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착한 임대인',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일취월장7 2020. 3. 25. 17:34

'착한 임대인',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착한 건물주란 없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시민의 일상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경제 전반이 큰 영향을 받았고, 특히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장 먼저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도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늘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였다. 지난 2월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수는 2018년 564만 명에서 2019년 561만 명으로 소폭 하락했다. 자영업자 비중은 2018년 한국은 21%,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평균은 14.4%다. 여전히 해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높은 수치다. 불충분한 사회 안전망, 일자리 부족으로 인하여 생계를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충분한 준비 없이 뛰어드는 자영업자들이 끝없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은 또 다른 약자인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감소로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급감하자 고통 분담을 위해 전주 한옥마을의 몇몇 건물주로부터 시작된 ‘착한 임대인 운동’을 보고, 정부는 건물주가 소상공인의 임대료를 내리면 6개월 동안 깎아준 임대료의 절반만큼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상공인연합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소상공인의 90%가량은 착한 임대인 운동의 실질적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하고 있다. (☞관련기사: 소상공인 90% "착한 임대인 운동 효과 없다") 정부의 세제 혜택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임대인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의 대책이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 또는 지원정책이 아니라, 전적으로 임대인의 호의에 의한 선택에 의존해야하며, 건물주에 대한 또 다른 혜택이라는 비판도 있다.



착한 임대인을 만나는 방법


착한 임대인이란 임대차기간에 임대료를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게 올리지 않으며, 임대차기간 부동산에 문제가 있으면 잘 수리해주고, 임차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임대차계약을 종료시하지 않는 임대인이라 정의해본다.


임대인이 오랜 기간 부동산을 보유하고(최초의 투자비용이 현재 시세에 대비해서 매우 저렴하다는 뜻이다), 부동산 매매도 자주 이루어지지 않아 가격 변동이나 임대료 변동도 크지 않은 지역, 갑자기 상권이 좋아진 경우가 아닌 그만저만한 상권,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지역에 오랜 기간 터 잡고 살며 상호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 착한 임대인을 만날 확률이 크다. 이런 경우에는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임차인이 많아 임차인의 변동이 적다.


▲홍대 상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상가투자자의 수익률 극대화 수단은 변동성


임차인의 이동이 적고, 임차인의 매출이나 수익 구조가 안정적인 상권의 경우 부동산 가격의 등락이 크지 않고, 임대료 수준도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그러니 상가투자자에게 기대되는 수익률도 안정적이다. 임대인이 급격히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다면 임차인이 오랜 기간 영업을 유지해오면서 누적되는 영업상 노하우, 단골 고객 등은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각종 개발 사업, 환경 개선사업, 도시재생사업 등의 외부적 변동, 방송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하여 상권이 커지고 유동인구가 갑자기 유입되는 상권의 경우를 보면 반드시 부동산 투자자도 함께 유입된다. 최근에는 아예 부동산 가격이 낮고 낙후한 지역을 타깃으로 하여 상권을 만들기 위해 작정한 세력들이 떴다방처럼 일정 자금을 끌어모아 부동산을 매집하기도 한다.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작전 세력과 행태가 유사하다.



차이점은 주식 작전 세력은 불법이지만, 부동산 작전 세력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자가 유입되면 가격이 단계적으로 상승하며, 가격 상승과 함께 방송 등 각종 매체를 통하여 상권 띄우기 작전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유동 인구가 유입되고,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기대수익률을 충족하기 위하여 임대료를 급격히 올린다. 임대료 상승과 연동하여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도 상승하며, 대출 비율도 함께 상승한다. 은행에서 상가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할 때 이자상환비율(RTI)을 기준으로 하는데, RTI란 연간 이자비용 대비 연간 임대 소득이다. 임대 수익이 이자 비용을 상환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출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상가투자자는 많은 대출을 받기 위해서 최대한 임대료를 올려야만 한다.


상가 건물이 새로운 투자자에게로 손바뀜 되면 투자자의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바로 종전 임차인을 내보내고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는 것이다. 임대료를 급격히 올리거나, 종전 임차인이 실현할 수 없는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어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임대인은 종전 임차인을 내보낸다. 종전 임차인은 각종 개발 사업이나 상권의 확장, 변동으로 인한 외부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시설 투자비용, 자신이 오랜 기간 쌓아온 영업 노하우나 단골 고객 등을 모두 포기하고 나가야 한다. 오랜 기간 임차인들이 쌓아올린 영업권을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방법이다.



