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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으로 돌아온 ‘기획 사정’의 칼?

일취월장7 2015. 4. 23. 11:27

부메랑으로 돌아온 ‘기획 사정’의 칼?

정권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망자의 내부자 고발’을 당했다. 목숨과 바꾼 증언은 힘이 세다. 정치권은 성완종 전 의원이 쏟아낸 말을 해석하느라 분주했다. 정치권이 보는 성완종 리스트의 전말을, 고인의 말을 매개로 풀었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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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승인 2015.04.22  09:10:29

 

말과 맥락이 맞아떨어질 때 말에는 힘이 실린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여의도를 휩쓸다시피 한 지난 한 주, 정치권은 고인이 된 성완종 전 의원(새누리당·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 직전까지 쏟아낸 말에 ‘주석’을 다느라 분주했다. 정치권이 보는 성완종 리스트의 전말을, 고인의 말을 매개로 풀어봤다.

“저는 MB맨이 아닙니다.”

사망 하루 전날인 4월8일, 성완종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자신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부터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원조 친박’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유가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완구 총리까지 나서서 독려하는 자원외교 수사를 일종의 ‘기획 사정’으로 보는 기류가 강하다. 주된 타깃은 새누리당 내 친이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투톱은 둘 다 친박계와 각을 세운다. 2016년 총선 공천의 주도권을 놓치면 그대로 레임덕이 예정되어 있다. 청와대 처지에서 최대 과제는 2016년 총선 주도권 확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7년 8월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다툰 박근혜·이명박 후보(위). 정치권은 자원외교 수사를 두고 친이계를 겨냥한 ‘기획 사정’으로 보는 기류가 강했다.  
ⓒ연합뉴스
2007년 8월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다툰 박근혜·이명박 후보(위). 정치권은 자원외교 수사를 두고 친이계를 겨냥한 ‘기획 사정’으로 보는 기류가 강했다.
 
그런데 가장 정석적 방법인 대통령 지지율로 주도권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갤럽 주간 정례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올해 내내 40%를 넘겨본 적이 없고, 나쁠 때는 2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을 밑도는 수준이어서 ‘대통령 효과’가 없다. 이러면 원심력이 작동한다. 2016년 총선을 노리는 후보들은 ‘다른 줄’을 찾게 된다.

이 상황에서 원심력을 제어하는 방안으로 사정 정국은 유혹적인 카드다. 친이계 조직을 위축시키고 예봉을 꺾어놓으면, 내년 4월로 다가온 총선 공천의 주도권을 친박계가 쥘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진다. 자원외교 수사 초기부터 새누리당 친이계가 앞장서서 반발했던 이유다.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정병국 의원은 수사가 한창이던 3월18일 “누가 기획을 했는지, 정말 새머리 같은 기획”이라고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띤다. 자원외교 수사는 자연 발생이 아닌 정권 차원의 기획 수사라는 규정, 그리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잘못된 기획이라는 평가다. 새누리당 친이계의 기류가 대체로 이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정치권은 사정 정국의 기획자로 ‘김기춘(왼쪽)·우병우(오른쪽) 투톱’을 주목한다.  
ⓒ시사IN 이명익
정치권은 사정 정국의 기획자로 ‘김기춘(왼쪽)·우병우(오른쪽) 투톱’을 주목한다.
자원외교 비리 혐의를 받은 성완종 전 의원이 “MB맨이 아니다”라는 말로 마지막 기자회견을 시작한 것은 그래서 엉뚱하지 않다.

“청와대하고 이완구하고 짝짜꿍해서 하는 거.”

자살 직전인 4월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완종 전 의원은 자신을 치는 ‘기획’의 주체를 이렇게 단정한다. 비슷한 표현은 녹취록에 두 번 더 나온다. 정확히 청와대를 지목한다.

여의도의 다수설과 일치하는 상황 인식이다. 정치권은 사정 정국의 기획자로 ‘김기춘·우병우 투톱’을 주목한다(‘홍문종 2억’ 발언… 박근혜 대선 자금 겨누나 참조). 우병우 민정수석은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이던 올해 1월 민정비서관에서 승진했다. 상대적으로 사법연수원 기수가 낮은 우 수석(19기)이 발탁되면서 검찰 인사에서도 칼바람이 불고 19기와 20기가 이르게 전진 배치되었는데, 이 밑그림을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그렸다는 말이 정치권에서는 파다하게 돌았다. 우병우 수석이 마음껏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김 실장이 물러나기 전에 판을 깔아두었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이런 의혹 제기에 우병우 수석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답했다.

