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건설 등

집값 하락, 무탈하거나 행복해지는 당신

일취월장7 2010. 9. 14. 11:00

집값 하락, 무탈하거나 행복해지는 당신
[Corée]
[24호] 2010년 09월 03일 (금) 18:53:03 손낙구 info@ilemonde.com

   
▲ <소용돌이>, 1962-메디오스 바로
집값이 오르면 부동산 부자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거머쥐는 반면, 무주택자는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내 집 마련의 길이 멀어진다. 집값이 떨어지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또 집이 있더라도 가격 변동이 거의 없어 별 영향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집을 소유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집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목 좋은 아파트를 여러 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집값 변동에 대한 이해관계는 다양하다.

최근 집값 하락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도 넓게 보면 집값이 하락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경제적 이해관계 중 한 가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우스 푸어란 ‘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으로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많은 빚을 내어 집을 산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집값이 오를 것이라 기대하고 무리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이 떨어지자 오히려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우스 푸어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정부와 언론의 부동산 덫에 걸린 희생자라는 진단이 있는가 하면, 투기에 한 다리 걸치려다 손해를 자초한 사람들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집값 하락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는 데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전체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걸린 집값 문제를 하우스 푸어만의 문제로 좁혀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값 하락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 전반을 제대로 알 수 없고 해법 또한 엇나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가 부동산 자산을 중심으로 계급이 나뉜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전제에서 집값 변동에 대한 계급별 이해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좀더 풍부하게 하려 한다. 먼저 어떤 집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으며, 그 집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인지를 분석해 집을 소유한 사람들 사이에도 집값 하락에 대한 이해관계가 똑같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려 한다. 집이 없어 셋방을 떠도는, 전체 가구의 40%에 달하는 무주택자는 집값 하락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집값이 계단형으로 상승할 경우(한국형), 폭락 뒤 폭등할 경우(외환위기형), 대폭락할 경우(일본형), 서서히 하락할 경우(연착륙형) 등으로 나눠 부동산 계급별로 어떤 이해관계가 나타나는지 분석할 것이다. 아울러 집값이 하락하는 시점에 바람직한 부동산 정책의 방향은 무엇인지 다뤄볼 것이다.
 
집값 9만 원에서 120억 원까지

   
▲ 집값 분포 *자료: 국토해양부(2008년 주택공시가격)
지난해 말 현재 대한민국에는 집이 1450만 채가 있다. 주택보급률 111%로 1300만 가구(보통 가구 기준) 전체가 가구당 한 채씩 갖고도 140만 채가 남아돌 정도로 집을 많이 지은 것이다. 그런데 집이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다. 집값도 천차만별이다. 2008년 정부가 발표한 주택 공시가격(시세의 80%)을 시세로 환산하면 집 한 채당 평균가격은 1억6천만 원인데 지역별 또는 집의 종류나 크기별로 가격 차이가 크다.

수도권의 평균 집값은 2억6천만 원인 데 비해, 비수도권은 8천만 원을 밑돈다. 전체 주택의 55%에 달하는 아파트는 2억 원, 31%를 차지하는 단독주택은 1억 원, 10%를 차지하는 다세대주택은 8천만 원, 4%를 차지하는 연립주택은 1억1천만 원이다.

값이 차이가 나는 데는 집의 넓이, 건축연도, 위치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지은 집이라 해도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권에 있는 집이 가장 비싸다. 서울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싼 은평구의 전용면적 85㎡(33평) 아파트값은 2억6천만 원인 데 비해 가장 비싼 강남구의 같은 평형은 9억9천만 원이다.

가장 비싼 집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120억 원짜리다. 소유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가장 싼 집은 인천시 강화군에 있는 농가주택으로 9만 원이다. 이건희씨의 집을 팔면 가장 싼 집 13만5천 채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집값 분포를 보면 천차만별이다. 집계 대상 1356만 채 중 36.6%는 6250만 원 이하의 아주 싼 집이다. 이를 포함해 전체의 63.1%는 1억2500만 원 이하다. 2억5천만 원 이하의 집은 1128만 채로 전체의 83.2%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집이 5채라면 그중 4채는 2억5천만 원 이하인 것이다. 2억5천만 원에서 6억 원 사이에 있는 집은 12.5%인 170만 채다. 이 중 64만 채는 3억7500만 원이 넘고 106만 채는 그 이하다. 가장 싼 9만 원부터 6억 원까지의 집 1298만 채를 빼면 58만 채가 남는데, 이게 바로 6억 원이 넘는 비싼 집이다. 전체 주택의 4.3%에 해당한다. 이 중 37만 채는 6억∼9억 원이고, 21만 채는 9억 원이 넘는 집이다.

