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미국, 홀로 쳐다보네 시진핑 옆 친구들을

일취월장7 2015. 4. 3. 12:46

 

미국, 홀로 쳐다보네 시진핑 옆 친구들을

3월26일 한국도 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외교를 얕보다가 영국, 독일, 한국 등 우방국을 비롯한 30개국 이상이 가입하면서 외교적 굴욕을 당했다. AIIB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도 고민이다.

  조회수 : 912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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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승인 2015.04.03  08:58:00

 

미국이 중국의 경제외교를 얕보다가 외교적 굴욕을 톡톡히 당했다. 2년 전, 중국이 아시아 철도와 교통·도로·항만 등 인프라 시설의 투자를 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미국은 기존 국제 금융 질서를 흔든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우방에 AIIB 가입을 적극 만류했다.

하지만 미국의 집요한 반대와 압력에도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레일리아 등 우방국을 비롯한 30개국 이상이 AIIB 참여를 결정하면서 미국의 꼴이 우습게 됐다. 미국 재무부에서 국제경제 담당 차관보를 지낸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오바마 행정부가 우방의 불참을 이끌어내려다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려 한다는 중국 내 목소리를 강화시켜준 꼴이다”라고 비판했다.

2013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네시아 순방길에 올라 AIIB 구상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순항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은 고대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중계지점인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지대 소도시 호르고스를 중심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경제권으로 묶고, 나아가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포괄하는 ‘신 실크로드’를 추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400억 달러의 실크로드 기금을 마련하고 AIIB 설립에 공을 들여왔다. 시 주석이 AIIB 구상을 밝히고,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아시아를 상대로 한 치열한 로비 외교를 벌였으며, 마침내 지난해 10월 초기 설립자금 500억 달러 규모의 AIIB를 공식 출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가입 의사를 밝힌 나라만 해도 아시아 48개국 가운데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등 26개국에 달한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초조해하던 유럽의 우방들도 3월 말 창립회원국 등록 마감을 열흘 앞두고 실리를 좇아 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2014년 10월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이 열렸다(위). 시진핑 주석(가운데 손 든 이)은 AIIB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AP Photo
2014년 10월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이 열렸다(위). 시진핑 주석(가운데 손 든 이)은 AIIB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0~2020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서는 매년 70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한데, 아시아개발은행(ADB) 차원의 자금 지원은 매년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금 사정이 풍부한 AIIB가 가세할 경우 인프라 시설 개선작업은 활기를 띨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엄청난 건설 특수가 예상돼 이들 나라가 ‘우방’이라는 명분이 아닌 경제적 측면의 실익을 좇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막판까지도 우방의 불참을 잔뜩 기대하다 낭패를 봤다.

미국이 AIIB 설립에 반대한 데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우선 AIIB 출현이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나아가 국제통화기금 등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금융 질서를 뒤흔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전통적으로 지역 차원의 국제 금융기관 간에 협조적 관계를 유지해온 관례가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로버트 젤릭 전 세계은행 총재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AIIB에 대한 우려가 과장돼 있다. 내가 아직 세계은행에 몸담고 있다면 AIIB를 파트너로 대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오바마 행정부는 AIIB 설립을 안보 사안으로 간주해 국가안보회의가 관할하도록 했다.  
ⓒAP Photo
오바마 행정부는 AIIB 설립을 안보 사안으로 간주해 국가안보회의가 관할하도록 했다.
미국이 제기하는 또 다른 반대 논리는 AIIB가 중국의 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즉 21세기 아시아 경제 패권 자리를 노리는 중국이 AIIB를 자국의 대외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리라고 미국은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국은 AIIB 등록을 망설이는 유럽국에 중국이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대주주인 미국처럼 핵심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미국은 AIIB가 기존 국제 금융기관과 달리 여신 대상국의 환경 기준이나 투명성을 심사하는 규정이 미흡하다는 점을 꼽으며 AIIB의 설립을 반대한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미국은 AIIB에 참여한 우방국을 원망할 처지가 못 된다. 중국 주도의 AIIB 출현을 자초한 당사국이 다름 아닌 미국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의 의사결정 구조가 최대 주주인 미국 위주로 돼 있어 중국 등 신흥 경제 대국들의 불만이 점증하던 차였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2010년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서 IMF 개혁안이 채택됐다. 핵심 내용은 IMF 기금을 기존 규모의 두 배인 7200억 달러로 늘리되, 그에 따라 출연금이 늘어날 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공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신흥 경제 5국에 더 많은 투표권을 주자는 것이다.

