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저성장 시대에도 그 입시 전략이 통할까

일취월장7 2015. 4. 8. 11:13

 

저성장 시대에도 그 입시 전략이 통할까

학부모들은 막연한 입시정보를 원하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아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원한다. 하지만 학부모 본인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길 권한다. 저성장 시대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조회수 : 490  |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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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승인 2015.04.08  09:06:28

“웬만하면 이번 강좌는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운을 뗐다. 세상에 넘쳐나는 게 입시 설명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학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입시 설명회의 폐해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불안과 공포가 커질수록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 심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부모들을 안심하게 만드는 입시정보’ ‘부모를 주체적인 교육의 설계자로 만드는 입시정보’를 지향점으로 내걸고 7회 연속 강좌를 기획한 것은 이 때문이다. 3월17일 열린 첫 강좌 ‘학원 입시 설명회’ 편을 지상 중계한다.

사교육 현장에 있을 때는 몇천 명씩 앉혀놓고 강의를 하곤 했다. 그런데 공교육 쪽으로 방향을 틀고부터 청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웃음). 사교육과 공교육, 어느 쪽 처지에서 오늘 강의를 진행해주길 원하시나? 미리 말씀드리자면, 난 어느 쪽에도 서지 않겠다. 오직 부모의 처지에서 문제를 정리해보려 한다.

지난해 전국을 돌며 학부모 교육만 136회가량 했다. 강의 현장에서 학부모 1만여 명을 만났고, 6000장가량 강의 평가서를 받았다. 이들 평가서를 보면 대체로 공통되는 게 ‘막연한 입시정보는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아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 입시에 유리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한다. 엄청난 정보 욕구요, 교육 욕구다. 이러니 온갖 곳에서 학부모 교육이 성행한다. 문제는 그로 인해 크게 달라지는 게 없더라는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정보는 열심히 수집했는데 정작 아이와는 점점 사이가 나빠지는 듯하고, 강의 들을 때는 뭔가 알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가면 ‘나는 누구인가’ 싶은 경험, 다들 있지 않으신가?(웃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대치동 학원강사 출신으로 현재는 서울시 교육청 자문위원, 경기도 교육청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 중인 박재원 소장은 불안을 부추기는 학원 입시 설명회에 부모들이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시사IN 조남진
대치동 학원강사 출신으로 현재는 서울시 교육청 자문위원, 경기도 교육청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 중인 박재원 소장은 불안을 부추기는 학원 입시 설명회에 부모들이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번 강좌 주제가 ‘입시정보 걱정 없는 우리 집’인데, 맨 먼저 내가 원하는 정보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던져보자. 지난해 <주간조선>에 ‘2014 취업 전쟁 보고서:서울대마저…’라는 커버스토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 국문과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15군데에 서류를 넣었는데 2곳에서만 합격했고, 그 2곳에서마저 인성·적성 검사에서 모두 탈락했다고 한다. 여러분도 이미 체감하실 것이다. 한때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진학하며 ‘가문의 영광’이었던 조카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명절 날 집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문대 출신조차 더는 올라갈 사다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학벌 갖고 안 되니까 스펙을 쌓는다며 시간과 돈만 더 허비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독일과 한국의 학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도 독일처럼 산업체 부설 중·고교, 고등기술학교, 이런 게 다 있다. 단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왜냐? 머릿속에 인문 중심의 학제만 자리 잡고 있으니까.

이게 나름 유구한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문 경전으로 관리를 뽑지 않았나. 일제 강점기에는 신분제는 철폐했으되 식민통치에 필요한 하급관리 양성을 위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고등교육자를 선호했다. 미군정 때는 영어 잘하는 고등교육자가 그 자리를 대체했고. 입시나 보통·고등고시로 인재를 선발하는 이런 제도가 고도성장기에는 나름의 경쟁력이 있었다. 한국인에게 이것이 매우 강렬한 성공 경험으로 남게 된 이유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좋은 일자리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여봐야 일자리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자신의 욕망 구조를 객관화하는 데서부터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당신이 원하는 게 진정한 교육인가? 아니면 출세인가? 내가 대치동에서 ‘박 보살’로 통할 때, 한 학부모가 나를 찾아온 일이 있다. 대치동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아이는 이미 지쳐 있었다. 유명 특목고에 가봐야 ‘깔창’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얘길 해줬는데도 부모가 듣지 않더라. 아무리 좋은 정보를 줘봐야 부모가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있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소용이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입시 설명회는 넘쳐난다. 그런데 이런 입시 설명회는 철저하게 학원 중심으로 운영된다.  
ⓒ연합뉴스
입시 설명회는 넘쳐난다. 그런데 이런 입시 설명회는 철저하게 학원 중심으로 운영된다.

두 번째로 점검해야 할 것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요즘은 유치원, 아니 태내에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찍부터 영재교육과 선행학습을 향해 내달린다. 그런데 이렇게 특목고를 가고, SKY를 가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그 다음은? 고도성장기까지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즘 대졸 고학력 백수가 300만명에 이른다고 하지 않나. 이른바 SKY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는 변호사·회계사가 생겨나고 있다는 뉴스도 눈에 띈다. 이런데도 부모들은 자신의 노후자금을 사교육비에 털어넣는다. 다 큰 아이들이 엄마 하면 떠오르는 게 ‘나를 괴롭힌 것’과 ‘나 때문에 돈 많이 쓴 것’ 두 가지라는데도.

