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인터뷰] 김소라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공동저자

일취월장7 2020. 4. 2. 15:10

조주빈을 만든 건 일상적 '성폭력 놀이 문화'

[인터뷰] 김소라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공동저자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과 그 일당들에게 국민적 분노가 쏠리고 있다. 조 씨는 고액의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여성들을 모집한 뒤 신상을 캐내 협박하는 방식으로 '노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착취한 성착취 영상물은 20만 원~150만 원을 내고 입장해야 하는 방에 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 조주빈의 악랄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서지현 검사가 페이스북에서 말했듯이, 일각에선 "n번 방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프로젝트P 펴냄)의 공동저자 김소라 사회학 박사는 "'n번 방' 사건은 신종범죄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도 아니"라며 "오히려 우리 사회가 왜 지금 분노하는지, 그리고 무엇에 분노하는지를 되짚어봐야할 때"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저서에서 "디지털 성폭력은 남성들의 놀이문화이자 거대한 산업"이라며 그 시작을 "1990년대 후반의 소라넷"이라고 분석했다.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인해 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여성의 몸과 성행위를 관음증적으로 훔쳐보고자 하는 남성의 욕망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현상이 "가깝게는 불법촬영물들을 공유했던 '소라넷'과 웹하드,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사이트들과 단체 채팅방 같은 플랫폼들"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의 '에로비디오'와 80년대의 '성애영화', 그리고 1970년대 후반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 등 여성의 존엄성과 인격을 비하하며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지속시켜온 미디어 속에서 이뤄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나타나는 디지털 성폭력의 양상은 단지 성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며, 타인에 대한 폭력이 어떻게 재미로 발현되는지 질문해야 할 문제"라고 조언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은 지난 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카페에서 김소라 박사를 만나 하나의 산업이 된 디지털 성폭력과 'n번 방' 사건의 맥락이 품고 있는 쟁점을 살펴봤다. 


수많은 '○○방', 조주빈은 어디에나 있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가 왜 '지금' 분노하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를 되짚어 볼 때라고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n번 방 사건'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김소라 : 그동안 지속적으로 여성들이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기에 제대로 귀 기울인 적이 있었나. 그래서 지금의 이런 분노가 놀랍다. 이 분노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불법 촬영 근절 운동, 소라넷 폐쇄운동,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디지털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해왔다. 또한 채팅앱 등을 통해 알게된 10대와 신뢰관계를 쌓은 다음, 몸을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하고 그걸 빌미로 협박하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에 대한 지적 역시 오래 됐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중 가장 많은 청원 동의를 기록한 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관련 청원이다. 많은 이들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 해달라', '포토라인에 세워달라', 'n번방 대화 참여자 모두를 처벌해달라'며 같은 목소리를 내는 현상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행위가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이 디지털 성범죄를 광범위하게 자리 잡게 한 '놀이문화'와 그 같은 놀이문화를 방관해온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조주빈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단죄하고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미 텔레그램이 아니라 디스코드, 워커 등 다른 플랫폼으로 '변종 n번 방'이 옮겨가고 있다고 하지 않나. n번 방은 한 사람의 범죄가 아니라 이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정책적 무관심이 누적되어 발생한 구조적 범죄다. 


프레시안 : 공동저자로 참여한 책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에서도 디지털 성폭력을 '남성의 놀이문화'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김소라 : n번 방의 관전자 수가 2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중복이라 26만 명까지는 아니라는 항변도 있다. 그런데 숫자는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26만 명이 아니라 100명만 그 방에 있어도 문제다. 여성을 착취해서 성적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자체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관전자가 26만 명까지는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26만 명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누구를 변호하고 싶은가. 흔히 남성들이 말하듯 '잠재적 가해자로 몰려서 억울하다'면 불만과 분노는 여성이 아니라, 그 원인을 제공한 n번 방과 박사방에 참여한 남성들을 향해야 한다. 


관전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무엇을 방해하고 감추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상황을 축소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간 우리가 어떻게 이 같은 현실을 묵인하거나 눈 감아왔는지 성찰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또한 사진과 영상 너머에 누군가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사진과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의도적 무지를 허락하며, 죄책감 없이 성착취에 참여하게 할 뿐이다. 


프레시안 : 조주빈 한 명의 일탈, 한 명의 '악마'가 만든 문제는 아니라는 의미인가. 


김소라 : 많은 언론 보도가 범죄 행위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조주빈의 신상을 털고 행적을 보도함으로써 그를 악마화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정작 이 같은 현실을 방기해온 사회 시스템에 주목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조주빈은 성착취 영상을 자기 혼자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이를 공유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영상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전자들이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했다.


