 협력하면서 성과를 거둔 중소기업의 유형이 두각을 나타냈다.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기초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중요한 데 이러한 투자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기초기술부터 투자하여 원천적인 기술력을 확보할 경우 경쟁우위가 상대적으로 장기간 유지되는 한편 이러한 우위성을 다양한 제품 분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매출액 연구개발 비중이 높은 일본 중소기업일수록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그림 7> 참조).


예를 들어 반도체 제조 장치 산업은 일본제 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과 함께 노광장치 등 핵심 장치 분야에서도 점유율이 하락했으나 중소형 기반기술 기업과 장치업체와의 협업을 통한 제품개발 성과가 높은 세정 및 건조기기, Coater·Developer, CMP에서는 40~90%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이 유지되고 있다. 하드웨어를 이용해 세정장치 등에 쓰이는 화학품의 성분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중소형 기업의 강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파나소닉, GS유아사 등의 대기업이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제조 장치 관련 중소기업과 특수 화학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등과의 협력이 중요했으며, 이들 기업에 의해 뒷받침된 기반기술이 오사카 등의 칸사이 배터리 클러스터의 경쟁력에도 크게 기여했다.


차세대 전지인 전고체이온 장치를 만들고 있는 파우텍사는 활성 물질의 분말에 코팅을 하는 장치 제조 능력이 뛰어나다. 이 회사는 제약 분야에서 축적한 분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양·음극재용 Coater 제조 기업인 히라노텍시드는 금속박에 양음극재 활성 물질을 도포 건조하는 장치를 생산, 균열이 생기지 않는 기술로 세계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으며 염색기술을 PC→휴대폰→LCD→전지로 응용 발전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 산업계가 세계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소 관련 기술 및 제품개발의 경우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개발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수소 관련 각종 기술특허를 보면 대기업-중소기업의 공동개발에 의한 특허가 대기업-대기업 공동개발 특허에 비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② 전문화와 글로벌화로 도약한 틈새시장의 강자


두 번째 유형으로는 일본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하청관계를 통해 제품 및 기술력을 높인 다음에 점차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틈새 시장의 강자(GNT : Global Niche Top)로 부상한 경우다.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대기업이나 해외기업과의 거래관계를 강화하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일본 동남의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도카이전자(종업원 89명)는 1979년 창업 이후 대기업 시계업체의 하청 조립 사업을 해 왔으나 대기업 생산거점의 해외이전과 장기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체 제품개발에 주력했다. 이 회사는 2002년에 호흡으로 음주측정 여부를 감지하는 업무용 알코올 측정기를 개발했다. 디지털시계 조립 과정에서 축적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율 노하우를 활용해서 단시일에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의 음주 측정기는 대형의 초정밀기계이거나 소형의 낮은 성능 제품이었던 데 반해 도카이전자는 소형이면서 고성능 기기를 개발해 버스, 택시 등 영업용 차량을 운행하는 기업의 운전사 관리 수요 개척에 나섰고 단시일에 시장개척 효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이 전문분야 혹은 특수 분야의 기술력을 높여 프로덕트 이노베이션에 성공한 일본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파괴적인 기술보다는 현장 근로자의 숙련된 기술력을 축적하면서 제품을 개량하고 새로운 니즈를 개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암 조직을 채취하는 의료용 바늘을 생산하고 있는 타스크사(본사 도치기현)의 경우 금속 연마 가공기술을 높여가는 것과 동시에 구매한 금속연마기계를 독자적으로 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동사는 암 조직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채취할 수 있는 바늘을 생산해 30개 이상의 선진국 및 신흥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스페인에서는 6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GNT 기업으로 인정받는 중소기업들은 우선 소재 및 부품 등 B2B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좁은 업계에서 명성을 구축한 다음에 다양한 고객과 상대하여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을 높이는 패턴을 보였다.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공기술, 공업디자인, 설계 능력을 높여 브랜드 파워와 함께 차별화된 경쟁우위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학 등과의 산학연계를 통해 기초기술의 공동개발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들은 차별화된 기술 및 제품력으로 인해 수익성이 높고 종업원의 교육이나 대우도 대기업 못지않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종업원의 근속연수가 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GNT 기업을 포함해서 독자적인 제품개발력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일본 중소기업은 전략적 제휴나 공동개발 등 외부경영자원과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일본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그림 8>과 같이 고객과의 협업을 가장 중시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대학 및 고등교육기관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③ 뉴비즈니스 트렌드 활용한 성장 경로 전환