IMF 개혁안 처리 지연 등이 미국의 자충수

유럽의 나라들은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문제는 미국이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국 의회가 개혁안 처리에 제동을 건 것이다. 잭 루 재무장관은 “미국이 온건하고 합리적인 형태의 IMF 개혁안을 채택하지 않은 데 따른 좌절감에서 신흥 경제국들이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관리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IMF 개혁안 처리를 질질 끌면서 중국에 AIIB를 출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줬다”라고 분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도 한심하다는 지적이다. 유럽 우방국은 AIIB를 상업적 국익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본 반면, 미국은 이 문제를 21세기 아시아 경제패권 자리를 둘러싼 안보 측면에서 다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경우, 피에르 파도안 재무장관이 마테오 렌치 총리에게 건 전화 한 통으로 AIIB 가입을 결정했다. 반면 미국은 AIIB 설립을 안보 사안으로 간주하고 국무부나 재무부가 아닌 국가안보회의(NSC)가 관할했다. 경제적 이득을 좇아 움직인 유럽국과 달리, 미국은 국가안보회의가 끼어들면서 주무부처 간 메시지 혼선과 우유부단을 키워 화를 자초한 셈이다.

AIIB를 애써 외면하다 외교적 고립을 자초한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까? 민간 외교 연구기관인 미국 외교협회(CFR)의 국제경제 전문가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박사는 지금이라도 미국이 AIIB에 가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는 “미국이 가입할 경우, AIIB에 일정 지분을 가지면서 비판자이자 감시자 구실을 할 수 있다. 또 미국 기업들에게도 인프라 시설투자에 따른 참여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체면을 구기고 AIIB 가입을 추진한다고 해도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어서 걸림돌은 여전하다. 중국 주도의 AIIB에 미국 의회가 기금 출연을 동의해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궁여지책으로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은행을 통해 AIIB와 협력 관계를 추진한다는 것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 이를테면 투자 경험이 없는 AIIB가 상환 능력이 부족한 나라를 지원하거나, 환경·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개발사업에 손을 대지 않도록 세계은행이 돕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또한 표면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이 세계은행을 통한 협력을 모색하는 것과 관련해 “우방의 AIIB 가입에 따른 외교적 굴욕을 만회하고, AIIB 투자 대상국이 중국의 이익에 따라 결정되는 등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이런 뒷북 대응도 명분과 실리에서 모두 승리한 중국의 외교 앞에서 약효를 잃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지금이야말로 미국은 “국제정치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으며 오로지 국익만 존재한다”라는 19세기 영국 재상 파머스턴의 명언을 곱씹어야 할 때다.

 

 

 

‘독일 때리기’에 그리스 내각 총출동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정부가 2차 대전 당시의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독일에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독일 정부가 그리스의 긴축재정을 강하게 요구하자 과거사까지 동원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조회수 : 460  |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지난 1월 집권한 그리스 신정부가 독일 정부에 대해 전쟁 피해(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그리스에 입힌)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등 정부 각료가 연일 독일 정부를 공격하는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이는 과거 나치 독일의 국가 범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독일 정부가 그리스의 긴축재정 및 구조조정을 가장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그리스 신정부가 과거사까지 동원해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3월10일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나치가 그리스에 가한 전쟁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모두 3400억 유로(약 408조원)에 달하며, 이에 따른 배상을 독일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스의 현재 국가부채 총액인 3241억 유로보다 160억 유로 정도 많은 액수다. 총리가 배상 요구 방침을 밝힌 뒤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법무·외무·재무·내무 장관 등 그리스 정부 각료가 잇따라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며 ‘독일 때리기’에 나섰다.