사정 드라이브의 또 다른 축으로 성 전 의원에게 지목당한 인물이 이완구 국무총리다. “3000만원을 줬다”라는 구체적인 증언까지 나와 궁지에 몰린 이 총리를 엄호하는 목소리는 새누리당에서도 높지 않다. 의혹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4월14일 유승민 원내대표는 “그 문제(당 차원의 사퇴 요구)에 대해 상당히 고민한 것은 사실”이라며 엄호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성 전 의원의 측근인 이기권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대변인은 성 전 의원 사후 기자회견에서 “성 전 의원이 이완구 총리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하자 이 총리가 ‘전임 총리가 한 사건이라 내가 도울 수 없다’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이 대화에서 이완구 총리가 했다는 ‘전임 총리가 한 사건’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이완구 총리가 임명되기 전부터, 일종의 총선 관리 플랜으로 청와대발 사정 기획이 굴러간다는 정서는 적지 않은 현역 의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총리가 임명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3월12일, 총리는 대국민 담화라는 거창한 모양새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장면에서 “이 총리가 기획 사정의 총대를 멨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파문 와중에 했다는 ‘전임 총리가 한 사건’이라는 발언까지 전해지자 이 총리의 평판은 더 추락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까놓고 말해서 어제까지 동료여서 이쪽 정서 뻔히 아는 사람이 정부에 들어가자마자 ‘청와대 앞잡이’로 칼춤을 추니까 더 기분이 나쁜 거지”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성완종 메모’에는 이병기(위) 등 박근혜 정부 역대 비서실장의 이름이 모두 등장한다.  
ⓒ연합뉴스
‘성완종 메모’에는 이병기(위) 등 박근혜 정부 역대 비서실장의 이름이 모두 등장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4월16일 “총리가 버티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야당 내부에서는 무력시위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해임건의안 가결(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을 목표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완구 총리에 대한 여당 내부의 반감을 그만큼 크게 본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은 반란표 단속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본회의 출석을 당 차원에서 거부해 의결정족수를 미달시켜 버리는 대응 방안이 있다.

“정치는 신뢰인데, 그냥 이렇게 이용이라고 그럴까, 완전히 병신 만드는 거잖아요.”

초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으로 자수성가의 전형인 성완종 전 의원은 본인의 증언만 보더라도 폭넓게 돈을 뿌려가며 인맥을 관리해온 인물이었다. 중견 건설사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 진입에 성공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정권 실세들은 다들 그의 요청을 외면했다. 천신만고 끝에 ‘한식구’로 편입되었다고 믿었을 성 전 의원에게는 그것이 검찰 수사 못지않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식구’가 아니라 ‘돈지갑’에 불과했다는 자괴감을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토로한다.

성완종 전 의원 사후에 측근들은 성 전 의원이 서산·태안 지역 주민 앞으로 썼던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에서 성 전 의원은 자원개발 사업의 속성을 “공기업이 1대 주주가 된다. 공기업 책임하에 개발하는 구조다”라고 썼다. 이른바 ‘몸통’은 따로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자원외교 추진은 ‘자원 3사’로 불리는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선봉에 섰다. 이 자원 3사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데, 이명박 정부가 한창 자원외교를 추진하던 2009~2010년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다.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자원외교 수사팀이 실세를 우회하느라 변죽만 울린다는 평이 많았다. 성 전 의원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정을 한다고 그러는데 충청도에 있는 쬐끄만 회사를 지칭을 하는지 도대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사정 깃발을 들었으니 결과는 내야겠고, 최경환은 못 건드리겠고, 그렇게 주변만 맴돌다가 잔챙이 하나 잡은 거라는 분위기가 많다. 자수성가형이라 딱히 인맥도 없지 싶고, 정치인이니 욕보이기도 편하고 얼마나 좋아. 그러다가 성 전 의원이 독하게 나오니까 탈이 난 거지.”

“이완구 총리, 사정 대상 1호입니다.”

여의도의 관심사는 일단 이완구 총리 등 이름이 직접 거명된 인사들로 좁혀져 있다. 야당의 기류는 ‘과속 방지’다. 특검 추진이나 대통령 하야와 같은 ‘말의 공세’는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 돈을 줬다는 결정적인 증언이 등장했고 총리가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하는 국면에서(비타 500 박스와 ‘말 바꾸기’의 달인 참조) 전선을 넓힐 이유가 지금은 없다는 기류다. 상설특검법 도입 이후 특검의 권한이 제한적이어서, 여론의 초점을 흐리는 특검 추진에 힘을 빼기보다 현재 수사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판단도 있다.

