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일취월장7 2014. 1. 8. 10:51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마음 급한 아침 출근 길,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한참을 머문다. "도대체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은 누구야?"라며 불평 섞인 소리들이 나오는 가운데, 문이 열리자 다리를 저는 사람이 힘겹게 걸어 나온다. 부끄러워진다. 그렇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세상임을 우리는 잠시 잊었다.

 

빠삐용 물개. 한번 탈주한 이력이 있어 전과범이란 뜻의 범이라 불린 녀석이 두 번째 탈주를 감행했다. 호랑이는 사육사를 물었다. 동물들과 공존하는 방법보다는 더 철저히 가두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사회는, 길들여짐이란 누군가에게는 절망과 동의어임을 잊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잊고 산다.

 

연말 동창 모임. "맥주 몇 병 값밖에 안 되는 회비조차 안 내는 친구는 모임에서 탈퇴시키자"는 친구의 발언에 속상해진다. 누구나 회비 정도는 낼 여력이 있다는 평균율의 맹신. 하지만 그 누군가는 맥줏값조차 버거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 그들 모두는 지금 삶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플라톤의 충고를 우리는 잊고 산다.

 

지난 11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다. 한 살배기 딸과 여덟 살짜리 아들을 꼭 안고 자신의 등으로 불길을 막으려 한 어머니는 결국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을 얼마나 꼭 감싸 안았던지 시신 분리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신은 자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평생 효도를 다 한 자식의 효성이, 자식을 업고 개울을 건너는 부모의 한 순간 마음만 못하다고도 한다. 그런 부모의 마음들을 잊은 채 그렇게 우리는 바쁘게 산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폭탄주를 원샷 하면 왜 박수를 칠까? 과연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일까? 지친 마음을 술로 달래며 밤낮없이 일하는 중년들, 승진과 성과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그들의 어깨에 한 가정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우리가 행하는 경제적 노력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산다.

 

해외 출장길, 도처에서 삼성 갤럭시를 손에 쥐고 현대차를 타며 K팝을 부르는 현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이로 인해 내 자부심은 얼마나 커지는지,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신문을 펼치는 순간 난 또 얼마나 작아지는지.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구호들 속에 정작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음을 위정자들은 잊고 산다.

 

청년들의 절망이 깊어진 지 오래, 그럼에도 청춘은 꿈과 희망의 동의어여야 함을, 많은 삶들이 "인생은 다음 장을 알 수 없는 소설이니 너무 일찍 덮지 말라"는 말의 증거가 되고 있음을 청년들은 잊고 산다. 알지만, 그건 나의 이야기가 아닐 거라며 그들은 그렇게 절망 속에 산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맞는 노인들의 한숨이 깊다. 동반자살의 슬픈 소식도 들려온다. 늙음은 낡음이 아님을, "한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을 우리는 잊은 채 산다. 이제 기득권층이 되어가는 민주화 세대가 산업화 세대인 노인들을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 그러한 마음들이 흘러 세대를 아우르는 따뜻한 연대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때 노인들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세대갈등의 해소이자 노인복지의 시작임을 우리는 잊고 산다.

 

인터넷에서는 한 가수의 안티팬들이, 두 스포츠 스타의 팬들이 분주하다. 판단은 논박할 수 있으나 편견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말만 보는 논쟁 속에서 어느새 자신이 편견의 괴물이 되어 있음을 그들은 모르고 산다. 남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그렇게 생을 소모하며 산다. 하루를 산만큼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다가서고 있음을 잊고 산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들 산다.

 

팍팍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온 불안감속에서 우리는 '응답하라 1994'를 보며 "그땐 좋았었지"라며 작은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우리나라는 OECD국가가 되었는데, 나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가다를 하고 있더라"는 대사는,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 사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들은 구조화 되어 버린 우리사회에 대한 일침이며 성찰이어야 함을 우리는 잊고 산다.

 

김현식, 유재하, 김광석의 노래가 유난히 많이 들렸던 지난 가을. 우리를 떠난 지 오래된 그들은 여전히 주옥같은 노래를 남겨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정작 우리는 이 삶에서 무엇을 남길 것 인가, 나는 누구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는 잊고 산다.

 

송년회를 마치며 내년에 또 보자는 우리의 굳은 악수가 현실이 된다면 그 또한 감사할 일이어야 함을 우리는 잊고 산다. 이토록 다사다난함 속에서도 이 삶이 꿋꿋이 현존하고 있음이 기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 동안 그새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실토하거니와 위의 내용들 대부분은 올 한 해에 대한 필자의 반성 고백이기도 하다. 이렇게 잊고 산 것들이 깨우침으로 다가오기를, 그리하여 한 살 더 먹는 만큼 나의 지혜가 커지고 세상을 향한 눈길도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자 한다. 계사년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을 독자 여러분의 새해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