일본의 장기불황 과정에서 많은 산업이 위축되고 상품의 매출이 감소했으나 어떤 분야가 축소됨으로써 다른 분야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의 각종 도소매 매출이 감소한 반면 온라인 전자상거래가 급신장세를 보였다. 장기불황으로 기존 제품 혹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시장에 일종의 틈새가 생김으로써 신규비즈니스나 신규사업자가 진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IT혁명 트렌드를 잘 포착한 중소형 벤처기업 중에서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듯이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IT혁명, 친환경 그린 비즈니스화, 고령화 등의 트렌드들은 뉴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중소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온라인 쇼핑몰 기업으로 라쿠텐이 유명하며, 모바일 SNS 게임으로 순식간에 도약하고 프로야구팀까지 갖게 된 DeNA 등이 급성장했다.


친환경 트렌드 포착


일본의 우량한 중소기업의 경우 소재 및 부품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강점을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조정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일본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트렌드에 맞게 자사의 기술을 개량하면서 새로운 성장영역을 개척하는 패턴이 확대되었다.


니이가타의 나믹스라는 기업은 1947년에 도료 제조업체로 창업하여 전자부품용 절연 도료 분야 기업으로 성장한 후 1990년대 말부터 은이나 알루미늄을 페이스트 상태로 만든 전극제(電極劑 : 태양전지 웨이퍼에 스크린 인쇄하여 전극으로 만듦)를 개발, 세계시장의 10% 정도를 확보하고 있다. 이 분야는 시장규모 자체가 크지 않고 고객별로 다양한 기술적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나믹스는 중견기업으로서의 기동성을 발휘하여 성과를 보였다. 기초기술 개발에 선행 투자하여 성과를 거둔 후에도 고객사와의 공동 제품개발 연구에 100명 정도의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15명 정도의 기초기술개발 인력을 별도로 활용하여 선행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나믹스 이외에도 태양전지의 핵심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얇게 절단하는 제조장치에 특화한 기업, 생산공정에 필요한 진공포장 기술에 특화한 기업 등 일본 중소기업은 이전부터 경쟁력을 갖고 있던 전기전자, 기계 분야의 정밀가공 기술을 태양전지 등 그린 산업분야에 적극 응용하면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외에도 풍력발전기의 보수 서비스를 전개하는 기업, 태양전지 패널 점검을 위해 소형 무인 헬리콥터를 개발하는 중소기업 등 아이디어 중심으로 신규 그린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트렌드의 역 이용


저출산·고령화는 장기불황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고령자는 50대, 60대, 70대별로 생활패턴이나 원하는 서비스도 다르기 때문에 일본 중소기업은 고령층 시장에 세밀하게 대응하면서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있다. 고령자 중심 여행사의 경우 회원제로 여행 상품을 판매하면서 고령자를 잘 아는 고령의 안내원 등을 활용하고 고령자의 기호에 맞는 프로그램을 확충하면서 반복구매 고객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저출산 인구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빈집의 관리대행이나 고령자를 대신하여 가사노동을 대행하는 중소기업형 비즈니스의 경우도 고령자 고객의 수요에 세밀하게 대응한다. 또한 활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간호가 필요한 고령자를 위한 개호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개호 비즈니스를 각 지역으로 확대하면서 지역 단체·대학과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지방자치 단체나 지역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고령자의 건강 증진을 유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령자가 간호를 받아야 할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있다.


한편, 고령자를 노동력으로서 활용하는 비즈니스도 확대되고 있다. 고령사(高齡社, 동경)의 경우 경험이 많은 고령자를 사원으로 등록하여 기업의 요청에 따라 고령자를 파견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고령자들과 이들을 임시적으로 채용하려는 기업의 니즈를 연결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④ 지역적 강점의 활용


