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평화구상에 이어 올해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평화통일 3단계 및 통일세 구상을 주요 대북 메시지로 제시했다. 평화통일 3단계 구상은 다소 도식적 성격이 강해 보이지만, 통일세 제안은 비교적 새롭고 구체적이다. “통일은 반드시 오기 때문에 그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라는 이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을 표한다.

사실 현 정부 들어와 통일 담론이 실종된 지 오래지 않는가. 뒤늦게나마 이명박 정부가 분단 관리를 넘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적 조처로 통일세의 사회적 논의를 촉구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차제에 정계·학계·시민단체·언론계 등에서 통일의 방향과 비용 그리고 통일세 등에 대한 건설적 토론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정작 통일세 수혜 당사자인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8월17일자 성명에서 이 대통령의 통일세 제안을 “전면적인 체제대결 선언”으로 규정하고, “어리석은 망상인 ‘북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불순하기 짝이 없는 제안”이라고 매도했다. 그뿐 아니라 정계·학계·시민사회 그리고 주요 외신까지도 통일세 제안에 회의적 또는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통일세’가 현실적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까닭

무엇보다 제안의 맥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이 실천되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이런 제안이 나왔다면 어느 누구도 그 진정성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남북 관계가 거의 망실되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은 현실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남북협력기금 하나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면서 무슨 통일세냐’라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통일세 추산 방법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통일세 제안은 미래기획위원회의 통일 관련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점진적 개방·개혁 후 합의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통일비용을 380조원, 반면 북한의 급격한 붕괴에 따른 흡수 통일 시 2525조원의 통일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점은 380조원밖에 들지 않는 점진적 합의 통일 방안보다 그 비용이 거의 7배나 더 드는 흡수 통일 방안에 방점을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남쪽의 이러한 의도에 대해 북측은 두 가지 대응책을 쓸 가능성이 크다. 그 하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판사판으로 남측과 ‘전쟁 불사’의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개연성에 관해서도 통일과 통일비용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통일세의 정당성과 적정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가능하리라 본다.

또한 통일세의 역할을 과대포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통일세는 통일비용 충당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민간 부문의 경제교류와 투자, 대일 청구권 자금, 그리고 국제사회의 공여 등도 통일세 못지않게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 특히 대내외적 민간 부문의 대북 투자는 가장 핵심적 재원이다. 이같이 다양한 통일 재원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국민의 세금부담만 강조하다보면 국민에게 통일 기피 또는 혐오증을 야기시키기 쉽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다. 그리고 통일비용 절감의 최선책은 북한 스스로가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경제의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다. 그런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우리의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북한의 급변 사태와 흡수 통일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OECD 회원국 한국의 일부가 되고, 남북한 요소가격 특히 임금이 동일해진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오늘날 독일보다 더 심각한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미래기획위원회 보고서에 이미 답이 있지 않은가. 비핵화의 전제 조건을 다소 완화하고, 과감하게 남북 경제교류를 추진하며, 협력을 활성화하고, 북한의 개방·개혁을 유도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10·4 정상선언을 통해 합의한 45개 협력 사업을 지금이라도 하나씩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불확실성의 어려운 길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놓은 쉬운 길로 가는 게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