반대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특검 도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본인이 수사 대상인 이완구 총리는 “복잡하고 광범위한 수사가 될 것”이라며 전선 확대를 ‘응원’했다. 여야 인사가 한데 연루되는 ‘진흙탕 만들기’를 출구전략으로 삼은 모습이다. 4월17일자 <조선일보>는 야당 인사들 7~8명이 포함된 14인짜리 장부를 검찰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보도에 나온 거라고 추정되는 자료는 현재까지 수사팀이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이완구 총리까지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기류도 있다. 이 관점에서는 총리의 거취를 카드로 쓰더라도 ‘언제 어떤 타이밍에 쓰느냐’가 중요해진다. 성완종 메모에는 허태열·김기춘·이병기 등 박근혜 정부 역대 비서실장이 모두 등장하는데, 여기까지 확전이 되면 청와대가 기능 마비에 빠질 수도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9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함께 자원외교에 나선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왼쪽 서명하는 이). 그는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로 꼽힌다.  
ⓒ연합뉴스
2009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함께 자원외교에 나선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왼쪽 서명하는 이). 그는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로 꼽힌다.
 
이렇게 해서 복잡한 다차방정식이 등장한다. 야당의 목표는 먼저 이완구 총리를 낙마시키고, 기획사정을 좌절시켜 우병우 체제의 힘을 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여당 내의 친이계가 전략적 제휴 내지는 묵인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마치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 내 친박계와 민주당이 세종시 수정안 반대 연대전선을 펴서 청와대의 계획을 좌절시켰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

성완종 전 의원은 홍문종 의원(새누리당)에게 2억원을 줬다는 증언을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홍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핵심 인사다. 홍 의원은 정계 은퇴까지 거론하며 금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관찰자들의 장기적인 관심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대선 자금 수사로까지 번져나갈 것인가이다. 일단은 회의론이 우세하다. 첫째, 일단 드러난 것만 보면 2002년 대선 자금과 비교해 액수도 기업 크기도 매우 작다. 본격 대선 자금 수사를 벌이기에는 어색한 규모라는 평이다.

둘째, 정치권 인사들은 2002년 대선 자금 수사와 이른바 차떼기 파문 이후로 대선 자금 조달 문화가 바뀌었다고 귀띔한다. 과거의 대선 자금 조달이 중앙당이나 대선 캠프 차원에서 자금을 확보해 아래로 내려보내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각 조직 단위별로 알음알음 돈을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이러면 모금 단위가 작아지고, 최악의 경우 “개인의 일탈이다”라며 꼬리 자르기를 하기도 쉬워진다. 당장 검찰이 대선 자금 수사로 방향을 잡기도 쉽지 않지만, 설사 검찰이 시도한다고 해도 이런 이유로 2002년 대선 자금 수사와 같은 국면은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런데도 대선 자금 문제는 잠복한 뇌관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핵심 포스트에 있었다. 조직총괄본부장이었던 홍문종 의원 외에도, 유정복 인천시장(메모에는 ‘3억’)은 당시 직능총괄본부장, 서병수 부산시장(메모에서는 ‘부산시장’으로만 적혀 있다. ‘2억’)은 당무조정본부장 겸 당 사무총장이었다. 하나같이 대선 캠프의 조직과 자금을 다루는 자리다.

“박근혜 정부가 깨끗한 정부가 돼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권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망자의 내부자 고발’을 당했다. 사실상 대통령 본인이 공격받고 있다. 고발자 본인을 회유할 방법도 없고,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세간의 의혹까지 말끔히 해소할 방법은 없다. 목숨과 바꾼 증언은 힘이 세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고인이 아니라면 대질이라도 하겠는데”라고 말했다. 이 말이 본심이든 위기 탈출용이든 간에, ‘망자의 고발’에 맞닥뜨린 정권의 당혹스러운 처지를 이만큼 잘 보여주는 말도 없다. 

 

 

이제는 숨기기에 바쁜 ‘숨은 주역’과의 인연

성완종 전 의원은 “나는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이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실제 선거운동 때 지근거리에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가 챙기는 듯한 흔적도 꽤 남았다. 하지만 이제 모두 ‘기억에 없다’고들 한다.

