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정세현의 정세토크] 쌀지원, 인도주의-남북관계-親농민 '1석 3조'

일취월장7 2010. 8. 25. 18:54

"카터 방북 후 국면 전환 가능성에 '勿失好機' 하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쌀지원, 인도주의-남북관계-親농민 '1석 3조'

기사입력 2010-08-25 오전 8:05:41

지미 카터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구금중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의 석방을 위해 특사로 파견됐습니다. 이런 사태 전개가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작년에도 미국 여기자 두 명이 북한에 구금됐다가 8월 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석방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도 해빙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었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8월 중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초청해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남측의 요구를 상당 정도 수용하는 나름의 조치를 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그걸 받지 않아서 결국 남북관계의 해빙은 이뤄지지 않았었지요.

이번에 카터 전 대통령이 다녀온 뒤에도 우리 정부는 작년처럼 그렇게 대처할 것인가?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26~28일 한국을 방문하고, 이어서 다른 6자회담 참가국을 도는 일정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가, 이제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다웨이는 16~18일 북한에 다녀왔어요. 우다웨이가 움직인다는 건 천안함 상황을 종료하고 6자회담 국면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중국의 정책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만 마냥 북한의 천안함 사과가 먼저라고 하면서, 사과가 없으면 6자회담에 나가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 물론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입장을 일단 들어 보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겠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말만 계속 들어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카터는 1994년 6월에 김일성 주석을 만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도 만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언론의 관심이 쏠릴 겁니다. 미북간 화해 국면으로 간다는 기사도 나올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북한의 노림수입니다.

한때 대북 특사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이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거론됐었는데 굳이 카터를 선정했다는 건 미국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이제는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94년 카터-김일성 대동강 선상회담이 전쟁 일보 직전으로 치닫던 한반도 상황을 반전시켰는데, 이번에도 천안함 이후의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북한의 계산이 있을 거예요. 미국도 '카터 특사'에 동의해서 거기에 동조하는 거고. 그렇게 되면 카터 방북 이후에도 동·서해에서 연말까지 계속 대잠훈련을 할 수 있을지... 아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과, 재발 방지, 책임자 처벌을 조건으로 6자회담 재개를 계속 지연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잘못하면 이명박 정부 최고의 국정 가치였던 한미동맹 강화도 훼손될 수 있어요. 거듭 말하지만, 미국은 자기네 득실을 따져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을 때 동맹국의 입장을 그리 중시하지 않더라고요.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1994년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장면 ⓒ카터센터

100만 톤 이상 덜어 내야 숨통 트는 농민들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한나라당에서까지 대북 쌀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봐서 아직도 미국의 발목을 잡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정부보다는 비교적 유연한 입장에 있는 정치인들이 국면 전환 조짐을 감지하고 정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것 같은데, 정부의 대응은 너무 경직됐어요.

쌀 지원에 대해서는 긴 얘기 안 하겠습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쌀 지원을 할 때 농림부의 입장은 언제나 1년에 100만 톤을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주의도 인도주의지만 우리 농민들에게 추곡수매가를 올려줘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어요.

세계식량기구(FAO)가 한국에 권장하는 전략적 비축량은 2000년대 초만 해도 100만 톤이었습니다. 연간 쌀 소비량을 기준으로 두 달치 정도를 가지고 있어서 만약의 경우 쌀을 어딘가에서 조달해 싣고 오는 동안 버틸 수 있는 양이 전략적 비축량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식생활 패턴이 급변해서 이제는 전략적 비축량이 72만 톤으로 내려갔대요. 전략적 비축량이 100만 톤이던 시절에도 추곡수매가를 높이기 위해서 비축미 외에 남아도는 100만 톤을 '격리'해야 한다는 게 농림부와 농민들의 입장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더 격리시켜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그걸 대북 지원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듣기로 지금 2004년산 쌀까지 재고로 있다고 합니다. 약 420만 톤 정도가 농협 창고에서 속절없이 변질돼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2005년산을 사료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2005년산이 그렇다면 2006~08년산은 충분이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과거에도 한 2년 정도 비축된 쌀을 보냈으니까 대략 2006~08년산 쌀 중에 40~50만 톤은 덜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정책을 한다고 하는데 대북 쌀 지원으로 농림부의 숨통만 터 줘도 곧바로 친농민 정책을 한다고 포장할 수 있을 겁니다.

미북관계의 추이를 보면서 우리도 건너갈 다리를 놔야 합니다. 인도주의라는 명분도 좋고 하니까 북한이 우리의 이니셔티브에 못이기는 척 끌려올 수 있는 밑자리를 깔아 놓는 게 필요합니다. 천안함 사건에 따른 대북 '5.24 조치'가 나온 지 딱 석 달이 됐는데 입장을 바꾸는 게 난처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9월이 되면 100일이 지나니까, 여당에서 하자는 대로 못이기는 척 끌려가는 것도 결과적으로 국면 전환은 물론 한미관계에도 도움이 됐지 불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2007년 북한에 수해가 났을 때 옥수수 5만 톤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쌀은 창고에 있는 걸 갖다 주면 되지만 옥수수는 중국에서 사야 하기 때문에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때 중국산 옥수수 5만 톤 쿼타를 따내는데 김하중 당시 주중대사(이명박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중국 정부 고위인사들과 김 대사 사이에 친분이 두터워서 연말쯤에 옥수수 수출 쿼타를 간신히 배정받았는데, 우리 대선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5만 톤 지원을 거부해서 무산됐어요.