니코스 파라스케보풀로스 그리스 법무장관은 피해액(3400억 유로)의 세부 내역까지 밝혔다. 일단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그리스를 침략해서 이미 92억 유로의 피해를 주었다. 나치가 그리스를 상당 기간 점령하기까지 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의 피해액은 무려 3220억 유로로 환산된다. 더욱이 나치 점령군은 그리스 중앙은행이 보유했던 외환 4억7600만 마르크(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10억 유로로 우리 돈 13조3000억원)를 강제로 대출한 뒤 갚지 않았다. 이 같은 세부 내역은, 그리스 재무부가 지난해 12월에 산정해 집계한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그리스 법무장관은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그리스에 대한 경제 전쟁을 주도한다고 비난했다.  
ⓒAP Photo
그리스 법무장관은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그리스에 대한 경제 전쟁을 주도한다고 비난했다.
파라스케보풀로스 법무장관은 독일이 배상 요구에 불응할 경우, 그리스 주재 괴테 문화원 등 자국 내의 독일 자산을 동결하고 압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파노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나치가 탈취해간 그리스의 금과 유적 훼손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를 집어삼켰던 히틀러처럼 그리스에 대한 ‘경제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메르켈의 무릎 앞에 거지처럼 꿇어앉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른 한편 독일이 전쟁범죄 배상을 거부하면, 그리스로 불법 입국한 중동 난민들이 북쪽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 경우, 중동 난민들이 몰려가게 될 곳은 복지국가로 유명한 독일과 북유럽일 것이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3월13일 공격 대상을 메르켈 독일 총리에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으로 확대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역)에서 나가도록 심리전을 펴면서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스의 부정부패를 맹렬히 비난해온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독일 기독교민주당 대표로 활동하던 1990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전력이 있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이런 인물이 어떻게 남의 부정을 공격하느냐’며 인신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맨 오른쪽)은 독일 정부에 손가락 욕까지 했다.  
ⓒEPA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맨 오른쪽)은 독일 정부에 손가락 욕까지 했다.
3월13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신임 대통령도 배상 요구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스 정부는 나치가 1941~1944년 디스토모, 코메노, 카라브리타, 크리수라, 파르나스 등 그리스 전역에서 모두 8만여 명의 그리스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나치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레지스탕스와 민간인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한 나치 치하에서 아사하거나 병사한 그리스인 역시 2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1944년 6월에는 나치 돌격대가 그리스 디스토모를 습격해서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 218명을 ‘지하항쟁 혐의’로 학살한 바 있다. 그리스 대법원은 지난 2000년, 디스토모 학살 피해자의 유가족 모두에게 배상금 2800만 유로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 같은 종류의 배상금도 현재의 독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연합(EU) 집행부는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게 각료들의 입단속을 당부하는 것 외에는 양국(독일과 그리스) 관계의 악화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의장 역시 지난 30일 동안 무려 40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독일 정부를 비난하고 손가락 욕까지 날린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에게 ‘도발적인 독일 비난을 삼가라’고 경고할 뿐이었다.

맞대응 자제하는 독일, 여론은 그리스에 냉소적

지금까지 독일 정부는 배상금 문제에 관한 한 가급적 맞대응을 자제해왔다. 공식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 보상회의 및 1953년의 런던 부채협정에 따라 그리스에 대한 모든 배상이 종결되었다고 주장한다. 1960년에는 그리스와 협정해 1억1500만 마르크를 피해보상금으로 지급한 적도 있다. 그래서 독일 정부는 그리스 등 나치 피해국들에 대해 도덕적 책임감은 면치 못할지라도 국제법상으로 지불 의무는 없다는 견해를 견지해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독일에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EPA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독일에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그리스가 전쟁범죄 배상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독일 국내에서도 주로 진보 성향 정당을 중심으로 파장이 일고 있다. 3월16일에는 사민당·녹색당·좌파당 등이 이번 기회에 그리스 전쟁피해 배상 문제를 다시 공론화해서 해법을 찾자고 주장했다. 메르켈 총리는 3월23일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를 베를린에 초청해 양자 회담을 가졌으나 나치 보상금, 그리스 재정 지원과 관련해 구체적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리스 정부가 독일 정부에 ‘배상금 총력 공세’를 가하는 것은 배상금 자체보다 현재 진행 중인 구제금융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함으로 보인다. 유로존의 채권국들이 그리스에서 받아야 할 빚은 1419억 유로 정도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35억 유로가 독일 채권이다. 독일이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스의 채무 상환을 독촉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로서는 유로존 채권국 그룹의 ‘물주’나 다름없는 독일의 기를 꺾어야 최대한 채무 규모를 삭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일반적 여론은 그리스에 냉소적인 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보다 차라리 그리스가 유로존을 나가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독일 제2공영방송이 지난 3월10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2%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원한다. 그리스는 3월 말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추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디폴트 상태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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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프레시안 뷰] AIIB와 중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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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와 AIIB

우리 정부가 3월 26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잘한 일입니다. 짝짝짝!

AIIB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2013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를 순방하던 중 공식 제안했고 2014년 10월 24일 아시아 21개국(중국, 인도, 파키스탄, 몽골, 스리랑카, 네팔, 오만,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11개국과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아세안 10개국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죠. 처음에는 500억 달러 규모로 출범하지만 장차 1000억 달러 선까지 늘릴 계획이죠. 유럽에서는 3월 12일 영국이 참여를 선언했고 이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도 가입했습니다. 