주진우 기자

“목숨을 걸고서 박근혜 정권을 창출했다.” “대선 때 충청도 조직을 다 만들어줬다.” “나는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이다. 첫 번째 손가락에 꼽힐 만한 공신은 아닐지라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는 된다.”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랑스러워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그는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성 전 의원의 이웃에 사는 박 아무개씨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에 성 의원은 자기가 당선된 것처럼 인사를 하고 밥을 사고 다녔다. 이웃들을 리베라호텔로 불러 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뻐했다”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 직후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는 성 전 의원을 “대선의 숨겨진 일등 공신”으로 소개했다. 성 전 의원이 출연한 프로그램 제목을 ‘박 당선의 숨은 주역-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붙였다. <쾌도난마> 측의 설명은 이랬다. “성 전 의원이 박근혜 후보 지지율 약세 때 충남·대전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자유선진당을 이끌고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이끌어냈다. 합당 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으로 자신이 만든 모임인 ‘충청포럼’ 등을 선거운동에 활용해 충청권에서 6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새누리당 한 충청권 의원은 “성 의원이 주도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합당은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권 표심에 큰 영향을 주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font></div>성완종 전 의원은 2012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당선자 가까이에 있었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성완종 전 의원은 2012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당선자 가까이에 있었다.

 
실제로 성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충청권 유세에 나섰을 때 성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곁에서 수행했다. 박 후보는 대선 기간 중 충청권을 22차례 방문했다. 대선 다음 날인 2012년 12월20일 선거 캠프 해단식에서도 성 전 의원은 박 당선자의 바로 뒤에 앉아 있었다. 당선자 신분으로 첫 일정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할 때도 성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대통령의 주변에 선다는 것은 정치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별히 힘이 쏠리는 대선 기간과 당선자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2002년 대선 유세 마지막 날, 노무현 후보의 옆자리에 서겠다며 정동영 전 의원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단일화를 파기했던 정몽준 전 의원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경남기업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은행권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남기업은 베트남에서 랜드마크72 건설 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경남기업은 은행권에서 5100억원을 지원받았다. 총 1조200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랜드마크72 사업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남기업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 대규모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사진공동취재단</font></div>성완종 전 의원은 새누리당 선대위 해단식 때 박근혜 후보를 수행하거나 당선자 가까이에 있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성완종 전 의원은 새누리당 선대위 해단식 때 박근혜 후보를 수행하거나 당선자 가까이에 있었다.
 
더욱이 검찰에는 성 전 의원의 파일이 쌓여 있었다. 성 전 의원 일가가 알짜배기 계열사를 분리하면서 자산을 빼돌렸다는 그룹 내부자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성 전 의원이 러시아 캄차카 유전 개발사업을 벌이며 석유공사로부터 지원받은 자금도 특혜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2008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경남기업의 주채권 은행인 신한금융지주에 청탁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경남기업은 물론 성 전 의원 자신도 선거법 위반 재판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였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몰라도 청와대는 성 전 회장을 각별히 챙겼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4월17일 충남 지역 인터넷 신문 <디트뉴스24>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서산·태안)은 17일 ‘대·중소기업 상생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라며 ‘상생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분명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성 의원은 이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가진 뒤 <디트뉴스24>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사진공동취재단</font></div>박근혜 당선자가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할 때도 성 전 의원(원 안)은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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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자가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할 때도 성 전 의원(원 안)은 뒤를 따랐다.
2013년 들어 경남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금감원은 신한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에 900억원 상당의 대출을 지시한다. 특혜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한 관계자는 “하청 회사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한 정상적인 감독과 관여였다”라고 말했다.