최근 명동, 강남역, 홍대, 연남동 등 주요 상권에서 권리금 없는 점포, 즉 무권리매물이 속속 등장한다고 하면서 경기 침체, 최저 임금인상 등을 원인으로 분석하는 기사가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권리 점포’란 임대인이 기존의 임차인을 내보내고, 임차인의 영업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권리금을 임대료로 전환하는 수단이며, 상가투자자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일 뿐이다. 새로운 임차인의 입장에서 종전 임차인에게 권리금 1억 원을 지불하면서, 월임대료 500만 원으로 계약하는 것보다는 권리금이 없이 월임대료 700만 원으로 계약하는 것이 더 부담이 적다. 권리금 없는 점포는 더 높은 월세를 받을 수 있다. 상가투자자인 임대인은 종전 임차인을 쫒아내고 임대료를 극대화함으로써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레버리지 효과로 투자수익률을 높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 임대인이 정부가 의도한 착한 임대인이 될 수 없다.


낙후 지역을 타깃으로 하는 상권 작전 세력들은 사전에 끌어 모은 자금으로 싼값에 부동산을 매집하고, 상권을 만든 후에 기존 임차인을 쫓아내고 신규 임차인으로부터 최대한 임대료를 높여 수익률을 키운 후에 자신들은 정작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그들이 잘 포장해놓은 좋은 상권과 높은 임대료, 투자수익률을 홍보하며 비싼 값에 매각하여 자본이득을 취하고 지역을 떠나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여기서 오랜 기간 쌓아올린 영업권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기존 임차인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장밋빛 전망에 현혹되어 높은 임대료를 주고 들어온 신규 임차인들도 몇 달 또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뼈 빠지게 일해서 임대료만 내고, 시설투자금 등 큰 손해만 보고 장사를 접게 된다. 작전 세력들이 세팅해놓은 임대료가 영원할 것만 같은 장밋빛 투자 전망만 보고 큰 대출을 받아 투자한 신규투자자 또한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상권 작전 세력을 통하여 조작되고 만들어진 불로소득의 실체, 상가 투자자의 수익률 극대화 수단은 극단적인 변동성을 지닌다. 소수가 편취하고 있는 불로소득은 자신들의 전 재산과 인생을 건 누군가의 피눈물의 대가다. 우리가 그동안 서울 곳곳에서 목격해온 경리단길, 망리단길, 홍대, 강남역, 연남동, 익선동 등의 급변하는 상권 변동성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뒤안에는 바로 우리 이웃들의 피땀과 원한이 담겨 있다.



대박만 꿈꾸는 대한민국... 누구 책임인가


이 모든 일은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과 부동산은 안전자산이라는 굳건한 믿음, 부동산 투자 열풍에 기대어 부동산을 사고 팔면서 이익을 챙기거나 불투명한 부동산 및 창업 정보에 기반하여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어리숙하고 불안정적인 자영업자들에게 기생하여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종시 상가 분양가의 1/3토막, 공실률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 마곡지구, 위례신도시 상가 반토막, 임대로 절반으로 뚝, 공실 장기화 더는 못버틴다’며 상가투자자의 눈물을 보도하는 기사와 함께 ‘제로금리 시대, 틈새 투자처 수익형 부동산’, ‘아파트를 눌렀더니 꼬마빌딩이 떴다’라며 상가 투자를 부추기는 기사들이 함께 나온다. 여기에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보유한 부동산과 이들이 누린 시세 차익을 동경하는 기사가 곁들여진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박서준 경리단 가게 22억에 팔아 14억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노홍철이 해방촌 서점을 팔아 2년 만에 2배 차익을 남겼다’는 기사에 묻어 있는 뉘앙스는 보이지 않는 우리 이웃들의 피눈물이 아니라, 부동산 투자가 얼마나 손쉽게 큰돈을 벌게 해주는지를 유혹하는 속삭임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 환경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이 폭주하자 아마존은 직원 10만 명을 새로 채용했다고 한다. 국내 음식배달 앱 시장을 개척한 배달의 민족 우아한형제들의 연매출은 4년 만에 11배 이상 성장한 5000억 원(2019년 기준)을 넘어섰다고 한다. 온라인 중심의 시장 환경은 우수한 입지 등 전통적인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중요하지 않다. 뒷골목 후면지에서도 수천억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부동산에 목매달며, 새로운 시대에 준비할 기회를 놓치고 있을 것인가. 새로운 질서와 시대를 준비해야하는 2020년의 우리는 박정희 시대의 패러다임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최근 전세계 증시와 대한민국 증시가 폭락하자 폭락장을 기회로 삼아 인생역전을 노리며 주식에 올인하는 젊은이가 늘었다고 한다. 몇 년 전 비트코인 열풍의 주역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2030 젊은이들이었다. 서울아파트 3채 중 1채를 30대가 샀다고 하며, 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30대가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일확천금, 불로소득 외에는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의 단면인 것 같아,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

출처: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2511220533271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