미국이 발끈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에도 큰 도움이 되는 구상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서유럽 부흥을 위한 마셜플랜이(실제로 미국의 돈은 얼마 들어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만) 전후의 호황을 이끌었듯이 AIIB는 현재의 장기침체를 극복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테니까요.  

미국이 두려워하는 건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로의 선회(Pivot to Asia)'를 선언한 이래 착착 진행시킨 중국봉쇄망이 뚫리기 때문입니다. AIIB 설립에 참여할 나라들을 보면 동아시아, 동남아, 인도양, 중동, 중앙아시아, 태평양, 유럽을 총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 은행은 이들 나라를 모두 연결하는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거죠. 

이 구상은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의 일환이고 최근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회는 이 구상의 실행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일대일로란 육상의 실크로드 경제지대와 해상의 21세기 해상실크로드 등 양대 축을 도로와 항로로 연결하면서 인근 일대를 총체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거죠. 가히 "중국의 꿈"(中國夢)이라 부를 만합니다.  

▲ 지난 2011년 하와이에서의 사드 발사 실험 모습. ⓒAP=연합뉴스


그림에서 보듯, 땅으로는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유럽 대륙까지 연결하고 바다로는 중국 연해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인도양을 거쳐 유럽과 남태평양까지 이어집니다.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이른바 '5대 통(通)’(정책, 인프라, 무역, 자금, 민심)을 이루겠다는 겁니다. 

'일대일로'의 자금 줄이 AIIB죠. 또한 중국은 400억 달러에 달하는 실크로드 기금을 조성했고  50억 달러 규모의 해상 실크로드 은행 설립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49년까지 25년 동안 15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겁니다. 과연 인류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라고 할 만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구상은 기실 중국 내부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중국 내륙의 개발과 과잉 생산된 철강 등 원자재의 해소를, RCEP(포괄적지역경제동반자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과 결합한 무역의 확대, 4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의 축소, 위안화의 국제화라는 국제적 과제와 결합한 겁니다.  

한국의 전략은? 

이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참여정부 때 추진된 동아시아 공동체 전략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도 각국의 외환보유액에 기초한 동아시아개발기금을 구상했으니까요. 하다못해 대형 리조트에 목매달고 있는 우리 건설업체라도 살릴 수도 있겠죠. 

장기침체의 원인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저축 과잉"(버냉키의 주장)에 있건, 아니면 미국의 과잉 소비에 있건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도 동아시아는 역내 수요를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일대일로'와 AIIB는 훌륭한 수단이 될 겁니다. 

내친 김에 우리가 아시아 공동의 통화금융정책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위앤화의 국제화보다는 가상의 동아시아 통화(예컨대 ACU, Asian Currency Unit, 이하 아쿠)를 만드는 게 각국의 의구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훨씬 낫습니다. 아쿠를 달러 및 유로에 대해 절상시키되 각국 통화는 아쿠와 일정 기간 고정 환율을 갖도록 할 수 있을 겁니다(역내 부분적 고정환율제). 각국의 자본시장 개방 정도가 다르므로 역내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자본유입통제 정책이 필수적인데 토빈세를 동아시아에서 먼저 도입하면 되겠죠. 

동아시아 역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케인즈의 국제청산동맹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겁니다. 즉 무역 적자국가에 "공동관리기금"에서 일정한 이자율로 돈을 빌려 줄 뿐 아니라 무역 흑자국가에도 흑자 규모에 비례하여 일정한 비율의 벌금을 물리고 이자와 벌금은 역내 낙후지역에 투자하는 겁니다. 이 제도 역시 동아시아에서 먼저 모범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통화체제는 결국 현재의 달러체제를 전환시키는 디딤돌이 될 테니 중국도 환영할 겁니다.  

현재 세계 전체의 수출 증가율 둔화는 기본적으로 각국의 임금 인상에 의해 해결해야 합니다. 즉 소득주도성장을 아시아가 선도할 수 있는 거죠. 여기에 역내 공동의 수요가 확대되면 금상첨화겠죠. 특히 군사적 이유 때문에 한국의 인프라 투자를 꺼리는 북한의 개발에 AIIB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는 것을 요구해야겠죠. 효과도 의심스럽고 비싸기 이를 데 없는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THAAD)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중국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중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일본이 동참하면 더욱 효과적이겠죠. 이런 방향의 발전은 미국도 내놓고 반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부의 결정은 백번, 천번 칭찬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AIIB 참여의 반대급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사드(THAAD)에 가입한다면 AIIB 참여는 안 하느니만 못할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박근혜 정부는 곧 그렇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눈부신 4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