앞에서 살펴본 120억 원짜리 집 한 채를 비롯해 집값이 비싼 순서로 10만 채 정도를 추려보면 최저 가격이 11억2500만원이 넘는다. 정확하게 전체 주택의 0.8%(10만3198채)가 ‘유별나게 비싼 집’이다. 유별나게 비싼 집을 종류별로 보면 아파트가 전체의 90%(9만2천여 채)를 차지하고, 단독주택이 9%,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1%를 차지한다. 지역별로는 서울에 9만4019채(91%), 경기도 8567채, 인천 163채를 포함한 수도권에 99.6%가 집중돼 있다. 그 밖에 전남(83채), 경북(79채), 울산(65채), 대구(53채) 순이고, 나머지 시도는 모두 50채를 밑돈다.
 
한국 사회의 부동산 6계급

집값도 천차만별이지만 사람들의 형편도 모두 다르다. 비싼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 없이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있고, 형편이 어려워 지하실이나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사는 1590만 가구(2005년 일반 가구 기준)를 주택을 둘러싼 처지를 중심으로 구분하면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집단은 앞에서 살펴본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집이 있어도 집값이 천차만별이고 소유한 주택 수도 다르기 때문에 처지가 다 다르다. 집값만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을 세주고 셋방을 떠도는 사람도 있다. 또 대다수는 한 채를 갖고 있지만 상당수는 두 채 이상 여러 채를 소유하고 있고, 심지어 최고 집부자는 무려 1083채를 소유하고 있다. 두 번째 집단은 집 없이 셋방을 떠도는 사람들이다. 집을 살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인 점에서는 똑같지만, 보증금도 없이 월세나 사글세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억 원이 넘는 보증금을 내고 전세에 사는 사람도 있어 형편이 조금씩 다르다. 세 번째 집단은 지하방·옥탑방·비닐집 등 적절하지 못한 곳에 거주하는 극빈층이다.

   
▲ <표1> 한국 사회의 부동산 6계급 *자료: 통계청(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국세청(2007년 국세통계연보)
세 집단을 형편에 따라 세분해서 분류한 한국 사회 부동산 6계급의 규모와 처지는 다음과 같다(표1 참조).

1계급은 38만 가구(2%)로, 이들이 소유한 주택 한 채 또는 여러 채를 합친 가격이 매매가격 기준으로 7억5천만 원이 넘어 2007년 현재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15만 가구는 집을 한 채 소유하고 있는데 그 가격이 7억5천만 원이 넘는다. 23만 가구는 두 채 이상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로 이들이 소유한 주택 수는 98만 채에 달한다.

2계급은 소유한 주택 가격이 7억5천만 원 이하의 사람들로 836만 가구(54%)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중 754만 가구는 1가구 1주택자(이면서 그 집에 거주)이고, 82만 가구는 두 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다. 다주택자가 소유한 주택 수는 380만 채로 가구당 4.6채씩 갖고 있다.

3계급은 자신 명의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나 경제적 여력이 안 되거나, 직장 생활 또는 자녀 교육 문제 등의 이유 때문에 남의 집에서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이다. 전체 가구의 4%(67만 가구)가 이런 ‘이중 인생’을 살고 있다.

4계급은 현재 전세나 월세에 사는 가구 중에서 보증금이 2005년 말 기준으로 5천만 원이 넘는 사람들로 전체 가구의 6%(95만 가구)가 여기에 해당된다.

5계급은 보증금 5천만 원이 안 되는 전·월세 또는 사글세 등 셋방에 사는 사람들로 전체 가구의 30%(481만 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가운데 94만 가구는 3천만∼5천만 원의 보증금을, 140만 가구는 1천만∼3천만 원의 보증금을 내고 있고, 나머지 247만 가구는 보증금이 1천만 원 미만이거나 보증금이 없는 월세 또는 사글세 등을 떠돌고 있다. 보증금 유무와 상관없이 평균 월세는 21만 원, 사글세는 28만 원 수준이다.