아울러 성착취 사진과 영상을 공유해 조주빈은 텔레그램 방 내의 다른 남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폐쇄됐지만 '소라넷'도 그러지 않았나. 불법촬영물을, 성 착취 영상을 익명의 다른 남성과 공유하고 같이 본다. 그 같은 공간에서 불법촬영물을 올리면 칭찬과 부러움, 공감과 같은 반응이 되돌아온다. 디지털 성폭력이 어떤 남성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주빈은 단지 한 명의 범죄자가 아니다. 그의 범죄는 그의 행위를 지켜보고, 반응하고, 호응하며, 비평하고 감상을 늘어놓은 다수의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졌다. 한 사람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프레시안 : 불법촬영 영상물 공유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김소라 : 강의 중에 여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여러분은 연인과 찍은 성적 영상을 친구와 공유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냐?" 세상에 무슨 이런 어이없는 질문이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영상물 공유와 같은 행위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거나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성들은 왜 성착취 영상을 공유할까. 그걸 통해서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심각한 범죄임에도 그 범죄를 통해 다수가 즐거움을 얻는다면, 더는 개인의 단순한 일탈로 볼 수 없다. 


지난해 4월이었나, 남성 기자 60여 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불법촬영물과 성매매 관련 정보들이 공유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거길 보면 그냥 영상 올리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영상에 대한 감상평과 피해자 평가가 줄을 이어 올라온다. '형님 더 올려주세요' 하고 서로 치켜 올려주며, '이 정보는 아십니까'라며 스스로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자기들끼리 일종의 연대와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이는 성착취 이미지와 영상이 즐거움뿐만 아니라 남성들 간의 연대를 다지는 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단지 어떤 이미지나 영상을 보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 같은 이미지나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으스대며, 이를 '함께' 보고, 반응함으로써 여기에 참여하는 '과정'이 즐거운 것이다.


프레시안 : 조주빈과 그 일당, 관전자들에게도 그런 즐거움이 작용했을 거란 말인가.


김소라 : 그렇다. 여기에 금전적 수익까지도 따라온다. 사회적으로는 지탄받을 행동이지만 남성들 사이에서는 인정받는 행동이고 돈도 벌 수 있다. 단순히 범죄를 저지르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범죄로 인정받고 돈도 버는 그 상황, 그 구조가 이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방에 입장한 모두가 가해자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열린 페미사이드(Femicide) 규탄 시위. 가면을 쓴 시민들이 여성 혐오적 범죄를 규탄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페미사이드는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합성어다. ⓒ연합뉴스


'일탈계', '스폰 알바'가 문제? '성착취'가 문제!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의 '일탈계'를 문제로 지적한다. 


김소라 : '피해자가 문제'라는 식의 발상이다. 일탈계를 운영했으니, 고액의 스폰 알바를 구하려 했으니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식이다. 언제까지 피해자 탓을 할 건가. 앞서 이야기했듯 이는 사태를 축소하고, 문제의 해결을 방해할 뿐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삭제지원 자원 활동을 하면서 '일탈계'라 불리는 계정들을 보기도 했다. 이들 여성이 혹여 범죄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10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이들에게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다른 통로를 제공해준 적이 있나. 10대 여성이 타인의 관심이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공부를 잘하거나 예쁘거나. 우리 사회가 '너는 좋은 사람이야',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며 10대 여성들을 인정하는 방식이 그런 것밖에 없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지 않아도 자존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여성들의 상황을 착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왜 일탈계를 운영할까"가 아니라 "지금 10대 여성이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나", "그 같은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을 촬영해서 이를 온라인에 업로드한 이를 착취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이다. 거듭 말하지만 피해자 탓을 해봤자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다. 핵심은 가해자의 행위와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이다. 


프레시안 : 사건의 초점이 '미성년자 성착취'에만 쏠리는 것 같다. 물론 미성년자에게까지 성착취가 이뤄졌다는게 끔찍한 일이지만, 성인 여성 피해자를 잊게 되는 것 같다. 


김소라 : 우리 사회가 분노하는 지점은 '어떻게 미성년자를 그렇게 착취하느냐'에 가까운 듯 하다. 그러면서 성인 여성 피해자는 지워지고 있다. 우려하는 점 중 하나다. 


이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펼쳐온 정책과 맞닿은 반응이기도 하다. 이른바 '원조교제'로 불렸던 현상, 그리고 미성년자 간에 발생한 성착취 동영상의 촬영 등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면서 1997년 청소년 보호법이 생겨났다. 또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공론화되면서 2008년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전면 개정되었다. 이들 법은 아동과 청소년을 성적 착취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우리 사회의 의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들을 주요한 보호의 대상으로 봄으로써 보호해야 할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를 구분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74명의 피해자 가운데 미성년자가 16명이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성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분노는 미성년자 성착취에 집중되어 있다.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나 통로가 적은 10대 여성들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텔레그램에서 이루어진 성착취는 피해자의 연령이나 판단능력으로 그 경중을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성인 여성의 성착취에 대한 상대적인 무관심은 무엇 때문인가. 성인 여성의 성착취에도 우리 사회는 이 정도로 분노할 것인가. 반대로 아동과 청소년의 성은 충분히 보호되고 있나. 20년 가까이 아동과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방'을 만들어온 것...제도·구조·그걸 용인하는 '분위기' 


프레시안 :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나. 


김소라 :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에도 쓰긴 했는데, 범죄의 원인을 찾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범죄의 원인을 주로 개인에게서 찾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의 원인보다는 행위와 체계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범죄가 가능한 구조가 형성되고 지속된다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이 일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디지털 성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그치지 않고 다수의 집단적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디지털 성폭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고 싶다. 


