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복지 칼럼

[우석균 칼럼] '건강보험료 1만1000원 더 내기' 운동을 반대한다

일취월장7 2010. 6. 16. 17:15

"왜 월급쟁이만 1년에 30만 원씩 더 내야 하는가?"

[우석균 칼럼] '건강보험료 1만1000원 더 내기' 운동을 반대한다

기사입력 2010-06-16 오전 9:19:21

보건의료 분야의 개혁 방안을 놓고 최근 논쟁이 하나 벌어지고 있다. 바로 '1만1000원을 더 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90퍼센트 확보'하자는 운동을 둘러싼 것이다. 예를 들면 <프레시안>에 최근 실린 오건호 씨의 지지 글이 그렇다. (☞관련 기사 : <조선일보>가 무상 의료를 두려워하는 까닭)

이 운동을 옹호하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보건의료노조 등(이하 시민회의)에서는 '지금까지의 운동은 국가와 정부에 부담을 더 지라는 것을 요구하는 당위적 운동'만을 해서 전진이 없었다면서 '국민부터 보험료를 더 내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우리가 보험료를 더 내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하자는 운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이 주장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물론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라는 구호(여기에 하나로라는 말을 붙인 것이 시민회의 측의 구호다)는 보건의료 개혁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목표였고 지금도 그렇다. 즉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고 의료비가 100만 원 이상 나오면 정부가 이 돈을 내주는 '의료비부담 상한제' 시행. '민영보험 대신 건강보험으로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운동은 내가 속해 있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을 포함하여 모든 보건의료의 개혁을 바라는 단체들이 동의하는 목표고 이를 위해 10년이 넘게 싸워왔다.

목표가 같고 이를 이루는 방법상의 차이이므로 참여는 하지 않아도 비판은 하지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고민 끝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 '새로운 운동' 때문에 개혁 진영이 양분되었다는 점, 그리고 시민회의 측의 글만 보면 이 주장이 보건의료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다수의견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시민회의 측의 준비 당시 물었던 질문이 있고, 여전히 이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먼저 1만1000원 더 내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90퍼센트로 하자'는 운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속한 단체도 그렇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돈을 더 낸다고 하면 정부와 기업이 돈을 더 내는가? 또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나면 그것이 곧 보장성 강화로 이어지는가? 그리고 정말 물어보고 싶은 말. 국민이 보험료를 왜 40퍼센트까지 올려가면서 더 부담해야만 하는가? 기업과 정부가 더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당위적인 요구'만 해서 지금까지 건강보험 보장성이 더 강화되지 못했는가?

첫째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정부와 기업이 더 부담하라는 요구만 해서 즉 '국민이 보험료를 더 부담한다고 나서지 않아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강화되지 못했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우리나라의 보험 재정에서 감당하는 몫은 보험료로 납부되는 금액의 20퍼센트다. (실제로는 건강보험 재정의 약 16.7퍼센트다. 20퍼센트가 아니다. x+0.2x=1을 해보면 전체 재정 중 보험료 비중이 83.3퍼센트이므로 실제 국고 지원액은 16.7퍼센트다. 작년에는 4.8조 원이었는데 이 16.7퍼센트도 다 지원된 것이 아니다. 2009년에는 보험료 납부액인 25.9조 원의 20퍼센트는 5조2000억 원인데 정부는 이것도 다 지원하지 않았다. 4000억 원을 떼어먹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GDP 대비 10퍼센트를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평균인 23.1퍼센트에 비해서도 반도 안 되고 스웨덴, 독일에 비해서는 3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에서 예산의 복지 부담 비율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심지어 최근 정부 산하 연구원인 보건사회연구원에서도 이 "8:2 불문율"을 깨뜨려야만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면할 수 있다면서 노인들의 건강보험 재정의 50퍼센트를 정부가 부담하자 개정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이렇게만 되어도 정부 부담은 20퍼센트에서 당장 30퍼센트가 되고 국고 지원 비중은 노인 인구가 증가할수록 계속 늘어난다.

따라서 나는 시민단체가 정부 부담을 최소한 40퍼센트 이상으로 늘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해보았자 지금보다 더 늘어나는 예산은 2009년 기준으로 5.2조 원 정도다. 예산의 1.8퍼센트이고 GDP대비 0.5퍼센트 미만이다. 이렇게 해도 OECD 사회복지 지출 꼴찌에서 벗어나려면 한참 멀었다.