6계급은 앞의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처지가 더 딱한 사람들로 지하실·옥탑방·비닐촌·움막·동굴 등에 사는 68만 가구(4%)가 여기에 해당되며, 인구수로는 162만 명에 달한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지하방 거주 59만 가구의 경우 14%만 자가 소유고 전세 38%, 월세 및 사글세 46% 등 84%가 셋방에 살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하우스 푸어는 과도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 가운데서도 ‘실수요 목적으로 그리 비싸지 않은 집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빚을 떠안게 된 사람들’로 좁힐 경우 대체로 하층 중산층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부동산 6계급 가운데 5천만 원 이상 전·월세에 사는 4계급과 어딘가에 집을 사놓고 셋방에 사는 3계급, 그리고 자기 집에 사는 2계급 일부가 하층 중산층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하우스 푸어는 형편으로 보면 4계급인데, ‘집 없는 설움이 너무 뼈저리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 믿어’ 분에 넘치는 빚을 짊어지고 집을 샀기 때문에 더 이상 4계급이 아니라 3계급이나 2계급이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집이 가격이 떨어질까

어쨌든 내 집이 있는 사람은 무주택자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값이 오르면 집 가진 사람은 다 같이 돈을 벌고, 집값이 떨어지면 다 손해를 보는 걸까? 어떤 집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동안 집값은 계속 올랐지만 모든 집값이 다 똑같이 오른 건 아니었다. 가격대별로 보면 그동안 비싼 집이 훨씬 많이 올랐다. 예를 들어 아파트 가격이 한창 오르던 2003년과 2005년에 서울 지역의 6억 원이 넘는 아파트는 각각 21%와 23%가 올라, 6억 원 미만 상승률 12%와 9%보다 배 이상 폭등했다(‘부동산 114’ 통계). 지역별로는 2003∼2007년 서울 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은 송파구(87%), 강남구(84%), 서초구(81%) 순으로 높았고, 경기도에서는 과천(98%), 분당(79%), 용인(68%) 순으로 많이 올랐다(국민은행 통계). 대체로 아파트일수록, 대형 평형일수록 많이 올라 강남권 등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고가 아파트가 상승세를 주도해왔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이 오른 집을 가장 싸게 여러 채 산 사람들일수록 큰 이득을 본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역으로 집값이 떨어질 때도 모든 집이 똑같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집값 하락세는 그간 많이 올랐던 집과 지역일수록 뚜렷하다. 가격대별로는 6억 원 초과 아파트가 집값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그간 집값이 많이 올랐던 지역일수록 하락세가 크다. 2008년 1월 이후 올해 7월까지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내린 곳은 서울의 경우 송파구(-5%)와 강남구(-3%), 경기도의 경우 용인(-13%)과 분당(-12%)으로, 모두 그간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지역이다(국민은행 통계).

2008년 12월 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평형별 가격지수의 변동에서도 대형 평형은 2008년 1월 103.1에서 올해 7월 98.8로 크게 감소해, 99.3에서 102.3으로 증가한 중형과 94.9에서 104.5로 증가한 소형과 극명하게 비교된다(국민은행 통계). 그간 많이 오른 크고 비싼 집일수록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격이 폭등한 집일수록 거품이 많기 때문에 하락세가 큰 것이다.

전체 주택의 63%를 차지하는 1억2500만 원 이하 집들은 그동안 사실상 거의 오르지 않았거나 물가상승분 정도 올랐다고 본다면, 하락기에도 큰 변동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 1억2500만∼2억5천만 원인 주택도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가격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면, 거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전체 주택의 83%는 떨어지더라도 소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2억5천만∼3억7500만 원인 7.8%의 주택은 지역에 따라서 어느 정도 하락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가격 변동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거품이 상대적으로 많은 3억7500만 원이 넘는 주택 140만 채일 텐데, 이 가운데 그동안 가격이 폭등한 집들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크게 떨어질 집은 전체 주택의 4.3%를 차지하는 6억 원이 넘는 고가주택 58만 채다. 고가주택은 강남권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 집중돼 여러 해 동안 가장 많이 폭등해왔기 때문에 하락폭도 가장 클 것이다.