이제 옥수수를 준다는 건 그만 둬야 합니다. 옥수수는 새로 사줘야 해요. 쌀 먹는 민족끼리 옥수수를 주느니 마느니 하는 것도 이상하고, 쌀을 주는 게 생돈 안 들이는 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쌀 지원은 우리 쌀을 주면서도 태국산 쌀의 국제 가격을 쳐서 차관 형식으로 지원했는데, 과거에는 옥수수 값보다 쌀값이 비쌌지만 지금은 옥수수 값이 올라서 별 차이가 없어요. 일단 수해물자 지원 형식으로 조금 주게 되겠지만, 그걸 시작으로 해서 과거 40~50만 톤 주던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단지 인도주의나 남북관계 문제만이 아니에요. 우리 농민들을 위한 겁니다.

작년 11월에 옥수수 1만 톤 주겠다고 제안해놓고 지금까지 안 보내고 있는데, 그건 이제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이번에 쌀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금년에 날씨가 사람들에게는 폭염이었지만 벼가 자라는 데는 더 없이 좋은 날씨랍니다. 앞으로 태풍 피해만 피하면 올해 우리 쌀 수확량은 더 늘어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농림부와 농민들의 고민이 더 커집니다. 금년에 최소한 40~50만 톤 덜어 내야 합니다.

통일세 안 걷고도 통일로 가는 길 있다

그리고 조금 지난 얘기고, 며칠 떠들썩하다가 시들해져버린 이슈지만 통일세 문제에 대해 잠깐 언급할게요. 통일세 문제가 언론 차원에서 시사성은 좀 떨어졌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거든요.

통일세를 제안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통일비용 논의가 유행하던 김영삼 정부 때 정권 핵심부의 대북관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당시 통일원이나 안기부에서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는데, 정권 핵심부에서는 붕괴를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런 분위기로 계속 몰아가니까 그게 결국 미국에도 영향을 미쳐서 미국에서도 북한 붕괴 대비 시나리오가 연구됐고, 그게 다시 우리 언론에 보도되거나 비공개 정보 유통망을 통해 전문가들에게 유통됐습니다.

당시의 북한 붕괴론은 흡수 통일론과 통일비용론으로 이어졌고, 이번에 나온 통일세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악화되고 있고 매달 군사훈련을 하면서도 대통령이 "통일은 반드시 온다"고 하는데, 그걸 무슨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북한이 곧 붕괴한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통일비용을 엄청나게 부풀려 계산해서 GDP의 15%가 든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었어요. 그 정도면 우리 정부 1년 예산의 절반 정도 되는데, 그런 얘기가 여과 없이 보도되니까 국민들이 겁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통일비용론은 결국 분단 이데올로기가 됐습니다. 그렇게 돈이 들 바에야 차라리 갈라져 사는 게 더 낫다는 거죠.

물론 독일 통일을 사례로 볼 때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거나 혹은 한 쪽이 붕괴되면 엄청난 돈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독일은 동·서독의 화폐를 1:1로 통합해서 동독의 노동 경쟁력을 죽여 버렸고, 서독에 살고 있던 동독 출신자들의 고향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면서 땅값이 치솟는 바람에 동독 지역에 민간 투자가 못 들어갔어요. 그래서 독일 정부의 재정이 많이 들어갔는데, 그런 전제라면 돈이 많이 들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합니다.

그러나 독일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민간 자본이 채산성을 따져 들어가고 싶어 할 수 있는 유인책을 열어두면서 통일에 대비하면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에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 통일비용이 확 내려가요.

또, 통일비용이나 통일세를 계산할 때 투자비만 따지는 것도 문제에요. 년간 GDP의 6~7% 통일비용이 들어가는 대신 GDP의 4∼4.5% 분단비용은 더 이상 안 들어가기 때문에 순통일비용은 GDP의 2∼2.5% 정도에 불과할 거라고 통일비용 연구의 권위자인 중앙대 신창민 명예교수가 계산했습니다.

또, 비용이 나가면 편익도 있는 겁니다. 신 교수는 GDP가 연간 11% 이상 고도성장을 하게 되면서 통일비용을 제하고도 매년 9% 정도 고도성장을 하는 통일 편익이 생길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GE 그룹의 베칼리(Beccalli) 회장이 2008년 초에 '한국은 북한이라는 신(新) 성장 동력을 활용하면 2050년에 엄청난 경제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 역시 이런 통일 편익을 계산했기 때문링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 생각을 해야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해서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니까 지금부터 세금을 걷자는 건, 사려 깊은 정책은 못 됩니다. 우선 북한을 매우 자극하는 일이 될 겁니다. 동시에 엄청난 비용 때문에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통일을 바라지 않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그건 결국 분단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분단 이데올로기로서 기능을 할 겁니다.

버스요금, 수도요금만 올라가도 부담스러워 하는 게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예요. 그런데 통일세를 걷자고요? 통일비용 적게 들이면서 통일로 가는 길은 왜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더구나 그 길이 이미 열렸었는데 말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