이쯤에서 물어보자.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세상의 엄마들이 가르쳐준 것들>이란 책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 엄마가 유대인 남편과 함께 미국·핀란드·독일·중국·일본 등지를 돌며 아이를 키운 얘기를 쓴 책인데, 이런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저는 지금껏 열린 사고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낯선 양육방식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략) 그간 보편적이고 정상적이고 ‘최고’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단지 문화에 바탕을 둔 사고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 학부모 문화의 4가지 특징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특수한 역사적 산물이자 문화라 생각하면 벗어나기가 좀 더 쉬워진다. 반면 나의 가치, 신념, 행동 등을 보편적이라 생각해 ‘부모가 아이를 위해 헌신한다는데 뭐가 문제죠?’라는 식으로 반응하게 되면 방향을 수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한 문화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한국교육개발원(2007)은 △사교육 지향성 △엄마 주도성 △성적 지향성 △정보 지향성을 한국 학부모 문화의 4가지 주요 특징으로 꼽았다. 아이가 혼자 공부해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왠지 믿음이 안 가고 뭔가 사교육에 기대 정보를 얻고 투자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다들 이해되시지 않나?(웃음)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는 또 어떤가. 요즘 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아이 유형이 ‘성실하고 정직하면서 공부는 못하는 아이’란다. 일부 정신 나간 사람들 얘기가 아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같은 학부모 문화의 부작용은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생 20% 이상이 왕따 위험에 노출돼 있다거나, 대학생을 초등생 취급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거나, 명문대를 졸업해놓고도 취직도 진학도 하기 싫다며 그저 쉬고 싶다는 ‘등골 브레이커’가 증가하고 있다는 등…. 이건 위험사회의 징후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이미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이토록 지긋지긋한 학부모 문화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먼저 사교육과 학부모 문화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이 어떻게 연결돼 작동하는지 알아야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흔히 의사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의사는 자신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펜던트를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잘못된 연명치료로 자신이나 가족이 더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부모 또한 이처럼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일단 어학원 설명회를 한번 가보시라. 기막히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서너 명 화면에 등장한다. ‘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인가?’ 부모들이 의심할 즈음 떠오르는 자막. “이 아이들은 모두 어학원에서 수강한 아이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부모들은 허를 찔린다. 일본어·영어를 잘해야만 출세할 수 있었던 과거의 역사도 부모를 잘못된 판단으로 이끈다. 특목고 설명회도 마찬가지다. 먼저 동영상에 등장한 아이가 편지를 읽는다. “엄마, 저 △△예요. 제가 중학교 시절 방황할 때 엄마가 저를 이끌어주신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카메라 앞에 섰어요. 지금은 특목고에 온 걸 너무 기쁘게 생각해요.” 결국 엄마가 밀어붙이면 통하게 돼 있다, 언젠가는 엄마한테 고마워하게 돼 있다, 이런 얘기를 전하고 싶은 거다. 이런 정보들이 쌓이면서 부모들은 점차 그릇된 결심으로 빠져든다.

최근 입시 트렌드는 ‘성장’과 ‘독서 체험’ 중시


사정은 미국이나 유럽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나 학생 수가 줄면서 부모 마음을 유혹하려는 사교육 간 경쟁이 불붙고 있다.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부모의 권위>라는 책은 아예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첫째, 권위 있는 부모는 상술에 속지 않는다. 둘째,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를 단단하게 키운다. 셋째, 권위있는 부모는 아이를 부족하게 키운다. 넷째,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도 입시라는 관문은 통과해야 할 것 아니냐고? 나는 먼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사교육에서 제공하는 정보란 무조건 경쟁에서 앞서가기를 독려하게 돼 있다. 이것이 사교육의 존재 기반이다. 고성장 시대에는 탈락자가 많지 않아 이것이 통했다. 경쟁 중심, 출세주의가 먹혔다.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 시대다. 저성장기에는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다. 경쟁 대신 성장, 출세주의 대신 자기실현이 중심이 돼야 한다. 기존 틀을 벗어나 대안적으로 사고하게 되면 입시를 보는 시각도 크게 바뀔 수 있다.

한국의 입시 제도는 최근 몇 년간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과 수시선발 도입이 그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이를 보고 비명을 지른다. 기존의 ‘경쟁’ 패러다임으로 보자면 이건 경쟁만 격화시킨 꼴이다. 수시도, 정시도 둘 다 준비해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성장’ 중심 패러다임으로 보자면 이건 사교육의 폐해에서 벗어날 기회이기도 하다. 수시나 입학사정관제는 학생의 성장을 중시한다. 곧 고1 때 잠시 방황했더라도 그 뒤 노력을 통해 성적을 향상시켰다면 이를 높이 평가하는 식이다. 수능 문제 또한 독서 체험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1년 내내 문제풀이를 몇 차례 반복해야 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얘기에 현혹되지 말고 부모가 직접 수능 또는 논술 문제를 한번 풀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관건은 읽고 생각하는 능력임을 알게 되실 거다.