2013년 9월4일과 5일. 성 전 의원의 다이어리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9월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7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경남기업 장해남 사장의 이름이 대기업 회장단 명단에 오른다. 대한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경남기업이 대기업 회장단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이변이었다. 청와대가 결정하는 일이지만 여당 국회의원인 성 회장의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경제사절단은 가고 싶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 처지에서 대통령 순방 때 동행하는 것은 해외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자 특혜인 셈이다. 사절단에는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등이 포함돼 있다. 경남기업의 주채권·주거래 은행과 감독기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월8일 박 대통령이 경남기업이 지은 베트남 랜드마크72에서 열린 패션쇼에 모델로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이 런웨이에 등장해 미소를 지으며 10여m를 걷는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2011년 준공된 이 건물은 분양이 절반도 안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통령 행사를 이 건물에서 연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라는 말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2013년 10월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이 결정된다. 은행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금감원의 지휘 아래 결국 은행권은 1000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2014년 2월에는 5300억원이 추가로 지원됐다.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특혜 의혹이 일었다. 무상 감자 없이 자금 지원, 우선매수청구권 등 특혜 조항이 포함됐다. 감사원 감사에서 ‘금감원의 고위 관계자가 주채권 은행인 신한은행 간부에게 워크아웃 당시 성 회장의 의중을 반영해주라고 요구했다’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워크아웃 전후로 성 전 의원은 권혁세 전 금감원장과 최수현 금감원장과 두루 만났다. 당시 기업 워크아웃을 담당했던 김진수 기업금융구조개선 국장을 세 차례 만났다고 성 전 의원은 다이어리에 적었다. 금감원 인사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업인은 드물다. 정권 실세의 뒷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9월8일 박 대통령은 경남기업이 지은 베트남 랜드마크72에서 열린 패션쇼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2013년 9월8일 박 대통령은 경남기업이 지은 베트남 랜드마크72에서 열린 패션쇼에 참석했다.
 
올해 초,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성 전 의원은 억울해했다. 무엇보다 자원외교 수사에서 자신이 첫 번째 타깃이 된 것에 대한 서운함을 자주 토로했다. 성 전 의원은 기자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사람이면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성 전 의원의 친구 김 아무개씨는 “성 회장은 자기 돈과 조직을 총동원해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다. 성 회장이 ‘백억까지는 안 되고 몇십억원을 썼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4대강 사업도 하고 러시아 캄차카, 아프리카 니켈 광산 같은 자원외교 사업도 해서 괜찮았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성 회장이 힘들다는 소리만 했다”라고 말했다. 성 전 의원과 가까운 서산장학재단의 한 인사는 “경남기업이 위험해지자 영입한 국정원 출신들을 통해 구명 로비에 나섰다.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성 회장이 직접 선거운동을 같이한 동지들을 찾아 청와대로 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 전 의원은 절박하게 청와대에 매달렸다. 경남기업 노조에서는 경남기업에 영입된 국정원 출신들과 국정원장을 지낸 이병기 비서실장의 역할을 지목한다. 2008년부터 4년간 경남기업 감사를 지낸 차문희씨는 2012년 국정원 2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전옥현씨는 2013년 3월 경남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된다. 성 전 의원은 이병기 실장을 리스트에 올렸으나 액수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성 전 의원은 이병기 비서실장에 대해 “신뢰를 중시해야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신뢰하고 의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말했다.

‘다이어리’ 보도 이후 말 바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성 전 의원이 가장 공을 들인 사람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성 전 의원이 2006년 10만 달러를 직접 건넸다고 주장하자, 김 전 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비서실장이 된 다음(2013년 8월5일 이후)에는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서는 “식사도 좀 하고 그런 사이였나”라고 묻자 김 전 실장은 “아니, 그런 사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혀 아니냐”라고 되묻자, “네”라고 답했다. 4월15일 <중앙일보>가 성 전 의원의 다이어리를 근거로 2013년 11월6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성 전 의원이 저녁을 먹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김 전 실장은 4월1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착각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니까 11월6일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라고 말을 뒤집었다.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 경남기업 장해남 사장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 경남기업 장해남 사장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성완종 전 의원은 죽기 직전까지도 김기춘 전 실장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자살하기 며칠 전 평창동 김 전 실장의 집을 찾아갔고, 김 전 실장이 있다는 사무실로도 찾아갔다. 비서에게는 계속해서 김 전 실장의 출근 시간을 체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서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남의 일처럼. 성 전 의원이 돈을 건넸다고 한 사람 가운데는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3명이 모두 포함돼 있다. 나머지도 대선에서 돈을 만지던 유정복·서병수와 같은 실세 중의 실세이다. 성 전 의원이 돈을 건넨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2012년 대선은 모두 박 대통령의 선거였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로 길을 잡아 청와대 쪽으로 말을 달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검찰의 칼은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경남기업은 4월14일 결국 상장폐지됐다. 자본은 전액 잠식 상태였다. 금융권에만 1조원 넘는 손실을 안겼다. 물론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질 가능성이 크다.

 

 

보수의 맨얼굴 "부패엔 의리가 없다"

[창비 주간 논평] 보수의 의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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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보는 분열로 망해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지 않는다. 분열엔 의리가 없지만 부패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작가 박민규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쓴 글 '눈먼 자들의 국가'의 한 구절이다. 통찰력 깊은 말이다. 그는 익숙한 격언 뒤에 비대칭성이 숨어 있다는 것, 그래서 진보와 보수 사이의 천칭은 보수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아마도 자신을 진보 편에 위치시키는 사람이라면 박민규의 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 그의 말이 오래 머리에 남았다.