이처럼 집값 하락 추세가 계속될 경우 주택 소유자 내부에서도 고가주택을 여러 채 소유한 사람일수록 큰 손해를 보게 되고, 저가주택 소유자는 손해폭이 작거나 거의 없는 양상이 될 것이다. 또 중형 주택 소유자 중에는 그간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손해가 예상된다. 다만 이 손실은 그간 올랐던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사람의 경우 실제로는 손해가 없는 것이라고 할 때, 실제 손해를 보게 될 주택 소유자는 집값이 크게 오른 뒤에 구입한 이른바 ‘상투를 잡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집값 하락과 부동산 6계급

집값 변동에 대한 부동산 6계급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다를까?

1계급은 그동안 집값이 오를 때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들이다. 집값 상승을 주도해온 버블세븐 지역의 고가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집값이 떨어지면 손해를 가장 많이 볼 사람들이다.

2계급 가운데 일부는 집값이 오를 때 짭짤한 혜택을 봤다. 이들은 그 집값이 떨어질 경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 비싸지도 않고 크게 오르지도 않은 집을 소유한 다수는 그동안 별 이익을 보지 않았고,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3계급은 집값 변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이중적이어서 애매하다. 집값이 오를 때 어딘가에 자신이 소유한 집값이 올라 혜택을 입었을 수 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전·월세 임대료도 올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질 때 전·월세금도 떨어지기 때문에 집값 하락에 대한 이해관계 역시 이중적이다.

그동안 집값이 오르고 전·월세 임대료가 폭등해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4·5·6계급이다. 주거비 부담이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의 길도 멀어졌고, 2년에 한 번씩 ‘방값 올려줄래, 아니면 방 뺄래?’라는 선택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그만큼 혜택을 볼 사람도 4·5·6계급이다. 임대료가 낮아져 주거비 부담이 줄고, 같은 가격에 좀더 나은 셋방을 얻거나 형편이 괜찮은 사람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하층 중산층 가운데서도 ‘상투를 잡은’ 하우스 푸어는 집값이 오르는 게 좋겠지만, 집을 사지 않은 4계급은 집값이 떨어져야 행복해진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이번에는 집값 변동에 대한 부동산 6계급의 이해관계를 예상되는 집값의 시나리오별로 나눠 살펴보자(표2 참조).

   
▲ <표2> 집값의 세 가지 시나리오와 부동산 계급별 이해관계
첫 번째는 집값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고 이전처럼 10년에 한 번씩 되풀이되는 계단형 상승 곡선으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다(한국형). 이 경우 그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계속된다. 1계급과 2계급 일부는 큰 혜택을 보고, 2계급 다수는 집값이 소폭 오르며, 3계급은 애매한 처지 그대로다. 4·5·6계급의 고통은 계속 심해진다.

두 번째는 집값이 외환위기 때처럼 일정 기간 폭락한 뒤 순식간에 다시 폭등하는 시나리오다(외환위기형). 1998∼2002년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2·3계급에 속한 하층 중산층, 또는 빚을 많이 지고 비싼 집을 산 일부 1계급이 소유한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 자금 여력이 풍부한 1·2계급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폭락 뒤 폭등을 거쳐 한국형 시나리오로 복귀하기 때문에 나머지 계급은 앞의 한국형과 대동소이하다.

외환위기형을 거치든 그렇지 않든 한국형 계단 모양 상승 곡선은 부동산 1계급이나 2계급에 부동산으로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대신 대다수 서민은 집 때문에 허리가 휘어야 하고 눈물을 삼켜야 하며 인생을 허비해야 하는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세 번째는 집값 대폭락으로 이어질 경우로, 일본과 같은 거품 붕괴 시나리오다(일본형). 부동산 1계급 중 돈이 많아 넓고 비싼 집에 사는 소수의 실수요자를 제외하고는 몰락을 넘어 계급 해체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2계급 중 일부도 큰 손해를 피할 수 없다. 2계급과 3계급 다수는 큰 변동이 없겠지만 형편에 따라 일부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반면 4·5·6계급은 적어도 주택과 관련해서는 형편이 크게 나아진다. 4계급 중 상당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5계급은 집값이 떨어지는 만큼 주거비 부담이 줄어 교육비를 늘릴 수 있거나, 예컨대 방 두 칸에서 세 칸으로 셋방을 옮겨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6계급에게 집값과 전·월세값 대폭락은 지하실에서 밝은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내려주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

물론 제4의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 집값이 꾸준히 하락하되 급격한 폭락을 피하는 것이다(연착륙형). 이 경우 4·5·6계급의 주거비 감소와 1계급과 2계급 일부의 자산 감소 추세는 속도가 느려질 뿐 분명하게 될 것이다. 2계급 다수와 3계급의 경우 가격이 오르기 전으로 천천히 복귀하게 될 것이다.