기업 부담은 어떤가. OECD 평균 기업의 사회복지 지출 기여 비율은 5.4퍼센트이고 노동자는 3.1퍼센트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기업이 2.5퍼센트 노동자가 3.3퍼센트다. 그런데 왜 노동자가 더 내야하는가? 당장 건강보험료만 보더라도 한국은 5:5인데 반해 대만의 경우 기업주가 60퍼센트 노동자가 30퍼센트 나머지 10퍼센트는 정부가 낸다. 기업주가 노동자에 비해 2배를 내는 것이다. 한국의 5:5 비율을 기업주 60퍼센트 노동자 40퍼센트로 바꾸면 2009년 기준으로 약 4조2000억 원의 재정이 더 생긴다. 이렇게 해도 기업주 부담 비율이 느는 것은 GDP의 0.4퍼센트 미만이고 OECD 평균으로 가기에는 한참 멀었다.

이렇게 국고 지원 비중을 '소폭' 더 높이고 기업주가 '소폭' 더 부담하면 2010년 기준으로는 10조 2000억 원이 더 생긴다. 시민회의 측이 말하는 보장성을 90퍼센트까지 강화하는 12조5000억 원의 82퍼센트다. 시민회의는 보험료를 '소폭' 올려 보장성 강화 90퍼센트를 달성하자고 개인당 1만1000원의 보험료 인상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보험료 40퍼센트 인상이다. 40퍼센트 인상이 '소폭'인가? (직장 가입자 세대당 연 평균 33만 원이 넘는다.) 왜 월급쟁이에게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에게 그들의 부담금을 '소폭' 올리자고 주장하는 것이 '당위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이라는 말인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둘째 소폭이 아니라 '대폭' 인상이라도 좋다. 보장성만 90퍼센트가 된다면 보험료를 40퍼센트라도 올리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실제로 세금을 올려서 사회복지가 강화된다면 세금을 올리겠다는 사람이 70퍼센트가 넘는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그런데 그 전제는 보험료를 올렸을 때 사회복지가 대폭 좋아진다라는 것이 전제다. 그러려면 낭비를 막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1인당 건강보험료는 무려 53퍼센트가 올랐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정부 통계로 60퍼센트에서 오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두 가지만 보자.

하나는 약값이다. 제약회사가 챙겨간 돈이다. (물론 이중 리베이트비로 병원과 의사들이 약 15~20퍼센트를 가져간다고 한다.) 2009년 건강보험에서 약값으로 나간 돈은 7조2000억 원으로 약 30퍼센트다. 국민의료비중 약제비는 24.7퍼센트로 OECD 평균 17.4퍼센트보다 훨씬 높다. 이것을 OECD 수준으로 깎으면 당장 2조 원도 넘는 돈이 줄어든다.

다른 하나는 병원비다. 우선 과잉 진료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작년 11월 방영되었던 KBS <취재파일 4321> "척추 수술의 비밀"만 보자. 척추(이른바 디스크) 수술은 2001년 5만2000건에서 2008년 12만7000건으로 144퍼센트나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당 수술 건수가 한국은 160명인데 일본은 23명이다. 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는 "불필요한 척추 수술이 늘어나서 척추 수술 건수가 늘었다"고 잘라 말한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전체 척추 수술의 14.5퍼센트가 '우리들병원' 체인에서 이루어진 적도 있었다.

척추뿐인가? 무릎, 어깨, 항문 수술 등 이른바 00 전문 병원에서 환자가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를 받으면 일단 다른 의사에게 "두 번째 의견(second opinion)"을 물어보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는 것은 의사들 사이에선 이제 비밀도 아니다. (이 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는 민간보험 회사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불필요한 검사는 어떤가? 불필요한 CT, 엠아르아이, 초음파 등 내과나 외과계통을 불문하고 과잉 검사와 과잉 진료는 너무나도 많다. 이렇게 새어나가는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병원 자본과 제약 자본의 공급자를 통제하지 않으면 보험료를 아무리 올려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이뿐인가? 건강보험 재정에 잡히지 않는 의료비도 너무나 많다. 병원에 입원하는데 가장 많이 드는 돈이 특진료와 병실 비용이다. 특진비? 대학병원에 가는 것은 대학 교수에게 진찰받으러 가는데 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돈을 따로 내야하는가? 병실료? 왜 병원에 입원하는데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병실을 50퍼센트만 갖추면 되도록 법이 정해져있나? 이렇게 새는 돈만 절약해도 30조 원의 70퍼센트에 해당하는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다. 5퍼센트만 절약해도 1조 원이 넘는다.