부패와 의리를 동일시한 이의 비극 

그러다가 지난 9일 자살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경향신문>과 한 마지막 인터뷰의 몇몇 구절에 눈길이 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거는 어느 나라나 정치 집단이라는 게 의리와 신뢰 속에서 서로, 어떨 때는 참 목숨까지 걸고서 정권 창출하잖아요. 신뢰를 지키는 게 정도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앞으로 그렇게 돼야 되잖아요. 나는 내가 희생됨으로 해서 앞으로 의리와 신뢰를 지키는, 이거는 시장이 되고 정치권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의 이런 말과 그의 운명에 박민규의 말이 겹쳐 보였다.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듯이, 고(故) 성완종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도급 순위 20위권 건설 회사의 회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비록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잃긴 했어도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고향인 충청을 기반으로 장학재단과 충청포럼을 운영했고 자민련에서 자유선진당을 거쳐 한나라당 그리고 지금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보수 세력의 중심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정치 자금을 보수 정치인들에게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보수의 의리 없음을 통탄하며 분노를 토로했고 마침내 목숨을 던져 의리 없는 이들의 이름을 알렸다. 부패엔 의리가 있는 거라면, 어째서 그의 운명이 그렇게 흘러갔는가? 

성완종 회장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패엔 의리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성회장의 인터뷰 전문을 읽다보면 그가 부패와 의리를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 자금을 건낼 때, 돈으로 의리를 사고 있다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비자금과 부패의 온상이었던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은 탓일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에게는 불법 정치 자금, 비자금, 부패, 의리가 구별 없이 뒤섞여 있다. 도착적이지만 기이한 순진성, 부패를 의리와 연결할 수는 있지만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인식의 결핍이야말로 그가 겪은 비극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는 죽기 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집 주변을 배회했다고 한다. 그 배회는 아마도 돈을 주며 서로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 직통 전화로 통화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외양의 번듯함이 내면의 인간적 유대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라는 믿음의 쓸쓸한 서성거림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보수의 실체가 드러나다 

부패와 의리 사이에 학벌과 혼맥과 지연과 문화적 습속과 가문의 유래를 매개로 매우 촘촘하고 복잡한 교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성 회장이 겪은 비극의 주관적 조건이라면, 다른 한쪽에 객관적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이런 복잡성으로 인해 보수 내부에 분절성이 생기고 그로 인해 경쟁과 갈등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성 회장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친이계가 아니라 친박계임을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보수 내부의 복잡성과 그로 인한 정보의 분절성 때문에 그의 불법 정치 자금이 어디로 얼마나 흘러들었는지 검찰도 정확히 모니터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보수 내부 갈등의 희생양이라는 점이다. 

후자의 측면은 보수 내부의 경쟁과 갈등이 부패와 비리 네트워크의 가장자리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체제라는 점을 말해준다. 성 회장은 "현대중공업도 3조 이상 떨어냈고 GS건설도 한 1조 떨어내고, 현대엔지니어링도 1조 떨어내고, SK건설, 대림산업 다 그렇게 떨어냈거든요. 떨어냈는데, 그거를 다른 놈은 괜찮고 어째 우리만 그중에 제일 적은 우리만 왜 이렇게 하느냐 이거야" 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 이유는 자신이 말했듯이 "제일 적은" 탓이다. 

그러니 보수의 의리란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김응수 분)이 고니(조승우 분)에게 자신이 잘나가는 비결에 대해 말했듯이 "잘난 놈 재끼고 못난 놈 보내"며 구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필요하면 하나 더 재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패엔 의리가 있다. 하지만 부패와 의리의 네트워크는 분절적이고 위계적이며 갈등적이고 가장자리를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체제이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의 천칭은 박민규가 생각한 만큼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저울이 진보의 방향으로 기울지는 진보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진보주의자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자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원을 하나로 응집하는 것이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노선'의 경쟁이 생겨난다. 하지만 옳음을 향한 열정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자기 확신에 대한 겸손한 성찰을 초과하게 되면 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아마도 가장 가련한 보수주의자가 부패와 의리를 동일시하는 자라면, 가장 가련한 진보주의자는 자신의 옳음 자체를 탐닉하는 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