   
▲ 일본 땅값 지수(1974~2008) *자료: 일본 국토교통성 지가공시 자료
   
▲ 한국 아파트값 지수(1986~2008) *자료: 국민은행(연말기준)
   
▲ 한국 외환위기 전후 아파트값 변동률 *자료: 국민은행
집값 하락기 부동산 정책의 방향


현재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일이다. 그동안 집값은 너무 비정상적으로 폭등해왔다. 1960년대 말부터 주기적으로 10년에 한 번씩 수직 상승했고, 2002∼2007년에 또다시 폭등했다. 그동안 기형적으로 폭등한 것이 일부 제자리를 찾아가는 미미한 움직임 정도라 할 수 있다.

또 집값이 떨어지는 시기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선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건설업에 한 다리 걸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이 평균 20%에 육박하는 후진국형 산업구조를 자연스럽게 조정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다. 만약 이것을 해낼 수 있다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건강하게 바꾸는 좋은 보약이 될 수 있다.

집값에 낀 거품이 충분히 빠지고 나면 건설업체의 미분양 주택을 비롯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전체 주택의 5%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을 환경파괴 없이 크게 올릴 수 있다. 싼값에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확보하게 되면 서민주거 정책을 획기적으로 펴게 될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력도 크게 높아져 투기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

땅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 국토 가운데 국공유지는 30% 수준이지만 대부분 도로나 하천 임야로 공공토지로서 역할을 하기에는 실질적 의미가 매우 약하다. 특히 가격 기준으로 국토의 3분의 1이 넘는 대지 가운데 국공유지는 불과 7%로, 대부분 투기에 노출돼 있다. 땅값이 충분히 떨어질 때 국공유 대지 비율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면 국토의 대부분이 투기에 노출된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토지임대제도, 토지임대부주택공급제도 등을 펼쳐나간다면 부동산 투기를 불능화하는 데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 다녀야 하는 전·월세 가구의 떠돌이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금액을 낮추고도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현재의 세입자와 계약을 연장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또 임대료 인상 상한제 도입에 대한 저항도 미약할 수밖에 없다. 만약 충분한 준비를 거쳐 이런 조건을 잘 활용한다면 전·월세 계약 기간이 최장 2년으로 제한되고, 실질적인 임대료 상한제도 없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선진국 수준의 세입자 보호 제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무너뜨릴 수 있는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게 되면 부동산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는 상식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부동산 신화는 무너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집값이 하락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물론 집값 하락이 추세로 자리잡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투 하우스 푸어’ 문제, 건설업계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의 대비책도 준비해야 한다. 부동산 고질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사회적 문제와 고통에 대한 국민적 설득과 합의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정반대다. 출범 초부터 개발 정책을 남발해온 이명박 정부는 지난 8월 29일 내놓은 부동산 활성화 대책에서도 내년 3월까지 강남을 제외한 수도권 전역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도 2년간 더 깎아주었고, 3조 원대의 건설업체 유동성 지원책도 내놓았다. 집값 하락을 막고 가능한 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 기반인 부동산 부자들의 집값이 떨어뜨리는 것을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서민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부동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의 손쉬운 수단으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고 투기 규제 장치를 모두 풀어버린 것이 2002년 이후 집값 폭등의 중요한 원인이 됐던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최소한 친서민 정책을 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집값을 떨어뜨려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집값이 떨어져야 서민인 4·5·6계급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진심이라면 집값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펴선 안 된다. 부동산 부자들이 불로소득을 좇는 것이야말로 불공정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글•손낙구
노동운동가. 전 민주노총 대변인. 다양한 통계 자료를 이용해 한국 부동산 보유 실태와 계급성에 관해 연구한 <부동산 계급사회>(2008),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2010)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