프레시안 : 그럼 그렇게 질문하겠다. 디지털 성폭력은 어떻게 '다수의 집단적 문화'로 자리 잡았나.


김소라 : 그 같은 행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법적으로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미 수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제대로 처벌된 사례가 없다. 소라넷을 계승한 사이트로, 그리고 n번 방의 전신으로도 이야기되는 'AV스눕'에는 무려 122만 명의 회원이 가입했지만,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불과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이미 지난해에 만기출소했다. 


다크웹에서 아동 성착취 영상을 공유하는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했던 손정우 역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다음 달 만기 출소를 앞두고 있다. 단순히 법률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낮은 기소율, 법정형에 비해 낮은 수준의 처벌 등은 검찰과 재판부의 무관심과 무능력의 문제다. 


디지털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온 현실 역시 지적해야 한다. 연구와 관련하여 20대 여성들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단톡방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이 매우 일상적이라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밥 먹었냐, 과제 했냐와 같은 대화에 이어 곧바로 "걔 몸매가 어떻다"는 식으로 동료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모욕하는 말들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성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인 문화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미성년자 간에 이루어진 성착취 동영상의 촬영을 문제로 인식한 이들은 매우 일부였고, 대다수는 그 같은 영상을 소비하는 데에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도 않았다. 또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여성 연예인들의 성행위 동영상이 유포되고 수많은 이들이 이것을 보았을 때, 언론은 이를 "전 국민의 컴맹 탈출에 기여"하고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든"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0년대에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길거리, 지하철, 공중화장실, 여름철 피서지 등에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문제가 대두됐다. 그러나 2015년 여성들에 의해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는 뒤틀린 성적 욕구를 가진 일부 남성의 일탈적 행위 혹은 피서지와 수영장 등에서 여성의 신체노출에 자극받은 순간의 실수로 치부되었다. 


프레시안 : 사회적으로 그걸 용인하는 분위기, 제도, 구조가 n번 방까지 이어졌다는 말인가.


김소라 : 어디에서도 그런 문화에 비판적인 시각을 길러주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성평등이 우리 사회의 주요 가치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10대 남성들 사이에서 반페미니즘 분위기가 만연하고, 여성혐오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남성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갖길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남성들에게는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놀이문화인 셈이다. 전사회적인 노력과 개입 없이는 이 같은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처벌 강화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한 논의를 보다 세심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 단지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없어서 기소율이 낮은 것도, 법정형이 낮아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약간의 변동은 있겠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의 카메라등이용촬영죄도 그 기소율은 30%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별로 없다. 필요한 것은 솜방망이 처벌도, 강력한 처벌도 아닌 '합당하고', '확실하며', '일관성 있는' 처벌이다. 현재는 어떤 경찰을, 어떤 검사를,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처벌의 수위가 너무나 다르다.


▲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프레시안(최형락)


'처벌 강화'로는 부족...'일관성 있는 처벌'과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 절실 


프레시안 : 무엇이 처벌을 제대로 못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김소라 : 공권력이 젠더폭력을 인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처벌 강화'는 여론에 떠밀린 일시적인 방편에 그치기 쉽다. 경찰, 검찰, 재판부는 그간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을 조합해 '장학썬'으로 불린 사건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 어느 하나 적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들이 이걸 조직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중요한 이슈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주장하는 바를 받아들일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공권력을 쥐고 있는 게 심각한 문제다.


입법부도 마찬가지다. '텔레그램 성착취 방지'가 국회청원 1호였는데 국회가 법안 하나 제대로 개정하지 않았다. 이미지의 합성과 변형으로 처벌 대상을 확대하기는 했으나 정작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내용들은 법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그동안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수많은 여성이 이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신뢰를 파괴하는 범죄로 바라보기를 요청했다. 10만 명이 넘는 이들이 국회 청원에 동의했으나, 정치권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텔레그램 성착취가 국민적 공분을 사니, 갑자기 이전까지 관심 없던 국회의원들이 각종 발의안을 쏟아낸다. 이미 통과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만도 상당한데 말이다.


프레시안 : 끝없는 성착취, 진화하는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김소라 : 신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사법적 공백을 메우고, 처벌을 강화하며, 의제강간 연령을 높이는 등의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것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했듯 디지털 성폭력은 최근 갑자기 등장한 신종 범죄가 아니다. 처벌 강화만으로 현재 사법 기관들의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


또한 보호 대상 확대를 위해 보호 대상의 기준을 정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가해자의 행위가 아닌 피해자가 보호받을 사람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집중된다. 우리사회가 지난 20여 년 간 반복해온 일이다.


따라서 추상적으로 보이겠지만 무엇보다 젠더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 그리고 공권력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시킬 때에야 제대로 된 수사, 확실하고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몸이 아니라도 여성들이 자존감, 사회적 인정과 성취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지만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2차 가해의 방지 역시 중요하다. n번 방 사태에 대한 현재의 거대한 분노가 이 같은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되기를 바란다. <끝>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프로젝트P 펴냄, 이나영 김소라 등 지음, 값 1만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