결국 부모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상황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강북 학생들은 수능을 선택하면 안 된다고? 누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하나. 현재 특목고나 몇몇 자사고의 입시 성적이 교육 효과에 의한 것인지, 선발 효과에 의한 것인지조차 명백하지 않은데. ‘물 수능’ 논란도 마찬가지다. 물 수능이 진짜 문제였다면 여러 대학, 여러 학과에서 동점자가 발생해 혼란이 벌어졌어야 맞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물론 최상위층에 속한 몇몇 학생은 한두 문제로 승부가 갈렸을 수 있다. 그렇다고 상위 몇 %를 위해 나머지가 들러리를 서야 하는 건가? 이런 말이 전문가 코멘트로 인용되는 걸 보면 한심하다.

기존 문화를 따를 것인가,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인가. 부모들은 지금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삶으로 만들어가려 노력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마음 먹어봐야 아이가 알아줄까? 남편은 따라줄까? 학교는?’ 이런 걱정은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 입시에 성공하고 인생에는 실패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우리는 그 반대의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다. 경제력과 정보력을 투입해 사교육 경쟁을 벌이는 대신 개인의 성장을 위해 지원과 격려, 그리고 공감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모두의 성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일본 대학생은 사토리 세대를 몰라요

<조용한 전환>/교육공동체 벗 펴냄 김은남 기자 

 

“사토리 세대는 일본에서 흔히 쓰는 말이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의 20% 정도만이 이 용어를 들어본 일이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미노리 일본 도코하 대학 교수(외국어학부)는 최근 한국에서 화제로 떠오른 ‘사토리 세대’, 일명 ‘달관 세대’ 논쟁을 의아해했다.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래 한·일 양국의 청년세대 담론을 꾸준히 비교·연구해 온 그녀가 <조용한 전환-3·11이 열어준 가능성의 공간들>이라는 신간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책에 비쳐진 일본 청년들의 모습은 ‘달관’과는 거리가 멀다. 니트, 프리타, 히키코모리는 이미 오래된 일상이다. 최근에는 ‘네트카페 난민’도 급증하고 있다. 살인적인 도심의 아파트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청년들이 한국의 PC방과 유사한 네트카페를 전전하다 끝내는 홈리스로 전락하는 것이다.

청년실업 또한 여러 사회문제를 파생시킨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취업난이 심각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일명 취준생(취업준비생)이 처한 현실은 일본이 더 가혹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구직 활동을 슈가쓰(就活)라 표현하는데, 일본 대학생의 경우 3학년만 되면 본격적인 슈가쓰 활동에 돌입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른바 신졸(新卒)일괄채용제도 때문이다. 신졸일괄채용제도란 매년 졸업 예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구인을 하는 일본 특유의 고용 관행을 일컫는다. 문제는 여기서 한 번 탈락할 경우 신졸 아닌 기졸(旣卒)로 분류되면서 좋은 일자리를 다시 얻기가 극히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이에 일본 대학생들은 ‘일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열차’에 올라타려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 대학생들이 휴학을 꺼리고 유학을 기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는 ‘취활 자살’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구직 실패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년이 최근 5년 사이 3.3배 증가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방한해 출간기념회에 참석한 후쿠시마 미노리 씨.  
ⓒ시사IN 이명익
방한해 출간기념회에 참석한 후쿠시마 미노리 씨.

이미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디스토피아. 그럼에도 저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사회에 ‘조용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3·11 도호쿠 대지진이 분기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쓸모없는 존재’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만 인식되던 일본 청년들이 입을 열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태 직후 피해 지역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떠난 청년들은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아무런 피해도 당하지 않은 내가 도리어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무기력하게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 있던 청년들이 집 밖으로 나와 재해로 우연히 생겨난 ‘비일상적인 현장’에서 대가 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순수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와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3·11 이후 청년들에게서 일본의 미래를 본다


총리 관저 앞에서 탈원전 데모를 조직하고, 신주쿠 거리에서 ‘취업 활동을 때려부수자’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제로엔 하우스(홈리스를 위한 이동식 주택 보급운동. 종이상자로 집을 짓고 간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등 돈이 전혀 들지 않는 거주 형태를 지향한다)·셰어하우스 등 새로운 주거 형태를 실험하고, 후쿠시마 원전 일대에 ‘다크 투어리즘’(역사적 비극의 장소를 찾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을 도입하려는 청년들의 등장에서 저자는 일본의 미래를 본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려 할 때 사회는 청년세대를 호출해왔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물론 낙관할 일은 아니다. 3·11 이후 만 4년. 일본 사회는 보수화되고 있다. 청년들의 기세도 사고 직후보다는 한풀 꺾였다. 그럼에도 새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본 청년들의 움직임을 ‘일본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저자는 말했다. 사토리 세대처럼 한국 상황에 꿰맞추어 이를 억지로 해석할 게 아니라, 한·일 청년들이 공통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서로에게 자극받을 때 낡은 과거를 대체할 21세기형 사회 모델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