장기불황기에 매출감소로 쇠약해진 지방 중소기업들이 지역 차원의 강점을 활용해서 신흥국 기업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화하는 노력도 전개되었다. 일본의 각 지역경제는 공동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각종 소재, 부품, 기계 등의 숙련된 가공 능력을 가진 기업들이 밀집하고 있는 강점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강점은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로 연결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마바리시의 수건 산지의 경우 지역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고품질 수건임을 강조하며 백화점 등의 고급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수건 전문가 제도를 만들고 지역차원에서 철저한 품질 관리를 하며 물의 흡수성, 친환경성을 강조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유기 원료로 만든 피부에 부드러운 수건’이라는 이미지로 일본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도쿄 등 대도시에서의 이마바리시 자체 제품 박람회를 개최하는 한편 대도시의 디자인 학교와 공동으로 고급 수건 디자인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후쿠이현의 사바에시(鯖江市, 2010년 인구 6만 7,463명, 증가세 유지)는 일본 안경테 생산의 96%(재무성 호쿠리쿠 재무국, 2011.8, 세계시장 20% 추정)를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 육성, 패션성 제고에 고전하고 있지만 초경량 신소재를 개발하는 등 기술적 차별성 강화하고 일본 시장뿐만 아니라 아시아 부유층을 대상으로 시장 확대 중이다.


도쿄 오타구는 금형, 주조, 단조 등의 기계가공 뿌리 산업을 중심으로 한 고도기술 중소기업 집적지다. 이와 같은 기계가공 중소기업 집적지에서는 일본정부의 모노즈쿠리 지원 정책을 활용하면서 소형 공장의 아파트형 공장으로의 집약화, 각종 지역 교류회 및 커뮤니티 활동 활성화, 지역 외 우수가공 기업의 유치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 분야의 숙련 가공 거점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뿐만 아니라 오사카 지역에도 소재 및 부품의 뿌리 산업 활성화가 도모되고 있으며, 이들 대도시형 뿌리 산업은 일본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는 데 지역적 우위성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고 지금까지의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빠른 납기가 요구되는 분야가 확대되면서 각종 소비재나 소재 및 부품을 공급하는 일본 중소기업은 일본 시장에 대한 대응이 빠르다는 지역적 강점을 활용해서 고부가가치, 초단축 납기 제품의 개발과 공급 체제의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기존의 분업 생태계에서 구축해 왔던 고도의 기술과 숙련 기능을 활용하는 한편 보다 개방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모색하면서 지식의 집약기능을 강화하는 클러스터 구조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재 및 부품 등 뿌리 산업의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고 연구 및 제품 개발에 능한 지역경제의 강점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 시사점

 


일본은 세계 어느나라 못지 않게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 중 하나다. 일본 정부도 중소기업의 육성과 지원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또 적극적이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의 일본 중소기업의 성적표와 정부정책의 성과를 성공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소기업의 성적표는 대기업보다 더 나빴고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일본 제조업과 중소기업의 강점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제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각종 조사에서 세계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다. 일본에는 여전히 수많은 강소기업들이 산업계 전반에 포진해 있다.


일본 중소기업이 장기불황에서 겪은 고전과 그 극복 사례는 상황이 다른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몇 가지 시사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오랜 장기불황에도 자신의 강점을 유지 발전 시켜온 일본 중소기업의 네 가지 유형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요소로 협력을 들 수 있다. 특히 일본 중소기업이 고객인 대기업이나 대학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기술력 제품력을 높여 온 사례가 많다. 공동연구는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의 경쟁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지역적 강점을 발휘한 경우도 당연히 협력이 전제된다. 공동연구와 지역 기업들의 협력과 정보교류, 경쟁이 일본 중소기업의 저변을 흐르는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의 지식집약화 기반을 강화하고 클러스터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많은 나라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다. 실리콘 밸리와 구글 캠프, 최근 우리나라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크게 보면 이 범주에 포함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업종 분야가 좁고 상당히 작은 지역에서 이런 활동이 활발하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만큼 지역 생산기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본을 따라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겠지만 중소기업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업과 정부간 실질적인 협력과 교류, 지원을 원할히 할 수 있는 장을 활성화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한 기업이 많은 분야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더 그렇다. 또한 중소기업이 거대 시장에서 대기업들과 경쟁하여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시장이 크지 않더라도 필수적이며 자신의 장점이 발휘되고 유지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개척해 나가는 것은 기술력이 어느 정도 있는 중소기업들에게는 상당히 유효한 전략으로 보인다. 한 가지 요소 기술에 집중하여 기초적인 분야까지 기술을 깊게 강화한 일본의 GNT 기업의 경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