병원과 제약회사에 대한 비용 통제 없이는 보험료를 아무리 올려도 건강보험 보장성은 강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5년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시민회의 측의 주장에는 병원비나 약제비 통제 방안이 빠져있거나 매우 허술하다. 이것이 내가 시민회의 운동을 찬성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 시민이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게 과연 대안일까? 왜 시민만 더 부담해야 하는가? 또 그렇게 더 부담한다고 한들, 보장성이 강화될 수 있을까? ⓒ뉴시스

마지막으로 우리가 돈을 더 내면, 즉 양보하면 기업과 정부가 자동적으로, 혹은 더 쉽게 양보하는가? 이 부분이 시민회의의 먼저 양보 운동에 대해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오건호 씨가 지난번 <프레시안> 칼럼에서 다룬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오건호 씨는 시민회의 측이 보도자료를 낸 다음날 <조선일보> 측에서 반대하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조선일보는 무상 의료를 무서워한다'라고 했다.

맞다. 나의 오랜 동지 오건호의 말대로 <조선일보>와 정부는 무상 급식에 이어 무상 의료까지 '무상' 시리즈가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 기사에서 두 가지 결론을 내린다. 시민들이 돈을 더 내도 기업과 국가 부담이 너무 커서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 한 가지. 그리고 시민회의 측의 "재정 부담은 정부나 기업 탓으로만 돌리던 상황에서 이번엔 국민 개인 부담부터 촉구하고 나선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의 인용. 간단히 말해 <조선일보>는 '너희들의 양보는 받아들이겠으나 우리는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다' 는 것이다.

오건호 씨 주장을 조금 더 비판해야겠다. 그는 건강보험료 인상을 반대했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반성'을 했다. 나는 그 반성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단 것일까?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되 수가를 올리라고 하는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에 찬성을 했어야 할까?

비꼬려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병원협회 등 의료 공급자 8명, 정부 측 8명(시민단체 2명 포함 최근 경실련이 바른사회시민회의로 바뀌었다), 전경련 등의 기업자 4명+민주노총 등의 가입자 4명의 구조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역할은 지금까지 보장성 강화나 비용 절감을 조건으로 한 "조건부 보험료 인상"이거나 아니면 보험료 인상에 반대해 퇴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의 지금까지의 역할이 기업주 입장에 찬성하여 보험료를 줄이는데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내 기억과는 다르다.

당장 올해는 재정 적자를 이유로 정부가 건강보험료 10퍼센트 인상으로 1조5000억 원의 재정 적자를 메우자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서 민주노총이 주장할 것이 건강보험료 40퍼센트 인상일까? 내가 보기에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반성해야할 것은 건강보험 국고 지원을 40퍼센트로 늘리자고 투쟁하지 못한 것, 민주노총 단체협약에 기업 부담금을 60퍼센트로 늘리자고 다 같이 나서지 못한 것, 그리고 이를 전체 월급쟁이들에게 다 적용하도록 법개선 투쟁에 나서지 못한 것이지, 의료 공급자와 중립을 가장한 정부 기관들로 구성된 건정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시민회의 측의 주장이 이 먹통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의 칼바람에 맞서 어떻게든 건강보험을 지키려는 고민 끝에 나온 안이며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될 법한 양보안'을 내민다. 그러나 어떻게 의료 민영화를 막고 건강보험을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먼저 양보하자"는 안은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되레 위험할 수도 있다.

보험료를 40퍼센트 올리자는 것은 국민들의 상당한 부담이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도 상당수일 것이다. 결국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안으로 낸 '선 양보' 안은 저들을 분열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쪽을 분열시킬 우려가 있다. 또 그 부담을 져서 만에 하나 재정이 는다 한들 보장성이 오르려면 병원이나 제약회사의 마구잡이식 돈 벌이를 막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없거나 제시된 안은 매우 허술하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오른 건강보험료 4.9퍼센트 중 국민에게 돌아온 보장성 강화는 0.8퍼센트에 해당하는 2000억 원 뿐이었다. 그리고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양보하더라도 기업이나 정부가 양보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남는 것은 "먼저 양보" 뿐이고 또 더 불행하게는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추진될 의료 민영화에 대한 반대 투쟁의 분열이다.

당장 국민건강보험법의 국고 지원을 40퍼센트로 확대하자는 법 개정 운동에 나서자. 민주노총은 기업의 건강보험료 보장 비율을 60퍼센트로 늘리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또 이를 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하도록 운동을 하자. 제약회사와 병의원의 과잉 진료를 억제하는 방안을 더 강력하게 시행할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알려나가고 이를 법으로 강제하도록 나서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료 민영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 추진을 막기 위해 온 국민을 모으자. 그렇게 모인 국민들은 건강보험 강화를 국가와 기업에게 요구할 것이다.

4대강에 쓰이는 눈먼 돈, 당장 지난달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준다고 정부가 지원한 돈 5조 원, 2008년 말부터 작년까지 건설회사와 은행에 퍼준 60조 원이 넘는 돈, 부자 감세로 국고에서 새어나간 돈 수십조 원으로 복지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위적인 것'이다.

동시에 이 요구는 당연하고 정당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당연한 요구를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